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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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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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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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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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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루드 굴리트
(1988~1994)
로날드 쿠만
(1994)
다니 블린트
(199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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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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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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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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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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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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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루드 굴리트
(600만 유로)
1989
로날드 쿠만
(900만 유로)
1990
로베르토 바조
(1,310만 유로)
}}} ||
Nederlands nationaal voetbalelftal
파일:Ronald Koeman(Nederlands).jpg
<colbgcolor=#ff6600><colcolor=white> 이름 로날드 쿠만[1]
Ronald Koeman
출생 1963년 3월 21일 ([age(1963-03-21)]세)
노르트홀란트주 잔스타트 잔담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1cm / 체중 93kg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2]/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f6600><colcolor=white> 선수 FC 흐로닝언 (1980~1983)
AFC 아약스 (1983~1986)
PSV 에인트호번 (1986~1989)
FC 바르셀로나 (1989~1995)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95~1997)
감독 네덜란드 대표팀 (1997~1998 / 코치)
FC 바르셀로나 (1998~1999 / 수석 코치)
피테서 아른험 (2000~2001)
AFC 아약스 (2001~2005)
SL 벤피카 (2005~2006)
PSV 에인트호번 (2006~2007)
발렌시아 CF (2007~2008)
AZ 알크마르 (2009)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11~2014)
사우스햄튼 FC (2014~2016)
에버튼 FC (2016~2017)
네덜란드 대표팀 (2018~2020)
FC 바르셀로나 (2020~2021)[3]
네덜란드 대표팀 (2023~ )
국가대표 78경기 14골 ( 네덜란드 / 1982~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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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6600><colcolor=white> 가족 에르빈 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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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전술 스타일6. 기록
6.1. 선수
6.1.1. 출전 기록6.1.2. 대회 기록6.1.3.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7. 여담8.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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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22년부터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PSV 에인트호번 트레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바르셀로나 드림팀의 핵심 중 1명으로 바르사의 사상 첫 챔스 우승을 이끌었으며 국대에선 오렌지 군단 UEFA 유로 1988 우승 주역 중 한명이다. 또한 네덜란드 국가대표였던 마르틴 쿠만의 아들이자 에르빈 쿠만의 동생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0년 흐로닝언에서 데뷔한 쿠만은 아약스를 거치며 에레디비시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한다. 이후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쿠만은 1986-87 시즌 후반기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의 지도 아래 1987-88 시즌에 리그에서 21골을 득점하며 에레디비시 우승, KNVB 베이커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며 트레블을 달성한다.[4]

쿠만은 PSV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리그 14골을 득점하며 에레디비시와 KNVB 베이커에서 더블을 선물하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쿠만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시즌 리그 14골, 코파 델 레이 4골을 득점하며,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1990-91 시즌에는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 맨유와의 경기에서 마크 휴즈에게 2골을 허용하고 쿠만은 79분 만회골을 넣었으나 결국 2:1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1991-92 시즌 쿠만은 리그에서 16골을 득점하며 라리가 2연패를 이끌었으며, 유러피언컵 4강에서는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경기에서 5:5 원정 다득점으로 힘겹게 유러피언컵 결승전까지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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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골을 넣는 쿠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바르샤는 UC 삼프도리아와 맞붙었는데, 112분 188km/h 프리킥 결승골로 바르샤에 첫 빅 이어를 안겨준다. 한 마디로 쿠만은 바르샤에 첫 빅이어를 안겨준 주역이므로, 바르샤 레전드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담으로 바르샤와 삼프도리아와의 이 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는 마지막 유러피언컵 경기였다. 유러피언컵은 1992-93 시즌부터 UEFA 챔피언스 리그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편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무려 8골을 넣었고, 윈턴 루퍼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4강 FC 디나모 키예프전에서 2골을 넣고 합산 5:4 승리를 이끌며, 2시즌 만에 다시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AC 밀란에게 0:4로 완패했다. 참고로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현재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최다 점수 차 경기 중 하나로 남아있다.

1994-95 시즌이 끝나고 페예노르트 로테르담로 떠났고, 거기서 2시즌 뛰다가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쿠만은 유로 1988에 출전해 4강 서독 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이후 마르코 반 바스텐의 결승골로 결승전에 진출한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이고리 벨라노프 리나트 다사예프가 버티는 소련을 상대로 루드 굴리트와 마르코 반 바스텐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고 네덜란드의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에서 서독을 상대로 후반 막판에 페널티킥 득점을 올리나 결국 2:1로 패했다.

유로 1992에서는 조별 리그 1위로 4강에 진출했으나, 덴마크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분투했지만 8강에서 브라질에게 3:2로 패했고, 이후 쿠만은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시대마다 '돌연변이'라 부를 수 있는 선수가 여럿 있었지만, 쿠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별난 케이스다. 본 포지션이 센터백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르셀로나 생활 6년동안 102골[5], A매치 74경기 14골을[6] 넣을 정도로 엄청난 득점력의 소유자였다. 세계 축구 역사상 수비수로서 가장 많은 득점(253골)[7]을 기록하였다. 심지어 1993-94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총 8골로 득점왕[8]에 올랐으며, 수비수가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경우는 쿠만이 유일하다. 애초에 득점왕 타이틀을 제외하고 단순 골 기록만 봐도 수비수가 아닌 리그 탑클래스 스트라이커 혹은 리그 탑클래스 윙포워드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다. 게다가 그는 센터백이었다. 공격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이드백이 아닌이상 센터백의 득점은 데드볼 상황을 노리거나, 세트피스에서 헤딩이 대다수인 이상 기회가 적다. 그러한 와중에 이정도의 미친 득점력을 선보인 것.

또한 전 포지션을 통틀어 역대 최강 슈팅력을 논할 때마다 반드시 순위에 거론되는 인물이다. 프리킥이나 중거리는 당시 에이스인 미카엘 라우드루프도 한 수 접어주는 정도였다. 그는 1992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당시 로베르토 만치니를 비롯한 전성기 멤버들을 앞세워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올라왔던 다크호스 UC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보여준 188km/h의 살인적인 프리킥 결승골을 비롯해 흐로닝언부터 아약스, PSV,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계속해서 엄청난 장면들을 보여주며 세트피스 전문가로 불릴 만큼 프리킥과 페널티킥 모두에서 놀라운 파워와 정확도를 보여주었다. 통산 프리킥 골은 무려 60골로 역시 프리킥 마스터로 꼽히는 데이비드 베컴(65골), 지쿠(62골)와 비교해도 비등한 수준이며, 리오넬 메시가 경신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 최다 프리킥 골 기록 보유자였다.

이 정도 공격력이면 공격을 위해 본 포지션인 수비수의 기본 소양인 수비력이 떨어졌을 법도 하지만, 수비력도 준수한 편이었다. 일단 어마어마한 강슛을 가능케 하는 다리 근육에서 알 수 있듯이 근육질의 다부진 몸이었으며, 피지컬로 상대 선수를 압도하는 수비를 펼쳤다.

또 그 괴물같은 킥력에 걸맞게 거리에 상관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뛰어난 롱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어 펩 과르디올라가 중원 사령관이 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의 후방 공격 전개를 도맡아 했던 선수가 바로 쿠만이다.

단점이 있다면 쿠만은 의외로 발이 느린 편이었는지라 순속이 빠른 상대 공격수와의 1:1에서는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쿠만은 과르디올라의 멘토이기도 한데 과르디올라의 데뷔 시즌인 1990-91 시즌에 쿠만은 팀의 주전 수비수였다. 이때 감독이었던 요한 크루이프는 쿠만에게 과르디올라라는 똘똘한 선수를 1군에 투입할 텐데 얘한테 네덜란드식 축구를 가르쳐주라는 지시를 했고 쿠만은 이를 성실히 이행했다. 그 결과 바로 다음 시즌인 1991-92 시즌에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챔스 우승까지 경험하게 된다. 1994-95 시즌을 끝으로 쿠만이 팀을 떠나자 과르디올라는 쿠만의 등번호였던 4번을 물려받았다.[9]

이러한 쿠만을 보며 후방에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과르디올라는 감독이 된 후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라르 피케, 제롬 보아텡, 존 스톤스, 에므리크 라포르트 등 빌드업이 능한 수비수를 적극적으로 중용하고 있다.

4. 지도자 경력

쿠만의 감독 생활은 발렌시아+ 에버튼 2년차[10] 시절과 그 외로 나뉘게 된다.

