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염장고기, 또는 염장육( 鹽 藏 肉)은 소금에 절여 저장한 고기를 말한다.이름상의 정의로만 말한다면 고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리켜서 베이컨, 햄, 하몬, 소시지, 육포 등도 포함이 되지만, 본 항목은 주로 영미권에서 전통적인 보존식 및 전투 식량으로 사용된 켈트식 염장고기인 콘드 비프(corned beef)를 설명한다.
영어로 염장한 고기는 salted meat, cured meat 등으로 불리고 염장한 쇠고기는 corned beef,[1] salt(salted) beef, bully beef[2]라고 한다.
2. 전통적인 염장고기
켈트족식 염장고기. 십 비스킷과 함께 범선 시대 뱃사람들의 주식이자 대표적인 전투 식량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신선한 고기를 먹으려면 살아있는 가축을 싣고 다녀야 했는데, 장거리 항해 시 큰 배에는 양, 소, 닭 같은 가축을 배에 싣고 다니다 도축해 먹었다. 이렇게 얻을 수 있는 신선한 고기의 양은 제한되어 있었기에[3] 보통 선상 잔치를 벌일 때나 높으신 분들의 식사용으로만 사용되었다. 돈 많은 소수는 젖소나 염소도 싣고 다니며 수시로 우유나 염소 젖 및 이를 가공한 크림 등을 먹는 호사를 즐기기도 했다. 이따금 이렇게 한배에 탄 동물을 수간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고 영국 해군의 경우 수간범을 교수형에 처하며 해당 동물은 도축 후 승조원들이 먹었는데, 고기 한 점 먹자고 죄 없는 동료에게 누명을 씌운 무고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 외 선원이나 수병들이 돈을 모아 선장, 함장의 허가하에 항구에서 살아있는 가축을 사서 싣고 다니다 적당한 때 도축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가축에게 줄 건초나 사료를 따로 챙기고, 배설물도 치워야 하며 도축 직전까지 건강한 상태로 돌봐야 하니 여간 수고롭지 않았다. 게다가 건초는 부피가 만만치 않아서 이게 참 골칫거리이다. 어쩔 수 없이 배에서는 대개 염장고기를 먹었다. 선박의 특성과 그 시대의 상황상 선원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공급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건빵과 염장고기가 주식이 돼버린 것이다. 이것도 항해 내내 먹은 건 아니고, 빵이나 염장하지 않은 고기가 상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출항 후 며칠 동안은 여건이 허락되는 한 신선한 것들을 먹을 수 있었으며, 원양 항해를 하지 않고 항만이나 해안선을 초계하는 소형 함정들은 몇 시간 혹은 며칠마다 입항해 재보급을 받을 수 있어 호위함이나 전열함 같은 대형함이나 원양 상선들보다 더 좋은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다.
당시에 고기를 장기간 보관하는 가장 값싸고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에 육지 노동자들도 많이 먹었으며 현재도 염장고기를 이용한 요리법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육지 노동자들이야 염장고기가 아무리 고무줄 같더라도 적당량 썰어서 다른 식재료랑 같이 푹 고아서 수프와 스튜로 만들면 따로 소금 간을 첨가 안 해도 맛있고 부드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던지라 아래와 같은 고생을 안 해도 되었다. 물론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짠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당시에는 노동자들에게 염장고기 대신 생고기가 지급되면 보존 처리가 안 되어 믿을 수가 없으니 부담스러워서 되레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뜻 과거의 유물 같지만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자주 먹는 음식이다. 간단한 예로 서구식 아침에 빠질 수 없는 베이컨이 있다. 다만 냉장 기술이 발달하고 비교적 금방금방 소비되는 현대의 특성상 제조 공법도 순하게 바뀌면서 예전의 고무 같은 질감과 소금 덩어리급 짠맛 고기가 아닌 염장 식품 특유의 풍미가 돌 정도로 적당히 절여진 고기로 변화되었다.
