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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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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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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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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해마다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선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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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9999><colcolor=#330000> 최진실
崔眞實|Choi Jin Sil
파일:최진실_공식 프로필.jpg
출생 1968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사망 2008년 10월 2일 (향년 39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전주 최씨 (全州 崔氏)
장지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 묘원[3]
신체 162cm[4], B형
가족 아버지 최국현, 어머니 정옥숙
남동생 최진영, 6촌 최재성
배우자 조성민(2000년 결혼, 2004년 이혼)
자녀 아들 최환희[5], 딸 최준희
학력 서울불광초등학교 (졸업)
동명여자중학교 (졸업)
선일여자고등학교 (졸업)
종교 개신교 ( 침례회)[6]
데뷔 1988년 삼성전자 TV CF
별명 깨순이[7], 최수제비[8], 또자[9], 또순이[10], 최트루[11]
서명 파일:최진실 서명.jpg

1. 개요2. 생애3. 위상, 그리고 인기
3.1. 세부적인 기록
4. 외모5. 연기력6. 성격7. 대인 관계
7.1. 최진실 사단7.2. 배우 인연7.3. 기타 인연
8. Right of Publicity
8.1. 공익 활동 18.2. 공익 활동 2
9. 사건사고10. 사망11. 묘소12. 여담13. 출연 작품
13.1. TV드라마13.2. 영화13.3. 광고
14. 수상 경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우.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 20년 동안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인물이다. 기사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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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상, 그리고 인기

신인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범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스타였다. 드라마, 영화, 광고, 예능 등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귀여운 외모와 친근한 성격, 성실함과 겸손함이 갖춰진 이미지로 국민 배우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전 연령층을 폭넓게 아우르는 인지도와 인기가 굉장했으며 특히 그녀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당시의 위상은 현재까지도 그와 비견되는 인물을 찾기 힘들 정도로 높았다.[12][13]
“제가 역사적으로 남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꼭 기억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1994년 11월 29일 서울 1000년 타임캡슐에 담긴 영상 인터뷰 내용

특히 TV 쪽 배우로는 김희애, 채시라와 함께 한국 TV 드라마의 상징적인 배우 중 1명. < 질투>, < 별은 내 가슴에>, < 그대 그리고 나>, < 장밋빛 인생>, <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 거의 모든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최진실의 커리어 중 드라마 쪽 작품은 시청률에서 실패한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14] 영화 쪽에서도 < 남부군>,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마누라 죽이기>, < 편지> 등 여러 작품을 히트시키며 티켓파워에 강점을 보이는 충무로의 스타로 거듭났다. 강수연, 심혜진 등과 더불어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높은 티켓파워와 인기를 자랑했던 여배우로 평가받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로는 드라마 쪽에서만 활동해서 젊은 세대에게는 영화 커리어가 묻히는 경우도 있는데, 드라마 못지않게 영화판에서 최진실이 가졌던 파워도 대단했다.

생전 수백여편의 광고에 출연하며 한 때 광고모델 중 역대 최고 개런티를 받었을만큼 광고업계에서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높은 스타성 때문에 매년 섭외 1순위를 기록했고 장기적으로 모델을 맡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KT(한국통신)의 경우 1990년대부터 2002년까지 모델로 활동하여 현재도 최진실의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나 공중전화 카드를 종종 찾을 수 있다.

예능에 엄청 자주 출연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유머감각이 매우 좋아서 출연하면 나름의 활약을 해주던 인물이었다. 2007년 방송된 무릎팍도사를 보면 알겠지만, 컨셉상 거칠게 진행하는 강호동 유세윤이 최진실 앞에서 거의 맥을 못 쓸 정도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5] 말년이었던 2008년에는 김구라와 함께 OBS에서 < 진실과 구라> 의 메인 MC를 맡기도 했다.

