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耆社契帖. 조선 숙종 46년인 1720년에 당대 유명 궁중화가들이 1719년 4월 17일 ~ 18일에 열렸던 기로회(耆老會)의 행사장면들과 그 당시 연회에 참여했던 대신들의 초상화를 모두 그려 모아놓은 궁중기록화첩.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홍완구(개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각각 국보 제325호, 제334호, 보물 제638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기사계첩은 1719년 4월 17일부터 18일까지 양일간 열린 기로회를 기록한 궁중기록화첩이다. 기로회는 나라를 위해 청춘과 정년을 다 바친 70세 이상 노인들과 퇴직 관료들이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고 기로에 대한 효와 감사의 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나라에서 연 것이다. 그리고 그 행사 장면 및 노인들의 초상화를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박동보(朴東普), 장득만(張得萬), 허숙(許俶) 등의 궁중화가들이 그려 기사계첩으로 남겼다.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사연도(景賢堂錫宴圖),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등 기로연의 행사 과정을 그린 여러 기록화들과 당시 참여한 인물들의 초상화가 그러져 있다. 이 때 기로연에 참석한 인물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인물 | 당시 관직 |
생몰년도 (당시 나이) |
비고 |
강현 (姜鋧) |
지중추부사 |
1650년~
1733년 (75세) |
영조, 정조 때에 문신이자 화가인 강세황의 부친. |
김우항 (金宇杭) |
판중추부사 |
1649년~
1723년 (71세) |
|
김창집 (金昌集) |
영의정 |
1648년~
1722년 (72세) |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내다가
기사환국 때 사사당한
김수항의 아들로 형제들과 함께 '육창(六昌)'으로 유명함. 본인 또한 경종 때 신임사화로 인해 사사되고 아들, 손자까지 화를 당함. |
신임 (申銋) |
우참판 |
1639년~
1725년 (81세) |
당시 기로연에 참여한 사람들 중 최고령 |
이선부 (李善溥) |
행사직 |
1646년~
1721년 (74세) |
|
이유 (李濡) |
영중추부사 |
1645년~
1721년 (75세) |
광평대군의 후손으로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냄.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산성 수축을 완료함. |
임방 (任埅) |
좌참찬 |
1640년~
1724년 (80세) |
|
정호 (鄭澔) |
한성부판윤 |
1648년~
1736년 (72세) |
정철의 후손이자
노론 강경파로서 영조 초에
영의정을 지냄. 인물 문서에 보면, 이름과 배나무와 관련된 일화가 유명함. |
최규서 (崔奎瑞) |
행판돈녕부사 |
1650년~
1735년 (70세) |
인물 문서에도 나오지만,
소론임에도
이인좌의 난을 영조에게 보고해 난을 진압하는데 원동력을 제공함. 기로연 당시 명단에는 있었지만, 서울에 없어서 모든 일정에 참석하지 않아 당시 초상화가 전하지 않음. |
황흠 (黃欽) |
지중추부사 |
1639년~
1730년 (81세) |
당시 기로연에 참여한 사람들 중 최고령(신임과 같은 나이)이었고, 가장 오래 살았음(90세) |
홍만조 (洪萬朝) |
우참찬 |
1645년~
1725년 (75세) |
본 문서 내 문화재로 지정된 기사계첩 중 국보 제334호가 이 집안의 소장품임. |
170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궁중기록화첩으로, 예술성과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고 작품들의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여 가치가 매우 큰 한국의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다.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경현당사연도(景賢堂錫宴圖)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임방(任埅)초상과 신임(申銋)초상 출처 : 네이버 캐스트
3. 외부 링크
- 네이버 캐스트 : 한국미술산책 궁중기록화 기사계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기사계첩(보물 제638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기사계첩(보물 제639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기사계첩(보물 제929호)
- 두산백과 : 기사계첩(보물 제638호)
- 두산백과 : 기사계첩(보물 제639호)
- 두산백과 : 기해기사계첩
4. 국보 제325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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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325호 | |
기사계첩 己亥《耆社契帖》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기록화 / 계회도 |
수량/면적 | 1첩 (50면) |
지정연도 | 2019년 3월 6일 |
제작시기 | 1719~1720년( 숙종 45~숙종 46) |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 |
‘기사계첩’은 1719년(
숙종 45)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전례를 따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契)를 조직해 만든 계첩(契帖)이다. 행사는 1719년에 실시되었으나 계첩은
초상화를 그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1720년(숙종 46)에 완성되었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 직책을 가진 노년의 문관(文官)들을 우대하던 기관이다. 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任埅, 1640~1724)이 쓴 계첩의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사연(賜宴) 때 숙종이 지은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金楺, 1653~1719)의 발문, 각 의식에 참여한 기로신들의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반신상 초상화, 기로신들이 쓴 축시(祝詩),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으로 구성되었다. 행사 장면은
경희궁 흥정당(興政堂)에서 기로소로 어첩을 봉안하러 가는 행렬을 그린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이튿날인 2월 12일 기로신들이