염장고기가 쇠퇴한 이유는 보관 기술의 발달도 발달이지만, 현대 사회는 이전만큼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 더 크다. 자동화가 되지 않아 모든 일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했었던 과거에는 그만큼 노동 강도가 더 높아서 이에 비례하여 인체의 염분 소비량이 높았기 때문에 이를 벌충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섭취해 주어야 하므로 염분 농도를 높게 만들었지만,[4] 자동화가 되면서 수작업의 필요성이 많이 떨어진 현재에 과거 같은 고농도 염분 식품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염분 과다로 병원행 예약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젓갈 같은 다른 염장 식품들 또한 과거에 비해 염도가 많이 낮아졌다.[5]
2.1. 제조법
- 가축을 도축한 뒤 조리하기 쉽게 작은 덩어리( 쇠고기는 4파운드(약 1.8킬로그램), 돼지고기는 2파운드(약 0.9킬로그램))로 손질한다. 그리고 소금과 질산 칼륨(초석)/ 아질산 나트륨에 재워 고기의 수분을 빼낸다.[6]
- 탈수가 끝나면 소금물을 채운 큰 나무통에 고기를 넣고 밀봉한다.
- 적당한 시기가 지나면 꺼내 먹는다.
제조 과정에서 초석을 넣는 이유는 고기 속까지 염분이 잘 스며들도록 도와주면서 색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발색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툴리누스균으로 인한 식중독을 방지해 준다. 이것은 의외로 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사용하고 있으며, 뉴스에서 흔히 말하는 아질산 나트륨의 효능을 내는 물건이다.[7]
문제는 염분이 잘 스며들도록 하고 발색제의 역할도 하지만 고기의 육질을 단단하게 강화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 질산염은 단백질 사이의 결합을 매개하여 육질을 쫀쫀하게 해주는 특징이 있어서 오래 묵은 염장고기는 나무토막처럼 단단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며 대체로 그 식감은 연골을 씹는 것 같았다고 한다. 요즘의 염장고기도 단단하기는 마찬가지이며, 어느 정도냐 하면 최소 육포 정도의 굳기이다.[8] 오래 묵은 단단한 고기는 이빨로 뜯어 먹는 것은 불가능하고, 잘 드는 칼로 깎아내듯 자르거나 심하면 톱으로 썰어야 한다.[9] 너무나 묵혀서 돌처럼 단단해지면 심지어 납 총탄과 파편에도 뚫리지 않을 정도라고 당시 기록에도 남아있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다룬 샤프 시리즈에도 묘사되어 있다. 배고파서 염장고기를 담은 주머니를 열였더니 거기에 총탄이 박혀있더라는 것. 그래서 염장고기를 만들 땐 경도를 완화하기 위해 지방이 풍부한 부위를 선호한다. 뜨겁게 요리하면 지방이 녹아 기름으로 나오면서 부족한 수분감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고 지방 영양소 공급도 하는 데다, 조리 시 같이 넣은 야채 등의 부가 재료 맛까지 좋아진다. 게다가 지방질이 많으면 만든 지 오래되지 않았을 경우 충분히 씹어 먹을 정도의 굳기였다. 그러나 당시에 군용 염장고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지방이 많아 먹기 좋은 부위는 빼돌리고 단단한 힘줄과 뼈가 많은 값싼 저질 부위로 제작하는 경우가 너무 흔했기 때문에 염장고기의 괴악한 맛, 상상을 초월하는 경도, 질긴 육질은 당시 이를 섭취한 군인과 선원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다.
유튜브에 올라온, 18세기의 염장고기 제조 방법을 설명해 주는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선 돼지고기 어깻살과 소금을 이용하여 만들었지만, 부위는 어떤 걸 쓰든 상관없다.
초석은 화약의 재료 중 하나라 개인이 구하기는 어려우므로 만일 집에서 만들어보고 싶다면 고기를 한번 삶아 절이는 방법도 있다. 보툴리누스의 위험성이 줄어들고 오히려 날것을 그대로 절이는 것보다 훨씬 보관성이 뛰어나다. 맛은 그냥 소금 맛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습식으로 소금물에 절이는 방법과 건식으로 소금에 파묻어 절이는 방법 중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 취향에 따라서 후추, 마늘, 파슬리 등을 첨가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소금에 고기를 묻고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주 정도 묵히면 완성이다. 자연인에서 삼겹살을 소금 단지에 파묻어 보존하는 이가 나온 적 있는데,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그냥 생고기와 별 차이 없었고, 불판에 구우니 똑같았다.[10] 그러나 소금에 오래 재울수록 수분이 빠져나가 식감은 가죽과 비슷해지며 짠맛밖에 안 나는 딱딱한 고무 덩어리가 되어 갈 것이다.
