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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8:54:12

무장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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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meyerwerft.de/Graf_Goetzen1_W708.jpg
1차대전 당시 탕가니카 호에서 무장상선이 된 그라프 폰 괴첸(Graf von Götzen)[1]

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 근세 근대2.3. 19세기2.4. 20세기
2.4.1. AMC2.4.2. 가장순양함2.4.3. 개조항공모함
3. 쇠퇴4. 부활

1. 개요

군함의 일종. 평시에는 일반적인 상선으로 활동하다가 전시에는 간단한 개조를 받고 군함으로 투입되는 함선들을 일컫는다.

선박이 탄생한 시점부터 존재할 정도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무장상선이라는 명칭으로는 주로 20세기 초중반에 많이 활약한 함선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상선을 개조해서 군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총력전의 상징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2. 역사

2.1. 고대

선박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무장상선이 등장한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초기에는 일반적인 선박과 군함의 구분이 나누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해전은 그냥 일반적인 용도로 쓰는 배에 병력을 가득 싣고 전장에 나가서 서로 선박을 붙인 다음 갑판 위에서 백병전으로 승부를 보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고대에 갤리선이 등장한 후 본격적인 군함인 3단노선인 트리에레스가 등장하면서 선체의 튼튼함에서 밀리고, 무엇보다 충각공격이 불가능한 일반적인 선박들은 군함의 위치에서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군함이 등장하긴 했어도 항상 수량이 모자랐던데다가, 군함은 특성상 전투에 치중한 설계 때문에 나머지 보급품과 보충인원도 별로 적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군함은 반드시 보급품과 보충인원을 적재해줄 선박을 필요로 했기에,군함은 아니지만 약간의 무장을 갖추고 함대에 소속된 무장상선은 항상 존재하였다.

2.2. 중세 근세 근대

함포가 등장하고 범선이 해전의 주력이 되며 전열함이 해상을 주름잡던 시절에도 보조함선으로서의 무장상선은 계속 존재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해군은 항상 보급품과 보충인원이 필요했으며 그걸 최전선에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무장을 장비한 무장상선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해적의 창궐로 인해 오히려 무장상선의 숫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대항해시대 때 장거리를 항해하는 선박들은 상당수가 자위용 대포 정도는 조금 탑재하고 다녔는데, 대규모 해적단이나 유명한 해적들을 막기에는 화력과 방어력이 모자라겠지만 방금 해적이 되거나 피라미같은 규모의 소규모 해적에 대해서는 몇 문 안되는 함포로 반격하면서 빠르게 항해해서 목적지로 향하지 않으면 아예 해상무역을 못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상품을 적재하고 항해하는 경우에도 소수의 호위 함선들만으로는 대규모 해적단이나 유명한 해적들을 완전히 막기가 어려워서 호위받는 입장의 상선들도 어느 정도 무장을 갖추고 해전에 참여하여 호위함선을 도와줌으로서 위기를 모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냥 장삿배 일 하는 것보다 남의 배 털어먹는게 더 돈벌이가 되네?'하며 선원들, 혹은 무장상선 자체가 진짜 해적이나 사략선으로 전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애초에 전근대에는 이런 (무장)상선과 해적, 정규 해군의 구분이 희미한 사례가 많았고, 선원 자체도 모집하기 힘들어서 상선에 탔던 선원이 다음 항해에서는 해적선에 타는 경우도 흔했다.

한편 이런 무장상선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흥양 해전이 바로 그것인데, 1622년 광해군 22년에 전라남도 고흥군 일대에서 서양 배와 조선 수군간의 교전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배는 교차검증을 통해 일본 데지마로 항해하던 중 실수로 조선으로 표류한 "드 혼드"라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상선으로 밝혀졌는데, 엄연히 조선 수군의 정규 군함과 교전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포, 격침되기는커녕 조선군 8명을 포로로 잡고 도주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무장상선일 가능성이 높다.[2] 이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602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을 받고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돌아오던 사절단이 탄 서양식 무장상선 한 척이 당포에서 조선 수군과 교전을 벌인 제2차 당포 해전이 벌어저기도 했었다.