이처럼 최진실은 1990년대부터 길게는 2002년까지 한국에서 최정상급 여배우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조성민과 이혼 다툼을 시작하면서 슬럼프가 찾아왔고, 이미지가 많이 하락하면서 잠시 슬럼프를 가지기도 했다.[16]

2004년 9월 조성민과 최종 합의 이혼을 하고, 이듬 해인 2005년 KBS < 장밋빛 인생> 으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하면서 배우로서 재기했다. 최진실 연기 커리어의 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재기에 성공한 뒤 다시 이전과 같이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건재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2008년 10월 2일 지속된 우울증으로 자신의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커리어를 끝냈다. 최진실과 동년배인 김희애, 채시라, 김혜수 등이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더욱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세상을 떠난지 15년이 넘은 현재에도 최진실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녀의 자녀들인 최환희, 최준희가 엄마의 사후 여러 방송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환희는 2020년 지플렛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으며, 최준희 역시 인플루언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17]

3.1. 세부적인 기록

4. 외모

파일:최진실-2.gif
인터뷰
파일:최진실-3.jpg
백상예술대상 시상식[26]
파일:최진실-일상.jpg
일상 사진
파일:최진실(사진3).jpg
프로필

최진실이 털털하고 수수한 모습과 친근한 이미지가 부각되어 정석적인 미녀 배우[27]는 아니라는 평가가 일부에서도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여론으로는 1990년대 후배 여배우 심은하 김희선과 함께 미녀의 대명사였으며 TV와 영화 혹은 도서에서 이쁜 여자를 칭할 때 최진실처럼 이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선한 눈매와 귀여운 이미지를 대표격으로 깜찍하고 발랄한 이미지, 고급진 걸크러쉬 이미지, 유니크한 이미지까지 동시에 공존하는 여러가지 다채로운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배우이다. 귀여운 외모와 대조를 이룬 슬픈 눈, 서사와 한이 담겨있는 듯한 눈빛, 반짝이는 눈동자, 반달 모양의 눈매, 하트 모양의 도톰한 입술, 웃을 때 시원시원한 입매와 눈웃음, 가지런한 치아, 앞에서 보면 계란형 얼굴과 옆에서 보면 귀족턱[28]이 특징이며 눈밑 진한 다크서클특유의 활짝 펼쳐진 큰 귀[29]가 배우를 상징하는 대표 트레이드 마크[30]이다.

5. 연기력

광고 모델로 배우에 입문하여 연기력으로 주목받은 케이스는 아니었으나 자연스러운 말투, 연기 스타일과 뛰어난 화면 장악력으로 처음부터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가 1991년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통해 여우주연상에 첫 노미네이트되면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높은 스타성으로 연기력이 연기파 동년배 트로이카 여배우들에게 약간 가려진감이 있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 작품, 캐릭터의 폭을 넓혀갔고 30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성숙한 연기를 선보여주어 스펙트럼 넓은 연기파 배우로 인정 받았다.

1990년대, 또래 배우들이 얼굴 믿고 연기는 안 한다는 비판이 많던 때에 '최진실 보고 배워라' 는 식의 논조의 사설이 올라온 적도 있었다. 실제로도 다작을 하는 배우로 유명했고 역할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배우였다. 청순가련 캔디부터 비련의 여주인공,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싹싹한 대가족 딸 역할 등 못하는 배역이 없었다. 특히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연기를 배울 좋을 기회라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걸로 유명했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는 배우들이 대부분 대선배들인데다가 스케쥴도 살인적이라 어린 배우들은 대체로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최진실은 대선배를 접할 좋은 기회라며 후배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한 적도 있었을 정도. 덕분에 선배들에게도 평판이 좋았으며 밝고 경쾌한 연기부터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연기까지 장르 상관없이 모두 잘 소화해내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였다.

최진실은 김혜자, 고두심, 최불암, 안성기와 같은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국민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여 연기에 열정과 갈망이 컸다. "저는 할줄 아는게 연기 밖에 없다. 연기를 오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였고 연예계 종사자와 동료 배우들은 일관적으로 "최진실은 손에서 대본을 놓은적이 없다." 평가 하였으며 배우 이병헌은 "촬영장에서 농담 걸을 새도 없이 대본을 보면서 그렇게 열심히 연기 공부를 하신다."고 하였다.

6. 성격

데뷔 전에는 느긋하고 무던한 성격이었으나 데뷔 후 연예계 생활을 하며 '빨리빨리'가 습관화되면서 예민한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고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과 동료들은 최진실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었다고 하며[31] 감수성과 섬세함이 남다르게 풍부하여서 대중들의 평가에 상당히 예민했으며 이에 따른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32][33]
파일:나의사랑나의신부1990.jpg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촬영 현장

애교가 많았으며 친한 동료들과 같이 있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등. 엉뚱한 면이 많았고 매사에 성실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악바리 기질이 있었으며 굉장히 여리고 눈물이 많았다. ' 강강약약', ' 외강내유'였으며 솔직하고 털털했고, 카리스마 있는 여장부, 걸크러쉬 성격이기도 했다.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한가닥하는 사단 연예인들을 중재하고 이끄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타고 났으며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34]

