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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9:48:59

한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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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극악의 확률3. 원인4. 경기 결과5. 선수 관련6. 영원히 고통받는 박찬호7. 비슷한 기록
7.1. 한국7.2. 미국7.3. 일본
8. 여담9. 각종 파생형
9.1. 야구 관련9.2. 그 외

[clearfix]

1. 개요

Hit two grand slams in one inning by one pitcher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넋을 잃었고 다들 자기가 홈런을 맞은 듯 얼굴들이 벌게 있었다. 공중파 방송 황금시간대에 제작비 100억원짜리 드라마를 틀어서 시청률 0.5%가 나올 때의 피디가 그런 심경일까. ‘한만두’의 날, 박찬호 경기를 지켜보던 우리 모두는 얼이 빠졌고 자신들이 만루홈런 두 방을 얻어맞은 듯 망연자실했다.
김형민, <접속 1990>

1999년 4월 23일,[1]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던 박찬호가 한 선수에게 한 이닝에 만루홈런 2방을 맞은 사건. 홈런을 친 타자는 현재는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아버지로 유명한 당시 기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이었던 페르난도 타티스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 이닝에 투수가 타자에게 루홈런 2방을 맞은" 것이므로 한한한만두라고 표현해야겠지만, 간편하게 한만두로 통용된다.[2]

허용투수가 하필이면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이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지만, 홈런은 엄연히 타자의 기록이니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는 일반적으로 한만두를 '맞았다'가 아니라 '때렸다'고 해석된다. 이 사건을 타자 타티스의 입장에서 쉽게 풀어쓰자면 "타티스가 한 투수를 상대로 한 이닝에 연타석 만루홈런을 때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하술하겠지만 이 기록은 투수에게나 타자에게나 여러모로 역사에 남을만한 기록이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 써도 별 문제가 없긴 하다. 실제로 한 타자 한 이닝 연타석 만루홈런 자체도 한만두뿐이지만, 이 문서에서는 주로 그런 일이 한 투수를 상대로 일어났다는 것에 주목하여 나오기 힘든 점과 유사 기록을 서술하고 있다.

당시(1999년 4월 24일) 조선일보 기사

2. 극악의 확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야구 역사상 실제로 발생한 모든 사건 중 확률적으로 다시 일어나기 가장 어려운 사건[3]으로, 당연하게도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사건[4]이며,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큰 충격적인 사건이다. '같은 투수'라는 조건을 뺀 그냥 한 타자 한 이닝 만루 홈런 2개도 이 기록이 유일하다.

농담이 아니라, 이 기록이 다시 나올 가능성은 진짜로 로또 1등 당첨보다 훨씬 낮은 확률이다.[5] 만루홈런 맞은 후 최소 3점[6]을 더 실점한 뒤 다시 정확히 만루를 채운 상태로 아까 만루홈런 친 타자와 다시 상대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이 확률을 불가능에 가깝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상식적으로 뇌가 있는 감독이라면 그 동안 투수 교체를 안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7] 연장전에서 홈팀이 경기를 포기하거나 투수가 없어서 던지게 할 수는 있지만 이게 다 맞기는 너무 어렵다. 또 투수가 전부 소모되더라도 저렇게 점수 차가 벌어지게 되면 상대 팀이 아예 GG치고 야수를 투수로 등판시켜 버릴 확률도 있고, 어느 팀에서는 몇달 동안 만루홈런을 못 치기도 하고[8] 한 경기에 루 홈런 2개, 즉 만두만 나와도 나름 진기록이라 대서특필 되는 판국에, 한 이닝에 한 투수와 한 타자가 만들어낸 기록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불멸의 기록이라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MLB.com의 분석가 톰 탱고에 따르면 한 투수 조건을 제외하고 볼 때 한 이닝 연타석 만루홈런, 즉 한한만두가 발생할 확률은 1200만분의 1정도다.[9] 30홈런을 치는 슬러거가 홈런을 칠 확률, 만루상황에 타석에 등장할 확률, 홈런 이후 베이스가 만루가 또 채워질 확률 등을 대략적으로 구해 곱한 것.[10] 메이저리그의 역사인 144시즌 동안 이닝 총합이 390만 이닝인 것을 고려해보면 443년마다 한 번씩 나올 만한 기록이 한한만두인데 박찬호는 한한한만두이니 대체... 동아일보 황규인 기자는 자기 블로그에 한한한만두는 4485년에 한 번씩 나온다고 계산했다.

