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4:22:14
[clearfix]미국의
장군.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사병으로 시작해 대장까지 진급한 인간승리의 표본이자 2차 세계대전의 명장이다.
1887년 조지아 주 페리에서 태어난 코트니 호지스는 신문사 사장을 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고교 졸업후 조지아 농업 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군인의 꿈을 품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학 성적이 매우 저조하여 퇴교당하게 되었고 1년 동안 잡일을 하면서 1906년 병으로 재입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입대 3년만에 상사로 진급하였고 장교 임관 시험에 최종 합격하여 1909년 육군 소위로 임관. 그 후 필리핀에서
조지 마셜이 속한 부대에서
패튼과 함께 군생활을 하게 된다.
2.2. 멕시코 내전과 1차 대전 활약
차후
패튼과 함께
존 조지프 퍼싱이 지휘하는 부대에 전입하게 되었고 1916년 뉴멕시코에서 비행 임무중 추락한 조종사를 구출하는 작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작전이 세계 최초의 비행 조종사 구출 작전이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 내전 직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마른강에서 독일군을 물리친 전과로 수훈 십자장을 받고 중령으로 진급한다.
육사 출신이 아니었지만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 및 교관 등 여러 보직을 거쳤고 1925년 미국 지휘참모대학 졸업, 1934년에 보병학교를 졸업한다.
2.4. 2차 대전 활약
1941년 소장으로 진급한 호지스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자, 1942년 미 육군 제10군단을 지휘하게 되었고 1943년에 중장을 진급하여 미 육군 제10군단과 제3군의 사령관이 된다. 중장으로 진급한 후 영국으로 가
오마 브래들리 휘하에서 부사령관 임무를 하게 되었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브래들리를 이어 미 육군 제1군의 사령관이 되었고
파리에 가장 먼저 진격하였다.
베네룩스까지 독일군을 밀어낸 후 독일군과의
벌지 전투에서 시간을 끌게 하여 연합국이 라인강까지 진격할수 있게 하였고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게 하였다.
그는 1949년까지 포트 제이에서 사령관을 지낸 후 은퇴하였다.
브래들리는 호지스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군사적 식견이 뛰어나고 훌륭한 전략가였지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조용하고 평온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며 그의 균형잡힌 지휘로 인해 나의 모든 육군 사령관들 중에서 그는 최소한의 감독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였다. 다만 당시 다른 미군 지휘관은 참모장인
윌리엄 B. 킨소장에 과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