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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3 19:43:08

요르단-시리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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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시리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근세~근대2.2. 20세기2.3. 21세기
2.3.1. 2010년대2.3.2. 2020년대
3. 문화 교류
3.1. 스포츠
4. 교통 교류5. 갈등6. 대사관7. 여담8. 관련 기사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요르단 시리아의 관계. 양국은 언어, 문화, 종교에서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요르단과 시리아는 정치적으로 갈등이 존재한다.

2. 역사적 관계

2.1. 근세~근대

시리아와 요르단은 16세기 이래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아랍인들이 튀르크인들에게 반항적인 것을 인식하여 직접 통치는 지양하고 대신 아랍인 현지 유력자들에게 자치권을 확대해주던 편이었다.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는 시리아는 다마스쿠스 알레포 등을 중심으로 농촌과 도시가 발달하여 유럽 국가들과 무역량도 적지 않은 등 오스만 제국 측에 나름 세입을 안겨주었지만, 요르단은 건조지대가 많고 베두인들이 많아 따로 세입을 거두기 어려워 성지순례 루트 이외에는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 이집트 메흐메드 알리가 오스만 제국에 반항하며 시리아 일대를 위협하고, 헤자즈 지방에서 와하브파를 믿는 베두인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도 아라비아 반도에서 레반트 지역으로 가는 요충지인 요르단 일대에 좀 더 관심을 쏟게 되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은 낙타를 치며 유목하던 베두인 부족들을 반강제로 농민으로 정착시키고,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의 침략을 피해 피난온 체르케스인과 체첸인 난민들을 요르단 각지에 주둔시켰다.

2.2.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면서 양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은 요르단에 트란스요르단이라는 위임통치령 자치정부를 두었고,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으로 지배했다. 이후에 양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에서 각각 벗어난 뒤에 수교했다.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과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침공했지만 시리아는 요르단의 압둘라 1세의 세력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하여 다소 소극적으로 전쟁이 임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에서 요르단과 시리아는 이스라엘 측에 대패하고, 요르단은 서안지구를 상실하고 시리아는 골란 고원을 상실하였다. 이후에 양국에서 국경충돌이 일어났다.

2.3. 21세기

요르단과 시리아는 2003년 이라크 전쟁 관련하여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2.3.1. 2010년대

2010년대 초부터 양국은 아랍의 봄과 관련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 아랍의 봄과 관련해 요르단은 시위가 잠잠해졌지만,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뒤, 요르단은 시리아 정부를 비난했다. # 게다가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요르단을 포함한 주변국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난민들이 주변국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1 #2

2012년 6월 21일, 시리아 전투기 조종사가 요르단으로 망명했다. #1 #2

7월 31일, 요르단 당국이 시리아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

8월 6일, 시리아의 리아드 하지브 총리가 요르단으로 탈출했다. #1 #2

8월 11일, 시리아 정부군과 요르단군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

8월 24일, 시리아의 전직 국회의원이 요르단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

8월 29일, 요르단 총리가 난동을 피우는 시리아 난민들을 추방한다고 밝혔다. #

9월 24일, 요르단으로 망명신청한 시리아 정부군이 2천여명에 달한다고 요르단 방송국이 보도했다. #

2013년 2월 25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수용소에서 충돌이 일어나 시리아 난민 2명과 요르단 경찰 1명이 부상당했다. #

3월 16일, 시리아 정부군의 군수책임자가 요르단으로 망명했다. #

3월 21일, 요르단 정부는 시리아 난민 수용소에 비상경계선을 설치하는 등 경계에 나섰다. #

11월 4일, 요르단 측은 시리아 난민 수용을 위해 53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11월 11일, 시리아 반군이 요르단 캠프에서 난민들을 대상으로 반군을 모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2010년대 중반 이후,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 대부분이 다에쉬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요르단과 이라크로 대피했다. #

2014년 1월 14일,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요르단으로 퍼질 것을 우려한 요르단 국민 사이에서 불안감이 퍼지자 총기 구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4월 6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수용소에서 시리아 난민과 요르단 경찰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 난민 1명이 사망했다. #

4월 14일, 요르단 공군은 국경을 침공한 시리아 차량을 격퇴했다고 밝혔다. #

12월 24일, 요르단 공군 조종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가 다에쉬에 의해 붙잡힌 사건이 일어났다. #1 #2 게다가 무아트 알 카사스베가 ISIS에 의해 화형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

2015년 2월 5일, 무아트 알 카스카베가 다에쉬에 의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요르단 측은 다에쉬를 괴멸시킨다고 밝히며 보복공습에 나섰다. # 요르단 방송국도 다에쉬 공습을 보도했다. #

2월 7일, 요르단군이 시리아의 다에쉬 근거지를 공습했다. #

10월 6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들이 요르단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이유로 귀국하는 일이 늘어났다. #

12월 9일, 유엔난민기구는 요르단-시리아 국경지대의 난민들이 1만2,000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

12월 14일, 요르단 경찰은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정기적으로 순찰한다고 밝혔다. #

2016년 1월 5일, 요르단 측은 국경지대의 시리아 난민 1만2,000명이 대기중이라고 밝혔다. #

2월 2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시리아 난민 지원을 호소했다. #

3월 3일, 요르단 측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

9월 5일, 시리아-요르단 국경지대에 갇힌 난민들이 위기에 처한 사실이 알려졌다. #

10월 5일, 요르단 측은 시리아 난민들을 더이상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선별적으로 수용한다고 밝혔다. #

11월 25일, 유니세프가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에게 방한 구호품을 전달했다. #