2.2. 역사
제조는 항구 주변의 가공소에서 이루어졌는데, 영국이 해양 강국이었던 탓에 워낙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다 보니 품질이 엉망인 것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 들어가는 고기는 좋은 편이 못 되는데[11] 당시 염장고기에 사용된 것은 특히 저질육이었고 바쁘게 만들면서 위생 상태까지 최악이라 흙이나 털이 섞인 건 이상한 일도 아니고, 심하면 배설물이 섞여 있기도 했다.더 경악스럽게도, 당시에는 유통 기한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변질된 물품을 폐기하지도 않았다. 1차 대전 참전자의 일화를 보면, 염장고기가 든 나무통을 받았는데 굉장히 오래되어 보였고 내용물은 녹색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래서 혹시 넬슨 시절[12]에 만든 게 아닐까 농담을 했는데 아무도 그걸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도 유럽식 항만 시설이 없는 곳에서는 염장고기를 대량으로 만드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 개발이 덜 된 식민지에서 보급이 필요해진 함선에서는 승조원들이 살아있는 가축을 끌고 와서 직접 도축한 뒤 만들었다. 승조원이 세~네 자릿수인 데다가 몇 달 치를 채워 넣어야 했기에 수백 마리를 어떻게든 구해서 도축하면 바다가 핏물로 인해 말 그대로 시뻘게질 정도였지만 대량으로 만들어서 창고에 처박아 두고 몇 달 푹 썩은 뒤에야 보급되는 염장고기보다는 갓 만든 염장고기가 훨씬 부드러웠기에 승조원들은 좋아했고, 겸사겸사 며칠은 그날 도축한 생고기가 배식됐다. 영국 해군의 경우, 도축과 육류 가공을 전담하던 정육병은 승선한 해병대원 중에서 차출해 맡기는 관습이 있었다.
미국이라고 딱히 다른 건 또 아니어서 19세기 후반에 대형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육류 가공업체였던 아머사(Armour & Company)[13]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미군에 50만 파운드의 염장고기 납품이라는 초특급 계약을 맺었을 때도 저급한 고기, 심지어 썩은 고기도 섞어서 염장고기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결국 수천 명의 미군들이 식중독에 걸려 아머사의 염장고기는 전량 회수되었다.
2.3. 취식 방법
이런 물건도 식량이랍시고 먹어야 했던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염장고기는 우선 엄청난 농도의 짠맛이 취식에 있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장기 보관을 위해서 고기를 소금에 파묻어 둔 정도이니 먼저 고기의 소금기를 최대한 빼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가장 널리 사용된 방법은 물에 염장고기를 넣고 푹 끓여 수육으로 만든 것이며, 다른 식재료들이 풍부할 경우에는 염장고기와 야채 등을 같이 넣고 끓여서 수프와 스튜로 만들어 먹었다.[14] 북아메리카에서는 페미컨과 같이 끓인 수프, 스튜로 많이 먹었는데, 페미컨이 소금 간이 안 되어 있어서 같이 넣고 끊이면 간이 잘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클램 차우더에도 염장고기를 살짝 넣어서 풍미를 내기도 했다.그런데 이건 상대적으로 물을 구하기 쉬운 육지에서의 이야기이다. 바다를 떠도는 선원 입장에서는 고기를 끓일 물은커녕 자기들이 마실 식수도 부족한 상황이 부지기수였다. 함 내 공간에 식수를 최대한 적재한다고 해도 양이 충분하지 않고 심지어 며칠만 지나도 녹조가 끼면서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오염된 물은 럼주 등과 함깨 배급하여 어떻게든 마시려 했지만 럼주도 남아도는 게 아니다 보니 상황은 역시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배 위에서는 불을 피우기도 힘들었다.[15] 물론 불을 아예 못 피우는 건 아니었지만, 상술했듯 화재 위험으로 인해 불을 피우는 시간도 제한되었고, 무엇보다 당시 선박에 적재할 수 있는 장작의 양도 제한된지라 마음 놓고 불을 피워 펑펑 물을 끓이고 요리를 해 먹을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수시로 정박해서 보급을 받을 수 있는 연안 항해 시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원양 항해 시에는 짜디짠 염장고기를 고통스럽게 먹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바닷물을 퍼 올려서 고기를 헹궈 먹기까지 했는데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염장육이 고기 반 소금 반 수준이라 못해도 20% 이상의 소금을 때려박던지라 염도가 더 높은 고기가 덜 짠 바닷물(바닷물의 염분 농도는 약 3.5%)에서도 확산을 통해 염분이 빠져나가 바닷물에도 잘 헹궈졌다고. 하도 염도가 높다 보니 급성 고나트륨혈증을 일으켜 사람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라 괴혈병의 원인이 과다한 염분 섭취에 있다고 오해했을 정도이다.