4.1. 발렌시아 이전

2000-01 시즌을 앞두고 에레디비시 SBV 피테서 감독을 맡아 감독 경력을 시작한 쿠만은 한 시즌 뒤 자신의 친정팀이었던 AFC 아약스로 팀을 옮긴 뒤 그 해 리그와 컵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을 일구어 내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2차 조별 라운드에서 발렌시아, 아스날, AS 로마와 같은 강팀들과 한 조가 된 상황에서 1승 5무로 발렌시아에 이어 조 2위로 팀을 8강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 뒤 2003-04 시즌 팀에 한 차례 리그 우승을 더 선사하고는 2005-06 시즌을 앞두고 SL 벤피카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그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맨유를 밀어내고 비야레알 CF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뒤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리버풀 FC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어 팀을 8강까지 진출시키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즌 종료 이후 자신의 또다른 친정팀인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직을 맡아 2006-07 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1승 1무를 기록해 팀을 8강에 진출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스승이었던 요한 크루이프의 뒤를 그대로 잇는 명장 반열에 들어가는 듯 했다.

4.2. 발렌시아 CF

2007년 10월 당시 발렌시아의 감독이었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그 자리를 메우러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팬들은 이 선택이 21세기 발렌시아의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록됨과 동시에 쿠만 자신에게도 엄청난 오점을 남기게 만든 행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의 취임을 환영했고 쿠만도 역시 발렌시아와의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쿠만은 부임하자마자 팀의 핵심선수이자 팀의 주장이던 다비드 알벨다와 주전 수문장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중원의 핵 미겔 앙헬 앙굴로를 팀 개혁의 일환이라며 내쳤다. 쿠만 입장에서는 당시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를 바로잡고자 했던 일이었겠으나,[11] 이에 충격받은 카니사레스가 시즌 종료 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으며,[12] 알벨다 또한 은퇴까지 고려했다가 다른 팀을 알아보기도 했다. 또 앙굴로가 쿠만이 떠난 2009년 이적했다가 곧바로 은퇴한 것을 보면 발렌시아에서 만든 흑역사의 여파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external/estaticos01.elmundo.es/1208845468_0.jpg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변해준 알벨다의 눈물 짤. 이 짤은 쿠만의 막장 행보를 여실히 드러내게 만든 짤이 되었다.

더욱이 팀내 차기 레전드로 칭송받던 알벨다의 방출소식에 발렌시아 서포터는 즉각 반발함은 물론이요 알벨다의 소송으로 알벨다의 옹호파와 쿠만의 옹호파로 나뉘어 팀내 파벌이 형성되는 등 일이 더욱 커져만 갔고, 게다가 이적 의사를 밝힌 알벨다의 바이아웃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는 등 더러운 방식으로 알벨다를 주저앉혔다. 2020년 행보는 떡잎이 있었던 것인가

그 후 팀의 양쪽 윙을 담당했던 비센테 로드리게스 호아킨 산체스의 포지션을 맞바꾸어 출전시키기도 하였고,[13] 공격수인 하비에르 아리스멘디왼쪽 윙백으로 기용하는[14][15] 이해하기 힘든 선수 기용을 선보였다. 이후 호아킨이 부진에 빠지자 30유로짜리 선수라며 공식석상에서 혹평을 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고, 결국 팀은 최악의 부진을 계속하다 시즌 막바지에 경질되고 만다. 결국 프리메라리가 내에서 수위에 꼽히는 전력을 보유한 발렌시아는 초반 부진을 만회하기는 커녕 오히려 끝없는 부진에 빠져 2007-08 시즌을 10위로 마감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쿠만이 계속 있었으면 정말 강등까지 걱정해야할 판이었다. 쿠만 경질 후 임시 감독이 그나마 팀을 잘 추스려서 겨우겨우 10위나 올린 것. 발렌시아의 명성에 10위라는 성적이 눈에 찰 리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10위 한 것도 대단했다. 그 정도로 팀의 부진이 심했다는 것.[16] 다만 경질되기 직전 팀에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안겨주면서 팀이 최악의 부진 속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17] 그리고 이걸 수습한 사람은 우나이 에메리.

이 당시의 맹활약으로 쿠만은 발렌시아 팬덤에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 사람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바르사의 첩자라 불리는 등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려 이전까지의 모든 활약을 모두 허공으로 날린 셈이 되었다. 더욱이 쿠만이 카니사레스의 대체로 기용한 골키퍼 티모 힐데브란트는 발렌시아 이적 이후 말 그대로 폭망했다.[18] 다만 겨울 이적시장에서 팀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를 찾던 중 신예 미드필더 에베르 바네가를 발견하고 팀에 영입한 뒤 경험치를 쌓아놓은 것은 그나마 업적으로 꼽힌다.[19]

다만 이 당시 발렌시아에서의 깽판은 로날드 쿠만보다도 당시 회장인 솔레르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연봉상한선을 만들어 베테랑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고 잘하고 있던 키케 플로레스 감독을 갑자기 짤라버린 사람도 솔레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들어서는 쿠만보다 더한 감독이 나왔다.

4.3. 발렌시아 이후

이후 2009년 고국으로 돌아가 AZ 알크마르를 잠시 맡았고, 2011년부터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전 시즌 리그 10위로 추락한 페예노르트를 2011/12 시즌 곧바로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였다. 그 뒤 2012/13 시즌에는 리그 3위, 2013/14 시즌에는 2위를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은 로날드 쿠만은 루이 판할의 뒤를 이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올랐고, 취임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거스 히딩크를 감독으로 선임한 뒤 유로 2016을 치르게 하고 그 뒤 2005/06 시즌 아약스 감독으로 감독경험은 달랑 1년에 불과했고 프런트 생활을 한 다니 블린트에게 감독직을 넘긴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로날드 쿠만을 완전히 배제시켰다. 게다가 로날드 쿠만에게 거스 히딩크를 보좌하는 수석코치 자리를 제안했다. 물론 로날드 쿠만이 1997년과 1998년에 거스 히딩크 밑에서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함께 지도자 수업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로날드 쿠만이 선수에서 은퇴한 직후였고 그 역할을 2014년에 와서 다시 하라는건 로날드 쿠만 입장에서도 자존심 구겨지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로날드 쿠만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2014년 여름 사우스햄튼의 감독이 되었다.

그 이후 거스 히딩크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말아먹고 심지어는 아이슬란드에게도 패배하는 상황까지 오자 아약스 감독인 프랑크 더부르와 함께 히딩크를 조롱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4.4. 사우스햄튼 FC

사우스햄튼이 2013-14 시즌에 중상위권이었긴 하지만 주요 선수들이 많이 유출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 거 같지 않느냐는 의견도 많았으나 첫 시즌 사우스햄튼은 7연승 행진 중이고 10라운드까지 겨우 5실점(21득점)을 당하며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유일무이한 1자리 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2위까지 올라왔다! 리그 1위인 첼시 FC가 8승 2무 26골 10실점으로 +16인데 그 첼시에 이어 2위인데다가 똑같은 +16점이다! 그야말로 쿠만은 진짜 갓동님이 되는 중이다.

그렇지만 차츰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이 기세도 많이 줄었다. 맨시티에게 안방에서 0-3으로 처발리면서 올 시즌 최다 실점을 당하고 그 뒤 아스날, 맨유에게 연패하면서 15라운드까지 8승 2무 5패를 기록하여 한때 1위 첼시랑 비슷한 골 득실 차도 이젠 맨시티에게도 밀렸으며 순위도 2위에서 5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박싱데이가 끝난 20라운드 현재 11승 3무 6패에 승점 36점으로 4위에 올라와 있어 다시 챔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대신 5위 토트넘 하고는 승점이 2점 차(승점 34점)이긴 하지만 팀 간 골 득실 차는 +17씩이나 나고(사우스햄튼 +19, 토트넘 +2) 3위 맨유하고는 승점 1점 차에 골 득실은 사우스햄튼이 앞서므로(맨유 +14) 계속해서 성적 반등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후반부에 와서 다소 밀리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도 아쉽게 놓치며 시즌 7위를 기록했으나 아스날이 FA컵에서 우승함으로써 사우스햄튼도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렇듯 유로파 리그도 나가게 되었으니 알차게 지낸 시즌이 되었다.

2015-16 시즌에도 시즌 전 주요 선수들이 빠져나갔으나 역시나 그 공백을 적절한 영입으로 적절히 메웠다. 시즌 중반 13위까지 밀리자 경질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즌 종반에는 경기력을 회복하며 리버풀에 멋진 역전을 하는 등 순위를 끌어올리게 되었다. 지난 시즌의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주면서 7~8위 정도의 순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클럽 역대 최다 승점(63점)으로 리그 6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해 차기 시즌 유로파 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시즌이 끝난 뒤 로베르토 마르티네스를 시즌 막판 짜르고 감독 자리가 비게 된 에버튼이 쿠만을 데려오기 위해 사우스햄튼에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일단 쿠만 본인은 남겠다는 의사를 그동안 쭉 피력해 오긴 했다.

