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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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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주의는 자유주의에서 파생된 문화적 좌익에 가까운 사상이며, 여전히 서구권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자유주의의 하위 이념으로 여겨진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특징으로 하기에 진보주의(문화적 좌파, 자유주의 하위 이데올로기)와 전혀 별개의 전통이지만, 대한민국이나 중남미같이 우익독재를 겪은 지역에서는 진보주의가 사회주의와 친연성을 가지기도 하는 반면 공산 독재를 겪은 동유럽 지역에서는 오히려 경제적 자유주의와 엮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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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자들.
순서대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로버트 M. 라폴레트, 조지 W. 노리스,
톰 헤이든[1], 조지 맥거번, 하워드 진,
제시 잭슨, 엘리자베스 워런, 노엄 촘스키
1. 개요2. 역사
2.1. 인민주의 운동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2.2. 20세기 초반의 혁신주의2.3. 193~60년대의 진보주의2.4. 1972년 대선, 그리고 조지 맥거번2.5. 198~90년대: 미국 진보주의의 침체기2.6. 진보주의의 부활과 사회주의의 등장
3. 비교
3.1. 현대자유주의와 연관성3.2. 미국 좌파(American Left)와의 연관성
4. 주요 인물
4.1. 2차대전 이전4.2. 2차대전 이후~20세기 말4.3. 21세기 이후
5.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민주당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나, 개별정당으로 활동한 경우도 많았다.

미국의 진보주의 운동은 사회민주주의와도 접점이 있으며, 미국의 자유주의에서 파생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현대자유주의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2]

총기 규제, 낙태 허용, 성소수자 인권, 부의 재분배 등 다양한 어젠다를 다루고 있다.

2. 역사

2.1. 인민주의 운동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났다. 5년에 걸친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귀결되었으나, 남부와 중서부의 농민들은 전쟁으로 발생한 경제위기로 인하여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한편 1865년 남북전쟁 종료 이후 대륙횡단철도의 건설로 철도 건설 유통 사업에 자본이 쏠리면서 철도 거품이 발생했고, 이 거품은 1873년 유럽발 경제공황과 시카고 대화재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꺼지고 만다. 이를 장기불황이라고 부른다. 장기불황은 기존 미국의 산업이었던 농업에 결정타를 입힘과 동시에, J.P. 모건, 카네기, 밴더빌트 등 약소 회사를 병합하는 방식으로 독점제국을 구축했던 신생 금융가들에게는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이로 인하여 점점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서부-남부 농민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북동부 금융가들의 빈부격차가 늘어났다.

1873년 장기불황은 농민들에게 큰 위기로 작용했다. 농민들은 화폐 발행량이 늘어나길 바랬다. 통화량이 줄어들어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농민들이 헐값에 수확물을 내다 팔 수 밖에 없어 큰 손해였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대가 생겨서 1874년, 미국 중서부 평원지대에서 "그린백당"이 창당된다. 그린백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의미한다. 비록 그린백당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미국 진보주의의 서막을 알렸다. 그린백당은 인민당으로 계승되었으며, 인민당 소속으로 1892년 대선에 출마한 제임스 B. 위버는 중서부 평원 지대의 여러 주에서 승리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둔다.

시대가 지나 1893년, 미국은 다시 한번 큰 공황을 맞이한다. 1893년의 불황은 J.P. 모건이 급하게 로스차일드 가문의 도움으로 금을 수입해오면서 안정되었지만,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이 과정에서 모건과 강도 귀족들의 요구를 지나치게 많이 들어주는 바람에 중서부 농민과 노동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특히 은/금 본위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J.P. 모건 등 금융계에서는 금본위제를 지지한 반면, 그러한 고액 화폐를 감당할 수 없었던 가난한 농민들은 비교적 부담이 낮은 은화를 선호하였으므로 금/은 복본위제를 지지하였다.

