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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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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 양부 로저 클린턴 주니어 · 어머니 버지니아 클린턴 켈리 · 이부동생 로저 클린턴 주니어 · 아내 힐러리 클린턴 · 딸 첼시 클린턴
역대 선거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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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Oklahoma City Bombing
<colcolor=#fff><colbgcolor=#000000> 발생일 1995년 4월 19일
[dday(1995-04-19)]일
발생 위치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 알프레드 P. 뮤러 연방 정부 청사
유형 트럭 폭탄 테러, 대량살인, 백색 테러
원인 반정부 정서, 웨이코 포위전에 대한 보복
테러 주동자 티모시 맥베이[2], 테리 니콜스
사망 168명
부상 680명
1. 개요2. 피해3. 처벌4. 이후5. 테러범들의 근황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factsBombers.jpg
테러의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James McVeigh)와 공범 테리 니콜스(Terry Lynn Nichols)

1995년 4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 오클라호마 시티의 앨프리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 가해진 폭탄 테러. 9.11 테러 이전까지 미국 국내에서 일어난 테러 중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폭탄 테러이다.

테러를 일으킨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와 공범 테리 니콜스(Terry Nichols), 마이클 포티어(Michael Fortier) 셋은 미합중국 육군 훈련소 동기였다. 포티어의 부인인 로리 포티어(Lori Fortier)도 범행에 가담하였다. 주범 맥베이는 걸프 전쟁에 참전하여 훈장을 받은 경험도 있었다. 이들은 극단적 반연방주의 및 극우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파일:mcveigh terry.jpg

왼쪽 맥베이, 오른쪽 테리 니콜스. 1988년 군대에서 찍은 사진

테리 니콜스는 34살에 입대했기 때문에 부대에서 'grandpa'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군대에서 형성된 둘의 관계는 1991년 전역 뒤에 더욱 친밀해졌다. 맥베이는 경비원 일을 잠깐 했지만 곧 그만뒀고, 이 둘은 특별한 직업 없이 총, 화학 무기, 무정부 사상 등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들의 성장환경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의 한 일간지에서도 보도된 적이 있다. 링크

1992년의 루비 능선(Ruby Ridge) 사건, 1993년 웨이코 포위전 당시 연방정부의 강경진압에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1994년부터 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를 목표로 잡고 테러를 위한 사전답사를 벌였다. 이들은 연방정부청사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면서 다른 지역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해 벽면 대부분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주차장이 자리잡은 연방청사 북쪽을 목표로 설정했다.

장소 설정 후 맥베이는 동료들과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여 임대 창고에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1994년 9월 30일 캔자스 주에 있는 비료 공급업체에서 23kg 질산암모늄 포대 40여개를 구입하였다. 이후 캔자스 주 폴린에서 열린 NHRA 드래그 레이싱 시리즈 이벤트의 연료 공급 업체에서 나이트로메테인(nitromethane)과 하이드라진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연료 공급업체의 의심으로 실패하였다.

NHRA 챔피언십 투어의 다음 라운드는 텍사스 주 에니스에 위치한 텍사스 모터플렉스에서 열린 치프 오토 파츠 네셔널스(Chief Auto Parts Nationals)였는데 맥베이는 여기에서 오토바이 레이서로 가장하여 그와 몇몇 동료 바이커들이 경주에 필요하다는 구실로 나이트로메테인을 구입하려고 시도하였고, 여기서도 굉장한 의심을 사며 거절당하지만[3] 결국 연료 공급업체의 부사장이 3개의 나이트로메테인 드럼통을 판매하였다.

당초에는 하이드라진 질산암모늄을 이용한 Astrolite G 라는 폭발물을 제조할 계획이라고 하였으나 하이드라진의 매우 높은 가격으로 상기된 나이트로메테인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만약 이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기존 폭발의 약 2배의 위력이 나오므로 피해가 더욱 커질 뻔했다.

추가로 맥베이는 캔자스주의 한 채석장에서 160kg의 "Tovex" 라는 광산용 젤형 폭약과 수백개의 뇌관도 훔쳐서 보관중 이었다. 채석장에는 많은 양의 ANFO 폭약도 있었지만 위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따로 공급책이 있었기 때문에 훔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이틀 전 임대 창고에 보관했던 동료들이 구해온 질산암모늄 비료 포대 수십개와 나이트로메테인과 경유를 라이더 렌탈 트럭에 싣고 Geary Lake 주립공원 주차장으로 향해 준비해 둔 드럼통 안에 9개는 질산암모늄과 나이트로메테인, 나머지 드럼통 3개는 경유를 혼합하기 시작했다. 이때 폭발력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트럭 벽면쪽으로 드럼통을 모두 배열시켰다. 폭발의 화염을 증대시키기 위해 아세틸렌 가스통을 트럭에 싣기도 하였으며 훔친 160kg의 광산용 폭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제조한 폭발물의 중량은 드럼통을 포함해 3200kg이 넘었다. 이때 트럭 한쪽으로 하중이 집중되어 이동 중 전복되거나 최소한 기울어진 게 티가 나서 걸릴 수도 있었다.

점화장치는 운전석까지 구멍을 뚫어 폭죽에 쓰이는 도화선을 이중으로 비전기식 뇌관에 연결하였고, 광산용 폭약이 먼저 폭발하게 설계하였다.[4] 하나는 5분용, 하나는 3분용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때 조수석에 폭발물을 따로 빼놓았는데 점화장치가 문제가 생길경우 권총으로 쏴 자폭할 용도였다.

사건 당일인 1995년 4월 19일 맥베이는 폭약을 실은 트럭을 타고 연방정부청사로 향했는데 웨이코 포위전이 벌어졌던 날짜에 테러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오전 8시 57분, 운전석에 연결해둔 점화장치에 불을 붙였으며, 이후 두번째 점화장치를 작동시켰다. 오전 9시 1분에 연방정부청사 앞에 트럭을 주차시켰고, 멕베이는 걸어서 현장을 빠져나갔다.[5] 오전 9시 2분 도화선이 다 타들어가자 연결된 160kg의 광산용 폭약이 폭발하며, 연쇄적으로 대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만에 일어난 사건이라 세계는 또 다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2. 피해

폭발의 위력은 매우 강해서 폭발한 자리에는 폭 9m, 깊이 2m의 구덩이가 파였고 수 km 떨어진 곳의 지진계에서도 리히터 규모 3.0의 지진이 감지될 정도였다. 폭발로 일어난 충격파가 연방정부청사 유리창을 전부 날려 버렸고 건물의 3분의 1이 붕괴되었다. 반경 16블록 내에 있던 건물들이 폭발의 위력으로 파괴되거나 유리창이 깨졌다. 폭발 위력은 TNT 2,300kg을 터트린 것과 비슷했다고 한다. 차량 80대가 폭발로 불에 타면서 2차 폭발이 일어나 피해가 더 커졌다.