최진실은 대중들에게 선하고 착한 이미지였지만 당시 여배우에게 금기시되는 음주 흡연 여부를 숨기지 않고 공개했고 굉장히 영리하고 똑부러지는 면이 있었으며 터무니없는 루머들로 고통을 받을 때마다 당당하고 똑소리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유머감각과 똑부러지고 센스있게 말을 잘하고 친화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실제로는 말주변이 없고 부끄러움을 꽤 타는 편이었다.[35]

인간적인 면모와 포용력으로 인품이 훌륭했던 것으로도 유명해 미담이 끊임없이 많은 편이다. 소탈하고 겸손했으며 모든이들에게 친절, 친근하고 예의 바르며 인사성이 밝았다. 베풀며 선행하는 것을 좋아했고 언론에 알리지 않고 남몰래 선행하기도 했다. 이로인해 착한 이미지[36]의 대표격이었다.

7. 대인 관계

7.1. 최진실 사단

최진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자뻑 클럽'이 대표 이름이었으나 언론에서 '최진실 사단'으로 네이밍을 붙혔다. 최진실은 최진실 사단이라는 네이밍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37]

1991년 봄 소년소녀 가장돕기 '최진실 사랑 나누기' 자선무대에서 MBC 합창단원으로서 백코러스를 맡은 엄정화와 처음 만났다. 엄정화의 용모가 최진실의 우상인 배우 강수연과 상당히 비슷하여 호감이 생겼고 엄정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엄정화의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자매를 맺는다.

1992년 예능에서 이영자와 처음 만났다. 사석 뒤풀이 회식에서 "친구 먹자"고 하면서 친해졌는데 실제로는 이영자가 최진실보다 한 살 위인 1967년생이다.

이영자가 홍진경 정선희를 최진실에게 소개시키며 모임에 합류하였고 이어 이소라(모델), 최화정,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가 합류했다. 이영자와 조성아는 최진실 사후 최진실 재단을 추진한다.

1995년 SBS 모래시계에서 기자 역을 맡은 이승연의 외모와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한 최진실이 먼저 이승연에게 친구를 맺자고 제의하여 이승연이 모임에 합류했다.[38]

이외에 배우 고소영, 김희선, 송윤아, 신애도 최진실이 주도한 모임에 합류했으며 코미디언 이경규, 배우 김지호, 배우 김남주, 방송인 백지연, 가수 김혜림, 개그맨 이휘재 등과도 친했다고 한다.

1999년 6월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예능 출발 드림팀에 최진실 사단 특집으로 출연하였다.
출발 드림팀 Ⅰ
출발 드림팀 Ⅱ

7.2. 배우 인연

고소영 - 최진실이 1990년대에 친한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엄정화와 함께 고소영을 언급했다. 1998년 즈음 최진실과 고소영이 가라오케에서 술을 먹다가 남자 배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판 싸웠다는 크게 과장 된 루머가 떠돌았었는데 최진실과 고소영이 섹션TV에 출연해 우스갯소리로 "지금 제일 피해자는 남자 배우씨다" 라며 유쾌하게 직접 루머 해명 인터뷰까지 했을 정도.

김희선 - 최진실이 상당히 아끼고 이뻐한 후배이다. "내 후계자는 희선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했었고 김희선이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리며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했었는데 최진실과 이영자도 참석했다. 최진실은 "우리가 가까운 지인들 중에 선택이 됐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희선이한테 고맙고...", "희선이가 우리를 특별하게 생각을 해줬구나. 그걸 많이 느껴서 더 울컥했던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거렸고, 결혼식 도중 '희선이가 너무 이뻤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07년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외모적으로 가장 완벽한 후배라고 칭찬하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희선이가 브라운관에 모습을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고 작품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지만 안타깝게도 최진실의 마지막은 김희선과는 함께하지 못했다. 김희선이 임신 6개월차였기 때문이다. 김희선은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참석하지 못하고 싸이월드 개인 미니홈피에 추모 글을 올리며 애도를 표했다.

