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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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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조두순
趙斗淳 | Cho Doo-Soon
파일:조두순_240320.webp
출생 1952년 10월 18일 ([age(1952-10-18)]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생지 경기도 안산시[1]
거주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2]
신체 163cm, 70kg[3], O형
학력 국민학교 (중퇴)
병역 면제 (학력 미달)
직업 무직[4]
가족 배우자 (1967년생)
전과 18/19범[5]
범죄 유형 절도, 폭력, 성폭행, 상해치사, 아동 학대 아동 성범죄
전자장치부착법 위반
범행 기간 1970년 ~ 2023년 12월 4일
최종 수감일 2008년 12월 13일 ( 조두순 사건)
2024년 3월 20일 (전자장치부착법 위반)
최종 출소일 2020년 12월 12일 ( 조두순 사건)
2024년 6월 19일 (전자장치부착법 위반)

1. 개요2. 생애3. 성격
3.1. 전문가의 분석3.2. 주변 사람들의 증언
4. 조두순 사건5. 수형 생활6. 출소 후
6.1. 출소 당시의 혼란6.2. 조두순의 거주지6.3. 경찰의 사후 대응6.4.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및 선정6.5. 야간 외출 제한 명령 위반으로 다시 구속
7. 조두순의 배우자8. 진실과 거짓
8.1. 종교8.2. 범행8.3. 발언과 태도8.4. 자녀8.5. 출생지8.6. 출소일8.7. 관련 정책
9. 조두순 사건/관련 사건 사고10. 기타11.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범죄자.

상해치사, 아동 성범죄, 성폭행 등의 중범죄를 수차례 저지른 전과 19범[6]이며 아동 성범죄 사건 중 하나인 조두순 사건의 가해자다.

초등학생에게 끔찍한 성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흉악 범죄자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2. 생애

1952년 10월 18일에 빈민 가정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7] 불교신자이자 대처승[8]이었던 조두순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을 일삼는 막장 부모였으며 그가 10살이었던 1962년 술에 취해 용변을 보던 중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사망했다. 어머니는 중풍 환자였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으며 급우들과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결국 가난한 형편과 학교폭력 가해 사실로 인해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조두순은 비행을 일삼다가 18세였던 1970년에 대전시에서 자전거를 훔치는 것으로 공식적인 첫 범죄를 저질렀다. 검거 당시 초범이었고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보호자 감호 처분을 받았다.

2년 후 대전에서 좌판 장사를 하던 또래 아이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죄목으로 소년원 처분 1년 6개월을 받고 소년원에 들어가서 1년 6개월 간 수용 생활을 했고 소년원에서 나온 뒤 상습 절도 행각을 하여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수용생활을 했다. #

1974년에 중풍을 앓던 어머니가 사망했다. #

20~30대에는 구두닦이, 음악다방 DJ, 노점 운영 등을 했으며 알코올 의존증에 가까울 만큼 음주도 즐겼다. 음악다방 DJ 시절엔 여러 여성들과 동거를 하는 등 성생활이 문란하였다고 하며 이 시기에 동거녀 폭행으로 징역살이를 한 적도 있다.

1983년 서울특별시 도봉구 미아동[9]에서 19세 봉제공장 여성 직원을 마구 폭행한 뒤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강간치상)한 혐의로 기소되어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강릉교도소에서 복역하였으며 삼청교육대까지 드나드는 등 범죄를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15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했고 아들도 태어났으나 아들은 생후 3개월에 사망했다.

1995년 12월 21일 노숙자 자립원에서 친구 A씨와 술을 마시다 합석한 다른 노숙자 B씨가 "노태우, 전두환 만세"라고 외치자 발길질과 주먹으로 B씨를 무차별적 폭행해 숨지게 했다.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조두순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조두순은 삼청교육대 출신이기 때문에 원한이 깊었는데 노숙자 B씨가 두 사람을 찬양해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경찰 조사에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두순, "삼청교육대 출신인데 전두환, 노태우 만세 소리에 그만" 전문가들은 5공 시절의 삼청교육대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심신미약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겨우 2년을 받았다.[10]

