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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1960년 9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홍익북국민학교, 서울 보성중학교, 성동고등학교(28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부친을 따라 충청도, 강원도 등을 돌며 자랐다. 부친의 강원도지사 시절 강원도 춘천중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성동고등학교 학생회장 시절에는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정보기관이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로 인해 정부 차원의 반미 여론이 퍼지자, 재학생들을 이끌고 신당동 로터리까지 진출하는 고교 반미 시위를 주도했다.[1]
고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1년 10월 29일 경찰청 전투경찰순경으로 입대하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복무하였으며, 1984년 2월 2일 수경으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2. 가족 관계
부친은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남당(南棠) 정석모(鄭石謨, 1929 ~ 2009)다. 박정희 정권에서 내무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 강원도지사,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2]조부 정인각(창씨 개명: 오타니 마사오 大谷正雄)은 일제강점기 당시 계룡면장을 지냈다. 조선총독부에서 만주사변 공로자로 표창을 받았다.
모친 윤석남(尹錫男)은 파평 윤씨[3]며,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9대 종손인 윤하중(尹昰重)의 딸이다. 그러므로 논산에 있는 명재 윤증 고택이 외가다. 참고로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윤증의 사촌 형이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사위인 매촌(梅村) 윤박(尹搏)의 10대손이다.
부인은 충남방적 창업주이자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청운(靑雲) 이종성(李鍾聲, 1924 ~ 1995)의 차녀 이미호 씨다. # 이종성 일가는 학교법인 혜전재단을 소유, 청운대학교와 혜전대학교를 운영 중이다. 처남과 동서 등이 이사장,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처조부는 네 번의 도지사를 지내면서 청백리로 이름을 날린 이기세다. 보다시피 본가, 외가, 처가까지 굉장한 내력을 자랑하는 금수저 집안이다.
3. 언론 활동
고려대학교 졸업 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15년 간 신문 기자생활을 했다.[4]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는 1994년 아이티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전쟁통에 뛰어들기도 했다.이후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신문 기자 생활을 끝내기 전까지 네 번의 백상기자대상과 두 번의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받았다.
4. 정계 활동
2000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부친 정석모의 지역구였던 충청남도 공주시와 연기군이 합쳐지면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 한나라당 이상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수석부총무를 지냈다.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탄핵정국에서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2005년 오시덕의 선거법 위반에 의한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5] 심대평과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하여 당 최고위원,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심대평이 출마를 포기하고 국민중심당이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자 이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신의 지역구인 공주시·연기군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대신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치되어 당선되었다. 이는 해당 선거구에 자유선진당이 심대평을 공천할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자 당이 배려를 한 경우. 2010년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에 선출되었다.
4.1. 청와대 정무수석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탈당함에 따라 비례의원직을 자동 상실하였다. 본래 계파색이 강하지는 않지만 범 친박계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탕평인사의 차원에서 정무수석으로 임명되었다. 정무수석 재임 중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면담을 성사시키고[6] 당내 안정과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정권 재창출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다만 정무수석 시절 통큰치킨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7] 정진석은 '통큰 치킨' 소동이 벌어지자 자신의 트위터에 관련 의견을 올려 '통큰 치킨 이벤트' 포기를 이끌어내면서 당시에 '계사오적' 이라는 멸칭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범친박계에 약간 더 가깝기는 했으나, 의외로 이명박 및 친이계, 친이계의 인사들과도 상당히 친한 관계라고 한다. 일단 정진석은 대선 경선이 끝나고 한나라당으로 들어왔기에 계파 논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또한 계파와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분이 있는 정계 마당발이라는 평이다. 본인 스스로는 친박도 친이도 아닌 JP계라고 자임하고 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박종준 전 충남지방경찰청장이 공천된다. 대신 선거를 27일 앞두고 서울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에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에 밀려 석패하였다.[8] 그 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4.2. 국회사무총장
