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06-06 21:49:01

강제규

강제규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대상
제32회
( 1996년)
[1]
제35회
( 1999년)
제36회
( 2000년)
박철수
( 학생부군신위)
강제규
( 쉬리)
춘향뎐
영화부문 감독상
제34회
( 1998년)
제35회
( 1999년)
제36회
( 2000년)
정지영
( 블랙잭)
강제규
( 쉬리)
임권택
( 춘향뎐)

{{{#white 역대}}} 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
파일:bluedragonawards3.png
감독상
제19회
( 1998년)
제20회
( 1999년)
제21회
( 2000년)
홍상수
( 강원도의 힘)
강제규
( 쉬리)
박찬욱
( 공동경비구역 JSA)

}}} ||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40205090007243.jpg
이름 강제규(姜帝圭)
출생 1962년 11월 27일 ([age(1962-11-27)]세), 경상남도 마산
학력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소속 디렉터즈
데뷔 1996년 은행나무 침대[2]
가족 배우자 박성미, 아들 강윤원, 강지완

1. 개요2. 중앙대 졸업~시나리오 작가3. 감독 데뷔4. 절정과 추락5. 현재6. 강제규 사단7. 필모그래피
7.1. 연출작7.2. 시나리오작7.3. 제작 참여작
8. 수상 경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준익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감독이며, 대표작으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가 있다.

2. 중앙대 졸업~시나리오 작가

1984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이후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던 정인엽 감독이 소속되어있던 '합동영화사'에 공채 시나리오 작가 합격 연수생으로 입사하여 있다가, 애마부인 등등의 여러 영화의 조연출 및 제작진으로 일한다. 이 시기에 훗날 라이벌 관계가 되는 강우석[3]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되고, 몇 년 후 합동영화사를 나와 'MBC 베스트 극장'등등의 방송작가 및 CF, 수입 영화 각색작가로 일했다. 1989년 동갑내기이자 같은 학교 학과에 다닌 탤런트 박성미와 결혼하여 윤원, 지완 두 아들을 얻는다. 영화에 대해 갈망하던 중, 합동영화사에서 함께 일하던 강우석 감독의 소개로 1990년 김성홍 감독[4]의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서 영화계에서도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된다.[5]

이 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년)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충무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들 중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했고, 에로틱 스릴러 영화 장미의 나날,액션 느와르 게임의 법칙(모두 1994년 개봉)의 시나리오를 맡으면서 최고의 시나리오작가가 된다.

3. 감독 데뷔

감독 데뷔 권유는 1992년에 '흉조의 눈'이라는 영화로 크랭크인 직전까지 갔던 것. 집단 변사 사건을 역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로서, 스릴러를 기본으로 추리와 미스터리와 멜로의 요소가 가미된, 다소 정치적 메시지를 지닌 영화였다. 그러나 아니다 싶어서 거절했고, 1993년에 제작된 공포특급이라는 비디오 옴니버스 공포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던 그는 김희철 감독과 이 영화 에피소드를 감독하며 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 조심스럽게 극장 개봉 영화 감독 데뷔를 결정하게 되고, 1994년부터 은행나무 침대 시나리오를 직접 쓰면서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는데 시나리오를 몇 백 번이나 수정하는 등[6]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환타지와 SF혼합물이었기에 시도도 못하고 망하기만 했던[7] 당시 충무로 제작 방식으로는 많은 위험 부담이 따랐던지라 대부분 제작사에서는 퇴짜 맞기만 했다. 더불어 한두 명의 주연이 아닌 여러 명의 주연이 등장하는 영화 특성상 당시 원탑 아니면 투탑으로 주연만 맡기를 원했던 대부분 주연급 배우들에게 거절당하기도 했다.[8] 영화 상영 초반 대박을 맞이하고 입소문이 타면서 장기 상영에 들어갈 즈음에 씨네21과 인터뷰 한 내용에 따르면 만약에 '은행나무 침대'가 제작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SF 판타지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미 '구미호'를 제작했던 영화사 '신씨네'에서 그의 믿음에 부흥하여 제작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시나리오를 최종적으로 다시 작성하여 캐릭터에 걸맞는 배우 캐스팅까지 완료한다.[9][10][11]