이후에도 이런저런 중범죄를 저지르면서 약 10여 년 동안 교도소를 여러 번 들락날락하던 당시 전과 17범 조두순은 2008년 말 18번째 범죄로 8세 여아를 성폭행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008년 이전에 저지른 주요 전과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출처는 2018년 12월 4일자 MBC PD수첩 조두순 트라우마.[11]
사건 체포 혐의 형량
1 1970년 절도 보호감호
2 1972년 협박 및 갈취 징역 1년 6개월
3 1977년 상습절도 징역 8월
4 1983년 5월 22일 강간치상 징역 3년
5 1986년 7월 31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징역 8월
6 1988년 9월 1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벌금 30만원
7 1992년 4월 14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벌금 30만원
8 1995년 5월 30일 상해 벌금 70만원
9 1995년 12월 21일 상해치사 징역 2년
10 1999년 7월 23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벌금 30만원
11 1999년 8월 17일 상해 징역 6월
12 2001년 10월 14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벌금 150만원
13 2002년 1월 2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공무집행방해 징역 6월
14 2003년 11월 10일 폭력행위 등(야간, 공동상해) 벌금 150만원
15 2005년 5월 7일 폭력행위 등(야간, 공동상해) 벌금 400만원
16 2006년 7월 19일 상해 벌금 100만원
17 - (알 수 없음)[12] -

3. 성격

3.1. 전문가의 분석

전문가들은 조두순이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분노로 연관짓고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위협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 간헐적 폭발 장애라고 분석했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스스로의 행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성폭행, 상해치사 등 강력 범죄가 포함되었다는 것인데 살인이나 강도 등을 제외한 범죄는 2000년대 이전이나 이후나 큰 차이가 없었고 조두순은 매번 징역 2~3년만 살고 나왔다.

이런 단기형이 반복되어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느라 사회 적응도 못 하고 20세기 한국 교도소의 특성상 교화 프로그램도 없어 인생이 꼬일 때마다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수정 교수는 "조두순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여전히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건 천만다행이며, 전자감독을 실시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3.2. 주변 사람들의 증언

주취 감경에 대해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 739회 <우리는 왜 술을 용서하는가?> 편[13]에서 조두순의 평소 행실에 대해 나오는데 항상 술에 취한 상태로 돌아다니며 길거리에 드러눕거나 오줌을 지리고 술자리가 보이면 염치 없게 끼어들어 얻어먹곤 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조두순과 10년 가까이 지낸 지인에 따르면 힘이 좋았고 소주를 대접에 마시고 반주로 소주를 3병이나 비울 정도로 주량이 좋은 술고래였다고 한다.

4. 조두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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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은 조두순이 저지른 18건의 범죄 사건들을 모두 포함하는 명칭이지만, 그 중에서도 아동 성폭행 및 중상해를 저지른 사건이 가장 심각하고 인지도가 높아서 수식어 없이 조두순 사건이라고만 하면 보통은 아동 성폭행 사건을 뜻한다. 따라서 본 문서에도 해당 사건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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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수형 생활

파일:조두순.jpg
아동성범죄로 징역 12년 판결 후 경북북부제2교도소 독방에 수감되었다가 경북북부제1교도소로 이감되었고 서울남부교도소로 다시 이감되었다.[14]

"12년 뒤 두고 보자, 열심히 운동해서 힘을 키우겠다."며 이를 갈고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검거한 안산단원경찰서 강력팀장에게 "교도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나올 테니 그 때 봅시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었으며 따로 특이행동을 보이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수형 생활을 하는 중이었으며 자신에 대한 뉴스와 여론도 직·간접적으로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감옥에 있으면서 출소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 게 공개되었는데 자신은 술에 취해서 전혀 기억이 없으며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면 천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까지 했다고 한다.[15] 다만 처벌과는 별도로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경우는 꽤 많다.

범죄분석관의 분석 결과 사이코패스로 밝혀졌다. 다른 관련 기사를 보면 강호순 이상의 사이코패스라고 한다.[16]

2018년 11월 22일에는 출소를 2년 앞두고 성범죄 방지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서 포항교도소 이감되었다.

교도소에서는 별 사고를 치지 않고 잘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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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출소 후

강간범을 보호하는 나라가, 나라냐?!
출소 당일 시위대가 외친 구호
2020년 12월 12일 오전 6시 46분경 만기 출소해 관용차량을 타고 주소지인 경기도 안산시로 돌아갔다. # 이미 인터넷 등지에 "교도소를 찾아가 출소하는 조두순을 응징하겠다"는 등 각종 협박이 난무하고 대중의 관심도 집중된 만큼 법무부 측에선 출소 장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알려진 조두순의 수감 장소는 서울남부교도소였다.

