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겐 はだしの ゲン | Barefoot G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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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285c6,#5285c6><colcolor=#ffffff> 장르 | 역사, 전쟁, 평화 |
작가 | 나카자와 케이지 |
출판사 |
초분샤,
슈에이샤, 호루푸출판 아름드리미디어 |
연재처 |
주간 소년 점프 (1973~1974) 시민 (1975~1976) 문화평론 (1977~1980) 교육평론 (1982~1987) |
연재 기간 | 1973년 ~ 1987년 |
단행본 권수 |
10권 (1987. 03. 11. 完) 10권 (2002. 07. 27. 完) 5권 (2024. 03. 05.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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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화가 ' 나카자와 케이지'[1]가 본인의 경험담과 실화를 토대로 창작한 반전/ 평화 만화.[2] 해당 작품의 기반은 1968년 <만화 펀치>에 발표한 '검은 비를 맞으며'[3]이다.주인공인 소년 나카오카 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만화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파괴되기 직전의 히로시마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이후까지 스토리가 이어진다.
2. 줄거리
패전이 다가오는 히로시마의 마을, 식량난으로 굶는 아이들. 사람들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나카오카 가문은 가난해도 국민학교 2학년 겐 형제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전쟁에 비판적인 아버지의 언동 때문에 이웃에서는 소외되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
그 날」이 왔다…….
아마존재팬 소개글 #
아마존재팬 소개글 #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은 이제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군국일파인 나치와 파시스트는 자멸하고 항복하였다. 하지만 일본제국은 아직도 발악하면서 의미 없는 소모전을 감행하고 국민들에게 옥쇄를 강요하는 등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다.
히로시마 내 작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학생인 나카오카 겐. 항상 맨발에 게다를 신고 다녀 맨발의 겐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에 매우 비판적인 인물로 제국 내 선전의 실상인 '의미 없는 소모전을 성전이라 여기는 수뇌부의 한심한 태도'와 '뿌리깊은 차별의식'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여 제국의 미움을 사고 있다.
겐의 운명이 바뀐 것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시작되고... 겐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며 가족들도 잃게 된다.
3. 발매 현황
작품이 유명하다보니, 일본에서는 상당히 많은 판본이 있다. 초분샤판, 슈에이샤판, 문민사판, 스이오우샤판, 중앙공론사판, 소설판 등이 있다. 2020년에는 킨노호시사에서 7권짜리 완전판이 나오기도 했다. 초분샤에서 양장본으로 만든 10권짜리 애장판과 중앙공론사에서 만든 3권짜리 애장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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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10권(초분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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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장판 3권(중앙공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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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판 7권(킨노호시사) |
세계 각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만화라,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영어판, 프랑스어판, 독일어판, 이탈리아어판, 한국어판, 러시아어판, 스페인어판, 인도네시아어판, 태국어판, 에스페란토판, 노르웨이어판, 튀르키예어판, 폴란드어판, 핀란드어판, 베트남어판, 싱할라어판 등으로 번역됐다. 1976년에는 평화 봉사 단체인 프로젝트 겐이 이 만화를 영어로 번역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일본 만화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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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는 중국어판이 대만에서 발매됐다. 이로서 24개의 언어로 번역된 만화가 됐다. # 중국에서의 출판도 추진중이라고 한다. #
3.1. 일본어판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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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05월 | 1983년 01월 | 1983년 01월 | 1983년 01월 | 1983년 01월 |
6권 | 7권 | 8권 | 9권 | 10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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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01월 | 1983년 01월 | 1983년 01월 | 1984년 12월 | 1987년 03월 |
3.2. 한국어판
2024년 3월 출시된 소장본 (총 5권)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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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10권이었던 책을 두 권씩 붙여 5권으로 출시하여 소장성을 높였다. 종이책만 판매 중이며 아직 e-book은 없다.
※ 기존 구판의 표지는 아래 펼치기 접기 틀을 참조.
- [ 2000년 구판 (총 10권) 보기 ]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5285c6><table bgcolor=#fff,#111><rowbgcolor=#5285c6><width=15%> 1권 ||<width=15%> 2권 ||<width=15%> 3권 ||<width=15%> 4권 ||<width=15%> 5권 ||
2000년 08월 10일 2000년 08월 10일 2001년 03월 10일 2001년 03월 10일 2002년 04월 01일 6권 7권 8권 9권 10권 2002년 04월 01일 2002년 06월 20일 2001년 03월 10일 2002년 07월 27일 2002년 07월 27일
한국어 번역은 재일교포 2세인 김송이가 맡았는데 조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고유명사를 한국인에게 익숙한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및 한국의 번역 관행과 상당히 다르게 번역해 이질감을 주는 부분도 있다.- 츠(ツ)나 스(す)처럼 보통 ㅡ로 표기하는 이름들을 쭈나 수처럼 ㅜ로 표기했다.
- 원문의 욕설을 "똥할망구", "똥할아범"처럼 직역했다.
-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清水寺)를 기요수사로 오역.
- 2권 이후 통화 단위인 ' 엔' 을 ' 원' 이라고 한다. 단,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은행권 엔을 '원' 이라고 읽었으니[4] 이건 오히려 어떤 면에선 고증이 맞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된 것은 2000년이지만 번역자는 1995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꼭 한국어로 번역해 학생들이 읽도록 하고 싶었다고 한다.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처음 한국에서 출간하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맨발의 겐>이 담고 있는 뜻을 공감해 주었고, 출간 이후 많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었다고 한다. 신영복 교수가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
작가 나카자와는 한국어 번역판을 가장 먼저 내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어느 번역본보다 먼저 내고 싶었다. 스태프를 시켜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번역을 의뢰하고자 했으나 맡아 주는 이가 없었다. '포기해야겠구나' 싶었을 때, 번역을 하겠다는 재일 한국인이 찾아와 너무 기뻤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져 있지 않은 때라, 한국에서의 출판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게다가 주제가 원폭이었으니. 도중에 책을 출판하지 못하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비핵반전자들이 적극적으로 출판사의 등을 떠밀어 나올 수 있었다.
10권이 완역되던 이듬해 서울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어 방문했는데, 현장에서 만난 학생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만화책은 학교에 가져가면 안 되는데 계속 읽고 싶어서 가져갔어요.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들켰거든요. 그런데 몰수는커녕 좋은 책 읽고 있다고 칭찬해 주시고 책도 그냥 돌려주셨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라는. 학생 중에는 그 책을 3번이나 읽은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
전자책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
3.3. 영어판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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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rtoon Story of Hiroshima | The Day After | Life After the Bomb | Out of the Ashes | The Never-Ending War |
2004년 09월 1일 | 2004년 09월 10일 | 2005년 09월 30일 | 2005년 10월 30일 | 2008년 02월 22일 |
6권 | 7권 | 8권 | 9권 | 10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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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the Truth | Bones into Dust | Merchants of Death | Breaking Down Borders | Never Give Up |
2008년 02월 22일 | 2009년 03월 01일 | 2009년 03월 01일 | 2009년 11월 30일 | 2010년 02월 01일 |
2000년대에는 미국에서 새로운 번역본으로 나왔다. 페이퍼백 판본과 그래픽 노블처럼 하드커버로 고급스러운 판본으로 나왔다.
4. 특징
4.1. 내용과 주제
원폭은
지옥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 원폭을 초래한 전쟁은, 더 무섭다. 「맨발의 겐」에서는, 그 전쟁의 진짜 모습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전력을 다해 「겐」을 그렸다.
― 나카자와 케이지, 1980년 8월 1일 초분샤 발행 「그림책 맨발의 겐」 저자 후기에서 #
― 나카자와 케이지, 1980년 8월 1일 초분샤 발행 「그림책 맨발의 겐」 저자 후기에서 #
한국 독자들에게도 발견되어 기쁘다. 원폭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핵과의 전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또 핵과 전쟁에 대한 만화일 뿐 아니라
보리의 의미처럼 밟혀도 밟혀도 굴하지 않는 삶에 대한 만화로 읽힐 수 있길 바란다. 읽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꼭꼭 많이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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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자와 케이지, 한국의 인터뷰에서
― 나카자와 케이지, 한국의 인터뷰에서
일제의 어리석은 전쟁과 원폭의 참상을 비판하고, 그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일본 만화의 대표적인 명작 중 하나다. 일본에서 맨발의 겐은 원폭과 전쟁에 대한 평화 학습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이 한 번쯤 읽어봤거나 들어본적이 있는 스테디셀러다. 소년지에 연재된 작품이지만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교훈적인 메시지들을 함께 담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메세지는 거의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점철되어 있다.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는 이 작품을 반전만화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밟혀도 밟혀도 꿋꿋한 싹을 틔우는 보리가 되어라'라는 '산다는 것'에 대한 긍정의 의미를 담아 ' 인간애'를 가장 큰 테마로 그렸다고 한다.[5]
작중 초반 나오는 나카오카 겐의 아버지는 일본제국의 제국주의와 전쟁을 반대하여[6] 마을 사람들에게 ' 비국민'이라는 야유를 받으면서 살았다거나 일제 치하 조선인들이 처했던 문제,[7] 패전 이후의 막장이 된 일본이나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와 미군의 횡포[8] 등 여러 국면에서 당대 일본의 상황과 문제들을 철저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만화지만, 재미를 잡은 만화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뛰어나기도 하고, 몰입감과 훌륭한 연출,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작품 곳곳마다 작가 특유의 개그를 볼 수 있다. 또한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질 때까지, 즉 전쟁 전(戰前)의 일과 특히 원폭 투하 직후의 참상이 적어도 전체의 절반 이상을 사용해 그려졌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원폭이 떨어지기까지가 전체의 10분의 1의 볼륨이다. 패전을 알리는 옥음방송 장면조차 전체의 4분의 1을 넘은 부분이다. 즉 이 만화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전후 부흥기의 일이다.
