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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14:02:01

해방함

1. Coastal defence ship
1.1. 정의1.2. 해방함의 등장1.3. 해방함의 몰락1.4. 각 국가의 해방함
2. 海防艦(かいぼうかん)
2.1. 소개2.2. 역사2.3. 분류
2.3.1. 1898년 ~ 1931년2.3.2. 1942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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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astal defence ship

파일:external/www.photoship.co.uk/Vainamoinen-01.jpg
대표적 해방함인 배이내뫼이넨급 해방함.

1.1. 정의

이름 그대로 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함급이다.[1] 그럼 일반적인 군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해방함은 연안방어에 중점을 둔 함급으로 주력함. 즉 과거 전열함에서 이어져오는 대형함에 비해 작지만 주력함 수준의 화력을 가진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2] 해방함은 주력함에 쓰이는 거포 2~4문 정도의 무장에 20노트가 될까 말까한 느린 속력을 가졌다. 다만 정의가 꽤나 애매모호하다보니 각나라마다 부르는 표현이 제각각이었으며[3] 크기도 무장도(특히 보조무장) 나라마다 천지차이이다.

요약하면 느리고(방어용이니까) 저렴한(기능 몇개 뺐으니까) 주력함.

1.2. 해방함의 등장

해방함은 대략 1860년대쯤부터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프리드레드노트(Pre-dreadnought)형 전함이라고 하면 전, 후방에 주포를 장착한 포탑이 있고 현측에 포곽(Casemate)식 부포가 전열함처럼 주렁주렁달려 있는 형태를 생각하는데, 철갑선이 첫 등장하자마자 바로 그런 안정적은 구조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프리드레드노트시절 설계가 일정하지 못하던 시절,[4] 유럽에서 신형군함을 건조 할 수 있는 나라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당연히 어떤 설계와 형태가 제일 좋은지 알 수 없었기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해방함이다. 해방함이라는 발상이 등장한 이유는 비용과 예산 또는 기술의 부족이었다. 왜 두가지 이유가 되냐면 두 이유가 복합적이지 않기때문이다.

첫번째 이유인 비용과 예산, 이점은 철갑선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필연이었다. 당연히 기존의 목재 범선과 비교하면 건조비용이 비싸졌으며 증기기관을 장착하면서 유지비도 급증했다. 그러다보니 전열함의 연장에 가까웠던 주력함을 마냥 범선처럼 만들기에는 예산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발상이 나왔는데, 바로 주력함을 축소해서 해안을 방어 할 수 있는 함급을 만들자는 것이다.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였으며 실제 대부분의 해방함은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나중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열함이 아닌, 드레드노트급이 등장한 뒤에도 프리드레드노트, 또는 드레드노트를 축소시킨 형태의 해방함이 등장하는데 이또한 같은 맥락이다.

두번째 이유인 기술의 부족은 마찬가지로 철갑선과 연관이 깊다. 모니터함(영국이 만든 화력지원용 모니터가 아니라 미군의 모니터함)을 보면 알겠지만 쇠로 배를 만드니 무게가 많이 나가서 거의 포를 물위에 띄운듯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당연히 이런 배는 원양항해가 될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원양항해가 가능한 주력함을 만드는 것은 물건너간 이야기다. 물론 배를 많이 만들어본 영국이나 신기술의 요람인 프랑스같은 경우는 뭔가 그럴싸하게 철갑선을 만들었지만 독일 제국같이 막 해군을 키우는 나라는 배도 만들어 본적이 없는데 위에서 까라고 해서 '팍'하고 큰 배를 만들 수 없으니 일단 작은 배부터 만들면서 경험을 쌓아보기 위해 일단 연안항해가 가능한 수준의 군함부터 건조해서 해방함이 탄생하게 되었다.

