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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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JULIO IGELSI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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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음악 | ||
입성날짜 | 1985년 11월 7일 | ||
위치 | 7000 Hollywood Blv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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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후안 카를로스 1세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 아돌포 수아레스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 펠리페 6세 | 파블로 피카소 | 예수의 테레사 | 펠리페 곤살레스 | |||||
11위~100위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이사벨 1세 | 세베로 오초아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 호세 사파테로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살바도르 달리 | 안토니오 가우디 | 엘 시드 | 알폰소 10세 | 페르난도 알론소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프란시스코 데 고야 | 프란시스코 프랑코 | 안토니오 마차도 | 미겔 인두리안 | 미카엘 세르베투스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로라 플로레스 | 펠리페 2세 | 카를로스 1세 | 로시오 주라도 | 그레고리오 마라뇬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디에고 벨라스케스 | 이사벨 판토하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겔 데 우나무노 |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비센테 페레르 | 카밀로 호세 셀라 | 페드로 두케 | 다니 페드로사 | 파우 가솔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다비드 비스발 | 라파엘 나달 | 카마롱 데 라 이슬라 |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 | 후안 라몬 히메네스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산티아고 카리요 | 안토니오 반데라스 | 이냐시오 데 로욜라 | 페드로 알모도바르 |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 |||||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 미겔 에르난데스 | 후안 마누엘 세라 | 로페 데 베가 | 엘 그레코 | |||||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아구스티나 데 아라곤 | 호아킨 사비나 |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 앙헬 니에토 | 마누엘 아사냐 | |||||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조르디 푸졸 |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 알레한드로 산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에르난 코르테스 | |||||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카를로스 사인츠 | 파퀴리 | 텔모 사라 | 몽세라 카바예 | 마누엘 데 파야 | |||||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이삭 페랄 | 플라시도 도밍고 | 미겔 길라 | 루이스 부뉴엘 | 엘 코르도베스 | |||||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프란시스코 피사로 | 마리아노 바울바시드 | 라울 곤살레스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초아 | |||||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아만시오 오르테가 | 마놀레테 | 에두아르도 칠리다 | 페란 아드리아 |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 | |||||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 호아킨 로드리고 | 에밀리오 보틴 |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 프란시스코 헨토 | |||||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세바 바예스테레스 | 이삭 알베니스 | 페데리코 바하몬테스 |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 카르멘 아마야 | |||||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스 | 마누엘 산타나 | 알리시아 코플로비츠 | 안토니오 루이스 솔러 | 자코네로 |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Julio Iglesi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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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a618><colcolor=#fff>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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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
호세 이글레시아스 델라쿠에바 Julio José Iglesias de la Cue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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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3년 9월 23일 ([age(1943-09-23)]세) | |
스페인국 마드리드 | ||
국적 | 스페인국 → 스페인 | |
직업 | 가수, 배우, 축구선수( 골키퍼) | |
학력 |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법학 학사 | |
신장 | 185cm | |
가족 |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 |
소속 |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1960~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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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축구선수, 가수2. 생애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1]의 골키퍼 출신였으나, 교통사고를 당해 은퇴해야 했다. 그는 의사로부터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2년간의 혹독한 훈련 끝에 결국 다시 걷게 되었다. 축구를 엄청 좋아하며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광팬이라고 한다1968년 6월 18일에 열렸던 바인도른(Beindorn) 가요제에 참가하여, 그의 곡이 그랑프리가 되어,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칠레 해변가요제에도 출전하여 입상했으며, 1970년에는 <Gwendolyne>란 곡으로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 출전하였고,[2] RCA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1980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Hey>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믹스하여 제작한 앨범으로, 스페인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중남미에서부터 반응을 시작하여 전 세계로 확대되어,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35년에 콜포터가 발표했던 <Begin The Beguine>을 스페인어로 리바이벌시켜서 현대 감각에 맞게 편곡하여 불러 주고 있기도 하다.
1982년에 <De Nina A Mujer(소녀에서 여인으로)> 란 앨범을 발표한다. 1982년 1월 20일자 캐시 박스지 표지 모델로 미국 가수가 아닌 외국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실린것이다.
1983년 에 발표한 앨범 <Momentos>에서는 <Natalie>, <La Paloma>, <Amor> 등 많은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다.만 3년만에 석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수많은 싱글로, RCA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는 아티스트 중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가수로 등극한다.
3. 여담
- 스페인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본국인 스페인에서는 과언이 아니라 팝의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급의 위상을 가진 국민가수이며 스페인 국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를 공유하는 라틴 아메리카권에서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다.
-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처 프리실라와 약혼을 발표하여 전 세계 팝 팬을 놀라게 했다.
- 1981년 12월에 아버지가 납치범에 의해 유괴되었을 때는 스페인의 모든 경찰력을 동원시켜 범인을 찾게 했다.
-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도 세계적인 가수인데, 훌리오의 전성기를 봤던 사람들은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평을 하기도 하지만, 2023년 기준으로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라틴팝 가수가 되었으며 빌보드 라틴차트 1위곡이 무려 23곡이나 되는 스페인의 국민가수이다.[3] 늦둥이가 많은데 그중 막내가 무려 2007년생이다.[4]
4. 대표곡
제목은 몰라도, 들어보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명곡들이 다수 있다.- Hey :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있는 그의 대표곡
- 'Nathalie'
- 'Con La Misma Piedra'
- 'Manuela'
- 'La Paloma'
- La Mer
- 'Crazy'
- When I Need You : 셀린 디옹외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한 명곡[5]
5. 엄친아
한국에서 그의 스펙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엄친아계의 최고봉-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남 #
-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남
- 변호사를 목표로 스페인의 마드리드 대학교 법대 졸업
- 뛰어난 축구실력으로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골키퍼로 활약
- 1963년 10월 22일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투병하는 동안 기타를 연주하여 음악의 길로 접어듬
- 음악으로 라틴팝 최고의 자리에 오름
- 미남
- 자식농사 잘 지음
- RCA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는 아티스트 중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가수
6. 기타
1989년에 한국에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되려 일본인들이 더 많이 왔다. 일본에도 와서 공연했는데 한국 당시 공연관람비는 일본의 20%도 안되다보니 일본인들이 엄청 왔다는 것. 당시 영화월간지 로드쇼가 간략 인터뷰와 취재를 한 바 있다.
[1]
리저브팀이다.
[2]
우승했다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종합 4위에 그쳤음.
[3]
아버지 훌리오가 스페인어권 대중음악의 전설이라 아들 엔리케의 업적이 폄하되기 쉽긴 하지만, 엔리케는
제니퍼 로페즈,
리키 마틴, 마크 앤소니,
샤키라와 함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라틴팝 열풍의 주역이기도 했으며 최근 라틴팝 시장의 규모가 세계2위 수준으로 올라오면서 유튜브 조회수 10~20억은 쉽게 기록하기도 했다.
[4]
그의 아버지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시니어는 더욱 대단하다.
불임치료전문의로 스페인에서 이름을 날린 시니어는 무려 89세에 셋째 아이를 낳았다. 가수 훌리오와는 61세 차이다. 시니어는 2005년 90세로 사망하고 그 다음해
유복자 막내딸이 태어났는데 이쪽은 63살 차다.
[5]
원곡은
리오 세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