십 비스킷을 잘게 부순 다음 염장고기를 섞어 죽처럼 끓이는 방법으로 랍스카우스(lobscouse)[16]를 야매로 만들기도 했다. 맛이야 엉망이지만 십 비스킷은 주식 용도라서 간이 부족한 느낌이라 둘을 섞으면 염도가 의외로 적절해졌다고.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선 돼지 꿀꿀이죽만도 못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설 혼블로워에서도 십 비스킷과 함께 수병들이 매일 먹던 음식이다.
야매라고 말한 대로, 십 비스킷을 이용한 랍스카우스는 변형 버전일 뿐, 원래는 저런 요리가 아니다. 원본 랍스카우스는 영국뿐 아니라 독일, 노르웨이 등 북해 연안국에서 지금까지도 널리 먹는 요리다. 랍스카우스를 괜찮은 고기에 소금 간 한 것과 채소, 십 비스킷을 사용해서 정성 들여 끓이면 이렇게 된다.
영국 해군은 처음에는 삶을 수만 있다면 삶은 것을 그냥 먹었다. 그러다 19세기부터는 식민지 인도에서 커리를 도입하여 뿌려 먹었다. 네덜란드 해군은 삶은 고기에 버터와 겨자씨를 섞어 만든 소스를 뿌려 먹었다. 물론 어떻게 먹어도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길 맛이 난다는 것 자체는 동일했다. 그나마도 폭풍이 불거나 해서 바다가 잔잔하지 못하다면 화재 위험 때문에 화로를 쓸 수 없어 요리가 불가능했으므로 그냥 그대로 먹어야 했다.
그럼에도 바다 위에서는 엄연한 선호 식품이었다. 장교나 상선사관들의 소유물이거나 비싼 돈 주고 사서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살아있는 가축, 마찬가지로 말단 선원과 수병들에겐 그림의 떡인 병조림, 통조림 등의 고급 식품을 제외하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품 중에서는 럼, 그로그와 함께 가장 선호되는 음식이었다. 짜네 차갑네 뭐 어쩌네 해도 썩어도 준치라고 일단 고기기 때문에, 아무튼 고기반찬이 나온다는 상황 자체를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염장고기를 줄이고 야채 절임 같은 걸 주면 수병들이 싫어했고, 배식받을 때 고기를 내가 덜 받았니 얘가 더 받았니 하면서 싸우는 일도 흔했다. 사실 이는 모병제를 유지했던 영국군의 특성도 관련 있는데, 빈부 격차가 극심했던 당시에 모병된 수병의 대부분은 가난해서 배를 곯는 하층민 출신이었고 이들에게 있어 밀가루로만 만든 빵과 고기, 덤으로 술까지 삼시 세끼 식사로 나온다는 건 엄청나게 매력적인 일이었다. 비록 그게 건빵에 염장고기라고 할지라도 어차피 사회의 하류층은 아예 돈이 없어 식사 자체를 못하거나 저정도가 진수성찬인 수준의 비참한 식사를 해야했기에, 빵이 딱딱하네 고기가 짜네 불평을 할지언정 그렇게 큰 불만은 없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항해 내내 돌빵과 짜디짠 고무고기를 먹으면 불만은 생겼겠지만 사실 이나마도 매일 주어진 게 아니었다. 당시는 고기가 귀한 전근대사회였고 염장고기가 어쩌니저쩌니해도 어쨌든 고기는 고기였기 때문에, 선원 기준으로 고기를 먹여주려고 했다는 게 이틀에 하루 꼴로 염장고기가 배급되는 정도. 다른 날에는 보통 말린 콩과 치즈, 소량의 버터 정도를 먹어야 했다. 치즈라고 하면 고급 술안주 치즈 같은 걸 떠올릴 수도 있는데,현대 일상 식생활에서도 마트에서 치즈를 사서 포장을 뜯고 비닐 뜯어서 냅두면 바로 굳어버리는걸 보면 알겠지만 장기 보존용 치즈는 그 관리 소홀히 해서 굳어버린 치즈 이상으로 가죽처럼 질겨서 맛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치즈 보관소는 함저부 가까이에 있었고, 그런 어둡고 습한 곳에 처박혀서 종종 곰팡이가 피거나 쥐에게 습격당한 치즈에 비하면 염장고기는 양반이었다고 한다.