물론 이 만화가 전편 통틀어서 담아내는 내용은 '원폭 피해가 얼마나 두고두고 비참한 영향을 미치는가'라고 하는 테마이며, 반전 사상을 관철한 겐의 부친을 비국민이라고 계속 불러 박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반전 정치가'인 척하고 현회 의원이 되는 사메지마 덴지로라고 하는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렸다. 한마디로 반전/평화에 대한 근간, 천황제에 대한 의심, 다양한 차별과 압도적인 빈곤 등 묵직한 사이드 스토리로 가득 차 있다.
4.2. 표현
기자: '만화'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카자와 케이지: 어린아이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미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만화는 전쟁과 핵에 대해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
나카자와 케이지: 어린아이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미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만화는 전쟁과 핵에 대해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
병사가 중국인 남성의 목을 반 장난삼아 잘라낸다.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그 속에서 아기를 끌어낸다…. 지금부터 30년 전, 남편이 이 장면을 그렸을 때 나도 충격을 받아 “너무 잔혹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남편의 대답은 “깨끗한 전쟁이란 없다. 전쟁의 잔혹한 실태를 알리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전쟁이라는 것이 전달되지 않는다”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전쟁의 공포를 접하고 어른이 되어 전쟁을 막을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으면 한다는 것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은 남편의 생각이었다.
― 나카자와 미사요 (나카자와 케이지의 배우자) #
― 나카자와 미사요 (나카자와 케이지의 배우자) #
만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소년지 연재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묘사가 꽤 직설적이고 잔인한 편이다. 압권은 원자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묘사인데, 원자폭탄이 폭발하며 1억 8천만도에 가까운 열기로 인해 사람들의 살이 타다 못해 녹아내려서 눌러붙을 정도의 끔찍한 화상을 당한 모습이 그대로 나오며, 폭발의 충격파로 인해 깨져나간 유리 파편들이 몸에 온통 박혀버린 모습, 내장이 흘러나온 모습 등을 그대로 묘사했고 이런 몰꼴로도 아플텐데 물을 찾으며 물에 몸을 던져도 그 물도 뜨거워서 죽는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물론 이는 자극적인 전개를 위해서 일부러 고어적인 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 상황이 그만큼 끔찍했던 것 뿐이며, 작가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참상을 다큐멘터리적인 시점에서 담담하게 그려낸 것이다. 사실상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가 직접 겪은 사건들을 그린 자전적인 만화라서 적나라한 현실 묘사가 그대로 들어간 것.[9] 그 외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난 직후 미쳐돌아가는 일본 사회의 묘사 또한 매우 적나라한데, 원폭 후유증에 대한 묘사 뿐만 아니라 강도, 강간, 살인, 고문, 마약 등의 범죄들이 직설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르포르타주로서는 매우 훌륭하나, 어쨌든 잔인함과 폭력의 수위가 꽤 높은 것도 사실이므로, 과연 이 작품을 어린이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논란도 제법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잔인하다보니 한국 일부 독자들은 "이거 완전 일본은 피해자다."라고 호소하는 만화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원인 중 하나다.
사실 한일 양국 공통으로 중학교 같은 곳에 제법 비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초등학교 도서관에도 이 작품이 비치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있다 보니, 이 때문에 "어렸을 때 맨발의 겐을 생각 없이 집어들었다가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는 식의 경험담들이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2017년 일본에서 조사한 ' 명작이지만 보고 나면 트라우마가 생기는 만화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10] # 성인 기준으로도 상당히 잔인한 편으로 비위가 상할 수 있다.
4.3. 연재 당시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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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당시의 나카자와 케이지 |
기자: <맨발의 겐>을 그릴 당시만 해도 천황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글, 또는 원폭을 다룬 글이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텐데.
나카자와 케이지: 나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원폭을 당했다. 원폭이 떨어진 날, 부친이랑 누님, 동생들은 다 타서 죽고, 그때 살아남은 모친은 그 뒤 소화 41년(1966)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치른 뒤 재장에 뼈를 받으러 갔더니, 몽땅 타버려 뼈 조각 하나 남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원폭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원폭의 위험성을 온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곧 원폭 이후 낙진으로 검은 비가 내렸던 히로시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첫 작품 <검은 비를 맞아서>(1968)를 썼다. 큰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당한 뒤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을 때까지 반년이나 걸렸지만, 좋은 편집장을 만나 출판하게 됐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출판사는 당시 주로 에로틱한 내용의 책을 내고 있었다. #
나카자와 케이지: 나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원폭을 당했다. 원폭이 떨어진 날, 부친이랑 누님, 동생들은 다 타서 죽고, 그때 살아남은 모친은 그 뒤 소화 41년(1966)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치른 뒤 재장에 뼈를 받으러 갔더니, 몽땅 타버려 뼈 조각 하나 남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원폭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원폭의 위험성을 온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곧 원폭 이후 낙진으로 검은 비가 내렸던 히로시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첫 작품 <검은 비를 맞아서>(1968)를 썼다. 큰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당한 뒤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을 때까지 반년이나 걸렸지만, 좋은 편집장을 만나 출판하게 됐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출판사는 당시 주로 에로틱한 내용의 책을 내고 있었다. #
1973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1년간 연재했다가 이후 좌파계 시사잡지《시민》, 일본공산당 기관지《문화평론》, 일본교직원조합 기관지《교육평론》등의 여러 재야잡지를 거치면서 1987년까지 연재되었다. 때문에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담은 만화가 점프에서 연재됐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한다. 당시에도 점프는 지금과 같은 앙케이트 지상주의였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독자의 평판도 찬반양론으로 나눠졌고, 반드시 인기가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작품을 읽은 편집장은 울면서 "더 그려줘"라고 말하며 추가 집필을 의뢰했다고 한다. # 이 작품은 당시 점프 편집장이 신경 써서 그리게 한 적도 있었다고 하며, 예외적으로 이 편집장이 이동할 때까지 연재를 계속하게 했다고 한다. 덧붙여서 이 편집장은 당시의 안보 투쟁 정세에서 사내에서의 좌편향 운동에는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기자: <소년점프> 편집장이 <맨발의 겐> 연재를 약속했을 때 심정을 소회하면?
나카자와 케이지: <소년점프>의 나가노 다다스씨는 '네가 쓰고 싶은 대로 페이지 수를 줄 거고, 또 쓰고 싶은 대로 연수를 줄 테니 마음 놓고 써봐라'고 했다. 그는 '<맨발의 겐>은 <소년점프>의 양심을 걸고 연재하겠다'고 했다. 주마다 작품을 써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연재 후 <소년점프> 애독자 수가 훨씬 불어나, 결과적으로 소년잡지 가운데 제일 많은 부수를 자랑하게 됐다. 보람 있게 일한 날들이었다. #
나카자와 케이지: <소년점프>의 나가노 다다스씨는 '네가 쓰고 싶은 대로 페이지 수를 줄 거고, 또 쓰고 싶은 대로 연수를 줄 테니 마음 놓고 써봐라'고 했다. 그는 '<맨발의 겐>은 <소년점프>의 양심을 걸고 연재하겠다'고 했다. 주마다 작품을 써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연재 후 <소년점프> 애독자 수가 훨씬 불어나, 결과적으로 소년잡지 가운데 제일 많은 부수를 자랑하게 됐다. 보람 있게 일한 날들이었다. #
1975년 5월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원고를 기초로 초분샤(汐文社)에서 출판된 전4권의 단행본은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단행본 4권까지의 부분이 주간 소년 점프에서 1년 이상 연재가 이어진 것은 1970년 전후 시대 상황에서 사회성 있는 주제가 아이들에게 먹힌 것이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지만 1971년 당시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는 그라비아 페이지에 당시 뜨거웠던 나리타 투쟁을 취재해, 소년 행동대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당시의 정부나 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 비판적인 기사나 작품을 싣는 것은 출판사에 있어서는 위험도 있지만, 기회이기도 한 것이, 당시의 시대 상황이었다. '맨발의 겐'을 연재하기 앞서 나카자와는 1970년에 오키나와의 기지 문제를 테마로 한 '오키나와'를 연재하고 있는데, 이 때도 인기가 돌기 직전에 제동이 걸렸던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후 작가 나카자와와 점프 편집자의 정열 속에서 맨발의 겐은 태어났다.
연재 당시의 작가 나카자와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특히 '저속잡지'라고 하는 곳을 노렸습니다. 저속이라고 하는 것은, 저속이라고 하는 것 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것은 재미있는 만화입니다라고 아이가 읽어 줍니다. 읽고 뭔가 하나라도 원폭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말이죠, 예를 들어 '피카'라는 말이 원폭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그런 것이라도 좋습니다.