2017년 1월 21일, 요르단 국경의 시리아 난민 수용소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일어나 4명이 사망했다. #

2월 5일, 요르단군이 시리아 남부의 다에쉬 근거지를 폭격했다. #

5월 4일, 요르단 국경의 시리아 난민 수용소에서 폭발이 일어나 4명이 사망했다. #

5월 10일, 시리아군은 요르단 국경 인근의 반군기지를 기습했다고 밝혔고 요르단 정부 관리도 인정했다. # 그리고 시리아 국경 인근에서 요르단군이 정체불명의 비행기를 격추했다. #

8월 11일, 시리아-요르단 국경지대에서 반군이 폭탄공격으로 사망했다. #

8월 14일, 유엔 측은 요르단-시리아 국경지대에 피란민들이 5만여명이 있다고 밝혔다. #

10월 10일, 요르단 당국은 시리아 난민 수용을 하기 위한 비용으로 100억 달러 이상이 든다고 밝혔다. #

2018년 2월 7일, 요르단 외무장관은 군사적인 수단으로는 시리아 내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

3월 28일, 요르단 교육부는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고등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6월 26일, 시리아 남부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격화돼 수많은 난민들이 요르단으로 피난갔다. #

7월 5일, 유엔 측은 요르단에게 시리아 난민 수용을 촉구했다. #

7월 22일, 시리아의 화이트 헬멧 800명이 시리아 정부군의 체포를 하기 위해 요르단으로 피신했다. #1 #2

8월 27일, 요르단 측은 시리아 난민들의 수용치가 한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시리아 난민들이 자발적으로 귀국해야 한다고 밝혔다. #

12월 3일, 요르단-시리아 국경이 재개방돼 시리아 난민들이 시리아로 귀국했다. #

12월 23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이 시리아와의 관계개선을 밝혔다. #

2019년 1월 13일, 요르단 외무장관은 시리아에서의 정치적 해결을 원한다고 밝혔다. #

5월 8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2만명과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수용소가 해산했다. #

8월 4일,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등 3국의 외무장관들이 지난 4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회담을 가졌다. #

2.3.2. 2020년대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로 퍼지며 양국에서 확진자가 크게 발생했다. 요르단으로 피난온 시리아 난민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양국은 코로나19로 인한 큰 피해를 입었다. #

2021년 10월 4일, 요르단 왕실은 압둘라 2세 국왕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

2022년 1월 25일, 요르단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취업허가를 주었다. #

1월 27일, 요르단 국방부는 시리아 국경에서 마약 조직원들을 소탕했다고 밝혔다. #

2023년 1월 15일, 요르단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자금 지원이 3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

2월 14일, 요르단 외무장관이 시리아를 12년만에 방문하면서 아사드 대통령과 만나 회담을 가졌다. #

4월 9일, 요르단군이 시리아 국경에서 미사일 폭격소식을 전했다. #

5월 1일, 시리아 외무장관이 요르단 외무장관을 만나 난민, 마약 밀수, 이란과의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조짐을 보였다. #

5월 5일, 요르단 외무장관은 시리아가 아랍연맹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6월 13일, 요르단군은 시리아 국경에서 마약을 운송중이던 드론을 격추시켰다고 밝혔다. #

6월 25일, 요르단 외무장관은 요르단이 수용하는 시리아 난민수가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히며 유엔에게 해결책을 촉구했다. #

7월 3일, 양국의 외무장관들이 만나 회담을 가졌다. #

3. 문화 교류

양국은 아랍어가 공용어이고 아랍 문화권에 속해 있다. 양국 국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아랍어 방언을 쓴다. 그외에도 양국은 이슬람교를 믿는 비중이 높다. 다만, 종파에서 시리아는 시아파 알라위파가 정권을 잡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순니파지만, 요르단은 왕실을 포함해 대부분이 순니파에 속하는 등 종파에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또한, 소수의 기독교 신자(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존재한다.

3.1. 스포츠

2019년 1월 10일, 요르단 축구팀이 아시아축구연맹 주최의 경기에서 시리아 축구팀을 이겼다. #

4. 교통 교류

시리아 내전의 영향으로 양국 국경은 폐쇄되기도 했다. # 요르단은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설치도 했다. 2021년 9월 27일, 요르단 측이 시리아 국경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

양국은 시리아 내전 이전까지 항공편이 존재했지만,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요르단 항공사가 항공노선을 중단시켰다. 2021년 9월 28일, 요르단 국영항공사가 시리아 노선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

5. 갈등

시리아인들이 시리아 내전과 다에쉬의 탄압으로 인해 요르단을 포함한 주변국들로 대거 피하면서 시리아 난민들이 요르단에 많이 정착했다. 하지만 요르단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겪고 있다. #

6. 대사관

암만시에 주 요르단 시리아 대사관, 다마스쿠스시에 주 시리아 요르단 대사관이 존재한다.

2011년 12월 11일, 요르단의 시리아인들이 시리아 대사관으로 난입하려고 했던 일이 일어났다. #

2014년 5월 26일, 양국은 상대국 대사들을 추방한다고 밝히며 갈등이 생겨났다. #1 #2

2017년 4월 8일, 주 요르단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아사드 지지 시위가 일어났다. #

7. 여담

2014년 2월 16일, 요르단 사막을 떠돌던 시리아 난민 아동이 유엔난민기구에 구조된 일이 있었다. #

시리아 내전 당시, 알레포 동물원에 전시된 사자가 요르단으로 옮겨졌다. #

8. 관련 기사

9.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