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각의 역대 전쟁 범죄 인정 사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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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 <colbgcolor=#f5f5f5,#2d2f34> 고노 담화 |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 |
1995년 | 무라야마 담화 |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 |
1998년 |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 식민지 지배의 가해책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 |
2005년 | 고이즈미 담화 | 무라야마 담화 재확인 및 계승의지 천명 | |
2010년 | 간 담화 | 한일병합의 강제성,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에 대해 인정과 사죄 | }}}}}}}}} |
1. 개요
村山談話 (むらやまだんわ). 일본 81대 총리인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1995년 8월 15일 발표한 성명. 일본 현직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한 최초의 사례이다. 정식명칭은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戦後50周年の終戦記念日にあたって)>이다.2. 상세
내각 회의 결정에 근거해 일본이 태평양 전쟁 이전이나 전쟁 중에 행했다고 생각되는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이는 내각 회의의 결정을 거친 담화로, 무라야마 개인의 사적인 견해가 아닌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이다.일본 제국의 패망 50년 후 일본의 총리가 일본의 전쟁범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한 일례로 손꼽히고 있다. 무라야마가 일본 총리 중에선 유이한 일본사회당 출신 총리여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당시 사회당은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당시 외무대신 또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유명한 고노 요헤이였다. 하여간 시기상 묘하게 패전 50주년에 내각 차원에서의 뜻깊은 명문이 나왔다.
현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와 더불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후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아베 신조 등 우익 성향의 총리들도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는 무라야마 담화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라야마 담화 10년 뒤 나온 2005년 고이즈미 담화 역시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재임기간 해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서 물의를 빚은 고이즈미의 행보를 떠올려보면, 고이즈미의 양면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1]
2013년 4월 22일, 아베가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한국과 중국 등의 피해국에서 폭풍같이 까이기도 했다. 이후 아베 정권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담화 등을 보면 사실상 계승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 후, 2020년에 '신(新) 무라야마 담화'를 공개했다. #
3. 전문
지난 대전(大戦)이 종말을 고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그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되신 내외의 많은 분들을 상기하면 만감에 가슴이 저미는 바입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늘날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주신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의 여러 이웃나라, 미국, 유럽 국가들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해야 합니다. 특히 이웃나라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아시아의 여러 이웃나라와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보며 인류 사회의 평화와 번영으로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 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패전 후 일본은 불타버린 폐허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늘날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랑이며 그것을 위하여 기울인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영지(英知)와 꾸준한 노력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경의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내주신 지원과 협력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의 여러 이웃나라, 미국, 유럽 국가들과의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우호관계를 구축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은 평화롭고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자칫하면 이 평화의 존귀함과 고마움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해야 합니다. 