이런 식으로 무장상선은 고대부터 계속 존재했다. 하지만 무장상선이라는 독자적인 분류로 나누어지기보다는 일단 일반적인 상선에 필요에 따라서 약간의 무장과 병력을 탑재해 스스로를 지키거나 해군을 도와주는 역할이었기에, 후술할 현대적인 무장상선과는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나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2.3. 19세기

현대적인 무장상선의 시작은 평시에 넘쳐나는 상선들을 개조해서 전쟁에 써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발상은 대략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략적으로 1800년대 중반부터 독일 제국이나 러시아 제국, 대영제국 등 내로라하는 열강들이 "전시에 군함으로 개조될 수 있는 상선"들을 시범적으로 건조했다.

그리고 급기야 18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독일과 영국이 조선소들과 일반 여객선을 건조할 때 국가가 일정 분량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유사시에는 군함이나 전시에 사용할 수 있는 함선으로 개조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협약이 체결되었고, 미국이나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일본 등도 자국 조선소들과 비슷한 협약을 맺었다. 이러한 협약은 계속 지속되었으며 보통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부는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처럼 유사시에 초고속 군용 수송함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협약을 통해 정부가 조선소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세계 대전 같은 총력전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상선을 군함으로 개조할 수 있도록 건조"하는 선에서 끝났다.

2.4. 20세기

이 시기, 자세하게는 제1차 세계 대전, 전간기, 제2차 세계 대전을 포함하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가 무장상선들의 전성기였다.

2.4.1. AMC

양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은 자국 여객선이나 화물선 중 일부를 개조해서 함포를 탑재한 다음, 이들을 수송선단에 편제하여 운용했다. 당시 이렇게 운용된 함선들은 AMC (Armed merchant cruiser)라고 불렸다.

이들은 상선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속도가 매우 빨랐고 따라서 같은 상선으로 구성되어 있는 수송대를 호위하기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슨 소리인가 할 수도 있는데, 1900년대 초반만 해도 대다수의 군함들은 일반 상선들보다 경제적인 순항 속도가 훨씬 느렸다.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대한 함포와 강력한 장갑을 보유하고 그 비율도 다 합치면 보통 만재배수량의 40% 이상이고 심하면 만재배수량의 60%를 차지할 수준이었으니 전투시에는 고속항진을 위해 동력기관에 비상시 출력인 과부하를 걸어놓을 정도로 혹사시켜서 대응하지만 평상시 항해나 장거리 항해시에는 그렇게 했다가는 순식간에 연료를 다 소모하고 해상에서 재보급 받는 것은 양반에, 보통은 동력기관에 무리가 가서 해상에서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고장이 발생해 예인선에 끌려가서 모항으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순항 속도면에서 군함이 상선보다 느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수송대가 군함들과 발을 맞추기 위해서 속도를 줄이면서 수송 효율이 줄어들거나 U보트를 위시한 잠수함들의 기습에 취약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상선을 개조한 AMC들은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다만 AMC도 당연히 단점은 있었다. 일단 상선을 기반으로 했던 탓에 함체와 구조물 형태상 중장갑과 중무장을 탑재하면 함체와 구조물이 견딜 수 없으므로 장착이 불가능하므로 장갑이 매우 빈약했던 데다가, 탑재한 주포의 구경도 대체로 작은 편이라서 정규 군함과 교전하면 (당연히) 일단 대부분 큰 피해를 입거나 심하면 침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여기에 이들은 개조함선이었기에 레이더는 고사하고 사격통제장치 등 목표의 탐색과 조준에 필요한 전자장비를 일체 탑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포격 명중률도 매우 떨어졌다고 한다. 즉, 상선 호위용으로 쓰기에는 좋았지만 딱 개조 호위함 이상의 활약할 할 수는 없었던 물건이었던 셈.