박찬호가 기록한 한만두가 달성되기 위한 조건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더욱 나오기 어려운 진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이닝에 한 타자가 타석에 두 번 들어서는 확률[11], 그 타자가 두 타석에서 모두 만루 상황을 맞을 확률, 해당 만루 상황에서 해당 타자가 홈런을 때려낼 확률, 그 홈런을 맞은 투수가 같은 투수일 확률[12].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성립될 수 있는 기록이다. 하나의 조건만 해도 엄청나게 드물게 나오는 장면인데 위의 조건이 한 번에 모두 성립되었으니 정말 말도 안되는 확률이다. 한 타자한 게임만루홈런 2개 치는 것만 해도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13번 밖에 안되고 2000년 이후로는 단 2번인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13] [14] 만루홈런을 제하고 생각해봐도 한 투수가 한 선수에게 한 이닝에 홈런 2방을 맞는 것도 한국프로야구에서는 2015시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한 투수라는 조건을 제하고 생각해봐도 7번밖에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진짜 희귀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2018년 3월 31일 두산의 최대성이 kt전에서 한 이닝에 만루홈런 2개를 맞아서 KBO최초 한 이닝 만루홈런 2개를 때린 팀을 배출하였다. 게다가 최대성 혼자 2개 맞아서 '한 투수가'라는 조건도 동시 달성.

이 기록은 동시에 한 이닝에 한 타자가 8타점을 기록한 것으로 2타석에서 기록할 수 있는 이론상의 최대 타점이다. 한 이닝에 9타점 이상의 타점을 기록하기 위해선 적어도 타자이순이 일어나 한 타자가 한 이닝에 3타석에 들어와야한다.[15] 그러므로 한만두는 메이저리그의 한 이닝 최다 타점 기록이기도 하다. 프로레벨에선 이걸 뛰어넘는 한 이닝 타점 역시 사실상 거의 불가능[16]하고 앞으로 깨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록이다.

야구 '게임'에서도 무지하게 보기 힘든 사례다. 컴퓨터 인공지능이 기본은 하기 때문에 만루홈런 맞은 투수가 다시 한바퀴 돌아서 만루를 채우고도 교체를 안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게임 인공지능보다도 못한 감독(...) 아래 예시에도 있지만 투수가 만루홈런 맞고 곧바로 다시 만루를 허용한다면 4실점. 투수를 좀 더 두고 볼지도 모르지만 만루홈런 맞은 타자에게 그 이닝에 다시 만루가 돌아오려면 박찬호처럼 최소한 3실점은 추가해야 한다. 즉 한 이닝 만루홈런 포함 7실점하고 다시 만루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투수교체는 반드시 일어난다. 이걸 막으려면 투수를 전부 소모시켜버려야 한다. 그러면 게임 AI는 어쨌든 야수를 투수로 올리진 않으니 마지막 투수 상대로는 가능성이 생기기는 한다. 그런데 박찬호는 이 당시'선발투수'였으니 역시 현실은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법.

3. 원인

상식적으로 '왜 만루홈런을 허용한 투수를 교체하지 않고 마운드에 놔두었나?'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기상천외한 일들이 다 그렇듯 여러 원인들이 함께 벌어지고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발생했다.
  1. 감독이 조기에 퇴장당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제대로 경기 지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 야수선택에다가 실책까지 발생하며 야수들이 박찬호를 도와주지 못했다.
  3. 비록 만루홈런은 맞았지만 박찬호의 구위는 도저히 못 버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4. 시즌 초인데다가 상대 다저스의 직접적인 라이벌은 아니라서 자존심상으로라도 이겨야 할 중요한 경기도 아니었고, 이미 점수도 벌어진 상황이었다.
  5. 사건이 3회 초에 일어났기 때문에 구원 투수들 역시 몸이 덜 풀렸다.

결국 해당 이닝만이라도 박찬호에게 마무리하라고 놔뒀다가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 변수들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한만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4. 경기 결과

1999년 4월 23일 오후 7시 28분~오후 10시 33분[17]까지 3시간 5분 동안 진행되었던 당시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경기 결과는 12-5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이겼다. 사실 스코어만 보면 단순히 다저스가 많은 실점을 허용하고 진 경기로 보일 수 있지만...