인명 피해도 상당해서 168명이 사망하고 68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중 99명이 연방 건물 직원이었고 연방청사 내에는 탁아소도 있었기 때문에 19명의 어린이 희생자도 나왔다. 맥베이는 체포된 뒤에 테러 당시 폭발 지점 인근에 보육시설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증언했으나, 한편으로 웨이코 포위전 당시에도 여자와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해서 크게 비판받았다. FBI는 그가 당시 범행장소 근처에 보육시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무시하고 테러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작은 미스터리가 있는데 공식적인 사망자는 168명이지만 조사를 진행하던 중 추가로 다리 한 구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다리는 기존 사망자들 중 누구의 DNA와도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 없는 169번째 사망자거나 이미 다리 없이 묻어 버린 8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의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폭발 후 소방관이 부상을 입은 베일리 올먼(Baylee Almon, 1994.04.18~1995.04.19)이라는 아기를 안아 든 사진이 유명한데 1996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6] 사진 속의 아기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이송된 직후 사망했다고 한다. 게다가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아기가 이제 갓 돌에서 하루 지난 어린아이였다는 점이다.

테러 전 니콜스와 맥베이는 이 폭발로 사망하는 소방관이나 여타 공무원을 스타워즈 스톰 트루퍼에 빗대어 악의 제국에 충성했으니 그들에게도 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 바 있다.

3. 처벌

대형 참사를 일으킨 맥베이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체포되었는데 주 경찰이 고속도로를 순찰하다가 번호판이 없는 차를 보고 차를 돌려 세워서 검문하는 도중에 주위에서 불법 무기를 발견하여 체포하였다.

맥베이는 군 출신인데도 전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당했는데 "연방정부는 악이지만 주정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극단적인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7] 덕분에 처음 체포한 경찰들은 맥베이가 폭탄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고 청사에 마약 단속국 사무실이 있었던 점을 근거로 마약 단속에 대한 보복이나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후속 테러 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곧 그가 테러의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후 테리 니콜스와 마이클 포티어 역시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맥베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유명한 문구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 한다(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가 인쇄되어 있었고 재판 과정에서도 맥베이는 본인의 행위가 미국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법정이 내린 결론은 맥베이와 그 일당은 '자신의 비뚤어진 신념에 빠져 무고한 사람 수백 명을 죽고 다치게 한 전형적인 테러리스트'라는 것이었다.

파일:8002917.jpg

맥베이의 사형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아버지 윌리엄 맥베이(맨 왼쪽)와 여동생 제니퍼 맥베이[8]가 참관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법원은 1997년에서 1998년에 걸쳐 주범이자 테러 실행자인 맥베이에게는 약물주사형 형식의 사형, 공범이자 테러 모의 및 준비에만 가담한 니콜스에게는 희생자 한 명당 1회로 총 168회 종신형을 중복 선고[9], 역시 비슷한 범죄를 지었으나 죄를 인정하고 법정에서 증언을 한 포티어는 법정에서 협력한 점을 고려하면서도 죄질이 나쁜 점을 들어 징역 12년과 당국에 미리 테러를 경고하지 않은 점을 들어 7만 5천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포티어의 부인 로리는 맥베이가 트럭을 빌리는 데 필요한 위조면허증을 만드는 데 협조하였는데 포티어가 자신의 형감면과 부인의 무죄감면을 대가로 증언에 협력하였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2001년 6월 11일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폐쇄회로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주범 맥베이의 사형이 집행되었다.[10] 니콜스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 사형은 비록 참관인이 희생자들의 유족들로 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1936년 이후 65년 만에 처음 집행된 공개처형이었고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38년 만에 처음 집행된 사형이었기 때문에 논란이 일었으며 일반적인 사형 집행 관행과 달리 이례적으로 1심 선고 4년 만에 아주 신속하게 이뤄진 점도 논란이 되었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맥베이가 사형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테러를 저지르고 순순히 체포되기까지 한 점 등을 들어 사형제도가 정말 사형이 마땅하다고 인정될 만큼 죄질이 나쁘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범죄 예방 효과가 없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로 맥베이가 사형을 당하던 날 연방 교도소 사형장 밖에서는 사형 집행을 환영하는 집회와 규탄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리기도 했다.

멕베이는 사형 확정 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없었고 사형 집행 직전에야 테러 당시 사망한 유아나 일반인 등 무고한 죽음에 대해서 유감의 표현을 남기기는 했으나 본질적인 책임은 연방정부에 있고 연방정부가 악이라는 주장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았으며 이를 보여주듯이 사형 집행 전 유서로 '나는 내 운명의 주인(I am the master of my fate)'라는 구절로 유명한 윌리엄 헨리의 시 '인빅투스(Invictus)'를 써서 남겼다.

4. 이후

이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연방청사에 대한 경비 강화와 건물 설계 변경 등을 지시했다. 이 대처로 비슷한 테러 시도가 수 차례 있었지만 전부 저지당했다.

테러를 당한 연방정부청사는 철거되었으며 해당 부지에는 추모공원이 생겼고 지금도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건은 한동안 득세하던 미국 극우 백인 우월주의, 반연방주의 진영이 크게 비판받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테러는 단순히 티모시 맥베이 한 개인의 범죄가 아닌 미국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성장한 극단주의 세력을 간과한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고 9.11 테러[11]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세력이 크게 위축되어 있었으며 이후에도 이 테러 이전의 위세를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간혹 잊을 만하면 일부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인종주의 증오 범죄 혹은 반연방 테러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테러리스트' 하면 ' 아랍인'만을 연상하던 미국인에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을 위해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훈장을 받은 백인'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남겼고 후에 집필된 맥베이의 평전 역시 <미국인 테러리스트[1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한편 R&B 그룹 컬러 미 배드는 이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Remember when>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맥베이는 사형 집행 전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유나바머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우편폭탄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를 만나 친분을 쌓은 바 있다고 한다. 카진스키는 맥베이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글로 쓰기도 했다. # 카진스키는 맥베이가 머리 좋고 사교적인 청년이었고 인종 차별적인 면모는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 인종과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맥베이가 저지른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대중에게 민병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평했지만 이는 신빙성이 낮다. 그 이유는 실제 티모시 맥베이는 미군 복무 시절부터 "화이트 파워" 라는 백인 우월주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사 입고 다닌 데다 유색인종 상관에 대한 명령 불복종과 인종 차별 표현 사용으로 징계를 먹기도 하는 등 군복무 시절부터 인종 차별적인 행태를 보였다. 자기랑 똑같이 무고한 사람이나 테러로 죽이는 테러리스트 범죄자 동족이라고 쉴드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Grand Theft Auto IV의 스토리 미션 중 하나인 Rigged to Blow(폭파 장치)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5. 테러범들의 근황

파일:terrynichols2004.jpg

테리 니콜스[13]

