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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38:03

힝클리 대화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힝클리 대화재.jpg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The Great Hinckley Fire

1894년 9월 1일 미국 미네소타주 힝클리에서 일어난 산불.

2. 사고 내용

1894년 당시 인구가 1,400여명에 달했던 힝클리는 목재 생산으로 유명했던 마을이다. 나무를 처리할때는 잔가지는 다 쳐내고 몸통만 챙겼는데, 이 과정에서 잔가지는 치우지 않고 아무데나 놔두고 갔다. 1891년부터 1894년 까지, 미네소타 중심부에는 가뭄이 지속됐다. 특히 1894년에는 5월과 9월에, 강수량 5cm 정도의 비만 왔을 정도로 가뭄이 극심했다. 극심한 가뭄 속에 잔가지들은 점차 말라가며 불이 나기 좋은 조건이 됐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 기차가 지나가면서 튄 불똥으로 불길이 시작됐다. 정오가 되자 바람이 거세졌다. 불타는 재가 사방으로 휘날려 불이 더 커졌다. 오후 늦은 시간엔 연기가 너무 심해 등을 일찍 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이 너무 세서 아래의 따뜻한 공기가 위의 찬 공기와 온도차가 심했고, 온도차는 강한 바람으로 바뀌어 불을 더 퍼뜨렸다. 바람은 더 나아가 아예 토네이도가 만들어 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은 토네이도를 타고 60m 위 까지 치솟았다. 사방에 불타는 잔해가 떨어졌다. 불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말이나 기차를 타고 도망가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온도도 너무 높아 철도가 녹았다.

사람들은 불을 피해 인근 역의 열차에 무단횡차 하기도 했다. 인근 호수에 몸을 던져 불을 피한 사람도, 급히 땅굴을 파서 숨어 살아남은 사람, 아예 우물에 들어가 목숨을 구한 사람도 있었다.

화재로 최소 418명이 사망했다. 마지막 사망자는 1898년 5월에야 시신이 발견됐다. 부동산 피해도 어마어마했는데, 350,000 에이커가 피해를 입었다. 힝클리 외에도 미션 크릭(Mission Creek), 샌드스톤(Sandstone), 밀러(Miller), 패트리지(Partridge) 그리고 포케가마(Pokegama)마을이 피해입었다. 화재는 미국 역사상 3번째로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산불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당시 사람들이 너무 급히 대피하느라 뿔뿔이 흩어진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실종자가 많아졌고, 이들이 다시 재회하기까지 또 긴 시간이 걸렸다.

화재 이후 힝클리 재건을 위해 여러곳에서 힘을 모았다. 음식과 물, 약품을 실은 기차가 힝클리에 왔고, 의사들도 파견됐다. 미네소타 주 정부에서도 재건계획을 발표하고 바로 진행했다. 마을이 완전히 다시 일어서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네소타주 힝클리에는 힝클리 대화재 박물관 #이 있다. 이곳에서 사고 전 후 상황과 마을이 재건되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다.

또한 힝클리에는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