상세한 경기 결과를 보면
파일:MLB 로고.svg 1999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1999 Major League Baseball

━━━━━━━━━━━━━━━━━━━━━━━━━━━━
1999년 4월 23일 19:28, 다저 스타디움, 46,687명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svg STL 호세 히메네스 0 0 11 0 0 1 0 0 0 12 11 1 5
파일: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화이트 엠블럼.svg LAD 박찬호 1 1 0 0 0 0 2 1 0 5 11 3 1
기록지

즉, 12점 중 11점은 박찬호가, 그것도 3회초 한 이닝에 내줬다. 그런데 기록이 달성된 과정을 살펴보면 팀이 2:0으로 앞선 3회 초가 무대였다.
선두타자 대런 브랙 우전안타 → 에드가 렌테리아 힛바이피치 → 마크 맥과이어 우전안타 → 페르난도 타티스 좌월 만루홈런(4실점)[19] J.D. 드류 1루수 앞 땅볼 아웃(1사) → 일라이 머레로 좌월 솔로홈런 (5실점) → 플라시도 폴랑코 볼넷 → 조 맥유윙 볼넷 → 호세 히메네즈(투수)

사실 정상적인 경기였다면 투수 타석을 마지막으로 교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홈런 2방을 맞은 투수가 볼넷을 2개나 연이어 더 내줬으니. 게다가 아직 3회에 점수차도 일단은 3점차였기에 경기를 포기하기는 일렀다.[20]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이날 경기는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덕분에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첩이 벌어졌다.
호세 히메네즈의 번트가 야수선택이 돼 타자와 주자 모두 살아나면서 만루 → 브랙의 땅볼 타구 때 1루수 에릭 캐로스의 홈 송구 실책, 3루 주자 폴랑코 득점[21] → 렌테리아 우전 안타, 3루 주자 맥유잉 득점(7실점) → 맥과이어 우익수 플라이 아웃(2사) → 타티스 만루홈런 (11실점)[22] → 이후 카를로스 페레스로 교체

기록을 보면 6실점 이후는 모두 비자책점이다.[23] 야구에서 수비와 팀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사례. 꼬이려면 저렇게 꼬이는구나 싶기도 하다. 모든 출루가 다 박찬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어쨌거나 핵심인 만루홈런 2방의 주자들 모두 박찬호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이 기록의 희소성이 엄청난 걸 알 수 있다.[24]

참고로 LG의 먹튀전설 매니 아이바가 상대팀이었던 카디널스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 1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했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 관련 인터뷰를 해 볼 법했지만 국내 야구팬들에게 욕먹을 걸 우려했는지 기자들이 말을 안 했다.그 전에 마운드에 오르지도 않았다

5. 선수 관련

당시 박찬호는 1997년 14승, 1998년 15승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신인이었기 때문에 1999년은 20승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 해 박찬호는 5점대 방어율로 생애 처음으로 부진한 풀타임 출장 경험을 갖게 되는데, 그 시발점이 이 사건이었다.[25]

1999 시즌 박찬호의 최종 성적은 13승 11패에 평균자책점(ERA) 5.23을 기록했다. 비록 11패도 있지만 13승을 거둔 것을 보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시즌을 보내지 않았나 싶을 수도 있는데, ERA나 WAR(bWAR 0.2)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승수 쌓기는 타선빨과 운빨이 좀 작용했다(...). 실제로 박찬호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1996 시즌부터 FA 이적 전 시즌인 2001 시즌까지 딱 한 해만 빼고 다저스 팀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bWAR을 기록했는데, 그 딱 한 해가 바로 1999 시즌이었다. 팀 내에서 2선발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이스마엘 발데스(9승 14패, ERA 3.98, bWAR 2.3)와 유리몸 대런 드라이포트(13승 13패, ERA 4.79, bWAR 1.2)가 내용 면에서는 박찬호를 앞섰으니, 한만두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타자 주인공 페르난도 타티스는 그 때만 하더라도 미래가 기대되는 거포 유망주였고 그해 타율 .298에 34홈런 107타점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으나 다음 해부터 잦은 부상으로 실력 발휘를 못 하다가 결국 은퇴했다.[26]

이렇게 타티스는 기록만 놓고 보면 잠깐 반짝했다가 잊혔을 선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불멸의 타자로 남게 되었다. 99년 남긴 이 한 경기로 인해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메이저리그에서도 불멸의 기록으로 언급되고 있을 정도. 심지어 타티스가 그 날 썼던 헬멧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는 정말 딱 한 경기, 그 중에서도 딱 한 번의 이닝으로 전설이 된 셈이다.

6. 영원히 고통받는 박찬호

이처럼 극악의 확률을 가진 한만두는 당연하겠지만 팀 벨처 이단옆차기 사건 등과 함께 박찬호 커리어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이자 박찬호에게는 치욕으로 남았다.


