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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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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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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부 慕容部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막호발 모용목연 모용섭귀 무선제 문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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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연 섭인 도이후 부연수 과여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세부 부윤 낙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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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2127a><colcolor=#ece5b6>
북연 초대 천왕
모용운 | 慕容雲
출생 연대 미상
고구려
사망 409년 11월 6일
북연 화룡성
(現 랴오닝성 차오양시)
능묘 미상
재위기간 초대 천왕
407년 ~ 409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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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2127a><colcolor=#ece5b6> 성씨 고(高) 모용(慕容) 고(高)
운(雲)
부모 친부 고발, 양부 모용보
배우자 태왕후 이씨
자녀 1남 고팽성
자우(子雨)
작호 석양공(夕陽公)
묘호 없음
시호 혜의황제(惠懿皇帝)
연호 정시(正始, 407년 ~ 4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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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
4.1. 드라마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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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연의 초대 황제.

자는 자우(子雨)로 고구려계이다. 제16대 고국원왕 치하의 고구려가 전연의 태조 문명제 모용황에게 참패했을 때, 붙잡혀 온 고구려의 계루부 왕실 지파인 고화(高和)의 손자였고, 고발(高拔)의 아들이었다.

2. 생애

후연의 모용보가 태자였을 때 동궁의 무예급사를 지냈다.

396년, 참합피 전투에서의 대패에 충격을 받은 세조 성무제 모용수가 붕어하고, 태자 모용보가 후연의 제2대 황제로 즉위한 후, 후연 조정이 북위의 태조 도무제 탁발규에게 대패해서 열종 혜민제 모용보가 용성으로 피신했던 시절, 청하왕 모용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목숨을 걸고 결사대 100명과 함께 반란군 수뇌부를 격퇴하여 반란 진압에 큰 공훈을 세웠다.(397. 4. 9) 하여 그 직후 고운은 혜민제 모용보로부터 건위장군에 임명되면서 석양공에 책봉되었고, 국성인 모용씨를 사성받아 이름을 모용운(慕容雲)으로 개명했다.(397. 4. 10)

모용운은 침착하고 두터우면서 말이 적어,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한족 장수인 풍발만은 그를 기이하게 여겨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406년에 모용운은 후연의 제4대 황제인 소문제 모용희를 따라 고구려의 목저성을 공격했지만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은데다가 패주한 채 돌아왔는데, 모용희의 잔학함을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관직을 사임했다. 407년 7월에 황후 부훈영의 장례 행렬을 따라 폭군 모용희가 수도 화룡성을 나갔을 때 풍발이 화룡성내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모용운은 풍발과 친했기에 황제로 추대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사양했다. 그러나 풍발이 거듭 권고하자 황제보단 급이 낮은 천왕으로 즉위해 북연을 개창했고, 대사면령을 내린 후 연호를 정시(正始)로 고쳤다. 즉위 후에 자신의 성을 모용씨에서 고씨로 복성했다.

408년에 모용희와 영응황후(榮膺皇后) 부훈영을 휘평릉에 장사지내면서 모용희를 소문황제로 추증했으며, 고구려의 제19대 광개토대왕 고담덕이 사신을 보내 종족의 예를 베푸니 고운도 이에 화답하여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했다.

고운은 스스로 공로와 은덕이 없는데도 제위에 머문다고 생각해 속으로는 위태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어, 장사를 기르고 양성하면서 이들을 심복으로 삼아 곁에 두었는데, 특히 이반(離班)과 도인(桃仁)을 총애해 그들에게 많은 상을 내려주면서 같이 생활했다. 하지만 이반과 도인은 만족할 줄 모르고 오히려 황제 고운에게 원망하는 감정을 가져 재위 3년인 409년에 동당(東堂)에 있던 고운을 암살했다. 이때 이반과 도인은 검(劍)을 품은채 지(帋, 책)를 들고 동당에 들어가
"아뢸 것이 있다."
라 말하고 이반이 검을 뽑아 고운을 치니, 고운이 궤(几, 책상)로 막았으나, 도인이 옆에서 좇아가 고운을 쳐서 죽였다. 도독중외제군사 풍발이 홍광(洪光)문에 올라 변고를 살피니 장하독으로 있었던 장태와 이상이 풍발에게 자청해, 검을 떨치며 내려가, 이상은 서문(西門)에서 이반을 죽였고, 장태는 정중(庭中, 궁중 뜰안)에서 도인을 죽였다. 천왕 고운이 살해당한 후 풍발이 즉위했는데 새 천왕은 선제 고운의 시호를 혜의황제(惠懿皇帝)라고 했다.

3. 기타

1975년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시에서 발굴된 <고영숙묘지명>(高英淑墓誌名)에서 북연의 혜의제 고운이 고영숙(高英淑: 642~691)의 조상으로 언급되었다. 고영숙 가문이 혜의제 고운의 후예가 맞다면 고운이 시해된 뒤 제위는 풍발이 차지했지만, 고운의 후예들은 딱히 해코지를 받지 않고, 살아남아 7세기까지 이어진 것이 된다.[1]

4. 대중매체에서

4.1. 드라마

5. 둘러보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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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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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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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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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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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기(戴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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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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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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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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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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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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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고영숙을 고구려계가 아닌 거란계로 보는 주장도 있다. [2] 혜의제 고운이 가문 배경이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라면 모를까, 엄연히 할아버지 시절부터 전연- 후연- 북연에서 계속 살아온 고구려계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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