#
1968년에 창간된 주간 소년 점프는, 경합지에 비해 '저속잡지'로서 비판의 화살에 서는 일이 많은 잡지였다. 1971년에는 나가이 고의 ' 파렴치 학원'이 공격 대상으로 거론된 것을 시작으로, 소년 점프는 '부모가 자녀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만화 잡지'로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잡지였기에 나카자와는 전력을 기울여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단지, 연재 종료 후에 '맨발의 겐'은 인기가 없어서 그대로 잊혀져 버릴 것 같았다. 당시는 만화가 잡지 연재 후에 단행본화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되지 않은 시대였다. 또한 당시 정부에도 비판적인 '맨발의 겐'은 좀처럼 단행본화가 어려운 작품이었다. 이 때, 작품을 묻히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초분샤에서 기획을 만든 것이 평론가 이시코 쥰(石子順)이다. 1960년대부터 만화를 평론 주제로 다룬 선구적 업적이 있는 이시코는 정치적으로는 일본공산당계 문화인이었다. 그 관계로 당시는 일본 공산당계의 출판사인 '초분샤'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11]
이렇게 해서 1975년 5월에 '맨발의 겐'의 단행본은 출판되었지만, 전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일본은 만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엄청나게 강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맨발의 겐은 일본 공산당의 논단지 문화평론에도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단행본이 출간될 당시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반전과 평화, 정부 비판도 포함하는 맨발의 겐은 일본 공산당이나 주변에 몸담고 있는 좌파 인사들이 환영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만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속어를 말하거나, 여러가지 난폭한 표현이 많은 '맨발의 겐'은 출판사 고객층에는 전혀 팔리지 않고, 재고가 쌓여 갔다. 그런데 맨발의 겐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극우들이 싫어하는 좌익 만화'로 유명한 '맨발의 겐'이지만, 당시 맨발의 겐의 보급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공, 보수, 우파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좌, 우익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맨발의 겐을 알리기 위해 보급 운동에 참여했다. 보급 운동이 계속 진행되고 당시의 후지테레비 계열 낮방송 '3시의 당신'에서 맨발의 겐이 홍보 방송된다. 이때부터 출반사인 '초분샤'의 책 주문이 쇄도해 '맨발의 겐'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당시 세계적인 문학가 오에 겐자부로가 극찬을 하기도 했다. 작품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해 '맨발의 겐'의 보급을 앞장섰던 니시카와 우치(西河内)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맨발의 겐이 보급된 것은 작품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사상 차이에도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한 성과라고 할 수 있죠." #
4.4. 논평
기자: 일본에겐 피폭의 피해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한국은 전쟁이 종결돼 식민시대가 끝나게 됐다. 이런 점에서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갈지 모른다.
나카자와 케이지: 맞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 문제에서 한국인이 전쟁의 종식이나 해방의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 피폭에 대해서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한데 그 이전에 가해자라는 것을 항상 인식을 시켜주고 싶다. 일본은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해자였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다. 내 만화를 통해서 그러한 점을 인식시켜 주고 싶다.
― 한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
나카자와 케이지: 맞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 문제에서 한국인이 전쟁의 종식이나 해방의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 피폭에 대해서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한데 그 이전에 가해자라는 것을 항상 인식을 시켜주고 싶다. 일본은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해자였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다. 내 만화를 통해서 그러한 점을 인식시켜 주고 싶다.
― 한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
기자: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원폭 씬이 나오는 것도 의외로 늦습니다.
나카자와 미사요( 나카자와 케이지의 부인): 원폭이 투하되기 전에 일본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말만 해도 비국민 취급을 당하는, 그 시대의 무서움을, 일상생활의 부분으로부터 묘사하는 것으로 호소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
핵무기로 인한 민간인의 참상을 다룬 만화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핵을 투하한 미국이 나쁘다는 주제를 다루는 만화로 오해받기도 한다.[12]나카자와 미사요( 나카자와 케이지의 부인): 원폭이 투하되기 전에 일본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말만 해도 비국민 취급을 당하는, 그 시대의 무서움을, 일상생활의 부분으로부터 묘사하는 것으로 호소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
하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1화부터 과거 일본의 실태에 대해 명백하게 비판하고 있고 조선인 차별 등도 비판한다.[13] 후반에는 6.25 전쟁으로 인해 돈을 벌어 낄낄거리는 졸부를 보며 주인공이 분노하며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돈을 번다고 "너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다!"라며 그 졸부를 폭행하는 등 피해자 행세하는 만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핵을 투하한 미국이 나쁘다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책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오해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나 특정국가를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성향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만화의 작가가 쓴 자서전에서 드러나는 작가 본인의 생각을 읽다보면 말그대로 ‘어린나이에 가족을 잃게 만든 미국을 미워한다.’ 뿐이지 ‘고로 일본은 정당하다.’ 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중간 내용에서 일본계 미국인 장교가 진주만 공습을 언급하며 자업자득이라고 하자, 진주만에서는 죄 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느냐고 반문하지만 반대로 원폭에 죄 없는 민간인들이 수없이 죽었다고 피해자 코스프레하며 미군을 욕하는 일본인들에게는 난징학살 등을 언급하며 비판한다. 즉 이 만화는 어떤 행위든 학살은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 본인이 밝히기를 작가의 아버지는 반전 운동을 하다가 수용소에 수감되고 다른 일본인들에게 반국민(반역자) 취급당하며 일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단편적인 내용만 보면 그냥 피해자 타령하는 만화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보니, 일부에서는 나 원자폭탄 맞았음 징징 이러는 만화로 알려져서 이걸 읽던 학생이 교사에게 지적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14] 허나 이는 잘못된 오해로, 만화에선 대놓고 가장 큰 전쟁 범죄자는 천황인데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식의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즉, 단순히 일본 군부를 비판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에 동조하거나 침묵한 민간인들까지 얄짤없이 까대면서 비판한다[15].
기자: <맨발의 겐> 번역 과정에서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번역을 맡게 된 건가?
김송이[16](맨발의 겐의 번역자): 일본에서 출간된 원폭에 관한 작품들은 대부분 ' 일본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맨발의 겐>은 그렇지 않았다. 가해자였던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만화다. 번역을 하리라 마음을 먹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
김송이[16](맨발의 겐의 번역자): 일본에서 출간된 원폭에 관한 작품들은 대부분 ' 일본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맨발의 겐>은 그렇지 않았다. 가해자였던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만화다. 번역을 하리라 마음을 먹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
어째서
기미가요를 부르는거야? 난 못 불러. 아직도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다니! 난 천황은 질색이야. 왜 빌어먹을 놈의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냔 말야? (중략) 천황이 무모하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데 도장을 찍어서 일본 열도는 잿더미가 됐잖아. 이곳
히로시마나 나카가시는 원폭까지 맞아 삼백만이 넘는 시민들이 처절한 고통속에서 죽어갔어. 그뿐이 아냐. 천황을 위한답시고
중국이나
조선 등 아시아 각국에서 삼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잖아.
사람의 목을 재미 삼아 자르거나, 검술 연습으로 삼거나,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그 안에 있는 아기를 끄집어내거나,
여성의 성기에다 술병을 찔러 넣고 어느 만큼 들어가느냐 본다며 골반을 깨서 죽이거나, 우리 일본이 모조리 빼앗고 태워버리는
삼광작전이란 걸 했다는 소리를 듣고 난 구역질이 났어. 상상을 초월한 그런 참혹한 짓을 했다는 사실에 수치스러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구! 수천만 사람의 목숨을 거리낌 없이 빼앗는 걸 허용한 천황을 난 용서못해. 그러고도 지금껏 전쟁 책임을 지지 않고 태연하게 사는 천황은 절대 용서 못한다구. 그런데 기미가요를 불러? 그깟 노래는 없어야 해! 기미가요 따위는 국가가 될 수 없어!
작가의 오너캐인 나카오카 겐이 작중에서 한 대사. #
다만 미군에 대한 분노 역시 작중 포착되기에[17] 반미 만화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핵을 떨궈 민간인을 희생시킨 것도 모자라서 피폭자들을 실험체 취급하고, 아이들을 납치하여 간첩으로 만들어 써먹는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한 분노를 묘사하는 것조차 반미 아니냐고 하는 건 좀 과한 부분이 있다.[18] 게다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겐은 시종일관 이러한 일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와 천황을 원망한다. 또 작가는 미군이 전쟁 고아들을 불쌍하게 여겨 도움을 주는 장면 등은 또 그것대로 표현해준다.
즉 이러한 일들은 당시 일본이 겪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여과 없이 표현한 것이다. 거기다 실제로 위에서 있던 일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적이 있었음으로 없던 거짓을 날조로 만든게 아니다.작가의 오너캐인 나카오카 겐이 작중에서 한 대사. #
한편, 작 후반부에서 겐은 원폭이 없었다면 일본의 전쟁지도자들은 못이기는 전쟁을 계속 했을 것이나, 원폭의 위력을 알자 본인들도 히로시마, 나가사키인들과 똑같이 될까봐 두려워 황급히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회담을 (뒤늦게) 받아들인 거라는 말을 하는데, 즉 원폭의 일정 부분 활용성을 작가 역시 인지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작가 스스로가 원폭 피해자였기 때문에 원폭에 대한 원망 역시 쉽사리 떨쳐낼 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9] 대신 전쟁의 막을 내리게 해준 히로시마, 나가사키인들에게 사람들은 감사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사실 일제의 온국민 세뇌교육으로 인해 일제의 온갖 만행과 진주만 선제기습 등의 진실을 모르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살던 일반인들 입장에선 당연히 양키 개새끼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긴 했다. 후속 조치조차 미군 점령하에 거의 이뤄지지 않고 은폐되기 바빴으니...