정진석은 과거 총장실에서 행해지던 업무 보고를 각 실, 국을 찾아가서 직접 받거나 국회 사무처 비정규직 직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개혁 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를 폐지해 인사 청탁의 뿌리를 뽑으려고 노력하는 등 기존 대한민국 국회 관행을 깨고 변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회의 문턱을 낮추고 국회와 국민 간 소통강화에 앞장섰다. '국회 생명사다리 범국민 운동'을 시작으로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를 개설해 자살예방을 위해 국회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국회 본관에 스마트워크센터를 신설하여 행정효율을 높이고자 했고, 직접 세일즈 외교에 앞장서는 등 국회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된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48.13%의 득표율로 공주시의 현역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를 이기면서 4선 고지에 올랐다. 2008년 이후로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셈.[9]
4.3.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6년 5월 3일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원회 의장에는 김광림이 당선되었다. 계파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새누리당에서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그가 친박, 비박 양쪽 진영에서 고르게 득표한 점이 배경으로 풀이되었다. 계파색이 옅고 19대 원외 인사로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는 경선에서 나경원과 박빙 승부를 벌일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총 119표 중 69표를 얻어 43표를 얻는 데 그친 나경원 전 의원을 26표 차로 여유있게 승리하며 새누리당 출범 후 초유의 '원외 당선인' 신분으로 집권여당 사령탑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5월 10일 원내대표로서, 후임 당대표가 선출되기 이전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정진석은 “중앙선을 걷겠다”며 계파 중립을 선언했지만 취임 초반 당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난제를 떠맡았고, 친박과 비박계 사이에 끼어있는 '낀박'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정치적 위기도 숱하게 겪었다. 당내 다수인 친박계의 지지가 원내대표 선출에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당 혁신위원회 주요 인사들의 다수를 비박계로 구성하였다.[10] 이에 반발한 친박계의 대대적인 보이콧으로 혁신위 구성을 확정짓기 위한 5월 17일의 당 전국위원회 개최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중도"라고 하며 앞으로도 친박의 대변자가 될 생각이 없다고 대립각을 세우며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
유승민의 복당으로 친박계가 또다시 강하게 반발하며 원내대표직 사퇴 요구까지 거론하면서 십자포화를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당내에서는 원 구성 협상, 복당 논의, 예산안 협상 등 중개국면마다 소기의 성과를 얻어낸 정진석 전 원내대표에 대해 난제를 특유의 뚝심으로 잘 풀어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심을 잡고 당내 친박과 비박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며 '중앙선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며 특히 취임 초기 '친박'이라며 눈초리를 보내던 비박 중심의 비주류 의원들은 한때 '최순실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를 오히려 만류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선출된 지도자로서 친박 이정현 전 대표 대신 '당대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 친박계가 주도하는 주류와 비주류 양측에 소신 발언을 잇따라 쏟아내는 동시에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 우병우 수석 논란 등 민감한 현안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영역을 키웠다. # '최순실 국정농단' 논란으로 촉발된 탄핵국면에서도 '자유투표'를 이끌어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숨은 공신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보수 정치의 본령은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배웠다. 집권당은 대통령과 똑같은 무게의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데 대해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하다"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2016년 11월 7일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이 법안은 수정가결되어 2021년 2월 5일부터 시행된다.
4.4. 원내대표 사퇴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패배 직후인 2017년 5월 17일 자유한국당 중진의원 간담회에서 친박계를 향한 성토를 쏟아냈다.
전국위원회 무산시키고 말이야. 못 하게 했잖아 혁신을.
이거 안됩니다. TK 자민련 남아서 뭐할거냐고 도대체...
진짜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는 정말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돼요. 동지에서 이제 적으로 간주해서 무참하게 응징해야 된다고.
전직 원내대표이자 당내 4선 중진의원으로서,
홍준표 전 대표의 극단적인 행보에 등을 돌려, 반홍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이거 안됩니다. TK 자민련 남아서 뭐할거냐고 도대체...
진짜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는 정말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돼요. 동지에서 이제 적으로 간주해서 무참하게 응징해야 된다고.
