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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01:31:31

흥선대원군/여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a122d, #6d1b43 20%, #6d1b43 80%, #4a122d)"{{{#!wiki style="margin:-10px"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6d1b43><tablebgcolor=#6d1b43> 파일:기린 흉배.png 흥선대원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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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섭정 배경 · 평가 · 여담 · 매체

1. 개요2. 여담

1. 개요

흥선대원군의 여담을 다룬 문서.

2. 여담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 태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고,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고자 하는데, 공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吾欲引千里爲咫尺, 吾欲剗泰山爲平地, 吾欲高南大門三層 於諸公何如?)
"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거라면 비록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용서할 수 없다."
파일:external/img.khan.co.kr/20090114.01100122000002.01M.jpg
<colbgcolor=#29176e> 흥선대원군이 그린 묵란(墨蘭)
휘호지면하시독(揮毫紙面何時禿)고 마묵연전필경무(磨墨硏田畢竟無)라
묻노라 저 사람아 이 글 뜻을 능히 알따[15]
기인(其人)이 완이이소(宛爾而笑)하고 유유이퇴(唯唯而退)하더라
종이에 붓을 휘두르니 언제야 모지라질까[16]? 먹을 벼루에 가니 마침내 없어지리라.
묻노라, 저 사람아, 이 글 뜻을 알겠느냐?
그자가 빙그레 웃고서 '예, 예' 하고 물러나더라.
파일:/image/032/2015/03/01/l_2015030101000080100005655_99_20150301213103.jpg
<colbgcolor=#29176e> 2015년 삼일절에 양상현 교수가 공개한 《그리피스 컬렉션》에 실린 흥선대원군 추정 사진
파일:attachment/흥선 대원군/man.jpg
<colbgcolor=#29176e> 흥선대원군으로 알려진 사진

[1] 책의 완성 자체는 갑신정변 이전에 되었다. [2] 실제 역사에서 이장렴은 고종 즉위 직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강화유수, 진무사를 거쳐 형조판서와 금위대장(고종 6년)에 올랐고 종친직으로는 지종정령에 올랐으나 고종의 밤 행차 때 횃불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1872년(고종 9년) 파직되었다. [3] 그런데 이장렴도 전주 이씨, 그러니까 흥선대원군처럼 왕족이라는 점. 비록 흥선대원군보다'도' 왕위 계승권이 한참이나 멀고 먼 인물이지만. [4] 참고로 이 이야기는 원래 미국이나 유럽 쪽 유머이며, 이게 흥선대원군 일화로 와전되고 잘못 알려져서 여기 적혔다는 것은 일화의 일부가 근대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 1948년 8월 15일, 정식으로 수립된 이후에 더해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5]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에피소드가 선조 이항복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6] 해당 지역은 당시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배천'이라고 읽는 게 맞다. [7] 땅바닥에 판을 그려놓고 돌, 풀잎, 나뭇가지 등을 말로 삼아 승패를 내는 놀이. 일반적으로는 작은 돌로 많이 하는 민속놀이다. 만약 노인이 고누놀이를 할 줄 알았다면 조선의 섭정 흥선대원군이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작은 돌멩이나 움직이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8] 이와 유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또 있는데, 다만 흥선대원군은 집주인으로, 노인은 나그네로 바뀌어 있다. 고누놀이를 할 줄 아냐고 묻는 것까지는 동일하고, 이후 답답해진 집 주인이 "그럼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요?"라고 묻자 나그네가 "은 먹을 줄 압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 [9] 황문을 항문으로 잘못 들은 척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똥구멍'을 한자로 '황문'이라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 누런 것이 나오는 문'이라는 뜻. [10] 남사당패 대표쯤 된다 [11] 망건에 달아서 당줄을 걸어넘기는 작은 고리. 사극 같은 데서 망건에서 관자놀이 부근을 보면 조그만 동그라미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게 관자다. ' 관자놀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표현이다. [12] 2013년 황선홍이 지휘봉을 잡았던 포항 스틸러스는 모종의 사정으로 모기업 포스코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외국인 선수 없이 전원 국내 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치러야 했고, 이 때문에 황선홍 감독에게 '황선대원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그 시즌에서 포항은 K리그 30년 최초의 리그 + FA컵 더블을 달성하는 영광을 누렸다. 다만 황선홍 본인은 외국인 선수를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게 아닌데 이런 별명이 붙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상당히 불쾌해 했다. [13] 그렇다고 1차 세계대전은 낫냐면 당연히 아닌게 옆동네에 있는 일본 때문이다. 오히려 1차 세계대전에서는 보는 눈이라도 있으니 막나가지 못하지 보는 눈도 사라진 상황이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활개칠건 뻔한 일이다. [14] 이 경우 가짜인 줄 알면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대주기 위해 모른 척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기당했는데 독립운동 자금 대주느라 그랬다고 정신승리를 하는 걸 수도 있고. [15] 중세 한국어의 2인칭 특수 의문어미(-ㄴ다, -ㄹ다)가 문어체에는 흥선대원군 시대까지 간혹 등장했다. [16] 끝이 닳거나 잘려서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