허나 보면 알 수 있듯 절대로 핵무기를 사용한 미국만 나쁘다는 책은 아니며 그 이상으로 그 모든 문제의 근원에 대해서도 주저없이 비판을 하고 있다. 미국을 탓하는 주원인은 어디까지나 핵이며 그 이외의 부분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반미나 남탓이라기보다는 반핵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심지어 "이런 전쟁을 일으키다니 천황은 미쳤어!" 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며, 주인공이 핵과 전쟁 후 혼란으로 우리 가족이 이런 비참한 피해를 입었으니 최소한 천황에게 직접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울부짖는 장면도 나온다. 전범이야 그렇다 쳐도 연재 당시,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천황가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20]
그러나 덕분에 일본 극우들에게는 지금까지도 반일 만화라며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작품 곳곳에서, 반미를 외치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반전주의자들은 비국민으로 비난하던 우익들이, 종전 후에는 되레 친미주의자가 되어 심지어 일부는 자긴 과거 반전 운동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부를 쌓는 모습을 직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쌓은 부로 남을 돕긴커녕, 전후 야쿠자와 빌붙어 원폭 피해자들을 착취하는 악랄한 놈들도 등장한다. 심지어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긴 하지만 전쟁 책임을 군부와 고위관료층에게만 돌리려는 일본 국민들을 비판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작중 등장한 술집 주인이 '높으신 분들이 정치를 잘못해서 우리 민초들만 힘들다' 라는 투로 말하자, 술에 취해 있던 겐이 화가 나서 '전쟁이 시작됐을때는 일본이 세계를 지배한다면서 좋아라 전쟁을 찬양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국민이라며 핍박했으면서, 전쟁에 패배하니 이제와서 다 높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하는 거냐. 당신 같은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라고 거칠게 쏘아붙인다. 또한 10권에 나오는 식당아줌마의 경우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키면서 여자들이 피해 본다" 라는 투로 말을 하자, 겐의 여자친구가 "당신도 호국부인회 등에 들어가 자신의 남편이나 자식에게 깃발을 흔들며 영광스럽게 싸우다 죽어라 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며 제국주의 당시 자신들의 행동에 반성없이 패전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인냥 말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즉, 마냥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작품은 결코 아니며, 주변 사항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으므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후에 부활하는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도 곧잘 등장한다. 예를 들면 작 후반부엔 " 전쟁에 진 건 너네들처럼 나약하고 정신이 썩어빠진 놈들 때문"이라고 직원을 혼내거나 "내가 말레이 반도에서 전장을 누비던 사람인데 야마토 정신으로 다시 한 번 이 나라는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식으로 떠들어대는 군국주의 성향의 졸부도 등장한다. 허나 이 졸부는 잠시 일을 도와주던 겐과 다투게 되고 이후 겐은 일을 때려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이 졸부의 딸과 겐이 사귀다 딸이 원폭 후유증으로 인해 급사하자 그제서야 졸부는 정신을 차리고 지난날을 반성하며 겐을 후원해준다. 미국에 대한 비판은 사실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실행한 많은 일들에 맞춰져 있지 미국을 까면서 일본을 실드치는 행위는 전혀 없다. 예를 들면 일본국유철도 3대 미스터리 사건과 연결되는 레드 퍼지라든가 피폭자들에게 건강검진을 빌미로 원폭의 영향력을 조사하려 하는 미군정 군의관들이나 미군정 하에서 원폭 피해의 실상을 다룬 책에 출판 금지를 명하는 사실상의 언론 검열 등 사실상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살짝 각색한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의도적인 각색과는 별개로, 소소한 면에서 작가가 잘못 알고 다룬 부분은 있다. 가령 6권에서 인쇄소 사장이 친구에게 들었다는 몇몇 풍문들을 겐에게 들려주는데, 일례로 미군 포로들이 계속 아사하는 걸 보다못한 일본군 위생병이 뒷산에서 산마, 우엉 등을 캐내 먹기 쉽게 요리해 주었다가[21] 이후 재판장에서 나무 뿌리를 강제로 먹였다며 중형을 선고 받았고, 또 다른 병사는 부상당한 포로에게 불로 뜸을 해 줬다가 도리어 불고문을 당했다며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그런데 이것들은 인쇄소 사장이 들은 풍문임을 걸러들을 필요가 있고, 이런 것들은 일본의 우익들이 '사실 우리 일본에서는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줬는데 미국이 포로 학대했다고 억울하게 누명을 씌웠다.'라고 주장할 때 잘 써먹는 도시전설로 확증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22] 물론 작가가 대놓고 왜곡을 목적으로 이런 표현을 했을린 없고, "병사 개개인의 선행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폄하당했을 수도 있다" 정도의 표현이며 오히려 이러한 표현도 "피해자가 일본이다!" 가 아니라 "당신 패전국인 일본이 승전국인 미국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면 위험하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피해자 코스프레보다는 당시 행해지던 원폭피해자에 대한 억압과 언론탄압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6권~7권 사이에 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비슷한 입장이다.
사실 원폭 피해자의 경우 미국에 대해 개인적인 증오를 아예 갖지 말라 하는 것 자체도 무리한 요구다. 심지어 원폭 투하 당시 작가의 나이는 주인공 '겐'과 비슷한 7살 정도였고, [23] 오히려 성인에 비하면 제대로 된 사고나 판단이 불가능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균형있는 사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따름. 물론 작가도 시간이 지나며 좀 더 성숙한 시각을 가지게 되지만, '미국은 전혀 잘못이 없다'라고 하는 건 바꾸어 말하면 '원폭 투하는 옳았다'라는 소리가 되는데 이러면 애초에 만화 주제부터가 모순되게 된다. 원폭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은 일본의 과오와 원인 제공은 무시하고 원폭 투하만 까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만화에서는 시대상을 이성적으로 그려내며 개념 있고 균형 잡힌 반전주의를 잘 그려냈다는 점이 오히려 높게 평가할 만하며, 일반인의 시각에서 전쟁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았다.
한국은 일제의 직접적 피해자이므로 민감할 수밖에 없고,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가해자로서의 자신들을 숨기고 지금 이 순간의 우경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더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핵을 주장하며 원폭투하라는 행위를 전쟁범죄 행위로 규정해온 것은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좌파, 반전운동가, 평화주의자들에게 공감적으로 나타난 모습이다. 겉보기에 같아 보일지라도 실제 그 밑바탕에 깔린 이념은 극우파와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이나 나치 독일 등 추축국의 반인륜적인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고, 연합국 역시 제국주의적 각축장의 선수라는 점에서 떳떳할 것은 없다고 본다. 이는 근대 이후 이성의 시대라는 미명 하에 전세계에서 자행해온 학살과[24] 인종혐오/멸시감정의 연장선상인 것이며, 지금도 자본이라는 세련된 형태를 빌려서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이 주변부 국가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주장이 있다.[25] 어쨌건 일제를 임시 지배했던 미군정은 옛 일제 지배층을 용인하고 준군사조직인 자위대도 만들어 줬다. 미군정기 당시 인권탄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는 것이다. 결국 극우파들의 자기변호논리를 위한 원폭투하 비판논리와 진보, 반전운동가, 평화주의자들의 원폭투하 비판논리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것이므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 비판이 타자에게만 그치느냐, 자국에게까지 미치느냐를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점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만화의 작가 역시 아무리 반전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이며 반성적인 작품이라 하더라도 자기연민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데즈카 오사무나 오에 겐자부로, 카리야 테츠와 같이 평소부터 명백하게 일본의 군국주의시대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작가들조차 원폭 문제 등에 대해서는 미국에 대하여 일종의 분노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일제 치하 피해자였던 한국인에겐 이런 자기연민이나 옹호도 일부는 불쾌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덮어놓고 극우적 책임회피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원폭투하에 대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제국주의 침략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면 그것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자기 자신의 문제, 특히 자신이 상처입은 문제에 대해서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를 생각할 때 전반적으로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면 일부분 자기옹호나 연민이 드러나는 장면들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도 있었기에 원폭투하는 바다 건너 이야기만은 아니며, 한일 사이의 문제를 떠나 인류의 관점에서 보자면 원폭이 끔찍한 것 역시 맞다. 작품 전반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품에서 언뜻 드러나는 한계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만, 작정하고 일제와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작품은 언뜻 읽으면 개념작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모토카의 작품으로 제국주의 침략과 극우파를 옹호하는 측면이 엄청난 용이라거나, 정치적인 문제에서 끊임없이 극우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무라카미 류의 작품들보다 맨발의 겐이나 반딧불의 묘, 신 고지라, 개구리 중사 케로로 같은 작품에서 오히려 극우성이나 역사 왜곡 시비가 더 많이 일어난다. 결국 나쁜 놈을 솔직히 나쁜놈이라고 말하는 작품에서는 그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반성의 불충분함을 쉽게 짚어낼 수 있지만, 나쁜 놈을 극적으로 미화한 작품들의 경우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나쁜 놈이 나쁜 놈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어쨌든 작품 자체가 아무래도 원폭 피해자들의 끝모를 비참함과 분노에 대한 묘사가 많으니 미국의 원폭은 너무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26] 심지어 당시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처지도 이야기하다 보니까 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간단하게 작품에서 묘사되지 않은 당시 세계사를 요약하자면 일본이 종전을 해야만 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전쟁 의지를 전혀 꺾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에게 입은 피해도 상당해서 소이탄까지 뿌려버리자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면 핵을 떨구기 전까지도 미국 내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나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핵을 폭발시킬 것을 결정하고도 항복 권유를 했었으나 아무 소용 없었다. 따라서 원폭투하는 일본제국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 볼 수도 있다.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참조). 최소한 원폭 피해자로선 미국이든 일본이든 다 똑같은 놈들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맨발의 겐은 피폭자로서의 울분을 토하는 데에 집중했을 뿐이다. 다만 미국이 핵무기 후보로 일본 수도인 도쿄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그 시점의 도쿄는 이미 도쿄 대공습으로 도시 전체가 가루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맨해튼 계획은 극비 중의 극비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는 의회의 감시를 받지 않고 비밀리에 엄청난 예산을 쓴 '결과물'을 미국 의회와 국민들에게 명확히 보여줘야만 했다. 그래서 폭격이 없었던 중소도시들이 후보지로 올랐고 그 중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결과적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심지어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의 경우 원래는 고쿠라에 떨어질 계획이었다.