2014년에는 당시 다저스의 타격코치이자 한만두 당시 상대팀 선수였던 마크 맥과이어가 한만두에 대해 회상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연례행사가 되어 매년 4월 하순이 되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언론사가 한만두를 재조명하는 꼴이 되었다.

2015년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MLB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한만두 동영상과 함께 '한 이닝에, 만루홈런 2방, 여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세요. 페르난도 타티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메인을 장식하며 박찬호를 또 한번 고통받게 만들었다.

2019년쯤해서 커뮤니티 등지에서 한만두 움짤과 함께 마치 없던 사실을 꾸며낸 것처럼 적은 낚시성 게시물에 ㅇㅁㅊㅁㄱㄴ[27]를 도배하는 밈도 퍼지고 있다.[28] 한만두로 박찬호를 까기 위해 적은 글쓴이를 매국노 취급하는 드립인데, 꽤 많이 번져서 류현진에게도 가끔 써먹기도 하고 때론 반일 드립에도 활용되고 있다. 저 밈이 커뮤니티 등지에서 퍼진 영향인지 게임으로 저 상황을 다시 재현하는 실험을 하는 유저도 생겨날 정도.

2020년대부터는 전술했듯 어린 나이에 메이저에 데뷔한 타티스의 아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스타의 자질을 보여주며 아예 MVP급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가고 있기에, 앞으로도 '페타주하면 아빠 타티스, 타티스 하면 뭐?' 식으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빈번하게 소환되고 있다. 2020년 타티스 주니어가 개인 통산 첫 만루홈런을 치자 MLB 공식 SNS에서도 '아버지처럼 하려면 한 이닝에 2방은 쳐야 한다'고 한만두를 소환했다. 페르난도 타티스가 별로 내세울만한 기록이 없던 평범한 메이저리거로서 그의 커리어 전체에서 거론할 만한 사건은 한한한만두 뿐이라, 결국 타티스의 너무 잘난 아들때문에 한국팬들에게만 주로 회자되던 이런 희귀한 기록을 거의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까지 알게 되는건 시간 문제라 볼 수 있다.[29]

2021년 미국 대학야구에서 한만두를 선보이자 다시 박찬호의 기록이 조명된 바 있다. 차이점은 교체된 투수 2명에게 각자 만루홈런을 뽑아냈다는 것.

사실 이 연타석 만루홈런이 워낙 진귀해 묻히긴 했으나, 박찬호는 연타석 최다홈런을 허용한 진기록도 있다. 2001년까지 메이저리그의 홈런 신기록은 맥과이어가 99년에 세운 70개였고, 당시 수십년만에 홈런 신기록 도전인지라 맥과이어가 홈런을 하나하나 칠때마다 미국 전역이 들썩일 정도로 화제였다. 그리고 불과 2년만에 배리본즈가 70개 타이를 이뤘는데, 71, 72호 홈런을 연타석으로 맞았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레전드급의 선수는 아니었기에 은퇴한지 오래된 박찬호는 2020년대의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으나, 바로 이 홈런과 관련된 기록들로 인해 박찬호란 존재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1999년 4월 23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금요일이었고, 월드시리즈 같은 큰 경기도 아닌 수많은 페넌트레이스 경기 중 한 경기에 불과했으며, 경쟁이 치열한 시즌 후반도 아닌 다소 관심이 떨어지는 시즌 초반이었기에 어찌보면 그냥 평범하게 흘러갔을 법한 무료한 날이었다. 하지만 1999년의 디비전 시리즈나 월드시리즈보다도 오히려 평범한 봄날에 열린 이 경기가 더 회자되며 박찬호도 꾸준히 메이저리그에서 언급되고 있다. 당시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도 자신들이 보는 이 경기가 수십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역사적인 경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세기말이던 1999년은 노스트라다무스의 멸망예언도 있었고, 밀레니엄 버그니 하는 세기말다운 흉흉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세기말에도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 발생했고 그 주인공이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로서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획을 장식한 것이다. 타티스도 '인생은 한방(두방)'이란 사실을 몸소 증명해보였다.

페르난도 타티스의 생일이 하필 1월 1일 새해 첫 날인지라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의 MLB 공식 계정에서 매년 첫 날에 타티스의 생일을 축하함과 동시에 한만두 짤이 올라오고는 한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중계에서 박찬호 본인이 이 사건을 직접 농담삼아 언급하면서 화제가 됐다. 일단 박찬호 입장에서는 당시에도 지금도 이 사건이 최악의 악몽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 게 셀프디스도 그렇고, 1999년의 악몽을 딛고 바로 다음해인 2000년 메이저리그 18승으로 다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다음 구절을 통해 이 사건을 크게 담아두고 있지 않음을 암시했다.
결과는 언제나 과거다. 반대로 과정은 현재다. 진심으로 생각해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정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진심으로 내가 창피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면, 사람들의 평가나 숫자적인 결과와는 다를 것이다.
박찬호 회고록,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이후 2021년 7월 31일, 2020 도쿄 올림픽 대한민국 미국의 야구 경기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박찬호가 직접 한만두를 언급했다.

