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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01:00:49

안락사


1. 개요2. 종류
2.1. 자발적, 적극적 안락사2.2. 자발적, 소극적 안락사2.3. 비자발적, 적극적 안락사2.4. 비자발적, 소극적 안락사2.5. 동물의 경우
3. 방법
3.1. 약물3.2. 질식3.3. 물리적 충격 (동물 한정)
4. 대한민국에서
4.1. 여론조사4.2. 찬성4.3. 반대
5. 기타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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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리거] '조력사망 희망' 한국인 100명 넘겨…그들은 왜 / JTBC 뉴스룸 [1]
나의 죽음에 관하여 - PD수첩[2]

안락사()로 흔히 번역되는 영단어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현대의 "유타나시아"는 원어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 불치의 중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 및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에 대하여 직·간접적 방법으로 생물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인위적인 행위를 말한다.

참고로 웰다잉(존엄사, )은 존엄하게 죽는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고통 없이 안락하게 죽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안락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2. 종류

자발적 비자발적
적극적 자살, 조력 자살 살해, 과실치사
소극적 연명치료 중단 살해

이외에 사망인의 자발 여부 중 반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가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지만 동의하지 않은 경우[7], 비자발적 안락사와 명백히 구분된다. 반자발적 안락사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명백한 살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현대에는 어디에서도 합법화되지 않았으며, 역사적으로도 T4 작전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있는 탓에 합법화될 리도 없다. 당연하지만 시행자는 무조건 살인죄로 처벌되며, 안락사 관련 논쟁에서도 반자발적 안락사는 논외로 친다.

2.1. 자발적, 적극적 안락사


대한민국에서 불법이다. 조력 자살을 도운 사람은 촉탁승낙살인죄가 된다. 독일에서도 직접적 안락사(direkte Sterbehilfe)라고 하며 형법 216조항에 따라 처벌을 하는 불법이다.

일부 국가들에서 합법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조력 자살 즉 적극적 안락사의 합법화를 위해 싸워 온 '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13] 그는 약 130건의 안락사를 도운 혐의로 기소되어 8년간 복역하고, 이후 안락사를 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며 가석방되었다. 2010년 그를 소재로 한 알 파치노 주연의 You Don't Know Jack이라는 TV영화도 나왔다. 2011년에 사망했다. 잭 케보키언(국문위키)

1996년, 호주 노던 준주가 안락사를 세계 최초로 합법화했으나, 연방 의회에 의해 1년만에 불법화되었다. # 이 조치는 2022년에 해지되었다. #

2002년 4월, 네덜란드가 합법화했다. '불치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환자가 '온전히 의식 있는' 상태에서 결정케 하고, 정신적 고통도 인정했다. 12~18세 환자는 부모의 동의 후 허용했다.

2002년 5월, 벨기에가 합법화했다. ' 불치병으로 인해 지속적이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 허용했다. 정신적 고통도 인정했다. 2014년 2월에 세계 유일 전연령(12세 이하도) 허용했다.

2015년 7월, 벨기에의 로라 라는 20대 여성이 신체에 특별한 질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자살을 할 목적으로 안락사를 신청하고, 국가가 이를 허용해 논란이 일었다. #

2015년 8월, 영국의 호스피스 간호사 출신 70대 여성이 '평생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니, 노화는 끔찍하다'며 죽음의 결심을 밝히고 스위스를 찾아 안락사를 택해 논란이 일었다. 2008∼2012년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611명 가운데 5분의 1은 영국인이었다. #

2015년 9월, 영국에서 조력 자살 허용 법안이 부결되었다.

2019년 3월,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택했고, 107명이 대기중임이 밝혀졌다. #

2020년 7월, 일본에서 루게릭병 환자의 조력 자살을 도와준 의사가 체포되자 일본 사회 내에 논의가 생겨났다. #

2020년 10월, 뉴질랜드의 국민투표에서 2/3이 조력 자살을 찬성하여, 2021년 11월 6일부터 시행하였다.

2021년 1월, 포르투갈이 국회에서 조력 자살을 합법화했으나, 이윽고 3월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하며 제동을 걸었다. # 다시 2023년 5월에 수정 법안으로 통과되었다.