경희궁 숭정전에서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4월 18일 경현당에서 기로신들에게 내린 친림사연의 광경을 그린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경현당 석연에서 하사받은 은배(銀盃)를 받들고 기로소로 돌아가는 기로신들의 행렬을 묘사한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로신들이 기로소에서 연회를 행하는 모습을 그린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가 순서대로 그려졌다. 계첩에 수록된 그림과 기로신들의 초상화는 당대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았던 도화서 화원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등이 그린 것으로, 화려한 채색과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사실성이 뛰어난 얼굴 표현 등 조선 후기 궁중회화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8세기를 대표하는 궁중행사도 중 하나로, 후대 궁중회화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작 당시의 원형을 거의 상실하지 않았고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며 그림의 완성도나 기법이 매우 높아 국보로 승격하여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 문화재청 홈페이지 : 기사계첩 (耆社契帖)(과거 설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숙종 45년(1719) 4월 17일과 18일에 열린 70세 이상의 퇴직관리들의 모임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참석자들의 초상화와 모임 장면을 비롯해 축시와 회원 명단이 들어있는 화첩으로 모두 50면으로 이루졌다.
가로 36㎝, 세로 5㎝로 장태흥·허숙 등이 그림을 그리고, 이의방이 글씨를 썼다. 숙종 때에 12부를 만들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3부이다. 이 화첩에 그려진 반신상의 초상화는 정장관복의 차림으로 18세기 초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계첩은 보존상태가 좋고 원형이 훼손되지 않아 당시의 기사계첩 형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숙종 45년(1719) 4월 17일과 18일에 열린 70세 이상의 퇴직관리들의 모임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참석자들의 초상화와 모임 장면을 비롯해 축시와 회원 명단이 들어있는 화첩으로 모두 50면으로 이루졌다.
가로 36㎝, 세로 5㎝로 장태흥·허숙 등이 그림을 그리고, 이의방이 글씨를 썼다. 숙종 때에 12부를 만들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3부이다. 이 화첩에 그려진 반신상의 초상화는 정장관복의 차림으로 18세기 초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계첩은 보존상태가 좋고 원형이 훼손되지 않아 당시의 기사계첩 형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5. 국보 제334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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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334호 | |
기사계첩 및 함 耆社契帖및 函 |
|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풍속화 |
수량/면적 | 화첩 1첩, 내함 1점, 호갑 1점, 외궤 1점 |
지정연도 | 2020년 12월 22일 |
제작시기 | 1719~1720년( 숙종 45~숙종 46) |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_함 |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전례를 따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해 기로소에서 주관한 계첩(契帖)으로,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궁중기록화이다. 기로 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 직책을 가진 노년의 문관(文官)들을 우대하던 기관이다. 행사는 1719년에 실시되었으나 계첩은 초상화를 그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1720년(숙종 46)에 완 성되었다. ‘기사계첩’은 기로신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 되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사계첩’(국보 제325호)를 포함해 5건 정도가 알려져 있다.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任埅, 1640∼1724)이 쓴 계첩의 서문 과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사연(賜宴) 때 숙종이 지은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金楺, 1653∼1719)의 발문, 각 의식에 참여한 기로신들의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반신상 초상화, 기로신들이 쓴 축시(祝詩),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으로 구성되어 현재까지 알려 진 ‘기사계첩’과 구성이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기사계첩’에서는 볼 수 없는 제1-2면의 “만퇴당장 (晩退堂藏)”, 제53-54면의 “전가보장(傳家寶藏)” 글씨는 이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 신 중의 한 사람인 홍만조(洪萬朝, 1465∼1725)의 소장품이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내용은 풍산 홍씨 문중에 대대로 보존되어 온 전승 경위를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아울러 이 계첩을 보호하고 있는 내함(內函), 호갑(護匣), 외궤(外櫃)가 일괄로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실은 조선시대 궁중회화와 관련된 유물 중 매우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유물의 완전성을 돋 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이 내함, 호갑, 외궤는 형식과 제작기법 등으로 보아 계첩과 유사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왕실의 봉과(封裹) 방식을 알려주고 세부적인 공예 제작 기술에 대해서 도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므로 함께 지정할 필요가 있다. ‘기사계첩’은 숙종의 기로소 입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후에 고종(高宗)이 기로소에 입소할 때 모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아울러 제작시기 및 제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 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며, 기로신들의 친필(親筆) 시문과 더불어 그림은 높은 완성도와 화격(畵格)을 갖추고 있어 현존 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할 만 한 예술성도 갖추었다. 계첩과 동시기에 같이 만들어 진 함(내함, 호갑, 외궤)도 공예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므로 함께 국보로 함께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 문화재청 홈페이지 : 기사계첩 (耆社契帖)(과거설명)
홍완구(개인) 소장본
<기사계첩(耆社契帖)>은 숙종 45년(1719)에 있었던 소속이 같은 문인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풍류를 즐겼던 모임인 계회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글과 그림으로 만든 화첩으로, 크기는 가로 53㎝, 세로 37.5㎝이다.