이런 경향을 타고 1896년 대선에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민주당 대권 주자로 부상한다. 불과 36세의 무명 국회의원이었던 브라이언은 대권주자로 쳐주지도 않는 사람이었지만 "노동자들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울 수 없습니다! 인류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없습니다!"라는 명연설을 하며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공천되었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공짜 은"을 공약으로 금은 복본위제를 지지하는 후보였으며 그의 대항자 윌리엄 매킨리는 금본위제의 지지자였다. 브라이언은 복본위제를 지지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면서 북동부 금융 재벌에 대항해 민주당 진보화에 불을 붙였다. 브라이언은 결국 금융재벌의 견제로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이후 여러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받아들여진다.

2.2. 20세기 초반의 혁신주의

1896년 대선에서 당선된 윌리엄 매킨리의 부통령은 공화당 내 진보파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당 내에서 견제를 많이 받는 진보파였고 따라서 당내 원로들이 아무 실권도 없는 부통령 자리에 앉힌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1901년 아나키스트에게 저격을 당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루스벨트는 반독점법을 포함해 강도귀족들의 독점을 해체하는 등 "뉴 내셔널리즘"이라 불리는 여러 진보적인 입법을 추진하여 대중의 각광을 받았다. 특히 재선에 성공한 이후, 마지막 재임 기간 2년 동안 루스벨트는 더욱 진보화되었다.

그러나 당시 공화당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조지프 캐넌 하원의장이었고 조지프 캐넌은 루스벨트의 여러 진보 입법 시도를 차단한다. 결국, 1908년 루스벨트의 후임자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루스벨트에 비해 훨씬 보수적인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에 격분한 루스벨트는 진보당을 창당해 1912년 독자 출마를 감행하나 무참히 패배한다.

1912년 대선에서 당선된 후보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었다. 윌슨은 학자 시절 클리블랜드의 버번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1912년 대선에서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정치적인 타협을 하여 진보적인 후보로 출마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우드로 윌슨은 연방준비제도를 설립하여 북동부 강도귀족들에게 넘어가있던 금융 주도권을 연방정부로 귀속시키는 등, 미국 진보주의의 시초가 되는 여러 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은 한편으로 강경한 인종주의자이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우드로 윌슨은 넓은 의미에서만 진보주의자로 간주된다. 우드로 윌슨이 퇴임한 1921년부터는 광란의 20년대가 시작, 하딩-쿨리지-후버로 이어지는 보수적인 대통령들이 연이어 집권한다. 로버트 라폴레트, 하이럼 존슨, 윌리엄 보라 등 일부 진보 정치인들이 이 시기 활동하기도 했으나 그 영향력은 1900~1910년대 혁신주의 시대와 같지 않았다.

한편, 이 시기 유진 뎁스 미국 사회당을 이끌며 사회주의를 미국에 뿌리내리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2.3. 193~60년대의 진보주의

1930년대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등장으로 미국의 진보주의가 주류 정치권으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다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이며, 좁은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로는 미국 진보시민협회(Progressive Citizens of America) 등의 운동을 포괄한다. 대표적으로 헨리 A. 월리스가 있다. 루이지애나 주지사 휴이 롱 역시 진보주의자로 평가받곤 하나 권위주의적인 행보로 인하여 논란이 있다.

전쟁이 끝난 후, 휴버트 험프리 등 민권운동의 옹호자들이 상원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민주당은 점차 진보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는 진보주의자들이 명확한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온건한 성향의 정치인들이 주류를 차지하였다.

1960년대에는 민권운동과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진보주의자들이 대거 나타났다. 특히, 68혁명은 미국 진보운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으로는 유진 매카시를 들 수 있다. 유진 매카시는 강경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전개하며 1968년 대선의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존슨을 낙마시키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한편, 로버트 F. 케네디 역시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반전, 진보파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암살당했다. 유진 매카시와 로버트 케네디는 68년 선거의 민주당 경선에서 반전좌파의 호응을 받았으나, 실제로 민주당 후보로 결정된 것은 휴버트 험프리였다. 그 휴버트 험프리 마저 리처드 닉슨에게 패배하면서 1968년 부스트를 받은 진보주의 운동은 다시 주춤한다.