2022년 5월 24일, 2021년 3~4월에 서울대병원의 여론조사 결과 76%가 조력 자살 허용에 찬성했다. #

2023년 3월, 스위스의 한 조력 사망 단체의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4명이 조력 사망했고 117명이 대기중이다. 이는 일본(50명), 대만(49명), 중국(58명)의 2배 수준으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전체 97개국 중에서도 11번째이다. #1, #2

2.2. 자발적, 소극적 안락사


대한민국에서 합법이다(2018~). 독일에선 '수동적 자살'이라고도 표현한다. 병이 아직 다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선택할 리는 없겠지만, 의료 조치가 전혀 없다면 질병의 진행과 함께 신체건강의 악화가 동반되어 이전보다 더 심하게 고통받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삶의 질을 낮추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나 저러나 의료조치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2008년 2월 18일, 김 할머니가 폐암 조직검사를 하다 식물인간이 되었고, 2009년 5월 21일 유족들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김할머니 사건'이 있다. 2009다17417 판결문, 선고 영상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뗀 뒤에도 생존하다가 2010년 1월 10일 사망했다. 이 이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2016년 1월 8일, 국회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환자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어 연명치료 중단을 합법화했다. 2년간의 유예 끝에 2018년 2월부터 시행했다. 다만 이는 안락사 중 회생불능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소극적 안락사')만 제한적으로 허가한 것이다. 당사자가 DNR 즉 '다음번 맥이 멎으면 소생을 시도하지 말라'는 요구서를 작성해두어야 한다.

2016년 9월 8일, JTBC ' 썰전'에서 유시민이 몸과 정신이 멀쩡하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 때 유언을 남겨야 한다며 위 법에 의거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를 언급하기도 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는 2018년 2월부터 법적인 구속력이 발생했다.

2.3. 비자발적, 적극적 안락사

2.4. 비자발적, 소극적 안락사


1997년 12월 4일,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했다. 환자가 혼수 상태에서 보호자가 퇴원을 요구했고, 병원이 보호자의 뜻에 따라 퇴원시키자 얼마 안 가[15] 환자가 사망했다. 2004년 6월 24일 이에 대해 존엄사(가망없는 퇴원, Hopeless Discharge)보단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퇴원(DAMA)에 가까운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다만, 비자발적, 소극적 안락사는 통상 회복가능성이 전무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나, 이 사건은 환자가 혼수 상태였지만 장래에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었다.[16] [17] 의료계는 이 판결이 '살 가능성이 없더라도 환자를 퇴원시키면 우리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로 받아들여져 2018년 호스피스법에 의한 '자발적 소극적 안락사 허용'까지 각 병원이 연명치료를 붙들어두는 경향이 생긴다.

2008년, 프랑스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뱅상 랑베르(39)에 대해 아내와 의사가 소극적 안락사를 요구했고,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이를 허용했다. 하지만 그가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뜨고 반응하는 듯 보여 어머니가 안락사를 반대하며 프랑스 내에 논란이 생겼다.

2.5. 동물의 경우

대한민국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경우 동물의 안락사가 허용된다. 그 외는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그런데 고통 경감( 마취제 투여 등) 없이 목숨만 뺏는다면 안락사가 아니라 살처분이란 표현이 맞다. 일부 유기동물보호소가 돈(세금)을 아낀다고 마취제 없이 바로 근육이완제를 주사하기도 한다. 그러면 해당 동물은 10초~1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심장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어 짖고 신음하다가 고통스럽게 숨이 멎는다. 유기동물 보호소는 가능하면 입양을 유도하지만 2019년 시점까지도 법 자체가 없다보니 살처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논란이 되었다.

인명사고를 내거나 낼 우려가 있는 동물을 현장출동 경찰이 죽이는 것은 박살()이라는 표현도 쓴다. 예외적으로 2017년 최시원 개 주민 습격 사망 사건을 일으킨 개는 안락사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캣맘, 개빠 등이 유기견, 길고양이 등의 개체수를 늘려 문제를 만드는 점에 대한 비판이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개 식용을 반대한다며 개들을 수거해 살해한 후 성금을 챙긴 것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마에서 경주마가 경기 중 심각한 골절을 당하면 안락사를 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텐 포인트[18], 라이스 샤워[19] 사일런스 스즈카인데 이들은 큰 대회에서 여러번 제패한 이력이 있는 유명한 경주마였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사실 경마계에서도 텐 포인트의 사례처럼 어떻게든 부상당한 경주마를 살리려는 시도가 전무한 건 아니었으나, 무거운 체중과 더불어서 서있지 않으면 다리의 혈액 순환이 막혀버리는 의 신체구조적 문제 때문에[20] 복합골절과 분쇄골절은 완치가 불가능하여[21][22] 2020년대 시점까지도 근본적인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덩치가 매우 큰 만큼 치료비도 많이 필요하고 치료 이후에도 몸이 성치 않아 관리 비용이 늘어나므로, 기업가 마주가 아닌 중소목장에서는 금전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 뿐만 아니라 말은 성격이 매우 예민하고 겁이 많아 치료에 비협조적이다. 몸부림을 치며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마취를 시키는 과정부터가 중노동이다.어찌어찌 마취를 시키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더라도 마취가 풀리자마자 수술 부위의 불편한 느낌을 견디지 못하여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회복이 되지 않고 심한 합병증이 발생한다.

