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8:54:59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라틴어: Marcus Terentius Varrō Lucullus
생몰년도 기원전 116년 ~ 기원전 56년 이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증조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조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아버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양부)
카이킬리아 메텔라(어머니)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형)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73년
전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동기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후임 루키우스 겔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명장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동생으로, 그 역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갖췄다.

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노빌레스 가문인 리키니우스 씨족에 속한 루쿨루스 지파의 일원이다. 루쿨루스 집안은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 정계에서 활약했다. 증조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는 기원전 185년 법무관을 역임했으며, 조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는 기원전 151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아버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는 기원전 104년 법무관을 맡아 시칠리아에서 발발한 제2차 노예 전쟁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어머니는 당대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빌레스 가문인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문의 일원인 카이킬리아 메텔라로, 외조부는 기원전 142년 집정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이고 외증조부는 기원전 206년 집정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였다. 또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는 그의 삼촌이었고,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의 사촌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기원전 3세기부터 원로원에서 활동한 노빌레스 가문인 테렌티우스 씨족에 입양되어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양아버지는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였으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입양된 경위는 알려진 바 없으며, 루쿨루스 가문이 테렌티우스 가문보다 더 저명하고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마르쿠스 루쿨루스로 언급했다. 형제로 기원전 74년 집정관이자 로마의 명장인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있었다. 두 형제는 평생 동안 사이가 매우 좋았고 서로 협력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기원전 101년, 친아버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법무관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에 의해 추방되었다. 1년 후 성인이 된 그와 형 루키우스는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를 "아버지를 거짓 혐의로 추방시켜 미성년자였던 우리를 학대했다"라는 혐의로 고발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인들이 두 형제가 용감하게 행동했다며 칭찬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세르빌리우스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원전 99년, 그와 루키우스는 호민관 푸블리우스 푸리우스에게 지난날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에 의해 로마에서 추방당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가 복귀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푸리우스가 끝까지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동맹시 전쟁이 발발하기 적전에 시칠리아를 여행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루카니아의 헤라클레아에 방문해서 시인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아르치아스와 교분을 나눴다. 기원전 90년 발발한 동맹시 전쟁 시기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기원전 87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동방으로 출진했을 때, 형 루키우스는 술라의 레가투스(Legatus)로서 함께 했다. 이때 그도 형을 따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는 술라 아래에서 재무관을 맡았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술라의 내전 시기에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마리우스파에 대적한 '술라의 장군'이었다고 밝혔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전임 재무관의 권한으로 레가투스로 선임되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는 피덴차 전투에서 16개 코호트를 이끌고 50개 코호트를 갖춘 적군과 격돌해 승리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마리우스군은 이 전투에서 18,000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술라의 내전이 끝난 뒤, 그는 퇴역병들이 정착할 식민도시를 조직한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 사실은 캄파니아의 프리네스테 시에서 발견된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79년 수석 조영관을 맡았다. 동료 조영관은 동생과 함께 조영관을 맡기 위해 조영관 지원을 미뤘던 형 루키우스였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두 형제가 조직한 대회가 지극히 장엄했다고 밝혔다. 기원전 76년에는 법무관에 선임된 뒤 헬라스 속주에서 속주민들을 착취한 혐의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고발당한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의 재판을 이끌었다.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형 루키우스가 집정관을 맡은 이듬해인 기원전 73년,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두 집정관은 국가에서 빵을 구매하고 빈민들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테렌티우스와 카시우스의 법(Lex Terentia et Cassia)>을 반포했다.

기원전 72년 프로콘술(전직 집정관)로서 마케도니아 속주 총독으로 부임한 그는 총독 권한인 임페리움을 통해 폰토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6세와 연계해 마케도니아 속주를 침략한 트라키아와 모이시아 인들을 상대로 원정을 단행했다. 먼저 트라키아 부족 중 하나인 베세스 족을 공격해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들의 수도인 필리포폴리스를 공략했다. 뒤이어 모이시아로 진군해 다뉴브 강 이남의 부족들을 제압했다.

기원전 71년 흑해 연안으로 진격해 현지 그리스 도시인 아폴로니아, 오데사, 칼라티스, 이스트로폴리스, 토미스, 메셈브리아, 디오니소폴리스 등 여러 도시를 로마에 복속시켰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에서 제3차 노예 전쟁이 발발해 로마의 안보가 위험에 처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스파르타쿠스를 상대할 지휘관으로 지명된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원로원에 마케도니아 총독 마르쿠스를 소환해서 노예 반란군을 협공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 요청의 정확한 날짜와 사실 여부는 학자들의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마르쿠스는 스파르타쿠스가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노리던 브룬디시움에 상륙했고, 스파르타쿠스는 계획을 변경해 북상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최종적으로 진압했고, 세르토리우스 전쟁을 마무리한 뒤 히스파니아에서 이탈리아로 귀환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잔여 반란군을 소탕했다. 그 후 마르쿠스는 마케도니아 속주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개선식을 거행하고 거대한 아폴로 동상을 원로원 회의장 앞에 세웠다.

기원전 67년 10인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형 루키우스가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확보한 새로운 영토의 질서를 확립하고 행정쳬계를 세우기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루키우스가 병사들의 반란에 직면해 더 이상 군사 활동을 못한 데다 미트리다테스 6세가 군대를 재건한 뒤 반격을 가하여 로마군에게 잃었던 폰토스 왕국을 되찾는 바람에, 그의 임무는 연기되었다. 이후 전임 호민관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를 호민관 임기 때 집정관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를 공격하도록 민중을 선동한 혐의로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 메텔루스 피우스,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고발했지만 키케로의 변호로 인해 패소했다.

기원전 66년, 호민관 가이우스 멤미우스가 마르쿠스를 고발했다. 그가 지난 내전에서 원로원의 승인 없이 술라의 재무관으로 활동한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원전 62년에는 로마 시민권을 불법 취득한 혐의로 기소된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아르치우스를 변호해 무죄 판결을 따냈으며, 카틸리나 음모에 맞서는 키케로를 지원했다.

기원전 58년 폼페이우스와 집정관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를 잇따라 찾아가 호민관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에게 공격받고 있는 키케로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끝내 키케로가 망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년 후 키케로가 복귀했을 때 키케로의 집을 헌 자리에 세워졌던 자유의 여신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키케로의 집을 복원하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한편, 그는 모종의 시기에 사제단의 일원이 되었고, 갈리아 전쟁을 치르느라 자리를 비운 폰티펙스 막시무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대신해 사제단의 대표를 맡아 종교 행사를 이끌었다.

기원전 50년대에 형이 중병에 걸려 가족을 돌보기 어려워지자 조카들을 대신 양육했다. 기원전 56년 루키우스가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술라의 장례가 치러졌던 마르스 평원에 묻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형을 투스쿨룸 인근의 가족 사유지에 안장했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그는 형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했으며, 형이 죽은 지 몇년 안 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명성에서 형보다 그리 뒤지지 않았다고 평했고, 키케로는 그를 "국가의 명사이자 장식품"이라고 칭했으며, 저서 <브루투스>에서 그를 "공화국의 가치있는 수호자"라고 호평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과 결혼했다. 기원전 60년, 그는 아내가 가이우스 멤미우스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혼했다. 키케로는 친구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다의 그 양치기는 메넬라오스만 화나게 했는데, 우리의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 모두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