장기 보관식으로서 수백 년간 굳건했던 염장고기의 입지는 19세기 중반 이후 통조림이 대중화되고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드디어 위축되기에 이른다.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는 제한 배급 식량이나 비상식량으로서 여전히 대량 생산되었는데, 염장고기를 이용한 요리 중 하나인 '크림소스에 버무린 염장 쇠고기를 얹은 토스트(일명 SOS, "Shit on Shingle". 뜻은 널빤지 위의 무언가. 과연 납득 가는 이름이다)' 같은 경우 1910년부터 1962년까지 미 해군 요리 교범에 실려 있었다.[17] 미 해군 출신들의 회고에 의하면 1940년대에도 2주에 한 번 정도는 식단에 올라왔는데,[18] 짬밥 좀 먹은 부사관이나 준사관들은 전반적으로 좋아했으나 젊은 수병이나 하급 부사관들은 그 요리를 계속 먹을 바엔 차라리 탈영하겠다는 충동까지 들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이전에 비해 고기 질은 많이 개선됐다지만 짠맛은 여전해 조리 전까지 계속 물에 헹궈서 고기의 염분을 최대한 빼내야 했다. 개념 없는 조리병이 염장고기를 물에 헹구고서 그 물을 버리지 않고 소스를 만드는 데 그대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른 경우에는 여전히 짜디짠 맛이 났다.
3. 콘드비프(corned beef)
현대적인 스타일의 콘드비프
비프 퍼스트라미 스타일의 콘드비프
염장고기에서 향신료를 추가하고 말리는 과정을 적게 하여 염장고기만큼 오래 보관하지는 못하나 그 대신 특유의 풍미가 나게 만든 일종의 햄과 비슷한 물건이다.
명칭은 corned beef. 영어에서 corn은 '옥수수'라는 의미 말고도 '알곡', '알갱이', '씨앗'(kernel) 의 뉘앙스가 있다. 고기에 알갱이가 굵은 암염 소금을 뿌려 저장되었기 때문에 붙은 명칭으로 의역하면 그야말로 '염장된 고기'. corn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번역가 등이 '옥수수 고기'라고 오역하는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19]
고기를 소금과 여러 가지 향신료에 절여 만든 가공식품이다. 전통적인 염장고기와 맛 자체가 다르며 말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얇게 썰어 샌드위치에 넣어 먹거나 스튜에 이용한다.
각종 향신료를 발라 만든 햄과 비슷한 형태의 물건은 콘드비프보다는 퍼스트라미(Pastrami)라고 부른다.[20] 보통 얇게 썰어서 드레싱과 함께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는데, 이걸 루벤 샌드위치(Reuben sandwich)라 부른다. 이 샌드위치를 만드는 유명한 식당이 뉴욕에 있는데, 고기에다가 빵 찍어 먹는 수준이다. 일반적인 샌드위치 햄보다도 더 독특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사진의 부위는 소 양지(뱃살)[21]로, 원래 질기고 결합 조직이 많거나 냄새가 심한 싸구려 부위인 뱃살이나 엉덩잇살, 어깻살을 냄새 없이 부드럽게 먹기 위한 조리법이다. 소금과 향신료에 절였다가 향신료 + 소금 가루를 덮어 오븐에서 4~12시간 익혀 만든다. 저온(70~110도)에서 오래 익힐수록 육질이 부드러워지며, 10시간 이상 익한 것은 손으로 쥐어도 쉬이 부서진다. 이걸 그대로 또는 샐러드나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다.
3.1. 통조림 콘드비프(canned corned beef)
오늘날 일반적인 콘드비프 통조림.
통조림을 열면 이렇게 생겼다.
외관은 돌려서 따는 구형 스팸 캔과 유사하나,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사다리꼴의 윗면이 아닌 아래쪽을 따게 되어있다. 윗부분을 들어내면 아래쪽에 마치 접시처럼 약간 깡통 일부분이 남는데, 아웃도어 계열에서는 한 손에 이 콘드비프 통조림, 한 손에 생토마토를 들고 번갈아 가며 씹어 먹는 것이 또 마초스러운 로망이다.
맛은 한국인의 입맛으로는 좀 짜고 느끼하게 만든 다진 소고기 볶음 정도. 스팸 오리지널보다 약간 더 짜다. 캔 안에 뭉쳐져 있으니 스팸처럼 썰거나 부서뜨려서 쓰거나 썰다가 부스러지는 경우도 많다. 위의 진짜 염장고기와의 관계는 대략 생햄과 스팸의 관계와 비슷하다.