조두순을 조용히 출소시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감한 후 출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일부의 시각이었으나 결국 서울남부교도소에서 관용차량을 통해 출소했다. 경찰의 호위 아래 안산보호관찰소로 이동해 신원 확인과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나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숙이고 다시 관용 차량으로 자택으로 이동했다.

"왜 출소자를 정부가 관용차로 모셔가느냐", "특혜 아니냐"며 비판이 일었지만 법무부는 "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동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자발찌 훼손이 될 수 있어 관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체 조건상 이동 곤란 등의 이유로 보호관찰관이 차량으로 동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항변했다.

6.1. 출소 당시의 혼란

서울남부교도소와 안산보호관찰소, 조두순의 거주지 부근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심지어 조두순을 호송하는 길에도 사람들이 관용차를 발로 차거나 유리를 깨고 올라타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조두순의 거주지 주변에 경찰이 배치되어 사람들을 통제했다.

단순히 조두순에게 분노하여 모인 사람들이나 유명한 범죄자라서 관심 때문에 모인 사람들, 여성단체, 보수단체, 조회수와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사이버 렉카[17] 온갖 사람들이 조두순의 거주지로 모여들면서 순식간에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경찰의 통제가 있어서 진입은 못 하지만 근처 주민들이 시끄러워하며 불평을 하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었던 등 조두순 1명 때문에 일대가 난장판이 돼서 주민들에게 큰 민폐를 끼쳤으며 애꿎은 인근 주민들은 통행 및 주차 방해나 소음 문제 등의 피해를 겪었다.[18] 일부 유튜버들은 조두순이 사는 빌라의 가스를 잠그기도 했다.[19]

조두순의 출소 당일은 코로나 19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확산세가 가파르게 증가하던 시기였는데 이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반하는 행위이며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터지면 또 다른 피해로 번질 수 있었다.

또 경찰이 떠날 때 보복을 가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도 굳이 수십 명의 경찰들이 집중 보호를 하고 있을 때만 격하게 항의를 하면서 "그저 유명세를 위한 보여주기식 항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출소 3일 뒤 눈까지 쏟아지자 조두순 집 앞에 남아있는 사람은 경찰 외엔 아무도 없었다.
여러분들의 행위는 집시법에서 금지된 행위로, 사법처리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조두순 출소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제지하는 경찰
당시 국민 정서가 굉장히 험악했기 때문에 경찰들도 "왜 범죄자를 보호하냐"고 욕을 먹었는데 이들은 그저 상부의 명령과 법에 따라 행동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본심과 별개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조두순을 보호하지 않으면 경찰들이 직무유기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 경찰들이 호송차량 위에서 난동을 부리는 유튜버를 제지할 때 "우리도 같은 마음이고 다 이해하니까 그만하라."고 정중하게 말했다고 한다.

조두순 출소 당시의 혼란이 사회적으로 깊게 인상이 남은 탓인지, 베테랑2[20], 무도실무관 등 경찰과 보호관찰관을 주제로 한 창작물에서도 이런 출소 당시 혼란을 모티브로 하여 다룬 장면이 있다.

6.2. 조두순의 거주지

조두순은 거주지를 변경할 때마다 이웃들에게 신상정보를 담은 경고문이 발송된다. 필요에 따라 위치추적장치는 기간 연장이 가능하며 조두순은 부착 기간 동안 전담 보호관찰관이 배정되어 24시간 보호관찰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조두순이 살게 될 동네 주민들의 불안함과 집값 문제 등으로 인한 님비현상이 충분히 우려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두순의 출소를 반대하는 청원, 주취감경 폐지 청원 등도 게재 되었다. 하지만, 답변에서도 나와있듯이 대한민국 현행법상 재심은 불가능하며[21] 출소를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조두순의 새로운 범죄가 발각되거나 출소 후 또 다시 범죄를 짓지 않는 이상 다시 교도소에 수감시키는 것은 보호감호를 부활시키지 않으면 할 수 없다.

