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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사라진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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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ㄱ3. ㄴ4. ㄷ5. ㅁ6. ㅂ7. ㅅ8. ㅇ9. ㅈ10. ㅊ11. ㅌ12. ㅍ13. ㅎ

1. 개요

한국의 성씨 중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현재는 멸성된 성씨의 목록이다.

2.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고산
진안
고령
[한]
백제의 성씨다. 일본서기에서 백제 출신의 각복모(角福牟), 각형마려(角兄麻呂)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각(角)씨 또는 록(觮)씨다. 각복모
각형마려[10]
남양
나주
경주
[증][한]
竿 동주
해주
평강
[증][한]
[한]
모평
모평 [증][동]
압해 시조는 부호장 강홍(江洪).[증][한] 2015년 기준 본관은 확인되지 않으며, 인구는 34명.[2015] 강홍
[한]
여남
신라의 성씨다. 진성여왕 때 거인(巨仁)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증], 삼국유사에서는 같은 인물을 왕거인(王居仁)이라고 하므로 거(巨)가 성씨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화 [증][동]
[한]
고구려의 성씨다. 검모잠
고려
남양 [증][한]
인천
전주
경주
[증][한]
임강 고려의 성씨다.[증][동] [32]
[33] [증]
[35]
[동]
강화
신평
[증][한] 대한민국 통계에서는 2015년에 새로 나타났다.[2015]
함양 [증][한]
[한]
영흥
영동
압해
[증][동]
[한]
고이 古爾 백제의 성씨다. 고이만년
서화
인제
강화
연산
천축
조선의 성씨로 시조는 참봉 골귀손(骨貴孫).[증] 1568년( 선조 1) 평안도 영변대도호부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골인서(骨仁瑞, 1524 ~ ?)[47]가 증광 진사시에 3등 27위로 입격했다. 천방지축마골피에 해당되는 성씨 중 하나.[한] 골귀손[49]
수원
인천
고려 ~ 조선의 성씨다. 수원 공씨의 시조는 고려 후기의 문신 공천원(貢天源)이다. 인천 공씨로는 공생(貢生) 공계우(貢繼禹)가 1496년( 연산군 2) 식년 생원시에 3등 37위로 입격했고, 경기도 인천도호부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공세영(貢世瑛)[50]이 1534년( 중종 29) 식년 진사시에 2등 20위로 입격했다. 이어 경기도 부평도호부에 거주하던 유학 공신국(貢藎國, 1586 ~ ?)[51]은 1610년( 광해군 2) 식년 생원시에 3등 49위로 입격했다. 또한 경기도 김포군에 거주하던 부사과(副司果) 공세기(貢世起, 1605 ~ ?)[52]가 1635년( 인조 13) 알성 무과에 병과 2위로 급제했고, 한성부에 거주하던 수문장(守門將) 공애술(貢愛述, 1599 ~ ?)·겸사복(兼司僕) 공계술(貢繼述, 1615 ~ ?)[53] 형제가 1637년(인조 15) 별시 무과에 각각 병과 2443위, 병과 967위로 급제했다. 경기도 통진도호부에 거주하던 공세기의 아들 한량(閑良) 공우영(貢禹英, 1640 ~ ?)[54]은 1702년( 숙종 28) 별시 무과에 병과 3위로 급제했고, 경기도 부평도호부에 거주하던 봉지(奉持) 공준익(貢駿益, 1777 ~ ?)[55]은 1809년( 순조 9) 증광 무과에 병과 149위로 급제했다. 이로 보아 적어도 19세기 초반까지는 공씨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김포
공보
[증][한]
[한]
[도]
고려
고려
평강 [증][동]
[한]
청주 [한]
곽리 霍里 고조선의 성씨다. 명나라 시절 책에 고구려계 성씨로 적힌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 이 성씨가 남아있다가 중국으로 유입된 듯 하다. 곽리자고[64]
하서[65]
동양 [증]
용담
옹진
송양
[한]
전주 [증]
창원 [증][한]
옹진 [증][동]
제주 [증]
[74] [한] 1791년(정조 15) 정조의 명으로 具로 성씨의 한자를 바꿨다. 창원 구씨 참조.
[한]
[한]
굴씨[78]
함열[79]
자산
[한]
[도]
경조
귀실 鬼室 백제의 성씨다. 본래 부여씨였는데, 귀신의 감화를 받아 분성하였다고 한다. 귀실복신
[한]
영천 [동]
장풍
[한]
한양
서원
옥천
[증][한]
평양