그래서 일반적으론 호송선단에 포함된 아군 함선들이 적군 해군이 오면 대응하게 되며 중과부적 상황에 올 것 같으면 아군 호위함들이 교전하면서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에 호송선단에 속한 상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일부 불운한 선박들이 격침되는 것 외에는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다만 예외는 있어서 저비스 베이 사건처럼 일개 AMC가 나치 독일의 11인치(280mm)급 주포를 장착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게 자살돌격을 해서 수송선단을 보호한 사례도 있긴 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정규 군함이 호위하지 않고 저비스 베이라는 1척의 AMC만 호위하는 빈약한 호위가 주 원인이었으며 전투상황도 AMC였던 저버스 베이가 장갑과 화력의 열세로 들이박기 전에 아트미랄 셰어에게 격침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저비스 베이의 희생으로 귀중한 시간을 벌어서 호송선단의 37척중 6척만 공격을 받고 5척만 격침되는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만 입게 된다.

그 외에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령 동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에서 현지의 응급개조로 여객선에서 무장상선이 된 그라프 폰 괴첸같은 경우도 존재한다. 10.5cm 단장 속사포 1기, 3.7cm 5연장 개틀링 기관총 2기라는 빈약한 무장을 갖추었으나 이 배가 배치된 곳은 호수. 만재배수량 1,200톤이라는 거대한 덩치는 당시의 탕가니카 호에서 대적할 상대가 없었고, 협상국은 결국 수상기를 동원해서 폭격으로 그라프 폰 괴첸을 격침하게 된다. 여담으로 그라프 폰 괴첸은 1924년에 다시 인양된 후 여객선으로 복귀하여 2024년 시점에서도 계속 현역으로 활동중이다.[3] 아래의 가장순양함과 다른 것은 특설포함 형식으로 개조해서 별도의 위장을 하지 않았다는 게 다르다.

2.4.2. 가장순양함

한편 비슷한 시기 영국과 전쟁을 치렀던 독일은 완전히 다른 물건을 만들어낸다. 1차/2차 세계대전 모두 독일은 지형상 영국처럼 수송선단을 운용할 필요성이 거의 없었고, 반대로 수송선단을 막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양국의 지리적인 차이에 있다. 애초에 영국은 섬이 ㄴ관계로 일단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육군을 실어날라야 했고, 본토에는 석탄을 제외하고서는 중요 자원이 거의 없어서 막대한 수량과 면적 및 중요성을 가진 식민지에서 자원을 열심히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수송선단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반면 독일은 태생부터가 대륙 국가였고 전쟁 초반 한정으로는 전쟁에 대비해서 미리 비축해놓은 자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본토에 자원도 넉넉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도 영국과 다르게 얼마 없었고 전략적 중요성도 그렇게까지 높지 않아서* 게다가 식민지를 보유한 것도 1차 대전 당시 이야기고, 2차 대전 당시에는 해외 식민지가 아예 없었다.] 수송선단을 쓸 필요성이 극히 적었다.

따라서, 독일은 상선을 개조해서 같은 상선을 공격하게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 바로 일반 상선으로 위장하고 적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가장순양함(Auxiliary cruiser)이다.

가장순양함은 본질적으로는 위의 AMC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 다 상선을 기반으로 개조한 군함이었고, 따라서 주요 장단점들도 공유했다. 다만 이 둘 사이에는 몇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일단 사용한 상선의 종류부터가 달랐다. 영국 같은 경우에는 순항 속도가 중요한데다가 애초에 호위가 목적이었기에 위장도 일체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영국은 순항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여객선들에다가 함포를 얹고 그대로 AMC로 사용했다. 독일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지만, 문제는 이들 여객선들은 숫자도 적은 데다가 너무 유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몇 번 당한 영국은 이후부터는 수병들에게 독일 유명 여객선의 실루엣을 달달 외우게 시켰고, 이후 독일 여객선들이 위장을 한 채로 돌아다녀도 실루엣 대조표를 본 뒤 일치하면 곧바로 포격 세례로 응답했다. 한마디로, 유명 여객선들을 가장순양함으로 사용하면 기습과 위장의 이점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독일은 속도는 더 느리지만 여객선들만큼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병력수송선들을 가장순양함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호위가 중심이었기에 단순히 함포 대공포만 달았던 AMC들에 비해 가장순양함들은 어뢰 기뢰를 추가로 탑재했고, 크기가 큰 함선들은 여기에 더해 수상기 고속정까지 함체 내부에 수납하여 운용하기도 했다.