특히 이웃나라의 국민들과 협조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확고히 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 나라와의 사이에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특히 근현대에 있어서 일본과 아시아의 여러 이웃나라와의 관계에 관한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각 국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하여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는 평화우호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전후 처리문제에 대하여도 일본과 이들 나라와의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하여 저는 앞으로도 성실히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보며 인류 사회의 평화와 번영으로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협조를 촉진하고 그것을 통하여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핵무기의 궁극적인 폐기를 지향하여 핵확산금지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간요(肝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이며 희생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의지하는 데는 신의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 기념할 만한 때에 즈음하여 신의를 시책의 근간으로 삼을 것을 내외에 표명하며 저의 다짐의 말씀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先の大戦が終わりを告げてから、50年の歳月が流れました。今、あらためて、あの戦争によって犠牲となられた内外の多くの人々に思いを馳せるとき、万感胸に迫るものがあります。
敗戦後、日本は、あの焼け野原から、幾多の困難を乗りこえて、今日の平和と繁栄を築いてまいりました。このことは私たちの誇りであり、そのために注がれた国民の皆様1人1人の英知とたゆみない努力に、私は心から敬意の念を表わすものであります。ここに至るまで、米国をはじめ、世界の国々から寄せられた支援と協力に対し、あらためて深甚な謝意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アジア太平洋近隣諸国、米国、さらには欧州諸国との間に今日のような友好関係を築き上げるに至ったことを、心から喜びたいと思います。
平和で豊かな日本となった今日、私たちはややもすればこの平和の尊さ、有難さを忘れがちになります。私たちは過去のあやまちを2度と繰り返すことのないよう、戦争の悲惨さを若い世代に語り伝え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くに近隣諸国の人々と手を携えて、アジア太平洋地域ひいては世界の平和を確かなものとしていくためには、なによりも、これらの諸国との間に深い理解と信頼にもとづいた関係を培っていくことが不可欠と考えます。政府は、この考えにもとづき、特に近現代における日本と近隣アジア諸国との関係にかかわる歴史研究を支援し、各国との交流の飛躍的な拡大をはかるために、この2つを柱とした平和友好交流事業を展開しております。また、現在取り組んでいる戦後処理問題についても、わが国とこれらの国々との信頼関係を一層強化するため、私は、ひき続き誠実に対応してまいります。
いま、戦後50周年の節目に当たり、われわれが銘記すべきことは、来し方を訪ねて歴史の教訓に学び、未来を望んで、人類社会の平和と繁栄への道を誤らないことであります。
わが国は、遠くない過去の一時期、国策を誤り、戦争への道を歩んで国民を存亡の危機に陥れ、植民地支配と侵略によって、多くの国々、とりわけアジア諸国の人々に対して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ました。私は、未来に誤ち無からしめんとするが故に、疑うべくもないこの歴史の事実を謙虚に受け止め、ここにあらためて痛切な反省の意を表し、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この歴史がもたらした内外すべての犠牲者に深い哀悼の念を捧げます。
敗戦の日から50周年を迎えた今日、わが国は、深い反省に立ち、独善的なナショナリズムを排し、責任ある国際社会の一員として国際協調を促進し、それを通じて、平和の理念と民主主義とを押し広め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同時に、わが国は、唯一の被爆国としての体験を踏まえて、核兵器の究極の廃絶を目指し、核不拡散体制の強化など、国際的な軍縮を積極的に推進していくことが肝要であります。これこそ、過去に対するつぐないとなり、犠牲となられた方々の御霊を鎮めるゆえんとなると、私は信じております。
「杖るは信に如くは莫し」と申します。この記念すべき時に当たり、信義を施政の根幹とすることを内外に表明し、私の誓いの言葉といたします。
敗戦後、日本は、あの焼け野原から、幾多の困難を乗りこえて、今日の平和と繁栄を築いてまいりました。このことは私たちの誇りであり、そのために注がれた国民の皆様1人1人の英知とたゆみない努力に、私は心から敬意の念を表わすものであります。ここに至るまで、米国をはじめ、世界の国々から寄せられた支援と協力に対し、あらためて深甚な謝意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アジア太平洋近隣諸国、米国、さらには欧州諸国との間に今日のような友好関係を築き上げるに至ったことを、心から喜びたいと思います。
平和で豊かな日本となった今日、私たちはややもすればこの平和の尊さ、有難さを忘れがちになります。私たちは過去のあやまちを2度と繰り返すことのないよう、戦争の悲惨さを若い世代に語り伝え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くに近隣諸国の人々と手を携えて、アジア太平洋地域ひいては世界の平和を確かなものとしていくためには、なによりも、これらの諸国との間に深い理解と信頼にもとづいた関係を培っていくことが不可欠と考えます。政府は、この考えにもとづき、特に近現代における日本と近隣アジア諸国との関係にかかわる歴史研究を支援し、各国との交流の飛躍的な拡大をはかるために、この2つを柱とした平和友好交流事業を展開しております。また、現在取り組んでいる戦後処理問題についても、わが国とこれらの国々との信頼関係を一層強化するため、私は、ひき続き誠実に対応してまいります。
いま、戦後50周年の節目に当たり、われわれが銘記すべきことは、来し方を訪ねて歴史の教訓に学び、未来を望んで、人類社会の平和と繁栄への道を誤らないことであります。
わが国は、遠くない過去の一時期、国策を誤り、戦争への道を歩んで国民を存亡の危機に陥れ、植民地支配と侵略によって、多くの国々、とりわけアジア諸国の人々に対して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ました。私は、未来に誤ち無からしめんとするが故に、疑うべくもないこの歴史の事実を謙虚に受け止め、ここにあらためて痛切な反省の意を表し、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また、この歴史がもたらした内外すべての犠牲者に深い哀悼の念を捧げます。
敗戦の日から50周年を迎えた今日、わが国は、深い反省に立ち、独善的なナショナリズムを排し、責任ある国際社会の一員として国際協調を促進し、それを通じて、平和の理念と民主主義とを押し広め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同時に、わが国は、唯一の被爆国としての体験を踏まえて、核兵器の究極の廃絶を目指し、核不拡散体制の強化など、国際的な軍縮を積極的に推進していくことが肝要であります。これこそ、過去に対するつぐないとなり、犠牲となられた方々の御霊を鎮めるゆえんとなると、私は信じております。
「杖るは信に如くは莫し」と申します。この記念すべき時に当たり、信義を施政の根幹とすることを内外に表明し、私の誓いの言葉といたします。
4. 반응
4.1. 한국
