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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1e42><colcolor=#ffffff>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 No.V3 | |
조지훈 趙智薰|Cho Ji-Hoon |
|
출생 | 1979년 7월 4일[1] ([age(1979-07-04)]세)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김제 조씨 (金堤 趙氏)[3] |
신체 | 172cm[4]| A형| 왼손잡이 |
가족 | 배우자 신선미(2011년 11월 19일 결혼 ~ 현재) |
학력 |
서울 용문고등학교 (졸업) 수원대학교 ( 체육학 / 학사) |
현 소속 (2024년 기준) |
롯데 자이언츠 (2006~ / KBO 리그) |
경력 |
안양 SBS 스타즈 (1999~2001 /
KBL) 원주 동부 프로미 (2006~2008 / KBL) 부산 kt 소닉붐 (2009~2010 / KBL) |
한화 이글스 (2001 /
KBO 리그) KIA 타이거즈 (2002~2003 / KBO 리그) |
|
구미-성남 한국도로공사 (2006~2011 /
V-리그)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2008~2011 / V-리그) |
|
춘천 우리은행 한새 (2006~2008 /
WKBL) 부산 BNK 썸 (2020~2021 / WKBL) |
|
등장곡 | Guns N' Roses - Sweet Child O' Mine |
현직 | 엔터트루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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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응원단장.
1999년 한국프로농구의 안양 SBS 스타즈 응원단장으로 데뷔를 했다. 2001년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으로 KBO 리그에 데뷔한 이후 KIA 타이거즈를 거쳐 군 제대 이후인 2006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별명은 쪼리 또는 쪼단으로 불리며 롯데 자이언츠 응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2024년 기준 19년째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역대 KBO 리그 응원단장 중 단일 구단에서 가장 오랜 기간 연속 재직한 응원단장이며[5][6], 롯데 자이언츠 팀 응원 문화 발전뿐만 아니라 KBO 리그 특유의 응원 문화 확립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직 치어리더 박기량과 더불어 응원단 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며, 특유의 센스와 열정으로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프랜차이즈의 자랑으로 대접받을 정도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 응원단장 활동 내역
1999년 한국프로농구리그의 안양 SBS 스타즈(現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응원단장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이 당시 안양 SBS 스타즈는 한국프로농구의 인기 정점을 달리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도가 가장 낮은 비인기팀(...)이라서 홈 경기장에 많이 와봐야 1,000명 오던 수준이었으며[7] 앳된 얼굴로 "제발 좀 응원좀 해주세요..ㅠㅠ"라고 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그리고 2001년에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을 시작으로 야구계에 들어오게 된다.[8] 2002년부터 2003년까지 KIA 타이거즈 응원단장이었지만[9] 군대를 가며 김주일에게 자리를 내준 뒤 2005년 전역 후 농구팀 서울 삼성 썬더스의 단장으로 돌아왔고, 2006년부터 성민재[10] - 남성훈[11]의 뒤를 이어서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을 맡고 있다. 전임 응원단장의 모습을 보려면 이곳을 참조. 처음에 시작했을 땐 "1년간 등록금만 벌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지금까지 와버렸다고 한다.
2013년 이후에는 겨울 종목의 응원단장을 별도로 맡지 않았으나 경기일정에 따라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응원단장을 맡는 장면이 나오는 등 간간히 보이기도 했으나 오직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장만을 전담하고 있었다. 열외로 2020-2021 시즌에는 같은 부산 연고의 첫 여자농구팀인 부산 BNK 썸의 응원단장을 한해 맡기도 했다.
또한 부산 관련 가요가 나오는 예능이나 다큐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고 있다.