2024년 MLB 서울 시리즈를 위해 내한한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는 인스타 스토리에 만두국 먹는 사진을 올렸는데 하필이면 만두가 딱 두개 찍혀있는 바람에[30] '한 그릇에 만두 두개' '한국에서 만두 두개' 등의 드립으로 또 다시 언급당했다. 그리고 시구를 했던 박찬호 본인이 직접 한만두를 물어보기도 했다. 참고로 페타주의 대답은 "김하성을 통해 한만두에 대해 들었고, 박찬호를 존경하기에 장난이나 농담 같이 이야기 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 아버지는 이 일을 잘 기억한다." 센스있게 답변해주었다.[31]

7. 비슷한 기록

7.1. 한국

7.2. 미국

7.3. 일본

8. 여담

내가 한 선수한테 만루홈런을 한 이닝에 두 개를 맞았어

9. 각종 파생형

9.1. 야구 관련

9.2. 그 외


[1] 미국 동부 표준시 기준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1999년 4월 24일이었다. [2] '한' 하나가 빠지면 동일 사례가 없지 않다. 결국 한한한만두가 되어야 세계 유일이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타자 한 이닝 연타석 만루홈런은 한만두뿐이고, 한 투수 한 이닝 피만루홈런 2개는 한만두와 19세기 기록 둘뿐이다. 한국에서는 한 투수 한 이닝 피만루홈런 2개의 경우 최대성이 달성하였다. [3] 무려 약 1억분의 1 확률로 발생한 사건으로, 오히려 수학적인 확률로 따지자면 개인 사이클링 홈런(야구에서 한 경기에 개인이 솔로 홈런, 투런 홈런, 쓰리런 홈런, 만루 홈런모두 쳐내는 일)보다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나마 팀 사이클링 홈런은 지독한 난타전이 벌어지면 종종 볼 수 있지만, 개인 사이클링 홈런은 일단 한 경기에 한 타자가 최소 4개의 홈런을 쳐야 하는데다 홈런이 나올 때마다 적절한 수의 주자가 나가 있어야 하므로 이 또한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KBO 리그, NPB, CPBL 등의 세계 주요 프로 1군 리그들을 모두 통틀어서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고 마이너리그에서 한 번, 미국 대학 야구에서 한 번 나왔다. 그나마 이와 비슷한 기록으로 KBO에서 한 이닝에 팀 사이클링 홈런이 딱 한 번 나온 적도 있다. 그런데 한한한만두는 그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개인 사이클링 홈런보다 수학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낮은데도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보다 더 적은 확률로 일어난 사건은 랜디 존슨의 비둘기 폭파사건으로 확률상 190억 분의 1이라는 확률로 일어났다. 그러나 실제로 야구 플레이로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확률이 낮은 건 한한한만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4] 밑에서 보았듯 한 이닝에 한 타자가 만루홈런 2방을 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수렴하며, 443년에 한 번 꼴로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계산되는 기록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 2개의 홈런을 박찬호 1명한테서 쳐냈다는 것. [5] 사실 한국 로또는 1등 당첨 확률이 800만분의 1 수준으로 매주 1등 당첨자가 몇 명씩 나오는 만큼 그렇게 확률이 극악은 아니다. 반면 미국의 파워볼은 당첨 확률이 3억분의 1로 한만두 사건보다 3배가량 낮은 확률이다. 3배라고 하니깐 별로 차이 안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1억의 3배라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6] 이닝이 안 끝난 채 8명을 지나 다시 타석이 돌아와야 하니 주자 3명, 아웃 2명에 최소 3명은 홈을 밟아야 한다. [7] 벌투라는 경우의 수가 있지만 한국과 다르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의 권한이 낮고 선수의 권한이 강한만큼 벌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차라리 반대로 특급 선수가 자존심에 내려가기 싫다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의 수가 있을지도.. [8] 2017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한 시즌 내내 만루홈런이 아예 안 나왔었다. [9] 국내 언론들은 한한한만두의 발생 확률인 것처럼 써놨지만 MLB닷컴 원문은 다르다. 