한편, 비 자유주의 계열의 진보 운동도 이 시기 활성화되었다. 흑표당,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등 친숙한 여러 극좌/사회주의 성향 진보 운동/운동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1968년 혁명 이후의 일이다.

2.4. 1972년 대선, 그리고 조지 맥거번

1972년 대선은 미국 주류 정치계의 진보주의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조지 맥거번과 그의 선거 참모 게리 하트(Gary Hart)는 로버트 케네디와 유진 매카시의 선거운동 전략을 더욱 확대해 여성, 청소년, 흑인, 소수인종, 반전좌파, 대도시 거주자의 표심을 결집시키는 최초의 "풀뿌리 선거운동"을 벌인다. 조지 맥거번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노동조합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휴버트 험프리를 꺾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조지 맥거번은 휴버트 험프리나 에드 머스키, 남부의 보수파나 AFL-CIO 등 민주당을 이루던 모든 세력으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대선 본선에서 더욱 풀뿌리 선거운동에 집중하였다. 민주당이 연예인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의 일로, 존 레논, 밥 딜런, 사이먼 앤 가펑클, 제인 폰다 등이 조지 맥거번을 지지하였다. 공약 면에서는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베트남 즉각 철수, 1,000달러 기본소득 등 현대 민주당 진보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정책들이 제시되었다.

비록 조지 맥거번은 1972년 대선에서 대참패했으나, 맥거번이 보여준 풀뿌리 진보운동의 가능성은 이후 거의 모든 민주당 진보 정치가들에게 있어 하나의 귀감이 되었다. 이 때문에 현대 민주당의 진보주의는 조지 맥거번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진보파 뿐 아니라 게리 하트, 빌 클린턴 등 198~90년대 활동했던 많은 젊은 민주당의 정치가들이 맥거번을 지지한 "McGovernite" 출신이었다. [3]

2.5. 198~90년대: 미국 진보주의의 침체기

1972년 맥거번의 패배 이후 미국 진보주의는 오랜 침체기를 겪는다. 1976년 민주당내 진보파의 지지를 얻은 제리 브라운과 모 유돌이 당내 보수파 지미 카터에게 패배하고 만 것이다. 1980년 대선에서 민주당 진보파는 테드 케네디를 내세워 다시 한번 도전하나 다시 카터에게 밀려 후보 지명권을 얻지 못했다. 그 카터 마저 1980년 대선에서 참패하며 민주당의 장기 침체기가 시작된다.

1980년의 레이건 혁명과 그 여파로 인하여 미국 사회가 크게 우경화됨에 따라, 진보주의는 자연스럽게 수축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상원에서는 테드 케네디가 여전히 건재했지만 그 뿐이었고 조지 맥거번, 버치 베이, 프랭크 처치의 낙선 등으로 미국 진보주의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한편 1984년 대선을 기점으로 민주당 내에서도 구식 진보주의를 버리고 기술 발전과 벤처기업 투자를 장려해야한다는 당내 중도파 "아타리 민주당원"이 대두되면서, 당내 진보파는 다시 쇠퇴한다.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보수파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당 대통령치고 상당히 중도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의 진보주의는 1990년대에도 소수파에 머문다. 한편 공화당에서는 존 린지(John Lindsay) 뉴욕시장, 존 B. 앤더슨 하원의원의 탈당 이후 그나마 남아있던 마지막 진보주의의 잔재까지 모두 사라진다.

2.6. 진보주의의 부활과 사회주의의 등장

21세기에 접어들어 이라크 전쟁 대침체는 꺼져가던 미국 진보주의의 불길을 되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선거에 출마한 반전좌파 데니스 쿠시니치는 오늘날 미국 불개입 좌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같은 선거에 출마한 하워드 딘의 영향력은 더욱 컸다. 하워드 딘은 맥거번과 유사한 풀뿌리 캠페인을 진행하며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청년층의 표심을 결집시켰다. 하워드 딘은 선거 전략의 부족으로 결국 예비선거에서 탈락하나 이후 버니 샌더스의 캠페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침체는 그동안 미국에서 잊혔던 사상인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드높였다. 오랜 기간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벤 버냉키 연준의장의 정책으로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면서, 미국의 빈부격차는 돌이킬 수 없어졌다. 레이거노믹스의 부작용으로 청년층은 더욱 살기 힘들어졌다. 이런 배경 하에 밀레니얼 사회주의라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사회주의 지지 경향이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된다.

