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7-23 17:36:01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라틴어: Lucius Afranius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46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아프리카 속주
지위 평민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아울루스 아프라니우스(아버지)
참전 카이사르의 내전
직업 로마 공화국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60년
전임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동기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후임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의 군인, 정치인. 폼페이우스 클리엔테스로, 세르토리우스 전쟁에서 활약했으며 이후로도 폼페이우스의 심복으로 활동했다. 카이사르의 내전 시기 히스파니아를 침공한 카이사르와 맞서 항전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하고 항복했다. 이후에도 폼페이우스 휘하에서 활약했고, 폼페이우스가 죽은 뒤 아프리카에서 카이사르에 맞섰으나 탑수스 전투에서 패한 뒤 카이사르 휘하 장병들에게 살해되었다.

2. 생애

대대로 폼페이우스 씨족을 섬기는 평민 집안의 일원이었다고 전해진다. 키케로는 편지에서 그를 가리켜 "아울루스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에게 명망 높은 조상이 없다는 것을 조롱하는 의미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 아울루스 아프라니우스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를 섬겼으며, 그 역시 스트라보의 아들인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따랐다. 폼페이우스가 히스파니아에서 발호하는 퀸투스 세르토리우스를 토벌하고자 출정했을 때 부관으로서 따라갔다.

수크로 전투에서 아군의 전열이 붕괴되고 폼페이우스가 적의 맹공에 견디지 못하고 패주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침착하게 좌익 부대를 통솔하여 적의 우익을 격파하였고, 세르토리우스는 자기 진영에 적군이 침입하자 추격을 중단하고 회군했다. 폼페이우스는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칼리구리스 시를 공격하여 오랜 공성전 끝에 함락시켰으며, 기원전 72년에서 세르토리우스 전쟁이 끝난 기원전 67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법무관을 맡아 히스파니아 또는 갈리아 트란살피나 속주를 다스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6년 폼페이우스가 미트리다테스 6세를 물리치고자 출진할 때 역시 따라갔고, 기원전 65년 고르디에네를 점령하고 폼페이우스와 함께 사막을 가로질러 시리아까지 진군해 나바테아인을 물리쳤다. 기원전 61년 폼페이우스와 함께 이탈리아에 돌아와서 성대한 개선식에 참여했다. 이후 폼페이우스는 참전 용사들에게 토지를 제공하고 동방을 재편성한 조치를 승인받기 위해 집정관 선거에 그를 후보로 내세우고 막대한 지원을 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폼페이우스는 아프라니우스를 집정관으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많은 돈을 투자했고, 시민들은 돈을 받기 위해 폼페이우스의 정원에 줄을 섰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폼페이우스는 스스로 성공하여 가장 높은 직위를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을 부패하게 만들었다며 공격받기 시작했다.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반대했지만, 그는 폼페이우스의 처남인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와 함께 선출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폼페이우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켈레르는 곧 폼페이우스의 적 편으로 넘어갔고, 원로원은 토지 분배를 좀처럼 승인하지 않았으며, 동방 재편성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군으로선 상당한 활약을 했으나 정치에는 미숙했던 그는 원로원을 설득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민회에 회부하여 정책을 통과시키는 수완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결국 임기 내에 어떠한 일도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폼페이우스는 집에 칩거한 채 조용히 지내다 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삼두정치를 맺고 나서야 목표를 달성했다.

기원전 57년 원로원에서 식량난에 시달리는 로마를 구하기 위해 폼페이우스에게 5년간 빵을 제공하는 특별 권한을 부여하자는 제안을 지지했다. 기원전 56년 1월에는 폼페이우스에게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이집트 파라오에 복위시키도록 군대를 통솔하는 것을 옹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원전 55년 2월 선거법 위반에 대한 치안 판사들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해 받아들여졌다. 그해에 폼페이우스가 히스파니아 루시타니아, 가까운 히스파니아, 먼 히스파니아 속주의 공식 총독이 되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는 로마에 남기로 하고, 그가 대행자로서 가까운 히스파니아를 직접 통치했다. 먼 히스파니아는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가 맡았고, 루시타니아는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가 맡았다.

기원전 49년 1월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3개 군단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해 2월 그가 피레네 산맥에서 카이사르 휘하 장군이며 당시 갈리아 속주를 다스리던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를 물리쳤다는 소문이 로마에 퍼졌지만, 실제로는 일레르다 근처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을 뿐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기원전 49년 6월 카이사르가 이베리아에 침입하자, 그는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와 함께 맞섰다. 당시 두 사람은 5개 군단, 약 80개 코호트의 보조군, 5,000명의 기병을 갖췄고, 카이사르는 6개 군단, 5,000명의 보조군과 6,000명의 기병을 갖췄다.

양측은 일레르다에서 격전을 벌였다.( 일레르다 전투) 초기에는 카이사르가 설치한 다리가 끊기면서 보급로가 끊어지는 바람에 폼페이우스 측이 우세했지만, 카이사르가 특유의 임기응변을 발휘해 보급로를 재건하고 군대를 주도면밀하게 이끌었던 데다, 히스파니아 속주민들이 점차 카이사르 편으로 돌아서면서 전황이 점차 불리해졌다. 그는 민심이 카이사르 편으로 돌아서자 일단 켈티베리아인들의 땅으로 후퇴하려 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그들을 추격해 압박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고지대에 진영을 갖췄다. 카이사르는 모든 보급로와 수로를 차단했고, 폼페이우스군은 먹을 것과 마실 물이 떨어져서 몹시 곤궁해졌다. 결국 그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항복했고, 카이사르는 모든 군대를 해산하는 것 외에 특별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카이사르로부터 사면받았으나, 그는 동쪽으로 달려가 이피로스의 디라키움에서 폼페이우스와 합류했다. 많은 옵티마테스파 인사들은 그가 일레르다에서 항복했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폼페이우스는 묵살했다. 디라키움 공방전에서 승리에 기여한 뒤, 폼페이우스에게 이탈리아로 쳐들어가면서 강력한 해군으로 카이사르가 발칸 반도를 건너지 못하게 꽁꽁 묶어두자고 조언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원전 48년 8월 9일 파르살루스 전투를 강행했다. 그는 진영에 남아서 수비대를 지휘했지만, 아군이 참패하자 이번에도 붙잡히면 카이사르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소 카토와 함께 디라키움으로 피신했다. 이후 아프리카로 도피한 뒤 메텔루스 스키피오의 휘하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기원전 46년 4월 탑수스 전투에서 또다시 카이사르에게 참패한 뒤,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와 함께 모레타니아를 거쳐 히스파니아로 가기로 하고, 1,500명의 분견대를 이끌고 해안가로 향했다. 그러나 마우레타니아 왕 보구드의 용병대장 푸블리우스 시티우스의 기습을 받아 참패했고, 술라와 함께 체포되어 포로 신세로 전락한 뒤 며칠 후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