한한한만두 확률은 한한만두 확률 내에서 또 수천수만분의 1로 내려가게 된다. 다만 재미삼아 구한 것이지 정말 정밀한 통계를 들이대 구한 것이 아니니 참고삼아만 볼 것. [10] 한 투수 조건을 넣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7실점하고 만루를 또 채운 투수가 강판되지 않을 확률을 계산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 [11] 그나마 심심치 않게 나오는 가장 확률이 낮은 조건이다. [12] 감독이 바보가 아닌이상 투수 교체를 진행할테니 사실상 이게 가장 어렵다. [13] 이런 일이 한 투수를 상대로 '한 이닝에' 일어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뿐이지, '한 경기 연타석 만루홈런' 자체는 미국, 한국,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모두 존재한다. 미국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위치 타자였던 빌 밀러 선수가 2003년 좌, 우 타석 스위치 연타석 만루홈런이라는 또다른 진기록을 만들었고, 한국에서는 1997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타자였던 정경배선수가 LG전에서 연타석 만루홈런을 기록했다. 일본에서는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니오카 도모히로, 2024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야마카와 호타카가 기록했다. 물론 한미일 기록을 다 찾아도 4번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의외로 한국이 최초다. 한마디로 타자의 연타석 만루홈런 정도의 기록 정도만 해도 리그 역사상 한두번 나올까 말까할 정도인데 거기에 한 이닝, 한 투수라는 극악의 확률이 곱해지니 정말 수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이 나와버린 것이다. [14] 당장 한 선수가 아니라 한 팀이 한 경기 두개의 만루홈런을 치는 것 부터가 보기 드문 진기록이다. 단적인 예로 두산이 잠실에서 한 경기에 만루홈런 두개를 기록한 것은 두산이 잠실을 홈구장으로 쓴지 38년이 지난 2024년이 되어서야 롯데를 상대로 최초로 달성 되었다. [15] 하지만 타자이순부터 야구 역사를 통틀어 몇번 일어나지 않은 아주 진귀한 기록이다. KBO에서도 역대 3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16] 이를 초과하여 9타점 이상을 기록하기 위해선 무조건 한 이닝에 타석이 최소 3번 이상 돌아와야 가능하다. 그러려면 아무리 적어도 최소 17명의 타자가 출루해야 하고, 14명의 타자가 득점해야한다. KBO 리그에선 꼴찌 싸움 이 경기가 일어났는데, 타자이순이 일어나면서 무려 1이닝 16득점을 했다! 다만 이 경기는 투수 교체가 있었다. 그리고 허용해준 팀이 워낙 이 시즌 막장이었다. 타석이 3번 돌아온 경우는 있지만, 만루 홈런 없이 3타석만에 9타점을 기록하려면 타석마다 만루 싹쓸이 적시타나 쓰리런만 터져야 한다. 1이닝 8타점만 해도 엄청난 기록인 거다. 근데 그걸 한 투수에게! [17] 미국 태평양 표준시 기준이다. 당시 서머타임 제도가 시행중이었으며, 대한민국은 당시 4월 24일 오전 11시 28분 ~ 오후 2시 33분이었다. [18] 도미니카 태생의 전 야구 선수 [19] 현지 시간으로 8시 22분 [20] 아래 최대성의 예를 보면 첫 만루홈런을 맞은 시점이 8회인데다 8점차였기 때문에 굳이 교체할 유인이 적었다. [21] 주심이 포수의 발이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졌다고 판단하여 폴랑코의 득점을 인정했다. 데이비 존슨 감독은 이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사실 이 퇴장이 결정적이었는데, 감독이 퇴장당하지 않고 냉정을 찾았다면 여기서는 정말 교체를 선택해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 흥분한 상태에서 퇴장당해 교체를 생각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22] 현지 시간으로 8시 43분 [23] 자세히 설명하자면 브랙 타석에서 나온 송구 에러가 없었으면 맥과이어의 우익수 플라이 아웃에서 3아웃으로 이닝이 끝났을 것이라서 폴랑코의 득점과 2아웃 이후 허용한 2번째 만루홈런은 비자책점이 된다. [24] 같은 한만두여도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홈런을 맞고 다시 주자 쌓아서 만루홈런 맞은 것보다는 처음부터 자기가 보낸 주자와 타자라는 게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25] 이전해 많이 던지고 병역 특례 때문에 12월에 방콕 아시안게임을 뛰면서 쉬지 못한 탓도 크다. 99년 시범경기에선 몸이 일찍 올라와 있었는지 좋은 성적을 냈지만 시즌 들어선... 