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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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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사과학의 일종인 대체의학으로 분류하나, 한국, 중국, 북한, 대만 4개국에는 독립된 한의학부가 존재하여 의학사에 준하는 학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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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의학과의 관계3. 전공분야
3.1. 생명약학3.2. 산업약학3.3. 임상약학3.4. 사회약학
4. 역사
4.1. 약학의 기원4.2. 서양 약학사4.3. 한국 약학사
4.3.1. 고조선시대 약학4.3.2. 삼국시대 약학4.3.3. 남북국시대 약학4.3.4. 고려시대 약학4.3.5. 조선시대 약학4.3.6.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 약학4.3.7. 광복이후 및 현대 약학4.3.8. 미래 약학
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약학이란 과학·기술 및 직업이 합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 역사는 동시에 물리·화학 및 자연과학의 역사이며, 또한 의학원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가지 과학기기의 고고학적 연구를 포함한 조제술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 나라 그 시대의 사회·경제 등과 관련되는 기술자인 동시에 상인의 측면도 지닌 약사(藥師)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냐르, 프랑스 파리약학전문학교 교수, 1913년 약사학회(藥史學會) 발족식에서
Pharmacy

사람 또는 동·식물의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데에 사용되는 특수한 물질(약물 또는 의약품)에 관한 기초과학 응용과학, 사회과학 등을 다루는 종합학문. 구체적으로는 나라마다 교육과정이 다소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약사가 되기 위해 약학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순수하게 약물의 생리/생화학적 효능에 대한 내용은 약학 대신 약물학(약리학) 문서를, 약물의 구조에 대한 것은 유기화학 문서를 찾아볼 것.

2. 의학과의 관계

사람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 의학과 약학의 양대 분야가 있으며 전문직으로서 의학자, 의사 및 약학자, 약사가 있다. 이와 같은 분업적 사고방식과 체계에 의하면 의학과 약학이 확연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또 구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질병의 예방과 치료라는 공통의 목표와 목적을 지니고 있는 만큼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며 확연하게 구분되기 힘든 관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약의 본질 및 약물요법에 통달함이 없이 완전한 의료가 성립될 수 없고, 또 질병의 본질 및 병태에 대한 이해 없이 완전한 약료가 성립될 수도 없다.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약학과 의학의 관계를 살펴보자.

첫 번째. 과거의 역사적 배경이다. 제도적으로 의학과 약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던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물학자가 곧 의학자요, 의학자가 곧 약물학자인 관계에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의 관부에는 내관부사 중에 약부라는 관서가 있었으나 약재의 조달이나 조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술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기관을 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직관지> 중의 약전도 궁정용 의료기관의 명칭이며, 고려의 약점·약국·약원 등도 이와 비슷한 관서인 내의원의 명칭으로 되어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약학이라는 개념이 넓은 의미에서의 의료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도 중생의 병을 고치고 재난을 막아주는 부처님이라는 뜻이지 오늘날의 분업적인 약사(藥師)의 역할을 하는 부처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유일체(醫儒一體)라고 하여 유학자가 철학적으로 의학원리를 연구하고 본초학적인 약물학의 지식도 아울러 터득함으로써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일도 하였음을 실학자들 중에서 그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의학사(醫學史)와 약학사(藥學史)를 분명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다만 중점을 어디에 두어 오늘의 의학과 약학의 연원을 찾느냐에 따라서 구분이 될 따름이다.

두 번째. 앞으로의 약학 발전방향이다. 생명과학적 측면에서 약학은 질병치료나 예방을 위하여 의약품을 사용하는 용약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유효하고 안전하게 '용약'하기 위해서는 약리학·독성학·약제학 등이 필요하게 되었고, 다시 이를 위하여 생리학·생화학·미생물학·체내동태학 등의 기초학문이 도입되어 왔다. 그리고 '용약'에 있어 생명과학적 특성을 공유하는 학문이 바로 의학이다. 이러한 의학과 공유하는 생명과학적 특성을 가장 실감시켜 주는 연결고리가 임상약학이다. 임상약학은 이제까지의 약학이 지나치게 물질과학에 치중해 왔다는 반성, 그리고 이제는 환자 지향의 약학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자각으로부터 미국 등지에서 최근 발전되기 시작한 학문이다. 국내에 도입역사가 짧은 만큼 그 개념도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이 임상약학을 통하여 약학이 본격적으로 의학과 교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3. 전공분야

약학에서 다루고 있는 분과 영역에 대한 목록이다. 각 영역에 포함된 학문들 중 일부는 약대 학부와 약사 국가시험에서 다루지 않는 것도 있다. 약대 학부 과목이나 약사 국가시험 과목에 대해서는 약대 문서로.