2020년 출소 후에는 수감 전에 본인이 거주 했고, 수감 후에도 아내가 거주하는 안산시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안산보호관찰소가 7월 사전면담을 시작으로 조두순의 재범 방지를 위한 전문프로그램 교육을 실시할 방침이었다. 출소한 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

안산 시민들도 즉각 반발했다. #1 #2 특히 이 문제를 이후 직접적으로 담당하게 될 윤화섭 안산시장도 돌아오는 것 자체가 공포라며 법무부, 경찰 등과 협력해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무부 측에서 보호수용법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오고 하술하듯 피해자 가족이 이사 가는 방법 외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 어려워지면서[22] 경기도지사 이재명 격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등 여러 지자체장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문제였다.

"가해자가 이사를 가야지, 피해자가 이사를 가야 하냐"고 주장하던 피해자 가족은 결국 9월 23일 이사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두순이 안산으로 돌아올 것을 막을 대안이 나오지 않자 피해자 가족이 직접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1, #2[23]

조두순이 거주하는 집주인이 조두순 아내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내는 "갈 곳이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하며 집주인은 "당시 계약한 사람이 조두순 아내인 사실을 몰랐다"고 했는데 조두순의 입주로 다른 세입자들도 불안하다며 이사 가겠다고 해서 말한 것이라고 한다. #

2022년 11월 23일 국민일보에서 11월 17일 조두순의 아내 오모씨가 조두순의 직업을 회사원으로 속여 선부2동 3층짜리 다가구주택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의 월셋집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11월 28일 기존 와동의 임대차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집주인이 퇴거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신상이 탄로나 임대인이 계약을 취소하려고 하자 아내 오모씨가 위약금으로 배액 상환(2천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편 해당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조씨 부부의 신상을 공유했으며 11월 초 원곡동 고잔동에서도 월세 계약을 하려고 했으나 조두순의 신상이 드러나면서 계약이 파기된 바 있다. # #

2024년 10월, 조두순은 경기 안산시 와동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 원래 살던 곳에서 2㎞ 떨어진 곳인데 기존에 살던 곳에서 월세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6.3. 경찰의 사후 대응

법무부는 조두순의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해 1:1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국민들의 주목을 크게 받아서 이런 수준의 조치가 출소 전에 고려되는 중인 것이지 사실은 이런 조치조차도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채 출소한 아동 청소년 성범죄자가 재범한 사례가 조두순 출소를 몇 달 앞둔 2020년 2월에 이미 있었다. #

전과 18범이자 최악의 성범죄자로 평가받는 조두순의 추가 범행을 막을 자는 약 1,400명의 보호관찰관 중에서 뽑혔다. 법무부는 "고심 끝에 보호관찰관 중에서도 책임감이 가장 강한 공무원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업무 특성상 누군지 자세히 밝힐 순 없다고 했지만 "정신적으로 단련된 최고의 엘리트"라고 설명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무술 유단자와 같은 기준으로 선정된 건 아니라고 했다. 조두순 출소 후 최소 6개월은 A씨라는 익명의 보호관찰관이 그를 전담한다고 했다. #

법무부의 보호관찰자 선정과는 별개로 안산시에서 무도실무관 6명을 별개로 모집해 우범지역에 투입할 예정으로 전해졌으며 추가로 청원경찰 6명을 더 뽑아 우범지대에 투입할 예정이다.

2020년 11월 17일 조두순의 출소가 가까워오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조두순의 거주지 관할인 안산단원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으로 구성된 조두순 대응팀으로 24시간 밀착 감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정한 준수사항을 조두순이 위반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조두순 대응팀이 신속하게 출동해 대응할 계획이며 불시에 조두순을 찾아가 각종 위반사항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경찰청장 “조두순, 출소 후 음주금지 검토…24시간 밀착 감시”

또 조두순의 아내가 마련한 새집의 출입구 근처에는 방범 카메라와 특별방범초소[24]가 설치되어 경찰관들이 24시간 순찰을 돌 예정이라고 한다. # 순찰 병력도 기동순찰대, 경찰기동대 등 가용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늘린다고 한다. "재범 막겠다"…경찰, 조두순 24시간 밀착감시 돌입

일각에서는 공권력과 사법부의 대응에 대해 "조두순은 역대 최악의 범죄자이긴 하지만, 대형 범죄조직도 아닌 일개 개인인 조두순 단 1명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조치는 너무 과도하다"거나, "인간의 감정이 아닌 법에 의해 통치되는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거나, "여론의 눈치를 보며 조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나 피해자 지원은 어디가고 가해자 보호 겸 감시에만 이렇게 많은 비용을 쏟느냐는 의견도 있다.