근데 국내 어느 강연에선 이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 한창 빠진 것도 부진의 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2는 시즌 다 끝날 1999년 9월 30일에 나왔으니 시기상으론 확장팩인 로마의 부흥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1,2 모두 재미있게 했었다고 한다. 박찬호 본인은 저런 것들로 인한 심리적인 이슈보다는 이 시기에 게임에 빠지면서 야구에 조금이라도 소홀해진 것을 더 큰 원인으로 꼽은 것으로 보인다. [26] 그렇다고 해서 타티스가 한 시즌만 풀로 뛰고 나머지 시즌은 잠깐 메이저를 밟다 만 수준의 선수는 아니었다. 물론 주전으로 뛴 해는 98, 99, 00, 02, 09년에 불과했고 20홈런을 넘긴 시즌은 1999년이 유일했다지만 그 후로도 트리플A와 메이저를 오가며 2010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심지어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2006년에 20경기 남짓 뛴 것이 출장 경기의 전부일 정도로 망했지만(2006년과 2007년은 붙박이 마이너였고 2004년과 2005년에는 부상 때문이었는지 아예 마이너리그조차 못 나왔다.) 2008년과 2009년은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여 각각 300타석 이상 나오는 등 나름대로 재기에 성공했었다. 2010년에 백업, 대타 요원으로 주로 나와 1할대 타율을 남기고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그 후로 4년간 윈터 리그에서만 뛰다가 2014년에 멕시칸리그에 용병으로 진출했던 것이 마지막 기록. 그러나 멕시칸리그에서도 타율 .241이라는 썩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한 뒤 방출되었고, 이후 은퇴했다. [27] 이 미친 매국노 [28] 본래는 해외야구 갤러리의 오래된 밈이였는데 해야갤의 유저수가 늘어나고 유입이 늘어나다 보니 다른 커뮤니티 출신들도 늘어나다 보니 다른 커뮤니티에서 많이 써먹고 있다. [29] 공교롭게도 박찬호는 타티스 주니어가 뛰는 파드레스 프론트에서 특별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30] 페타주의 인터뷰에 의하면 김하성이 만두 두 개를 먹으면 만루홈런 두 개 칠 수 있다 알려준 모양이다. 아이고 이 국노야! [31] 정확하게는 "김하성이 해당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박찬호에게 조크를 해보라는 것을 제안을 했지만, 박찬호를 존중하기에 그걸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에 매우 깊게 남을 스토리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아버지는 그 기록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32] 이 기록도 원조 한한한만두 못지 않은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스위치 히터의 희귀성, 양 타석에서 고루 파워를 발휘하는 선수가 드문 점, 마침 연이은 타석에서 다른 팔의 투수가 나올 가능성 등이 모두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 [33] 셋 중 하나만 성립해도 화제거리가 된다는 점에서 한한한만두가 얼마나 역사에 길이 남을 굴욕적인 기록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34] 2017년에는 kt 소속이었다. [35] 아래 설명된 2008년 MLB에서 데이빗 오티즈가 기록한 한 이닝 한 타자가 한 투수에게 스리런 두개와 비슷하다. [36] 이날 경기엔 김선우가 등판해 0.1이닝 1실점했다. [37] 이후 맥클렁은 메이저리그 복귀에 실패하고 대만과 멕시코를 거쳐 은퇴했다. [38] 이날 경기는 1985년 한신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의 주전 멤버들이었던 나카니시 키요오키, 키도 카츠히코의 은퇴 경기이기도 했다. [39] 2006년 SK에서 뛰었으나 장문석의 사구에 맞아 손가락 골절로 은퇴했다. 나카니시는 1이닝만 소화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의 대타로 기용되었다. 그리고 이 홈런은 시오타니의 프로 데뷔 첫 홈런이었다. [40] 2018년에 일어난 331 대첩과 같은 상황 [41] 단 오이시의 첫 만루홈런은 다른 투수가 만루를 만들고 내려간 걸 올라와서 홈런을 맞은 거라서 실점은 5점에 불과(?)했다. [42] 오이시는 6구단 중복지명을 받았던 선수였다. 당시 대졸 투수 중 가장 지명도가 높았던 사이토 유키나, 현재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아키야마 쇼고, 트리플 쓰리를 기록한 야마다 테츠토, 야나기타 유키보다도 기대치가 높았던 선수였는데 프로 통산 성적은 사이토 유키보다도 안 좋았다(...) 