3. 응원가
올드팝을 주로 활용하여 전 세대를 아우르는 높은 퀄리티의 응원가를 뽑아내며, 타구단 팬들에게도 극찬을 받는다. 응원가 가사가 짧고 단순한 것이 특징인, 챈트형 응원가의 극단인 스타일이다.[12] 특히 오를 매우 많이 사용해서, 롯데 응원가의 '오'만 모아놓은 영상이 나올 지경이며, 우스갯소리로 조지훈이 아니라 오지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가장 대표적인 응원가가 강민호의 응원가.[13] 이것은 2007년 이전엔 선수 응원가가 없어 본인이 노리고 만든 첫 작품이라 한다. 그리고 기아 타이거즈 응원단장 재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대급에 들만한 이종범과 장성호의 응원가를 만든 사람도 바로 이분.[14] 또한 로이스터 매직과 양승호 감독의 재임기 시절 호성적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특히 2010년 김주찬- 조성환- 홍성흔-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 손아섭- 전준우- 박기혁의 응원가 라인업은 아직도 회자될 업적이며, 팀 응원가인 부산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승전가를 연이어 부르는 패턴을 정착시킨 것도 조지훈의 업적이다.외국인 선수들의 응원가의 퀄리티도 매우 높아[15], 카림 가르시아의 응원가는 야구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응원가로 유명했으며, 가르시아 이후의 루이스 히메네스[16]를 비롯한 짐 아두치, 앤디 번즈[17], 카를로스 아수아헤[18], 딕슨 마차도, 빅터 레이예스 등의 응원가도 명곡으로 손꼽힌다. 워낙 응원가가 잘 뽑힌 까닭에 훗날 가르시아가 한화로 되돌아왔을 때 가르시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한화에 양보하기도 하였다.
조지훈의 응원가 녹음 스타일은 크게 2013년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뉠 수 있는데, 2013년 이전에 제작된 응원가는 MR만 나오고 응원가 보컬은 녹음하지 않았다.[19][20] 그러나 2013년 이후에 제작된 응원가부터는 팬들을 위해 응원가 보컬도 같이 녹음하였는데[21], 당시에는 이에 따른 호불호가 갈렸으나 현재는 그런데로 정착이 되었다. 그리고 가사에 '날려버려'를 거의 쓰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리고 선수들의 첫 타석에는 선수 개인의 응원가를 틀지 않고 팀 응원가와 안타를 기원하는 응원가를 트는 스타일의 응원 유도[22]를 하였는데, 소속팀 롯데의 공격력이 2013년 이후 급속히 나빠지자 2014년 이후엔 그냥 첫 타석부터 응원가를 틀어 응원을 유도하는 스타일로 변하였다.[23] 또, 다른 응원단장과는 다르게 바뀌는 응원가를 비시즌에 선공개하는 경우는 없고 시범경기 막바지나 홈 개막전에 공개한다. 물론 반응은 매우 좋다.
다만, 2017년부터 불거진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 이후에 나온 응원가들은 평이 좋지 않다. 물론 이는 기존 기성곡의 저작인격권 협상 과정이 어렵고, 응원가가 저작권 문제에서 아예 자유롭도록[24] 구단 자작곡이나 클래식과 찬송가로 제작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며, 원래 주로 올드팝을 활용하던 조지훈의 특기가 발휘되기 어려운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근데 그럼에도 기복이 심해지긴 했지만 좋은 응원가가 많이 나오니 참 대단한 부분.[25] 역시 조지훈은 조지훈이다.
응원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롯데 자이언츠/응원가를 참조. 다만 부산갈매기 등 일부 지역 연고노래는 이전 응원단장들때부터 사용되던 곡이다.
타팀 응원단장들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선수 이름을 외칠 때 성과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26]
4. 경력
자세한 내용은 조지훈(응원단장)/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5. 시그니처 멘트
자 오늘도 변함없이
사직 야구장을 찾아주신[27] 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1회 응원을 시작하기 전,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항상 외치는 인사말. 원정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멘트는 달라도 이 인사말만큼은 항상 같다.[28]
1회 응원을 시작하기 전,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항상 외치는 인사말. 원정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멘트는 달라도 이 인사말만큼은 항상 같다.[28]
(한 목소리 한 마음으로) 어떻게? 으-뫅에 맞춰서!
초기에는 응원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응원가 선창을 했는데, 그 선창에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말이었으나 지금은 조지훈의 시그니처 멘트가 되었다.
초기에는 응원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응원가 선창을 했는데, 그 선창에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말이었으나 지금은 조지훈의 시그니처 멘트가 되었다.
