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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15:15:37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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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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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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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숭례문
  1.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2.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3. 여주 고달사지 승탑
  4.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5.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6.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7.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8.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9.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10. 익산 미륵사지 석탑
  11.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12.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13. 영천 거조사 영산전
  14. 안동 봉정사 극락전
  15.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6.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17.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8. 영주 부석사 조사당
  19. 경주 불국사 다보탑
  20.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21.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22.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23. 경주 석굴암 석굴
  24.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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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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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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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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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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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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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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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1.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37
  2.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
  3.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4. 충주 고구려비
  5.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6.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7.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8. 보협인석탑
  9.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10.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11.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12. 금동탑
  13. 흥왕사명 청동 은입사 향완
  14.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 31
  15. 정선필 인왕제색도
  16. 정선필 금강전도
  17. 아미타삼존도
  18.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19.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
  2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21.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
  22. 경복궁 근정전
  23. 경복궁 경회루
  24. 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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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5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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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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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38호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통일신라시대 초기
파일:국보38호경주고선사지삼층석탑.jpg
<colbgcolor=#315288>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국보 제38호

1. 개요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본래 경주시 암곡동 고선사터에 있던, 전체 높이 9m의 거대한 화강암제 삼층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세기 말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서있던 암곡동 고선사터는 경주고도 종합개발계획으로 인해 근처에 덕동댐이 건설되어 인공 호수인 덕동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었으며, 본 석탑은 건설 전인 1975년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전됐다.
파일:국보38호경주고선사지삼층석탑수몰전.jpg
암곡동 고선사터가 수몰되기 전의 고선사지 삼층석탑
고선사터에는 본 석탑 이외에도 비신이 없어진 귀부[1]를 비롯해서 일부 유구가 남아 있었는데,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학술 조사로 이 일대의 유구를 발굴하였으며 여러 유물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 기존의 다른 유구들과 발견된 유물들 역시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같이 옮겨졌다.[2]

고선사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고선사는 신라의 원효대사가 주지스님으로 있었던 절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1914년에 있었던 일본학자들에 의해 실시된 고선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원효대사의 행적비인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파편에서 확인되었다.[3] 기록에 따르면 고선사는 고려시대까지도 규모도 크고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알 수 없는 시기에 폐사가 됐으며 폐사에 대한 기록도 현재 딱히 전해지는 것은 없다.[4]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댐건설로 인해 고선사터가 수몰되기 이전인 1962년에 이미 국보 제38호로 지정되었으며,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2. 내용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5]과 지붕돌[6]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기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탑의 높이는 9m지만 이전하면서 높이가 조금 더 높아져서 현재 높이는 10.2m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1층의 몸돌을 크고 높게 해놓은 것에 비하자면 다른 층이나 기단의 높이는 낮아서 약간 둔한 느낌이지만, 일단 자체 크기가 상당한 거탑인지라 장중한 인상을 주고,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형태인 위로 올라 갈수록 몸돌과 지붕돌의 크기가 차츰 줄어드는 양상에 충실하여 비례감과 안정감을 준다. 본 석탑의 각 층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형 장식을 양각으로 새겨놨으며, 각 층 지붕돌들의 하단에는 5단으로 이루어진 역계단형 받침 장식이 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기단과 몸돌, 지붕돌에 군데군데 부서진 부분이 있으나 대체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하지만 현전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본 석탑도 삼층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은 소실되어 없으며 머리장식 받침 정도가 남아 있다.
파일:국보38호경주고선사지삼층석탑기단부.jpg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하부. 문 모양 장식이 뚜렷하다.
고선사지 삼층 석탑 1층의 몸돌은 8개의 돌로 조립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통일신라 초기~중기의 석탑에선 몸돌의 네 모서리에 만드는 기둥형 장식을 제외하면 대개 별다른 장식을 해놓지 않는 편인데,[7] 특이하게도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가장 초기 석탑 중 하나임에도 1층 몸돌의 4면에서 문 모양의 장식이 발견된다.[8] 이 장식은 테두리를 2단으로 음각하여 문의 모양을 나타내어 감실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또한 문 모양 가운데에 원형으로 된 흔적 2개가 발견되는데 이는 문고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문 모양 장식의 내부 상하 모서리에 작은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문 위에 덧씌우는 장식을 붙이기 위해 뚫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9]