니콜스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14]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엄중한 감시 하에 20년 넘게 복역 중이며 포티어는 수사당국과 사법부에 적극 협력한 점이 인정되어[15] 원래 선고받은 12년형에서 감면된 7년 반만인 2006년 1월 20일에 출소하였는데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현재는 새로운 신분을 받고 사법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어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하다.[16]

한편 위키백과에 서술된 니콜스의 근황에 의하면 그는 지금도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꾸준히 재심 청구를 하고 있는데 2005년에 테러와 관련해 맥베이를 적극적으로 도운 제3의 인물이 있다는 주장을 하며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으나 증거가 없어 기각당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맥베이와 관련해 잊을 만하면 그럴듯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주장을 늘어놓으며[17] 재심을 청구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테리 니콜스의 친아들 조슈아 니콜스(Joshua Isaac Nichols)[18]가 강도, 절도 등의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조슈아는 이전에도 마약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조슈아의 여자친구 네이딘은 "오클라호마 테러가 일어났을 때 조슈아는 12살이었는데, 사건 직후 조슈아 역시 FBI 조사로 인해 상당 기간 학교에 결석해야 했으며,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아버지가 한 일 때문에 학교에서 'bomber'라는 별명으로 놀림당했으며 급우들에게 얻어 맞기도 했다. 도저히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이 조슈아의 인생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라며 안타까워했다. 링크