2019년을 끝으로 방출당해 은퇴. 하다못해 1년이라도 반짝한 또 다른 1라운더 잔혹사인 사이토 유키나 이시미네 쇼타보다도 성적이 안 좋았다.소프트뱅크의 1라운더 야마시타 아야츠구보다는 그래도 성적이 좋았다 [43] 참고로, 이치로51은 박찬호를 비난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한편으로는 이승엽에 관해서는 지나칠 정도의 빠심을 보여 엠코 내에서도 배척하는 유저들이 많았고, 결국 자신이 자진해서 떠나는 방식으로 엠코에서 쫓겨났다. [44] 같은 시각 체이스필드에서 경기중이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선수들도 본인들 경기 멈추고 이 푸홀스의 홈런 장면을 보기도 했다.(...) [45] 그 와중에 디씨 MLB 마갤에서는 '한이닝에 홈런 4개 맞아도 4실점인데 박찬호는 어떻게 3개 맞고 11실점이나 했냐'고 또 박찬호를 깠다. [46] 경기 몸에 는공 번.. [47] MLB 2015 ALDS 5차전 7회말 엘비스 앤드루스의 경우 두번째 실책은 1루수 미치 모어랜드의 송구실책이었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엘비스 앤드루스가 포구를 잘못해서 생긴 실책이었다. [48] 한 번은 2016년 6월 5일에, 또 한 번은 6월 7일에, 또 또 한 번은 6월 9일에 이렇게 서로 다른 경기에서 일어난 상황이지만 어지간해선 나오기 힘든 폭투 주루사를 한 선수가 그것도 5일새 하루 걸러 한 번싹 세 번 당했다는 점이 포인트. 공교롭게도 처음 두 번은 같은 타자 타석에서, 2루에서 3루로 가려다 당했다. [49] 박석민 삼성에서 NC로 FA 이적하면서 보상선수로 이적하였다가 1년 뒤 LG 우규민이 FA를 통해 삼성으로 오면서 그 보상선수로 재이적하였다. 한 선수가 두 번 보상선수로 피지명되는 사례는 드물지 않지만 1년새 두 번 피지명되는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다만 비슷한 사례가 1년 전에 있기는 했다. (그 비슷한 사례로 거론된 선수는 롯데 장원준 두산으로 FA 이적하면서 그 보상선수로 지명되었다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1년만에 두산으로 리턴) [50] 한달 새에 두 번 지명된 케이스가 있다. 2011시즌 후 FA시장에서 임훈이 그 케이스. 앞의 사례보다 훨씬 희귀하며, 2016년 규약 개정으로 보상선수로 지명된 선수가 자동보호됨에 따라 다시 존재할 수 없는 유일무이의 사건. [51] 참고로 이게 최초 사례는 아니다. [52] 외야 관중석 규모가 상당히 크고 고도도 높아서 장외홈런이 나오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다. 야구장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었음에도 개장 이래 장민익의 한장두 허용 이전까지 장외홈런이 정규시즌에서 김동주가 한번, 포스트시즌에서 타이론 우즈가 한번 기록했을 뿐이다. 또한 이 번 한한장두로 김동엽(1990)은 비 잠실 연고구단 최초의 잠실 장외홈런, 제이미 로맥은 정규시즌 최초의 외국인 잠실 장외홈런도 기록하였다. 이 정도면 대첩급인데 아직 대첩 문서가 없다. 금지됐거든 [53] KBO 감독 최초 기록이다. [54] 시범경기라 예외적으로 강판 후 재등판이 가능했으나 0.1이닝 막고 다시 강판되었다. [55] 2021년 4월 8일 NC전 3회초와 9회초 월드스타만 두 번을 기록했다. [56] 이성열 KBO 플레이오프/2009년 KBO 준플레이오프/2013년에 기록. 특이하게도 서로 다른 팀(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에서 한 번씩 겪었는데, 특히 두 번째는 첫 번째로 겪었던 팀을 상대팀으로 만나서 겪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손아섭 KBO 준플레이오프/2010년 KBO 플레이오프/2023년에 기록. 이 때도 서로 다른 팀(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에서 한 번씩 겪었다. 참고로 손아섭이 리버스 스윕을 첫 번째로 겪었을 때 상대팀에 이성열이 있었으니, 리버스 스윕승까지 포함하면 이성열은 세 번을 겪은 셈이다. [57] 후반 9분, 후반 11분 [58] 참고로 박주영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자책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 [59] 국어 A형, 수학 B형, 영어. 참고로 이 세 과목은 이과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조합이었다. [60]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새천년민주당 최고의원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에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