1.3. 해방함의 몰락

해방함의 장점은 역시 비용과 배수량에 비해 좋은 화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많은 나라가 거함을 만들려고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배는 크면(배수량) 강하다.' 라는 단순한 원칙때문이다. 왜 배가 크면 강한가? 당연하겠지만 부력은 무게와 상관없이 물에 닿는 표면적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배가 커져도 쇠로 만들든지 나무로 만들든지 배는 물위에 뜬다.[5] 결과적으로는 배가 크면 갑판도 넓어지며 그 넓은 갑판위에 더 많은 또는 더 강한 무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혹은 부력이 견딜 수 있을때까지 장갑을 추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해방함의 한계가 나타난다. 해방함은 아무리 노력해도 주력함보다 약하거나 적은 화력을 가지게 된다. 장갑이야 배가 작으니 잘 설계하면 최소한의 장갑으로 효율을 낼 수 있겠지만 화력은 불가능하다. 실제 해방함의 주포만 떼놓고 보면 주력함'급' 화력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실제 함선의 전반적인 화력은 여러 한계로 인해 주력함과 동등해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화력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배가 작은데 그 한정된 공간안에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무장을 넣어야 하니 동력원이 들어갈 공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기술로는 같은 공간대비 효율이 좋은 중유보일러같은 것이 없었으니[6] 연료는 무조건 석탄이었는데, 같은 동력원을 쓰면서 더 작은(또는 적은) 보일러에서 주력함 수준의 출력을 낼 수는 없었다. 물론 배가 작으니까 적은 출력으로도 주력함을 따라잡을 수 있는 속력을 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여기서 또다른 한계가 나타난다. 선체의 형상에 따라 출력대비 배수량이 많이 나가더라도 속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7] 해방함은 큰 포를 달아야 했기 때문에 선체를 고속에 적합한 긴 형태로 만들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해방함은 짜리몽땅한데, 바로 포의 반동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 이러니 주력함을 능가하는 속력을 내게 하는 것은 물건너 간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해방함은 화력과 속력, 두 문제를 끝까지 극복하지 못했고, 전함 HMS 드레드노트(1906)가 등장하면서 함선 건조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 드레드노트는 드레드노트급이라는 새로운 주력함 개념을 만들었고, 드레드노트 이전에 개발된 주력함을 전부 '프리드레드노트'로 일컫게 되는 원인이 된 함선이다. 당장 프리드레드노트 함선들과 비슷한 수준의 무장을 소수 장착하는 것이 한계였던 해방함은 더 강력하고, 더 많은 화력을 낭비하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투사할 수 있게 된 드레드노트를 능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드레드노트가 건조된 이후 개발된 해방함은 주력함을 대체하는 목적이 아닌, 자국의 국방 수준이나 지형에 알맞는 군함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대표적 사례가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인 핀란드의 배이내뫼이넨급 해방함이다. 실제 배이내뫼이넨은 쇄빙선인데, 핀란드의 기후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기도 하다. 또 다른 사례로는 태국의 톤부리급 해방함을 들 수 있는데, 톤부리급은 태국의 국방력 수준에 맞춘 함선이다.

물론 소수의 나라는 해방함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발상으로 '드레드노트'를 축소한(!?) 해방함을 개발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만들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의 소국에서 주로 연구한 방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장 유명한(이자 거의 유일한) 해방함이 바로 스웨덴 스베리예급 해안경비함(해방함)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이런 비슷한 발상을 했지만, 네덜란드는 본토가 아닌 식민지 방어를 위해 주력함을 경량화시킨 함선을 해방함으로 부른 케이스라 좀 애매하다.[8]

1.4. 각 국가의 해방함

해방함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는 나라는 별로 없으나, 대충 해방함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 배들을 적어둔다. 단, 모니터함은 해방함과 비슷하지만 용도가 다른 함급이므로 목록에서 제외한다.

남미 3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이 세 나라는 서로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유럽에서 신형 군함을 주문했는데 분류는 해방함이었으나 모니터함처럼 연안공격을 위해 자주 쓰였다. 강에서 운용하기도 했으며, 드레드노트가 등장한 이후로는 ABC 건함경쟁이라고도 불리는 남미의 건함경쟁으로 이어진다.