2024년 한 주간지에 테리 니콜스가 죽었다는 소문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링크 기사의 결론은 "죽었다는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으니 살아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구글에서도 "terry nichols still alive", "terry nichols 2023" 등의 검색어가 자동완성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대중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맥베이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으니 자연스레 생존한 가해자인 니콜스에게로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2020년경 테리 니콜스에게 편지를 보내 받은 답장들이 경매에 올라오기도 하였다. 링크 이를 통해 니콜스가 비록 미국에서 가장 삼엄하다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지만 서신 교환은 어느정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맥베이의 아버지 윌리엄 빌 맥베이는 맥베이가 처형된 이후로도 가끔 언론에 모습을 비췄는데 2015년, 2020년에 버펄로 뉴스라는 주간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19] 이 사건으로 딸을 잃은 버드 웰치라는 희생자 아버지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2020년 Grace from the rubble이란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링크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역대 미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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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2022년 6월 27일
53
2022년 5월 24일
22
2022년 1월 23일
39
2021년 6월 24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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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19년 9월 2일
34 컨셉션호 화재
2019년 8월 3일
23
2018년 10월 6일
20 쇼하리 리무진 충돌사고
2018년 1월 9일
23 몬테시토 산사태
2017년 11월 5일
27 텍사스 제일 침례교회 총기 난사 사건
2017년 10월 1일
61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2016년 12월 2일
36 고스트 쉽 창고 화재
2016년 6월 12일
50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2015년 10월 1일
33 엘 파로호 침몰사고
2014년 3월 22일
43 오소 산사태
2012년 12월 14일
28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2010년 4월 5일
29 어퍼 빅 브랜치 탄광 폭발사고
[ 20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09년 2월 12일
50 콜간 항공 3407편 추락 사고
2008년 9월 12일
25 채스워스 열차 충돌 사고
2007년 4월 16일
32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2006년 8월 27일
49 컴에어 5191편 추락 사고
2005년 12월 19일
20 초크 오션항공 101편 추락 사고
2005년 10월 2일
20 이선 앨런호 침몰 사고
2005년 9월 23일
24 텍사스 요양원 버스 화재
2005년 9월 1일
45 허리케인 카트리나 집단 안락사 사건
2005년 1월 26일
31 미 해병대 CH-53E기 추락 사고
2003년 2월 20일
100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
2003년 2월 17일
21 E2 나이트클럽 압사 사고
2003년 1월 8일
21 에어 미드웨스트 5481편 추락 사고
2001년 11월 12일
265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11일
2,996 9.11 테러
2000년 10월 31일
84 24 싱가포르항공 006편 이륙 사고
2000년 1월 31일
88 알래스카 항공 261편 추락 사고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100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1999년 5월 9일
23 뉴올리언스 버스 사고
1998년 9월 2일
229 110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1998년 8월 7일
224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1997년 8월 6일
228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1997년 3월 26일
39 헤븐즈 게이트 집단 자살 사건
1997년 1월 9일
29 컴에어 3272편 추락 사고
1996년 11월 21일
33 푸에르토리코 가스 폭발 사고
1996년 7월 17일
23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1996년 5월 11일
110 밸류젯 592편 추락 사고
1996년 4월 3일
35 미 공군 CT-43 추락 사고
1995년 12월 20일
159 아메리칸 항공 965편 추락 사고
1995년 9월 22일
24 알래스카 보잉 E-3 추락 사고
1995년 4월 19일
168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1994년 10월 31일
68 아메리칸 이글 4184편 추락 사고
1994년 9월 8일
132 US에어 427편 추락 사고
1994년 7월 2일
37 US에어 1016편 추락 사고
1994년 3월 23일
24 그린 램프 참사
1993년 9월 22일
47 빅 바유 캐넛 탈선 사고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86 웨이코 포위전
1992년 3월 22일
27 US에어 405편 추락 사고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25 오클랜드 대화재
1991년 10월 16일
24 루비스 카페테리아 총기난사 사건
1991년 9월 3일
25 햄릿 닭고기 가공 공장 화재
1991년 4월 5일
23 애틀랜틱 사우스웨스트 항공 2311편 추락 사고
1991년 3월 3일
25 유나이티드 항공 585편 추락 사고
1991년 2월 1일
35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지상충돌 사고
1990년 3월 25일
87 해피랜드 나이트클럽 화재
1990년 1월 25일
73 아비앙카 항공 052편 추락 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89년 10월 23일
23 필립스 정유 회사 폭발 사고
1989년 9월 21일
21 알톤 버스 추락사고
1989년 7월 19일
111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착륙 사고
1989년 4월 17일
47 아이오와급 전함 주포 폭발사고
1989년 2월 8일
144 인디팬던트 에어 1851편 추락 사고
1988년 12월 21일
270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1988년 5월 14일
27 캐롤튼 버스 충돌 사고
1987년 12월 7일
43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 1771편 추락 사고
1987년 11월 15일
28 컨티넨탈 항공 1713편 추락 사고
1987년 8월 16일
156 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추락 사고
1987년 5월 17일
37 USS 스타크 피격 사건
1987년 4월 23일
28 람비안스 플라자 붕괴사고
1986년 12월 31일
97 듀폰트 플라자 방화 사건
1986년 9월 5일
20 팬 아메리칸 항공 73편 납치 사건
1986년 8월 31일
82 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86년 6월 18일
25 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1986년 5월 30일
21 캘리포니아 워커 버스 사고
1985년 12월 12일
256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1985년 9월 6일
31 Midwest Express 105편 추락 사고
1985년 8월 2일
137 델타항공 191편 추락 사고
1985년 6월 25일
21 오클라호마 폭죽공장 폭발 사고
1985년 1월 21일
70 갤럭시 항공 203편 추락 사고
1985년 1월 1일
29 이스턴 항공 980편 추락 사고
1984년 12월 19일
27 윌버그 탄광 화재 사고
1984년 9월 20일
24 1984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84년 7월 18일
21 샌 이시드로 맥도날드 총기난사 사건
1983년 10월 23일
307 베이루트 미군 숙소 테러
1983년 9월 1일
269 62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6월 2일
23 에어캐나다 797편 화재 사고
1983년 4월 18일
64 1983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83년 2월 10일
31 SS Marine Electric 침몰 사고
1982년 9월 11일
46 만하임 미 육군 CH-47c 추락 사고
1982년 9월 4일
25 Dorothy Mae Apartment-Hotel 방화 사건
1982년 7월 9일
153 팬 아메리칸 항공 759편 추락 사고
1982년 1월 13일
78 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 사고
1981년 7월 17일
114 하얏트 리젠시 호텔 고가 통로 붕괴 사고
1981년 1월 9일