한편 2017년 8월부터, # 김무성 의원과 보수통합 및 기타 여러 의제를 다루는 '열린토론 미래'라는 토론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김무성은 저 당시에는 바른정당이었다가 17년 11월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이 토론회는 잠깐 하다 만 것은 아니었고, 2019년 11월까지도 열렸었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보 철거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자유한국당 당내에서 '4대강 보 파괴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역구의 농민들이 금강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데, 문재인 정부가 농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 개방 또는 철거를 강행하면서 이들의 생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 # 하천시설을 철거할 때 농·어업 등 산업, 거주지, 환경, 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포함한 철거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는 하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11]
4.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다수의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가 오차범위 안팎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막상 출구조사를 보니 정진석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개표 결과에서도 근소하게 나마 1위를 차지하는 대역전극을 써 충남 최다선인 5선에 성공했다.[12] 특히 이는 보수 후보의 분열 속에서 이뤄낸 결과이다. 이로써 정 의원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보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당권에 도전할지 국회부의장으로 갈지 주목된다. # 여담으로 20대 국회의 보수정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들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정우택[13], 나경원, 심재철은 낙선, 김성태는 불출마했다.당선 이후 아직 무소속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대권 출마를 선언하는 등 일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홍준표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후 본인을 직접 거론하며 홍준표가 자신을 비방하자, 재반박하는 글을 SNS에 쓰기도 했다. #
홍준표가 김종인에 대해 뇌물 전과자, 노욕에 찬 발언이라고 주장하며 김종인을 계속해서 비방하자 이에 반발, 홍준표 전 대표가 (정진석 본인에게) 총선 직후 전화로 “ 김종인 만한 사람이 없다.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14] 폭로하며 "그 때는 김종인이 동화은행 비리에 연루된 걸 몰랐냐"고 받아쳤다. 그리고는 “ 홍준표 전 대표가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막말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공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금도조차 없는 그가 우리 당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였다. #
4.6.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21대 국회 미래통합당의 첫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지만, 이미 새누리당 시절에도 총선 패배 후 원내대표를 맡았다가 뒤이어 찾아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제대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출마하지는 않았다.원내대표에 불출마한 대신 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유력해 보인다. 미래통합당 내 최다선 의원은 5선의 정진석, 서병수, 조경태, 주호영 4명인데, 서병수 당선인은 국회부의장 불출마를 선언했고, 조경태 의원은 당대표 도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주호영 의원은 원내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 결국 경선 없이 미래통합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추대되었다.
2020년 6월 4일, 미래통합당 '사이다[15] 정책 세미나'에서 첫 강연자로 나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활용해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보수 삭제' 추진에는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16] 그러면서 " 윤미향이라는 최대 현안에 대해서 왜 당내 최고참인 제가 보도자료 내야하나. 야당의 1차적 책무가 정부여당을 감시 감독 비판하는 건데 그러려면 여러분의 권한을 행사 해야한다"며 초선 의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권유하고, 정부여당 견제를 위해 국회의원의 자료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50%의 지지를 받은 정당인데도[17] 100%의 지지를 받은 정당처럼 다 해먹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그건 오래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 # #
2020년 5월 9일, 이전에 발의했으나 제20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되었던 하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21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다시 대표발의했다. 하천시설 철거 계획에 농·어업 등 산업, 거주지, 환경, 생태계 등에 철거가 미치는 영향 평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로, 자신의 지역구의 금강 공주보를 문재인 정부에서 주민 동의 없이 강제로 철거하려 했기 때문에 이 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현행법상 보 등 하천시설을 철거하는 경우에 대해서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하천시설이 무분별하게 철거되는 문제가 있다"며 "지역주민과 농가의 보 철거 반대 여론이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
법사위를 비롯해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원구성 협상이 결렬되자, 2020년 6월 12일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원구성 협상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국회부의장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발언했다. 이 말에 회의장 분위기가 숙연해졌다고 한다. #
2020년 6월 19일, 사회복지공동모금 수령 단체의 자금 집행 감독을 강화하고,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2의 윤미향 사태를 막기 위해 발의한 것이다. 정 의원은 "현재 국내 공익법인에 전달되는 기부금은 연간 6조 원 정도에 이른다"며 "정부 차원의 회계 관리감독을 강화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보다 건전한 기부문화가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2020년 6월 23일, 지난 의총 때 밝힌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내놓지 않으면, 본인도 국회부의장직을 고사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이나 안락함을 내려놓겠다면서, 우리 당 3선 의원들도 상임위원장을 안 맡는데 자기 혼자 국회부의장을 맡을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고향 친구 윤석열[18]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
2020년 6월 29일, 민주당이 정보위원회 위원장[19]을 제외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결국 "전대미문의 반민주 의회 폭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국회부의장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여당 몫의 부의장만 선출된 채로 국회부의장이 공석이 됐다. #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여당을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 관련 내용이 이슈가 되기 시작하자 통합당에서는 가장 선제적으로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 지역구인 공주시, 부여군이 세종시와 인접하여 그 행정수도 이전이 다시 현실화될 경우 파급력이 크기 때문.