근대 군조직, 기병대에서 운용되었던 군마의 경우 경주마만큼 쉽게 치료를 포기하고 안락사시키진 않았지만 상당한 부상 등으로 전투력을 상실했을 때 해당 군마를 타던 기병이 권총 등으로 안락사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부상입은 동물까지 살릴 만큼 자원과 기술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애마가 치료받을 수 없는 부상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는 이유로 행해졌다. 현대에 군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군사장비인 헬기나 기갑 장비가 도입된 이후에도 노후화된 장비 퇴역식 때 상징적으로 권총으로 쏘는 퇴역식을 여는 경우도 있는데, 군사장비와 유대감을 가진 전우 즉 승무원들이 애도하기도 한다. #

3. 방법

3.1. 약물

3.2. 질식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질식 자살 방식으로 자동차나 집의 창문을 모두 닫고 창문 틈 부분에 강력 테이프를 붙여 완전한 밀폐공간으로 만들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는 방법이 있다. (2015년 마티즈 드립 사건) 이런 경우는 숨이 점점 막히는 호흡곤란을 느껴야 하며 연기의 독한 악취가 호흡기를 자극하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고, 행인에게 발견되어 어중간한 시간이 지난 후에 구조되어 살아남으면 저산소증으로 후유증이 남은 채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할 위험도 있다. 그에 반해 밀폐공간에서 비활성 기체 헬륨, 아르곤, 질소로 호흡하면 과다 흡입해도 인체의 경고/거부반응이 없기 때문에[23] 숨이 막히는 느낌이 전혀 없다. 고통없이 5초 내로 잠드는 것처럼 의식을 잃으며, 3분 내 사망하게 된다.

안락사 찬성 단체들(Exit International, Dignitas 등)이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 되지 않은 나라에 권장하는 방법이다. 인도주의적 사형을 지향하는 나라들에서 시행되거나 도입하려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른 사형 방식들에 비해 사형집행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구상 단계의 제품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3.3. 물리적 충격 (동물 한정)

동물의 살처분/ 도축에 한정된다.
이에 대한 비판이 있다.

4. 대한민국에서

한국에서 최초의 안락사는 2009년 김할머니 안락사 사건이다.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의 연명치료 문제로, 그녀의 자녀들과 사위는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에 의해 안락사를 허가받는다. 특히 국내 최초 안락사 논의라는 점에서 언론과 법조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다만,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뗀 뒤에 바로 사망하지 않았고, 2010년 1월 10일에 사망했다. 그 결과, 한국 최초의 안락사는 최초의 실패한 안락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김할머니의 자녀들은 병원 치료비 문제로 다시 한번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4.1. 여론조사

2013년 7월 31일, 박근혜 정부 시기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위원회에서 존엄사에 대한 법안 제정을 권고했다. 이에 곧이어 2013년 9월 4일, 한국갤럽이 여론조사 결과를 밝혔다. 가족 합의 하의 연명치료 중단 법안 찬성 78%, 나 자신이 회생불능이 되면 연명치료 중단 87%, 부모·배우자가 회생불능이 되면 연명치료 중단 61% 등의 결과가 나왔다. #

2015년 5월 22일, 제19대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이에 곧이어 한국갤럽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족 합의 하의 연명의료 중단 법안 찬성 77%, 나 자신이 회생불능 상태가 된다면 연명치료 중단 90%, 부모·배우자가 회생 불능이라면 연명치료 중단 63% 등 2년 전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

2019년 3월 7일, 서울신문·공공의창의 여론조사 결과 '자신 허용, 가족 허용' 73.2%, '자신 허용, 가족 불허'가 13.2%, '자신 불허, 가족 허용'이 3.4% 순의 응답이 나왔다. #