29 뉴저지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80년 12월 4일
26 스토퍼스 인 호텔 화재
1980년 11월 21일
85 MGM 그랜드 호텔 화재
1980년 9월 12일
34 Florida Commuter Airlines 65편 추락 사고
1980년 7월 27일
23 브래들리 인 요양원 화재
1980년 6월 5일
20 아칸소 재스퍼 버스 사고
1980년 5월 9일
35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붕괴사고
1980년 3월 14일
87 28 LOT 007편 추락사고
1980년 1월 28일
23 USCGC 블랙손 침몰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79년 11월 28일
257 22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1979년 5월 25일
273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1979년 4월 3일
25 스르라우한 웨이사이드 요양원 화재
1978년 11월 18일
918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1978년 9월 25일
144 샌디에이고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8년 4월 27일
51 윌로우 아일랜드 참사
1978년 1월 28일
20 코트스 하우스 호텔 화재 사고
1977년 12월 13일
29 Air Indiana 216편 추락 사고
1977년 11월 6일
39 켈리 반스 댐 붕괴사고
1977년 7월 19일
40 로럴 런 댐 붕괴 사고
1977년 6월 26일
42 모리 카운티 교도소 화재 사고
1977년 5월 28일
165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 화재
1977년 3월 27일
583 테네리페 참사
1976년 10월 24일
25 푸에르토리코인 사교 클럽 화재
1976년 10월 20일
78 MV 조지 프린스호 침몰 사고
1976년 6월 4일
46 에어 마닐라 항공 702편 추락 사고
1976년 5월 21일
29 유바 시티 버스 추락사고
1976년 4월 27일
37 아메리칸 항공 625편 추락 사고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26 스코샤 탄광 폭발 사고
1976년 1월 30일
23 윈크레스트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76년 1월 10일
20 패스파인더 호텔 폭발 사고
1975년 11월 10일
29 에드먼드 피츠제럴드호 침몰 사고
1975년 6월 24일
113 이스턴 항공 66편 추락 사고
1974년 12월 1일
92 트랜스 월드 항공 514편 추락 사고
1974년 9월 11일
72 이스턴 항공 212편 추락 사고
1974년 9월 8일
88 트랜스 월드 항공 841편 폭파 사건
1974년 6월 30일
24 걸리버즈 나이트클럽 방화 사건
1974년 4월 22일
107 팬 아메리칸 항공 812편 추락 사고
1974년 4월 4일
72 서던 에어웨이즈 242편 추락 사고
1974년 3월 3일
346 25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12월 17일
34 1973년 로마 공항 습격·납치 사건
1973년 8월 28일
24 휴에바 미 공군 C-141 추락 사고
1973년 7월 31일
88 델타 항공 723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3일
38 오자 에어 809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2일
78 팬 아메리칸 항공 816편 추락 사고
1973년 6월 24일
32 업스테어 라운지 방화 사건
1973년 3월 22일
32 MV Norse Variant 침몰 사고
1973년 2월 10일
40 스태튼 아일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72년 12월 29일
101 이스턴 항공 401편 추락사고
1972년 12월 8일
45 유나이티드 항공 553편 추락사고
1972년 10월 30일
45 1972년 시카고 열차 추돌사고
1972년 9월 24일
22 새크라멘토 캐나디어 세이버 추락 사고
1972년 6월 9일
238 Canyon Lake 댐 붕괴 사고
1972년 5월 2일
91 선샤인 광산 화재
1972년 2월 26일
125 버팔로 댐 붕괴 사고
1971년 9월 14일
111 알래스카 항공 1866편 추락 사고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
43 애티카 교도소 폭동
1971년 8월 18일
37 페그니츠 미 육군 CH-47 추락 사고
1971년 6월 7일
28 Allegheny Airlines 485편 추락 사고
1971년 6월 6일
50 휴즈 에어웨스트 706편 공중충돌 사고
1971년 2월 3일
29 티오콜 화학공장 폭발 사고
1970년 12월 30일
39 Hurricane Creek 탄광 폭발 사고
1970년 12월 20일
29 파이어니어 호텔 화재
1970년 11월 27일
79 미 공군 C-123K기 추락 사고
1970년 10월 2일
31 위치타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비행기 추락사고
1970년 11월 14일
75 서던 에어웨이즈 932편 추락 사고
1970년 5월 2일
23 ALM 항공 980편 사고
1970년 3월 20일
20 오자크 호텔 화재 사고
1970년 1월 10일
21 하머 하우스 요양원 화재
}}}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69년 9월 9일
83 앨러게네이 항공 853편 공중충돌 사고
1969년 6월 3일
74 USS Frank E. Evans 충돌 사고
1969년 2월 18일
35 허손 네바다 항공 708편 추락 사고
1969년 1월 18일
38 유나이티드 항공 266편 추락 사고
1969년 1월 14일
28 USS 엔터프라이즈 화재 사고
1968년 12월 27일
28 노스 센트럴 항공 458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24일
20 앨러게네이 항공 736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12일
51 팬 아메리칸 항공 217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2일
39 Wien Consolidated 항공 55편 추락 사고
1968년 11월 20일
78 파밍턴 광산 참사
1968년 10월 25일
32 노스이스트 항공 946편 추락 사고
1968년 8월 14일
21 로스엔젤레스 항공 417편 추락 사고
1968년 5월 27일
99 USS 스콜피언 침몰 사고
1968년 5월 22일
23 로스엔젤레스 항공 841편 추락 사고
1968년 5월 3일
85 브래니프 항공 352편 추락 사고
1968년 4월 6일
41 리치몬드 가스 폭발사고
1967년 12월 15일
46 실버 브리지 붕괴사고
1967년 11월 20일
70 트랜스 월드 항공 128편 추락 사고
1967년 7월 29일
134 USS 포레스탈 화재 사건
1967년 7월 19일
82 피드몬트 항공 22편 공중충돌 사고
1967년 6월 23일
34 Mohawk 항공 40편 추락 사고
1967년 6월 8일
34 USS Liberty 피격 사건
1967년 3월 9일
26 트랜스 월드 항공 553편 공중충돌 사고
1967년 3월 5일
38 레이크 센트럴 항공 527편 추락 사고
1967년 2월 7일
25 데일즈 펜트하우스 레스토랑 화재 사고
1967년 1월 16일
37 플로리다 교도소 화재
1966년 10월 26일
44 USS 오리스카니 화재 사고
1966년 8월 6일
42 브래니프 항공 250편 추락 사고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MV 알바 케이프호 충돌 및 화재 사고
1966년 4월 22일
83 American Flyers 항공 280/D 추락 사고
1965년 11월 11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227편 추락 사고
1965년 11월 8일
58 아메리칸 항공 383편 추락 사고
1965년 8월 24일
59 미 해병대 KC-130F 추락 사고
1965년 8월 16일
30 유나이티드 항공 389편 추락 사고
1965년 8월 9일
53 시어시 미사일 기지 화재 사고
1965년 2월 8일
84 이스턴 항공 663편 추락 사고
1965년 1월 16일
30 위치타 미 공군 KC-135기 추락 사고
1964년 12월 18일
20 맥그로우 요양원 화재
1964년 11월 23일
5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이륙 사고
1964년 11월 15일
29 본자나 항공 114편 추락 사고
1964년 7월 9일
39 유나이티드 항공 823편 추락 사고
1964년 5월 11일
79 마닐라 미 공군 C-135B기 추락 사고
1964년 5월 7일
44 퍼시픽 항공 773편 추락 사고
1964년 3월 1일
85 파라다이스 항공 901A편 추락 사고
1964년 2월 25일
58 이스턴 항공 304편 추락 사고
1963년 12월 29일
22 루즈벨트 호텔 화재 사고
1963년 12월 8일
81 팬 아메리칸 항공 214편 추락 사고
1963년 11월 23일
63 골든 에이지 양로원 화재
#!wiki style= "margin:0px -10px;"
1963년 11월 19일
26 아틀란틱 시티 요양원 화재
1963년 11월 18일
25 서프사이드 호텔 화재 사고
1963년 10월 31일
81 인디애나 주립 박람회 회관 가스 폭발 사고
1963년 9월 17일
32 추알라 버스 충돌사고
1963년 6월 3일
101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293편 추락 사고
1963년 5월 18일
27 사우스 캐롤라이나 버스 추락 사고
1963년 4월 10일
129 USS 스레셔 침몰 사고
1963년 2월 12일
43 노스웨스트 항공 705편 추락 사고
1962년 11월 30일
25 이스턴 항공 512편 추락 사고
1962년 10월 3일
23 뉴욕 텔레폰 컴퍼니 빌딩 폭발 사고
1962년 7월 22일
27 Canadian Pacific 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62년 6월 3일
130 121 에어 프랑스 007편 추락사고
1962년 5월 22일
45 컨티넨탈 항공 11편 폭파 사건
1962년 3월 16일
107 플라잉 타이거 라인 739편 실종 사건
1962년 3월 1일
95 아메리칸 항공 1편 추락 사고
1961년 12월 14일
20 콜로라도 에반스 스쿨버스 충돌 사고
1961년 11월 8일
77 임페리얼 항공 201/8편 추락 사고
1961년 9월 17일
37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06편 추락 사고