3.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87] [증][동] 2015년 기준 6명, 본관은 확인되지 않는다.[2015]
수성 나씨의 본관으로 수성(壽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羅)씨의 오기로 보인다.
고구려 연나부의 성씨 중 하나였다. 부여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고구려에 투항할 때 대무신왕이 그의 등에 낙문(絡文, 줄무늬)이 있다고 해서 낙씨 성을 하사했다.
두막루와 발해의 성씨다. 낙개제
낙사계
문천 [증]
신천 16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쓰였다. 날한정
동래
풍천
[증][한]
[한]
[한]
낙안
염안
[한]
[한]
경산 일본계 귀화 성씨였다.[증][동]
[한]
의주 조선의 성씨다.[증] 농액필[102]
尿 황조
연안
[증][동]
명나라에서 편찬된 자전 자휘(字彙)에서 고려의 성씨로 소개한다.[청]
[한]

4.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한] 2015년 인구조사에선 7명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5]
연안
연안 [한]
[한]
운남[111]
제주
청주
[증]
영해
대실 大室 고구려의 성씨다. 추발소
하남
[한]
단성
김해
[한]
온성[115] 함경북도 일대 거주 부락민들과 일부 집성촌에서 쓰였던 성씨이다.
[한]
목천 목천 돈(頓)씨와 같다.[증]
시진
[118] [한] 본관을 알 수 없는 함경도 영흥대도호부 거주의 무학(武學) 동신종(童信宗, 1641 ~ ?)이 1664년(현종 5) 함경도 별시 무과에 병과 72위로 급제했고, 함경도 경성도호부 거주의 보인(保人) 동현룡(童見龍, 1637 ~ ?)이 1664년(현종 5) 함경도 별시 무과에 병과 238위로 급제했다.
청주 [한]
중원 [한]
[한]
[한]
나주
고구려의 성씨다. 두은점
고성 중국계 귀화 성씨다.[증][동]

5.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한]
[증] 참고로 이 한자는 광동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한]
진천 [증][한]
명림 明臨 고구려의 성씨다. 명림답부
명림어수
발해의 성씨로,[발] 말갈 계통이다. 2015년 기준 15명.[2015]
발해의 성씨다.[발] 모두간[134]
[한]
오흥 백제의 대성팔족 중의 하나였다. [한] 목라근자
목만치
목협 木劦 백제의 성씨다. 이후 목씨와 협씨로 갈라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목협만치
봉화
토산
노나라 부용국 전유(顓臾)의 풍(風)성이 동몽(東蒙)을 다스리면서 몽(蒙)을 씨로 했다.[증][동]
수원
[139] 고려~조선의 성씨다. 인천 문씨의 시조는 감문위 낭장으로 심온의 외조부인 문필대(門必大)이다.[증] 2015년 기준 인구는 7명.[2015] 문사명[142]
괴산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동]
진천
신풍
[도]

6.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풍양 [한]
반해 [한]
[한]
[한]
발해 渤海
[150] [증][동] 2015년 기준 11명인데 이들의 본관은 확인되지 않는다.[2015]
삼국사기에 출전이 있고, 신자전에 백제성씨로 풀이된 글자이다. 백제의 대성팔족 중의 하나로, 백제 멸망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백가
백기
포천 [증]
풍산
포천
[동]
[동]
[한]
[동]
순창
경주
현재 순창·경주 설씨 문중에서 사용하는 ''의 오기로 추정된다.
평창 [증][동]
[한]
공주
홍주
[증][동] 대한민국 통계에서는 2015년 처음 확인됐다.[2015]
[한]
[한]
양근 [증][동] 2015년 기준 본관은 확인되지 않으며, 인구는 23명.[2015]
동성 [증][동]
[한]
[동]
[동]
부여 扶餘 백제[175] 백제의 왕성이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이 당나라에서 서씨 성을 하사받은 후 한반도로 돌아왔기 때문에, 부여씨의 후예 부여 서씨와 의령 여씨가 있다. [도] 백제/왕조
부정 負鼎 고구려의 성씨다. 대무신왕이 부여를 정벌할 때 불 없이 밥을 지을 수 있는 솥을 손에 넣었는데, 솥을 소유해온 집안에서 대무신왕을 따르겠다고 하니 내려준 성.
, , 씨는 다있는데 북만 없다.[177]
[한]
[한]
경주 [한] 현재는 冰으로 한자를 바꾸어 쓴다. 빙(성씨) 참조.
밀양 [증] 흥양현의 한 목동이 이 성씨를 쓰고 있었다.[청]