2024년 6월, 안규백 의원이 조력존엄사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

4.2. 찬성

사는 것은 항상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상생활의 영위가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부상, 질병, 장애로 인해 하루하루 고통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라느니 행복하다느니 하는 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이다. 예를 들면 에 걸려 고통스러운 삶을 버티지 못한 탑건의 영화감독 토니 스콧은 결국 투신했다.[26] 미 공군 조종사이자 변호사였던 도날드 코와트는 가스 폭발 사고로 눈과 손을 잃고 전신 화상의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화상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27]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를 원했지만 의료계는 거부했고, 결국 끔찍한 고통을 대가로 71세까지 장수(2019년 사망)하게 된다. 그는 치료 이후 댁스 코와트로 개명하고 성공한 사업가로 활동했음에도 죽는 날까지 환자의 권리(연명 치료 거부, 안락사) 운동가로 살았다. 댁스 코와트는 그의 다큐멘터리와 여러 강연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투약 상태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이 동작할 수 있음을 알리는 일에 힘썼다. 극한의 고통에 처한 환자가 죽여달라는 것은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안락사 반대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코와트는 환자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전통의 의료 윤리, 생명 윤리에 대해 재고하게 했다.

최선의 치료에도 삶의 질이 전혀 나아지지않는 시한부 환자의 경우, 연명치료로 고통받는 시간을 늘리기보다 가족과 이별의 시간을 가진 후 안락한 임종을 맞이하길 호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28] 이들은 자신의 연명보다는 '질 높은 삶과 죽음'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긴다. 6개월을 살더라도 연명치료없는 덜 고통스러운 삶이 12개월간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받다 죽는 삶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며, 질 높은 삶에는 질 높은 죽음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한다. 특히 통증이 극심한 말기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 등 생명 유지 장비를 빼 달라고 애원하는 사례가 많으며 통증을 견디다 못해 목을 매거나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하는 환자의 사례마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말기 암 환자들이다. 안락사가 가능했다면 최소한 가는 길만큼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가족들도 연명치료를 힘들어한다. 환자도 환자지만 곁에서 간병하는 가족에게도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크다. 설령 재산 규모가 넉넉한 가정이라도 환자나 장애인이 집안에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아픈 손가락이 되고, 어디 시설 같은 데 보내기도 여의치 못할 정도로 가난한 가정의 경우 고된 간병으로 인해 우울증, PTSD 등의 정신병에 시달리거나 간병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는 단순히 장수하는 것보다 건강 수명 웰다잉이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다. 비약적으로 증가한 기대 수명과 비례해서, 인간은 양적인 단순 수명 연장보다 질적으로 높은 삶과 그에 걸맞는 안락한 죽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삶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안식이라도 선택 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제도를 확립하는 편이 훨씬 인도적이고, 오히려 부질없는 삶을 영위하면서 생지옥을 겪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비인간적인 처사로 볼 수 있다.

시한부 환자가 아니더라도 고통이 심한 중증 환자, 돌봄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신체적•정신적 중증 장애인, 극심한 우울증 환자, 거동이 불가능하여 콧줄을 사용하거나 와상생활을 하는 노인 등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진 사람의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29]

사실상 경제적, 사회적 압박에 의한 타살이 될 것이라는 반론은 현재 어떤 나라들이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는지 보면 간단히 반박된다. 안락사 허용 요구가 높고 법적으로 허용된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이며, 지역적으로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캐나다 같은 경우는 전국민 건강보험에 병원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경제적 압박도 없지만, 80%에 달하는 국민들이 의사 조력자살을 지지한다. 안락사에 대한 요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지, 절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의사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식물인간이나 치매 노인 등의 살해, 경제적 압박에 의한 가족의 타살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 등은 위에 설명되어 있는 의사 다수의 기대 수명 예측, 정신 감정, 제3자의 개입 등 제도적 장치로 배제 가능하다. 또 사후 장기 기증처럼 갑작스런 의식 불명 상황에 대비해 미리 의사를 밝혀둔 경우에만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안락사를 결정해야 하는 주체는 안락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부작용은 여타 모든 법제가 그렇듯 보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안락사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엄격한 조건 하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허가해준다. 이때 이 환자의 고통은 경제적 부담, 차도가 보이지 않는 치료로 인한 희망고문,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정신 및 육체의 고통 등이다. 칼이나 자동차는 살인에 악용되는 사례가 매년 보고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유로 칼이나 자동차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안락사의 악용 소지만을 가지고 반대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다. 호주는 모든 주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했으며 프랑스는 수개월 내에 안락사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반대 측에서는 비용 문제 등을 거론하며 안락사를 반대하지만,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저소득층의 질병을 치료해주는것도 아니니 허용하든 허용하지 않든 비용 문제가 생기는 건 똑같다. 조사에 따르면 임종 한달 전의 환자 치료비는 임종 2년 전에 비해 약 5~6배에 이르며, 환자의 경우엔 전체 진료비의 1/3이 임종 한달 전에 소비된다고 한다. 상태가 매우 나빠진 환자의 목숨을 붙잡으려면 수많은 장비와 약물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임종 직전에 가장 많은 돈이 든다. 거기에 간병비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임종 한 달 전에 들어가는 셈이다.