1차 대전 당시 대영 제국 육군 소속 한 이등병이 참호전 상황에서 통조림 염장고기를 써서 만든 '콘드비프 스튜'로 한 끼를 때우는 상황을 재현한 영상이다. 20세기의 육군이다 보니 염장고기와 비스킷의 질도 나아졌으며 맑은 물도 있고 현지에서 공수한[22] 야채들이 더해진 데다 HP 소스까지 더한 위 문단의 해군들이 먹던 것에 비하면 호화판이라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랍스카우스'와 동일한, 으깬 염장고기와 비스킷에 물을 부어 끓이는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방식으로 손꼽히는 참호전이 펼쳐지던 1차 대전 당시엔 이마저도 비전투 상황이나 후방 지역 같은 평온한 때에서나 가능한 음식이었다. 한창 교전이 펼쳐지는 급박한 시점에서는 요리는 꿈도 꿀 수 없고 보급된 염장고기와 비스킷을 그냥 생으로 씹어 먹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때의 처참한 맛은
위 설명만 보면 마치 맛대가리도 끔찍하게 없는 것을 비용 문제로 억지로 먹인 싸구려 짬밥 같은 느낌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염장고기는 생고기보다 비쌌다. 그도 그럴 것이 생고기야 그냥 고기 자체지만 염장고기를 재워야 하는 소금은 당시엔 결코 싸다고 보긴 힘들었던 데다가[24] 초석은 전쟁 시에 엄청나게 많이 소모되는 화약의 주재료였기 때문에 기회 비용이 매우 큰 재료였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병 포스터의 단골 메뉴인 '매 끼니마다 X파운드 상당의 식사 제공!!'이라는 낚시는 맛대가리 없고 비싼 염장고기가 주범이었다.[25]
오늘날의 통조림 콘드비프는 본고장인 유럽, 북미에서는 영 시들한 대우를 받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점은 스팸과 마찬가지. 필리핀 등에서는 콘드비프에 밥을 곁들여 먹거나 덮밥처럼 만들어 먹는 음식도 있다. 보통 그대로 데워서 채썰기한 생양파를 곁들이거나 다진 양파와 같이 볶아서 먹는데 양파와 먹으면 양파의 매콤한 향미와 달달한 양파즙의 맛이 콘드비프의 비린내와 짠맛을 잘 잡아준다. 사진 미국의 영향 외에도 동남아 지역이 덥고 습한지라 짠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면도 있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참치캔이나 스팸을 선전하는 수준으로 콘드비프 통조림 광고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스팸에 비하면 영 인기가 없는데, 이건 맛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고 쌀밥에 환장하는 한국인의 입맛과 궁합이 무척 좋다. 먹어보면 장조림이 생각나는, 결대로 찢어진 쇠고기에서 적절한 훈제 향와 고기 비린내가 솔솔 풍기는 짭짤하고 느끼한 맛이고 여기에 양파나 마늘을 곁들여 주면 느끼한 맛과 비릿한 풍미를 적절하게 잡아주면서도 향과 맛이 더해져서 밥 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시점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원래는 GHQ가 일본을 좌우하던 시절에 미군병들이 먹고 남은 콘드비프를 일본인들에게 대량으로 뿌린 것이 그 시초였다. 당시에는 미군병이 준 콘드비프가 한국의 부대찌개처럼 대단한 성찬이었고 전후의 만성적인 식량, 특히 육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체적으로도 콘드비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콘드비프는 이름과는 달리 쇠고기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약간의 쇠고기에 대량의 말고기, 거기에 여러 잡다한 고기를 집어넣은 혼합육이었다. 결국 콘드비프라는 이름은 사기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시 55년 차에 일본 식품법이 개정되면서 순 쇠고기 제품만 콘드비프라고 표기하는 것이 허용되어 기존의 제품은 콘미트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기존의 브랜드를 버리기는 아까웠는지 콘드비프라는 이름으로 순 쇠고기 제품을 발매했다. 일본에서는 싼 맛에 고기 맛을 즐길 수 있고 가난했던 시절 많이 먹었던 탓에 과거의 향수를 표현하는 식재료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자키(Nozaki's)사의 콘드비프가 가장 대중적인 편이다.
