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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03:00:02

사마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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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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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 )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 [3] 친부는 의양성왕 [4] 친부는 안평헌왕 [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 [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 [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 [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 [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 [13] 친부는 회남충장왕 [14] 여기까지 서진 [15] 친부는 오효왕 [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 [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 [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 [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 [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 [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 [23] 친부는 진무제 [24] 친부는 제헌왕 [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 [26] 친부는 제헌왕 [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 [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 [29] 여기부터 동진 [30] 친부는 진문제 [31] 윤통(閏統) [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 [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 [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 [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 [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 [37] 친부는 남궁현왕 [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 [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 [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 [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 [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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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敦
(?~ 281)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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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불명, 사마부의 장남인 사마옹의 막내 아들이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생애

본래 사마돈은 사마옹의 아들이지만 사마옹의 동생인 상산효왕 사마형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진무제는 사마돈을 사마형의 후계자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는 진서 종실전에서 잘못 기록한 것이며, 상산왕에 임명된 것은 사마옹의 아들이자 사마돈의 형제인 사마은이다.

함녕 3년(277년) 정월 초하루에 안평목왕 사마융에 이어 안평왕(安平王)으로 봉해졌다.

태강 2년(281년) 3월, 사마돈은 사망하였다. 사마돈도 자식을 두지 못했기 때문에 무읍왕(武邑王) 사마승의 아들 사마우가 사마돈의 후사를 이었다.

사마돈이 별다른 행적 없이 4년간 안평국을 다스리고 죽은 후에는 무제가 봉지를 분할하면서 안평국은 이름이 바뀌는 식으로 없어졌고, 사마돈의 후손은 없지만 조부인 사마부의 후손은 살아남았기에 동진 시기에 제후왕에 임명되어 부활했다가 413년까지 존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