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달에 병원비만 몇 백만원씩 나간다면, 그런 상태가 몇 년씩 이어진다면 재벌 아니고서야 파산하기 마련이다. 환자 본인도 일상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병실에 갇혀 누워서 연명하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다. 안락사 반대 측은 환자는 안락사를 반대를 하는데 가족들이나 의사들이 안락사를 강요한다는 일방적인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환자의 주장은 듣지도 않고 취사선택을 하는 것이다. 현실은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며 안락사 입법화 요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정부기관과 시민단체 등은 안락사 찬성 측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민감한 문제일수록 열린 관점과 포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의 생각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청년층에서도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의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락사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안락사는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하며 정부와 종교단체가 개인의 결정권을 검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개인은 국가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 안락사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도 부당한 주장이다. 안락사는 환자가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안락사의 개념과 전제가 잘못되었다.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속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때 국가는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해야 한다.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종교의 경우 위의 서울신문의 통계자료에서 나왔듯이 아브라함 계열 종교 신자(천주교, 개신교)들도 절반 넘게 찬성하고 있어 통제를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측은 이러한 상황을 간과하며 안락사가 합법화 시 생산인구가 급감하여 국가존폐 위기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안도 없이 반대하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안락사 도입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울증, 정신병 환자, 장애인, 노인, 경제적 빈곤층에 대해 제도적 장치가 현실적으로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안락사 반대 측에서 이야기하는 합법적인 살인은 그야말로 허황된 이야기로 이런 주장은 안락사 입법화의 시간을 더욱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안락사 찬성측은 현상유지가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안락사 반대측이 생명존중을 이유로 안락사를 반대한다는 것을 미사여구로 늘어놓아도 안락사를 입법화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면 개인들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폭력인 셈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음에 이른다. 시간의 문제일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연명시키는 것은 좋은 일일수도 있지만 나쁜 일일수도 있다. 최소한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없을 때 오래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난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중 일부는 오래 사는 것은 고통일 뿐이다. 안락사의 남용이 위험하다면 안락사가 살인으로 변질되기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면 될 일이지 안락사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소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

안락사 반대 측은 한국에서 안락사 입법화가 되면 한국 사회에서 안락사를 강요한다는 일방적인 편견이 있다. 그러나 안락사 반대 측이 안락사를 반대하고 인간적인 위로를 해준다고 해도 오히려 현실적인 고통에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그것은 안락사 반대 측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살아있는 게 죽음보다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안락사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안락사 반대 측이 막을 수는 없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을 극한의 이기주의자라고 하거나 노력 등의 성과가 있다면 즐거움이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세상에는 낙관주의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다. 환경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다. 고통이 쌓이고 축적되면 결국 안락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며 대안적인 측면에서 안락사 입법화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안락사를 찬성하는 것은 대안 없이 반대하는 안락사 반대측과는 다른 것이다. 정말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은 단순히 오래사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종교단체나 의료협회 등은 안락사를 반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안락사를 반대를 하면서도 어떠한 대안도 없다. 한국의 복지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계층들이 취약할수록 위험하다. 안락사를 무조건 살인, 자살 등 자극적이고 편협한 관점으로 보는 것은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다. 오히려 저런 발상은 종교인들이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것이며 기독교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생기게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준 생명을 인간이 결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자유에 배치되는 주장이다. 어떠한 사안이든 종교적 신념보다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안락사와 호스피스는 별개 사안이다. 안락사 반대 측은 반복적으로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다. 안락사 입법화가 되지 않는다고 환자들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시대에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발상이다.

4.3. 반대

종교적 이유를 제한다면, 대개 사회적 약자가 안락사를 사실상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 안락사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유로든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 생명을 단순한 사회·경제적 요건으로 인해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다거나 당장의 고통만을 이유로 너무 쉽게 포기해버릴 수 있다. 특히 생명이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된다고 보는 종교계나, 의료적 접근으로 극복될 수 있는 질환의 치료를 포기하고 일찍 죽는 건 결국 스스로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생명윤리 중시자들은 큰 소리로 반대한다.