6. 장점
롯데자이언츠를 맡은 초기에는 마음고생이 심했지만[32] 그 뒤 절치부심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지금은 구도 부산의 도가니와도 같은 사직 야구장을 손짓 발짓 하나로 지휘하며 빈틈없는 응원을 주도하는 명 응원단장이 되었다. 야구장 전체의 분위기를 돋구는 데 매우 능하며[33], 응원팀의 연고지인 부산지역의 사투리를 적극 활용한 응원도 특기이다.[34] 또한 기계적으로 응원가를 무작정 트는 스타일이 아니라, 경기 상황을 봐가면서 분위기에 맞게 팬들을 다독이거나 북돋는 멘트를 매우 적절하게 하기 때문에 팬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다. 그래서 일명 조지훈 존이라 불리는 응원단상 앞 블럭은 미리 예매를 해 두지 않으면[35] 안될 정도로 인기석이다.[36] 그리고 10년이 넘는 경력이 쌓이는 동안 롯데 팬들 사이에서의 입지도 절대적이다.[37] 또 KBO리그의 새로운 팀이 창단할 때마다, 시즌이 끝날때마다 조지훈이 그만둔다거나 팀을 옮긴다거나 하는 소문이 들리면 팬덤에선 난리가 날 정도다. 물론 본인이 직접 언급하길 롯데가 우승하기 전까지는 떠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가 있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을 담당하는 이벤트 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니 떠날 일은 당분간 없을 듯 하다. 다만 최근의 인터뷰나 기사를 보면 언젠가는 현장에서 떠날 생각을 비치고 있어 팬들이 항상 긴장하고 있다.[38][39]비록 부산이 고향은 아니지만 롯부심이 대단해서 롯데의 응원단장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8888577의 암흑기를 깨고 올라간 2008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탈락하는 경기에서 마지막 부산갈매기를 부르며 팬들과 함께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였고,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희대의 역스윕 탈락이 나오며 롯데가 또다시 광탈하자 눈물을 같이 흘리며 팬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7. 단점
다만 소위 말하는 타팀 디스 응원을 한 바가 있어서 타 팀 팬들에게는 원성의 대상이었다. 2012년, 상대 팀의 견제 응원에 대해 'Shut up boy'로 맞서고 있는데 이것을 홈인 사직이 아닌 잠실 등 수도권 구장들에서 써서 비매너라고 대차게 까였다. 그리고 여기에 어느 엘지팬이 항의를 하자, 우리 팬들 즐거우라고 하는 거라고 답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40]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 타 팀 디스 발언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상문이 항의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임정우가 4연속 견제구를 던졌던 희대의 어느 엘꼴라시코 막장경기 날, 상대 팀 선수와 감독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라 분노한 사직아재들의 욕설이 TV에 잡힐 정도가 되자 '상대 팀 견제보다는 경기가 지연되는 와중에서도 고생하는 우리 팀 선수에 대한 응원을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며 상황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계속 시즌을 이어지고 있다.
8. 논란 및 사건 사고
여느 응원단장들이 그렇듯, 조지훈도 2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사건사고에 몇 번 휘말렸다. 다만 워낙 능력이 좋고 롯데 팬들의 지지도가 높은데다, 또 사생활 관리가 매우 철저한 편이기 때문에 다른 응원단장들에 비해서는 사건사고의 횟수가 적다.- 2012년 9월 배트걸 신소정 사건이 터졌을 때 팀장이었던 박기량, 김연정이 신소정을 따돌릴 때도 전혀 말리거나 대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롯데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나 그 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무사히 넘어갔다.[41]
- 2014년, 일반적으로 원정팀 응원석으로 인식되는 3루 내야측에까지 응원단상을 설치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다만, 사직야구장은 홈관중이 대부분이며 원정관중이 드문 점은 감안해야 한다. 또한 3루 내야측에 운영한 응원단상에 보조 응원단장을 투입하여 경험을 쌓게 하였으나 반응이 영 좋지 못했고, 2015년부터 3루에 홈팀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정구단의 공식 응원단이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
- 2014년 4월 16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KBO에서 응원자제 권고까지 보낸 와중에 뱃노래를 앰프로 틀고 응원을 했다. 처음에는 네티즌들도 반신반의 했으나 경기 관람자의 증언이 올라왔다. 선박사고로 300여명이 실종상태인데 아무리 팀의 기존 응원가라지만 뱃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 바다새, 부산갈매기를 틀은 것에 일반 대중은 물론 롯데 팬들까지 황당해하는 상황이었다. #
그리고 논란이 벌어진 후 진정성있는 사과트윗보다 무성의해 보이는 트윗을 남겨 비난 여론이 일었다. 이후 또 한번
사과 트윗을 올렸으나 최초의 사과 트윗이 무성의하여 반응은 좋지 않았다.