또한 전술했던 사실이지만 영국은 기본적으로 호위가 목적이었기에 위장에는 그다지 큰 중점을 두지 않은 반면, 독일은 일단 상대를 일반 상선이라고 속이고 '공격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에 가장순양함들에게 온갖 위장을 시켰다. 중립국 깃발을 다는 건 기본이었고, 함포를 갑판 아래에 숨겨두었다가 기습 시에 위로 올려서 공격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갑판 위에 강철로 만든 통짜 가짜 굴뚝을 세워서 배의 실루엣을 의도적으로 바꿔버리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이것도 모자랐는지 나포한 연합국 상선을 무장상선으로 개조해서 실루엣을 통한 분석법을 무력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덕에 양차대전 초기에 독일의 가장순양함들은 꽤나 괜찮은 전과를 거두었다.

다만 갈수록 독일의 전세가 불리해졌고, 더 많은 연합국 함선들이 수송선단에 붙게 되자 이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되었다. 아무리 위장을 잘 해서 적 수송선단에 가까이 접근한 다음 공격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결국 호위로 붙은 정규 군함이 개입하면 가장순양함은 화력과 장갑의 열세로 매번 필연적으로 교전에서 패배했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고,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독일의 가장순양함이 호주 해군의 경순양함을 격침시키는 일도 벌어지기는 했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해당 사건은 일명 HMAS 시드니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으로, 1941년 11월 9일 독일 가장순양함인 코르모란(Kormoran, 가마우지)함과 호주 해군의 리앤더급 경순양함[4] HMAS 시드니가 교전한 사건으로, 일반 상선으로 정체를 숨기고 초근접 거리까지 접근한 코르모란 함이 시드니에 선제공격을 가해서 시드니를 격침시켰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초근접 거리에서 불시에 기습한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시드니도 공격당한 이후 곧바로 반격에 들어거 코르모란에 피해를 누적시켜 자신은 격침된 이후에도 기어이 코르모란을 가라앉히는데는 성공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장순양함이 1척밖에 없는 적 경순양함을 상대로 초근접 거리에서의 기습 및 선제공격을 성공시켰더라도 적군 경순양함과 동귀어진이 가장 좋은 결과로 나올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2차 대전기에는 항공기의 발전으로 아무리 호위가 빈약한 호송선단을 치고 빠지더라도 곧바로 적 공군력이 와서 가장순양함을 결단냈다. 이 때문에 양차대전 말기 독일의 가장순양함들은 대부분 격침당했고 살아남은 소수도 훈련함이나 일반 수송선으로 사용되었다. 어찌보면 유보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몰락한 셈.

그리고 가장순양함은 독일만 운영한 것이 아니다. 동맹국이나 추축국의 경우에는 수량은 적지만 독일처럼 가장순양함을 운영했으며 영국도 양차 대전 시기에 골칫덩어리였던 U보트를 유인하기 위해 상선에 각종 대잠장비를 탑재한 다음 외형만 일반 상선으로 위장시킨 Q-ship 같은 무장상선들을 운용했다.

다만 Q-ship의 경우에는 1차대전 시기에 값비싸고 탑재수량도 적은 어뢰를 단독항해하는 상선 따위에게 날리기 싫어서 U보트가 물 위로 부상한 후에 덱건을 쏘거나 상선을 상대로 항복을 권고하는 방송을 할 때를 노려서 잠수함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Q-ship의 존재를 눈치챈 독일 해군이 그 이후에는 단독항해하는 상선이라도 뭔가 수상하면 잠항상태를 유지한 채로 어뢰를 원거리에서 날려서 대응하는 방식으로 나가면서 Q-ship의 피해만 늘어나서 영국도 Q-ship의 운영을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그 이후에 2차대전 초반의 급박한 시기에 영국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아주 잠시 운영했다가 역시나 피해만 보고 다시 접었고 전쟁에 참여한 직후의 미국같이 경험이 없는 상황이거나 전쟁 말기의 일본처럼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일말의 기대를 걸고 운영한 경우도 있으나 곧 잠수함의 어뢰공격이나 선제공격으로 맞고 Q-ship이 침몰당하는 사태를 맞이하면서 역시 운영을 접게 된다.