7.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연안
벽진
고려의 성씨다.[증][도] 사도귀[185]
[186] 여남 백제의 성씨다. 대성팔족으로 무왕의 왕후를 배출하기도 했다. [한] 2015년 기준 26명.[2015] 사타상여
사택지적
[한]
[한]
使 [한]
[한]
[한]
사마 司馬 거평
나주
이천
전라도 나주목 거평(居平)의 성씨다.[세] 고대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 중 자주 볼 수 있는 성씨다. 예를 들자면 사마의, 사마천, 사마광. [동]
사타 沙咤 여남 백제의 성씨다.
사택 沙宅
砂宅
여남 백제의 성씨다.
고양 [증][한]
평원
안변 [증][동]
목천 목천 상(尙)씨가 고려 초에 상(象)씨로 개성된 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밀양 [증][한] 상귀
[한]
상마 相馬
무위
안평
발해의 성씨다.[발]
강화
통진
[증][동]
[206] [증][한] 2015년 기준 42명인데[2015] 증보문헌비고에서 확인되는 8개 본관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석말 石抹 광릉 고려의 성씨로 다루가치 석말천구(石抹天衢)가 광릉 석말씨의 시조다.[증] 귀화 성씨로 그 기원은 거란까지 올라간다. 정동행성에도 석말천구, 석말 에센테무르(石抹也先帖木兒) 등 석말씨가 있었다. [도] 석말천영[212]
진성
영동
[증][한]
연안
신계
협계
고려의 성씨다.[증][한] 2015년 기준 103명의 인구가 집계되었으나, 그 본관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2015] 선대유[218]
하동 [한]
[한]
하동 [도]
[222] 성주 지봉유설》 권17 잡사부에서 㸴를 동방의 희귀 성씨로 소개하며 성주(星州)에 소씨가 있음을 설명한다. 같은 자료에서는 소씨가 석말(石抹)씨가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설을 제시하고, 《완위여편(宛委餘篇)》에 복성으로 소개하는 석우(石牛)씨가 소씨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경주
풍덕
광주
[증][한]
대동 [한]
경주
긍천
풍덕
소실 小室
少室
고구려의 성씨다. 묵거
손(孫)씨의 오기로 보인다.
충주 [증] 1789년(정조 13) 한성부 호적에도 나타났던난 성씨다.[한]
회양
문등
[증][도]
경주
개성
광주
고려의 성씨다.[증][한] 수암[232]
여주 [한]
하남
충주
[한]
[한]
수미 首彌
숙신 肅愼
[236] [증][한]
[239] 고려 고종 시기 승우본(僧牛本)의 후손이라고 한다.[증] 그러나 이 인물은 승려(僧)인 우본(牛本)이므로 적절한 설명은 아니다. [한]
[242] [동]
[한]
장풍 [증][동]
풍덕 [증][한] 2015년 기준 81명.[2015]
회양
문등
[한]
하내
태안 [증][동]
개령 [증][한]
[한]
천수[256] 한국의 귀화성씨다. [도] 쌍기