그러나 비피셜이 뜨면서 에버튼 부임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사우스햄튼에서 보낸 시간은 2년에 불과하지만 소튼팬들 입장에서는 사우스 햄튼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뽑히고 있다. 2014-15 시즌에는 포체티노 감독과 아담 랄라나, 슈나이덜린, 루크 쇼, 리키 램버트 등 감독과 주축선수들이 죄다 이적하는 상황이던 사우스햄튼의 분위기를 정비하고 프레이저, 포스터, 반다이크, 알더웨이럴트, 두산 타티치 등 알짜배기 영입을 주도하며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초반부터 빅4팀들을 위협하며 이전 포체티노가 세운 팀순위인 8위를 뛰어넘어 사우스햄튼을 프리미어리그 7위에 올려놓았다. 2015-16 시즌에는 초반에 13위로 몰리며 경질설이 나돌았지만 후반기 부터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내며 기존 빅4팀들과 유럽챔피언스리그 티켓경쟁을 할정도로 사우스햄튼을 성장시켰고, 비록 챔피언스리그 티켓은 따지 못했지만 승점 63점으로 사우스햄튼을 프리미어리그 6위에 올려놓으며 구단 역사상 최고순위와 최고승점을 경신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우스햄튼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쿠만을 그리워하는 소튼팬들이 많다.

4.5. 에버튼 FC

6월 14일, 소튼 감독직에서 사임한 후 에버튼에 부임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잔류 의사를 밝혀놓고 에버튼으로 향한 점 때문에 사우스햄튼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2016-17 시즌 초반, 4승 1무로 전승의 맨시티의 뒤를 잇는 2위를 달성 중이다. 물론 박싱데이 전후로 DTD를 감안해야한다. 그러나 그 뒤로 1승 3무 2패를 기록, 11월 1일 현재 리그 6위로 내려앉았지만 지난 시즌 에버튼의 리그 최종 승리가 겨우 11승임을 감안하면 현재 매우 잘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역시나 중상위권으로 내려앉았다. 그래도 현재는 다시 7위 자리에 있으며, 아스날을 2-1로 잡아내기도 했다.

EPL 21라운드에서 펩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4-0으로 잡아내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경기 내용은 점유율 2:8로 맨시티의 흐름이었으나 단 4개의 유효 슈팅을 모조리 골로 연결시키는 집중력을 보여주며 펩 과르디올라에게 리그에서 처음으로 4점차 이상의 대패를 맛보게 해준 감독이 되었다.[20]

결국 최종 순위는 7위로 마무리했다.

2017-18 시즌 들어서는 상당히 그릇된 이적 시장을 보내면서 현재 팀이 안 좋은 성적을 보내는 주된 원인이 되었다. 바클리와 같은 중앙에서 과감히 드리블로 볼을 운반할 수 있는 존재 & 미랄라스를 제외시 그를 대체할 크랙 성향이 짙은 윙어, 전형적인 No. 9이 필요하였는데 그러한 선수를 한 명도 영입하지 못하였다. 특히, 클라센 & 루니, 시굴손 모두 중앙 지향적인 자원인 선수들을 중복적으로 영입하게 되면서 이들이 모두 베스트11에 들어가게 될 시 사이드 플레이에 있어서 윙백이나 풀백에 지나치게 의존해야만 하는 단조로움을 낳게 되었다.

10월 중순 시점에서는 하위권에 쳐박힌 상태. 매 경기 경질설에 시달리고 있다. 하위권팀 상대로도 간신히 비기는 정도이다. 10월 22일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5-2 대패를 당함으로써 18위, 즉 강등권에 위치하게 되었다. 특히 후반전에 게예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뒤 에버튼이 수적으로 불리해진 틈을 타 아스날 선수들이 연달아 골을 넣었을 당시 경기를 관전하던 빌 켄라이트 회장이 한숨을 내쉬는 장면이 잡혔고 팬들도 경기 도중에 집단으로 구장을 나가서 경기장에 빈 자리가 많았던 것은 에버튼의 보드진과 팬들에게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점이기도 하다.

이로서 에버튼 감독직에서 경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결국 다음날에 전격 경질되었다.

이번 시즌은 약간 발렌시아 때의 실패와 동일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이해가 안 가는 선발 라인, 유로파 때 굉장히 잘 했던 미랄라스를 선발로 쓰지 않았던 점, 그리고 본인이 대놓고 무시한 니아세가 출전할 때마다 거의 득점을 했음에도 쿠만은 지독히 미랄라스와 니아세를 쓰지 않았다. 가령 해임되기 마지막 유로파 경기인 리옹전 때 전반전은 팬들이 원하는 경기였다. 시원시원하고 스피디한 경기였지만, 후반전에는 미랄라스를 빼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산드로를 넣는 이상한 교체를 하더니 결국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팬들은 전반전처럼 하면 다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쿠만은 오히려 전반전은 못했고 후반전 경기력이 좋다는 이상한 망언을 하였다.

4.6.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1기

2018년 2월 7일,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후임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UEFA 유로 2020까지이며 유로 2020의 성과에 따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까지로 계약이 연장될 수 있다고 한다.

2018년 3월 A매치 데이에 한물 간 네덜란드 스쿼드로 잉글랜드한테 1-0으로 깨졌지만 27년만에 포르투갈을 3-0으로 깨며 축구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6월에는 1일에 슬로바키아전을 상대로 1:1로 비겼다. 5일에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1:1로 비겼다. 9월 7일에는 페루전은 멤피스 데파이의 멀티골로 2:1로 승리했다. 10일 프랑스와의 UEFA 네이션스 리그 경기는 1:2로 졌다. 10월 14일 UEFA 네이션스리그 독일전에서는 독일을 3:0으로 격파하면서 부활의 물꼬를 텄다. 10월 17일 벨기에전은 1:1로 비겼다. 그리고 뒤이어 2018년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와의 재대결에서 2:0으로 승리, 오렌지 군단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이후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당당하게 조 1위를 차지하면서 네덜란드를 네이션스 리그 4강에 진출시켰고, 4강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해서 포르투갈과 싸우게 되었다. 비록 결승에서 포르투갈에게 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이런 멋진 모습을 보인 것만 해도 어디인가?[21]

UEFA 유로 2020 예선 C조에서도 조 1위를 두고 경쟁할 것으로 평가된 독일과 1승 1패를 주고 받으며[22] 조 2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2020년 8월 17일, 챔스 8강에서 바이언에게 충격적인 대패를 당한 바르셀로나가 키케 세티엔 감독을 경질하고 로날드 쿠만을 임명할 것이란 기사가 떴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협상중이라고 한다. 아직 공식적인 오피셜은 나오지 않았지만 유력한 감독직 후보이다.

파브리지오 로마노에게서 쿠만이 바르셀로나의 새 감독으로 계약할 것이라는 기사가 났다. 이번 주 내로 네덜란드 감독직을 내려놓고 바르셀로나와 사인할 것이라고 한다.

4.7. FC 바르셀로나

2020년 8월 19일, 키케 세티엔을 이은 FC 바르셀로나의 67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계약 기간은 2022년 6월까지다. 이로서 2017년 루이스 엔리케의 사임 이후 3년만에 팀의 레전드가 다시 감독이 되었다.[23]

4.7.1. 2020-21 시즌

현재 FC 바르셀로나의 문제점을 어떻게 풀고 이끌지 주목이 된다. 일각에서는 쿠만이 발렌시아 CF 에버튼 FC 시절의 행보를 재현할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현재 바르셀로나는 쿠만이 원하는 스쿼드가 다 갖춰진 상태가 아니라 노장 선수들이 많아 리빌딩이 필요하므로 제 성적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우려된다. 과연 발렌시아 시절의 행보를 보일지, 아니면 반대로 사우스햄튼 FC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시절의 행보를 보여서 바르셀로나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요한 크루이프, 프랑크 레이카르트, 펩 과르디올라, 루이스 엔리케 등 바르셀로나 선수 출신이거나 네덜란드 국적의 감독들이 바르셀로나의 챔스 우승을 이끌고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열었듯이 쿠만도 그럴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24]

리오넬 메시가 휴가중 급히 돌아와서 이적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쿠만은 그를 붙잡으려 하고 있으며 현재 1군 멤버를 8명 남기고 방출하는 선수단 재정비 계획을 내놓았는데 마이클 킨, 멤피스 데파이, 도니 판더베이크를 영입하고 싶다고 했다.[25] 그런데 메시가 쿠만과 사적으로 만난 사실이 바르셀로나 매체 'RAC1'를 통해 공개되자 보드진을 의심해 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자칫 부임하자마자 자의와 상관없이 메시를 떠나보내야 하는게 아닌지 우려스러운 상황. #

결국 일이 터졌다. 메시가 당장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싶다는 뜻을 팩스로 구단에게 전달한 것이 확인되었다. # 여기에 쿠만이 메시한테 "현 스쿼드에 대한 특권은 이제 끝이다. 모든 것은 팀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 "나는 이제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을 것이다. 넌 이제 팀을 대해 생각해야 한다." 라고 말하였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26]

그 전날인, 8월 25일 밤 11시, 수아레스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고작 1분만에 방출 통보를 끝마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유명한 1분 통보. 수아레스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어이가 없어서 전화를 끊었지만, 이러한 구단의 대우에 분노했고, 수아레스 뿐만 아니라 쿠만의 플랜에 없는 선수들도 이러한 전화 통보를 받았을 확률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수아레스 본인이 가짜 뉴스라고 밝히고 쿠만 또한 이에 대해 부정하며 바르토메우의 언플중 하나였음이 드러났다.

