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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1 17:42:42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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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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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1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선출 사유(causa) <colbgcolor=#FFEFA5,#1E1B00>
  • rei gerundae causa: 공무 수행을 위해
  • clavi figendi causa: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의 벽에서 행해지는 못질 의식을 위해
  • seditionis sedandae causa: 폭동 진압을 위해
  • comitiorum habendorum causa: 정무관 선거를 위한 민회 개최를 위해
  • ferarium constituendarum causa: 축제 개최를 위해
  • ludorum faciendorum causa: 루디 로마니(Ludi Romani) 개최를 위해
  • Latinarum feriarum causa: 페리아이 라티나이(Feriae Latinae) 개최를 위해
  • senatus legendi causa: 칸나이 전투 이후 원로원 의원 선출을 위해
  • legibus faciendis: 법률 제정
  •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공화정 재건을 위해
  • dictator perpetuo: 종신 독재관
기타
  • mortuus est: 집권 중 사망
  • sine magistro equitum: 기병장관을 임명하지 않음
  • non iniit: 취임하지 않음
  • occisus est: 집권 중 암살
}}}}}}
서력기원: 기원전 501년 기원전 496년 기원전 494년 기원전 463년
로마 건국 기원: 253년 255년 260년 291년
독재관: 티투스 라르키우스 플라부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부스 레길렌시스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볼루수스 막시무스 (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쿠스)
기병장관: 스푸리우스 카시우스 베켈리누스 티투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스트룩투스 (불명)
선출 사유(causa): rei gerundae causa clavi figendi causa
기원전 458년 기원전 439년 기원전 437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4년
296년 315년 317년 319년 320년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피데나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타르퀴티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포스투무스 아이부티우스 헬바 코르니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투베르투스
기원전 431년 기원전 426년 기원전 418 년 기원전 408년 기원전 396년
323년 328년 336년 346년 358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투베르투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피데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틸루스 코수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악실라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기원전 390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5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68년
364년 365년 369년 374년 386년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68년 기원전 367년 기원전 363년 기원전 362년 기원전 361년
386년 387년 391년 392년 393년
푸블리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 레길렌시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펜누스 카피톨리누스 크리스피누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칼부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킨킨나투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피나리우스 나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카풀라 또는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seditionis sedandae et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clavi figendi causa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60년 기원전 358년 기원전 356년 기원전 353년 기원전 352년
394년 396년 398년 401년 40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펜누스 카피톨리누스 크리스피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프로쿨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51년 기원전 350년 기원전 349년 기원전 348년 기원전 345년
403년 404년 405년 406년 40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시누스 레길렌시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 가이우스 리비우스 덴테르)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44년 기원전 342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9년 기원전 337년
410년 412년 414년 415년 417년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인레길렌시스
퀸투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스카이바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호르타토르
ferarium constituendarum causa
기원전 335년 기원전 334년~기원전 333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31년 기원전 327년
419년 420년~421년 422년 423년 427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그나이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또는 그나이우스 퀸크티우스 카피톨리누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티투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lavi figendi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25년~기원전 324년 기원전 322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1년 기원전 320년
429년~430년 432년 433년 433년 434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 퀸투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또는 ludorum faci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20년 기원전 320년 기원전 316년 기원전 315년 기원전 314년
434년 434년 438년 439년 44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퀸투스 아울리우스 케레타누스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가이우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기원전 313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10년~기원전 309년 기원전 306년 기원전 302년
441년 442년 444년~445년 448년 452년
가이우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비솔루스 또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마르쿠스 포슬리우스 플라키나토르 Ⅲ 또는 마르쿠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마르쿠스 티티니우스
rei gerundae (et clavi figendi) causa rei gerundae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301년 기원전 287년 기원전 287년 기원전 285년 기원전 280년
453년 467년 467년 469년 474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부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mortuus est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또는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록 미상) (기록 미상)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276년 기원전 263년 기원전 257년 기원전 249년 기원전 249년
478년 491년 497년 505년 505년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 퀸투스 오굴니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글리키아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기록 미상)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라이토리우스 플란키아누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clavi figendi causa Latinarum feriarum causa
기원전 246년 기원전 231년 기원전 224년 기원전 221년 기원전 217년
508년 523년 530년 533년 537년
티베리우스 코룬카니우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누메리우스 파비우스 부테오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217년 기원전 216년 기원전 216년 기원전 213년 기원전 210년
537년 538년 538년 541년 54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 sine magistro equitum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comitiorum habendorum causa senatus legendi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208년 기원전 207년 기원전 205년 기원전 203년 기원전 202년
546년 547년 549년 551년 552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풀렉스 게미누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comitiorum habendorum et ludorum faci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comitiorum habendorum causa
기원전 82년~기원전 79년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672년~675년 705년 706년 707년~710년 71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occisus est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sine magistro equitum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 non iniit)
legibus faciendis et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rei gerundae causa dictator perpetuo rei publicae constituendae ca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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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라틴어: Gnaeus Domitius Calvinus
파일:Syd_1358.jpg
생몰년도 기원전 96년 ~ 기원전 20년 이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미상
지위 평민귀족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아버지)
참전 카이사르의 내전, 해방자 내전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기병장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53년
전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동기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후임 폼페이우스
메텔루스 스키피오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40년
전임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동기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후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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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군인, 정치가. 본래 옵티마테스파였지만 카이사르의 내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편에 섰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제2차 삼두정치를 지지했다.