3.1. 생명약학

의학의 기초의학과 차지하는 위치가 비슷하다. 기초적인 생명과학의 영역을 기본적으로 포함하며, 연구 방향에 따라 생리활성(약효/독성 등)을 띠는 물질과 생명체의 상호작용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지기도 한다.

3.2. 산업약학

약품 산업 전반에 관련된 분야로 약물 디자인 및 합성(창약), 약품 개발(제약), 실제 생체 내 투약 시 효율성 등(용약)을 연구한다. 또한 만들어진 의약품의 제조공정을 표준화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기준, 약물 및 약품 유통 등에 대해 연구하며, 이외에 천연물 제제, 기능성식품, 화장품 등에 대한 영역 또한 다루고 있다.

3.3. 임상약학

근거중심약학 (Evidence Based Pharmacy, EBP)에 따라 환자에게 최종적인 약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물질 위주의 과거 독일식 약학(물질과학 중심 약학)에서 임상 위주의 미국식 약학(환자 및 약료서비스 중심 약학)으로 경향이 이동하며 점점 비중이 늘어나는 분야다.

3.4. 사회약학

현대 약학은 환자 중심의 질병 치료와 함께 사회적 질병 예방 시책과 위생관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또한 이 영역은 약의 사회적·경제적 특성과 국민건강보험 및 약사(藥事) 전반의 법적 범위에 대하여 연구한다. 임상약학과 함께 근거중심약학을 기반으로 비중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4. 역사

4.1. 약학의 기원

약학의 기원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치료본능에 의하여 시행착오적인 경험으로 천연물 가운데에서 약물을 찾아내어 그 지식을 축적시켜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4.2. 서양 약학사

4.3. 한국 약학사

한국 약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본초학 및 향약(鄕藥)의 발전과정을 밝히는 것이 한국의 약학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본초학이 중국의 본초학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 한국과 중국의 약학은 각기 독자적으로 출발하였다. 다만 국제교역이 활발해진 , 시대부터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약학사는 한국 민족 고유의 본초학 및 향약과 향방(鄕方:한국 고유의 처방)이 있어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이에 도입된 중국의 본초학을 혼화양성하여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각 시대의 여러가지 문헌의 고증을 통하여 증명된다.

4.3.1. 고조선시대 약학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의약학의 창시자는 신화적인 존재이며 제사장을 겸하는 고대 통치자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의약학 창시자는 고조선 개국신화의 환웅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기(古記)》에 “환웅천왕이 태백산정의 신단수 하에 내리시어 신시를 배포하고, 풍백·우사·운사 들을 거느리시고 주곡(主穀)·주병(主病)·주형(主刑)·주선악(主善惡) 등을 하시면서 무릇 인간 360여사를 다스렸다.”라는 기록과 사람으로 변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치성을 드리라고 한 기록으로 보아서 환웅이 백성들의 병을 주관하는 동시에 쑥·마늘 등을 이미 약으로 이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3.2. 삼국시대 약학

삼국시대는 주로 한토(漢土)의약학과 인도의약학의 영향을 받아 외래의약이 유입됨과 동시에 동화되고 우리 것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특히 인도의약학의 전래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이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이며, 이 뒤를 이어 백제· 신라에도 전파되었는데 교리 및 불전만이 전래된 것이 아니라 의술·의서·약물 등의 인도의약학이 함께 도입되었을 것이다.

또한 중국 문헌에 삼국시대의 특산약재에서부터 온천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시 우리나라의 약재물산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구려의 약방문이 당나라에 소개된 사실, 양(梁)나라의 도홍경이 저술한 《신농본초경집주》라는 책에 한국의 인삼이 중국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 역시 도홍경의 《증류본초》 가운데 고구려산의 금설(金屑:금가루)이 질이 좋아서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기록 등은 당시의 한국 고유의 약학발전의 구체적인 증좌라고 할 수 있겠다. 고구려의 의약은 인도의 불교와 함께 인도의약이 전래되고, 오(吳)나라 지총이 당시의 《의경》, 《경방》 164권을 가져와 발전하기 시작했다.