두 부류가 내는 의견은 공통적으로 결코 사람의 목숨이 돈 문제로 이어져선 안된다는 이상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양상을 띄기도 하며, 국가의 처분에 앞서 온정적인 개입을 호소하는 등, 안타까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줄 복지를 요구하는 측면을 보인다.

죽음이 용인되어 그 무게가 덜어진다면 결국엔 죽음이 쉽게 될 것이고, 결국 사정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누군가 사실상 강제로 죽어나가도 그저 외면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오히려 왜 안락사를 하지 않느냐고 압박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안락사 찬성측에서도 안락사가 이루어지는 이유가 병원비, 다시 말해 돈 문제와 심각한 연관성을 띄는데 실제로 위의 김할머니도 자녀들이 안락사 후 병원비로 소송을 벌인 등 병원비가 직접적인 안락사 이유였고 안락사가 용인된 지역에서는 암치료비를 낼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안락사를 제시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쯤되면 그냥 돈 없는 사람이 난치병, 불치병에 걸리거나 늙으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는 오히려 죽음을 멀리 두어 왔다. 역사상의 수많은 인신 공양, 공허감에 빠진 사람들의 발작인 죽음 찬양 등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현대의 발전 이전에는 더 사소한 일로 살인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인류 생명에 대한 위협이 용인되어 예정된 죽음이 절대선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집행할 수단이 어떠한 이념을 통해 개량된다면 어느 순간부터 일어날 문제를 더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약물이나 기체로 순식간에 고통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을 자살로 위장된 살인에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아가, 국가가 특정 목적에 의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모든 형태의 죽음을 집행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렇게 사태가 악화될 때에는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묻혀 아무도 알 수 없고, 나아가 후회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아무 이유 없이 자유로운 선택지로 남기려는 행위는, 그 목적과는 상관없이 나중에 모든 형태의 고통과 죽음을 막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 합법적인 살인을 일으킬 수 있도록 악용될 수 있다.

안락사가 이상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할 때에도, 안락사를 빙자한 살인이 벌어질 수 있다. 간호사나 의료인이 환자 동의를 받지 않은 '안락사'를 진행한 범죄는 잊힐 때마다 발생하고 있으며, 약물을 사용하는 적극적 안락사가 보편화되면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안락사 약물을 훔쳐서 남의 음식에 몰래 넣는 등의 흉악범죄가 들끓게 될 수도 있다. 취급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마약성 약물들도 잘 관리하지 못해 일부 의료인들이 마약류를 본인의 쾌락 목적으로 스스로 처방하여 중독자가 나오고 있다.

반대 측에서 안락사를 좋지 않게 보는 것은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악용되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들 중 그 의도가 특히 더 사람을 빠르고 쉽게 죽이는 것에 치중되어 위험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치매 환자( 요양원), 정신병 환자( 폐쇄병동) 등 스스로의 의견이 묵살당하기 일쑤인 취약계층을 돌본다는 핑계로 국가의 지원금을 타먹고 방치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봐왔다. 실질적으로 살처분 직전의 상황에 당면한 자들도 사회적으로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똑같이 나름 정당하다고 판단되었던 굳은 사고방식을 통해 이런 잘못이 묵인되어 죄가 죄가 아니게 여겨지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기독교 측에서는 아무리 안락사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자살에 해당하고, 타의에 의해 의식 불명의 환자를 안락사 시키는 건 살인에 해당하기에 안락사에 반대한다. 죄의 문제는 구원과 관련이 있기에 보수적인 기독교 측에서는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진정 선택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어느 형태로든 결정으로의 압박이 부재할 때만 있는 것이다. 동족과 생명을 다루기를 물건같이 하고 반대로 물질이 모이는 것을 신앙화한다면 인류는 기계가 그렇듯 해체되고 부속지가 폐기장으로 직행해 더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로 이끄는 것 또한 현대에 들어 더욱 복잡하게 바뀌어가는 사회 양상에서는 틀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락사를 금지하는 첫번째 이유는 개인을 위한다기보다도, 전체를 위해서이다. 치열한 경쟁에 지쳐서 번아웃이 생긴 개인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고, 이것은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온다. 국가는 국가의 존속을 위해 안락사를 금지하는 것이다.