네덜란드 왕국
노르웨이 왕국
덴마크 왕국
독일 제국
프리드레드노트를 건조하면서 해방함을 기술 검증 목적으로 함께 건조하던 국가이다.[13] 나사우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독일의 해방함 계보도 끊기게 된다.
러시아 제국
러시아는 해군을 키우기 위해 해방함도 많이 연구했지만 주력함과 마찬가지로 과무장으로 인해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졌다.
스웨덴 왕국
어찌 보면 해방함의 선두주자. 해방함에 많은 심혈을 기울여 가장 우수한 해방함을 건조했던 나라이다. 단, 스웨덴에서는 장갑함이라고 불렀다.(pansarskepp)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거함 건조 기술이 부족해 해방함부터 건조하면서 기술을 축적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이후 설계와 건조 능력이 안정되자 해방함을 기초로 한 프리드레드노트를 건조하기 시작한다.
일본 제국
하단의 해방함(海防艦(かいぼうかん))항목을 참고하자. 일본 내에서는 2번 항목과 구분하기 위해 해방전함이라 부른다.


타이 왕국
참고로 타이 왕국은 제2차 세계 대전때 해방함으로 해상전을 치른경험이 있는 국가이다.( 코 창 해전) 하지만 프랑스의 뒤게-트루앵급 경순양함 라모트 피케(Lamotte-Picquet)에게 탈탈 털렸다. 승무원의 숙련도 측면에서 차이가 난 것도 원인이라고 볼수는 있지만, 애초에 해방함 특성상 주포 구경을 빼고는 속력이나 방어력이 나은 점이 하나도 없었으니 경순양함 한테도 밀리는거다.[16] 하지만 함대결전 당시 톤부리급은 세 척이었고 라모트 피케는 한 척이었다. 일본에게 현대화를 맡긴 태국 군함이 기본적인 성능 측면에서 우위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핀란드
중국
프랑스
웬 프랑스? 하겠지만 청년학파의 영향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 다시 주변 추세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이후 프랑스는 굉장히 빠르게 해방함-프리드레드노트-세미드레드노트-드레드노트에 해당하는 주력함을 줄줄이 건조하게 된다.

2. 海防艦(かいぼうかん)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파일:일본 제국 해군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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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개

海防艦. 구 일본군 해군이 운용했던 특이한 종류의 군함을 말한다. 배수량 1000톤 안팎의 소형함정으로 주로 선단호위와 대잠 등의 임무를 맡은 특수목적함이었다. 현대 해군 기준으로는 연안전투함의 개념 안에 든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은 호위함(Escort ship)으로 분류했다.

당시 미국 해군(특히 잠수함 부대)의 주된 적수 중 하나가 일본 해방함이었는데, 미 해군이 해방함을 당시 “kaibokan"이 아니라 ”kibokan"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키보칸”으로 읽는다고 알고 있던 미 해군 장병들이 많았다. 군사 다큐멘타리에서 옛 미 해군 참전용사들이 키보칸이란 말을 하면 카이보칸, 즉 옛 일본 해방함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2.2. 역사

해방함이란 함종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98년이다. 처음 등장했던 시기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안선을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본은 나라 자체도 길쭉하고 섬이 많은데다 해안선의 형태도 복잡하게 생겨먹은 나라라 해안선이 상당히 긴데, 해안선의 길이만 29,000킬로미터가 넘어간다.[17] 또한 일본은 섬나라라 자연히 해안 방어의 중요성이 높은데, 정작 함대결전사상 교리에 의거 한 방 싸움만을 상정해 전함, 순양함, 항모(당시엔 항모가 없었지만) 등의 주력함과 그 보조역으로 건설된 특형 구축함, 갑형 구축함같은 럭셔리한 물건만 건조했기 때문에 이 긴 해안선을 죄다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일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자연히 일본 해군은 해안을 방어할 목적의 함정을 확보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이 해방함이다.