백제는 삼국 중 의약의 제도적인 분화가 가장 발달하였고 백제사 기록에는 의박사, 채약사 등의 관직 품위가 명시되었다. 백제의 관부에는 내관부사 중에 약부라는 관서가 있었으나 약재의 조달이나 조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술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기관을 칭한 것이다.

신라는 한토문화가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향약과 당약을 구분했고, 무의제도가 있었으나 남북국시대의 통일신라에 이르러 당의방과 승의들에 의해 도입된 인도의 의설 등이 융화하여 독자적인 경험방(經驗方)이 형성되어 갔다.

삼국시대의 약학사에서는 고구려, 백제와 신라의 의약학 발전이 모두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 의약학 수립에 기초가 된 사실도 알 수 있다. 장수왕 47년(459) 고구려의 의가덕래가 일본의 난파에 가서 한의약학을 전파했다는 기록, 백제의 의박사인 나졸왕유능타와 채약사 시덕번양풍이 일본으로 건너가 의술을 전하였다는 기록, 특히 일본에서 984년에 간행된 단바의 《의심방》과 《의략초》에 백제의 약방문서인 《백제신집방》과 신라의 약방문서인 《신라법사방》이 인용되어 있는 사실로 보아, 당시 우리나라의 약학수준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4.3.3. 남북국시대 약학

통일신라의 의약학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당승, 당약, 향승, 향약을 구분하게 했고, 692년에 처음으로 제도화를 시작하여 박사가 학생들에게 《본초경》, 《갑을경》, 《소문경》, 《침경》, 《맥경》, 《명당경》, 《난경》 등을 강설하게 하여 의약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당의 제도를 본 딴 것이었다.

또한 남북국시대의 당나라는 대식국·천축·곤륜·남양 등지와의 교역이 활발하였으며, 통일신라는 그와 같은 당나라와의 통교가 빈번하였으므로 통일신라도 남방 각지와 직접 교역을 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알렌(Allen,H.N.)의 <외인거래한국연표>(조선학보, 제5집)에 당시 회교도가 신라에 정착하여 인삼·녹각·노회·장뇌 등을 교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4.3.4. 고려시대 약학

고려의 약학은 개국 초에는 신라 약학의 계승이었기 때문에 당나라의 영향으로 시작되어 송나라 원나라의 문화를 섭취하였으나 사실 중후기 이후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고려 약학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한토나 인도 등지의 대륙산 수입약재 대신 국산 약재를 사용하여 전통성이 강한 향약방과 향약본초를 발전시킨 것을 특징으로 한다.

고려 때의 구급의방서인 《향약구급방》을 비롯하여 《삼화자향약방》·《향약간이방》·《향약혜민경험방》·《동인경험방》 등의 향약방서가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산실되어 자세히 검토하는 것은 힘이 든다. 다만 남아 있는 《향약구급방》및 조선 초기에 간행된 《향약집성방》에 의해서 고려시대의 향약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이 시대에 있어서 의약학에 대한 명저는 《향약구급방》으로 대표되고 있는데 이는 자주적 의약학의 효시가 된다.[3]

고려시대 약학의 특징으로는 초본약을 치병의 목적에 쓰되 복합의 경우라 할지라도 세 종류 이하의 생약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가능하면 단방(單方)을 쓰도록 했다. 이것은 해당 약에 대한 약치 효과의 임상적인 응용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상약국에서 납약, 가루약물을 제조하고 있었으며 그 기술이 중국보다 100여 년 앞서 있었다. 또한 상골의 제법은 고려에서 시작하여 그 제법이 중국에 전해졌다고 《신수본초》에 수록되어 있다.