미군 식당[26]에서 메뉴로 나올 때도 있다. 06년까지는 조그만 감자 조각이 함께 들어 있었다. 위 항목들만큼의 미칠 듯한 짠맛은 아니지만 베이컨급의 화력은 된다. 11년부터는 드문드문 나오기는 했으나 간 것보다는 야채와 볶아 짠맛을 줄인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포트 베닝의 수색대 훈련소 식당에서는 햄이나 미트로프와 같은 형태로 큰 덩어리를 썰어 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짬밥이다 보니 미군에서는 덩어리 콘드비프를 잘 찢어서 만든 물건이 아닌 통조림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미군 부대에서 썼던 물건인 만큼 부대찌개에 들어가기도 하나 비슷한 느낌의 소고기 분쇄육(Gound beef)보다는 덜 쓰이는 편이다.
과거 80년대에 콘비프라는 이름으로 통조림 제품이 국내 생산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별도의 광고도 하지 않았고, 맛이 좀 더 짜고 조미료 맛이 안 날 뿐 스팸과 차별화되지도 않고 생소한 음식이어서 그런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후 국내에선 생산하지 않으며, 온라인 몰이나 대형 마트의 해외 상품 코너에서나 이따금 보인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필리핀의 Purefoods-Hormel의 콘드비프 통조림이다. 근데 필리핀 현지에서는 위 사진의 Libby's의 제품이 더 흔하고 고급이며 Purefoods-Hormel의 제품은 두 번째쯤 된다. (사실 필리핀산이라고는 하지만 소고기는 대부분 남미 원산의 수입산이다.) 그 외에 흔치는 않지만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생산 제품이나 벨라루스나 러시아 등 동유럽 생산 제품도 들어오는 듯. 간혹 해외에서 발간된 요리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레시피에 콘드비프가 들어가면 스팸이나 장조림 캔으로 대체하라고 적혀있다.
롯데햄에서 나오는 장조림 통조림은 사실 장조림이 아니라 이 콘드비프 통조림을 일본 음식인 부타노가쿠니(돼지고기 장조림, 豚の角煮)[27]처럼 로컬라이징해서 장조림 맛으로 가공한 것이다. 롯데그룹이 일본에서 먼저 시작한 회사이다 보니 레시피 등에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롯데햄의 장조림은 간장이 아니라 돼지기름과 반투명한 소스가 들어 있다.
4. 솔트 에이징
자세한 내용은 드라이 에이징 문서 참고하십시오.최근에는 염장을 통한 육류 숙성을 하는 정육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드라이 에이징 과정에서 최소한의 소금을 첨가함으로써 숙성 기간을 단축시키고 수율 문제도 개선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5. 관련 문서
[1]
Corn(옥수수, 곡식)이 아니라 corned, 즉 “굵은 소금으로 절인”이란 의미이다. 일본어로는 コンビーフ(콘비프)라서 corn beef라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옥수수와는 무관하다.
[2]
통조림 절임 고기를 뜻하는 단어로 일반 콘드비프뿐만 아니라
스팸 등도 포함하는 용어다.
[3]
냉장 보관 설비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일단 도축하면 바로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상온에서 보관한 지 5일쯤 지나면 표면이 굳어버리는데 딱딱해진 겉부분을 잘라서 벗겨내고 먹었지만 한계가 분명해서 도축한 후 최대한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축이 소비하는 먹이와 물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많이 실을 수도 없었다.
[4]
지금도 건설 현장이나 물류 센터 등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짜게 먹는 편이다.
[5]
그래서 현재 판매 중인 젓갈 상당수는 말이 염장 식품이지 냉장 보관이 필수적인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6]
아질산 나트륨은 소금 1kg당 84g의 아질산 나트륨이 들어있는 국내의 시판 피클링 솔트(일반 소금과 아질산 나트륨을 섞어놓은 소금.)를 쓸 경우에 고기 1kg에 1~2g 정도만 사용하면 충분하다. 중요한 점은 '아질산 나트륨이 들어간 피클링 솔트'를 1~2g 쓰라는 거지, 아질산 나트륨을 1~2g 쓰라는게 아니다! 아질산 나트륨은 살균 효과가 강력한 만큼 독성도 아주 강하기 때문에 극미량만 사용해야 한다. 부족한 염도는 일반 소금으로 보충.
[7]
질산 나트륨이 미생물에 의해서 아질산 나트륨이 되어서 효능을 발휘하는 식이다 보니 현대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질산 나트륨을 직접 쓰는 편.