더 어이없는 것 한 가지는, 키케 세티엔의 경질을 발표하긴 했는데, 키케 세티엔은 정식 해고 절차를 밟지 않아 8월 27일 기준으로도 공식 감독은 세티엔이고, 로날트 쿠만은 그냥 일반인 자격이라는 거다.[27]

8월 30일에는 지난 시즌 나쁜 일이 많았던 앙투안 그리즈만을 다독였다고 한다. 20-21시즌에 핵심선수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돌고 있다.

한편 마르카에서 9월 17일 쿠만이 아직도 정식 감독이 아니라는 뉴스가 나왔다. 웃기게도 세티엔에게 계약에 따른 해고 위약금을 100% 주기 싫은 바르셀로나가 코로나 탓을 하면서[28] 구단 사정을 들어 위약금 및 잔여 연봉 삭감을 시도하고, 세티엔 감독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소송까지 불사하려는 태도로 나가면서 재판에서 세티엔의 해고가 확정되고 위약금 지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정식 감독을 못하게 된 것이다.[29] 실제로 한국 시간으로 9월 19일,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공식 홈페이지에는 Coaching Staff에 Ronald Koeman이 기재되어 있지만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에서 실제 라리가 명단에 등록되어 있는 선수와 감독들을 기재하는 라리가 공식 사이트에는 바르셀로나의 Coaching Staff에 Enrique Setién Solar[30]이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2020년 9월 24일 라리가 공식 사이트에 쿠만이 정식 감독으로 등록되었다.

쿠만은 구단의 재정비 계획에서 리키 푸치 카를레스 알레냐 등 유망주한테도 가차없이 임대를 권유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25일 FC 바르셀로나에서 진행한 쿠만의 인터뷰 내용에서 보면 이때 동안 진행된 수아레스의 이적 절차는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음 내용은 쿠만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루이스의 이적 결정은 나의 결정이 아닌 보드진의 결정이다. 난 그에게 존경을 표했고 그가 남기를 원했기에 나 또한 그것을 원했다.
대신 루이스와 현재 바르사의 현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방출할 생각은 없지만 노장의 선수를 주축으로 사용할 수는 없고 예전과 같은 많은 출전 시간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루이스가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지만 몇 번의 대화 이후 루이스도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대신 자신을 증명할 기회는 달라고 하였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의사와 상관 없이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아틀레티코에서의 행운을 빈다.

21-22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이전에 수아레즈의 인터뷰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수아레즈가 득점 이후 전화 퍼포먼스를 하면서 쿠만을 저격한 건 덤이다.

리그 첫 경기이자 리그 3R 비야레알 전에서 메시 의존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쿠티뉴를 살리는 등 상당히 좋은 경기력으로 4: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다음 라운드였던 셀타 비고 원정에서도 3:0 완승을 거두며 두 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이 경기로 5년간 바르셀로나를 괴롭혔던 셀타 비고 원정 무승 징크스도 깨졌다.

시즌 개막 전 선수 대우 관련해서 논란을 모았던 쿠만이지만 개막 이후 임대 복귀한 필리페 쿠티뉴를 상당히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막 후 2연승을 이끌고 있다. 또한 엘클라시코를 앞두고 펼쳐진 챔스 조별예선 1차전 페렌츠바로시와의 홈경기에서 20대 초반으로 확 젊어진 선수단을 데리고 5:1 대승을 거두며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바르셀로나에 걸맞지 않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그 첫 홈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이 경기 내내 메시는 완전히 전성기로 돌아간 모습을 보여주었고 발베르데에게 골을 허용한 이후 수비진은 완전히 견고해졌으며 양쪽 풀백 조르디 알바와 데스트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득점을 기록한 안수 파티는 설명할 필요도 없고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페드리 또한 공격보다 수비에 중점을 맞추면서 데스트의 오버래핑을 돕는 등 선수들의 폼은 완전 좋았다. 하지만 랑글레의 페널티 킥 허용 이후 빠르게 전술 변화를 가져가야 했을 시점에 교체를 하지 않고, 경기가 기울어진 후에야 극단적인 2-2-6 포메이션으로 공격했다가 그것도 지단의 전술변화에 완패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빠진 유벤투스 FC와의 챔스 조별예선 2차전 경기에서는 제라르 피케가 퇴장 징계로 빠졌음에도 2-0 승리를 따내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나 했으나, 리그 8R 알라베스 원정에서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리그 4경기 연속으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리오넬 메시의 계속되는 필드골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역시 큰 문제다. 그러나 하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챔피언스 리그가 반환점을 도는 동안 전승을 챙겼다는 점.[31][32]

10R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10년 9개월만에 라리가에서 아틀레티코에 패배했다. 리그 순위는 10위에 쳐박혔고 안그래도 얇은 스쿼드에 피케, 세르지, 안수 파티, 뎀벨레, 랑글레는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12월 6일 11R 위에 아틀레티코라면 이해가 되지만 그것도 29년만에 카디스 CF에게 패배했다. 카디스는 라리가 2에서 승격한 팀인데 그것도 바르셀로나가 졌다는 것은 아직 쿠만의 전술이 바르셀로나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33]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최종전 유벤투스 전에서 3점차 이상으로 패배하지만 않으면 조 1위기 때문에 수비적으로만 잘 대응했어도 조 1위를 무난히 확정지었을 경기를 그것도 캄프 누에서 3골이나 내주고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며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로써 토너먼트에서 쟁쟁한 조별리그 1위 팀들을 상대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결국 PSG와 맞붙게 되었다.

앞당겨서 치러진 19R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리그 1위팀인 소시에다드를 잡아내며 리그 순위를 끌어올렸다.

시즌 초반의 불안함과 달리 시즌 중반으로 갈 수록 점점 완성되어 가는 팀을 보여주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 순위도 3위까지 끌어올리고 스페인 슈퍼컵인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도 결승까지 올랐지만 아틀레틱 클루브 와의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 3:2로 패배했다. 거기다 메시가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바르샤 유니폼을 입고 클럽팀 통산 753경기만에 첫 퇴장을 기록했다. 쿠만은 메시의 행동에 대해 나는 메시를 이해한다. 그가 드리블할 때마다 상대팀 선수들이 반칙성 플레이를 했다. 고 옹호했다.

리그에서 엘체를 상대로 2:0, 아틀레틱 클루브 전에서 2:1로 승리하면서 레알을 제치고 리그 2위로 올라섰으며 리그 10경기 연속 무패를 달성해냈다.

코파 델 레이 8강 그라나다전에서 2:0으로 지고있던 상황에 극적으로 동점으로 만들어 연장전까지 이끌고 3:5로 역전승을 하는 등 위닝 멘탈리티 또한 심어준 듯 하다.

이어진 베티스전과 알라베스전에서도 승리하며 승점을 쌓아올렸다.

하지만 캄프 누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파리 생제르맹 FC에게 1:4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는 유독 강팀과의 경기(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맹)에서 1승5패에 그치는 부진을 보여주는데[34] 현재 보여주는 능력으로는 강팀 상대로는 전술적으로 패배하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파리전에서 부임한지 두달도 안된 포체티노한테 전술적으로 완패한 점에서 잘 드러난다. 상대팀 포체티노가 네이마르, 디마리아 결장이라는 악재를 겪었음에도 완벽한 전술과 용병술을 보여준 반면, 쿠만은 전술적으로 수비붕괴를 해결하지 못한 것과 뒤늦은 교체 타이밍으로 반전의 기회를 놓쳐서 더 비교되었다. 경기 이후 팬들은 차비 에르난데스를 더욱 외치고 있다.

PSG에 깨진 바로 다음 경기인 카디스전에서는 초반 메시의 페널티킥 골로 우위를 점했으나 후반 막판 페널티킥 실점을 하면서 통한의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다음 경기에서 엘체를 밟고 일어섰고 세비야와 다음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지난 코파델레이 4강 1차전에서 세비야는 2:0으로 바르샤를 눌렀었는데 리그에서는 바르샤가 2:0으로 이긴 후에 코파델레이 4강 2차전에서 3:0으로 승리해 결승에서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의 설욕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는 만만치 않은 아틀레틱 빌바오로 정해졌다.