김희애 - 김희애와는 1988년 광고에서 주연과 보조 모델로 처음 만났으며 1989년 드라마 당신의 축배와 1993년 드라마 폭풍의 계절에 동반 출연하였다. 1990년대 초반 최진실과 김희애와 사이가 안 좋다는 루머가 떠돌았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자들이 최진실과 김희애가 드라마 폭풍의 계절 동반 출연 당시 타이틀롤로 기싸움을 했다는 뇌피셜 기사를 쓰기도 했으나 역시나 터무니없는 루머이며 최진실이 자서전을 통해서 "희애 언니와 루머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한바탕 웃어넘겼다."고 강력히 해명하였고 최진실은 폭풍의 계절에서 김희애와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추며 김희애에게 연기를 많이 배웠다고 존경심을 드러냈었고 존경하는 선배로 김혜자, 강수연과 함께 김희애를 언급했다.

김혜자 - 최진실과 특별한 사이로 유명했다. 유독 동반출연한 작품이 많고 칸 영화제에 같이 참석하자는 약속도 했다고 한다. 허나 최진실의 사망으로 이 약속은 무산되었고 김혜자는 2009년 영화 '마더'로 배우 원빈과 영화감독 봉준호와 함께 제62회 칸 영화제에 참석했다. 김혜자는 훗날 평생 잊히지 않는 배우로 최진실을 꼽으며 최진실을 애도하였다.

남궁민 - 2002년 광고에서 주연 모델와 보조 모델로 만났다. 매니저와 소속사 없이 활동하던 무명 연예인 남궁민을 매니지먼트사와 연결시켜주어 배우로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도 동반 출연하였다.

심은하 - 최진실이 아끼던 후배 중 한 명이었다. 최진실은 심은하의 은퇴 소식에 심은하를 직접 만나 설득하기도 했으며 인터뷰를 통해 "은하는 독보적인 여배우다. 하루 빨리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굉장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안재욱 -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 안재욱을 직접 캐스팅하고 강민 캐릭터의 트레이드 마크인 머리 스타일을 직접 제안하였다.

이미연 - 2007년 인터뷰에서 '또래 연기자들 중 누구와 친한가요?' 라는 질문에 "미연이요. 미연이가 주연한 드라마 첫회 보고 문자메시지 보내줬어요. 정말 기대하던 드라마였어요"라고 대답하였다. 인연이 굉장히 오래된 듯하다.

정선경 - 영화 배우로만 활동하던 정선경에게 텔레비전 배우로도 활동해야 배우 생명이 오래 간다고 조언하며 방송계로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정준호 -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직접 캐스팅했다.

채시라 - 1968년생 동갑내기 친구로 작품 여러개를 같이 했지만 언론에서 라이벌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바람에 깊게 친해지진 못했다고 훗날 아쉬워 했다.

박원숙 -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 2023년 3월 21일자 방송에서 최진실과의 일화를 밝힌 적이 있다. 그때 게스트로 나왔던 방은희가 "'겨울새' 촬영할 당시 새벽에 술 마시다 갑자기 김수현 작가에게 새벽 3시 40분에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39]"고 고백했는데, 다행히 김수현 작가는 "작가 생활 하다하다 새벽 3시 40분에 문자 온 건 네가 처음이다. 그래도 네가 살 만 하다니 다행이다. 그 마음으로 계속 열심히 살아라"라고 대답했고, 방은희는 이에 대해 김수현 작가에게 감사함을 표했는데, 이때에 박원숙이 들려준 일화로, 예전 최진실이 절친 이영자의 토크쇼 택시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새벽 2시에 박원숙에게 전화를 했는데, 박원숙은 신경질이 확 나서 "지금이 몇 시냐?"라고 물었고, 최진실은 "우리 생활이 그렇잖아요. 죄송해요"라고 대답했고 박원숙은 "나중에 전화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게 최진실이 자살하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박원숙은 이를 고백하며 "걔는 자기 절친이 하는 토크쇼에 나를 초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가 하고 싶었을 텐데,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힘든 걸 잡아줬으면 싶어서 연락했을 텐데"라며 미안함을 드러냈다. #

7.3. 기타 인연

영화감독 강우석 - 영화 미스터 맘마, 마누라 죽이기,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홀리데이 인 서울 등 여러 영화를 함께 하면서 의남매가 된다.

기자 김재우 - 자신의 사후 여론조작에 대비해 김재우 기자에게 비망록을 남긴다. 2003년부터 최진실과 김재우 기자는 의남매가 되어 서로의 직업에 대해 응원해주며 우애를 나눈다.