70세 이상 대신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왕의 시문, 전체 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자 명단, 행사장면의 그림 등 5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사계첩은, 보물 638호와 거의 비슷하지만, 김창집을 비롯한 계회참석자 10인의 초상화에서 평소 집무복인 단령의 모양이나 색채가 다르며, 조선 후기 문신인 홍만조의 축시제목이 없는 점 등으로 두 기사계첩을 대조하여 연구해 볼 수 있다.
임금의 초상을 그렸던 박동보·장득만·허숙 등의 화원들이 초상화를 그린 이 기사계첩은 보물 제638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과 거의 같으나, 보물 제638호가 1974년 2면을 1면으로 붙인데 반해 이 화첩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작품으로 10여 명의 초상화와 자필로 쓴 축시, 화원 명단이 들어 있어 당시 화풍과 서체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기사계첩(耆社契帖)>은 숙종 45년(1719)에 있었던 소속이 같은 문인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풍류를 즐겼던 모임인 계회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글과 그림으로 만든 화첩으로, 크기는 가로 53㎝, 세로 37.5㎝이다.
70세 이상 대신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왕의 시문, 전체 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자 명단, 행사장면의 그림 등 5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사계첩은, 보물 638호와 거의 비슷하지만, 김창집을 비롯한 계회참석자 10인의 초상화에서 평소 집무복인 단령의 모양이나 색채가 다르며, 조선 후기 문신인 홍만조의 축시제목이 없는 점 등으로 두 기사계첩을 대조하여 연구해 볼 수 있다.
임금의 초상을 그렸던 박동보·장득만·허숙 등의 화원들이 초상화를 그린 이 기사계첩은 보물 제638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과 거의 같으나, 보물 제638호가 1974년 2면을 1면으로 붙인데 반해 이 화첩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작품으로 10여 명의 초상화와 자필로 쓴 축시, 화원 명단이 들어 있어 당시 화풍과 서체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6. 보물 제638호
기사계첩(耆社契帖) / Gisagyecheop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기사계첩(耆社契帖)>은 70세 이상의 노신들을 우대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기사의 모임 장면과, 그들의 초상 등으로 꾸민 화첩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가로 76㎝, 세로 59.5㎝ 크기 이다.
숙종 45년(1719)에 왕과 기로소 신하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임방의 서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의 시문, 전체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명단 및 행사장면의 그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화첩에는 이유·임방 등 참석자 10인의 반신상 초상과 스스로 쓴 축시 및 화원의 명단 등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12권인데, 한 권만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소유하였다.
김진여 등 여러 화원이 참여하여 숙종 46년(1720)에 완성한 이 화첩에서의 초상은 반신상이며 화법에 있어서 18세기 초의 전형적인 초상화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화법 중에서 시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사계첩(耆社契帖)>은 70세 이상의 노신들을 우대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기사의 모임 장면과, 그들의 초상 등으로 꾸민 화첩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가로 76㎝, 세로 59.5㎝ 크기 이다.
숙종 45년(1719)에 왕과 기로소 신하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임방의 서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왕의 시문, 전체내용을 요약한 김유의 발문과 참석명단 및 행사장면의 그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화첩에는 이유·임방 등 참석자 10인의 반신상 초상과 스스로 쓴 축시 및 화원의 명단 등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12권인데, 한 권만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참석한 사람들이 각자 소유하였다.
김진여 등 여러 화원이 참여하여 숙종 46년(1720)에 완성한 이 화첩에서의 초상은 반신상이며 화법에 있어서 18세기 초의 전형적인 초상화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화법 중에서 시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