8.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고려의 성씨로, 승려 혜근의 속성이다. [도] 아원혜
연일 [증][한]
[한]
조선의 성씨로 조선 초 태종 때 열녀로 봉해진 조을생 처 약(藥)씨가 있다. 중국에는 아직 존재한다.
발해의 성씨다. [동] 2015년 기준 인구는 214명.[2015]
채운 고려의 성씨다.[증][한] 양문[266]
제주 탐라의 성씨다. 시조는 양을나(良乙那)로, 후에 성씨를 양씨(梁氏)로 바꾼다. 양수
제천
홍산 [증][동]
[한]
연안
강릉
마전
본관은 연안(延安), 강릉(江陵) 두 본이 있었으나 같은 가문이었다. 조선 중기까지 과거 합격자를 여럿 배출했다. 강릉 어씨의 시조는 지의주사 어세린(於世麟)이다.[증] 어천주[271]
남양
[한]
[한]
[한]
파평 [한]
하음 [증][동]
고구려의 성씨다. 시조는 연태조이며 유명한 역사적 인물인 연개소문의 본래 성씨는 씨였으나,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가 망하자 그 후손이 당 고조(이연)의 이름을 피휘하여 천(泉)씨로 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278] 연개소문
[한]
[한]
연비 燕比 백제의 성씨다. 대성팔족중 하나인 성씨. 연비선나[281]
발해의 성씨다. 정안국의 초대 국왕 열만화가 있으나 그가 열씨인지 오씨인지는 논쟁이 있다. 열만화
한양 [증][한]
낙안 [증][동]
진릉
영천
영호 令狐 문화 조선시대에는 사라지고 없어졌으나[동] 중화권에는 아직도 존재한다. 대만의 외교관 출신 타이중 부시장인 링후룽다( 令狐榮達)가 대표적.
강동
전주
백제의 성씨다.
고구려의 성씨다. 동명성왕의 아내이자 유리명왕의 모후의 성이 예(禮)씨였다. [한] 2015년 기준 7명.[2015]
[한]
발해의 성씨로,[발] 말갈 계통이다. 정안국에서 오현명이 실권을 잡고 열만화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1789년(정조 13) 한성부 호적에도도 나났던난 성씨다.[한] 오현명
오소도[292]
복흥[293]
안정
시조 오윤부(伍允孚)는 충선왕 시기 찬성사를 지냈다.[증][동] 2015년 기준 본관은 확인되지 않으며, 인구는 22명.[2015] 오윤부
밀양 [증][한]
고성 [동]
김포
개령
[한]
[301]
𨶠[302] 광주(廣州)에 이 성을 가진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자휘에 따르면 𨶠는 오(塢)와 같은 음으로, 원래 오(𨶇)씨 였다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청]
정선 [증][한]
[한]
[동]
대구 [증][한]
상당
고려 고구려의 성씨다. 유리명왕 시기 양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는 인물을 등용하고 부마로 삼으며 사성했다.
성주
고령
[증][한]
예안
목천
고려의 성씨다.[증] 우승길[313]
[314] [증][동]
[한]
[동]
고성
우문 于文
우진 羽眞
해주 [증][동]
[한]
통진 고구려의 성씨다.[증]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유리왕이 국내성 사물택을 지날 때 신하가 되려는 젊은이에게 사물이라는 이름과 함께 하사한 성씨다.[동] 위사물
태원 거란족 출신 귀화인의 성씨다. 위영성
위초[324]
[한]
덕수
풍덕
[증][동]
상원 [동]
단양
동해
[한]
창녕 [동]
괴산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동]
남평
강서
발해의 성씨다.[발] 은계종[334]
[한]
고부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평안남도 강서군에 은몽천(恩蒙天)의 1가구가 있었으므로 북한에는 아직 존재할 수 있다. 은광훈
의주 고구려의 성씨다.[증] 본관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후에도 남아있었으리라 추측된다. 한편 목천 돈씨의 원래 성씨이기도 하다. 을파소
을불 乙弗
을지 乙支 의주 고구려의 성씨다. 위의 의주 을씨와 함께 목천 돈씨의 원래 성씨로 추정되는 성씨이다.[337] 을지문덕
고양 [한] 1930년 국세조사에서 유일하게 나타났다.
[증]
평창
이선 以先
경주
기계
[증][동]
음죽 [증][동]
창원
창성 [한]
정산
발해의 성씨다.[발] 일만복[346]
[한]
[동] 미국에 후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1905년 5월 8일, 'Ka Chi Nai Kol'(가지내골?)에서 거주했던 19세 미혼 'Ip Il Taik ( 입일택)'이 시베리아에서 미국 하와이로 이민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9.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한]
[한]
동주 [한]
연기
연풍
청풍 [증] 2015년 기준 7명, 본관은 확인되지 않는다.[2015]
목천 [증]
경주 [증][한]
[한]
[동]
[동]
장리 墻籬 남원 담울(覃蔚)씨라고도 한다.[증] 장리는 훈차, 담울은 음차이다.
하동 [도]
재증 再曾 백제의 성씨다. 재증걸루
재초 齋楚
임천 [증][동]
천수 고려의 성씨다. [한] 적철[365]
양천 [증][한]
[368] 신라 ~ 조선의 성씨다. 전라도 정읍 장수 지역의 토착 성씨였다.[세] 호남지방 뿐 아니라 강화도에도 본관을 두고 있었다.[증] 전라도 고부군에 거주하던 어영군(御營軍) 정경남(井景男, 1609 ~ ?)[371]은 1637년( 인조 15) 별시 무과에 병과 1522위로 급제했다. [한] 진표(신라)
정종후[373]
양주 [증][한]
임강
장단
[한]
[한]
원산
진산
[동]
[한]
조()씨의 오기로 보인다.
조미 祖彌 백제의 성씨다. 조미걸취
[380] [증][한] 종간
[383] [동]
대정 [한] 현재는 좌씨(左氏)로 한자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좌(성씨) 항목 참조.
흥덕
경산
경주
일본계 귀화 성씨였다.[증][동]
하성
한양
충주
중실 中室
仲室
고구려의 성씨다. 무골
백제의 성씨다.[증] 2015년 기준 18명.[2015] 지수신[390]
[한]
행주
고양
강화
진강
[한]
이천
태원
후삼국시대의 성씨다.[증] 직심[394]
괴산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한]
[한]
강화 [증][한]
강주

