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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6 11:39:45

윌리스 리

파일:us_army_ww2.png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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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27546> 육군
★★★★★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 더글러스 맥아더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헨리 아놀드
★★★★
육군 대장
오마 브래들리 | 조지 S. 패튼 | 칼 스파츠 | 조나단 웨인라이트 | 조지프 스틸웰 | 월터 크루거 | 조지 케니 | 코트니 호지스 | 마크 클라크 | 레너드 T. 게로 | 윌리엄 H. 심슨
★★★
육군 중장
레슬리 맥네어 | 존 리드 하지 | 앨버트 웨드마이어 | 매튜 B. 리지웨이 | 사이먼 B. 버크너 | 월튼 워커 | 로버트 리처드슨 | 루시안 트러스콧 | 호이트 반덴버그 | 루이스 H. 브레레턴 | 존 C. H. 리
★★
육군 소장
제임스 밴 플리트 | 모리스 로즈 | 커티스 르메이 | 맥스웰 테일러 | 레슬리 그로브스 | 윌리엄 F. 딘 | 클레어 셰놀트항, 전 | 랄프 스미스 | 월터 쇼트 | J. 로턴 콜린스
육군 준장
마크 클라크 | 돈 프랫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80><table bgcolor=#fff,#191919><colbgcolor=#000080> 해군 ||
★★★★★
해군 원수
윌리엄 리히 | 어니스트 킹 | 체스터 니미츠 | 윌리엄 홀시
★★★★
해군 대장
마크 미처 | 토머스 킨케이드 |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홀랜드 스미스해병 | 알렉산더 밴더그리프트해병
★★★
해군 중장
프랭크 잭 플레처 | 제시 올덴도르프 | 윌리스 리
★★
해군 소장
허즈번드 킴멜 | 아이작 C. 키드 | 노먼 스콧 | 대니얼 J. 캘러헌 | 해리 슈미트해병 | 윌리엄 H. P. 블랜디
해군 준장
알레이 버크

||<tablewidth=100%><tablebgcolor=#eaeaea,#1f2023>※ 문서가 있는 인물만 2차 대전기 당시 계급으로 서술함
※ 윗 첨자 : 전사, 윗 첨자 : 육군 항공대, 윗 첨자 해병: 해병대, 윗 첨자: 전시 계급
||
}}}}}}}}} ||
윌리스 오거스터스 리 주니어
Willis Augustus Lee Jr.
파일:1000130030.jpg
출생 1888년 5월 11일
미국 켄터키주 내틀리
사망 1945년 8월 25일 (향년 57세)
미국 메인주 해안
복무 미합중국 해군
최종 계급 미국 해군 중장
복무 기간 1908~1945
학력 미국해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켄터키 주의 오웬 카운티의 시골마을 내틀리에서 판사 윌리스 리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린시절부터 사냥총을 들고 유해조수를 사냥하는 취미가 있었으며 어린시절 사제폭탄을 제조해 실험 중 지근거리에서 폭발해 시력이 손상되었다. 이에 평생동안 안경을 착용했다.

1904년에 미국-스페인 전쟁여파로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성적은 공부는 잘 안하고 사관학교 사격팀에 몰두했지만 중간을 기록했다. 1908년 해군소위로 임관했다.[1]

1908년 10월부터 1909년 3월까지 전함 USS 아이다호에서 근무한 뒤 1910년까지 순양함 USS 뉴올리언스, USS 헬레나에서 복무한 후 1913년 7월에 다시 아이다호로 되돌아왔다가 곧바로 전함 USS 뉴햄프셔로 이동해 멕시코 원정대에 투입되어 베라크루즈 점령전에 참가해 멕시코 혁명군과 전투를 치렀다. 스코프없는 소총의 기계식 조준기로 조준해 혁명군 저격수 여려명을 저격했으며 별동대를 편성해 기관총으로 인해 데드존이 형성된 지역을 돌파해 고립된 인원을 구출하기도 했다.

이후 일리노이에 있는 록아일랜드 조병창에서 근무하며 육상근무를 시작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엔 구축함 USS 브라이언, USS 리에서 종군해 U보트와 맞서싸웠다.

사관학교시절부터 사격팀선수였고 임관 후에도 군 내 사격대회에서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후 전미사격대회에서 내로라하는 선수 685명을 제치도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으며[2]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의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해 소총과 권총 14개 종목에 출전하여단체전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동료인 로이드 스페너와 함께 한 대회에서 7개의 메달을 따낸 그의 기록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알렉산드르 디탸틴이 체조종목에서 7개를 따 내기 전까지 깨어지지 않은 기록이었다.

1920년 말경에 그는 해군대학을 거쳐 1936년엔 대령으로 진급한 뒤 경순양함 USS 콩코드의 함장으로 취임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942년엔 소장으로 진급했다.

1942년 11월 14일부터 15일 새벽까지 이어진 제3차 솔로몬 해전에서 64전대장으로 전함 USS워싱턴, USS 사우스다코타 2척과 구축함 4척을 지휘했다.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기 위해 돌입한 콘도 노부타케 중장의 함대를 격퇴한 리 소장이었지만 자신의 함대도 구축함 4척을 잃고 전함 USS 사우스다코타가 대파되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일본해군의 비행장 포격을 방지하고 특히 해전에서 승선한 전함 USS 워싱턴이 레이더 사격으로 일본해군의 전함 키리시마에 여러 발의 포탄을 명중시켜 격침시켰다. 이 공으로 해군십자장을 수여받았다.

1944년에 중장으로 진급했고 태평양함대 전함전대 사령관으로 고속전함 부대를 지휘해 마리아나 해전, 레이테 만 해전 등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1945년 5월에 카미카제의 방어수단을 연구하는 특별부대의 지휘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갔고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 8월 15일에서 10일 지난 후 전함 USS 아이오와의 함상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하고 말았다. 

3. 여담



[1] 당시 동기는 리치먼드 K. 터너, 토머스 킨케이드, 프랜시스 F. 록웰, 윌리엄 R. 퍼렐, 아서 S. 카펜터등이 있다. [2] 본래는 소총만 하려했으나 사격 코스를 너무빨리 통과해 심심해서 권총에 도전했다가 권총도 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