결국 이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일본인이 아닌 '원폭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만화에서 일본 정치 수뇌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잠시 국적은 떼고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 속에서 6.25 이후 한국인들의 삶과의 공통점[27]도 드문드문 엿볼 수 있다. 민족주의적인 관점보다는 그냥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작품을 보면 시대를 초월해서 던지는 메세지가 많다. 특히 8권에서 반전주의자인 겐의 학교 선생님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정치를 너희가 잘 감시해야 하며, 잘못된 정치 조짐이 보인다면 너희가 일어서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주 쉽고도 당연한, 그러나 힘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 권한을 가르치는 명장면이다.
간단하게 말해 맨발의 겐은 인간성의 소중함에 충실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5. 작품에 대한 말들
《맨발의 겐》은 제
유서입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저 안에 담았습니다. 맨발의 겐이 앞으로도 계속 읽혀지면서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이 제 소원입니다.
― 나카자와 케이지 #
― 나카자와 케이지 #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오십년이 지났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폭심지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피폭당했다.
다행히 학교 담벼락 근처에 있어서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앞에 있던 여성은 전신에 열선을 맞고 즉사했다. 폭풍으로 가옥들이 쓰러지고 거리에는 온몸의 피부가 새카맣게 탄 사람들의 유령같은 행진이 이어졌다.
내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은 쓰러진 집에 깔려서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구해내려했지만 기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재가 일어나서 남동생은 '엄마, 뜨거워, 뜨거워' 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그 비참함은 도저히 '지옥'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원폭'이라는 말에서 눈과 귀를 돌리고 도망쳤다. 그때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폭후 21년간 살아오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방사능의 영향때문인지 화장으로 부슬부슬해진 유골을 보고 '원폭은 소중한 어머니의 유골까지 빼앗아가는가' 라며 분노로 떨었다.
이 감정을 에너지로 삼아서 원폭을 테마로 한 만화 '맨발의 겐'을 그렸다. 그건 내 자전적 이야기이며, 그린 내용은 전부 체험한 것들이다.
그 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전쟁과 원폭이 이렇게 비참한 것인줄 몰랐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라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이걸로 다음 세대에게 바톤 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뻤다.
'이제부터 앞으로 누군가가 전쟁이나 원폭을 긍정하는 말을 해도 절대로 믿지 마라'
그것이 원폭 체험자로서의 내가 장래에 전하고 싶은 메세지다.
― 나카자와 케이지, 1995년 8월 5일 #
다행히 학교 담벼락 근처에 있어서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앞에 있던 여성은 전신에 열선을 맞고 즉사했다. 폭풍으로 가옥들이 쓰러지고 거리에는 온몸의 피부가 새카맣게 탄 사람들의 유령같은 행진이 이어졌다.
내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은 쓰러진 집에 깔려서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구해내려했지만 기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재가 일어나서 남동생은 '엄마, 뜨거워, 뜨거워' 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그 비참함은 도저히 '지옥'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원폭'이라는 말에서 눈과 귀를 돌리고 도망쳤다. 그때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폭후 21년간 살아오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방사능의 영향때문인지 화장으로 부슬부슬해진 유골을 보고 '원폭은 소중한 어머니의 유골까지 빼앗아가는가' 라며 분노로 떨었다.
이 감정을 에너지로 삼아서 원폭을 테마로 한 만화 '맨발의 겐'을 그렸다. 그건 내 자전적 이야기이며, 그린 내용은 전부 체험한 것들이다.
그 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전쟁과 원폭이 이렇게 비참한 것인줄 몰랐다' '두번 다시 이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라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이걸로 다음 세대에게 바톤 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뻤다.
'이제부터 앞으로 누군가가 전쟁이나 원폭을 긍정하는 말을 해도 절대로 믿지 마라'
그것이 원폭 체험자로서의 내가 장래에 전하고 싶은 메세지다.
― 나카자와 케이지, 1995년 8월 5일 #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70년대 후반, 《
쥐》에 관한 작업을 시작한 직후였다. 《맨발의 겐》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공포 중 하나를 효과적으로 목격했다. 이 대단한 책에 몰두하라.
― 아트 슈피겔만 #
― 아트 슈피겔만 #
역사, 인간애, 연민에 있어서 이 만화가 제공하는 교훈은 매우 귀중하다.
― Publishers Weekly (미국의 저명한 출판사 매체) #
― Publishers Weekly (미국의 저명한 출판사 매체) #
나이가 많은 독자와 모든 도서관에 추천합니다.
― Library Journal (미국의 저명한 도서관 매체) #
― Library Journal (미국의 저명한 도서관 매체) #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맨발의 겐》은 반전, 반핵, 평화를 기조로 하면서 군국주의 일본을 고발하고 천황제를 반대하고, 그리고 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비판한다. 이것은 무거운 정치적 주장이다. 당연한 주장이기는 하나 자칫 감동적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맨발의 겐'은 어린 소년 겐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통하여 이러한 주제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뛰어남이다. 어린 소년 겐의 웃음과 눈물이 그대로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 이유는 주인공 겐이 바로 저자인 나카자와 케이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2차대전 막바지의 그 참혹한 현실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난 뒤의 처절한 폐허를 어린 소년의 몸으로 몸소 겪었다. 절절한 경험이 그 바탕에 깔려 있지 않고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진실들이 그러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 신영복 #
그 이유는 주인공 겐이 바로 저자인 나카자와 케이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2차대전 막바지의 그 참혹한 현실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난 뒤의 처절한 폐허를 어린 소년의 몸으로 몸소 겪었다. 절절한 경험이 그 바탕에 깔려 있지 않고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진실들이 그러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 신영복 #
《맨발의 겐》은 한 가족사를 통해 전쟁, 특히 핵폭탄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인간사회를 얼마나 무자비하게 짓밟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핵과 전쟁의 본질과 특성, 원인과 배경을 깨우치는 것이 더욱 중요할 터인데, 이 책은 그런 소임을 십분 다하고 있다.
― 황상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
― 황상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
총 10권으로 발표된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은 픽션의 형식을 빌린 논픽션 만화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소년 겐은 작가 나카자와의 분신이며, 소년 겐이 겪는 참혹한 일상 역시 나카자와 자신이 겪은 일이다. 간판가게에서 일하고, 독학으로 그림에 대한 꿈을 키운 겐의 모습도 그대로 작가의 바이오그라피와 일치한다.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의 진창으로 들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해 르포르타주 만화인 < 팔레스타인>을 그렸다면, 나카자와 게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단지 픽션이라는 외형을 빌려 서술한다. 그래서 <맨발의 겐>은 매우 주관적이며 정치적 입장이 선명하다. 원폭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그 참상을 경험한 소년 겐은 세계와의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성장해나가 군국주의 일본과 천황제에 대한 명확한 반대입장을 드러낸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려는 교장에 맞서 “왜 빌어먹을 놈의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느냐”고 항의한다.
겐은 “천황은 전쟁 범죄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원폭 피해나 중국이나 조선의 피해도 모두 천황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어느 만화에서도, 역사책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도 쉬쉬하는 강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겐, 류타와 함께 사는 가추코의 입을 빌려 살인죄로 형무소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들로 ‘천황’과 ‘ 도오조오 내각의 장관과 공무원’, ‘육해군의 간부들’을 꼽는다. 강한 분노가 칸 위로 넘실거리며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도 우리가 <맨발의 겐>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는 이유는 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이다.
― 박인하 (만화평론가) #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의 진창으로 들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해 르포르타주 만화인 < 팔레스타인>을 그렸다면, 나카자와 게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단지 픽션이라는 외형을 빌려 서술한다. 그래서 <맨발의 겐>은 매우 주관적이며 정치적 입장이 선명하다. 원폭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그 참상을 경험한 소년 겐은 세계와의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 성장해나가 군국주의 일본과 천황제에 대한 명확한 반대입장을 드러낸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려는 교장에 맞서 “왜 빌어먹을 놈의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느냐”고 항의한다.
겐은 “천황은 전쟁 범죄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원폭 피해나 중국이나 조선의 피해도 모두 천황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어느 만화에서도, 역사책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도 쉬쉬하는 강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겐, 류타와 함께 사는 가추코의 입을 빌려 살인죄로 형무소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들로 ‘천황’과 ‘ 도오조오 내각의 장관과 공무원’, ‘육해군의 간부들’을 꼽는다. 강한 분노가 칸 위로 넘실거리며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도 우리가 <맨발의 겐>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는 이유는 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이다.
― 박인하 (만화평론가) #
반전, 반핵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
― 세계만화정전(김성훈 만화평론가)
― 세계만화정전(김성훈 만화평론가)
이 책은 읽고 즐겁고 흥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피카돈[29]의 참상은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꾸며낸 일이 아니고, 정말로 있던 일입니다. '원폭은 죽어도 지옥, 살아도 지옥'이라는 말도 꽂힙니다. '피카의 독이 옮는다'며 피폭자가 왕따를 당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읽기가 힘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악의를 끌어내어 광기를 불러일으키지만 같은 처지가 된다면 어떨까요? 전쟁에 반대하여 비국민으로 알려진 사람에게 식량을 나누면 자신도 가족도 비국민으로 불리며 비난받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공평함을 관철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것이 힘든거죠.