10.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한]
[한]
[한]
아산
평강
인천
두모 [동] 본관인 두모는 전주다.[증]
임천
음죽
목천
[405] 곡산
영흥
곡산 척씨는 척위공을 시조로 하고 척준경을 중시조로 하였다. 나름 한국사에서 굵은 인상을 남긴 성씨지만 분단 후 한국에서 통계에 잡히지 않고 멸성된 성씨로 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곡산에서 척씨는 멸성된걸로 적혀있다.[동] 척준경
[407] [증][한]
[한]
[한]
[한]
[동]
김해 [증][한]
진원
개성 [증][한]
천방지축마골피에 나오는 성씨와는 한자가 달라 무관하다.
축자 築慈
고려의 성씨다.[증] 총일[419]
[한]
[한]
풍익
행주 [증][동]
[동]

11.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정읍 [증][한]
탁왕 拓王
연안 [증][한]
연안
진주
인천
[증][한]
연안 [증][한]
발해의 성씨로, 간왕의 황후 순목황후를 배출하였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0명이다. 순목황후
남원 고려~조선의 성씨다.[증][한] 태평
[증][도]
풍각 밀양의 성씨였으나 조선시대에 사라지고 없었다.[세][동] 본관은 밀양의 속현인 풍각.[증]
괴산 일본계 귀화 성씨다.[증][동]
효령 [증][동]
[한]
𤳈[445] [한]
𨳈

12.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고평
하동
동래 [증][한]
1930년 국세조사에서 유일하게 나타났던 성씨이다.
임진 [증][동]
조선의 성씨다. 표해상[451]
청주
[도]

13.

성씨 한자 본관 설명 주요 인물
발해의 성씨다.[발]
옹진
광평
[증]
소사 하씨 5명과 본관은 확인되지 않는 35명이 집계됐다.[2015]
[456] [동]
하기 夏俟 하후(夏侯)씨의 오기로 보인다.
하후 夏侯 초한전쟁 시대의 장수 하후영을 시조로 한다.
[한]
[한]
《강화지(江華志)》에 수록됐다.[청]
함천 咸千
교동 [증]
음죽
해양 삼국시대~남북국시대에 걸쳐 보이는 성씨다. 부여의 시조격 왕들인 해모수, 해부루가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여 부여의 왕성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정작 그 이외의 부여 왕족들이 사용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462] 백제의 대성팔족 중 하나이기도 해 해루, 해충, 해명, 해구 등의 많은 귀족인명이 사서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계에서 밀려났는지 말기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고구려의 경우 초창기 왕성으로 쓰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씨 고구려설). 그러나 고(高)씨에게 밀려났거나 그냥 고씨로 변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남북국시대에는 당나라에 유학 갔던 발해의 학생인 해초경(解楚卿)이 확인된다. 1930년 조선총독부 국세조사에서 나타나지 않고 이후 대한민국 통계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5년 조사에서 9명이 나타났는데[2015], 귀화 등으로 새로 생겨난 성씨일 것으로 추측된다.[464]
영월
창평
해평
제군
흥덕
[한]
[한]
개성
영풍
안변
[동]
혁련 赫連 고려의 성씨로 본래 흉노의 성씨이며[증], 5호 16국 시대 북하의 황실이었다. 혁련정[469]
부풍
백제의 성씨로, 대성팔족 중의 하나였다. 단, 나머지 일곱 개 성씨와는 달리 사료에 협씨 인물의 예가 보이지 않으며, 목협(木劦)씨에서 갈라진 성씨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신계
반성
안심
함양
[증][한]
후삼국시대의 성씨다.[증] 2015년 기준 61명.[2015] 형적[474]
괴산 일본인 귀화 성씨다.[증][동]
[477] 전라도 영암 지역의 토성.[세] 그 외에도 여러 본관이 있으며, 하나라 소강의 후예다.[증] 영암 지역의 해(海)씨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
달성 조선 후기까지도 후손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내에서는 완전히 단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중에 후손이 있다고 한다.
대구
해주
[증][한]
전주
공주
[한]
[한]
전주 [증][한]
장양 고려의 성씨다. 강원도 회양의 성씨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사라지고 없었다.[세][동] 본관은 회양의 속현인 장양(長楊)이었다.[증]
[490] 시조는 호장 화식보(和式甫).[증][동] 충청도 천안군에 거주하던 겸사복(兼司僕) 화수(和愁)[493]가 1594년(선조 27) 단독별시 무과에 병과 3등 135위로 급제했다. 화인량[494]
천안
풍세
[증][한]
[한]
창녕
평원
상곡
경조
연안 [청][증] 말이 달리면서 내는 소리(휭)에서 생긴 의성어 성씨다.
예천 고려의 성씨로, 예천 권씨의 본래 성씨다.
흑치 黑齒 백제의 성씨다. 본래 부여씨였는데, 흑치에 영지를 받아 분성하였다고 한다. 흑치상지
구허
고성