한국에선 발표 당시 기준으론 그나마 제대로 된 사과 중 하나로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고, 반대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는 견해도 있었다. 특히 일본어 특유의 절제적 어조가 좀 더 직설적인 한국인의 언어 감각으로 보기에는 영 미지근하게 느껴져서 그런 점도 있고, 이 담화가 어디까지나 도의적 책임만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무라야마 개인은 직접 전쟁을 겪은 일본 좌익 계열 인사인 만큼 진심어린 사과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있지만, 도의적 책임으로 일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자민-사회당 연립 정권에서 나온 담화라 무라야마 개인의 성향을 떠나 좌우의 여러 목소리가 담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그 외에도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遠くない過去の一時期)' 같은 애매한 표현이 있어, 식민지배와 전쟁이 대체 언제를 가리키는 건지 해석이 갈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식민지배까지 사과를 하는 것인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침략 전쟁만을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것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식민지배'나 '침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식민지 관련 첫 정부 공식 사과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2]
당시 경향신문에서는 천황의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보상 요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는 다른 목적을 가진 '형식적 반성' 아니냐고 비판했다. # 한편,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아키히토 천황의 '통석의 염' 발언을 한 사례처럼 사죄로 번역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과로 번역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일부 논란이 있었다. #
무라야마 총리는 이후 일본 의회 질의 과정에서 국권강탈이 정치적, 도의적 평가와 별개로 법적으로는 유효하게 체결된 것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으나, 이후 11월 19일에 다시 망언이었다고 사과했다. 1 2 3 다만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도 국권강탈이 불법이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의 의견을 요약해보면 제국주의 시절 불평등 조약이었고 식민지배가 당시 일본의 명백한 잘못이었다고 인정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법적으론 효력이 있었다는 주장인 듯하다. 사실 대한민국내에서도 민사 소송 등을 보면 어떻게 저런걸 인정해주냐 싶은 것도 재판관 성향에 따라 계약은 계약이니 법적인 효력은 인정해줘야 되지 않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류의 주장인 듯하다.[3][4]
21세기 들어선 세월도 많이 흘렀고, 다른 담화들도 발표되면서 내용을 일일이 세세하게 따지기보단 그래도 총리가 사과했다는 대승적 측면에서 국내 언론 등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편으로 보인다. 다만 고노 담화 등에 비하면 언론에서도 언급 빈도 자체가 꽤 적은 편이라 담화의 인지도 자체가 떨어지는 문제는 있다.
4.2. 중국
중국에서는 이 담화를 통해 난징 대학살의 부정이 용납되지 않는 원칙이 이어져 내려왔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日本政府称南京屠杀不可否认.5. 외부 링크
[1]
호사카 유지 교수는 "고이즈미의 성향 자체는 리버럴인데, 그가 기반을 두고 있는 세력이 (아베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 라인이라 우익적 행동 역시 제법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가 현역 시절 소속되어있던 파벌 또한 기시 노부스케의 파벌에서 파생된
세이와 정책연구회로, 인원수가 많아서 성향이 다양했다곤하나 자민당 내에서 유일한
보수방류 파벌이었다.
[2]
2010년에 발표한
간 담화는 확실하게 1910년 이후의 조선 식민 지배를 사과했다.
[3]
이후 일본 정부도 이런 견해와 크게 입장이 다르진 않아보이는데, 그러다보니 도의적 보상과 법적 배상 사이에서 한일 양국 분란이 계속되는 측면도 있다. 한편, 이에 대해 다른 나라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2001년 열린
유엔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에선 식민 지배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구 식민지배국이 막상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요구에는
반발하였고, 끝내 식민 지배의 법적 책임은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 이스라엘을 인종차별국가로 규정하려는 중동국들의 움직임에 반발해 이 행사가 잘못된 대립과 반유대주의를 담고 있다며 대표단을 철수했다.) 사실 법적 책임 인정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왜곡이 활발해진 측면도 있는 것을 볼 때(물론 그렇다고 역사왜곡이 옹호되는 것도 아니지만), 무라야마의 행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있다. 실제 당시 무라야마는 사회-자민 연립 정권의 총리였다.
[4]
이는 전후 세계 질서를 지금도 상당수는 과거 제국주의 열강 출신국들이 주도하고 있고, 반대로 이들 국가들에게 피해를 본 식민지 출신 국가들 중에선 한국과 중국, 인도 등 일부 특수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드물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나마도 중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큰 나머지 한국처럼 전 국토를 장악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보다는
중일전쟁에서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고, 한국은 아직까지는 지속적으로 일본에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삼각연합의 일원으로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라는 분위기 속에 일본에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 역시 과거 영국의 식민지 출신이기는 하나, 지금은 혈맹을 넘어 미국의 동생이고 또 애초에 영국 출신이 많았던 점 등 이런저런 이유로 논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