안락사를 금지하는 두번째 이유는 안락사를 허용하게 되면 생명 경시 사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과 같이 치명적인 질병, 고통스러운 사람에게까지 안락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환자는 더 살고 싶지만 진료비가 감당이 안되는 가족이 안락사를 하라는 암묵적 압박, 생산능력이 없는 장애인,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없는 우울증 환자나 정신병 환자, 노인,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개인에게 죽을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국가의 개입이 없이 개인이 실업이나 빈곤, 질병의 상태에 처해있고 안락사라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환경에 처한 개인은 국가와 가족에게 방치되어 있을 뿐 환경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유럽에서는 점진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도록 바뀌는 국가들도 많지만, 아직까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유럽 국가들로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에 불과하다.

이미 안락사 옹호론자들의 환상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되고 겨우 3년만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훈처에서 상이군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안락사를 권유하는 사태가 벌어져 총리가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개중에는 페럴림픽 국가대표까지 있었으며 이것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상이군인들과 국가대표라는 유명인들이라 공론화가 된거지 평범한 장애인이나 빈곤층들을 대상으로 한 안락사 요청은 얼마나 지독할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국가 존속을 위해 안락사를 금지한다는것은 인과관계로서 말하는 것이며 찬성측은 개인은 국가의 노예가 아니기에 국가존속을 위해 안락사를 금지하는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인간은 개인으로도 집단으로도 존재하는 홀론(holon)이기 때문에 국가란 개인의 집합이며 개개인의 생명과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국가존속을 위해 안락사금지가 잘못됐으니 허용하자는 주장은 다른이들의 생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행동이기때문에 안락사허용을 정당화 하기엔 부족하다.

또한 정신병 환자,노인,경제적 빈곤층에 대해서 제도적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안락사 도입을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로서 정신병환자에게는 의료지원을, 노인에게는 복지를, 빈곤층에게는 자금지원같은 제도적장치의 개선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안락사 도입 같은 손쉽고도 극단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개인에게 사회적비용이 아까우니 그냥 죽으라고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의적 선택이라기 보다는 환경에 의한 선택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며 결과론적 의미에서 합법적 살인과 다를것이 없다. 찬성측이 대안도 없이 반대 한다고 주장을 하는건 반대측이 대안도 없이 찬성한다라는 것과 같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잘못됐다.

찬성측에서 “안락사를 입법화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면 개인들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주장도 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안락사를 허용하고 더 나아가서 자살을 허용,종용하는 사회가 된다면 개인들의 고통은 해결되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질문을 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간 끝에 죽음이라는 결과가 똑같다면 왜 사는것인가? 쇼펜하우어 니체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일이나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으며 살아가는 동안 느끼는 즐거움과 만족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던 바가 있다.안락사만이 개인의 고통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도 아니며, 개인의 환경을 개선해 나갈 생각없이 의 가치에 대한 고찰 없이 단순하게 고통만을 강조해서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극단적으로 편의주의적이기 때문에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5. 기타

비유적인 의미로서는 흉악범 등의 중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비해 덜 고통스러운 사인으로 사망한 경우 "사실상 안락사나 다름없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군대에서 장비를 퇴역, 폐기할 때 이 안락사(?)를 행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장비를 다루다보면 자연스럽게 심리상 해당 장비를 마치 반려동물이나 사람과 같은 애착을 갖게 마련이므로 장병들이 장비를 퇴역할 때 감정을 담아서 깨끗하게 분해하거나 혹은 마치 동물을 편히 죽게 하는 흉내를 내는 것.

