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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20:17:33

위소(후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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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1a6d2><colcolor=#fff> 경조공(京兆公)
韋謏 | 위소
시호 없음
작위 경조공(京兆公)
(韋)
(謏)
헌도(憲道)
생몰 ? ~ 350년 11월
출신 옹주(雍州) 경조군(京兆郡)
국적 후조 염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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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조 염위의 인물. 저서로는 《전림》(典林) 22편과 《복림》(伏林)이 있다.

2. 생애

위소는 행실이 고아하고 유학 공부를 무척 좋아했으며, 문서 집필에 능해 기록할 것이 있으면 빠짐없이 살펴서 적었다고 한다. 전조 유요에게 임관하여 황문랑을 지내다가, 후조 석호에게 항복하여 산기상시에 임명되고 후조에서 7군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위소는 군을 다스리면서 청렴함과 지역의 교화에 능한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중앙으로 돌아가 정위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황문랑에 제수받으니, 당시 지식인들은 그를 전한의 정치인인 우정국(于定國), 장석지(張釋之)와 비견된다 평하였다.

건평 3년(332년) 4월, 후조의 황제 석륵은 당시 한식(寒食)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돌연 수도인 양국(襄國)에 폭풍우가 몰아쳐 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때 양국의 저잣거리와 황궁 정문인 건덕문에서 천둥소리를 듣고 놀라 자빠졌다가 사망한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었다. 또, 하서의 개산(介山)에서 계란만한 우박이 내려, 평평한 곳 기준으로 쌓인 우박의 높이는 석 자나 되었고, 우박이 만들어낸 구덩이의 깊이는 한 장(丈)에 달했다. 당연히 이 거대한 우박을 맞고 사망한 사람과 짐승이 수 만에 이르렀고, 태원(太原), 낙평(樂平), 무향(武鄉), 조군(趙郡), 광평(廣平), 거록(巨鹿)까지 수 천 리에 걸친 나무들이 뿌러지거나 꺾였으며, 밭에 심어진 곡식이 입은 피해도 어마어마하였다.

이 소식에 크게 놀란 석륵은 정복을 갖춰입고 동당(東堂)으로 들어가, 중서령 서광과 상의한 끝에 하늘이 한식을 철폐한 것에 노하여 재해를 일으켰다 여겼다. 이에 다시 조서를 내려 한식을 받들라 명하는 한편, 개자추의 사당을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위소가 논박하며 말했다.
"《춘추》에 의하면 물 위를 떠다니는 얼음이 녹으면서 그 음기가 하늘로 올라가 우박이 되어 내린다 하였습니다. 그 말인 즉, 개자추가 존재하기도 전에 우박은 종종 내렸던 것을 유추할 수 있는데, 어찌 개자추가 이 사태의 원인이겠습니까. 결국, 이 사태는 음양의 조화가 뒤틀리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보이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한들 개자추와 같은 현자가 검은 속내를 품고 이러한 포학한 짓을 할 리는 절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비록 빙실(氷室)이 있다고 하나, 산이나 개천, 못에 숨겨진 얼음이 하늘로 올라가 음기가 되어 우박으로 내린 것이 자명합니다. 다만, 이번 사태와는 무관하게 면산(綿山)과 개산 사이에서 개자추의 충성스러움과 현명함을 기리는 것을 윤허하신다면 천하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석륵은 위소의 말에 따르는 동시에, 다시 이런 우박이 내리지 않도록 산천에 숨겨진 얼음을 찾아서 음기가 새어나갈 걱정이 없는 빙실로 옮겨놓을 것을 명하였다.

건무 8년(342년) 12월, 석륵이 붕어한 뒤 정변을 일으켜서 황위에 오른 석호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토목공사를 벌이기 좋아하여, 누대가 딸린 행궁이 40곳이나 있었고, 장안과 낙양의 궁궐을 지을 때는 40여 만 명의 작업공을 투입하기도 하였다. 또, 사냥 역시 무척 좋아해 아침에 출발하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면서 정무를 돌보지 않았다. 당시 시중을 지내던 위소가 이에 대해 간언하자, 석호는 그를 칭찬하고 곡식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하지만 위소의 간언은 따르지 않고 이전처럼 사냥과 향락을 계속해서 즐겼다. 이후 위소는 9경에 4번 올랐고, 상서를 6번, 시중을 2번 역임했으며, 경조공(京兆公)에 봉해졌다.

영흥 원년(350년) 2월, 후조의 장군을 지내던 염민이 난을 일으켜 염위를 건국하자, 위소는 광록대부에 임명되었다.

영흥 원년(350년) 11월, 염민이 보•기 100,000명을 거느리고 후조의 황제 석지가 있는 양국을 쳤다. 이때 염민은 자신의 아들 태원왕 염윤(冉胤)을 대선우, 표기대장군에 임명하고, 투항해 온 호인(胡人) 1,000여 명을 그의 휘하로 배속시켰는데, 이에 대해 위소가 간했다.
"지금 호인 수 천 명을 불러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인 것은 진실로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족은 본래 우리의 적인지라, 그들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항복했을 것입니다. 만일 저들 가운데 자객이 있어 중요한 순간에 봉변을 당해 패한다면 그때 가서 뉘우쳐도 늦습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 명뿐이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하였는데, 하물며 천 명이나 되면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투항한 오랑캐를 모두 주살한 뒤, 선우 칭호를 없애고, 심사숙고하여 만일의 변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십시오."
그러나 염민은 복종해온 오랑캐들을 위무할 계책이었기에, 크게 화를 내며 위소를 그 아들 위백양(韋伯陽)과 함께 주살하였다.

영흥 2년(351년) 3월, 염민이 석지에게 패해 수많은 병력을 잃은 채 후퇴하자, 염민에게 항복했던 오랑캐인 율특강(栗特康)이 염윤과 좌복야 유기(劉奇)를 사로잡아 석지에게 투항했다. 그제서야 염민은 위소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위소를 대사도로 추증해주었다.

3. 둘러보기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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