영화계의 우려 반, 기대 반[12]으로 6개월간 제작된 은행나무 침대 1996년 2월 17일 설 연휴에 개봉하여[13], 지금으로썬 상상하기도 힘든 4개월간의 장기 상영까지 하게 된다.[14] 최종기록은 서울관객 68만 명, 전국관객 2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영화로 강제규 감독은 각종 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휩쓸게 되며, 감독 및 시나리오와 영화 자체의 책임을 도맡아 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두 번째 연출작 쉬리의 큰 영광에 가려져서 부각되지 못했지만, '은행나무 침대'이후 그가 직접 세운 '영화 발전소'라는 제작사[15]에서 만든 '지상만가'를 선보이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작을 선보인 감독과,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신현준)의 출연으로 충무로에서 큰 관심을 모았으나 1997년 2월 22일에 개봉하여 흥행에서 참패하여 영화사가 도산하다 못해 전 재산을 탕진하여 한동안 가족과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1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영화가 망하면 감독을 아예 포기하는 타 감독과는 달리 강제규 감독은 끝까지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남북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대국전'이라는 시나리오를 쉬리로 바꾸어 다시 제작을 맡게 된다.

쉬리도 마찬가지로 캐스팅 부터가 쉽지만은 않았다. 당대 최고의 흥행메이커 한석규가 흔쾌히 승낙한 덕분에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전액 투자를 받게 되었으나, 나머지 캐릭터들의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송강호가 연기한 '이장길'캐릭터는 차인표등등의 당대 스타배우들이 거절하면서 최종 낙찰되었고, 신현준에게 캐스팅 제의가 갔던 '박무영' 캐릭터도 우여곡절 끝에 한석규의 추천을 받은 최민식이 최종 확정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주말극 '웨딩드레스'를 보던 제작진들의 눈에 띈 김윤진이 여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17]

1999년에 개봉한 쉬리의 결과는 흥행 대성공. 당시 최고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타이타닉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서편제(영화) 이후 10년도 안 되어 서울관객 100만 명 기록을 갈아치웠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의 대 성공으로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손꼽혔고, 이 여세를 몰아 '강제규 필름'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하여 단적비연수,[18] 베사메무쵸, 울랄라 시스터즈, 몽정기, 오버 더 레인보우, 블루 등등의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자로 활동한다.

2004년 명필름의 심재명과 'MK Pictures'로 통합하지만 2007년에 다시 분열되었다.

4. 절정과 추락

그의 절정은 2004년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이다. 이 영화로 전세계 영화시장에서 그의 이름 석자가 통하게 되었고, 실미도에 이은 두번째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영화 제작에만 전념하다가 7년만인 2011년 말에 개봉한 감독영화 마이웨이가 '친일논란'과 고증오류, 너무나도 안일한 구성이라는 평단과 관객들의 혹평으로 전국관객 300만명도 채우지 못한채 흥행에서 실패하게 된다. 덤으로 해외 개봉에도 실패하여 제작비의 반도 회수 못한 채 초라한 퇴장을 하게 된다.

5. 현재

2014년 장수상회를 연출했으며, 당분간 대작 제작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의 큰 장점은 '유사 할리우드식 제작'이라는 세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실컷 긴장하거나 집중 할 때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장면을 집어넣는, 관객의 마음을 아는 감독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함께 라이벌 관계로 불리웠던 강우석 감독보다도 더 좋은 평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결정된다. 강우석 감독은 '무조건적인 마초 분위기'로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면(대표적으로 실미도, 투캅스), 강제규 감독은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이고, 그 캐릭터들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각본을 탄탄하게 쓴다는 것이다.[19]

그래서 비록 '마이웨이'에서 추락했지만, 언젠간 재기에 성공할 것이라는 충무로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2015년 재기작 장수상회는 평은 좋은 편이지만 흥행은 3주째에 전국 100만 관객을 겨우 넘기며 그리 대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제작비가 저렴한 편이간 하지만.