2020년 9월, 자신과 사돈 관계인 박덕흠 의원이 이해충돌 논란에 휘말렸는데, 박덕흠 의원을 옹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탈당하는 게 좋다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뜻을 박덕흠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김종인 전 위원장은 "사돈지간인데도 어려운 얘기를 해준 정진석이 고맙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와 관련해 정진석 의원은 " 박덕흠이 탈당을 스스로 결심했고 지도부 의중을 알아봐달라고 해서 ( 김종인을) 만났던 것"이라고 했다. #
2020년 12월 8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과오에 대한 사과 문제에 대해 "정당 대표의 사과와 반성은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니 더 가열찬 전진과 반격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면"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참고로 정 의원은 MB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내 범 친이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해 9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를 겸허하게 지켜보자"고 했다. 또 당내 갈등과 관련해서는 "이 문제를 두고 계속 갈등을 빚게 되면 결국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2020년 12월 17일,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공천관리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도권·영남권 의원들과의 관계가 두루 원만한 정 의원이 경선과정에서 발생할 잡음을 최소화 할 적임자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충청권 핵심인 정 의원을 발탁한 배경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계진출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나왔다. #
2021년 3월 5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면서 동네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한신보다 더 큰 치욕을 받아가면서 싸운 그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21년 재보궐선거 승리 이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전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만나 원구성 재협상 여지를 남겨놓으면서 본인이 고사한 국회부의장 자리에 앉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20] 하지만 본인은 선당후사 정신을 밝히면서 국회부의장직을 고사한 바 있어 직을 수락할 가능성은 낮다.
당 내부에서 윤석열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내분이 일어나자, 4월 29일 "묵은 감정은 정권교체의 큰 강물에 씻어버려야 한다", " 윤석열은 우리 사법체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했을 뿐"이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
또한 당내에서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도로 영남당', '영남 후보 배제론' 논란이 일자, 5월 4일 "영남 유권자의 정서를 후벼파는 것"이라며 "자해행위"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 의원은 "전국 정당이 되기 위해서 영남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야지, 영남 유권자의 정서를 후벼파듯 하는 발언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1년 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전라도면 어떻고 경상도면 어떻고 충청도면 어떤가. 적들이 우리에게 거는 영남당 프레임을 스스로 확대 재생산하면, 정권교체고 뭐고 다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지적했다. #
2021년 6월 19일, 국민의힘- 국민의당 합당 논의 중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당명 변경을 요구하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당명은 바꿀 수 없다"며 "유연함 없이 무리한 밀당에 집착하는 인상"이라고 안철수를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 국민의힘은 모처럼 많은 국민의 공감이 스며든 정당이 되기 시작했다. 정권교체의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있다"며 "젊은 당원들의 입당 러쉬에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며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해당 글에는 전주혜, 김병욱, 지성호 등 여러 의원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이준석 전 대표 역시 좋아요를 눌렀다. #
2021년 6월 29일, 서울 양재동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에 20여명의 국민의힘 의원들과 참여하였다. 함께 행사에 참여한 의원 중 권성동 의원 외에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 없어 권 의원과 함께 국민의힘 내의 친윤 좌장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7월 20일, 페이스북에서 홍준표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자, 정진석 의원은 홍준표 의원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라고 반응했다. 이에 홍준표 의원이 정진석 의원을 향해 '신중히 처신하라'고 하자, 분홍색 바탕 " 반사"(...)라고 받아쳤다. #
2021년 7월 23일, 국민의힘 김기현 전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전 원내대표의 합의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를 비롯한 상임위 7개를 국민의힘에게 다시 넘기는 것으로 결정이 되면서 국회부의장직을 맡을 의원을 입후보했는데, 유일하게 정진석 의원이 입후보하면서 사실상 2021년부터 2022년까지 1년 간 국회부의장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21]
2021년 8월 31일, 제390회 국회 1차 본회의에서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드디어 공식적으로 국회부의장 자리에 올랐다.
