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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0:39:12

존 스타인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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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존 스타인벡
John Steinbeck
파일:gettyimages-2674327-1.jpg
본명 존 언스트 스타인벡 주니어
John Ernst Steinbeck Jr.
출생 1902년 2월 27일
캘리포니아 주 살리나스
사망 1968년 12월 20일 (향년 66세)
뉴욕 주 뉴욕 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소설가, 기자
서명
파일:존 스타인벡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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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학력 살리나스 고등학교 ( 졸업)
스탠퍼드 대학교 ( 영문학 / 중퇴)
활동 기간 1929년 – 1968년
묘소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가든 오브 메모리스 기념공원
혈통 독일계 미국인
영국계 미국인
신체 183cm
종교 무종교 ( 불가지론)
부모 아버지 존 에른스트 스타인벡
어머니 올리버 해밀턴
배우자 캐럴 헤닝 (1930~1943; 이혼)
그윈돌린 콩거 (1943~1948; 이혼)
일레인 앤더슨 스타인벡 ( 1950년 결혼)
자녀 아들 토마스 스타인벡 (1943~2016)
아들 존 스타인벡 4세 (1946~1991)
데뷔작 황금의 컵 ( 1929년) }}}}}}}}}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작가 활동2.3. 말년
3. 평가4. 작품 목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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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소설가. 20세기 출생자 중에서는 최초로 미국 국적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별명은 '미국 문학계의 거인'.

2. 생애

2.1. 어린 시절

존 스타인벡은 1902년 2월 27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 라는 곳에서 주 정부 회계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스타인벡은 전형적인 엄친아였는데 운동도 잘했고 공부도 잘했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 시작한 스타인벡은 고등학교 때 문학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스타인벡은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학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만을 골라 6년간이나 수강을 계속했지만 결국 대학 졸업장은 받지 않았다. 

2.2. 작가 활동

스타인벡은 프리랜서 기자로 일을 하기 위해 1925년 뉴욕으로 갔다. 그리고 당시 한창 개발이 진행되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기사를 썼다. 이때 스타인벡은 첫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해 1929년에 첫 소설 ‘황금의 컵’(Cup of Gold)을 발표했다. 그러나 17세기의 한 해적에 관한 이 이야기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스타인벡은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전념한다. 1932년에 나온 단편집 ‘천국의 초원’(The Pastures of Heaven)은 당시 자신이 살던 캘리포니아 농촌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들이었다. 1933년에 나온 두 번째 소설 ‘미지의 신에게’ (To a God Unknown) 에서는 사람과 땅의 관계를 가장 강렬한 필치로 묘사했다. 1935년의 ‘토르티야 마을(Tortilla Flat)'은 비평가들의 평도 좋았고 인기도 높았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당시 스타인벡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만족한 만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노동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스타인벡은 그것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1936년 나온 ‘수상한 싸움’(In Dubious Battle)은 지역 포도 농장 일꾼들의 파업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듬해의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은 구성이 매우 잘 짜여져 있는 것으로 두 명의 떠돌이 농장 노동자들이 펼치는 특별한 우정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스타인벡의 대표작 중 하나로 미국의 문학 교육 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전국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10대 작품의 하나로 돼 있다. 영국에서도 이 소설은 많은 고등학교의 영어 교재로 이용되고 있다. 또 이 이야기는 1939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스타인벡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에 떠돌이 농장 근로자들의 문제를 파헤치는 글도 연재했다. 이런 글들은 그의 대표작인 ‘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쓰는 자료가 됐다. 1930년대 노동계층의 삶을 다룬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주 소작농가들이 자신의 토지를 은행에 빼앗기는 억울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들 농가는 광대한 평원을 건너 약속의 땅이라고 소문난 캘리포니아로 건너가지만 결국 떠돌이 품팔이 신세로 전락한다. 이 소설은 사회적 저항과 함께 생존에 대한 인간의 의지에 찬사를 보내는 작품이기도 했다. ‘분노의 포도’는 초판이 50만 부나 팔려나가며 전국적인 열풍이 분다. 그 같은 판매 부수는 ‘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유명한 소설 이후 처음이었다. 이 소설이 나오자 전 미국의 관심은 캘리포니아의 계절 노동자들의 생활에 집중되었다. 이 소설로 1940년에 스타인벡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또한 존이 퓰리처상을 받은 그 해에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도 성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스타인벡은 종군기자로 전선에 배치됐다. 전선에서의 경험으로 나중에 폭격기 팀의 이야기 ‘Bombs Away’를 비롯한 작품들이 나온다. 이 시기 재미있는 소설 중에는 에드워드 리켓츠와 공동으로 집필한 코르테즈의 바다(The Sea of Cortez)가 있다. 두 멕시코인 탐험가가 바다 생물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야기다. 1940년대에는 나치에 저항하는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이야기, ‘달이 지다’(The Moon Is Down), 귀중한 진주를 발견한 멕시코 어부가 그 진주로 인해 가정에 불운이 닥치는 이야기 ‘진주’(The Pearl) 등 여러 편을 발표했다.

2.3. 말년

​​1950년의 스타인벡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답답하며 알맹이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예술적 감각이 전만 못해졌다는 비평도 나왔다. 그러나 1961년의 야심작 ‘불만의 겨울’ (The Winter of Our Discontent)은 호평을 받았다. 높은 이상을 지닌 사람이 도덕적으로 와해돼 가는 이야기다.

1952년의 소설 ‘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은 이 무렵 나온 또 하나의 명작이다. 스타인벡이 살았던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 온 아일랜드계와 동부에서 온 두 가문의 몇 대에 걸친 갈등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55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주인공으로 나온 제임스 딘의 연기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62년 ‘찰리와의 여행’ (Travels with Charley)은 애견 푸들과 함께 미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3개월 동안 트럭을 타고 미국 40개 주를 돌아다니는 경험담으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는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스타인벡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된다.

스타인벡은 1968년 12월 20일 뉴욕에서 66세로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심장병이었다. 그의 시신은 캘리포니아의 살리나스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3. 평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헤밍웨이와 음향과 분노로 유명한 포크너에게 인지도가 조금은 밀리는 추세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해외 한정일 뿐, 미국에서는 이미 국민 작가 대접을 받고 있으며, 작가로서는 몇 없는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1]

그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노벨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미국 경제구조의 모순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가난한 삶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여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내부의 인물에 대한 부정적이고 누르는 듯한 강렬한 문체가 아닌, 따뜻하고 애틋한 문체가 특징으로, 주로 서민들의 입장에서 작품을 지어내어 미국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대중들이 읽기 쉬운 간결하고 해석하기 쉬운 문장을 쓰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해석하기 까다로운 문체를 즐겨썼던 윌리엄 포크너와 이쪽 계열 1인자인 제임스 조이스와는 달리 대중들이 한 번 쯤 읽어볼 가치가 높다.

4. 작품 목록

5. 여담


[1] 이는 헤밍웨이, 포크너 뿐만 아니라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펄 벅과 같은 또 다른 대문호들도 해보지 못한 업적이다. [2] 맨 온 파이어의 1987년작 영화에서 이 장편소설의 구절이 인용된 적이 있다. [3] 실제로 그의 책은 미국 중고등학생의 필독 소설 중 하나이며 학생들이 자주 읽는 고전 작가다. [4] 당시 흥행 실적을 보면 80만 달러로 만들어져 200만 달러 이상의 대박을 거두었다고 나와있다. [5] 「존 포드」, 태그 갤러거 저, 안건형·신범식 역, 이모션북스, 2018, p.243 [6] 스테들러에게 인수된 후 다시 파버카스텔이 인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