그러나 원자폭탄이 초래하는 참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잔인함, 실제로 일어난 역사. 이것이야말로 후세에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은 만화라는 그림이기 때문에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 나카자와 미사요 (작가의 부인), 2020년 일본에서 발매된 완전판의 서문 #
피카돈[29]의 참상은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꾸며낸 일이 아니고, 정말로 있던 일입니다. '원폭은 죽어도 지옥, 살아도 지옥'이라는 말도 꽂힙니다. '피카의 독이 옮는다'며 피폭자가 왕따를 당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읽기가 힘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악의를 끌어내어 광기를 불러일으키지만 같은 처지가 된다면 어떨까요? 전쟁에 반대하여 비국민으로 알려진 사람에게 식량을 나누면 자신도 가족도 비국민으로 불리며 비난받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이나 공평함을 관철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것이 힘든거죠.
그러나 원자폭탄이 초래하는 참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잔인함, 실제로 일어난 역사. 이것이야말로 후세에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은 만화라는 그림이기 때문에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 나카자와 미사요 (작가의 부인), 2020년 일본에서 발매된 완전판의 서문 #
5.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맨발의 겐/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6. 미디어 믹스
1976년엔 영화, 1981년엔 오페라, 1983년, 1986년엔 애니메이션, 1999년엔 CD-ROM으로 제작되었으며 2007년엔 드라마로 방송되었다.6.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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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겐다이 프로덕션 측이 동명의 작품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는 맨발의 겐 역사상 최초의 영상화 작품으로 손꼽힌다. 야마다 텐고(1916~1998) 대표가 제작과 감독, 각본까지 1인 3역을 도맡았으며,[30] 1977년 2편 '눈물의 폭발', 1980년 3편 '히로시마의 싸움'까지 각각 만들었다. 주인공인 나카오카 겐 역은 당대 아역배우 사토 켄타[31](1탄), 하루타 카즈히데(2탄), 하라다 쥰(3탄)이 각각 맡았다.
1편에는 명배우 미쿠니 렌타로가 아버지 다이키치 역으로 출연했고, 3편에는 아카츠카 후지오, 타모리가 단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6.2. 애니메이션
자세한 내용은 맨발의 겐/애니메이션 문서 참고하십시오.6.3. 드라마
자세한 내용은 맨발의 겐(드라마) 문서 참고하십시오.6.4. 기타 매체
일본에서 제작된 맨발의 겐의 무대극(연극, 뮤지컬, 오페라, 낭독극)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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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대극이 1996년 7월 영국 셰필드의 크루시블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크루시블 극장과 일본 도쿄 젠신자 극장의 합작품이었다. 1994년 영국 연극 감독 브린 존스는 1권을 연극으로 각색할 수 있는 작가 나카자의 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존스는 제작 허가를 받고 셰필드로 돌아와 크루시블 컴퍼니, 스즈키 다쓰오, 구라하라 후사코와 함께 연구와 디자인해 연극화를 준비하였다. 나카자와는 그 후 마지막 리허설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고 개막 공연 후에 강연을 했다. 최종 원고는 스즈키 타츠오와 브린 존스가 각색했으며 구라하라 후사코가 번역했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 뛰어난 업적으로 1997년 일본 축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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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이시다 유코 감독이 원작자 나카자와 케이지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맨발의 겐이 본 히로시마>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나카자와 자신의 피폭 체험 인터뷰와 히로시마 시내를 실제로 방문해 다큐멘터리와 만화의 원화 등을 통해 핵전쟁과 핵무기의 무서움과 평화를 알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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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낭독 뮤지컬이 열렸다. 각본·음악·연출은 오오야마 히로시.
7. 기타
- 한국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일본 군국주의 비판 등 작품을 쓰기 전에 일본 극우집단으로부터 받을 비난도 감안했나. 실제로 작품이 발간되고 나서 그런 비난을 받진 않았나?"는 질문에 나카자와 케이지는 "물론 그런 비난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강한 의지를 갖고 썼다. 발간하기 전에 아내에게도 '혹시 이상한 편지나 전화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를 했을 정도다. 그런데 실제 발간되고 나서 격려는 많이 받았지만 이제껏 한번도 비난의 전화나 편지를 받은 적은 없다. 일본의 우익단체들도 분명히 이 만화를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군국주의 비판을 넘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끼고 그에 감동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
-
작가 나카자와는 인터뷰에서
조선인 박씨를 등장시킨 것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
맨발의 겐 한국판 서문을 보면 작가 나카자와는 어린 시절 박충찬이라는
조선인 친구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
▲ 2부의 원고 |
- 2018년 시점에서 일본 누계부수는 1,000만부를 넘긴 히트작이다. #
- 나카자와 케이지의 초기작에서는 원폭을 투하한 미국에 대한 분노가 더 컸지만, 시간이 지나며 좀 더 성숙한 시각을 가지며 맨발의 겐이란 명작이 탄생하였다. 참고 기사.
- 만화에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그는 단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폭 관련 편지를 보낸 것 밖에 없으며 결정적으로 핵폭탄 투하 자체를 반대해 지금 보면 오류다. 하지만 연재 당시엔 아인슈타인이 핵을 만들었다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에[33] 작가 역시 잘 모르고 그렇게 반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정발판에는 오류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으며, 북미판에선 다른 과학자로 수정되었다.
- 작중 8권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 살인광시대를 본 겐이 "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어 사형을 받지만, 전쟁에선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훈장을 받고 영웅이 된다."고 한 영화 대사를 인용하며, 전쟁이란 이유를 내세워 살인을 정당화하는건 미친 짓이라고 역설한다. 사실 위대한 독재자 등을 만들어내며 반전주의를 주장한 찰리 채플린의 작품과 이 만화는 맥락상 닿는 점이 있다. 결국 국민 같은 것을 넘어선 인류적 관점에서 보자는 것.
-
작가 나카자와는 이 만화에서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34]
천황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만화에 담았고, 천황이 히로시마를 격려 방문했을 때의 심정을 자서전 '나의 유서 맨발의 겐'에서 이렇게 적어놨다. “천황 폐하가 히로시마에 오시니 전교생이 국기를 들고 환영하러 간다는 거였죠. ‘천황 명령으로 전쟁이 시작되고, 그래서 핵폭격도 당하고, 아버지들도 죽어간 거잖아! 뭣 땜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한테 깃발을 흔들어야 해?’ 싶어, 나는 다음날 빈손으로 등교했어요.” 또 “
진주만 공격 때
쇼와 덴노가 ‘그만둬’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많은 사람들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장본인이 전후에도 천황 자리에 유유히 앉아 있는데, 그런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어요. 나는 지금도 천황제는 정말 무서운 제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 나카자와 케이지는 사이 모토후미와의 인터뷰에서 쇼와 덴노를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저는 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들이 말하였습니다. "내일 폐하께서 오실 것이니, 아이오이 교로 줄을 서라." 아버지께서 천황제에 대해 모두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 이 사람이 아버지와 온 가족을 파괴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맨 앞줄에 줄을 섰습니다. 검은 포드가 달려왔고, 천황은 찬바람에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왔습니다. 그 추위 속에서 나는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저 남자가 우리 모두를 이 꼴로 만들어, 아빠를 죽였어."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달려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충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반자이라고 해! 반자이라고 해!" "농담하는 거야?" 나는 게다로 기와 조각을 걷어찼습니다. 타이어에 부딪혀 튕겨 나갔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평생 그렇게 뜨거워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기억이 잘 나요. 보세요, 추웠어요. 추위 속에서 천황은 편안히 옵니다. 저는 정말 그 남자의 목을 조르고 싶었습니다. #
질문: 히로시마에서는 천황에 대한 분노나 증오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왜 그렇죠?
나카자와: 전쟁 전 교육 때문입니다. 전쟁 전의 교육은 일본인들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그 교육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저는 화가 납니다. 만약 그 사람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였다면, 원자 폭탄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뻔뻔스럽고 파렴치하게 편안히 살아남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천황에게 느꼈던 분노를 느꼈지만, 그들 모두는 아마 감옥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 배웠어요. 천황제는 끔찍해요. 제가 왜 일본인들이 천황에게 절을 하냐고 묻자, 아버지는 일본을 통일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를 살아 있는 신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하는것이죠. 그 시스템. 일찍부터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에, 줄을 서서 반자이를 외치려고 했을 때, 저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제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히로시마가 보수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히로시마현에는 정말로 보수주의라는 현의 특성이 있습니다. 말도 안 돼요.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 국내 정발판 9권에 나온 6.25 전쟁 상황 묘사에서 중국[35]과 소련 위치가 바뀌었다.
- 나카자와 케이지는 이 작품이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할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는 질문에 "자비를 들여서라도 출판할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고 답했다. #
- 총 10권으로 연재가 끝난 뒤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한국어와 에스페란토를 포함, 세계 각국의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그 외에도 소설, 오페라, 드라마 및 영화화 등 다양한 매체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 그라운드 제로 중 하나였던 히로시마 시의 각급 학교에선 이 만화를 반전/평화 교육 교재로 쓰기도 하며,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는 이 책을 문고판으로 팔고 있다.
- 2007년 5월 30일부터 빈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제1차 준비위원회에서 일본정부 대표단은 이 작품의 영문판을 회원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외무성이 영문판 30권을 출판사로부터 양도받아 전달했다.[36]
-
2012년
히로시마시 교육위원회는 정례회의에서, 초등학생으로부터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시의 독자적인 평화 교육 프로그램의 시안을 처음으로 책정해, 만화 '맨발의 겐'을 부교재로 채용하는 것을 결정했다. 맨발의 겐은 초등학교 저학년용과 고교생용의 교재에 등장한다. 아동·학생에게 동세대의 주인공의 이야기로부터 가족이나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
▲ 히로시마시의 평화 교재로 쓰이는 맨발의 겐 |
-
2013년 8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서 원폭의 날을 앞두고, 2012년 12월에 사망한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의 사진과 대표작 '맨발의 겐'의 그림을 강에 비추는 추모 행사가 있었다. 웃는 얼굴의 나카자와가, 어깨에 흰 비둘기를 얹은 주인공에게 '살아있어라 겐!!'이라고 응원을 보내는 구도다.