[세]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는 지역 성씨이다. [청] 《청장관전서》 권55, 앙엽기 2, 「妞𨶠遤㔛乀」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자휘(字彙)》·《강화지(江華志)》등을 인용해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성씨로 뉴(妞)씨, 왁(𨶠)씨, 훵(遤)씨, 할(㔛)씨, 뼘(乀)씨의 5가지를 소개했는데, 훗날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증수에 참고자료로 쓰인다. [한]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1789년( 정조 13) 이덕무가 1486년(성종 17) 편찬된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토하고 호적에 기재된 여러 성씨를 모두 수록했는데, 다만 본관은 별도로 적지 않았다. [동]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도] 《청장관전서》 권61, 앙엽기 8, 「東國諸姓」에서 확인되는 성씨이다. 이덕무가 1789년 검토한 한성부 호적과 《동국여지승람》 모두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숙종· 경종· 영조 때 활동한 이의현(李宜顯)의 《도곡총설(陶谷叢說)》에만 나타나는 성씨를 따로 기재해 둔 것이다. [증] 증보문헌비고》 권53, 제계고 14에서 확인되는 소수 성씨이다. 다만, 후반의 본관이 없는 성씨의 경우 성씨의 생략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의 앞글자를 성씨로 파악했으므로, 정말 사라진 성씨가 맞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초 왕씨 성을 하사받은 순식은 순(順)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사서에서 간혹 성씨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그중에서는 교차검증으로 본래의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고려사에는 공훤(公萱)이라고만 나오지만 금석문을 통해 풀네임을 알 수 있는 강공훤(康公萱)이 드문 예의 하나이다. # [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권16, 족속고 3에서 확인되는 발해의 성씨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 김육불)가 정리하였다. [2015]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에서 처음 집계된 성씨이다. [한] [10] 일본의 도래인으로 승려가 됐다가 환속했다. 승려였을 때의 법명은 혜요(慧耀). [증] [한] [증] [한] [한] [증] [동] [증] [한] [2015] [한] [증] [증] [동] [한] [증] [한] [증] [한] [증] [동] [32]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고려 초의 원윤 경함필(卿含弼)을 임강 경씨 인물로 설명했으나, 경(卿)은 고려 초기 통치 기구의 직급으로 '경 함필'로 끊어 읽는 것이 적절하다. [33] 양근, 안성, 지평, 음성, 파천, 천안, 풍세, 장양, 익곡. [증] [35] 양근, 사천, 연기, 안협. [동] [증] [한] [2015] [증] [한] [한] [증] [동] [한] [증] [47] 자는 언부(彦符). [한] [49] 骨貴孫. 계공랑(啓功郞) 기자전(箕子殿) 참봉. 골인구(骨仁球), 골인구(骨仁璆), 골인수(骨仁琇), 골인서의 부친. [50] 자는 군윤(君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안성훈도(安城訓導) 공호중(貢好中). [51] 자는 직경(直卿). 아버지는 돈용교위(敦勇校尉) 행(行)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 공은남(貢殷男). [52] 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 공언조(貢彦祚). 별해진 병마첨절제사(別害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했다. [53] 아버지는 학생(學生) 공대회(貢大檜). [54] 자는 군후(君侯). 위로 형 공우제(貢禹濟)와 공우석(貢禹錫)이 있었다. [55]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공취욱(貢就郁). [증] [한] [한] [도] [증] [동] [한] [한] [64] 霍里子高. 