2016년 민주당 예비선거는 힐러리 클린턴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였지만,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상당히 선전하면서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2016년 대선마저 클린턴의 패배로 끝나며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당내 중도파는 할 말을 잃은 반면 당내 좌파는 큰 기회를 부여받았다. 이를 계기로 2018년 중간선거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급진 사회주의자 및 진보주의자들이 하원에 대거 진출하며 민주당은 그 어느때보다도 진보화되었다.

2020년 대선에 출마한 조 바이든은 기본적으로 당 내 중도온건파였으나, 진보주의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부 정책을 수정하고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한다.

3. 비교

3.1. 현대자유주의와 연관성

미국 현대자유주의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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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이전 미국의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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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 법조인 로버트 라이시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마사 누스바움 · 소니아 소토마요르 · 얼 워런 · 존 롤스 · 폴 크루그먼
활동가 W. E. B. 듀보이스 · 마이클 무어 · 마틴 루터 킹 · 배티 프리댄
언론 CNN · 뉴욕 타임스 · 더 뉴요커 · 워싱턴 포스트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MSNBC · 뉴 리퍼블릭 · 더 내이션 · 롤링 스톤 · 허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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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좌파적 경제관(경제적 진보주의) 한정. 중도우파인 사회적 의제(온건 사회보수주의)는 현대자유주의에 포함되지 않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주의와도 구별된다.
파일:노란색 깃발.svg 자유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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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시대(Progressive Era, 1896–1916) 까지만 해도 진보주의는 기존 리버럴(고전적 자유주의)보다 좌측에 위치한 정치 세력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하이럼 존슨 등은 현대 학계에서조차도 '좁은 의미의' 진보주의로도 쳐준다.

그러나 진보 시대 이후부터는 리버럴이 점차 고전적 자유주의가 아닌 현대자유주의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자 1920~1930년대 사이부터 리버럴(liberal)과 진보(progressive)가 점차 구별이 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좁은 의미의' 진보주의라고 간주되지는 않는다. 위에서 언급되어 있는 휴이 롱이나 Progressive Citizens of America 등이 '좁은 의미의' 진보주의자로 간주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진보주의는 리버럴(현대자유주의)까지 포함시키거나 둘 모두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진보주의는 주류 리버럴[4]보다 좌측에 있는 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워런이 있다.[5]

3.2. 미국 좌파(American Left)와의 연관성

American Left는 일반적으로 '정통 좌파'만을 가리킨다. 사회민주주의 좌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21세기 이후 분기점은 보통 버니 샌더스같은 사회민주주의적 민주사회주의자를 기준으로 하며 그보다 우파에 위치한 이들은 일반적 의미의 American Left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진보주의는 주로 현대자유주의의 일부로 간주된다.[6]