- 2016년 4월 13일 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경기에 패한 후 홈 팀인 LG 수훈선수 인터뷰 중에도 앰프를 끄지 않은 채로 응원을 계속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출처 원정팀이어도 경기를 승리했다면 좋은 분위기로 응원을 계속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팀 수훈선수 인터뷰 중임을 빤히 알면서도 앰프를 켜고 응원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 2014년 시즌까지 팬들에게는 유명한, 일명 짭지훈이라는 조지훈을 사칭하는 사람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주로 롯데 응원단이 공식 파견하지 않는 원정경기에 출몰하여 원정팀 응원단상에 직접 올라가 응원을 유도하였는데, 유니폼에 조지훈의 이름으로 마킹을 하고 상대팀에 대한 디스응원을 저질러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문제가 되었다.[42] 특히 대전구장에서 꼴찌한화라 하며 디스한 사건은 홍창화도 분노의 페북을 날렸던 사건으로 유명하며, 그 사건 이후로는 다른 팬들의 비난을 받고[43] 다행히도 더이상은 원정 응원단상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 2019년 6월 13일, 잠실 LG전에서 오지환의 실책성 플레이가 나왔을 때 오지환을 연호시켰다는 글이 MLB파크에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조지훈이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조지훈이 아닌 일부 롯데팬들이 선동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오히려 조지훈은 말렸다는 증언이 여러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옴으로서 논란은 금방 종결됐다.[44]
- 2023년 7월 15일 사직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드림 올스타 팀의 응원단장을 맡았는데, 해당 경기에서 드림 소속 타팀(두산, kt, 삼성)의 응원가를 거의 틀지 않았고 심지어 SSG 랜더스 응원가의 경우는 단 한번도 재생하지 않아 모든 팬덤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반면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를 타 팀에 비해 상당히 과하게 트는 등 편향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며, 이는 나눔 올스타 응원단장을 맡았던 이범형 단장과의 비교로도 이어져 많은 질타를 받았다.[45] 아무리 롯데팬들이 많이 방문하는 사직야구장이라고 해도 모든 팀 팬들이 다 모이는 올스타전이기 때문에 롯데 응원가를 과하게 틀고 타팀 응원가를 별로 안 트는 것은 잘못됐다는 반응이 지배적. 이후 2024년 11월 30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희망 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는 10개 팀 응원가를 골고루 틀어 긍정적인 이미지로 재평가받았다.
9. 여담
- 2011년 11월 19일, 부산 출신의 여성과 웨딩마치를 올렸다.
- 2014년 3월 30일에 방송된 1박 2일에 야유회 강사로 특별출연하였다.
- 2014년 여름 팀의 마스코트 누리와 함께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하였다. 링크
- 2014년을 끝으로 부응원단장을 키우고 자신은 1선에서 물러나려고 했지만 팬들의 반발로[46] 2015년에도 현역으로 뛰게 되었고 현 2024년까지도 계속 현역으로 뛰고 있다. 다만 자이언츠 TV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응원단장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으며 최근에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47] 다만 한가지 약속된 것은 타 구단에서 응원단장을 할 일은 없다는 점이다.
- 2015년 KBO리그를 앞두고 다른 팀으로 옮긴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다. 반면 이적 루머에 같이 이름을 올렸던 김주일은 기아 타이거즈 응원단을 떠나 kt wiz 응원단으로 옮겼다.
- 수원대학교 출신이라 그런지[48] 수원 야구장 롯데 경기에 이따끔씩 목격되는데, 한 번은 단관온 팬 그룹에게 붙잡혀 생목과 호루라기로 응원 리드를 한 적도 있다. 전혀 단합 안되던 원정팬들이 한 번에 단합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었다.[49]
* 2016년 4월 23일 사직 기아전에서,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을 맡은지 10년이 된 기념으로 시구를 했다. 이 시구 이벤트는 사전에 조지훈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이 되었기에[50] 갑작스레 자신이 나오는 전광판에 나오는 영상과 이벤트들을 보고 조지훈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있었다. [사직동930번지] 조지훈 응원단장을 위한 깜짝 이벤트!