리그 26R인 오사수나전을 이기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6R에는 마드리드 더비가 있어서 리그 순위의 분수령이 될수도 있어보인다. 그리고 바르샤 팬들의 바람대로 무승부가 되며 1위 아틀레티코와 승점 4점, 3위 레알과 2점 차이가 나게 되었다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기적을 노렸으나 리오넬 메시의 페널티킥 실축과 우스만 뎀벨레 공격진의 엄청난 활약으로 합산 스코어 2:5로 16강에서 탈락했다.

한때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2021년 들어 좋은 경기력과 팀 레전드다운 멋진 태도를 보여주며 지지 여론이 많아졌다. 다음 시즌도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새 회장 조안 라포르타도 쿠만에 대해 긍정적이다.

2021년 4월 들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주춤한 사이 승점차를 1점차까지 좁히며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가오는 엘클라시코만 어떻게든 잡는다면 여론과 우승 경쟁의 판도를 확실히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그 30R 엘클라시코에서 패하며 리그 우승 경쟁에 다시 한번 빨간불이 켜졌다. 레알의 역습에 고전하며 전반을 2:0으로 내주고 후반 그리즈만을 투입해 반전을 꾀했지만 1골 만회골에 그쳐 2:1로 패해버렸다.

코파 델 레이 결승 아틀레틱 빌바오전에서는 안정적인 공수 밸런스를 바탕으로 측면 공격에 무게를 두는 3-5-2 전술을 선보였다. 전반에는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후반 들어서 빌바오가 수비적인 교체를 가져가며 잠그는 전술로 전환하자 전술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60분 그리즈만의 결승골을 시작으로 더용의 추가골과 메시의 멀티골이 연달아 터졌고 모두 측면 공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골이었다. 결국 4:0 대승을 거두며 바르셀로나 부임 첫 시즌에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31R 헤타페전과 32R 비야레알전에서 메시-그리즈만을 투톱으로 내세워 7득점 연승을 해냈다. 빌바오가 32R에서 선두의 AT마드리드를 잡아냈고 바르샤는 레알마드리드보다 1경기를 덜 치렀기 때문에 역전우승이 나온다면 레알보다 바르샤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예측이 나왔다.

허나 33R에서 키케 세티엔급의 졸장전술을 펼친 끝에 8위인 그라나다에게 패하면서 리그 1위에 닿지 못했다. 최악의 폼을 보여준 세르지 로베르토를 빼지 않았고 이렇게 남은 세르지는 결국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쿠만은 그라나다의 동점골이 들어간 뒤 퇴장을 당했는데 그는 이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심판 보고서에 따르면 쿠만은 "What a character.(별난 놈을 다 보겠네!)"라고 말했는데, 이를 쿠만이 심판을 모욕했다고 판단하여 퇴장을 줬다는 것이다. 경기 결과와는 별개로 쿠만이 심한 말을 하지 않은 것임에도 퇴장을 당한 것에 심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다.

리그 34R 발렌시아전 원정에서는 전반 내내 득점하지 못하면서 홈팀에게 말렸고 후반 5분 선제골을 실점한 뒤에야 주도권을 가져왔다. 메시와 그리즈만이 3골을 넣으며 선전했고 후반 말미에 벼락같은 중거리슛 실점이 한번 더 있어서 3:2 승리를 거두었다.

리그 35R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는 두 줄 수비에 휘말렸고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유효슈팅 7개가 모두 막혔다. 무득점 무승부를 거두면서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결국 리그 36R 레반테전에서 전반 종료까지 2:0으로 리드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나 했지만 후반에 힘없이 밀리며 3:3으로 비겼다. 후반 시작과 함께 로날드 아라우호의 발목 부상이 있었는데 전문 센터백인 오스카르 밍게사가 있음에도 세르지 로베르토를 넣은 것이 수비 불안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크게 비판받고 있다. 레알과 아틀레티코가 36R에서 이기면 바르샤는 2위를 빼앗기게 된다. 결국 레알과 아틀레티코는 이겼고 37라운드에선 셀타 비고에게 1-2로 패해 승점 76점이 되어 83점인 아틀레티코, 81점인 레알 마드리드와 승점이 벌어져 38차전 결과와 관계없이 리그 2위에서 떨어졌다. 게다가, 38차전 결과에 따라 리그 4위로 추격 중인 세비야(승점 74점)에 3위 자리마저 위협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상대가 강등 확정된 에이바르인지라 어지간해서는 3위를 지킬 전망이다.

시즌이 끝난 후 계약 기간은 1년 남아 있으나 경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코파 델 레이 우승이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지는 못 하였고 그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신뢰를 주지 못 한 점이 문제다.[35] 홈에서의 각종 기록을 안 좋은 의미로 파괴했고 13년 만에 최저 승점, 최저 순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 2위, 16강 탈락, 시즌 중 라리가의 강팀이나 유럽의 강팀을 상대로 경쟁력이 0에 가까운 모습만을 보여줬다.[36] 아무리 팀에 악재가 많았다곤 해도 몇몇 요소에서 신뢰를 줬다면 모르겠으나 쿠만 본인도 전반적으로 팀의 상황 수습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상대방의 전술에 대응을 잘 하지 못 하면서 무기력하게 단순한 패턴에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다. 그와 동시에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술적 시도도 좋지 못 한 편. 예시로 홈에서 파리를 맞이 했을 때 3:1이 되어서야 겨우 변화를 시도 했는데 국내 축구전문가 한준희는 경기 던지냐는 생각마저 했다고. 심지어 그 이후 1골 더 먹혔다. 시즌 말기에 들어서는 약팀조차도 부스케츠를 거의 압박하지 않았음에도 개선하지 못 했고, 부스케츠를 보좌하기 위한 페드리나 더용의 침투를 카운터치는 역습패턴에 매번 무너진다.[37] 쿠만 입장에서는 수비 실책이 많다고 하지만 애초에 발이 느린 랑글레와 피케를 동시에 기용하면서 높은 라인을 유지, 역습도 차단하라는 이상적인 수비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 수비 실책의 원인이다.[38][39]

선수 기용에 있어서도 아쉬움은 있었다. 밍게사 같은 경우는 명백히 그의 작품이고 모리바[40] 같은 경우는 너무 늦게 기회를 준 감이 없지만 어쨌든 어린 선수들을 성공적으로 기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리키 푸치, 퍄니치 같은 선수[41]들의 기용은 상당히 인색한 편이면서 데용, 페드리, 부스케츠의 혹사는 매우 심한 편. 로테이션 총 자원의 출전시간은 주전 최저 출전인 부스케츠의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로 격차가 있다. 특히나 퍄니치같은 경우는 부스케츠를 어느 정도 대체 가능한 선수인데도 훨씬 어린 모리바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 하였는데 이쯤되면 퍄니치가 감독의 구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그러나 퍄니치는 아무리 폼이 떨어졌어도 클래스와 경력을 가진 즉시 전력 선수인데, 안 그래도 자원 부족한 상황에서 로테이션 맴버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냐는 평가는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쿠만을 선임한 것은 전 회장인 바르토메우로 현 회장인 라포르타가 선임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도 쿠만에게는 악재이다. 회장은 자신과 방향성이 맞는 감독을 원하는 것이 당연한데, 전임자가 임명했고 성적마저 좋지 않은 쿠만을 라포르타 입장에서는 빠르게 교체하고 싶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쿠만 입장에서도 항변할 말은 있을 것이다. 우선 시즌 시작부터가 워낙 어수선했기에 대부분의 팬들이 힘든 시즌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사실이다. 부임하자마자 메시나 수아레즈같은 기존 베테랑과 구단이 얽힌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나이 문제로 정리해야 할 자원들은 산더미인데 코로나로 인한 재정 악화로 영입은 마음껏 못 하는 실정이었다.[42] 시즌 전 전망만 해도 바르셀로나가 1군으로 다섯 명이나 승격시킨 사례는 최초인데, 기존의 노장들을 어찌저찌 처분하기는 했으나 대체할 젊은 자원 영입이 부진해 기존의 고액 연봉 선수들이 터지길 바라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발이 느리다는 부스케츠의 의존도도 내부적으로 부스케츠를 완전히 대체할 자원은 없었기 때문. 물론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고 치더라도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마음껏 사주는 구단은 극히 일부이며, 구단 입장에서는 있는 고액 연봉 선수도 제대로 못 쓰면서 선수 영입을 지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구단에서 신임 감독이 부임하고 기존 선수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최소한의 영입 지원을 해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즉, 서로 할 말은 있는 셈이고 워낙 이번 시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성적과 전술 상 아쉬움 때문에 경질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도 있으나, 워낙 상황이 좋지 않은 시즌이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여지가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부임 전후로 팀을 둘러 싼 내부와 외부 상황 역시 바르셀로나 역사에 남을 수준으로 최악에 치달았기에 이번 시즌 시작부터 사실상 마음을 비운 팬들도 많았기 때문. 근래 바르셀로나 성적 중 제일 안 좋은 성적표였다고는 하나, 최소한 챔스 티켓은 지켰고[43] 운이 따랐다고는 하나 코파 델 레이 우승이라는 성과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질되는 감독의 주요 패턴이 보통 선수단과의 불화이고 전임 세티엔도 선수단 통제에 실패하고 불화를 겪으며 경질되었는데, 메시가 바르셀로나 잔류를 원할 정도면 쿠만은 아직까지 선수단의 신뢰를 크게 잃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44]