2.4.3. 개조항공모함

극초기의 항공모함은 그냥 큰 선박에 항공갑판을 깔고 하부에 격납고를 만들며 비행관련시설을 배치하면 끝나는 군함치고는 간단한 구조로 운영이 가능했다. 이는 함재기도 느려터진 복엽기가 주력이였으며 함재기의 폭장량도 작고 함재기 자체의 중량도 적어서 항공모함이 짧고 좁은 비행갑판만 가진 채 느리게 항해하더라도 이착함이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런던 해군 군축조약,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등의 각종 해군 군축조약 때문에 정규 군함으로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이 전체 배수량 쿼터와 1척당 배수량 쿼터에 막히게 되자 유사시에 간단한 개조로 항공모함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서 상선이나 여객선 건조시 정부에서 보조금을 준 다음에 유사시에 개조해서 항공모함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런 노력을 가장 많이 한 국가는 일본 제국이었으며 나치 독일이나 이탈리아 왕국도 전시에 보유하고 있던 여객선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려고 시도하였다. 미국도 막대한 규모의 호위항공모함을 조기에 다량으로 건조하기 위해서 초기형 호위항공모함을 다양한 함선과 선박을 이용해서 개조해서 만들게 되는데 그 중에는 상선이나 여객선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2차대전 시기에 함재기의 중량이 늘어나고 고속을 자랑하는 단엽기로 기종 자체가 바뀌는데다가 폭장량도 크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항공모함의 비행갑판 자체를 사방으로 크게 늘려야 하므로 대형함선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하더라도 항공모함이 고속항진하면서 함수 방향으로 맞바람을 맞아야만 비행갑판에서 함재기가 자력으로 이함이 가능했으며 함재기가 폭장량 만재시에는 그렇게 해도 아슬아슬해서 캐터펄트를 사용하던가 해야 했다. 따라서 해전의 주력을 담당할 수 있는 정규항공모함은 애초부터 대형 군함으로 신규건조하는 게 바람직하였으며 개조항공모함이라고 해도 순양전함이나 고속전함같은 거대한 함선을 개조한 항공모함만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가능했다. 미국의 호위항공모함들도 중기형 이후에는 대형 고속 화물선을 기반으로 한 설계를 대폭 수정한 후 처음부터 신규건조해서 배치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2차대전 개전 초반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상선을 개조한 항공모함도 어느 정도 전선의 급한 불을 끄는데 도움이 되었으나 영국의 오데시티급 호위항공모함처럼 성과를 올렸지만 자신도 격침당해서 피해가 막대한 상황이 발생하였고 전쟁 중반부터는 호송선단을 호위하면서 잠수함을 상대하는 대잠작전에나 유용한 신세가 되었으며 그 와중에도 신요(항공모함)처럼 잠수함에게 일격을 당해서 격침당하는 등 수난이 많게 된다.

그 외에도 대서양 전투 초반에 막대한 호송선단 손실에 비해서 당장 호송선단 호위에 투입할 항공모함 자체가 부족한 영국은 상선에 간이형 캐터펄트 시스템을 장착하고 호커 허리케인같은 육상용 전투기를 탑재한 후에 적이 나타나면 전투기를 캐터펄트로 발사해서 대응하는 사례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상선에 1기에서 2기라는 적은 숫자의 함재기만 운영이 가능한다데가 일단 이함하면 착함이 불가능해서 바다 위에 전투기가 착수해야 하므로 전투기는 그냥 1회용으로 써먹는데다가 종종 귀중한 인력인 조종사까지 물에 빠져서 익사하거나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저체온증으로 얼어죽는 사태가 벌어지므로 호위항공모함들이 투입되자마자 광속으로 사라진다.