1961년 9월 1일
78 트랜스 월드 항공 529편 추락 사고
1961년 6월 15일
73 34 사베나 548편 사고
1961년 1월 15일
28 텍사스 레이더 기지 붕괴 사고
1961년 1월 6일
20 토마스 호텔 화재
1960년 12월 17일
52 뮌헨 미 공군 C-131 추락 사고
1960년 12월 16일
134 뉴욕 공중충돌 사고
1960년 10월 29일
22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비행기 추락 사고
1960년 10월 4일
62 이스턴 항공 375편 추락 사고
1960년 9월 19일
80 World Airways 830편 충돌 사고
1960년 3월 17일
63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10편 추락 사고
1960년 2월 25일
61 리우데자네이루 미 해군수송기 공중충돌 사고
1960년 1월 18일
50 캐피털 항공 20편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Allegheny 항공 371편 추락 사고
1959년 11월 16일
42 내셔널 항공 967편 실종 사고
1959년 10월 30일
26 피드몬트 항공 349편 추락 사고
1959년 9월 29일
34 브래니프 항공 542편 공중분해 사고
1959년 6월 28일
23 조지아 유조열차 탈선 사고
1959년 5월 12일
31 캐피털 항공 75편 추락 사고
1959년 3월 5일
21 아칸소 흑인학교 화재 사고
1959년 2월 3일
65 아메리칸 항공 320편 추락 사고
1958년 12월 1일
97 천사들의 모후 학교 화재
1958년 11월 18일
33 SS Carl D. Bradley 침몰 사고
1958년 9월 15일
48 뉴어크 만 열차 탈선 사고
1958년 8월 15일
25 노스이스트 항공 258편 추락 사고
1958년 4월 21일
49 유나이티드 항공 736편 공중충돌 사고
1958년 4월 6일
47 캐피털 항공 67편 추락 사고
1958년 3월 19일
24 뉴욕 속옷공장 화재 사고
1958년 3월 7일
26 오키나와 미 해병대 C-119C 추락 사고
1958년 2월 28일
27 켄터키 버스 추락 사고
1957년 11월 8일
44 팬 아메리칸 항공 7편 추락 사고
1957년 2월 17일
72 워렌턴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57년 3월 22일
67 미 공군 C-97기 실종 사건
1957년 2월 1일
20 노스이스트 항공 823편 추락 사고
1956년 10월 10일
59 미 해군 R6D-1기 실종 사고
1956년 9월 5일
20 로빈슨 열차 충돌 사고
1956년 6월 30일
127 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1956년 4월 1일
22 트랜스 월드 항공 400편 추락 사고
1956년 1월 22일
30 로스엔젤레스 열차 탈선 사고
1955년 11월 1일
44 유나이티드 항공 629편 폭파 사건
1955년 10월 6일
66 유나이티드 항공 409편 추락 사고
1955년 8월 11일
66 알텐슈타이그 미 공군기 공중충돌 사고
1955년 8월 4일
30 아메리칸 항공 476편 추락 사고
1955년 2월 12일
29 바턴 호텔 화재 사고
1955년 3월 22일
66 하와이 R6D-1기 추락 사고
1954년 5월 26일
103 USS Bennington 폭발 사고
1954년 2월 1일
35 홋카이도 미 해병대 C-46D 추락 사고
1953년 9월 16일
28 아메리칸 항공 723편 추락 사고
1953년 7월 17일
43 USMC R4Q NROTC 추락 사고
1953년 6월 18일
129 타치카와 미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1953년 4월 17일
35 시카고 하버 공업 빌딩 화재
1953년 3월 27일
21 오하이오 열차 추돌 사고
1953년 3월 27일
33 라르고 요양원 화재
1953년 2월 14일
46 내셔널 항공 470편 추락 사고
1952년 12월 20일
87 워싱턴 C-124기 추락 사고
1952년 11월 22일
52 알래스카 C-124기 추락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2년 8월 4일
29 웨이코 버스 정면 충돌사고
1952년 4월 29일
50 팬 아메리칸 항공 202편 추락 사고
1952년 4월 26일
176 USS Hobson 침몰 사고
1952년 4월 11일
52 팬 아메리칸 항공 526A편 추락 사고
1952년 2월 11일
33 내셔널 항공 101편 추락 사고
1952년 1월 22일
23 아메리칸 항공 6780편 추락 사고
1951년 12월 29일
26 컨티넨탈 차터스 항공 44-2편 추락 사고
1951년 12월 21일
119 오리엔트 탄광 폭발 사고
1951년 12월 16일
58 마이애미 항공 C-46기 추락 사고
1951년 9월 1일
45 펠리컨호 침몰 사고
1951년 8월 24일
50 유나이티드 항공 615편 추락 사고
1951년 6월 30일
50 유나이티드 항공 610편 추락 사고
1951년 4월 25일
43 Cubana de Aviacion 항공 493편 공중충돌 사고
1951년 3월 23일
53 미 공군수송기 실종 사건
1951년 2월 6일
85 우드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1950년 11월 22일
78 큐 가든스역 열차 충돌사고
1950년 9월 26일
23 아시야 미 해병대 C-54D 추락 사고
1950년 8월 31일
55 트랜스 월드 항공 903편 추락 사고
1950년 8월 25일
23 USS Benevlonce 침몰 사고
1950년 7월 26일
25 오시마 인근 미 공군 C-47D 추락 사고
1950년 6월 30일
23 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1950년 6월 23일
58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2501편 실종 사고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시카고 노면전차 충돌사고
1950년 4월 21일
35 카타가와현 미군 C-54기 추락 사고
1950년 2월 17일
32 뉴욕 열차 충돌 사고
1950년 1월 26일
32 미 공군 C-54D기 실종 사건
1950년 1월 7일
41 대번포트 요양원 화재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아메리칸 항공 157편 추락 사고
1949년 11월 1일
55 알렉산드리아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49년 7월 12일
35 스탠다드 에어 항공 897R편 추락 사고
1949년 6월 7일
53 스트라토 프레이트 커티스 C-46A 추락 사고
1949년 4월 4일
74 성 안토니오 병원 화재
1948년 12월 28일
32 에어본 운송 DC-3 실종 사고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도노라 스모그 사건
1948년 8월 29일
37 노스웨스트 항공 421편 추락 사고
1948년 6월 17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624편 추락 사고
1948년 3월 12일
30 노스웨스트 항공 4422편 추락 사고
1948년 1월 28일
32 로스 가토스 DC-3 추락 사고
1947년 11월 28일
20 알프스 미 공군 C-47B 추락 사고
1947년 10월 23일
52 유나이티드 항공 608편 추락 사고
1947년 7월 24일
27 올드 밴 8번 탄광 폭발 사고
1947년 6월 13일
50 펜실베니아 센트럴 항공 410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30일
53 이스턴 항공 605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29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521편 추락 사고
1947년 4월 16일
581 텍사스 시티 폭발 사고
1947년 3월 25일
111 센트레일리아 탄광 참사
1946년 12월 7일
119 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
1946년 7월 19일
25 마운트 톰 B-17 추락 사고
1946년 6월 5일
61 라 살레 호텔 화재
1946년 4월 25일
45 네퍼빌 철도 참사
1945년 12월 24일
21 나일가 요양병원 화재
1945년 11월 1일
26 가게나우 미 육군 C-47 추락 사고
1945년 8월 9일
34 노스 다코다 미시간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9일
372 USS 마운트 후드 폭발 사고
1944년 12월 31일
50 배글리 열차 추돌 사고
1944년 10월 20일
131 클리블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44년 8월 23일
61 프레클톤 항공 참사
1944년 8월 4일
47 스톡턴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7월 17일
320 시카고 항구 참사
1944년 7월 6일
167 하트퍼드 서커스 화재
1944년 5월 21일
163 웨스트 로치 참사
1944년 2월 10일
24 아메리칸 항공 2편 추락 사고
1944년 1월 6일
115 USS 세인트 어거스틴 침몰 사고
1944년 1월 3일
138 USS 터너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8일
34 USS 로그데이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6일
74 레너트 열차 충돌 사고
1943년 9월 7일
55 걸프 호텔 화재
1943년 9월 6일
79 프랭크 포드 정션 열차 탈선 사고
1943년 8월 30일
29 라카와나 열차 추돌 사고
1943년 7월 28일
20 아메리칸 항공 63편 사고
1943년 6월 12일
42 USS R-12 침몰 사고
1943년 2월 27일
75 스미스 탄광 폭발 사고
1943년 1월 31일
32 레이크 포레스트 요양원 화재
1942년 11월 28일
492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1942년 6월 5일
46 졸리엣 탄약 창고 폭발 사고
#!wikibstyle="margin: 0px -10px;"
1942년 2월 18일
203 USS 폴룩스, USS 스럭스톤 침몰 사고
1942년 1월 24일
48 USS S-26 침몰 사고
1941년 6월 19일
33 USS O-9 침몰 사고
1940년 9월 12일
52 허큘리스 화약 공장 폭발 사고
1940년 8월 31일
25 로베츠빌 DC-3 추락 사고
1940년 7월 31일
43 두들버그 참사
1940년 7월 15일
63 손만 탄광 폭발 사고
1940년 4월 23일
209 리듬 클럽 화재
1940년 4월 19일
31 리틀 폴스 열차 탈선 사고