- 응원가 저작권 사태 이후 나오는 응원가들이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예전만 못하다는 평들이 있다. 이적 후 맹활약 중인 이병규의 응원가가 계속 나오지 않다. 박현승- 박종윤- 이우민으로 이어지던 라쿠카라차로 떼우는가 하면, 조홍석에게도 이름만 바꿔서 똑같이 라쿠카라차를 썼었다.[51] 민병헌의 응원가도 만든 것이 호불호가 갈려서 그런지 하나 더 내놓기도 했다. 참고로 나오는 응 원 가들이 유난히 전주가 길어 노래 시작은 커녕 전주가 나오는 중에 아웃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2018년 라미고 몽키스와의 콜라보로 대만 응원단상에 올라간 적 있다. 심지어 여기서 라미고가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처음으로 홈 응원단장석에서[54] 우승 세리머니를 보았다.
- 한국시리즈 응원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가 롯데의 응원단장으로 활동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롯데는 2008~2012년, 2017년을 제외하면 가을야구 자체를 못 갔으며, 그나마 저 08~12년, 17년에도 플옵 한번 간 게 최대 진출 기록이다. 심지어는 최하위까지 찍으며 은퇴할 때까지 한국시리즈 응원을 못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사실 더 전에 한화에서 활동했던 2001년에도 한화가 코시에 올라가지 못했고, 기아에서 활동했던 2002~2003년에도 기아가 코시까지는 못 올라갔다.[55] 2023년엔 똑같이 한국시리즈 응원 경험이 없던 LG 트윈스 이윤승 응원단장 마저 2023년 한국시리즈 응원을 지휘하게 되어 현직 KBO 리그 응원단장 중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응원 경험이 없는 응원단장이 되었다. 대신 2012년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 응원 경험은 있다.
- 2022년 10월 8일에 열린 이대호 은퇴식 사회를 맡았다.
- 응원단장과 함께 장내 아나운서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롯데 자이언츠 선수 입단식 및 감독 취임식 에도 사회를 맡는다.
- 조지훈이 은퇴를 하게 되면 사직구장에 조지훈의 영구결번[56] 혹은 그에 준하는 기념물을 세우기를 바라는 팬들도 상당하다. 웬만한 수준의 애정으로는 한 팀에서 오랫동안 응원단장과 아나운서를 겸임하기 힘들기 때문.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 구단주, 아나운서, 팬들에게 영구 결번을 만들어준 사례가 있다.
9.1. 복장
기본적으로 그 날 선수단이 입는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데 홈경기의 행사 때마다 매번 컨셉을 잡고 나온다.[57] 특히 잠실 원정경기에서는 1회초 공격시작전 망토를 두르고 경기장 상단부터 응원단상까지 지나가는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입장하는 컨셉을 하고 있는데 매우 호응이 좋다. 또 구단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구도부산 깔깔이라던지, 밀짚모자나 스카프 등 구단 상품을 적극 착용한다. 수비시에는 롯데 미니 선풍기를 틀고 휴식할 정도다.10. 관련 문서
[1]
양력
8월 26일.
[2]
한때는
전라북도
전주시 출신으로 알려졌으나 본인은 아니고 부모님의 고향인 것으로 밝혀졌다.
[3]
문양공파(文良公派)-곤양파(昆陽派) 24세손 ○곤(○坤)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족보)
[4]
프로필에 키가 기재되어 있지는 않다. 176cm의
박기량과 확연한 차이가 있으나 보통 치어리더들은 굽이 있는 운동화를 신고 활동한다는 점과, 키가 174cm 정도인
손아섭과 나란히 섰을 때
손아섭보다 조금 작게 보임을 감안하면 조지훈의 키는 172cm 정도로 추정된다.
[5]
홍창화도
2006년부터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으나
2008년
SK 와이번스로 잠시 이적한 바 있기에 연속 재직 기록은 조지훈이 더 길다. 원래 이 분야의 기록 보유자는
1982년 프로 원년부터
1995년까지 14시즌 동안
해태 타이거즈 응원단장으로 활동했던
임갑교다.
[6]
또한 응원단장을 시작한 해도 프로야구 10개 구단 응원단장 중 가장 빠르다. 다만 김주일 응원단장은 2002년에 시작하여 쉬지 않고 응원단장을 하지만 조지훈 응원단장은 중간에 공백이 있었다.