2. 생애

고대 로마의 오래된 평민 귀족 집안인 도미티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이 집안은 삼니움 전쟁 때 집정관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이후로 2세기 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는 기원전 79년 가까운 히스파니아 총독을 역임했다. 기원전 62년, 아시아 총독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란쿠스의 부관으로 복무했고, 기원전 59년 호민관을 역임했다. 당시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의 갈등이 벌어졌을 때 비불루스를 지지했으나, 카이사르가 농지법을 통과시키는 걸 막지 못했다.

호민관 임기가 끝난 후 옵티마테스 파의 절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기원전 56년 총독을 역임했으며, 법무관 선거 중에 벌어진 선거 위반 사례를 검토하는 사법 협의회를 이끌었다. 당시 그는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베스티아 재판 때 재판관을 맡았다. 베스티아는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루푸스로부터 유권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키케로의 변론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폭력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루푸스의 재판에도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54년 집정관 후보로 출마했다. 이 해의 집정관 선거는 로마 공화국 역사상 최악의 선거로 악명을 떨쳤다. 후보로 출마한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그리고 그 모두 표를 얻기 위해 막대한 뇌물을 선거인단에게 뿌리고 현직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지원을 얻어내려 사력을 다했다. 이로 인해 후보 4명 모두 고발당했고, 비록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차기 집정관은 좀처럼 선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53년 여름이 되어서야 정치 세력들의 합의로 그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가 최종적으로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기원전 52년 집정관 후보로 출마하려는 티투스 안니우스 밀로 메텔루스 스키피오,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그리고 푸블리우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의 지지자들이 서로 패거리를 결성했다. 옵티마테스파인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밀로가 한 편이 되었고, 카이사르 파인 풀케르와 힙사이우스가 이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이들은 곧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고, 로마 시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그는 루푸스와 함께 혼란을 수습하려 했지만 돌을 얻어맞기만 하고 후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저를 떠나야 했다. 결국 폼페이우스 원로원에 의해 특별 권한을 맡아 혼란을 수습하였고, 기원전 52년 집정관을 일단 단독으로 맡았다가 9월부터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동료 집정관이 되었다. 한편 칼비누스의 집정관 임기 동안 법무관은 직위에서 물러난 직후가 아니라 5년 후에야 총독으로 부임할 수 있다는 법안이 논의되었다. 이 법안은 빠르면 이듬해에 통과되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편을 바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편을 들었다. 기원전 48년 초 카이사르의 발칸 반도 원정에 참여했다. 카이사르는 디라키움 공방전을 치르는 동안 그에게 제11군단과 제12군단을 맡겨 시리아에서 폼페이우스의 지원군을 이끌고 이동중이던 메텔루스 스키피오를 상대하게 했다. 두 군대는 마케도니아에서 전투를 벌이지 않고 대치했다. 메텔루스 스키피오는 마르쿠스 파보니우스에게 8개 코호트를 맡겨 할리아크몬 강가에 진을 치게 하고, 자신은 카이사르의 또다른 부관인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상대하러 출정했다. 칼비누스가 파보니우스를 압박하자, 파보니우스는 스키피오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에 스키피오는 돌아와서 칼비누스와 계속 대치했다.

기원전 49년 여름 카이사르가 디라키움 공방전에서 패한 뒤 그와 합세하러 이동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가 먼저 행동에 나서 그의 군대로 진격했다. 칼비누스는 폼페이우스가 대군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스키피오와 계속 대치했다. 그러던 중 폼페이우스의 진영에서 탈영한 갈리아 기병들이 칼비누스에게 폼페이우스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곧장 철수했고, 테살리아의 아이기니오스에서 카이사르와 합세했다. 이에 스키피오는 폼페이우스와 합세했다. 이후 벌어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군의 중앙 부대를 이끌어 대승에 기여했다. 그 후 카이사르는 이집트로 달아난 폼페이우스를 추격하면서 그를 소아시아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소아시아에 도착한 그는 폼페이우스의 고참병이었다가 카이사르에게 귀순한 이들로 구성된 제36군단을 포함한 3개 군단을 소집하여 그곳의 질서를 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중 폰토스 왕국의 군주 파르나케스 2세가 로마 공화국이 내전을 치르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아버지 미트리다테스 6세의 야망을 이룰 때가 왔다고 여기고 공세를 개시했다. 그는 카파도키아, 비티니아, 소 아르메니아를 잇따라 공략하여 영역을 확장했다. 로마의 동맹국이었던 카파도키아, 비티니아 군주들이 칼비누스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그는 이 당시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치르며 위태로운 지경에 몰려있던 카이사르의 구원 요청에 따라 2개 군단을 보내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당장 도울 여력이 없었다. 이에 시간을 끌기로 하고, 파르나케스 2세에게 "당장 빼앗은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그 후 제36군단을 이끌고 코마나로 이동했고, 최근에 현지인들로부터 징집한 1개 군단, 갈라티아 2개 군단, 카파도키아 보병 10,000명, 그리고 기병 1,000명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파르나케스 2세는 카파도키아에서 철수하는 건 동의했지만 소 아르메니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마땅히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협상 용의가 있다고 꾸준히 알렸지만, 칼비누스는 그가 수비하기 불리한 칼리키아에서 물러나 방어에 용이한 소 아르메니아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일 뿐 실제로 평화 협상을 할 생각이 없다는 걸 간파하고 소 아르메니아로 진군했다. 파르나케스 2세는 막대한 제물을 제시하며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청했으나 소용이 없자, 니코폴리스 인근으로 후퇴했다. 그는 도시 앞 평원에 주력군을 숙영시키고 인근 숲에 기병대를 매복시킨 뒤 적이 몰려오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사절을 보내 협상을 시도하게 해, 칼비누스가 "적이 겁을 집어먹고 싸우길 꺼리는구나"라고 오판하여 방심한 채 쳐들어오길 기대했다.