국민의힘 내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영입 및 대선 출마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치인 중 한 명인데 #, 20대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 선대본부 충남 지역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 결과 충청남도에서 윤석열 후보가 51.1%를 득표하며 승리했고 전국 기준으로 0.73%p 차라는 역대 최소 격차로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그 덕분인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정책협의회 단장으로서 2022년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
2022년 6월 6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이준석 전 대표에게 " 이준석 우크라 行, 자기 정치라면 보통 문제 아냐" #라고 비판하며 대한민국이 러시아에도 어느정도 친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외교적 태도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가 " 러시아 역성드는 발언 자중하라, 우크라 분개 중" #이라고 경고하자 "어리고 젊은 정치인의 말을 웃어 넘겨야지." #라고 답하며 자신의 태도를 농담으로 선회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정진석 SNS 설전을 참조.
2022년 7월 4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재선출되었다. 다만 전반기에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으로 인한 부의장직 포기로 인해 선출이 지연됐던 것을 보상하는 의미로, 후반기 임기는 2022년 연말까지만 지내고 후임 국회부의장에게 자리를 넘겨준다고 한다.
2022년 9월 7일 열린 의총 결과에 따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요청으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 그리고 다음날인 9월 8일 열린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에서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을 의결하면서 공식적으로 당의 비대위원장이 되었다. #
4.7.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022년 9월 8일, 비대위원장에 공식 취임한 이후 연휴 기간 비대위원 인선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대위원 인선과 관련해서는 지역별 균형과 다양성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한편 다음날 새로운 비대위 구성에 대하여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락산부터 우선 초선 (당선을) 목표 달성하길 기원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윤석열 정부를 조롱·훼방하는 행태는 본인에게도 두고두고 부담될 것”이라며 “나중에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
9월 13일, 비대위원으로 김상훈(대구 서구 국회의원), 정점식(경남 통영-고성 국회의원), 주기환(8회 지선 국민의힘 광주광역시장 후보), 김병민(국민의힘 서울 광진구 갑 당협위원장), 김행(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김종혁(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선임하였다. 그러나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광역시장 후보가 지난 비대위에 이어 재선임된 이후 사퇴 의사를 밝히자 전주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비대위원으로 선임하였다. 인선을 두고는 친윤 색채가 지난 비대위보다 한층 더 강해졌다는 분석. #
10월 6일, 이준석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앞서 실패로 끝난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과는 다르게 큰 힘과 정당성이 실리게 되었다. #
10월 13일, 서문시장을 방문하여 떡볶이를 먹는 것으로 정진석 비대위 안정화 이후 첫 행보를 보였다. #
그리고 이날 대구 경북 언론인 간담회에서 국정감사 등의 일정으로 아직 전대일정을 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혔고 당무감사까지 예고한 만큼 내년 여름까지 장기적으로 비대위를 이끌어갈 것임은 확실해보인다.
2023년 3월 8일, 2대 대표로 김기현이 선출되면서 비대위원장직을 마무리했다.
4.8.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20, 21대 총선에서 꺾었던 박수현과의 3번째 대결에서 이번에는 패했다. 결국 6선에 실패한 결말을 맺었다.고향인 공주시는 물론이고, 보수 초강세로 불리는 부여군에서도 패하여 사실상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그 중 청양군에서만 유일하게 이겼는데, 이마저도 4년전에 비해 1,000표차 이내인 720표차로 간신히 이겼다.