-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많은 도서관이나 초, 중, 고등학교의 도서관에 놓인 만화이며, 남녀노소 널리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 잭, 야마토 와키의
겐지 이야기[37]와 함께 일본 학교 도서실의 가장 많이 배치되어 있는 만화다.
# 히로시마 시립 대학의 히로시마 평화 연구소장인 아사이 모토후미와의
인터뷰에서 나카자와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사이: 맨발의 겐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도서관에 있고, 만약 그들이 용기를 내서 이 만화를 읽는다면, 히로시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요?
나카자와: 결국 압도적 다수는 맨발의 겐을 통해 전쟁과 원자폭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저는 선구자입니다. 히로시마가 아동문학에 등장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만화가 최고의 접근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맨발의 겐을 통해 전쟁과 원자폭탄을 알게 된 것은 작가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입니다.
아사이: 도대체 교육부는 왜 초등학교와 중학교 도서관의 전쟁 반대와 반천황 체제의 작품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는 것일까요?
나카자와: 저도 이상합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만화는 맨발의 겐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것은 길을 닦았죠. 겐 덕분에, 그것은 지금쯤 보통 사람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쓴 것이 그렇게까지 스며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 한국의 도서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일본 만화 중 하나다.
- 넷 우익들이 모이기 쉬운 사이트에서는 본 작품이 자국&자국민 비하와 허구로 가득하다며 ' 반일 만화'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일본 보수 우익들의 사상으로 알려진 '자유주의사관(自由主義史観)'의 연구회에서는 '원폭을 이야기한 이야기 문화의 수작이다'라고 비평했지만, 이 작품의 천황 비판이나 일본 제국에 대한 비판은 부정했다.
- 위와 같은 이유로 2012년 마츠에 시의회와 교육의원회에 재특회가 이 작품의 역사 인식을 명목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이 작품을 뺄 것을 요구했으나 기각되었다. 그러나 기각 결정을 내리는 와중에 이 작품의 폭력성 여부가 도마에 올라 이후 마쓰에시의 초/중학교 도서관에서 이 작품은 폐가로 옮겨져 열람이나 대출을 위해서는 교원의 허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 그리고 2013년 8월, 시마네현 마츠에시는 교육위원회 결정에 따라 관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이 만화를 열람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이에 따라, 교사가 이 만화를 교재 등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나 학생이 단독으로 열람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 허나 이에 반대 여론이 심상찮자[38] 같은 달인 2013년 8월 26일, 교육위원회는 열람제한 철회를 지시했다. 일본 유명 방송인 마츠코 디럭스는 열람 제한을 비판하며 "나도 몹시 영향을 받았어, 나쁜 영향은 일절 없어"라고 말했다. # 망언으로 유명한 아소 다로도 “주간지에 연재되었을 당시 작품을 읽었다”고 언급하면서 “<맨발의 겐>보다 열람을 금지해야 할 성인만화들이 훨씬 많다. 그쪽이 더 문제 아닌가”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 철회 과정의 명분은 "관련 서류의 미비"라는 것이었는데, 교육위원회가 자유라는 대원칙에 의거해 철회한 것인지 여론의 시선을 의식해서 철회한 것인지는 불명. 이후 맨발의 겐 도서관 비치, 교육 활용여부는 일선 학교 재량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덧붙여 이 소동 때문에 맨발의 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되레 늘어나 증쇄를 더 하게 되었다. # 사실 몇 부분만 건너뛰거나 모자이크 처리 같은걸 하면 내용은 학생들이 보기 큰 무리는 없고, 오히려 권장해야 할 내용도 많지만 작가가 사망한 터라 가능성이 없다시피하다.
- 일본인들 사이에선 전체 내용과 별개로 간간히 몇몇 부분이 개그 밈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비록 심의 기준이 널널했던 때에 그려져서 지금 보면 꽤 과격하고 잔인한 내용들도 상당하지만 상당히 우스운 내용들도 많다. 특히 くやしいのうwwくやしいのうww[39]나, "똥할망구가 똥통에 빠졌어!"같은 엽기적 대사는 유명한 개그 소재. 연도가 연도이고 그림체도 비슷한데다 워낙 안드로메다로 간 개그 센스 때문에 차지맨 켄과 비슷한 키치가이 계의 개그로 받아들여지는 소재도 많다. 2018년 5월 일본 트위터에서는 뭔가를 쓰다가[40] 종이를 쫙 찢어버리는 나카오카 겐의 모습이 짤방으로 유행하기도.
- 정발판 말미에 미즈노 슌페이 교수의 후기가 실려있으며 만화 쥐를 그린 아트 슈피겔만은 영어판에서 작품을 칭찬하는 글도 쓴 바 있다. 두 책 모두 한국판 출판사가 '아름드리미디어'다.
- 아래는 일본판과 한국판의 표지.
- 일설에 의하면, 1977년부터 대학생 그룹에 의해 번역된 영어판(영제목: Barefoot Gen)은 전편이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일본만화이다.
- 플래시로 나온 관련 격투게임도 있었다.
-
2013년 연재 개시 40주년을 맞아 원화 전시회를 열었다.
#
▲ 전시회에서 공개된 원화 중 하나다. |
- 2014년 1월 7일 연합뉴스TV에 소개되었다.
- 2014년 1월 작가인 나카가와 게이지의 유고가 '나의 유서, 맨발의 겐'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발매되었으며 번역은 역시 김송이. 자신의 피폭 경험과 맨발의 겐을 그리게 된 계기 등을 다룬 자전적 에세이다.
-
2008년, 2014년, 2018년
히로시마현의 교직원들이 만드는 평화 달력의 맨발의 겐이 세차례 선정됐다. 이 달력들은 히로시마현의 학교에 배포되며, 학생들의 교실에 걸리기도 한다.
#
<rowcolor=#fff> ▲ 2014년 | ▲ 2018년[41] |
- 이마무라 쇼헤이가 <검은 비>를 만들면서 이 만화를 많이 참고 했다고 한다.
- 주요 등장인물들은 히로시마 사투리를 쓴다.
-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는 인터뷰에서 "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만화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핵전쟁 이후 인류를 그리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 굉장히 화가 났다. 핵전쟁이 일단 일어나면 인류는 다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망한 뒤의 세계를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이 작품에는 '리얼리티'가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
작가 나카자와는 피폭의 영향으로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질문 : 지난 8월 출간 기념회에 오신다고 해서 마중을 나갔었는데 당시 건강이 안 좋으셔서 못 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셨는데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떠하신가요?
나카자와 : 피폭자에게 당뇨병은 일반적인 후유증입니다. 지난 8월 출판 기념회에는 증세가 심해서 오지 못했다. 뮤지컬을 기념으로 한국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 때문에 건강 상태를 조절해서 오게 됐습니다. 무리해서 왔지만 기쁩니다. #
- 한 열광적인 팬이 만든 팬 사이트도 있었다. 작가에게 직접 허락을 받고 만든것이다. 현재는 폐쇄됐고, 아카이브로만 볼 수 있다.
- ' 이 세상의 한구석에'로 유명한 만화가 고노 후미요가 맨발의 겐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
- 미국에서는 한 자선가가 미국 전역의 공립도서관 3,000곳에 맨발의 겐 1~2권을 기증했다. #
- 작가 나카자와는 딸에게 반전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한다. 어린 딸 앞에 자신의 만화를 조용히 가져다주었고, 딸은 책을 읽고 나더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
- 영화 제작자 파트리스 네잔(Patrice Nezan)은 논픽션을 기초로 아트에 표현하는 큰 가능성을 느끼게 해 준 작품 중 하나로 맨발의 겐을 꼽았다. #
- 2023년 히로시마 현에서 이 만화가 부적절하다며 평화 교재에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 만화의 배경이고 핵을 맞아봤던 히로시마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기에, 몇 안되게 제대로 된 반전 교육을 하던 히로시마가 이런 역사수정주의적인 방침을 채택한 데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 만화로는 원폭 피해의 실태를 제대로 알 수 없어서 다른 피폭 피해자의 체험담으로 바꾼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게, 이 작품도 작가의 체험담이다. # 게다가 이 결정을 내린 데 개입한 인사들은 대부분 우익 교수진이다. 이외에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작중 묘사가 현대의 실상과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읽히기 부적절하다'[42] 등의 사유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교과서 편집이 논란이 되는 것은 우익들의 속내가 너무나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만화에서는 전체 내용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일부 컷이 발췌되어서 원폭 투하 전후의 힘겨운 생활상이나 처참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실태를 교육하는 데 쓰이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우익들은 작가의 문제적인 지론 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토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인 겐이 로쿄쿠[43]를 하면서 앵벌이를 하는 장면 등 당시의 처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장면들을 가지고 "현대의 어린이가 로쿄쿠를 어찌 아느냐?"[44], "가족 먹이겠다고 잉어를 훔치는 장면을 애들 보여줘도 되느냐?" 따위의 황당한 트집을 잡고 있다. 핑계가 너무 어이가 없기에, 단순히 만화가 가르치려는 사상, 즉 천황 전쟁책임론이나 반전, 반미, 반핵 등의 핵심 메시지 자체를 불편해하며 차단하려는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상황이다. #
- 히로시마시 교육위원회가 평화 교재로부터 삭제한다는 방침을 표명한 후, 맨발의 겐의 문고판의 판매수는 3월에 통상의 1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 후에도 기세를 유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8. 관련 문서
9. 외부 링크
- 초분샤 홈페이지
- 아이들이 본 전쟁 - 맨발의 겐과 함께(히로시마 평화기념관)
- 프로젝트 겐: 만화 '맨발의 겐'을 널리 해외에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번역 출판 자원봉사 단체.