4.3.5. 조선시대 약학

조선시대의 약학은 조선 개국 초기에 고려의 의약자립 정신을 이어받았다. 구체적인 시책으로 향약의 생산 및 당약의 재배 등을 관장하게 하는 종약색이라는 부서, 향약의 수납 및 향약에 의한 구료 또는 《향약제생집성방》을 비롯한 향약문서의 편집 송포를 실시하는 제생원을 설치하였다. 이는 세종(世宗) 대에 이르러 향약장려정책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적 약학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세종은 대륙성 약재의 의존을 탈피하고, 자주적 약재공급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에 따라 약재수입에 따르는 국비 유출을 방지함과 동시에 자국민의 병 치료에는 자국민의 체질에 적합한 자국산 약재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의토성(宜土性)을 내세워 향약의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향약의 재배와 증산 및 자급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전문학자를 명나라에 파견하여 향약과 당약의 이동(異同)을 검토하고, 향약으로서 당약에 대치할 수 있는 약재개발에 힘쓰는 동시에 전국에 걸쳐서 약재의 재생 및 재배상황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결집하여 《향약본초》, 향약을 사용하는 의방서인 《향약집성방》, 향약의 분포실태조사서인 《세종실록》 <지리지> 등을 간행하게 하였다. 또 약재 채취의 적정한 시기 및 방법에 관한 지침서인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하는가 하면 희귀 수입약재인 용뇌· 사향·주사·소합유 등의 사용을 제한시키는 동시에 남방계 약재인 안식향·영릉향 등을 제주도 등에서 대용품 개발 또는 재배시험 등을 통하여 자급하게 하였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 향약장려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의약학의 명저서가 탄생한다. 허준(許浚:1539~1615) 《동의보감》은 현대의 의약학의 목표점인 병의 예방과 건강 추구라는 양생의 정신에 입각한 의약학서라는 점, 중국의 본초학이나 의약학을 넘어 조선의 본초학과 의약학의 핵심을 잘 정리했다는 점, 편집방식이 현대의 그것에 뒤지지 않게 뛰어나다는 점 등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의약학서로 자리잡았다. 이후 《동의보감》은 국제적인 의약학서가 되어 현재까지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2차례 출간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며, 중국 전통 의약학서 가운데 《동의보감》보다 많이 출간된 책은 불과 수 종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은 국내 및 국제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향약서와 《동의보감》 등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의약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이두어로 된 향약명마저 일본의 본초서에 이명(異名)으로 수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두향약명의 올바른 해독 없이 인용한 나머지, 생약 중 산장(酸漿)은 ‘꽈아리(叱科阿里)’라고 이두향약명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 본초서에도 그대로 표기되어 있거나 오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본초학이 일본 본초학에 준 영향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과학적인 실학이 일어남에 따라 우리의 독자적인 본초학 내지는 약학을 수립할 수 있는 시기였으나, 쇠퇴하여 가는 국세와 사대사상의 틈바구니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몇몇 뜻있는 실학자들에 의하여 농수산학적 또는 박물학적 본초서가 간행된 것은 그런대로 가치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조선 말엽의 이제마(李濟馬:1837~1900)가 체계를 세운 사상체질적 약성관에 의한 약물분류는 독창적인 한국 약학의 업적이다. 이 사상약성론을 저술한 것이 《동의수세보원》이며 사상의약론이 제창된 지 오래이나 아직 약리학적으로 과학화되지 못한 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상인의 체형분류법이 현대의학적 계측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지는 속단할 수 없으나, 서양의 체형론이 주로 생리와 병리설에 그치고 있는 반면, 이제마의 사상론은 질병치료에 구체적으로 응용하여 약물 및 식물을 분별하고 있어 설과 용법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개항과 더불어 양약 및 서양의술이 한국에 도입되면서부터 약학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강화도조약 갑오개혁 이후 대부분의 체제가 근대화됨에 따라 점차 약제사(藥劑師)·제약사·약제사(藥劑士)·약종상 등의 명칭이 의약 관계의 관제 규정 등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1897년 민병활이 평양에서 제약을 시작하여 인소환, 복방, 방향 팅크(tincture) 등의 약을 제조한 것이 구한말의 매약의 시초이다.

4.3.6.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 약학

사실상 이 시기에서 서양의약학에서 발전한 서양의약학 계통의 약학과 우리의 전통 한의약학이 나뉘어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이후 서양 문물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서양 의약학이 전파되어 현재까지 매우 빠른 발전을 거듭해온 데에 비해 전통의 한의약학은 상대적으로 현상 유지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한의약학을 절멸시키고자 하였다.

1907년에 이경봉은 서울에서 제생당대약방을 개설하여 청심보명환을 주 품목으로 제약하였다. 1909년 내부위생국에 위생시험소가 설치된 것이 한국 최초의 현대 약학 관계 시험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약학자로서는 일본에서 약학교육을 받고 약제사가 되어 귀국하여 대한의원 교수로 임명되었던 유세환(劉世煥)을 들 수 있다. 1910년 내부령 제5호로 공포된 ‘대한의원 부속의학교 규칙’에 약학과의 규정이 있는데, 이것이 현대 약학교육기관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나, 일제의 병탄으로 실현되지 못한 채 유산되었다. 1915년에 설치된 조선약학강습소가 1918년에 발전적으로 2년제의 조선약학교로 설치된 것이 한국약학교육의 실질적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930년에 전문학교로 승격되었는데, 이 사이의 11년이 우리나라의 근대 약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938년 최병욱이 606호(salvalsan)를 국내에서 합성해서 합성약품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4.3.7. 광복이후 및 현대 약학

일제강점기 한의약학은 암흑기에 있었다. 그러나 1945년 광복과 더불어 한의약학 부흥의 여명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수립과 더불어 1952년 9월 새로운 의료법이 공포[4]되어 한의사 제도가 설치되었고, 이어서 교육기관의 필요에 따라 1953년에 서울한의과대학이 설립되었고 이후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로 바뀌었다.