석탑 2층의 몸돌은 4개의 돌로 조립한 것으로 네 모서리의 기둥형 장식을 제외하면 특별한 장식은 없다. 1층, 2층, 3층의 지붕돌들도 모두 8개의 돌들로 짜맞춘 것으로 각 층마다 크기는 다르지만 형태는 모두 같으며 가운데에 연결선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3층의 몸돌은 1, 2층과는 제작 방식이 달라 특징적인데, 3층은 여러개의 돌을 짜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다만 네 모서리에 기둥형 장식을 만들어 놓은 것은 다른 층의 몸돌과 동일하다. 3층의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든 것은 다른 층들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여러 개의 돌을 굳이 짜맞출 필요가 없으며, 이와 함께 탑에 모실 사리장엄구를 넣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10]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석탑인지라 제작 방식에서 초기 석탑 양식을 보이는데, 이는 앞서 서술된 바와 같이 여러 돌을 짜맞춰서 몸돌과 지붕돌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와 비슷한 석탑으로는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이 있다. 감은사지의 석탑들은 현전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데, 본 석탑과 비슷한 제작 양상이 드러나며 크기도 13.4m로 대단히 거대하다. 본 석탑과 감은사지 석탑들을 조립식으로 만든 이유로는, 하나같이 워낙 큰 사이즈이기에 탑을 이루는 부재들을 하나의 거대한 돌로 만들기에는 당시로선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 여러 조각들을 짜맞추는 방식으로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고선사지 삼층석탑도 선례인 감은사지 석탑들의 영향을 받아 제작 방식을 따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감은사지 석탑들에서 시작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은 본 석탑과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등을 거치면서 크기는 다소 작아지고 제작 방식은 하나의 석재로 하나의 부재를 만드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고,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이 통일신라 중기에 세워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에 와서 완벽한 조형미를 보여주며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11]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의 건립 연대는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 석탑의 제작 양식이 감은사지 석탑들에 바로 이은 통일신라시대 초기 석탑 형태라는 점과 기존에 고선사터에서 발견된 서당화상비에 드러난 내용으로 추정해 볼 때 원효대사가 입적한 686년(신라 신문왕 6년) 경에 탑을 세웠을 것으로 추측한다.
파일:국보38호경주고선사지삼층석탑이전후.jpg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고선사터에서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탑과 함께 옮겨진, 비석이 없어진 귀부가 사진 하단에 보인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대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고 그 크기도 웅장하여 석탑 자체의 아름다움도 잘 드러나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보임과 동시에 신라 석탑 양식의 변화 과정에서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을 잇는 가장 초기 석탑 중 하나라는 점 등의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이 인정 받아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8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38호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이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져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가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1] =거북이 모양 비석 받침돌 [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3] 이때 발견된 서당화상비 파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1968년에는 서당화상비의 다른 파편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고선사터에서 약 10km가량 떨어져있는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동천사(東泉寺)터에서 상단부 파편이 발견됐다. 1968년에 발견된 서당화상비 상단부 파편은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두산백과 - 서당화상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당화상비 [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고선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고선사터 [5] 탑신(塔身)이라고도 한다. [6] 옥개석(屋蓋石)이라고도 한다. [7] 전국에 흔하게 퍼져있는 수많은 통일신라식 삼층석탑 중 석탑 몸돌에 특이한 장식이 부조로 새겨져 있으면 대부분은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석탑이고, 별다른 장식이 없으면 통일신라 중기인 7~8세기 석탑인 게 많다. 대신 전성기인 7~8세기 석탑이 단순하면서도 비례나 장중함은 후기 석탑보다 대체로 더 낫다고 평가받는다. [8] 이를 문비(門扉)라고도 한다. [9] 출처: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석탑) - 고선사지 3층석탑 [10] 출처: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고선사지 삼층석탑 [1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