6.4.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및 선정

조두순은 2020년 12월의 첫 외출 때, 배우자와 함께 행정기관을 찾아 생계곤란을 이유로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을 했으며, 2021년 1월 말에 심사가 통과되어 국민들의 어마어마한 반감을 샀다. #

조씨 부부는 이에 따라 기초연금 30만원, 2인 기준의 생계급여 62만여원과 주거급여 26만여원 등 매월 총 120만원 가량의 복지급여를 받는다. 조두순이 만 65세를 넘었고 배우자는 조두순보다 15세 연하로 만 65세 이하이나 만성질환과 신분 노출로 인한 취업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고, 본인들 소유 주택도 없어 복지급여 지급 대상에서 배제할 사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두순이 흉악범죄자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엄연히 정부에서 주는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기는 하다.[25], 전과자 신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26] 이런 형편으로 생계가 막막할 경우 복지 제도의 도움이라도 받지 않으면 다시 범죄에 손을 대기 십상이다. 범죄자 따위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오지 않을 수 있었던 무고한 희생자가 또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6.5. 야간 외출 제한 명령 위반으로 다시 구속

2023년 12월 4일, 조두순은 아내와 싸운 후에 한밤 중에 40분이나 무단 외출을 하여 야간 외출 제한 명령을 위반했다. 이로 인해 불구속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았다. #
2024년 3월 11일, 1심 검찰은 조두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 2024년 3월 20일 조두순은 야간 외출 제한 명령을 어기고 외출하여 징역 3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3년 2개월만이다. 그러나 2024년 3월 22일, 검찰과 조두순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였다. #

2024년 5월 29일,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조두순과 검사가 제기한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

2024년 6월 19일, 형기를 모두 채워 수원구치소에서 만기출소했다.

7. 조두순의 배우자

2019년 5월 29일 실화탐사대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출소를 1년 가량 앞둔 조두순은 부인과 이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소 후에는 안산에 있는 아내의 집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고 결국 예상대로 조두순은 아내가 있는 안산으로 갔다.

조두순의 아내는 그야말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아주 딱일 정도의 태도를 보였다.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술을 안 먹으면 집에서 잘한다"고 조두순을 두둔하는가 하면 이에 그치지 않고 기자들이 피해자가 근처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런 건 나는 몰라요, 신경 안 쓰니까. (피해자들이) 어디에 사는지, 어디 살고 그런 건 나는 모르니까 그런 거 관심도 없어요."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아내는 조두순의 검거 당시 수 차례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탄원서에는 "신랑이 술을 마시고 방황하는 것 외에는 저의 마음도 집안도 참으로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신랑은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피해자가 어디 살든 우리는 관심 없다" 같은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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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실과 거짓

워낙 화제가 된 사건이기도 해서 관련 가짜 뉴스가 정말 많이 돌았는데 사건을 처음 취재한 KBS PD는 2009년 "눈 뜨고 보기 힘든 소설들이 올라와있다. 이런 내용을 아이가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겠나. 정말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하기도 했다. #

8.1. 종교

8.2. 범행

8.3. 발언과 태도

8.4. 자녀

8.5. 출생지

8.6. 출소일

8.7. 관련 정책

9. 조두순 사건/관련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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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타