3. 쇠퇴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이 지나자 무장상선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제일 근본적인 이유는 더 이상 세계대전같이 전세계 바다와 무역로를 걸고 싸울 정도로 큰 전쟁이 벌이지지 않았다는 것도 한몫 했지만,[5] 일단 독일의 가장순양함들이 몰락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무장상선은 기본적으로 상선을 개조한 함선이라 정규군함과는 교전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세계대전 때는 싼맛에 상선에 무장 얹혀서 여러 용도로 썼는데 상선까지 싹 긁어서 써야 할 정도로 그렇게 규모가 큰 전쟁도 없고, 그렇다고 평시에 일개 구축함보다도 전투력이 떨어지는 무장상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쓸 이유는 전혀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쇠퇴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병참의 중요성이 점점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무장상선이나 군함으로 개조할 목적으로 빠져나가는 고급 상선과 여객선의 존재 자체가 점점 더 중요해진 것도 한몫했다. 당장 전쟁에 돌입하면 고속성능을 보유하면서 대량의 수송능력을 자랑하는 선박을 추가로 건조하는게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평시에도 엄선된 재료와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숙련된 인력을 다수 동원해서 만들어야 하는 선박이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그런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고속전함이나 정규항공모함같은 주력중의 주력함이나 가능한 것이며 그나마도 전황에 맞추기 위해서 가급적 빠르게 건조하게 되므로 시나노(항공모함)처럼 부실공사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 문제가 제대로 터진 것이 일본 제국으로 연합함대를 지원해줘야 할 각종 지원함들이 고속성능을 자랑하는 대형선박이라는 이유로 항공모함으로 개조되면서 연합함대는 급유함과 수송함 및 병력수송함등 각종 지원함의 부족으로 허덕이는데 성능은 정규항공모함보다 시원치 않은 개조항공모함만 몇 척 늘어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연합국의 경우에도 미국이 리버티선을 말 그대로 대량으로 찍어내서 간신히 수송선의 수량만 맞추었고 워낙 리버티선이 저성능이라서 빅토리급 수송선같은 후계 함선들이 등장하게 되며 개전전에 보유한 몇몇 중요한 상선과 여객선들은 별도의 엄중한 호위체제를 붙이거나 RMS 퀸 메리처럼 단독으로 대서양을 고속주파하면서 U보트를 압도적인 속도로 따돌리는 식으로 운영하게 된다.

한편 냉전 당시 소련은 영국의 AMC나 독일의 가장순양함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무장상선을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바로 일반 컨테이너선에 사거리가 짧은 대신 위력이 강한 미사일을 탑재, 유사시 적 항구안에 일반상선으로 위장해서 잠입하거나 이미 전쟁 이전에 이미 잠입한 후에 무장상선들이 항구 내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적 본토를 타격하는 것이다. 이 전술은 기본적으로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던 데다가, 본토에서 적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거리가 긴 미사일이 개발되고 무엇보다 효율성이 문제가 되어 끝내 정식으로는 도입하지 않았다.

사실 기습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적 항구 내에서 미사일을 쏴버리는 이 방법이 훨씬 더 효율이 좋으나, 문제는 이런 위장상선들은 항구 입구에서 검문 한 번만 하면 다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처음 쓸 한 번만 쓸모가 있고 그 뒤로는 그냥 계륵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항구안에서 미사일을 쏜 무장상선은 거의 100% 확률도 나포되거나 격침될 것이 확실하기에 배 낭비가 너무 심하다. 덤으로 이런 짓을 하게 되면 상대방 국가와 외교적 수습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게 된다.

4. 부활

파일:Atlanticconveyor.jpg
아틀린틱 컨베이어를 그린 그림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예외적으로 무장상선이 잠시 부활했었다. 아틀란틱 컨베이어(Atlantic Conveyor)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이 선박은 본래 민간 로로선이었으나 전쟁 발발과 동시에 영국 해군에게 징발, 갑판 방열처리 등 일부 개수를 받고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들에게 헬기와 해리어를 전달해주기 위한 선박으로 활용되었다. 다만, 아틀란틱 컨베이어도 어디까지나 자체 해리어 및 헬기 이륙이 가능했을 뿐이지,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들에게 해리어와 헬기를 전달해주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던 "수송선"이었던 데다가, 자체 방어무장 또한 전무하였으므로 이걸 무장상선으로 봐야하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6]