거기다 쭉 언급한 대로 팀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이 와중에 위약금까지 물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45] 계약 기간도 2022년 6월까지라서 일단 재계약 없이 내년까지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직전 시즌 발베르데를 경질하고 데려온 세티엔이 최악의 모습을 보여 시즌 종료 후 또 경질하고선 데려온 것이 쿠만인데 이러고도 또 감독을 교체하는 것은 팀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고 쿠만보다 더 좋은 감독이 온다는 보장도 없다.[46]

4.7.2. 2021-22 시즌

결국 다음 시즌 역시 쿠만과 함께 간다고 라포르타 회장이 밝혔다. # 재정 위기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에서 잔여 연봉 부담까지 늘리면서 팀을 흔들 상황이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8월 9일 조안 감페르 트로피 결승전에서 메시 없이 호날두의 유벤투스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프리시즌 경기였기에 다들 큰 의미는 두지 않았으나, 곧이어 엄청난 의미가 생길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메시의 이적.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되면서 쿠만의 전술 구상에는 엄청난 변수가 생겼다. 메시의 이적과 더불어 새 주장단 4명이 연봉 50% 삭감안을 받아들여 멤피스 데파이를 이적시키고 에릭 가르시아를 데려왔다.[47]

그렇게 메시 없이 시작하게 된 리그. 1R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는 데파이의 프리킥에 이은 피케의 헤더골, 브레이스웨이트의 2골 1도움 활약, 로베르토의 쐐기골까지 더해 4득점을 했다. 후반 35분 이후 2골을 실점한 것이 흠이지만 좋은 출발이었으나...
팀에 또 다시 좋지 않은 쪽의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좌우 풀백 백업자원이었던 이메르송 로얄이 재정난 해결 때문에 또 다시 이적하게 되었고, 여기에 메시 대신 팀의 주축으로 삼고자 했던 앙투안 그리즈만마저 이적시장 마지막 날 팀을 떠난 것.

바르셀로나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이적인데, 그리즈만의 임대 이적은 고액 주급자가 사라져 샐러리캡 유지를 위한 선수 등록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당장의 부채 상환에 쓸 수 있는 현금 흐름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그리즈만을 보내고서 한다는 보강이 뤽 더용. 나이 어린 유망주도 아니고, 당장 급한 스코어러 타입도 아니며, 전방에서 포스트 플레이 원툴만 가능한 선수다. 뎀벨레의 부활이나 아구에로의 부상복귀가 없다면 사실상 갓 이적해 온 멤피스 데파이가 에이스다.

그러나 2R 아틀레틱 클루브전에서 선제실점 후 무승부를 거두었고 3R 헤타페전에서는 2-1 승리를 거두었는데 경기를 아예 주도했으면서도 유효슈팅이 적고 후반전에는 득점이 없어 팬들의 불만이 쌓였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1차전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유효슈팅 없이 3점차 패배가 나오면서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으며 쿠만은 구단으로부터 9월에 남은 3경기에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경질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5R 그라나다전에서도 경기시작 2분만에 실점을 해놓고 크로스만 남발하다가 후반 45분에야 동점골을 넣고 끝났다.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 내용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선수진 탓과 합리화를 하며 횡설수설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아직도 플랜 A를 짜지 못해 경질설이 쏟아지고 있으며 차기 감독으로는 카탈루냐 출신이고 현재 벨기에 대표팀 감독인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1순위로 꼽힌다.

6R 카디스전에서 무득점 무승부를 거두면서 리그 7위를 유지하였다. 경기 막판에 카디스측 프리킥이 선언되자 경기 끝내지 않는다고 항의하다 퇴장 당한건 덤. 이 경기 최우수 선수는 골키퍼 테어 슈테겐이었는데, 바르셀로나는 점유율 68%를 가져갔지만 카디스보다 유효슈팅이 적었다. 경기 후 2경기 출장 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갈수록 발렌시아-에버튼 시절이 생각나게 만드는 모습.

7R 레반테전에서는 전반 7분 데파이의 페널티킥 골, 14분 뤽 더용의 데뷔골, 돌아온 안수 파티의 쐐기골로 3-0 완승을 거두었다. 쿠만이 자리를 비우자 귀신같이 대승을 거두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SL 벤피카전 원정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3분도 안되어 실점을 하더니 맥을 못 추면서 슈팅 5개 유효슈팅 1개를 기록했다. 후반에 두 골을 더 실점하고 3-0 스코어로 참패를 당하며 경질당해도 유구무언인 상황이 되었다.

10월 1일 기준으로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사비 에르난데스 모두 바르사 부임설을 부인했다.[48]

그리고 10월 2일, 라포르타 회장이 8R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 전, "쿠만은 오늘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클럽을 떠나지 않을 것" 이라고 발표하면서, 적어도 이번 시즌까지는 잔류할 전망이다. 라포르타 회장은 쿠만에게 다시 한번 신임을 주었지만 이에 무색하게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2-0 완패를 당한 터라 A매치 휴식 기간 이후 쿠만은 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팀을 이끌어나갈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니코 곤잘레스가 실점의 원인이었다고 저격하며 민심을 더욱 잃어가고 있다. 니코의 실책은 맞지만 본인이 선발로 기용한 2002년생 어린 선수에게 할 말이냐는 반응. 또한 조르디 알바가 벤치에서 불만 가득한 제스처를 취하는 영상도 공개되며 주장단에게도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10월 20일, 챔스 16강 진출의 향방이 걸린 디나모 키예프전에서 아무 생각 없는 무한 크로스 전술만 갖고 나와 정말 재미없는 축구를 구사했다. 다행이 제라르 피케의 득점으로 1-0으로 승리했다.

10월 24일 엘클라시코에서는 무전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중원은 텅 비워놓고 선수들의 간격도 개판이었다. 팀은 엘클라시코 4연패를 이어갔으며 본인은 85년 만에 엘클라시코에서 3연패를 한 감독이 되고 말았다.

결국 10월 28일 라요 바예카노와의 경기에서도 유효슈팅을 단 한 개밖에 기록하지 못하는[49] 처참한 경기력을 보이며 0:1로 패배했고, 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복수의 언론에서 쿠만의 경질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결국 FC 바르셀로나에서 전격 경질되었다.

2020년 8월에 취임한 로날드 쿠만은 모든 경기 통틀어 총 67경기를 이끌며 58%의 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펩 과르디올라 이후 거쳐간 감독들 중 가장 낮은 승률에 해당한다.[50] 페드리를 위시하여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한 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있으나, 선수단 관리에 대해 꾸준히 제기되는 잡음, 주축 선수들의 혹사, 무한 크로스밖에 없는 세부전술의 부족 등 로날드 쿠만의 감독으로서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프리시즌부터 꾸준히 선수단 측에서 훈련부족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태만했던 안일함 등이 겹치며 결국 많은 비판을 받으며 물러났다. 경질 후 본인이 데뷔시킨 밍게사에게마저 비판을 받은 것은 덤이다.

FC 바르셀로나 기록: 67경기 39승 12무 16패, 승률 58%
코파 델 레이 1회: 2020-21

4.8.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기

루이 반할 감독이 암 투병으로 인해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가 끝난 이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기로 합의하였다.

2023년 1월 24일,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으면서 3년만에 대표팀으로 복귀하였다.

2023년 3월 25일, UEFA 유로 2024 예선전 프랑스와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처참한 경기력으로 0:4 참패하면서 매우 불안하게 2번째 대표팀 감독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지브롤터와의 UEFA 유로 2024 예선전에서 부임 후 첫 승을 거두었지만 이어진 네이션스 리그 4강 크로아티아전 2:4 패배, 3위 결정전 이탈리아전 2:3 패배를 하며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3년 9월 8일, UEFA 유로 2024 예선전 그리스와 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두면서 분위기 반등에 성공하였다.