11. 관련 문서



[1] 링크 [2] 성범죄자 알림e에 조회하거나 인터넷에 검색하면 주소가 상세하게 나와 있으나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동까지만 서술한다. [3] 교도소 수감 전에는 85kg였으나, 교도소에 있는 동안 살이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4] 건설 노동자, 경비원 [5] 조두순 사건이 18번째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나, 후술. [6] 전과의 수는 저지른 죄목의 수효가 아닌, 유죄 판결을 받은 수효로 결정된다. 예를 들면 특수강도를 10회 저지르고 그에 대해 유죄 판결이 1번 내려지면 전과가 1건 추가된다. [7] 4남 1녀 중 막내아들이지만 나머지 형제들하고는 조두순의 잦은 범죄행각으로 시기는 미상이지만 전부 연을 끊었을 수도 있다. [8] 불교의 남자 승려이지만 결혼하여 아내와 가정을 둔 불교 남자 승려를 가리킨다. [9]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10] 당시 사회 분위기가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반감이 높았던 시기였기에 형량을 적게 받으려고 트라우마를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11] 18분 30초경에 나온다. [12] 1970년부터 그의 일생에 걸친 모든 전과를 다 나열했음에도 없는 것으로 보아 조두순 사건을 제외한 전과가 17범인 것이 아니라 조두순 사건을 포함한 전과가 17범인 것일 수도 있고 1983년 강간치상으로 이미 징역 3년을 선고받았음에도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한 번의 죄를 중복으로 처벌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13]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에서 무료 다시보기가 제공되고 있다. [14] 심리치료를 위해 포항교도소로 잠시 이감된 적이 있다. [15] 이는 영화 <소원>에서 범인이 면회 온 설경구에게 하는 대사로 나온다. [16] 단, 강호순은 개정 이전 버전을 테스트하였다. [17] 사이버 렉카들은 조두순이 탄 차량의 길을 막고 고속도로에서 칼치기를 동반한 추격전을 벌여 교통혼잡을 일으키거나 자기들끼리 고성을 지르다 못해 현피를 벌이는 등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쳤다. [18] 조두순이 사는 곳의 일부 주민이 조두순에게 계란을 던지는 등 조두순을 맹렬하게 질타했다. [19] 이는 형법 제173조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다. [20] 전석우 출소 후의 모습이 이를 모티브 삼았다. [21]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판결까지 다 끝난 상황에서 재심은 불가능하다. 현행법의 재심은 '피고인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는', 즉 피고인이 실제로는 무죄일 가능성을 찾았을 때만 행하는 것이다. [22] 거주 이전의 자유는 헌법에도 명시된 기본권이다. 국가가 형을 마친 조두순을 강제로 이사시키는 것은 위헌이다. [23] 다행히 이사는 국민 모금으로 진행되었고 피해자의 근황 문단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24] 안산단원경찰서가 조두순이 살고 있는 건물 출입구가 바로 보이는 곳에 특별치안센터라고 가건물을 설치했다. 조두순 거주지와의 거리가 고작 10여 m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25]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므로 행정법상의 관점에서 볼 때 법의 적용은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해야 하며 객관적이고 일관되게 집행되어야 한다. [26] 이른바 '잡범'으로 불리는 평범한 범죄자는 취업의 폭은 좁아도 취업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조두순은 네임드 흉악범이므로 고용했다간 그 자체로 난리가 날 테고 특히 가게의 경우는 손님들이 끊길 테니 어느 사업체라도 취업하는 것 자체가 그냥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출소 후 조두순의 나이도 68세로, 그 나이에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거의 없다. [27] 여담으로 혹시 조두순은 개신교, 천주교이며 피해자는 천주교 개신교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도 당연히 알 수 없다. [28] 12월 13일 출소설은 언론을 통해 퍼졌는데, 한국 언론들은 '법조 기자'를 고용하고 있음에도 이런 기본적인 사실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법무부가 12일 출소를 밝힌 12월 7일이 되어서야 출소일을 12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29]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수철이 있다. 김수철은 조두순과 닮은 점이 매우 많았는데 초등학생을 성폭행했다는 것부터 범행 수법, 범행 동기 등 닮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김수철을 조두순으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다만 김수철은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30] 그래서 성범죄자 알림e 어플에서는 캡쳐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31] 1935년 [32] 당시는 문민정부에 의해 전두환과 노태우가 구속된 시점이었다. [33] 이를 서울신문에서 보도했다. [34] 사이코패스적 성향 테스트 [35] 단, 강호순은 개정 이전판을 사용하여 그런 점수가 나왔으며 조두순이 받은 29점은 개정 후 점수다. 살인범들 중에는 김일곤, 서진환, 이은해, 강윤성 같이 조두순보다 더 높은 점수가 나온 경우도 많다. [36] 물론 조두순 또래의 노년층들 중에도 SNS 사용자가 많지만 조두순은 SNS 태동기 이전인 2008년부터 쭉 수감생활을 해와서 주변과 교류가 단절된 채 살아 왔기 때문에 SNS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조두순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80대 이상의 노년층은 여전히 피처폰을 많이 사용하는 데다 SNS 자체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37] 심지어 조두순의 범죄 행각까지 프로필에 게시한 계정도 있다. [38] 중국과 일본의 영화 평점 사이트를 보면 평점이 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