현대 서양의약학 계통의 4년제 약학 교육기관의 최초 설립은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이루어진다. 그 뒤 광복 이후의 혼란기와 6.25 전쟁 이후의 재건기를 거치는 동안 약학과 약에 대한 사회적·산업적 요구가 커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약학교육기관도 늘어나게 되었다. 즉, 1940년대까지 1개에 불과하였던 4년제 약학대학이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13개로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5]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20개로 늘어났고[6], 2010년대 초반 2+4제도의 신 학제로 개편되면서 15개 약학대학이 추가로 설립[7], 2020년에 2개교가 추가 설립[8]되면서 총 37개의 약학대학이 약학자 및 약사를 양성해오고 있다. 그 후 2020년, 2+4제도의 학제에서 통 6년제의 학제로 개편함에 따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약학대학 문서 참조.

한약학교육기관인 한약학과는 1996년 경희대학교 원광대학교를 필두로 1998년 우석대학교에 설치된 것이 전부다. 다만 모두 약학대학 내에 포함되어 있는 전공 중 하나다.

현재 한국에는 대한약사회에 등록되어 있는 약사 인구가 약 6만 5천명에 달하며[9], 약학교육기관으로서 약학대학이 37개, 약학연구기관으로는 국립보건연구원, 각 약학대학 연구소, 각 시·도 보건연구소 등이 있고, 전문학회로서는 대한약학회·한국약제학회·한국생약학회· 고려인삼학회 등이 있어 활발하게 학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약사직능인의 모임으로 대한약사회가 있다. 국제적인 참여로서는 세계약학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Pharmaceutique:FIP)의 이사국이며, 한국은 2017년에 처음 세계약학연맹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또한 아시아약학연맹(Federation of Asian Pharmaceutical Associations:FAPA)의 회원국이고, 1968년과 1982년의 2차에 걸쳐서 아시아약학회의(Asian Congress of Pharmaceutical Sciences) 즉, 아시아약학연맹 총회를 개최한 바 있다.

4.3.8. 미래 약학

이와 같이 한국의 약학사는 전통약학의 기반 위에 개화기의 약학이 1세기에 걸쳐서 꾸준하게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적 수준의 미래 약학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한국 약학의 발전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물질과학과 생명과학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신약을 창제해 내려는 자연과학의 방향이다. 이 방향은 물질특허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과학계가 약학계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방향은 보다 효과적으로 약을 사용하고 관리하기 위한 직능인으로서의 약사교육방향이다. 물질 지향의 약학에서 환자 지향의 임상약학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고, 또 커져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내용도 진화해 나갈 것이다.

약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류의 건강증진에 있다면, 어떤 물질이 어떻게 생리현상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자연과학적 측면에서의 발전과 함께 임상에서 약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전문 직능 측면에서의 발전도 우리 나라 약학의 미래에 주어진 당면한 사명이다.

5. 기타

6. 관련 문서


[1] 창약 [2] 제약 [3] 사실은 고려시대의 향약서가 남아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4] 약사법은 1953년에 제정 [5] 12개 약대 추가. 서울대학교, 부산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중앙대학교, 조선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영남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충북대학교 [6] 7개 약대 추가. 원광대학교, 충남대학교, 우석대학교, 경성대학교, 강원대학교, 전남대학교, 삼육대학교 [7] 15개 약대 추가. CHA의과학대학교, 가천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경북대학교, 경상대학교, 계명대학교, 고려대학교, 단국대학교, 동국대학교, 목포대학교, 순천대학교, 아주대학교, 연세대학교, 인제대학교, 한양대학교 [8] 2개 약대 추가. 전북대학교, 제주대학교 [9] 2015년 기준 [10] 약국에 종사하는 약사의 한자 표기는 藥師이므로 약사법의 한자 표기인 藥事法과는 구분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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