6. 강제규 사단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면서 함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강제규 사단'이라고 부르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발전소'를 운영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김희철 감독은 '지상만가'의 실패 이후 현재까지도 차기작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20] 박성균 감독과 박제현 감독은 2000년대 현재 '최악의 영화'로 손꼽히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단적비연수로 데뷔하였고 박제현 감독은 2014년 설 연휴에 개봉한 조선미녀삼총사로 '최악의 감독'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2002년 오버 더 레인보우로 데뷔한 안진우 감독은 케이블 드라마 신의 퀴즈 이후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은행나무 침대의 조감독을 맡았던 박광춘 감독은 1998년 퇴마록으로 데뷔하여 흥행에 성공했어도 원작을 훼손한 혐의로 원작 및 영화팬들의 욕을 많이 얻어먹더니 2000년대 들어 잠복근무, 울학교 이티 이후 소식이 없으며, 그나마 김용화 감독이 2003년 오 브라더스로 데뷔하여 흥행에 성공하고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며 꾸준한 연출활동을 했고, 2013년에 개봉한 미스터 고가 흥행에서 참패해 주춤했으나 신과 함께 죄와 벌이 흥행이 대박을 치면서 재기했다.

7. 필모그래피

7.1. 연출작[21]

7.2. 시나리오작

7.3. 제작 참여작

8. 수상 경력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1년 제 2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시나리오상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1996년 제 1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은행나무 침대
제 34회 대종상 영화제
1999년 제 20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쉬리
제 36회 대종상 영화제 기획상
제 3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대상
영화 작품상
영화 감독상
제 44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제 2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영화인
2001년 제 24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제작공로상
2004년 제 12회 춘사영화상 심사위원특별상 태극기 휘날리며
제 4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작품상
2005년 제 2회 독일 아시아 영화제 인기상영작
제 2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작품상
최고의 감독상
제 50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1] 1997년, 1998년 수상자 없음. [2] 자기 이름 석 자를 걸고 데뷔한 작품이라면 1990년에 개봉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시나리오 작가가 맞지만, 이 항목에서는 감독에 대한 설명이므로 감독 데뷔작을 데뷔작으로 한다. 더불어 개봉영화 데뷔작은 은행나무 침대이며 비디오 옴니버스 영화 공포특급에서 <국화>, <13인의 피>를 감독한 게 첫 감독 데뷔작. [3] 강우석은 강제규가 연수생으로 들어오던 당시 연출부나 조연출일을 이미 하고 있었다. [4] 손톱, 올가미 등등의 1990년대 스릴러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5] 이 영화에 당대 하이틴 스타 변우민이 주연으로 나오며, 김보성, 이범수, 공형진이 단역으로 출연한다. [6] 원래는 여관방의 침대를 쓰고 떠나가는 연인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수정해 가면서 전생의 이야기가 삽입되고, 심지어 중국의 유명 여류 작가에게 의뢰했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7] 정우성, 고소영의 '구미호'라는 환타지 영화가 개봉되었긴 했어도 흥행에 실패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제작되기도 힘들고 성공시키기 힘든 장르다. [8] 영화 속 한석규 캐릭터의 경우, 먼저 거론된 배우가 '안성기', 신현준은 '최민수', 진희경은 '강수연'이었다. 심혜진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배우들이 수차례 교체되고 퇴짜 맞기를 수십번 거듭되는 바람에 제작이 늦춰지기만 했었다. [9] 한석규의 경우에는 평범한 마스크에 안경을 낀 도회적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제작진에서 반대 의견이 많았었다고 한다. 실제 극장 개봉 당시 전생 장면이 등장할 무렵에 다소 이질감을 느낀 나머지 관객들이 웃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강감독은 한석규의 탄탄한 연기력이 커버할 거라고 굳게 믿고 캐스팅 했고, 한석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드시 하겠다고 응했다. [10] '황장군' 캐릭터는 당시 신현준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설정했다고 한다. 