하여튼 아틀란틱 컨베이어는 여러 차례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들에게 헬기와 항공기를 전달해주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1982년 5월 25일 아르헨티나 해군 항공대 소속 쉬페르 에탕드르 2기가 발사한 엑조세 대함 미사일 2발에 맞고 격침당했다.[7] 영국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해리어는 이미 항공모함 HMS 허미즈와 HMS 인빈서블에게 전달한 뒤였기에 항공기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적재하고 있던 헬기 12기 중 10기[8] 는 그대로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굉장히 의외의 방향에서 무장상선이 부활했다. 바로 해적이 그 이유인데, 소말리아 해적이나 말라카 해적 등 일반 상선들에 대한 해적 공격이 급증하자, 지원이 오기까지 공격을 버텨야 하는 일반 상선들이 자위용으로 다시 무장을 탑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범선 전장식 대포를 탑재했던 대해적시대때 상선들이 대응한 방식이 되돌아온 셈이다. 다만 상대가 정규 해군이 아니라 일개 해적 무리이므로 무슨 함포를 얹거나 어뢰를 탑재하고 다니지는 않고, 보통 고압력 물대포 정도의 무장을 주로 탑재하였으며 정말 중무장이라고 시켜봐야 고작 총기 몇 정 거치하는 선에서 끝났다. 사실 물대포라면 모를까 권총 수준의 화기만 탑재해도 외국 항구에 입항이 금지되거나 엄중한 검문을 받게 되므로, 어지간하면 패닉 룸을 상선에 설치해서 유사시에 선원들은 내부로 대피하고 주변에 있는 군함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게다가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등 다국적 연합 해군의 활약으로 소말리아 해적 등 주요 항로에서 활동하던 해적들도 대부분 토벌되었으므로 상선에 무장을 탑재하는 경우는 많이 드물어졌다. 오히려 2020년대에는 같은 아덴 만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들은 해당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을 국적불문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데다가 사용하는 무기들도 대함미사일[9] 등 해적과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하기에 민간 상선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2010년대 들어서는 중국 소련이 했던 것처럼 컨테이너선 기반 무장상선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무역대국 중국은 소련에 비해 운용하는 상선의 수가 비교도 안 되게 많기 때문에 미합중국 해군과 다른 주변국 해군들에게 큰 우려가 되고 있다. 다만 중국도 저런 (위장) 무장상선의 태생적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이를 대량으로 운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 전쟁 후에 다시 여객선으로 돌아가서 2023년의 시점에서도 계속 현역으로 운용중인 선박 [2] 다만, 저 당시 서양과 동양의 선박 체급의 격차가 꽤나 컸다는 점은 감안해봐야 한다. [3] 사실 선박은 관리만 잘 해주면 항공기와 차량과 다르게 오랜 기간 운용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당장 러시아 해군에서 현역으로 활동중인 군함 코무나만 봐도 함령이 100년이 넘었다. [4] 정확하게는 리앤더급 경순양함 하위함급인 엠피온급 경순양함이 호주 해군 소속이 된 후에 퍼스(Perth)급 경순양함이 되었다. [5] 당장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대규모 해전이 벌어진 전쟁은 단 한 번, 포클랜드 전쟁 뿐이다. 나머지는 마땅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세력 간 전쟁이거나, 압도적인 해군력을 갖춘 측과 해군력이 전무한 측의 싸움이었기 때문. [6] 참고로 이건 운용국이었던 영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전쟁 당시 영국 해군에서는 상선에 무장을 탑재하는 것이 국제법에 저촉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결국 아틀란틱 컨베이어는 아무런 무장도 탑재되지 않았다. 물론 이건 영국 해군이 잘해야 개조 상선이었던 아틀란틱 컨베이어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은 게 더 컸지만. [7] 정확하게는 피격 후 바로 가라앉지는 않았으나, 영국이 예인을 시도하던 중 화재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번졌고 결국 침몰했다. [8] 웨스트랜드 웨섹스 6기, 보잉 시누크 3기, 웨스트랜드 링스 1기. 시누크 1기와 링스 1기는 가까스로 이륙해 살아남았다. [9] 당연하지만 일개 반군에 불과한 후티가 직접 제작한 건 아니고, 이란에게 지원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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