[7]
당시 안양 SBS에는
우지원,
문경은,
전희철과 같은 흥행 보증형 슈퍼스타는 없었어도
정재근,
표필상,
김성철 등 빼어난 실력을 갖춘 스타가 있었다. 그럼에도 인기도가 낮았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각 지방의 거점도시(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수원,
청주,
창원,
원주)를 연고로 했던 다른 팀들과 달리, SBS는 연고지
안양의 시장 규모가 작았다. 게다가 홈구장마저도 안양시내에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안양시내 전문대학인
대림대학교 체육관을 빌려 써야 했다. 더구나 SBS 프런트에서도 구단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기에 팀의 인기도가 높아질래야 높아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안양 연고 농구팀의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안양실내체육관이 문을 열고 농구단의 주인이
KT&G로 바뀐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8]
한화 응원단장 시절
김태균 응원가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으나 아닌 것으로 나왔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삼성에는
김용일이 응원단장으로 입문을 했다. 김용일과 더불어 오래된 경력을 지닌 응원단장 중 한 명. 나이는 김용일이 더 많지만, 한 팀에서의 응원단장직은 조지훈이 가장 길다(
롯데
2006~현재).
[9]
그 유명한
이종범 응원가와
장성호 응원가를 만들었다.
[10]
2002~
2004년
롯데 응원단장. 견제 응원인
마를 도입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하필 이 시기는 롯데가 최악의 암흑기(8-8-8)를 달리고 있던, 여러모로 안타깝던 시절이었다.
[11]
2005년 롯데 응원단장. 신문지, 봉다리 응원의 창시자로, 롯데 응원문화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지만, 역시 팀 성적이 부진했고 얼마 후
LG 응원단장으로 스카우트돼 롯데 팬들로부터 완전히 잊혀졌다.
[12]
롯데(자이언츠), 선수명, 오오오, 안타만으로 만든 응원가가 대부분이다.
[13]
이후 강민호가 FA 대박을 치자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다며 강민호에게
식사 대접을 받았다
[14]
그리고 장성호의 응원가는 한화 시절은 물론이고 롯데를 거쳐 kt에서도 쓰였다. 물론 장성호가 롯데 선수일 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특정선수의 응원가가 이렇게 여러 구단에서 쓰인 것은 거의 없는 일이다. 워낙 응원가가 좋으니 여러 팀에서 쓰인 것.
[15]
신기하게 외국인 선수의 응원가는 중독성이 상당하게 만든다.
[16]
이후 팀 응원가로 재활용했다.
[17]
앤디 번즈의 경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이 자신의 응원가로 쓰여서 너무 좋으며
한국을 떠나서도 응원가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8]
워낙 응원가가 중독성 있게 뽑힌 탓에 팬들이 아수아헤가 한국을 떠난다 했을 때 다시는 저 응원가를 못 불러 아쉬워했을 정도. 팀 응원가로 다시 쓰자는 의견도 심심찮게 보인다.
[19]
'뱃놀이'와 '영원하라'를 제외한 팀응원가 대부분과 명곡으로 회자되는
2006년~
2012년까지 제작된 선수 응원가의 대부분. 가사가 녹음되지 않으니 팬들의 압도적인 목소리로 야구장을 채울 수 있었다.
[20]
조성환,
이대호,
전준우,
홍성흔,
이승화,
박현승,
강민호,
박기혁(초창기 응원가), '승리의 롯데,'
박종윤,
앤디 번즈,
이원석,
김주찬,
정수근,
라이언 잭슨
[21]
단,
2017년에는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의 영향으로 모든 선수의 응원가를 MR로 틀었다.
[22]
이는 2013년까지
두산 베어스의 응원단장이었던
오종학도 동일했다.
[23]
하도 야구를 재미없게 해서 팬들마저 리빌딩했다고 평가되는 2013~2014년
김시진 감독 부임 시기에는 너무 형편없는 공격력에 팬들이 응원할 틈도 없을 정도로 참혹하였다. 등장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타자들이 비명횡사했으니 팬들은 물론 응원단장도 김이 새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 것. 결국 필연적으로 응원 스타일이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24]
관련 뉴스를 참조해보면, 비용 문제보다 저작권자와 연락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협상을 위해 메일을 보내놔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고, 어렵게 협상을 해도 통상 계약기간이 2~3년에 불과하기 때문. 이래서 구단마다 응원가를 자작하는 추세로 바뀌고,
LG 트윈스는 응원가 팬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NC 다이노스처럼 아예 작곡가를 한 명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25]
특히 딕슨 마차도와 안치홍, DJ 피터스의 응원가의 평이 상당히 좋다.