6. 여담


[1] 해당 영상을 보면 꽤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다. 실제로도 스위스 편도 티켓을 구매하려는 난치병 환자의 인터뷰와 안락사에 대한 찬반 의견, 스위스에서 하고 있는 조력사망에 참여한 사람과 동행 취재를 해서 담은 책인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책의 저자인 신아연 작가의 인터뷰 등을 다루고 있다. [2] PD수첩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가족들과 만나서 인터뷰를 한 내용과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에 대한 안락사를 지원하고 있는 디그니타스 관계자의 인터뷰 등이 담겨 있어서 안락사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영상을 봐도 좋다. [3] Voluntary euthanasia.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으며 동의하는 경우. [4] Non-voluntary euthanasia.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없는 경우. [5] 직접적, 주도적, 능동적 안락사 [6] 간접적, 비주도적, 수동적 안락사 [7] 대상자가 직접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경우 뿐만 아니라, 시행자가 대상자에게 동의 여부를 묻지 않은 경우 역시 포함된다. 이러면 비자발적 안락사와 뭐가 다르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대상자가 동의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8] 2025년까지 명령. [9] 안락사 허용 국가들 중에선 철저한 조사를 거치면 스위스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승인해주는 나라다. 한국인도 안락사를 할 수 있다. 디그니타스가 대표적. [10] 진행중 [11] 법적 문제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안락사 절차에 들어가기 전 서약서 작성이나 환자 본인이 자신의 죽음에 동의하는 선언을 담은 영상 등의 증거자료를 남긴다. [12] 미성년자일 경우, 일정 수준의 판단 능력을 갖춰야 하고,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13] 잭 케보키언은 카를 브란트 해럴드 시프먼의 경우와 비교할 순 없다. 카를 블란트는 자기 마음대로 안락사 실험을 했고, 해럴드 시프먼은 모르핀 주사로 215명 이상을 죽이면서 쾌감을 느꼈다. [14]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없다는 건 의식불명 등으로 대상자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시행자의 강압으로 대상자의 의사가 무시되는 상태와는 전혀 다르다. [15] 산소 호흡기를 떼고 5분 만에 사망했다. [16] 피해자는 피고인들을 포함한 의료진에 의하여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의식이 회복되고 있었으나 뇌수술에 따른 뇌 부종으로 자가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호흡보조장치를 부착한 채 계속 치료를 받고 있었다...(중략)...원심이 피고인들의 행위가 원심공동피고인 1(보호자)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본 데에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오해 또는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으로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없으며, 가사 피해자가 매우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하여도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닌 이상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합법칙적 연관 내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는 보기 어렵다. 피고인들의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995 판결) [17] 실제로 원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02. 2. 7. 선고 98노1310 판결)에 따르면, 환자를 수술한 의사 중 한 명은 경찰에서는 '수술 후 촬영한 사진에서 혈종이 잘 제거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회복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 환자가 마취로부터 깨어나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피해자의 경우 퇴원하지 않았다면 병세가 호전될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퇴원 당시 즉시 사망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사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다른 의사도 최초에는 '치료만 계속하면 살 수 있었고, 2 -3일만 더 있었으면 의식을 찾을 수 있었으며 퇴원하면 죽는다고 피고인 1(보호자)에게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진술하였다. 이후 의사들은 검찰과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였으나, 원심은 의사들의 최초 진술을 기초로 환자가 회복가능성이 전무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고, 대법원에서도 이러한 원심의 사실인정을 받아 들였다. [18] 마주가 불교 신자여서 살생에 반대하는 바람에 33명의 수의사를 동원하여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으나, 500kg이 넘었던 체중이 43일만에 300kg대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만 받다 죽었다. [19]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해서 병원으로 이송되지도 못하고 현장에서 바로 안락사당했다. [20] 그래서 말은 을 잘 때도 대부분 서서 자며, 하루에 30분 정도 깊은 잠을 잘 때만 눕는다. [21] 혈액 순환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눕힐 수 없고, 다리의 하중 부담을 덜기 위해 복부에 하네스를 씌워 들어올리는 보조 기구가 있지만 복부의 내부 공간이 협소하여 압력을 받으면 내부 장기가 쉽게 망가지기에 마찬가지로 오래 들어올릴 수 없다. 결국 다리에 가해지는 하중을 덜기 힘들다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없어서 모든 다리에 온갖 합병증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22] 누워있는 것이 취미인 덕분에 복합 골절 수술을 받은 뒤 오래 누워 지내면서 하중 부담을 적게 받아 살아남은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의 체질과 성격이 매우 특이했던 것으로 간주된다. ( #) [23] 이는 인간의 육체가 이산화탄소의 과잉에 의한 고탄산혈증보다 산소의 부족으로 인한 저산소혈증에 약하게 반응하기에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전에 뇌가 먼저 뻗어버리기 때문이라 한다. 질식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다. [24] 하지만 이게 뉴스를 통해 이상하게 전해져서 10G의 중력으로 죽는다는 등 방식 설명이 안드로메다로 향한 경우가 많았다. [25]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가 쓰는 무기 [26] 일생 동안 성공한 삶을 살다가 한계점을 초과한 절망이나 고통을 겪으면 훨씬 더 견디기 어렵다. [27] 3도 이상의 화상이라면 환자가 몸부림을 치지 못하도록 수술대에 단단히 묶고 마취 없이 탄 부위를 긁어내야 한다. 어디까지 신경이 살아있고 죽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마취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맨살을 칼로 긁어내는 고통을 치료 내내 겪어야 한다. 이 경우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의사는 멈추지 않는다. [28] "남은 삶 무의미"…국민 76%, 안락사 입법화 찬성 [29] 하지만 이는 안락사보다는 조력자살에 가까우며 윤리적 문제와 인구 절벽 문제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