공무도하가의 저자 여옥(麗玉)의 남편으로, 고조선 때 진졸(津卒)로 있었다. [65] 중국 간쑤성. [증] [한] [증] [증] [한] [증] [동] [증] [74] 창원, 의령, 인천, 행주, 평안, 복룡, 정해, 무곡, 이성, 옥야, 문화, 김제. [한] [한] [한] [78] 명나라 출신의 궁녀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조선으로 귀국하는 소현세자 일행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후 소현세자가 죽자 그 아이를 보살폈고, 승려가 되어 조선 궁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79] 함열 남궁씨와 같은 성씨일 가능성이 있다. [한] [도] [한] [동] [한] [증] [한] [87] 행주, 보령, 제주, 대전, 반성, 장흥, 제천 [증] [동] [2015] [증] [증] [한] [한] [한] [한] [한] [증] [동] [한] [증] [102] 濃額必. 1661년( 현종 2) 때 압록강을 건너 무단으로 나무를 베다가 봉황성(鳳凰城)에서 청나라 관리에 체포된 기록이 있다. 참고로 함께 나무를 베었던 은노길(恩奴吉)의 성씨인 은(恩)씨 또한 멸성됐다. [증] [동] [청] [한] [한] [2015] [한] [한] [111] 중국 윈난성. [증] [한] [한] [115]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으며, 현재로서는 그저 온성 이외에도 회령, 경흥, 경원, 나진, 종성 등의 지역을 위시로 하는 육진 지방 어딘가로 추정될 뿐이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뒤 재가승 등의 북부 지역 부락민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가장 정확하게나마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증] [118] 청주, 태원, 전주, 원주, 주천, 덕천, 부령, 충주. [한] [한] [한] [한] [한] [증] [동] [한] [증] [한] [증] [한] [발] [2015] [발] [134] 발해의 좌수위소장(左首衛小將)으로 고려에 귀화했다. [한] [한] [증] [동] [139] 인천, 송림, 남포, 죽산, 인동, 감음. [증] [2015] [142] 고려의 시어사중승. [증] [동] [도] [한] [한] [한] [한] [150] 문경, 철원, 안협, 익곡. [증] [동] [2015] [증] [동] [동] [한] [동] [증] [동] [한] [증] [동] [2015] [한] [한] [증] [동] [2015] [증] [동] [한] [동] [동] [175]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부여씨를 본관을 알 수 있는 복성 사이에 서술하면서 '백제부여씨'라고 표기했다. [도] [177] 사실 동씨는 東이 아니라 董이라 경우가 좀 다르긴 하다. 참고로 한자 ‘東’이 들어가는 현존 성씨로는 동방씨가 있다. [한] [한] [한] [증] [청] [증] [도] [185] 고려 초의 대광. [186] 사택(沙宅), 사택(砂宅), 사타(沙咤) 또한 같은 성씨다. [한] [2015] [한] [한] [한] [한] [한] [세] [동] [증] [한] [증] [동] [증] [한] [한] [발] [증] [동] [206] 수원, 광산, 남원, 익산, 영광, 경주, 진주, 김해. [증] [한] [2015] [증] [도] [212] 고려에서 판전의시사를 지낸 인물로 경성수복공신이다. [증] [한] [증] [한] [2015] [218] 고려 고종 시기의 경상도안찰사. [한] [한] [도] [222] 고유어 동물 ''(중세국어 독음 '쇼')에서 만들어진 한국제 한자로 적힌 성씨로 성씨 전용자이다. 현재 이 한자는 음역자로 쓰이고 있다. [증] [한] [한] [증] [한] [증] [도] [증] [한] [232] 고려 현종 시기 통주 전투에서 활약해 관직이 한 단계 더해졌다. [한] [한] [한] [236] 만경, 연일, 부윤, 광산. [증] [한] [239] 청주, 경주, 밀양, 함안, 영산. [증] [한] [242] 장흥, 만경, 부윤, 연일. [동] [한] [증] [동] [증] [한] [2015] [한] [증] [동] [증] [한] [한] [256] 중국 간쑤성 톈수이시. [도] [도] [증] [한] [한] [동] [2015] [증] [한] [266] 고려 초기 벽진군의 호족. [증] [동] [한] [증] [271]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정3품의 당상관. 1642년 생원시 3위인 어진창과 그 형제 어적창, 어익창의 부친. [한] [한] [한] [한] [증] [동] [278] 단, 안승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아닌 신라본기의 설명대로 연정토의 아들이 맞다면, 안승의 형으로 알려진 인승 역시도 연정토의 아들일 테고, 현재 횡성 씨 역시도 연태조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의 후손인 셈이다. 