개그맨, MC 유재석 - 무명 생활을 오래 하다가 KBS <서세원쇼>를 통해 조금씩 인지도를 쌓아가던 패널 전문 개그맨 유재석을 2000년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MC로 추천하였다.[40] 최진실은 유재석과 친분이 없던 사이였는데 단지 <서세원쇼>에 출연한 유재석의 모습을 보고 "메뚜기라고 재밌는 친구가 있는데 한번 써보라"며 친분이 있던 PD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훗날 유재석은 <해피투게더 시즌 3>와 <놀면 뭐하니?> 통해 최진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최진실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가수 이효리 - 간접 인연이다. 2000년대 역대급 신드롬을 누리던 이효리를 지켜보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진실은 한 인터뷰에서 "이효리는 천의 재목이다. 효리 친구가 드라마가 잘 안 된 후에 연기를 안 하고 있는데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 봤으면 한다."라고 언급했다. 최진실 사후 이효리는 빈소에 조문을 가고 싶었지만 친분이 없어 망설이다 결국 못 갔다고 한다. 대신 이소라와 엄정화의 부탁으로 최진영의 집을 방문에 아이들을 위로하고 돌봐줬다. 이효리가 학창시절에 최진실과 많이 닮아 '리틀 최진실'이 별명이었다고 한다.

가수 MC몽 - 사망 전날 홍진경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친구 MC몽의 'I love you oh thank you'를 신청했다. # 다음해인 2009년 MC몽은 정규 5집 〈Humanimal〉에 '진실은 천국에서라도'라는 추모곡을 수록하였다.[41] 최진실은 MC몽의 노래를 좋아했고 평소 MC몽에게 자신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그게 이뤄진 거다. #

최진실은 연예계 마당발로 위에 언급한 인물들 외에 탈렌트, 영화 배우, 개그맨, 개그우먼, 가수 모든 분야에서 친분이 많았다.

8. Right of Publicity

최진실은 계약 기간보다 5년을 더 자신의 초상을 사용한 제약업체를 대상으로 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다. 사법부는 2000년 이 제약업체에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다. 최진실은 이 재판을 통해 연예인 퍼블리시티권의 초석을 다진다.

8.1. 공익 활동 1

8.2. 공익 활동 2

9.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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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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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묘소

파일:최진실, 최진영 남매 묘소.jpg
최진실-진영 남매의 묘소

최진실은 장례식 이후 화장되어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갑산공원 납골묘지에 안장되었다.[42] 최진실이 생전 다녔던 강남중앙침례교회가 매입한 성도 전용 묘역으로, 최진실을 포함해 18명의 신도들이 이 곳에 안장되어있다. 2010년 최진영이 사망한 뒤에는 누나와 함께 합장되어 묘역의 크기가 훨씬 넓어졌고, 2018년 10주기 때까지 매년 추도식이 이 곳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최진실이 이 곳에 안장된 뒤 인기가 높아져 이 곳에 분양을 받으려면 1달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기자가 몰렸다고 한다. #

최진실의 묘비에는 "만인의 연인, 사랑스러운 그녀! 이 곳에 잠들다."라는 묘비명과 함께 그녀의 흉상이 세겨져있고, 옆에 안치된 최진영의 묘비에는 그의 히트곡 영원의 가사가 적혀있다. 옆에는 최진실의 생전 출연작 포스터와 팬들의 팬레터가 보관된 우체통이 설치되어 있다. 납골묘 크기가 넓기 때문에 묘역보다는 하나의 공원처럼 느껴질 정도다.

파일:최진실 묘 2009년.jpg

안장 초창기에는 현재와 같은 넓은 크기의 납골묘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평수의 납골묘였다. 그러나 참배객들의 인원이 워낙 많아 묘역 관리가 힘들어졌고, 또 2009년 8월 발생한 유골함 도난사건 때문에 보안이 강화될 필요가 있어 최진실의 1주기에 맞춰 현재의 모습으로 리모델링하였다.

12. 여담

파일:cjs-681224.jpg
쌍마스튜디오에 전시된 사진[48]

