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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년전쟁 시기인 1436년 7월 9~29일, 부르고뉴군이 잉글랜드군의 해상 기지인 칼레를 포위했으나 공략에 실패한 공방전.2. 상세
1435년 9월 21일,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는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와 아라스 협약을 체결하고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끊었다. 이에 격분한 잉글랜드인들은 부르고뉴 공작의 신민인 플란데런, 네덜란드, 피카르디 상인들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잉글랜드군 2,000명을 저지대 지역으로 파견해 불로네에서 플란데런 군인 1,500명을 격파했다. 필리프는 이에 대응해 잉글랜드에 전쟁을 선포한 뒤 칼레를 향한 공세를 개시했다.1436년 6월,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장 2세 드 크로이 등이 이끄는 부르고뉴군과 호른의 장이 이끄는 플란데런 민병대 연합군 30,000명이 칼레로 진격했다. 이들은 오예플라주, 상카트, 발링헴 등 소규모 잉글랜드 요새를 공략한 뒤 7월 9일 칼레를 포위 공격했다. 여기에 장 2세에게 별동대를 맡겨서 기옌을 별도로 포위하게 했다. 그러나 모르탱 백작 에드먼드 보퍼트가 이끄는 수비대가 압도적인 수로 몰아붙이는 적을 상대로 분전했고 식량도 잘 갖춰졌기에, 칼레 공략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호른의 장이 돌을 잔뜩 실은 배 5~6척을 칼레 항구 앞바다에 침몰시켜서 칼레의 해상 봉쇄를 완수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했다.
칼레 공략이 지지부진하던 7월 29일 글로스터 공작 랭커스터의 험프리가 이끄는 구원군 10,000명이 칼레로 접근했다. 이에 필리프는 칼레와 기옌에서 전면 철수하기로 했다. 이후 양자간의 전쟁은 수년간 더 이어지다가 1439년 평화 협약이 체결되면서 종식되었으며, 칼레는 1558년까지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