그러나 함대결전 교리에 빠져있던 일본 해군이 해안 방어를 전담할 함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바로 그런 함들을 신규 건조한 것은 아니다. 해방함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898년이지만, 당시의 '해방함'이란 함령이 20년이 넘어가는 구식 전함이나 장갑순양함 등을 그러모아 해안방어임무를 맡기고 이름만 해방함으로 바꾼, 즉 애초부터 그럴 목적으로 건조한 배가 아니라 남는 배들이었다. 그것도 퇴역이 오늘내일하는 구식함들으로 심지어 청일전쟁에서 노획한 함도 있었다. 참고 원래 함급이 전함이나 장갑순양함인데다, 타 국가 인사와 접촉할 가능성도 있어 중좌가 함장으로 임명되는데다가 '군함'취급으로 순양함 이상에야 달리는 국화문장을 배에 달고 다녔다.[18] 이후 시무슈형까지도 이같은 제도가 유지되다 변경되었다.[19]

상황이 바뀐 것은 1930년이었다.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구축함도 보유량 제한이 걸린 것이다. 당시 일본은 소련을 의식해서 북방 해역의 경비에 구식 구축함을 투입하고 있었는데, 구축함 보유량에 제한이 걸리면서 이들이 함대결전 전력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해역 경비에 구축함을 쓰기 힘들어 진것이다. 그래서 런던 조약 체결 직후인 1931년에 조약에 걸리지 않는 보조함의 한도 내에서 가장 강력한 함을 새로 건조해 구축함 대신 해역 경비를 맡긴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거부되고 대신 구식 구축함들을 모아서 기존 구축함들 대신 해역 경비 임무에 투입하였다. 그러나 1937년 '시무슈(占守)형' 4척의 건조가 결정되고, 여기에 더해서 일본은 태평양전쟁 개전 이전부터 남방자원지대와 본토를 잇는 해역의 확보와 수송선단의 호위를 위해 전용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미 해안경비에 쓰이고 있던 시무슈형을 선단호위에 맞게 개량하여 이를 충당하기로 한다. 새로 건조되는 호위함은 1941년 전시응급조함계획에서 30척으로 결정되었다.

해역경비를 목적으로 설계, 건조된 시무슈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후함이나 퇴역함을 해안경비로 써먹던 기존의 해방함은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까지도 존재했다. 그러니까 시무슈형이 건조된 이후 기존의 해방함이 모두 제적될 때까지 해방함이 두 종류 존재했던 셈이다. 이런 기존의 해방함들은 1942년 7월 20일 분류가 해방함에서 연습특무함 등으로 바뀌면서 해방함이 해안경비와 선단호위를 목적으로 설계된 전용함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다.

1944년 들어서부터 탐색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전탐을 장비하기 시작한다.. 크게 1호 3형(13형)과 2호 2형(22형)의 두 종류가 있었으며 대공용의 13호 전탐은 후부 마스트에, 대수상 탐색용의 22호 전탐은 전방부 마스트에 장착한다.

최소한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자체 무장상황은 대부분이 빈약했다. 5인치내외의 주포 두어기와 25mm 연장 대공포 다수를 장비하고 일본해군의 특징이었던 어뢰는 장비하지 않았다.[20] 대신 대잠작전을 위한 수중청음기와 폭뢰 발사대는 반드시 장비했고 폭뢰의 탑재량 자체도 구축함보다 많은 편이었다. 대전 말기 대잠 공격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함 앞부분에 8cm 박격포(97식 곡사보병포/3식 81미리 박격포)를 장비하나 실질적인 잠수함에 대한 타격능력은 미미했을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잠수함 잡으라고 만든해방함 히부리, 마츠와, 사도는 대잠작전 중 잠수함[21]에게 격침당했다.

최고속력 17노트 안팎에 불과한 둔족도 큰 문제로 작용했다. 이는 미 해군 주력잠수함인 가토급이나 발라오급의 수상최대속력보다 느린 것인데 이렇다보니 미 잠수함이 히트 앤 런을 걸어와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선단을 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해방함의 함장 및 고급사관은 기존 상선사관이나 후보생 안에서 급한대로 충당했는데 그 아래 승조원들의 훈련도와 기량이야 안봐도 뻔했다.