[8]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흔히 파는 간식/술안주용 육포는 그리 딱딱하지 않지만, 이런 제품들은 전통적인 저장식품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독특한 풍미와 식감을 내기 위해 반건조한 식육 가공품에 가깝다. 진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육포는 설령 조미료나 향신료를 충분히 써서 좋은 맛이 난다 하더라도 '아무리 씹어도 입 안에서 거칠거칠한 나무껍질 같은 것이 사라지지 않고, 그걸 그대로 삼키다 잘못하면 목에 상처를 낼 수 있을만큼 질기고 딱딱하다.
[9]
흔히 보는 하몬과 프로슈토도 썬다는 뜻인 슬라이싱(Slicing)이 아니라 깎는다는 뜻의 카빙(Carving)이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
[10]
사실 염장고기의 일종인
베이컨 제작이 돼지고기 등을 소금에 푹 절이고 훈연해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지라 좀 비슷하다.
[11]
군대는 높은 육체노동 강도 때문에 그만큼 단백질 보충이 절실하고, 많은 양의 고기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은 가격의 고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라서 국군만 해도 구제역 파동이 일어나면 돼지고기가 늘어나고 조류 독감 파동이 일어나면 닭고기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오해는 금물로 당장 상상하듯 살처분한 고기를 주는 건 절대 아니다. 살처분한 가축은 그대로 폐기되고, 단지 그런 파동으로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해당 육류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애초에 아무리 군대가 돈을 아낀다 하더라도 살처분한 고기를 준다면 병사들을 그대로 감염병에 감염시키겠다는 소리밖에 더 되지 않는다.
[12]
약 100년 전이다. 대략 2020년대에 1차 대전 말기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인 셈이다.
[13]
1863년 시카고에서
필립 댄포스 아머가 창립한 기업.
[14]
식사 재료로 다양하지 않고 요리 도구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물에 끓이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15]
철로 배를 만드는 지금도
화재 우려 때문에 조리에 가스레인지가 아닌 전열기를 쓰는 마당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당시 배에서 불 피운 화로가 엎어지기라도 한다면 대형 참사이다.
[16]
'스카우스(scouse)'라고 하기도 한다. 원래는 밀가루와 고기를 기반으로 끓이는 스튜로 십 비스킷도 일단은 밀가루고 염장고기도 고기는 고기니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랍스카우스라는 명칭은
리버풀 사람들과 사투리를 가리키는 별명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17]
1차 세계 대전 무렵에 나온 레시피가 베트남 전쟁 무렵까지 쓰인 것이다.
[18]
미 해군 음식인데 어째서인지 HBO의 미 육군 101 공수부대를 다룬
밴드 오브 브라더스 1화 커레히 에피소드에서 작중 신참 소위인 윈터스와 닉슨의 식사 장면에서도 나온다. 일단 상기했듯 육군도 염장고기를 아예 안 먹은 건 아니기 때문에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 자체는 아주 없는 건 아니다만.
[19]
원래
옥수수는 중남미의
멕시코가 원산지로 16세기에 들어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기 전까지는 중남미 밖의 외부 지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한국의 번역가들이 영어 문헌들을 번역할 때, 영어 단어 콘(corn)을 무조건 옥수수로 번역하는 바람에 옥수수가 외부 지역에 알려지기 전인 12세기나 10세기 유럽의 역사를 다룬 문헌에서 영어 단어 콘(corn)이 나오면 죄다 옥수수로 번역해서 독자들한테 혼동을 불러오는 일이 많다. 사실 원래 영어 단어 콘(corn)에는
곡식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래서 16세기 이전 영어 문헌에서 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으로 번역을 해야 마땅한데 한국의 번역가들이 이걸 잘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다.
[20]
원래는
터키식 쇠고기
햄을 뜻하는 고유 명사다. 향신료 배합을 그대로 베껴 온 것.
[21]
물냉면 위에 찬 편육으로 올리는 부위다.
[22]
영상에서도 '도움을 주는지도 모르고 있는 농부의 도움으로'라고 하니 농부와의 직접적인 접촉 같은 건 없었을 것으로, 사실
서리했다는 말을
길게 풀어서 말한 셈이다.
[23]
저 당시 독일군은 순무로 만든 빵에 순무로 만든 버터를 발라 먹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24]
소금은 군수 물자이기 때문에 전쟁 중엔 값이 올라가고 과거엔 소금으로 세금 벌려고 국가의 소금 전매가 흔했다.
[25]
두 번째는 건빵이다. 건빵은 밀가루로 만들었는데 당시엔 밀가루도 비쌌다.
[26]
dining facility / DFAC
[27]
한국 장조림보다 좀 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