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 시리아 | 이라크 |
[clearfix]
1. 개요
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튀르키예 동부와 시리아에서 이라크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잇는 지역은 고대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서 문명의 발상지로 번영하였던 바 있다. 3국은 역사적, 민족적인 이유로 인해 갈등이 존재하지만, 쿠르드 문제에 대해선 3국이 협력하고 있다.2. 역사적 관계
2.1. 고대
신석기 시대 아나톨리아 동남부 차탈 휘위크에서 시작된 농경 문화는 오늘날의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 그리고 튀르키예 동부로 이어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지역에서는 각양각색의 지형과 기후 그리고 고도를 지닌 지역들이 혼재되어 있었고, 중남미 지역과 다르게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했다. 고대 밀의 일종인 에머밀(emmer wheat), 외알밀, 그리고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던 보리와 옷감을 만들 때 사용하는 아마, 병아리콩, 완두콩, 렌즈콩이 재배되기 시작하엿으며, 소, 양, 염소, 돼지가 모두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가축화되었다.3국의 고대사는 히타이트, 아시리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등 여러 공통분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대 당시에는 아직 튀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의 정착하기 이전이었고 당시 지역 관계를 오늘날 외교관계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 서북부가 로마 제국의 영토였고 메소포타미아 동남부가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토였다. 공교롭게도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이 이라크와 시리아를 두고 싸우던 구도는 후일 페르시아의 사파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대치 구도로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2.2. 중세
시리아와 이라크는 아람어가 사용되던 지역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흥기한 아랍인들이 사산 왕조로부터 이라크를 정복하고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시리아를 정복하면서 이라크와 시리아는 아랍화되었다. 아람어와 아랍어는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로서 공통점이 많았고 이러한 연유로 현지인들의 아랍화도 급속히 진행되었다.아나톨리아 반도의 경우 아랍인들의 공격으로 정복된 시리아와 다르게 중세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남았다. 아나톨리아에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그리스어 이외에도 아나톨리아어군에 속하는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되었으나, 중세 말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튀르크족들이 대거 침공하고 정착하면서 내륙지방부터 튀르크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튀르키예는 터키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웃 중동 지역과 문화적으로 분리되었다.
2.3. 근세
이후 아나톨리아에서 성장한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 중동,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시리아 일대와 메소포타미아 북부 일대 역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편입됐다. 오스만 제국의 시리아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지배는 직접 아나톨리아에서 태수를 파견하는 방식이 아닌 현지 아랍인 토후들의 자치권을 주며 도시와 교역로를 중심으로 한 점과 선 형태로 이루어졌다. 순니파 이슬람의 종주국 역할을 하던 오스만 제국은 근세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두고 사파비 제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고, 오스만 제국이 정복하지 못한 이라크 중부와 남부 지역은 사파비 제국의 시아파 강제 개종 정책의 결과 시아파 다수 지역이 되었다. 본래 이라크 역시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순니파 다수 지역이었으나 근세사를 거치며 이라크와 시리아의 문화에는 커다란 간극이 벌어졌다.2.4. 19세기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일대에선 반튀르크 아랍 민족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집트의 메흐메트 알리의 군대가 오스만 제국 군대로부터 반기를 들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일부를 정복하자 시리아와 이라크의 아랍인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 편 서부와 교류가 활발했던 이집트와 시리아의 아랍인 학자들은 "수피즘 같은 미신을 믿는 타락한 튀르크인"들 때문에 이슬람권이 서구보다 약해졌다는 전제 하에, 후일 이슬람 모더니즘으로 벌이는 이슬람 개혁 운동이 진행되었다.2.5. 20세기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해체되고 신생 터키 공화국이 들어섰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 중 아랍인들의 거주지역은 영국, 프랑스 등에 의해 분할되었다. 한 편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 술탄이 겸임하던 칼리파직을 공식적으로 폐지하는데, 이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무슬림 신학자들에게 심각한 쇼크를 주었다. 시리아의 저명한 이슬람 모더니즘 사상가였던 라시드 리다는 이슬람 세속주의에 상당한 실망을 느끼고, 사상을 전향하는데, 이렇게 전향된 그의 사상은 이슬람 신문 알 마나르에 실려 아랍 세계 각국에 전파되었다. 라시드 리다는 살라프파의 시조이다.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시리아 지역은 제국 해체 이후 시리아-레바논이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들어섰다. 영국은 이라크 일대에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을 세웠다. 시리아에는 미셸 아플라크 같은 아랍 민족주의, 아랍 사회주의 사상가가 나타나서 바트당을 창당하였다.