영국 해군의 플라워급 초계함 역시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으나 제해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보조역을 맡던 플라워급과 연합함대가 궤멸되어가는 와중에 급조되어 투입된 해방함은 이겨내야 하는 전장의 차원이 달랐다. 결국 173척의 해방함 가운데 71척이 격침당했고 1만명 이상의 승조원이 전사했다.

2.3. 분류

2.3.1. 1898년 ~ 1931년

2.3.2. 1942년 이후


여담이지만 미쿠라급의 경우 기공 시점에는 을형 해방함으로 분류되었으나 병형, 정형 해방함 건조가 결정된 후 갑형으로 분류가 변경되었다.


[1] 해방함이 거의 언급이 안되는 함종이다 보니, 의외로 해방(解放)으로 착각해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 리버티쉽 [2] 태국 톤부리급 해방함처럼 중순양함수준의 화력을 가진 사례도 있다. [3] 영국이 해안방어함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라이벌인 독일은 해안장갑함이라고 불렀으며,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 국가들은 그냥 '철갑함' 또는 '장갑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4] 설계적 결함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종종 실험적인 도전을 하다가 결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다양한 시도 및 실패를 겪으면서 표준적인 설계가 등장하기 전이라는 말이다. [5] 물론 무거우면 느려지는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무엇으로 움직이느냐의 문제이다. [6] 중유보일러는 영국이 트라이벌급 구축함에 처음 적용했고 주력함에 적용하는 것은 그보다 뒤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에서 처음 적용되었다. [7] 대표적인 예로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디모인급 중순양함이 있다. 실제 두 함급은 배수량차이가 제법 나지만 함의 동력원이 낼 수 있는 출력은 같다. 하지만 디모인급은 선체를 잘 가다듬은 결과 볼티모어급 수준의 최고속력을 가지게 되었다. 단 추중비는 차이가 나긴 한다. [8] 실제 네덜란드는 드레드노트를 개발한 나라중 하나지만 당시 국제정치 사정이 좋지 못해서 보유를 포기했다. [9] 이게 바로 주력함을 축소한 해방함이다. 1940년에 건조하려 하였으나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취소되었다. 무장은 28cm 3연장 포탑 9기인데, 바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을 더 작고 가벼운 함선으로 축소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프랑스의 됭케르크급 전함을 참고하고 싶었지만, 프랑스가 기술제공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함선의 최대속력은 30노트가 넘을 것으로 보았으며 장갑은 대략 9인치 수준이었다. [10] 영국에서 건조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이 구매했다. [11] 노르웨이 침공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군함이었다. [12] 무장이 15cm 단장포 10문으로 경순양함 수준인 것이 특징이다. [13] 실제 독일은 도이칠란트급 전함을 건조하기 전까지 함선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참고로 도이칠란트급은 독일의 마지막 프리드레드노트이다. [14] 러일전쟁때 참가했지만 쓰시마 해전때 1척 격침되고 2척이 나포되었다. [15] 나중에 모나르히급을 대체하기 위해 에르자츠 모르나히급 전함(Ersatz Monarch)급을 계획하기 되었다. [16] 화력은 톤부리가 200mm인데 반해서 라모트 피케가 155mm로 라모트 피케한테 불리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톤부리는 고작 2문인데 반해서 라모트 피케는 8문이기에 그 부족한 구경을 수로 메울수가 있기 때문에, 결국 톤부리가 우위를 점하기가 힘들다. [17] 중국이나 호주보다도 길다. 그러나 해안선이 아니라 영해선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게 긴 편은 아니다. [18] 구축함은 함장으로 소좌가 임명되며 구축대를 결성해야 군함으로 취급되었다. [19] 이때문에 시무슈형 쿠나시리를 보고 작은 배로 오인한 하츠하루형 구축함 네노히가 왜 함대함 경례 안하냐고 무전 날렸다가 쿠나시리란 말에 데꿀멍 해버린 일화가 존재한다. [20] 일단 비싸다. 어뢰 한발이 전투기 한대 값과 맞먹었다. [21] 당시 미 잠수함이 베테랑 에이스들 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