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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00:25:18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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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구성
윗첨자1: 舊 가로세로 세계사 1~4권.


1. 개괄2. 역사
2.1. 중세2.2. 근대~세계대전2.3. 통일~현대
3. 종교4. 사회


도이칠란트는 독일의 원어 발음이다. 오류가 아니니 참고할 것.[1]

21세기판 - (03)
전면개정판 - (12)
업그레이드판 - (18)

1. 개괄

2. 역사

2.1. 중세

이러한 가정은 실제에 어느정도 근거한 것으로 이 파트 앞에서 나왔던 오토 대제와 카노사의 굴욕 당시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의 아버지, 하인리히 3세의 경우 재위중에 몇번이고 교황을 갈아치웠다.

2.2. 근대~세계대전

2.3. 통일~현대

3. 종교

이하 종교 관련 내용들은 개정판에서 삭제되었다.

4.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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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원복 교수는 저서에서 독일이라는 표현 대신 도이칠란트, 도이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성향이 있다. [2] 맨유의 라이벌은 지역 단위로 맨시티( 맨체스터 더비)/역사, 전통 기준으로 리버풀( 노스웨스트 더비)을 꼽는 게 더 정확하며, 첼시는 1:1로 두드러지는 라이벌이 딱히 없다. [3] AC 밀란의 최대 라이벌은 같은 연고지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며(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AS 로마의 라이벌은 SS 라치오(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SSC 나폴리( 라이벌)가 맞다. [4] 현재도 나이 많은 분들이나 시골에서는 관료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5] 사실 이 장면부터가 오류가 있다. 동로마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는 배경설명에 이 장면이 나오는데, 엄연히 교황이 존재한다고 해놓고 황제가 교황을 겸한다는게 말이 안된다. 후에 서방과 동방 교회가 분리된 시점 이후라면 모를까, 이 시기는 엄연히 분리 전으로 오로지 하나의 교회만이 있는 시기였다. [6] 필리프 2세 이전에만 해도 프랑스조차 명목상 신성 로마 제국 아래 취급 받았다. [7] 카노사의 굴욕 시기의 황제, 하인리히 4세도 실은 상당한 권력을 누렸고(카노사의 굴욕도 황제권의 패배가 아닌 그냥 일시적으로 다급해져서 일어난 일에 가깝다. 진짜 황제권의 패배는 보름스 협약이다.) 그 아버지의 경우에는 자기 재위시절에 교황을 세번이나 갈아치우기도 했다. [8] 그나마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라는, 파격적인 인재기용만은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초대박을 터뜨렸다. [9] 1836년 완공. [10] 독일의 항복으로 바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교전이 중단되고 훗날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1919년에 완전히 마무리 된다. [11] 정작 뒤에 2차 세계대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폴란드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단치히를 가져갔고, 나치 독일이 전쟁의 빌미를 잡기 위해 폴란드에게 단치히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거절 당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제대로 나온다. 사실 단치히 말고도 구 서프로이센까지 반환을 요구했으니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지만... [12] 이후 이것은 히틀러 집권 후 루르, 라인란트 등을 돌려달라는 근거가 패전 후에는 독일인이 대거 추방당하는 이유가 된다. [13] 그나마 터키는 다행히도(?)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승리하여 잃었던 영토의 일부를 회복하기는 했다. [14] 이것은 후에 문제를 낳는데 민족자결주의에 따라서 오헝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해체했으면서 정작 독일은 현 폴란드 지역은 폴란드인이 사는 지역이라 그렇다고 쳐도 알자스, 로렌, 주데텐란트, 자를란트 등 명백히 독일계 인구가 사는 곳까지 떼가는 바람에 후일 나치 집권 후 히틀러에게 명분을 제공해버렸다. [15] 해당 통계는 프랑스어이므로 ALL이 독일(Allemagne),E-U가 미국(états-unis), R-U가 영국(Royaume-Uni), URSS가 소련(Union des républiques socialistes soviétiques)이다. 나머지 FRA,ITA,JAP는 각각 프랑스,이탈리아,일본. [16] 당장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독일어로 같고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적으니 통합 후 불편함도 엉뚱한 나라와 합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적다. [17] 아무리 반유대주의가 득세한 국가에서도 근대쯤 되면 유대인 말살보다는 차별이 주였다. 실제 카를 마르크스의 부친이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이유가 유대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히틀러 자신도 유대인을 이주시키고 그를 통해 격리하려고 했지, 말살 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18]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보면 남편이 유대인 학살에 참여하고 있는 나치 간부라는 사실을 아내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오고 독일인들도 학살현장에서 유대인들 시체를 태우는 것을 보고 공장에서 나는 연기인 줄 알 정도로 그는 독일인들에게도 감춰져 있었다. [19] 홀로코스트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독일이 두번째로 세계대전에서 패전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좌절하고 절망하고 나치와 히틀러를 혐오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몇몇 사람들이 전쟁에서 졌을 뿐이지 그래도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이 그렇게 힘을 떨치고 잘 살았던 옛날이 좋았다는 사람도 꽤 생겼을 수 있다. 당시 독일과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에서는 벌써 무솔리니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향수의 광풍이 불고 있으며 반대로 독일과 미친듯이 맞붙었던 소련의 경우 모범적, 도덕적인 국가도 아니었는데도 현재 러시아에서 그 시절이 좋았다며 소련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과 비슷했을 수도 있다. [20] 물론 이 역시 본질적으로는 히틀러에게서 비롯된 것이기는 했다. [21] 단 이탈리아 왕국이건 일본 제국이건 나치에 도움준건 하나도 없고 나치는 비록 일본을 두고 명예 아리아인으로 대우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인 외교관이 모욕을 당하기도 했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그랬을 뿐이고 민간 차원에서는 동양인은 열등하다라는 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2] 유대교 신앙 포기, 독일인과의 결혼 등 [23] 연합군 사망자 6100만 추축국 사망자 1200만 연합군에서 추축군의 배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건 독소전쟁 중일전쟁의 영향으로 보인다. [24] 정확하게는 약 48만명이다. [25] 계속전쟁은 핀란드가 공격을 하여 역공한 사례고(물론 그 기저에는 겨울전쟁에서 땅을 뜯어간 소련의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노르웨이에서의 전투 역시 나치 독일을 쥐어패다가 일어난 일이다. [26] 유럽 소속 국가라기보다는 유라시아 전체에 걸쳐있으므로 유럽 국가라고 보기 애매한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통일한국의 인구를 유럽에서 유일하게 추월할 수 있는 인구수이다. [27] 전근대엔 적국 민간인에 대한 약탈은 기본으로 깔고 갔으며 성이나 마을, 도시가 점령당하면 학살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28] 물론 민간인 살상을 전쟁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곳도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북한이 있다. [29] <가로세로 세계사> 1권 도입부에도 다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