[ 193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39년 10월 12일
24 샌프란시스코 열차 탈선 사고
1939년 5월 12일
26 USS 세일피쉬 침몰 사고
1938년 6월 19일
23 조던 고등학교 버스 건널목 사고
1938년 6월 19일
47 커스터 강 열차 탈선 사고
1938년 6월 19일
45 레드 자켓 광산 폭발 사고
1938년 5월 16일
34 터미널 호텔 화재
1937년 5월 6일
36 힌덴부르크 참사
1937년 3월 18일
295+ 뉴 런던 학교 폭발 사고
1936년 1월 12일
34 SS 아이오와호 침몰 사고
1934년 12월 11일
34 켄 호텔 화재
1934년 9월 8일
137 모로 캐슬호 화재
1934년 7월 22일
21 뉴욕 오싱 버스 사고
1934년 3월 24일
22 린치버그 빌딩 화재
1933년 4월 3일
73 USS 아크론 추락사고
1933년 10월 3일 ~ 10월 4일
29 그리피스 공원 화재
1932년 9월 9일
72 옵저베이션호 폭발사고
1932년 12월 24일
54 모웨아쿠아 탄광 폭발사고
1931년 7월 25일
31 리틀 시스터즈 보육원 화재
1930년 11월 5일
82 밀필드 탄광 참사
1930년 4월 21일
322 오하이오 교도소 화재
[ 192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29년 10월 22일
52 SS 밀워키 침몰 사고
1929년 9월 9일
25 SS 안다스테 침몰 사고
1929년 8월 29일
77 SS 산 후안 침몰 사고
1929년 4월 21일
123 클리블랜드 클리닉 화재
1928년 11월 10일
111 SS 베스트리스 침몰 사고
1928년 11월 8일
20 프레블 박스 토 회사 폭발사고
1929년 8월 20일
22 스터디 클럽 화재
1928년 5월 19일
195 매터 광산 참사
1928년 4월 13일
38 웨스트 플레인스 댄스홀 폭발 사고
1928년 3월 12일
431+ 세인트 프란시스 댐 붕괴 사고
1927년 12월 17일
40 USS S-4 침몰 사고
1927년 11월 14일
28 피츠버그 가스 폭발사고
1927년 5월 18일
45 배스 학교 폭파 사건
1927년 11월 14일
26 SS 파푸스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
33 USS S-51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
44 픽 윅 클럽 붕괴 사고
1925년 6월 16일
47 록포트 열차 탈선사고
1925년 5월 27일
53 글렌 광산 참사
1925년 5월 17일
77 클리블랜드 학교 화재
1924년 12월 24일
36 밥스 학교 화재
1924년 9월 21일
26 SS 클리프톤 침몰 사고
1924년 6월 12일
48 USS 미시시피 주포 폭발 사고
1924년 5월 31일
24 호프 학교 화재
1924년 4월 28일
119 벤우드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
172 캐슬 게이트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
20 닉슨 니트로 공장 폭발사고
1924년 2월 5일
41 밀포드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9월 27일
30 겐록 열차 탈선 사고
1923년 9월 8일
23 혼다 포인트 참사
1923년 2월 8일
12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1월 3일
35 앨렌 대교 붕괴 사고
1922년 8월 27일
47 아르고넛 광산 폭발사고
1922년 2월 21일
34 로마 비행선 추락사고
1922년 2월 21일
29 슈피리어 시티 침몰 사고
1922년 1월 28일
98 니커보커 극장 붕괴사고
1920년 9월 16일
40 월스트리트 폭탄 테러
[ 19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19년 12월 20일
23 오나와 열차 탈선 사고
1919년 12월 18일
35 J.A 챈슬러 침몰 사고
1919년 6월 5일
92 발티모어 탄광 폭발 사고
1919년 1월 15일
21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1919년 11월 11일
101 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
1918년 10월 12일
453 클로켓 화재
1918년 10월 4일
100 T.A 길레스피 회사 공장 폭발사고
1918년 7월 9일
101 1918년 내슈빌 열차 충돌사고
1918년 7월 5일
87 콜럼비아호 침몰 사고
1918년 6월 22일
86 해먼드 서커스 열차 충돌사고
1918년 6월 2일
52 스플릿 락 폭발사고
1918년 2월 26일
30 USS 체로키 침몰 사고
1917년 12월 20일
49 셰퍼드빌 열차 탈선사고
1917년 6월 8일
168 스페큘레이터 광산 참사
1917년 4월 27일
121 해스팅 광산 폭발 사고
1917년 4월 10일
139 에디스톤 광산 폭발 사고
1916년 8월 3일
24 배런 댐 붕괴 사고
1916년 11월 7일
46 서머 스트리트 다리 참사
1916년 8월 29일
43 USS 테네시 침몰 사고
1916년 5월 8일
2p SS S.R. 커비 침몰사고
1915년 10월 28일
21 세인트 존스 학교 화재
1916년 10월 20일
25 제임스 B. 콜게이트 침몰 사고
1915년 9월 27일
50 아드모레 폭발 사고
1915년 7월 24일
848 이스트랜드호 참사
1915년 5월 7일
1198 128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5년 3월 25일
112 레이랜드 광산 참사
1915년 3월 2일
21 USS F-4 침몰 사고
1914년 9월 18일
60 프랜시스 H. 레짓 침몰사고
1914년 4월 28일
180 에클스 광산 참사
1914년 1월 30일
41 SS 먼로 침몰 사고
1913년 12월 24일
73 이탈리안홀 참사
1913년 12월 4일
28 아르카디아 호텔 화재
1913년 11월 10일
25 SS 헨리 B. 스미스 침몰 사고
1913년 10월 22일
26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13년 7월 22일
31 브링햄턴 공장 화재
1913년 5월 24일
39 롱비치 피어 오디토리움 붕괴 사고
1913년 3월 7일
33 알룸 샤인 폭발 사고
1913년 2월 28일
25 듀이 호텔 화재
1913년 1월 10일
26 제임스 T. 스테이플 침몰 사고
1912년 7월 4일
39 코닝 열차 탈선 사고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
1514 238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1년 12월 9일
84 크로스 마운틴 광산 참사
1911년 9월 30일
78 오스틴 댐 붕괴 사고
1911년 8월 26일
21 캐논스버그 오페라 하우스 압사 사고
1911년 4월 9일
128 배너 광산 참사
1911년 3월 25일
146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고
1910년 12월 22일
24 시카고 가축 판매소 화재
1910년 10월 7일
42 보데트 화재
1910년 10월 1일
21 로스 앤젤레스 타임즈 폭탄 테러
1910년 9월 8일
29 페레 마켓 18 침몰 사고
1910년 10월 5일
84 팔로스 광산 폭발사고
1910년 3월 21일
52 그린 마운틴 열차 탈선사고
1910년 3월 1일
96 웰링턴 눈사태
1910년 2월 6일
31 USS 니나 침몰 사고