시리아에 속했던 하타이는 1930년대말에 튀르키예의 영토로 편입됐다. 시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이라크는 1950년대에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이라크와 수교했지만 과거사 등의 문제로 상호 국민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물론 쿠르드족 문제에 대해선 3국 모두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막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한편 미셸 아플라크와 살라흐 앗 딘이 창당한 바트당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여당이 되었으나 시리아 바트당과 이라크 바트당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 와중에 미셸 아플라크도 시리아에서 이라크로 이주하여 이라크에서 사망하였다.
2.6. 21세기
3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이라크 내전과 시리아 내전 이전까지만 해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이라크 모두 상호 국민 감정이 최악이었으나 에르도안 정권의 튀르키예가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을 수백만여 명 가까이 수용하면서 이라크와 시리아의 반 튀르키예 감정이 누그러들었다. 튀르키예에서 난민들을 특별히 잘 모시는 것은 아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처럼 아예 난민을 사실상 한 명도 안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난민들이 튀르키예로 대거 피난오자 시리아 국경과 이라크 국경을 폐쇄조치하고 장벽을 세웠으나 이후 유럽 난민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난민 수용으로 정책을 유턴하고 대신 유럽연합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원조를 받기 시작했다.튀르키예는 에르도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라크 북부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라크와는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외에도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튀르키예군이 쿠르드족 견제를 구실로 남하하면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긴장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에 다에쉬가 시리아 영토와 이라크 영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면서 튀르키예 동남부도 다에쉬의 위협을 받았다. 다에쉬가 미국, 러시아 등의 공습과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이 협력하면서 2010년대 후반에는 세력이 소멸됐다. 다에쉬 토벌에 앞장선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들은 다에쉬 세력이 약화된 이후 토사구팽당하고 이후 튀르키예군이 쿠르드 분리독립 세력 처단을 구실로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지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2019년에 튀르키예가 시리아 북부를 침공하자 시리아를 비롯해 여러 중동국들이 반발했다.
2022년, 이스탄불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튀르키예군이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를 공습했다. #
3. 문화 교류
3국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슬람교를 믿고 종파에선 순니파에 속해 있다. 하지만 이라크는 인구 60% 정도가 상술한 역사적 이유로 시아파에 속해 있다. 그리고 3국 내에는 오리엔트 정교회, 아랍계 기독교인, 만다야교, 야지디인 등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주민들도 많이 존재한다.3국은 튀르키예어, 아랍어, 쿠르드어, 아람어 등을 각각 사용하고 튀르키예는 터키어가 공용어이고 이라크, 시리아는 아랍어가 각각 공용어이다. 쿠르드족들은 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시리아와 이라크내에는 아랍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4. 교통 교류
3국은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도로, 철도, 항공노선을 통해 교류가 활발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이 일어나고 다에쉬가 튀르키예 측에 테러 위협을 가하면서 튀르키예측이 국경을 통제하는 상황이다. 시리아 난민, 이라크 난민들이 튀르키예로 대거 몰려들자 튀르키예측은 한 때 국경폐쇄 로 대응하였고 이후에도 난민들의 유입을 제한하면서 3국 사이에는 교통 교류가 많이 감소하였다.5. 관련 문서
- 튀르키예/외교
- 시리아/외교
- 이라크/외교
- 이슬람 협력기구
- 아랍 연맹[1]
- 튀르키예-시리아 국경 / 튀르키예-이라크 국경
- 튀르키예/역사
- 시리아/역사
- 이라크/역사
- 쿠르드족 / 쿠르디스탄 / 이라크 쿠르디스탄
- 튀르키예/경제
- 시리아/경제
- 이라크/경제
- 튀르키예인 / 시리아인 / 이라크인 / 아랍인 / 아시리아인
- 튀르키예어 / 아랍어 / 아랍어 방언 / 쿠르드어 / 아람어
- 이슬람교 / 순니파 / 시아파 / 알라위파 / 알레비파 / 오리엔트 정교회 / 만다야교 / 아랍계 기독교인 / 야지디인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1]
튀르키예는 가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