[26]
양! 의지!, 나! 지완! 등이 아닌 이대호!, 전준우!전주누~! 등등
[27]
원정시: OO 원정에 함께하시는
[28]
코로나19로 인하여 무관중으로 진행한
2020년에는
롯데자이언츠응원단이라는
유튜브 채널 및
Giants TV에서 사직 홈경기에 한하여 응원단 라이브를 실시간 스트리밍 했다. 여기서의 시작 멘트는 "오늘도 변함없이 텔레비전과 온라인을 통해서 함께해주시는 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
[29]
관중들이랑 다함께 외친다.
[30]
응원가를 부르기 전에 외치는 조지훈만의 시그니처 멘트. 과거 사직야구장의 리모델링 전에는 음향시설이 워낙 안좋다보니 관중들을 응원에 집중시키기 위해 했던 멘트가 이제는 그를 상징하는 멘트가 되었다.
[31]
관중들이 응원을 안할때 하는 맨트중 하나, 예를 들어 조지훈 눈에 보이는 관객이 라면을 먹고 있으면 라면 먹지 말고 일어나세요! 지금은 먹을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라고 한다. 아니면 팀이 높은 점수차로 지고있을 때 분위기를 띄워놓기 위해 관중들을 일어서게 한다. 이게
먹산이 아니니까 다행이지
[32]
처음 단상에 올랐을 때 서울 출신이라 부산 사투리가 어색하고, 무엇보다 부산갈매기 때창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아재들의 맹비난이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저당시엔 야구장의 응원문화가 현재처럼 자리잡지 못하여 치어리더가 단상에서 공연하면 아재들이 야구 안 보이니까 비키라고 하던 시절이었는데, 하필 야구도 지지리도 못하던
암흑기인데다 부산갈매기를 시도때도 없이 틀었으니 아재들의 비난이 수없이 이어졌던 것.
[33]
그래서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 야구장과 울산 야구장은 이벤트를 별도의 장내 아나운서를 두지 않고 조지훈이 전담하고 있다.
[34]
예를 들면 안타를 염원하는 응원에는 '쌔리라', 팬들의 응원이 시원치 않을때는 '그라믄 안돼', 견제구가 자꾸 이어질땐 '마' 등 사투리가 매우 적절한 상황에 쓰인다.
[35]
2020년 사직야구장 기준 1루 내야필드석, 잠실야구장 기준 오렌지지정석 219-222 블럭, 고척돔 기준 스카이 110-111 블럭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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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사직 홈경기 조지훈 존이 시즌권으로 거의 판매되며, 응원단이 파견되는 수도권 팀들도 원정팀 한정 미니시즌권을 판매하니 예매난이도는 더욱 올라갔다. 그나마 2017년 응원단상이 1루 내야 중간에서 익사이팅존 근처까지 내려와서 조지훈 존이 한결 넓어졌다.
[37]
특히 2008년 방영된 EBS 다큐 당신을 응원합니다 조지훈 편을 보면, 감기가 걸린 조지훈을 위해 야구장에 온 팬들이 서로 연락하여 간호사팬과 링겔을 수배하여 투여할 정도로 팬들의 지지가 엄청났다.
[38]
실제로 2014년 시즌에 후임 응원단장을 키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사직구장 3루 내야석에 응원단상을 두고 보조 응원단장을 키웠는데, 팬들에겐 다행히도 다음 시즌부터 3루 보조 응원단장이 폐지되었다. 이후 그 응원단상은 원정팀 응원단이 파견될 경우 사용된다. 또한 응원단장 꿈나무가 응원단상에 올라 응원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39]
이런 생각을 자주 보이는 이유는 이제 본인도 나이가 많이 들었으니 한계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롯데팬들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보니 상시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40]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직에서 견제 대응을 하기가 더 힘든 것이, 일단 견제 대응 응원을 하기 위해선 상대팀의 견제 응원이 있거나 응원이 구장 전체에 들려야 대응이라도 하는데 원정팀 비율이 적어 3루석까지 롯데팬들이 차지할 정도로 홈팬들이 압도적인 입장률을 기록하는 사직구장에서 대응응원을 하는 것은 플레이오프나 올스타전이 아닌 이상 손에 꼽을 정도다.