그러나 니코폴리스 시에서 7마일 떨어진 곳에 숙영지를 세운 칼비누스가 의외로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는 바람에 로마군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자, 파르나케스 2세는 이러다 매복이 발각될 걸 우려해 매복한 군대를 본진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 후 협상이 결렬되자, 칼비누스는 니코폴리스 근처로 이동하여 또다른 숙영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적군이 도시 인근 고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았고, 파르나케스 2세 역시 유리한 지형을 버리고 적과 교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양측은 서로 대치만 할 뿐 쉽사리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이사르가 칼비누스에게 보낸 2명의 전령이 폰토스 장병들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상황이 위급하니 군대를 더 보내달라"는 카이사르의 메시지를 가져왔다. 파르나케스는 이 메시지가 로마군이 철수하거나 불리한 전투를 감행하게 하기를 희망하고, 그들을 풀어줬다. 칼비누스는 카이사르의 메시지를 받은 뒤 깊이 고민하다가, 폰토스군을 하루속히 격파하고 카이사를 돕기로 마음먹고 다음날 군대를 이끌고 적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하여 벌어진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칼비누스는 크게 패하고 본거지로 퇴각했다.

기원전 47년 여름 카이사르가 소아시아에 나타나자 즉시 가담하여 젤라 전투에 참가했다. 젤라 전투는 폰토스 왕국군의 완패로 끝났고, 그는 파르나케스 2세를 추격해 시노페에서 따라잡고 항복을 강요했다. 그 결과 파르나케스가 가지고 있던 영역이 보스포로스 왕국에 귀속된다는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그 후 카이사르는 로마로 떠났고, 그는 소아시아에 남아 질서 유지에 힘썼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의 아프리카 원정에 참여했고, 탑수스 전투 후 2개 군단과 함께 티즈드라 시 공방전을 이끌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가 암살되었을 때, 그는 로마에 있었다. 카이사르는 파르티아 원정을 떠나면서 그를 기원전 43년 기병대장으로 삼아 자신 대신 로마를 통치하게 할 계획을 세웠지만, 암살당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 후 제2차 삼두정치파에 속한 그는 기원전 42년 브룬디시움에서 함대를 이끌고 먼저 건너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에게 증원군을 수송하려 했지만, 도중에 카이사르를 암살한 '해방자파'에 속한 루키우스 스타티우스 무르쿠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함대의 공격을 받아 대패했다. 그의 함대 대부분은 병사들과 함께 침몰했고, 그 자신도 죽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전투 후 5일 만에 브룬디시움으로 돌아왔다.

기원전 40년 삼두정치를 결성한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의 후원으로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다. 그러나 연말이 되기 전에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와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에게 직임을 넘겨야 했다. 그 후 가까운 히스파니아와 먼 히스파니아의 총독을 맡아 기원전 36년까지 다스렸다. 케레탄 부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의 부관 한 명이 이끄는 부대가 병사들의 적전 도주로 인해 패배했다. 그는 백인대장 프림필리우스를 포함한 모든 도주자를 막대기로 구타하여 죽이라고 명령하여 군기를 바로잡은 후 본인이 직접 반란을 토벌했다.

그는 임페라토르로 선포되었고 기원전 36년 7월 17일 로마로 돌아와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때 승리를 기념하여 히스파니아 도시에서 제공한 대부분의 금을 얼마 전에 불타버린 레지아 시의 재건에 기부했다. 한편 그는 개선식에 쓰고 싶다며 옥타비아누스로부터 많은 조각상을 빌렸다. 개선식이 끝난 뒤 옥타비아누스가 반환을 요구하자, 그는 그 조각상들을 신전에 바쳤다고 하며, 사람을 보내 데려가라고 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신성 모독을 두려워해 그냥 선물을 보낸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을 전하는 고대 문헌은 전해지지 않으나, 기원전 20년에 세워진 비문 하나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고위 사제직을 역임했던 것을 볼 때 그때까지 살아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3. 여담

토탈 워: 로마 2의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 캠페인에서 옥타비아누스 팩션의 장군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