개봉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신현준의 데뷔작 '장군의 아들'을 본 강감독이 자신이 생각했던 '황장군'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져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수정할 적에 원래 설정되었던 우락부락하기만 했던 황장군 이미지를 신현준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강함과 여리여리함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수정했다고... 그래서 만약에 신현준이 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면, 강감독은 이 영화를 데뷔작으로 연출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 영화의 책임을 맡은 오정완 프로듀서도 영화 자체를 엎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신현준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직접 강제규를 찾아와 자신이 맡고 싶은 배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 배역이 애당초 강제규 감독이 캐스팅 하기로 했던 캐릭터 '황장군'이었다고 한다. [11] 미단공주 캐스팅의 경우 당초 '깜찍한 이미지'로 설정하여 신인 여배우 오디션까지 했었으나, 조건에 맞는 여배우를 찾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진희경으로 결정되었는데 제작진 대다수는 진희경 캐스팅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12] 은행권의 자본이 투입된 최초의 영화라는 점에서 충무로의 기대를 받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우려였다. '구미호'의 대 실패로 인한 한국형 환타지 장르의 주춤, 감독으로서 검증받지 못한 신인 데뷔작,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큰 약점.. 그리고 같은 날에 개봉한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는 유명 감독이 무려 7명이 연출하는지라 이 부터 많이 밀렸다.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이라는 당대 스타급 배우들의 캐스팅이었다고 해도 이 배우들도 영화 촬영 기간에 주변인들의 비아냥을 들으면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13] 본래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1995년 12월에 개봉하려고 했었으나 제작 및 특수효과 후반작업이 늦어지게 되어 개봉시기가 연기되었다. 때문에 제작사 신씨네의 신철 사장과 강제규 감독이 촬영 후반부엔 자주 갈등하고 다투는 모습이 많이 목격되기도 했다. [14] 악역 '황장군'이 여태껏 등장한 한국영화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점에 입소문이 타기 시작했고, 이에 여성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된다. [15] 사실 '은행나무 침대'는 '신씨네'와 '영화발전소'가 공동제작한 영화다. [16] 다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은 갈리는 편이다. 당시 미진했던 한국영화 제작환경속에서 잘 만든 영화라고 평가하거나, 당시 한국영화계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준을 엿 볼수 있다는 평이 호평이고, 이야기 없이 그저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에만 의존했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다. 강제규 감독이 진 빚은 신현준이 모두 갚아줬다고 한다. [17] '쉬리' 이전의 제목은 '대국전'으로 신현준은 이장길과 박무영 역할을 동시에 제의받았었다. 당시 이장길 역할은 한석규가 연기한 유중원 역할과 비중이 거의 비슷했고 특성상 유중원을 움직이게하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자 본래 박무영 캐릭터보다 더 돋보이는 캐릭터였었다. 그러나 신현준과 차인표 모두 거절한 이후 배역 비중이 줄어들었고, 최종캐스팅된 송강호가 코믹한 이미지를 벗지 못한 탓에 이장길과 유중원 모두 캐릭터가 살지 못했다. [18] '은행나무 침대'의 후속작이다. 최근 '조선 미녀 삼총사'로 말아먹은 박제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19] 그 망했다는 마이웨이도 고증을 제쳐놓고 전투의 때깔만 보면 대한민국 전쟁 영화 중 탑급의 수준이고, 시나리오에 결점이 상당히 많음에도 imdb 평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제작비를 들인 만큼 그에 걸맞는 스케일과 때깔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비판하는 사람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20] 다시 영화 연출을 한다는 설이 나돌기는 한다. [21] 모두 시나리오와 겸했다. [22] 중국의 '장위엔'감독과 함께 감독을 맡은 옴니버스 영화이며, 저예산 영화다. 고수와 문채원이 주연을 맡았다. [23] 본래 방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었다고 한다. [24] 배우 '김해곤'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강제규 감독이 고증 및 각색에 참여했기에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