13. 출연 작품

13.1. TV드라마

<rowcolor=#330000>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시청률
1989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59] 장미
MBC 베스트셀러극장 - 시진읍[60] 팔푼
잠들지 않는 나무 찬주
조선왕조 오백년 - 파문 박선아
제5열 대통령 후보의 딸
당신의 축배 김범경
서울 시나위 희수[61]
1990년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오도희
두 권의 일기 양해리
추억여행 심미리
우리들의 천국 승미
1992년 약속 정인 평균 34.8%
최고 41.5%
질투 유하경 평균 40.1%
(역대 14위)
최고 56.1%
매혹 이지훈 시청률 왕 최진실의 드라마 중 시청률 집계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드라마
1993년 폭풍의 계절 이진희 평균 34.2%
최고 52.1%
1994년 파일:SBS 로고(1991-1994).svg 사랑의 향기 신영진 평균 27.7%
(방영 당시
전체 프로그램
시청률 순위 4위)
1995년 파일:SBS 로고(1994-2000).svg 아스팔트 사나이 오화련 최고 32.9%
째즈 채송화 평균 15.5%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아파트 차나리 평균 24.7%
1997년 별은 내 가슴에 이연이, 소피아 평균 40.2%
(역대 13위)
최고 49.3%
그대 그리고 나 윤수경 평균 42.4%
(역대 10위)
최고 62.4%
1998년 추억 서인영 평균 28.3%
최고 38.4%
1999년 장미와 콩나물 손미나 평균 32.7%
최고 44.1%
2002년 그대를 알고부터 이옥화 평균 16.5%
2004년 장미의 전쟁 오미연 평균 12.5%
2005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장밋빛 인생 맹순이 평균 30.9%
최고 47.0%
(TNmS)
2007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 나쁜여자 착한여자 이세영 최고 24.6%
2008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홍선희 평균 15.8%

13.2. 영화

<rowcolor=#330000> 연도 제목 배역 관객수
1990년 남부군 박민자
꼭지딴 혜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미영
1991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 다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수잔 브링크
1992년 미스터 맘마 영주 227,294명[62]
숲속의 방 소양
1993년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유라 69,743명
19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63] 강민주
마누라 죽이기[64] 장소영 344,900명
1995년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은재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주영
1996년 고스트 맘마 차인주 257,688명
1997년 홀리데이 인 서울 호텔 전화 교환수
베이비 세일 지현
편지[65] 이정인 724,747명[66]
1999년 마요네즈 아정 95,875명[67]
2000년 단적비연수[68] 616,349명[69]