이번 총선에서 같은 충청권 지역에 출마한 사돈인 박덕흠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한달 전 설레발 당선 파티를 열어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 자신의 지역구에서[22] 과반 이상 득표할 정도로[23] 4선에 성공한 걸 감안하면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정진석 입장에서 사실상 정치 생명에 엄청난 타격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숱한 막말 논란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얼마나 나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4.9. 제40대 대통령비서실장
2024년 4월 총선 패배 후 장관급 직위인 대통령비서실장 후보군에 들었다. #2024년 4월 22일, 윤석열 정부의 세번째 대통령비서실장에 인선되었다. 부총리급인 국회부의장에 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지낸 만큼 영전이라 할 수는 없지만[24] 22대 총선에서 낙선한 상태이다 보니 쉬지 않고 정치활동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정 의원은 2024년 5월 29일까지 현직 의원( 제21대 국회의원) 신분이기에 국회의장 결재 등 의원직 사퇴 절차를 거쳐 임명될 예정이다. # 2024년 4월 23일, 국회의장 직권으로 의원직 사직이 재가되어 대통령비서실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 가운데 최초로 국회의원 출신이자 정치인 비서실장[25]이 되었다. 또한 김은혜 의원에 이어 선거 낙선 직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인사로 임명된 두번째 사례가 되었다. 경제부처 공무원 출신인 김대기, 이관섭 전 실장과 달리 5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보니 정무적인 부분에 있어서 확실히 차별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 비서실장들은 전업 관료 출신이라 정무 감각이 부족[26]하여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실 내부 장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매번 메시지 일원화가 되지 않고 잡음이 나오는 등 한계가 있어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가진 베테랑 정치인 출신의 비서실장을 임명한 것으로 해석된다.[27] 함께 후보군으로 언급되던 장제원은 친윤 색채가 너무 강한데다 아들 리스크가 크고, 원희룡은 대야 투쟁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소거법으로 정진석 의원이 선임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진석도 강성 친윤이다 보니 당연히 야권은 말할 것도 없고 #, 국민의힘 비윤계에서도 대국민 선전포고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또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고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라 판결 결과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같이 형 확정 이후 사면 형식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취임 직후 대통령실 인사들에게 "언론에 '대통령실 관계자' 라는 이름으로 산발적인 메시지가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 언론 인터뷰를 삼가라" 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28]
2024년 6월 11일, 김대중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의 전직 대통령비서실장들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박지원( 김대중 정부), 김우식( 노무현 정부), 류우익( 이명박 정부), 이병기( 박근혜 정부), 노영민( 문재인 정부), 이관섭( 윤석열 정부)과 정진석 본인까지 총 7명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정권을 막론하고 전현직 비서실장들이 공개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
[1]
저 때 '온 국민 반미시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카터 정권이
박정희 정부에게 인권외교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각을 세웠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반대하는 시위가 친정부지향이었기 때문이다. 즉 정권 차원에서 반미=애국으로 인식되었던 몇 안 되는 시기다. 그런데 1978년 고등학교 학생자치기구의 명칭은 학도 호국단이었고 단장은 연대장으로 칭하였으며 선거절차가 아닌 교사가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유신말기 서슬이 퍼랬던 당시 있었던 반미데모는 학생회장이 자발적으로 학생들을 인솔하여서 거리로 나갔다기보다는 교사가 연대장 학생을 종용해서 데모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실제 도로에서 시위를 통제하던
경찰은 전경기동대가 아니고 나이든 순경들이 맨손으로 미는 정도였다.
[2]
당시에는 도지사가 임명제였다.
[3]
파평 윤씨는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씨로 명문가였으며 (문벌귀족 15가문을 시작으로 권문세족 안에서도 재상지종 9가문의 명문가였다.)
[4]
당시 기자는 인터넷 기자가 없었으며, 지금의
기레기가 아니라, 엄청난 엘리트 직업이었다.
[5]
재보궐선거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을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6]
원래
이명박은
박근혜의 지지율을 이용할 생각만 했지 전혀 가까이 하지 않았고,
친이계로 정권을 재창출해내려 했다. 그러나 정진석이
이명박을 설득하면서 양쪽 간의 관계를 중재하기도 했다.
[7]
당시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로 치킨 자영업자들이 반발했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범 논란이 사회적인 이슈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MBC
백분토론 등에서 토론을 벌일 정도로 쟁점 사안이었다.
[8]
당시 2세 정치인 대결로 주목받았다. 거기에
조병옥의 아들인
자유선진당
조순형 전 의원도 중구에 출마하려다 정호준을 지지하고 사퇴했는데 만약 완주했다면 더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질 뻔 했다.
[9]
사실 정진석은 어린 시절을 공주에서 잠깐 보내고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정석모를 따라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해서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
[10]
특히
유승민 전 의원과 가까운
김세연,
이혜훈 전 의원을 포함시키면서 친박계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11]
실제로 충청 민심은 4대강 보에 긍정적이다. 공주시에 가보면 곳곳에 공주보 철거 반대 현수막이 붙어있으며, 물 부족 현상과 공주보 도로 등의 문제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공주보 개방이나 철거를 반대했다.
# 시에서는 공주보와 관련해 공주 농민 770명을 상대로 사전의견서를 접수하기도 했다. 결과는 754명(98%)이 보 철거에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 이유로는 '농업용수 부족 우려'가 가장 높았다. 그것도 사전의견서에 철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부 입장이 그대로 적혀있어 편향적이었는데도 말이다.