이후 프랑스전에서 1:2로 패배했지만 그리스, 아일랜드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에 이어 UEFA 유로 2024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친선경기에서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평가를 반전시켰다. 프랑스가 무승부를 기록한 캐나다 대표팀을 4:0으로 박살냈고, 잉글랜드가 1:0으로 패배한 아이슬란드도 4:0으로 박살내며 자신들도 유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네덜란드 사람들과 응원하는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4.8.1. UEFA 유로 2024

이후 본선에서 기대치대로 반다이크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이 튼튼하게 버텨주는 상황에서 라인을 올려 상대에게 오픈 플레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공격진의 퀄리티 부족으로 대회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거기다 전술 구조 상 오히려 전방 압박과 오픈 플레이를 즐기는 랄프 랑닉이 이끄는 오스트리아에게는 2:3으로 패하면서 조별예선에서 3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그래도 와일드카드로 토너먼트에 진출해 16강에서 루마니아을 완파하고, 8강에서 튀르키예의 돌풍을 잠재우며 네덜란드 대표팀을 유로 2004 이후 20년만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5. 전술 스타일

센터백임에도 250골을 기록할 만큼 공격적이고 과감했던 본인의 선수 시절과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수비라인의 안정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도 쿠만이 이끌었던 페예노르트 선수들과 전술을 그대로 넣었었고, 소튼 시절 역시 수비 하나는 끝내주는 팀이었다. 이런 안정적인 수비진 앞에도 신체조건이 준수하고 수비에 치중하는 미드필더들을 주로 배치하다보니, 수비적인 안정감만큼은 대단한 수준이다.

이렇게 수비진이 볼을 따내거나 상대방 플레이를 끊어내면, 킥이 좋은 선수 내지는 빌드업이 가능한 선수에게 연결해 전방으로 공을 보내고, 최전방 공격수가 포스트 플레이를 진행하면 2선이나 측면에서 공간으로 쇄도해 들어와 득점을 올리는 것이 쿠만 공격의 주요 패턴이었다. 이 패턴이 잘 먹혔던 소튼 시절에는 두샨 타디치라는 준수한 키커와 그라치아노 펠레라는 신체조건 좋은 최전방 공격수, 그리고 발 빠른 사디오 마네 셰인 롱의 2선 침투가 있었기에 쿠만의 공격 패턴이 성공적으로 먹힐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단순한 방식이다 보니 빅클럽말고 다른 약팀을 상대로 승점을 따내는 데는 많이 아쉬웠고, 덤으로 소튼이 타 팀보다 유달리 재미가 없는 축구를 구사하는 이유가 되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리블러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51] 이는 특히 에버튼에서의 2번째 시즌에 두드러지게 되었고 결국 경질로 이어지게 되었다.

6. 기록

6.1. 선수

6.1.1.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80/81 FC 흐로닝언 에레디비시 24 4 3 2 - -
1981/82 FC 흐로닝언 에레디비시 33 14 1 0 - -
1982/83 FC 흐로닝언 에레디비시 33 14 4 0 - -
1983/84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32 7 4 2 2 0
1984/85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30 9 2 1 4 3
1985/86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32 7 6 1 2 0
1986/87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34 16 3 3 2 0
1987/88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32 21 6 4 8 1
1988/89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32 14 6 1 4 2
1989/90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36 14 7 4 4 1
1990/91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21 6 4 2 7 4
1991/92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35 16 2 0 11 1
1992/93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33 11 3 0 3 0
1993/94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35 11 2 0 12 8
1994/95 FC 바르셀로나 라리가 32 9 1 0 8 1
1995/9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에레디비시 31 10 3 1 7 3
1996/9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에레디비시 30 9 2 0 5 0

6.1.2. 대회 기록

6.1.3.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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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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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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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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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요르더네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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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
레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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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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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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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브로비 · 20 마트센 · 21 지르크지 · 22 뒴프리스 · 23 플레컨 · 24 스하우턴 · 25 베르흐베인 · 26 흐라벤베르흐
파일:UEFA EURO NED.png 로날드 쿠만
파일:UEFA EURO NED.png 에르빈 쿠만 · 파일:UEFA EURO NED.png 드와이트 로더웨저스