13.3. 광고

14. 수상 경력

<rowcolor=#330000> 연도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0년 제11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남부군
인기스타상
1991년 제15회 황금촬영상 신인여우상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제29회 대종상
제12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인기상
제13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미스터 맘마
TV저널 올해의 시상식 탤런트 부문 최우수상 질투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
제31회 대종상 여자 인기상 미스터 맘마
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숲속의 방
TV저널 올해의 시상식 탤런트 부문 우수상 폭풍의 계절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94년 제3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제32회 대종상 여자 인기상
제18회 황금촬영상 인기여우상
제15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사랑의 향기
1995년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인기상 마누라 죽이기
제33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제16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째즈, 아스팔트 사나이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인기상 고스트 맘마
제18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MBC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with 안재욱)
별은 내가슴에
대상 별은 내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1998년 그리메상시상식 최우수 여자 연기자상 그대 그리고 나
제25회 한국방송대상 여자 탤런트상
제19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편지
1999년 제3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인기상 마요네즈
2005년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with 손현주)
장밋빛 인생
여자 네티즌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2006년 제42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2008년 제29회 청룡영화상 명예 인기스타상[70]
MBC 연기대상 공로상
2014년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1] 2006년도에는 조사 결과가 없다. [2] 틀: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 참고. [3] 2010년 최진영과 합장되었다. [4] 프로필상 키는 164cm였다. 현재의 한국 여성 평균보다도 큰 키다. 최진실의 귀여운 이미지 때문에 작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작은 키는 아니었다. [5] 2020년 11월 20일 가수로 데뷔했다. # [6] 사망할 당시 온 가족이 강남중앙침례교회에 출석하였다. [7] 어렸을 적 얼굴에 주근깨가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8] 유년 시절 가정형편으로 쌀이 아닌 수제비가 주식이 되어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9] 잠이 많아 어머니가 붙여준 별명이다. [10] 연예계 데뷔 후 미디어 언론에서 불린 별명 [11] 진실=True [12] 1990년대 당시에는 김국진, H.O.T. 등과 함께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실제 1998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최진실은 여자 탤런트 부문 2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1위는 김희선. [13] 현재는 국민MC로 불리는 유재석이 연예계 최정상의 위치를 유지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일화지만 무명이었던 유재석을 MBC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메인 MC로 추천했던 인물이 바로 최진실이었다. [14] 그나마 실패했던 작품은 2004년 MBC에서 방송된 장미의 전쟁이었는데, 당시 조성민과 이혼 다툼을 하고 있던 시기라 인기가 하락해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외면했다. [15] 물론 메인 MC 3명(강호동, 유세윤, 올라이즈 밴드)보다 연예계 데뷔가 훨씬 선배이기에 조심스러워했던 면도 있었다. [16]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을 때였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이 이혼을 하면 이에 따른 여파로 상당기간 공백기를 가지는 일이 흔했을 정도. 이전 시대인 1970년대~1980년대까지는 여배우가 이혼하면 아예 은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부정적이게 받아들여졌다. [17] 환희, 준희가 한 개인으로서는 연예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건 없지만, 여전히 높은 인지도와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바탕은 최진실의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18] 채시라, 김희애 등 역시 그랬는데, 주 수입을 CF모델료로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19] 지역민방이 생긴 1995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한정 신생 민영방송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제시함으로써 전국 방송 제한에 따른 손해(CF 계약 만료 등)를 메꿔주었다. 즉 MBC나 KBS는 전 지역으로 송출이 되나 SBS는 수도권만 송출이 돼 광고 효과가 떨어져 광고주 입장에서 SBS 출연 배우는 광고 모델로서 메리트가 떨어졌다. [20] 전국 관객수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 [21] 최불암, 조용필, 채시라, 심은하, 배용준, H.O.T., S.E.S 등 여러 스타들과 함께 출연했다. [22] '해방 이후 지난 50년간 활동한 우리나라 모든 연예인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응답자에게 최대 3명을 요구함. [23] 출처는 갤럽DB [24] 1위는 1995년 이후 연예계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 김국진이, 2위는 흑백TV 시절부터 국민적 인기를 누린 20세기 한국 최고의 연기자 최불암이 차지했고, 엄청난 가창력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1980년대 연예계를 리드한 조용필이 3위, 1990년대 말 최고의 인기를 누린 시대의 아이콘 김희선이 4위였다. [25] 2000년 상반기엔 해당 조사에서 4위였다. [26] 1996년 영화《고스트 맘마》로 영화부문 인기상을 수상했다. [27] 정윤희- 황신혜- 김희선- 김태희가 대한민국 정석 원탑 미녀 계열이다. [28] 귀여우면서 분위기 있는 [29] 일명 당나귀 귀, 요정 귀, 원숭이 귀 [30] 아들의 귀 모양이 최진실의 아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최진실 귀 모양과 닮았다. [31] 유작 드라마 '내 생에 마지막 스캔들'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정준호는 최진실 사망 후 인터뷰를 통해 "당시 드라마를 촬영하며 최진실을 가까이서 지켜 본 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평소 우울증 같은 게 없었다."