# 21대 총선에서도 이슈가 되었는데,
이춘희 전
세종시장,
홍성국 세종시 갑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주민들의 여론을 의식해서 보 철거/개방에 찬성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고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들은 아예 보 철거/개방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이 다수인 공주시의회조차 보 해체에 반대했다.
# 이후
21대 총선에서 정진석 후보가
박수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4대강 보 존치가 충청 민심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12]
공주시,
부여군,
청양군 모두 10% 이내 격차로 승부가 갈렸는데,
공주시에서 근소하게 졌지만 불과 1.97%p 격차였다. 심지어 관외사전투표를 제외하면 정진석이 이겼을 정도.
[13]
정진석이 '충남의 맹주'로 꼽힌다면
정우택은 '충북의 맹주'로 꼽혔다. 하지만
정우택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청주 상당구에서 험지인 청주 흥덕구로 옮겼다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낙선하면서 타격을 입었고, 본인의 원래 지역구였던 청주 상당구에서도
정정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다만
정정순 후보가 수감되어 의원직을 상실해 재보궐선거가 열리게 되어
국회에 재입성하였다.
[14]
실제로
홍준표는 총선 직후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김종인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하며 "카리스마도 있고 오랜 정치 경력도 있고 민주당이나 우리 당에서 혼란을 수습해 본 경험도 있으니 어떨까"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보인 바가 있다.
[15]
사회 문제와 이슈를 다함께 해결'의 약자이다. 세미나에서 실제로
사이다를 마시기도 했다.
[16]
다만 정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 출범에는 찬성했다.
[17]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253개 지역구 후보 표를 합산해서 득표율을 계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은 49.9%,
미래통합당은 41.5%로 격차는 8.4%p차다.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허용해 패닉에 빠진
미래통합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득표율은 별 차이가 안 났으니 거기서 희망을 보자는 의견을 일부 개진했을 정도.
#
[18]
윤 총장은 서울 출신이나 윤 총장의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것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라며 고발했지만, 무죄가 되었다.
[19]
국회법에 따라 정보위원장 선출은
국회부의장과 상의해야 하는데, 본인이
국회부의장을 고사함에 따라 국회부의장 선출이 완료되지 않아 정보위원장 선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
법사위원장이였던
윤호중 전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하면서 국민의힘 쪽으로 법사위원장 자리가 넘어올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여당 원내대표는 당연직으로서
국회 운영위원장을 맡으므로 법사위원장 사퇴 자체는 겸임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21]
애초에 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 당시 야당 몫
국회부의장 후보로 경선없이 내정되었으나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 독점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이를 포기했던만큼, 원래 내정됐던 자리로 돌아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22]
그 중
옥천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다. 다만 과거 이 지역 민주당 출신 맹주였던
이용희와 그의 아들이자 박덕흠과 3번이나 맞붙었던
이재한의 고향이기도 한다.
[23]
심지어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괴산군 4곳 모두 과반 득표로 이겼으며 그 중 옥천군에서는 고작 495표 차이로 이겼다.
[24]
커리어만 놓고 보면 국무총리로 지명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25]
이전 정부들에서는
김윤환(
전두환 정부),
김광일(
김영삼 정부),
박지원(
김대중 정부),
문희상(
노무현 정부),
임태희(
이명박 정부),
허태열(
박근혜 정부)
김기춘(
박근혜 정부),
임종석(
문재인 정부),
노영민(
문재인 정부) 등이 있었다.
[26]
그나마
이관섭 실장은 보수 정권에서 등용이 많이 된 편이었다.
[27]
김대기 실장은 조직 장악에는 능통했으나, 이 과정에서 '능동적인 대통령실'의 모습을 만든답시고 국회 및 여당과 차단막을 두며 스스로 고립되는 방식을 택해 민심과 크게 괴리가 생기게 되었고, 이관섭 실장은 퇴직한 후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보니 대다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성향이었으나 관료 출신의 한계로 실질적인 의견 관철을 하는 경우가 없어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28]
이는 앞서 서술했듯 전임 대통령 비서실장들 재임 시절에 있었던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라는 이름 하에 언론 인터뷰 기사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