물론 허(성씨)의 시조처럼 단순히 모계 성씨를 썼을 수도 있다. [한] [한] [281]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관등은 달솔. [증] [한] [증] [동] [동] [한] [2015] [한] [발] [한] [292] 발해의 재상. 아들 광찬 후당에서 유학했다. [293] 배천 [증] [동] [2015] [증] [한] [동] [한] [301] '쉬지 않고 갈 왁'이라는 한자이다. 한자/특이한 한자 문서 참조. [302] 본래 ' 문지방 얼'이라는 한자이나, 국자 한정으로 '성씨 왁'이라는 훈음 또한 존재한다. [청] [증] [한] [한] [동] [증] [한] [증] [한] [증] [313] 고려 공민왕 시기 경상도진무사를 지냈다. [314] 재양, 장풍, 통진, 남양, 대양, 연풍. [증] [동] [한] [동] [증] [동] [한] [증] [동] [324] 거란족 출신 귀화인으로 산원동정을 역임한 무신이자 효자. 위의 위영성의 아들로, 효행으로 후대에 고려사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었다. [한] [증] [동] [동] [한] [동] [증] [동] [발] [334] 발해 유민으로, 고려로 귀화하였다. [한] [증] [337] 원래는 을씨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가, 을지문덕의 출현 이후 그의 일족들이 따로 뭉쳐서 을지씨로 분적하여 나가 또 다른 집안을 이루었다는 구전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 [증] [증] [동] [증] [동] [한] [발] [346] 발해 문왕 시기의 인물로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다. [한] [동] [한] [한] [한] [증] [2015] [증] [증] [한] [한] [동] [동] [증] [도] [증] [동] [한] [365] 단, 이 사람이 적(狄)씨인지는 논란이 있다. [증] [한] [368] 진강, 연천, 면천, 치등, 음성, 정읍, 답곡, 장수, 배천, 밀양. [세] [증] [371]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학생(學生) 정가우(井嘉祐). [한] [373] 고려 성종 시기의 문과 급제자로 청풍감무를 지냈다. [증] [한] [한] [한] [동] [한] [380] 통진, 모압, 이파, 인의, 황원. [증] [한] [383] 곤미, 영광, 영암, 천안, 통진, 풍덕, 하음. [동] [한] [증] [동] [증] [2015] [390] 백제부흥운동에 가담한 백제 유민. [한] [한] [증] [394] 고려 초에 전사한 견훤의 장수. [증] [한] [한] [증] [한] [한] [한] [한] [동] [증] [405] 참고로 이 한자는 선비족 탁발씨(拓拔氏)를 가리킬 때는 '탁'이라고 읽는데, 따라서 탁씨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동] [407] 전주, 경주, 김해, 원주, 옥천. [증] [한] [한] [한] [한] [동] [증] [한] [증] [한] [증] [419] 고려 초의 한찬. [한] [한] [증] [동] [동] [증] [한] [증] [한] [증] [한] [증] [한] [증] [한] [증] [도] [세] [동] [증] [증] [동] [증] [동] [한] [445] 네이버 한자사전 등에는 음이 '장'으로 나와 있는데, 청장관전서-앙엽기에는 속음이 '퉁'이라고 소개했다. [한] [증] [한] [증] [동] [451] 票海常. 조선 영조 시기 국경을 넘어 청나라에서 체포된 조선인. [도] [발] [증] [2015] [456] 영평, 남양, 도민, 임술, 유석. [동] [한] [한] [청] [증] [462] 부여가 멸망한 뒤 왕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유민 여울(부여)은 여(餘)씨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15] [464] 중국의 해씨는 한국의 해씨와 기원은 다르나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다. [한] [한] [동] [증] [469] 균여전의 저자로 고려 예종 시기 장악전학사 판제학원사를 지낸다. [증] [한] [증] [2015] [474] 고려 태조 원년에 전사한 견훤의 장수. [증] [동] [477] 충주, 장흥, 영암, 진남, 수성. 진남은 영암과 같다. [세] [증] [동] [증] [한] [한] [한] [증] [한] [세] [동] [증] [490] 동복, 보성, 평산, 천안. [증] [동] [493] 본관은 천안(天安). 아버지는 역리(驛吏) 화끗동(和末伊同). [494] 고려의 산관이었다. [증] [한] [한] [청]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