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라로니우스 라틴어: Quintus Laroni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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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히포니온(현재 비보 발렌티아)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퀸투스 라로니우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3년 |
전임 |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
동기 |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
후임 |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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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의 그리스 게열 도시인 히포니온 출신이다. 아버지는 파스티 카피톨리니에서 프라이노멘이 퀸투스라는 것을 제외하면 알려진 바 없다. 그는 옥타비아누스의 추종자로, 기원전 35년 시칠리아 내전이 발발했을 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휘하에서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을 맡았다. 그는 아그리파로부터 적진에 고립된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의 아군을 구하라는 지시를 받고 3개 군단을 이끌고 진격해 에트나 화산 인근에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휘하 적군에게 에워싸인 아군을 구출했다. 이 일로 병사들에게 임페라토르 칭호를 받았지만, 별도로 개선식을 거행하지는 않았다.기원전 33년 말 루키우스 비니키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다. 히포니온에 세워진 비문에 따르면, 그는 로마의 고위 사제 계급인 아우구르(Augur)였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