라고 언급했었다. [32] 데뷔 후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최정상에 올랐을 때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떨어져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꿈을 자주 꿨고, 이후 국민배우로 안정기에 들어섰음에도 안 좋은 기사가 하나라도 나면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잠을 설쳤다고 한다. 때문에 1990년대부터 수면제를 복용했다. 신경성 위염도 심해서 스케줄 도중 헛구역질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33] 최진실과 친오누이처럼 가까이 지냈던 배우 박중훈은 최진실에 대해 "인간관계를 맺을 때 뒷생각을 잘 못하는 편이었고 있는 그대로 사람을 대하는 쪽이었다"라고 언급했다. [34] 절친 이영자가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MBC < 지피지기>와 tvn 현장토크쇼 <현장토크쇼 TAXI>에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며, 홍진경이 최진실에게 뜸들이며 “ 김치 사업 홍보에 필요한 인터뷰가 필요한데...”라고 어렵게 말을 꺼내자 비속어를 섞어가며[71] “카메라 들고 당장 안 오냐”고 했던 일화는 홍진경이 < 힐링캠프>에서 말한 바 있다. 그 外, 친구가 하는 사업에 노개런티로 홍보모델 했던 경험도 있으며 영화 감독, 드라마 감독, 드라마 작가와의 의리로 출연했던 작품들이 꽤 있다. [35] 결혼 전 MC 진행자의 질문에 말끝을 얼버무리며 장난스레 옆에 있는 동료에게 대답을 떠넘기는 모습을 꽤 볼 수 있으며, 시상식에 참석할 때 안정제를 먹은 적이 있다. 그 시절 톱여배우들이라면 대부분 거치는 MC, 사회를 진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가 2008년에 첫 토크쇼를 진행했다. [36] 현재 유재석, 이승기와 같은 이미지라고 보면 된다. [37] 연예계에서 사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맥이 넓었던 인물로는 김을동이 있다. 김을동은 후배 배우들의 연기 지도를 주로 도맡았고 유동근, 박상원 등 그녀에게 연기를 배운 배우들이 모두 A급 배우로 성장하면서 김을동 사단 소리를 들었다. [38] 최진실은 이승연과 성향이 잘 맞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 연기 합을 맞춰보고 싶어했다. 특히 <델마와 루이스> 류의 워맨스 영화에 같이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연예계(드라마, 영화, 예능 등)에서는 2010년대부터 워맨스, 브로맨스 소재가 대거 등장. <델마와 루이스>(1991년)는 대표적인 워맨스 영화로 워맨스, 브로맨스 영화의 시조새쯤 된다. [39] 두 번째 결혼하고 사실 그때 굉장히 마음이 안 좋았었다고. [40] 정확히는 최진실이 방송에 나온 유재석을 보고 재능있는 코미디언이라 생각하여 친분이 있던 PD에게 목표달성 토요일의 코너 <스타 챔피언>의 MC 자리에 유재석을 적극 추천해서 유재석이 진행을 맡았는데 이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유재석이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MC를 맡게 된 것. [41] <진실은 천국에서라도> 피처링 김희선은 동명이인으로 배우 김희선이 아니라 보컬 트레이너 김희선이다. [42] 원래 유가족들은 매장을 계획했지만, 중간에 부검이 실시되면서 화장장으로 바꿨다. [43]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기호 6번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문재인의 양강구도에만 세간의 초점이 맞춰져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0.17%를 득표하여 3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해당 선거에서 양강구도가 극심했음을 방증한다. 부인은 김영란 대법관인데 '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소위 김영란법)'을 입안한 그 분 맞다. [44]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역임했다. [45]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46] 애당초 최진실은 아들 '환희'와 운을 맞추어 딸의 이름도 '신희'로 지으려고 했으나 조성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민'으로 정했었다. [47] 여의도에 위치한 '쌍마스튜디오'는 연예인들의 증명사진 단골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48] 1999년 모습으로 추정된다. [49] 사망 초기에도 그대로 사용하다가 고인드립 취급받기도... [50] 텔레비전 드라마 데뷔작 <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1988년), 출세작 < 질투>(1992년), 연기 대상작 < 그대 그리고 나>(1997년), 마지막 작품 <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등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다. 1990년대에 MBC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배우가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라 방송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거다. MBC를 드라마 왕국으로 이끈 주역이다. 애초에 MBC 특채 출신이다. [51] 김구라는 2002년 10월 19일 '홍대 쌈지 스페이스'에서 '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을 부르면서 임신 6개월차 최진실을 살인교사범으로 모함한 자. 대중은 최진실이 대인배라는 걸 목격하며 최진실을 응원함. [52] 이 프로그램은 경기도, 인천광역시에서만 송출되는 지상파 방송. 서울특별시는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방영. [53] 대본을 외울 때, 무서운 영화를 볼 때, 촬영에 들어가기 전 긴장할 때 자신도 모르게 물어뜯었다고 했다. [54] 못 먹으면서 자라 소화 능력이 안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나 돈가스 같은 음식을 먹으면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한 채로 트름하며 다닌다고. [55] 특히 면종류 [56] 최진실의 화장기 전혀 없는 맨얼굴이 강아지상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고르자브종 말티즈를 닮았다. [57] 정치색은 밝힌 적이 전혀 없고 중립 입장이었다. 다만 신한국당 홍보모델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으며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몽준이 창당한 국민통합21의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적은 있다. [58]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59] TV드라마 첫 출연작 [60] 박범신 작가의 동명의 중편소설이 원작이며, TV드라마 첫 주연작. [61] 특별 출연 [62] 1992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 [63]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제3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작품 [64]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인기상만 주야장천 받다가 드디어 주연상 획득. [65] 청룡영화제 최다 관객상 수상작 [66] 1997-98년 한국 영화 흥행 1위 [67] 전국 관객 약 25만 명 추정. 기혼 여성 관객들에게 인기를 얻은 작품. 1999년 설 연휴 기간 쉬리의 흥행 속에서 나름 선전. [68]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년) 속편 [69] 전국 관객 약 177만 명. 손익분기점 상회. [70] 1990년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거의 매년 올랐었지만 인기상만 주구장창 타갔었다. 2000년대에는 결혼 전 개봉한 <단적비연수> 이후 영화를 아예 찍지 않았으며 결국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은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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