[1] 네덜란드어 표기법으로는 '로날트 쿠만(/roːnɑlt ˈkumɑn/)'. [2] 주로 3백에서의 리베로 역할이며 전술에 따라 가끔 수비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뛴 경우도 있었다. [3] 2021-22 시즌 도중 경질 [4] 쿠만은 SL 벤피카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첫번째 키커로 나와 성공시켰다. [5] 즉, 수비수 포지션으로 1년에 무려 평균 17골을 넣은 셈이다. [6] 심지어 14골 중에서 유로 1988 4강 서독전에서 1골,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서독전에서 1골이 포함되어 있어 수비수가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에서 두 골을 기록하였다. 후의 같은 골 넣는 수비수로 잘 알려진 로랑 블랑의 A매치 97경기 16골 중에서 메이저 대회 본선 골이 유로 1996 1골, 1998 프랑스 월드컵 1골, 유로 2000 1골로 통산 3골이라는 것과 보통 득점력이 좋은 수비수들도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에서 1골 넣기도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쿠만의 A매치 득점력과 순도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7] 클럽 239골 / 국가대표 14골 [8] 윈턴 루퍼와 공동 득점왕 [9] 이 번호는 과르디올라 이후 파트리크 안데르손, 라파엘 마르케스, 세스크 파브레가스, 이반 라키티치, 로날드 아라우호로 이어진다. [10] 전년도에 잘 이끈 것도 있고 시즌 중간에 그만뒀기에 후임도 확실하게 구하는 등(발렌시아에서는 보로 곤잘레스 단장이 임시 감독을 섰다) 발렌시아 시절만큼의 임팩트는 적지만, 그가 벌인 실책은 발렌시아 시절과 매우 흡사하다. [11] 참고로 당시 발렌시아는 알벨다와 카니사레스 등의 노장 선수들이 주축이 된 선수파와 당시 팀의 단장이었던 아메데오 카르보니, 당시 팀의 회장이었던 후안 솔레르 등의 권력 다툼이 치열했고, 그 결과 평소 카르보니, 솔레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가 사임하기에 이른다. [12] 비록 당시 카니사레스는 38세의 노장이었으나 여전히 리그 톱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팀의 상징적인 선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쿠만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셌다. 이 후에 에드윈 반 데 사르가 40살이 넘어서도 그 기량을 그대로 유지한 것, 그리고 최근에는 잔루이지 부폰이 40살이 넘어서도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봐선 골키퍼에게 38이란 나이는 절대로 무작정 퇴물 취급할 나이는 아니다. [13] 특히 호아킨의 경우에는 원톱 기용까지 시키는 기형적인 전술을 펼쳤다. [14] 당연히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5]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과거 조광래가 스트라이커인 정조국을 풀백으로 기용했다 실패했던 적이 있다. [16] 여담으로 당시 발렌시아는 신예 다비드 실바, 후안 마타 등을 발굴해내어 장미빛 미래가 예견되었던 만큼 이러한 부진이 더욱 뼈아팠다. [17] 참고로 당시 발렌시아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던 바르셀로나는 결국 무관에 그쳤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바르셀로나보다 더 좋은 시즌을 보냈다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18] 다만 힐데브란트를 발렌시아로 데려온 장본인은 당시 단장이었던 카르보니였다. [19] 비록 바네가가 당시 주목받는 유망주이긴 했으나, 다비드 알벨다와 루벤 바라하, 미겔 앙헬 앙굴로로 이어지는 중원 라인에서 꾸준한 출전을 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알벨다와 미겔 앙굴로가 벤치로 밀려 주전으로 나올 수 있었다. [20] 펩은 라리가, 분데스리가에서 팀을 이끌면서 한번도 리그에서 4점차 이상의 대패를 당해본 적이 없다. 챔스로 범위를 넓히면 레알과의 4강전 홈 경기에서 0-4로 발린 적이 있긴 하다. [21] 네덜란드는 포르투갈과 상성이 좋지 않다. [22] 홈에서 니코 슐츠의 결승골로 2-3으로 패하더니 원정에서는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의 활약으로 4-2로 이겼다. [23] 또한 리누스 미헬스, 요한 크루이프, 루이 판할,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뒤를 이어 바르셀로나 역사상 5번째 네덜란드인 감독이 되었다. [24] 특히 요한 크루이프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쿠만과 같은 네덜란드 국적으로서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크루이프는 레이카르트와 달리 바르셀로나에서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쿠만과 유사하다. [25] 허나 셋 모두 사실상 불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킨의 경우는 에버튼에서 나름 중요한 핵심 센터백이라 영입을 불허할 가능성이 높고, 데파이는 본인이 바르샤로 갈 생각이 딱히 없는데다 결정적으로 자금력이 막강한 PSG도 데파이 영입을 고려 중인 상황이다. 그리고 판더베이크는 맨유로 이적해버렸다. [26] 쿠만이 메시에게 "네 특권은 이제 끝이다."고 말한 게 더 널리 퍼져 있지만, 해당 발언은 번역 오류이다. # [27] 세티엔과 세티엔 사단 코치들도 구직 활동을 할 수 없어서 수아레스 통화 사건 다음 날 팩스를 보내 " 정식 해고 절차를 밟은 뒤에 위약금을 지급하라 "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28] 더 웃긴 건 메시에게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계약은 유효하다며 계약 기간 준수를 강요했다는 거다. [29] 물론 세티엔이 물러설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이미 다른 팀 감독 자리를 알아보고 있어 언제까지 이 소송을 끌 수 없기 때문. 하지만 그 동안 피해볼 선수들과 쿠만 본인의 커리어를 책임져줄 사람은 지금 메시의 사퇴 요구도 무시할 정도로 뻔뻔함이 극에 달한 인물이다. [30] 키케 세티엔의 본명 [31] 쿠만 감독은 "선수들이 패스 축구에 집착을 한다." 라고 아쉬운 소리를 했는데 이것 자체가 바르샤의 세대교체가 얼마나 늦었는지를 반증하는 말이다. 과거 바르샤와 스페인 대표팀의 티키타카는 튼튼한 수비와 호흡을 바탕으로 유연하고 의미있는 연결을 만들어내 이기는 전술이다. 때문에 선수들이 노쇠화했다면 머리와 몸이 서로 맞지 않아 유연한 연결과 튼튼한 수미와 호흡이 나오지 않아서 구사할 수 없다. 이것은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의 부진 원인으로 꼽힌 원인이다. [32] 하다못해 국가대표팀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차출을 하면 되니까 세대교체가 비교적 쉽기라도 하다(더구나 이탈리아 같이 유망주들이 쏟아져 나오는 축구 강국이라면 더더욱). 실제로 지도력이 검증된 로베르토 만치니가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고 세대교체를 진행하니 네덜란드 대표팀도 때려잡는 등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클럽팀은 국가대표팀처럼 멤버를 바꿔 끼우기 어렵고, 세대교체를 하겠답시고 무턱대고 어린 선수들 위주로 뛰게 했다가는 성적이 하락해서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나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같이 월드컵 진출 실패급의 대형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은 재정을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는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클럽팀은 4위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느냐, 5위로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천지차이로 벌어질 정도로 빡빡하다. [33] 다만 카디스는 이미 6R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1:0으로 꺾었던 전력이 있는 팀이니 만큼 결코 우습게만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여담으로 카디스는 2001-02시즌 레알 베티스 이후 바르샤와 레알에 모두 승리한 두 번째 승격팀이 되었다. [34] 저 1승도 호날두 없는 초보 감독 피를로의 어수선한 유벤투스를 상대로 거둔 반쪽자리 승리다. 호날두가 복귀한 경기에서는 3:0으로 완패했다. [35] 코파 델 레이도 레알, AT가 다 탈락한 상황이었고 세비야 2차전도 슈테겐의 PK 선방이 아니었으면 4강 탈락이었다. 즉, 비판받는 감독에 따라붙는 전형적인 딱지인 운과 선수 개인 기량빨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 [36] 사실상 이게 제일 큰 문제다. 라리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호날두가 빠진 유벤투스를 상대로 1승만을 거뒀을 뿐 유벤투스와의 막판 조별리그 대결에서 패배했고 16강 PSG 전에서도 1, 2차전 모두 이기질 못했다. [37] 부스케츠는 발이 느려서 사실상 역습 방어시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임에도 이 문제를 시즌 내내 해결하지 못 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부스케츠의 기동력을 보완하기 위해 페드리와 더용 등의 젊은 선수들이 투입되었는데, 당연히 체력 소모를 많이 할 수밖에 없고 와중에 역습을 당하며 침몰하는 것. [38] 물론 맨체스터 시티는 수비수에만 수천억을 들여서 올 시즌 그나마 안정화 된 것을 고려하면 높은 수비라인을 유지하면서 연습을 차단 하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선수들을 데리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술하겠지만 바르셀로나의 영입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는 점은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다. [39] 점유율 확보 이후 높은 라인을 유지하되 미드필더의 침투를 최소화, 수비와의 간격을 유지 하면서 역습을 경계한 발베르데 체제에서는 랑글레나 피케가 좋은 활약을 펼쳤던 것을 고려하면 두 선수를 같이 기용했을 때는 부스케츠 외의 미드필더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발베르데는 미드필더의 침투가 너무 적어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또한, 발베르데 체제에서는 역습 상황보다도 세트피스나 지공상황에서 집중력 부족으로 실점을 많이 했는데 이러한 실점 패턴이 딱히 쿠만 체제에서도 개선된 것은 아니다. 즉, 실점 패턴만 더 늘어난셈. [40] 현대 축구에서 중요시되는 피지컬은 갖췄지만 선발로 기용되거나 출전 빈도가 많아지면서 팀에 겉도는 플레이가 많아 지고 있으며 오히려 다른 로테이션 자원을 쓰지 않을 거면 리그 초반부터 콜업을 하며 경험치를 쌓게 해주는 편이 나았다라는 의견도 있다. [41] 리그 후반기에는 비싼 돈주고 사온 트린캉마저 출전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42] 코로나로 인한 재정 악화로 메시 임금 하나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다른 선수들 임금까지 고려 한다면 많은 돈을 주고 선수를 사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있는 선수 임금마저 줄이겠다는 기사 조차 나올 정도인데다가 FA선수들만 현재 링크가 계속 뜨는 것을 보면 이는 상당히 신빙성있는 기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 입장에서는 역으로 추가 영입 지원보다는 비싸게 주고 사온 피아니치나 리키 푸츠같은 어린 자원에게 조금 더 출전시간을 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설령 데파이 같이 바르셀로나와 링크가 뜨고 기존 팀과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선수라도 주급은 상당히 높게 부를 수 있기 있기에 기존 선수단 상황이 정리 되기전에는 영입에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직도 뎀벨레, 쿠티뉴의 이적료를 다 지불 하지도 못한 상황인데다 그리즈만을 영입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다. 즉, 구단 입장에서는 있는 선수들의 연봉과 이적료 처리에도 허덕이는데, 정작 쿠만은 그 선수들을 원해서 데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기존에 있는 선수단이 심하게 고령화된 상황에서 부임했다. [43] 물론 라리가에서 바르셀로나가 4위 밖으로 밀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44] 오히려 선수단과는 사이가 좋아보이는데 더용이 그가 다음 시즌에도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45] 물론 쿠만 정도 되는 감독이라면 적어도 오퍼는 잘 오는 만큼 빠른 재취업을 선호할 가능성이 더 높다. [46] 차비 에르난데스 등이 현재 거론되고 있었으나, 소속팀과 재계약을 맺었다. 안드레아 피를로의 실패도 있고 해서 유능하지만 경력이 짧은 젊은 감독들은 율리안 나겔스만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빅클럽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47] 그럼에도 앞으로 선수 연봉 2억 유로 정도를 더 깎아야 바르샤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48] 로베르토 마르티네스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대비하고 있어서 올 가능성이 낮으며 사비 에르난데스는 아직 감독 경력이 부족하다. [49] 이것조차도 페널티 킥이다. 그런데 멤피스 데파이가 실축하면서 동점골의 기회가 날아갔다. [50] 세티엔은 애초에 19-20시즌 후반기 때 부임해 19-20 시즌 종료 후 경질 되어 반 시즌 정도밖에 지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기수가 쿠만보다는 훨씬 적었다. [51] 물론 사우스햄튼 시절에는 사디오 마네를 잘 활용했었다. [52] 이 쪽도 쿠만보다 판할과 갈등이 더 심했다. [53] 사실 다른 빅클럽에서도 전술 문제 및 감독의 판단으로 본 포지션이 아닌 다소 생소한 포지션에 기용되어 본의 아니게 그 포지션에 정착하는 선수들도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본래 라이트 윙이였으나 마우로 카모라네시에게 밀려 왼쪽 풀백, 이후 조나단 제비나의 부상으로 인해 그 자리를 메꾸려고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해 레프트백, 라이트백 올타임 레전드로 꼽히는 잔루카 잠브로타나 전술상의 문제로 왼쪽 윙에서 뛴 파벨 네드베드가 있다. 뭐 쿠만의 포지션 변경이 성공했다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었겠으나... 결과가 참담하니 까임+개그소재로 쓰이는게 현실. 쿠만을 까는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바로 아리즈멘디 왼쪽 풀백 + 호아킨 왼쪽 윙 + 원톱이다. [54] Not For Sale. "선수를 절대 팔지 않는다"라고 입장을 언론에 확실히 공표하는 행동 [55] UEFA 네이션스 리그/2018-19 시즌/리그 A [56] UEFA 네이션스 리그/2018-19 시즌/리그 A [57] 90년대보단 80년대 선수로 보는게 더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