[41]
사실 이 사건에서 비난은 대부분 박기량이 받아서 김연정이나 조지훈은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의 소속사는 다르기에 응원단장이 개입하기엔 애매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42]
사실 구분은 쉽게 되었다. 외모상으로도 쉽게 구분이 갔으며 등번호도 조지훈은 V3를 달고 있는 반면 짭지훈은 00번을 달았다. 물론 당연히 리드능력도 비교불가였으나, 상대팀 팬들의 입장에서는 조지훈의 이름을 마킹하여 단상에 올라가니 오해받을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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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롯데 팬들도 조지훈 이름 걸고 나댄다고 짭지훈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디스응원을 자주 하면서 더욱 이미지가 안 좋아진 것.
[44]
상식적으로 실책성 플레이에 실책한 상대 선수를 응원단장이 연호했다간 SNS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특히나 KBO 리그 팬덤에서 화력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LG 트윈스의 팬들이 이를 가만둘 리가...
[45]
NC 이범형 단장은 나눔팀에 속했던 다른 팀 응원가를 골고루 공평하게 틀어준데다, 계속해서 드림 팀 단장으로 나선 조지훈이 롯데 팀 응원가만 틀자 보다못해 대신 뷰캐넌과 정수빈의 이름을 연호해 주는 행보를 보이면서 이범형 단장은 타팀 팬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46]
2014년 시즌 부응원단장이 잠실원정경기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였던 적이 있었는데, 응원리드가 미숙하여 팬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47]
자이언츠 TV 유튜브의 해당 영상 댓글엔 무슨 회고전하듯이 인터뷰를 하느냐, 그만둔다 하지마라 등 팬들의 반응이 올라왔다.
[48]
수원대는 화성에 있고 위치로만 따지면 야구장이 소재한 조원동보다는 세류동과 좀더 가깝다.
[49]
2022년 이후부터 롯데자이언츠 수원 원정경기에는 응원단이 파견되기 때문에 현재는 롯데 수원 원정경기에서는 항상 볼 수 있다.
[50]
여담으로 조지훈이 원래 시구자로 알고 있었던
후지코 F. 후지오는 1996년에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51]
다만 후반기에 이병규 응원가가 새로 만들어졌다.
[52]
현재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응원단으로 옮겼으며, 한국식 앰프 응원을 일본프로야구에 처음 도입했다.
[53]
진 토시오가 활동하던 당시 조지훈은 한화에서 활동했다. 진 토시오 인스타그램의 해당 게시글에도 조지훈을 올스타전 응원 당시 롯데 응원단과 한화 응원단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54]
알다시피 롯데는 정규시즌 우승은 1984년 후기 1번 뿐이며, 한국시리즈 우승도 1992년 이후로 못하고 있다. 또한 롯데는 1984년,1992년 2번의 우승순간을 전부 원정경기장에서 맛보았다. 챔피언 유니폼을 원정버전으로만 팔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던 것.
[55]
KBO 리그 최고의 극한응원단장으로 통하는
홍창화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 데뷔해인
2006년에 한국시리즈 응원을 하였다. 그리고 SK 와이번스 응원단을 맡았던 2008년에도 SK 와이번스가 우승해서 뭐 아무튼 우승 경력은 있다.
[56]
다만 영구결번은 반대하는 팬들이 있는데, 이는 조지훈 단장의 등번호가 V3이라(…) 그렇다.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 영원히 없을 예정이라 반대하는 것이다. 물론 그 번호와 관련된 이야기라 그런 것이지 다른 번호였다면, 예를 들어 응원한 경기수 혹은 응원한 햇수라면 조지훈의 이름으로 진작 영구결번이 되었을 것이다.
[57]
예를 들면 2018년에 했던 사직 홈경기 이벤트인 직장인 시리즈에서 아예 넥타이를 맨 직장인 차림으로, 현충일을 겸한 밀리터리시리즈에서는 구형 전투복을 입고 나온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