[ 1900년대 이전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09년 11월 13일
259 체리 광산 참사
1908년 3월 4일
173 콜린우드 학교 화재
1908년 1월 13일
170 로드 오페라하우스 화재
1907년 12월 19일
239 다르 광산 참사
1907년 12월 9일
362 모농가 광산 참사
1905년 12월 30일
602 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
1905년 3월 20일
58 글로버 신발 공장 참사
1904년 8월 7일
97 에덴 열차 탈선 사고
1904년 6월 15일
965+ 제너럴 슬로컴호 화재
1903년 8월 6일
26 듀랑 서커스 열차 추돌사고
1902년 9월 19일
115 샤일로 침례교회 압사 사고
1900년 11월 29일
21 1900 빅 게임 참사
1900년 7월 4일
44 타코마 노면전차 참사
1900년 6월 30일
326+ 호보컨 부두 화재
1900년 5월 1일
200+ 스코필드 광산 참사
1894년 9월 1일
418 힝클리 대화재
1889년 5월 31일
2208 존스타운 홍수
1876년 12월 29일
92+ 애슈터뷸라 철도 참사
1876년 12월 5일
278 브루클린 극장 화재
1871년 7월 30일
125 1871년 스태튼섬 참사
1871년 10월 8일 ~ 10일
300+ 시카고 대화재
1871년 10월 8일
1700+ 페시티고 대화재
1865년 4월 27일
1700+ 술타나호 침몰 사고
1860년 9월 7일
300+ 레이디 엘진 호 침몰 사고
1860년 1월 10일
88 펨버튼 공장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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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탄 테러 후 파괴된 연방 정부 건물. [2] 지금도 미국인 극우 테러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3] NHRA 경기 면허도 없었으며, 해당 경기에는 나이트로메테인으로 구동되는 오토바이도 없었고, 보통 1~5갤런(3.78~ 약 5리터) 정도만 구입하는데 55갤런(약 210리터) 드럼통 3개 분량이나 원하는 점에서 의심을 샀다. [4] 질산암모늄 폭발물은 일반 뇌관으로 쉽게 폭발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5] 걸어서 이동 중에 폭발이 일어났으며, 혼란한 틈을 타 거리가 떨어진 곳에 미리 준비한 차량을 타고 도주하였다. [6] 해당 사진의 수상자인 기자 찰스 포터는 "명예롭지만, 파티와 샴페인으로 축하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I'm honored to win, but this is not necessarily the time for parties and celebrations and champagne bottles)라며 소감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7] 사실 미국인들 중에 미국 연방정부가 너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도 심한 사람들은 연방정부를 절대악 그 자체로 본다. 맥베이는 다소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미국인들 중에 자기네 주를 남의 동네인 다른 주들도 포함된 연방보다 우선해서 여기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다. 이런 경향이 강한 지역이 바로 텍사스로, 텍사스 공화국이라는 엄연한 독립 국가로 미국과 별도로 유지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이 다른 주에 비해서도 훨씬 강하다. [8] 맥베이의 사형이 집행된 2001년에 미국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링크 2023년 기준으류 여전히 교사로 근무 중인 것으로 목격되고 있다. 링크 [9] 테리 니콜스의 어머니 조이스 윌트 #는 테리 니콜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재판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링크 니콜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쉽게 조종당하는(manipulated) 성향이 있어 맥베이에게 쉽게 조종당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맥베이가 니콜스에게 테러를 함께하지 않으면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해자 어머니의 주장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성수의 어머니 역시 매우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니콜스가 아스퍼거 증후군까지는 아니어도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일종의 'nerd' 성격이었다는 것은 어느정도 맞아 보이는데 니콜스의 고교 동창과 첫번째 부인인 라나 월시 역시 비슷한 증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조이스 윌트는 니콜스의 재판에 거의 빠짐 없이 참석하고 오클라호마 테러의 희생자 가족들 사이에서 가해자 부모로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재판을 경청하는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으며 FBI의 수사에서 절차적으로 위법한 부분을 발견해내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는 이 사건 전에는 FBI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10] 특이하게도 마지막 식사로 2파인트(906ml) 분량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만을 주문했다. 사형 전에 토미 페이지 Paintings on my mind , A shoulder to cry on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1] 공교롭게도 맥베이가 처형된 지 3달 만에 벌어졌다. [12] American Terrorist: Timothy McVeigh & The Oklahoma City Bombing [13] 2004년 사진으로 언론에 찍힌 가장 마지막 사진이다. [14] 피살자 한 명당 한 건씩 계산하여 총 161회에 걸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지만 사실상 한 번이나 100번이나 죽을 때까지 깨끗한 지옥에 가둬두는 건 동일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으며 감형의 여지도 없다. [15] 실제로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엄격한 대신 사법부에 협력하는 등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 제공이나 협상을 한 범인들에게 의외로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곤 한다. 찰스 맨슨이 벌인 연쇄살인행각에 가담한 린다 카사비안은 다른 가담자 3명과 맨슨이 사형을 선고받은 와중에도 아예 기소가 면제되었으며 제러드 크루즈 사건에 가담한 성인 6명도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대로 아동 집단 성폭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범죄에 대한 처벌에 걸맞지 않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미국은 사법거래가 합법이다. [16] 이 때문에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그의 근황은 출소 이후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타당한 이유가 없지는 않은데 만약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려질 경우 그의 배신으로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 데다 사형까지도 당할 처지인 니콜스가 모종의 수를 쓸 수도 있는 데다(미국 사법부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그를 외부와의 연결이 거의 불가능한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가둬놓은 거지만) 맥베이 일당의 사상에 동조하는 다른 반연방주의자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17] 주로 맥베이의 역할을 강조하거나(이미 죽은 상황이라 반박을 못 하니까) 제3의 공범이 있다고 말하는 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는 주장이다. 받아들여질 경우 형량이 다소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18] 테리 니콜스는 결혼을 두 번 했고 친자녀가 총 3명 있다. 첫번째 부인인 라나 월시는 테리가 부동산 중개업자로 근무했을 때 만났던 여인으로 조슈아는 이 둘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다. 그 후 이혼하여 1990년에 필리핀인 마리페 토레스 사진와 재혼하였고 여기서 두 명의 자식을 낳았다. 마리페와는 한국인 남자들이 동남아 여자와 결혼하는 것과 비슷하게 국제결혼 중개업소를 통해 결혼한 것이라고 한다. 마리페는 오클라호마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맥베이와 알고 지내던 관계였으며, "맥베이와 니콜스와의 관계가 너무 친밀해 자신이 질투심을 느꼈다(jealous). 맥베이가 나와 니콜스와의 관계에서 한걸음 떨어져 주길 바랐다" 며 법정에서 맥베이와 니콜스와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영어가 서툰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필리핀인 마리페는 오클라호마 테러와는 무관하였지만 어쨌든 테러 당시 니콜스의 공식 부인이었기 때문에 사건 이후 자신도 FBI 조사를 위해 호텔에서 수일간 감금당하며 강도높은 신문을 받았고 사람들의 협박편지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에도 그녀는 수없이 열린 니콜스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다녀야 했는데, 그녀의 증언은 대체로 거짓 없이 중립적이었고 때때로 니콜스에 유리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검찰에 유리한 것들이었다. 니콜스에 대한 원망은 표현하지 않았다. 니콜스의 사형 여부를 결정하는 공판에서 그녀는 추수감사절에 니콜스에게 받은 카드를 들고 나와 "그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라고 증언함으로서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녀는 사건으로부터 약 8년 뒤인 2003년 니콜스와 공식 이혼하였다. [19] 그는 골프, 볼링, 정원관리 등을 취미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교회와 재향 군인 행사, 지역 소방서, 골프 토너먼트, 빙고 모금 행사에서 자원 봉사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또 자신을 지지하고 도와준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힘든 지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다. "나는 '빌 맥베이입니다' 라고 말하며 재킷을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티모시 맥베이의 아버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네. 그렇습니다' 라고 기꺼이 말합니다. ··· 그것은 단지 일어난 일이고 나는 그것을 숨기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Timothy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그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 중 누구도 알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Tim의 바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