4. 주요 인물

4.1. 2차대전 이전

4.2. 2차대전 이후~20세기 말

4.3. 21세기 이후

5. 같이 보기


[1] 민주 사회를 위한 학생회(SDS)의 회장으로 미국 내에서 68혁명을 이끈 주요 청년 운동가 중 하나였다. [2] 애초에 한국에서 80년대 당시 극좌였던 혁사운동권들이 진보주의를 사회주의 비스무리한 개념으로, 자유주의와 무관한 개념인것마냥 왜곡을 시켜놓아서 오해가 있는 부분인데, 애초에 progressivism 자체가 liberalism에서 파생된 좌익이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주의 문서 참조. [3] 그러나 슬프게도 맥거번 자신의 명예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다. [4] 현대자유주의 우파나 현대자유주의 중도파 [5] 일각에서 실질적인 정책은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는 평을 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래디컬 리버럴, 진보주의자라고만 간주된다. 영어위키백과에서도 엘리자베스 워런을 절대 사회민주주의자로 묘사하거나 분류하지 않고 오히려 리버럴, 진보주의자라고만 분류하고 있다. [6] 다만 민주당에 속한 American Left의 경우 진보주의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7] 당시 민주당은 윌리엄 J. 브라이언을 필두로 한 중서부 및 평원의 진보파와,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필두로 한 북동부의 버번 민주당파 → 국민민주당파로 분열되어있었다. [8] 학자 시절에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으나 1912년 대선에서 브라이언과 타협하며 좌경화하였다. 다만 재임 기간 도중에는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행보도 보였다. [9] 다만 심각한 수준의 인종주의자였으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주의자로도 종종 분류된다. [10]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이어서 KKK단의 지지를 받기도 했고 금주법에도 찬성했다. [11] 진보주의자라는 명성이 있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보라는 고사하고 당내의 포퓰리스트보다도 보수적이었다. 진보주의자 중에서도 기업 진보주의에 가까워 FDR과의 갈등으로 1936년 대선과 1940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FDR보다 진보적인 면도 있었다. [12] 1920년대에는 분명한 민주당 내 진보 인사에 속했으나, 그의 영향력으로 인해 임기 말에는 FDR의 뉴딜주의가 다수를 장악하다 보니 넓은 범주의 진보주의로만 분류된다. 또 해리 S. 트루먼과 달리 흑인 민권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기도 했다. [13] 1948년 상원의원 당선 당시 매우 적극적으로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해 "남부의 1순위 적"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로는 민주당의 실세가 된데다 민주당의 성향 자체도 진보화되어 맥거번, 유진 매카시 등 다른 진보주의자들을 억누르는 기득권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진보주의 성향에서 멀어진다. [14] 완전한 진보파로 분류되지는 않으나 반전좌파의 지지를 받았고 무엇보다 다인종적이고 도심에 기반하는 민주당 진보파의 지지층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골수 가톨릭 성향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등 현재의 사회진보적인 민주당 진보파와는 다른 성향을 보였다. [15] 1968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반베트남전, 반린든 존슨 후보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다. [16] 민주당 내 진보파의 시초로 분류되며,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처음으로 내세운 정치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반베트남전 정치인이었으며, 민주당 진보화를 위해 다방면에서 주류파를 압박했다. [17] 큰 형, 작은 형에 비해 더욱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이라크 전쟁 참전 반대, 보편적 의료보험법 지지 등 여러 진보적인 입법 활동을 벌였다. [18] 이쪽은 휴버트 험프리와 반대인데, 먼데일은 정계 입문 초기 중도파였지만 1980년대 보수화되어가는 민주당 내에서 진보파 포지션을 담당했다. 1984년 먼데일의 참패로 2000년대까지 민주당은 상당히 우경화된다. [19] 2000년 대선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앨 고어에 대항하는 유일한 후보로 출마해 다소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브래들리 그 자신이 과연 민주당 진보파였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20] 1990년대 민주당 진보파의 얼굴로, 여러차례 대권 주자로 언급되었고 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에 모두 반대하는 등 반전 풀뿌리 운동에도 열심이었지만 2002년 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비행기 사고로 절명했다. [21] 2004년 민주당 예비선거 당시 반전 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맥거번처럼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벌였지만 다소 온건한 성향을 가졌고 2016년에도 주류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적극 지지했다. [22] 초기에는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나,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이후로는 비사회주의 계열이 되었다. [23] 2020년 대선 예비선거까지만 하더라도 샌더스의 유력한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고려되었을정도로 진보 성향이었지만, 바이든 행정부 성립 이후에는 사실상 트럼피스트나 다를바 없는 행보를 보이며 2024년 도널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까지 고려되고 있다(...). [24] 소비자보호운동으로 유명한 랄프 네이더가 진보/좌파 그룹의 추대를 받아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서 9만여표를 가져갔는데 이로 인해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가 패배하게 되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 외에도 민주당도 공화당처람 자기 텃밭에서 게리멘더링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소수정당인 녹색당이 주 의회에서 원내진입이 막히는 등의 이유도 주된 갈등요소다. 이념적으로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한국의 민주당-정의당 간 갈등과 다소 유사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