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라틴어: Cossus Cornelius Lentu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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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기원전 35년 ~ 서기 36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아버지)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아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아들) 코르넬리아 렌툴라(딸)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년 |
전임 |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
동기 |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
후임 |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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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29년 재무관이었던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의 아들이다. 일찍이 시빌라 예언서를 관리하는 '퀸데킴비리 사크리스 파키운디스(quindecimviri sacris faciundis: 15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의 일원이었으며, 기원전 12년 화폐 주조관을 역임했다. 기원전 1년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고, 서기 5년 또는 6년에 아프리카 총독을 역임했다. 그는 아프리카 총독으로서 유목 민족인 가이툴리아족과 무술라미스족을 물리쳤고, 이로 인해 개선 훈장을 수여받고 아들에게 가이툴리쿠스(Gaetulicus, 가이툴리아족 정복자)라는 칭호를 아그노멘으로 줄 권리를 얻었다.31년 원로원 의원으로서 지방 총독, 행정관 및 당시 국정에 부재중인 사람은 취임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기소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안건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그 덕분에 세야누스의 부하 아우세우스, 산퀴니우스에 의해 고발된 스페인 총독 루키우스 아룬티우스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33년부터 프라이펙투스 우르비로 발탁되어 로마의 치안을 감독하고 티베리우스 황제가 부재할 때 행정을 대신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플로루스에 따르면, 그는 심각한 술 중독이었지만 겸손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여겨져 티베리우스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서기 36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두 아들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와 딸 코르넬리아 렌툴라를 낳았다.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는 25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는 26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29년부터 39년까지 게르마니아 수페리어 속주의 총독을 맡았지만 칼리굴라 황제를 상대로 반역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처형되었다. 딸 코르넬리아 렌툴라는 판노니아 속주에 원로원 특사로 파견되었던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나의 아내였는데, 판노니아에 주둔한 군단병의 옷을 입고, 군영을 시찰하면서 군인들로부터 관심있는 정보를 이끌어냈으며, 숙영지 중앙 광장에서 트리부누스 밀리툼이었던 티투스 비니우스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가, 로마로 귀환한 뒤 남편과 함께 군대를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고발을 받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남편과 함께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