- 맨발의 겐을 보급시키는 모임
[1]
中澤啓治,1939.3.14-2012.12.19. 간판화가 출신으로, 1962년 레이싱 만화 <스파크 1>으로 데뷔했다. 그는 2012년 12월 19일, 향년 73세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2]
나카자와 케이지가 말하길, "주인공 겐은 본인의 분신이고, 가정 구성도 모두 사실이다. 본서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은 모두 내가 히로시마에서 체험하거나 견문하여 기억해두고 있던 것을 근거로 했다." 라고 증언하였다.
[3]
<나의 유서, 맨발의 겐>에 따르면, 이 만화는 당시 내용상 정치/외교적으로 논란이 많아 연재처를 못 잡았으며, 어렵사리 잡은 <만화 펀치> 편집장이 "이거 냈다가 CIA로 끌려갈지 모른다"고 거절하다가 작가의 부탁에 승복했다고 한다. 제목의 검은 비는 원폭 투하 후 방사능을 뒤집어 쓴 비를 뜻한다.
[4]
한중일 화폐단위명은 어원이 같다. 중국어권에서는 지금도 해외의 통화명을 "나라이름 약자+원"으로 번역해서 부르는 언어습관이 있다. 일괄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지만.
[5]
작가는
인터뷰에서 "아버지한테 많이 들은 말인데, 보리는 추운 겨울에 싹을 틔워 몇번이고 밟혀도 꿋꿋이 살아남는다. 보리는 겐의 테마이자 내 자신의 테마다."라고 말했다.
[6]
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져 마을 사람들이
죽창으로 훈련받는데 허탈하게 웃으면서 "이까짓
죽창을 휘둘러봤자
미군은
기관총을 몆 대나 가지고 있는데 다 소용 없는 짓이다" 라며 세뇌에 머리가 굳은 일반 민중들과 달리 현실을 이미 직시하였기에 창을 패대기치고 훈련소를 떠난다. 심지어 훈련장에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가고, 방귀를 뀌는 등 대놓고 훈련을 기만한다. 실제로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의 아버지는 반전운동가로
히로시마 모 공원에 세워진 당시의 반전운동가 비석에 이름까지 새겨졌다. 당연히 일본 제국 경찰에게는 반동분자나 다름없었기에 특고에게 끌려가 고문도 받았다.
[7]
강제노동자부터 조선인 차별 등 자주 등장한다. 겐의 옆집에 살던 재일교포 박승기 씨와 관련된 에피소드들. 이 아저씨는 패전 후 목숨을 건 암시장 거래로 크게 성공한데다가 초토화 된 전후에서 매몰차게 버려도 되었지만 조선인인 자신을 잘 대해준 겐 일가를 위해 당시 비싼 분유는 물론 쌀, 돈까지 조금씩 제공해 줄 정도로 혼란기에 주인공의 강력한 조력자이자 후견인이 된다.
[8]
당시 38도선으로 분단되어서 북한의 정국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으로 파견되는 간첩을 만들기 위해 미군정에서 엄한 사람 잡아서 고문해서 세뇌공작 펼치는 장면도 그대로 나온다.
[9]
작가는 실제로 히로시마 출신이며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당시 학교 콘크리트벽에 기대어 겨우 살아남았지만 어머니 이외의 가족은 모두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후유증으로 1966년에 사망한다.
[10]
무려 975표를 얻었다. 2위는
사채꾼 우시지마(253표), 3위는
표류교실(210표), 4위는
라이프(190표), 5위는
데빌맨(147표).
[11]
2013년에 매각되어 현재는
KADOKAWA 그룹의 출판사가 됐다.
[12]
여담이지만 만약 핵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의 경우 1억 총옥쇄라는 본토 대결전을 생각하고 있었고, 연합국은 연합국대로
도쿄 대공습과 같은 엄청난 폭격에도 항복하지 않은 일본에 대해 핵을 사용하든 그렇지 않든 다음 단계로 일본 본토를 무인지대로 만드는
몰락 작전과 동남아시아의 잔존 병력을 싹 쓸어 버리는 지퍼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일본은 문제가 많은 상황이었고 핵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동급 혹은 그 이상, 미국은 잃지 않아도 될 인명을 잃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수많은
학살을 정당화하는데 쓰일 수도 있으므로 매우 주의를 요한다. 또한 이에 대한 논란도 많은 편이다. 민간인이 학살되었다는 점이나, 핵무기는 그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그것이 남기는 후유증이 지대하기 때문. 나무위키에도 등재된 많은 학살 혹은 사건사고 역시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행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고로 오너빙의라고도 할 수 있는 나카오카 겐의 대사를 빌어 직접적인 원폭 피해자로서는 하기 힘든 생각인 "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1억 총옥쇄로 망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대사까지 한다.
[13]
작중에서 겐과 류타가 기차에 있을때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보면서 꼴좋다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류타는 화를 내는 반면 겐은 '조선인들은 우리(일본 제국)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들을 빼앗겼다. 이것은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라고 언급한다. 작가의 일제강점기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참고로 겐 역시 초반엔 동생과 함께 멋모르고 박씨 아저씨에게 조선인을 비하하는 동요를 부르기도 했는데, 나중에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사과한다.
[14]
비슷한 예로,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스페인 만화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도 2013년에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음란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으나, 원작자와 출판사 등의 반발로 재심의를 거쳐 유해매체에서 제외됐다.
[15]
당장 1편에 작중 주인공 겐의 아버지가 혼잣말로 전쟁을 일으킨 놈들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인간들에게 저항 안하고 오히려 협력해주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도 똑같은 놈들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16]
재일교포 2세이며, 자신은 부모님이 태어난 제주도를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조선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7]
7권에서 겐은 원폭투하를 비판한 피폭자의 수기를 배포하다가 미군정 감옥에 잡혀갔을때, 원폭을 투하한 미국을 비난했지만 일본계 미국인 소위에게 "비겁하게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너희 일본이 자초한 일"이란 말을 들었다. 그 후 10권에서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원자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은 1억 총옥쇄로 달려가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의 만행이 워낙 상상을 초월해서 그렇지, 미군도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19]
한국인이라고 일본인들 원폭 맞아서 꼴 좋다는 식으로 보기도 뭐한 게, 인류애를 넘어 당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엔 조선인 거주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조차 당연히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중 박승기 씨의 입을 통해 원폭 피해 조선인들의 실상이 언급되는데, 일본에 강제로 끌려와 원자폭탄에 희생되었음에도 식민지인이라는 이유로 치료도 못 받고 죽거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수많은 조선인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당장 박승기 씨의 아버지도 온 몸에 화상을 입어 구호소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치료를 요청했으나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도 받지 못 하고 방치되다가 고통스럽게 숨을 거뒀다.
[20]
다만 전쟁 당시 천황이였던
히로히토는 몰라도, 아들인
아키히토 같은 경우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 반전주의자긴 하다. 일각에서는 이 역시 이미지메이킹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있긴 하지만...
[21]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김을 식량으로 줬다는 도시전설도 있다.
[22]
애당초 일본군은 포로에게 줄 음식도 부실하거나 없을 정도로 보급이 개판이라 우엉은 커녕 뭘 줄려고 해도 줄수가 없었다. 게다가
루이스 잠페리니의 일례에서처럼 본토도 사정은 오십보백보였다.
[23]
이 만화의 초반 도입부와 주요장면들, 전부 작가가 경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특히 겐의 가족은 실제 작가의 가족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24]
미국만 해도 아메리카 원주민들부터 시작해서 필리핀 등에서 만행을 벌인 바 있다.
[25]
한국과 같은 준주변부 국가도 주변부 국가를 착취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라든가... 물론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나아진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 단 자본주의를 앞세워 후진국들을 선진국들이 착취하고 있다는 이른바 '신제국주의 이론' 부분에 대한 반박은 있다. 당장 한국만 해도 과거 7080 운동권들이 앞으로 한국은 '미제 자본'에 지배당하는 식민지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았고(이는 운동권의 반미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저런 문제점은 있지만 한국은 자타공인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게다가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이유가 제국주의 시절 인종혐오/멸시감정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도 없다. 공식적인 원폭투하 사유는 패전이 확실함에도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고 결사항전을 고집하던 일제의 발악이었다.
[26]
7권에서 원폭 투하를 비판하던 책을 뿌리다가 잡혀간 겐을 심문하던 일본계 미군 소위와 겐의 문답을 통해 알 수 있다. 미군 소위는 "원폭투하는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이 자초한 일"이라며 일본의 자업자득이라 평가했지만, 겐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민간인 도시에 원폭을 투하한 건 잘한 거냐?"며 반박했다. 겐은 미국도 싫어하지만 일본 극우를 더 싫어하며, 어쨌든 피폭자고 원폭 후유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봤기에 미국을 원망할 명분이 있다.
[27]
둘 다 자국 정부의 불찰로 희생된 국민이 많았다.
[28]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와
대안 만화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국내에는 그의 작품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가 정발됐다. 팬 네임은 R. Crumb.
[29]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속칭. 작 내에선 비까 혹은 비까동이라 표현됨. 일본어로는 ピカドン, 한국어로 말하자면 번쩍-쾅!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의태어다. 원폭이 터질 당시의 빛과 소리를 표현한 것.
[30]
2편부터 부인 히사코도 제작에 참여했다.
[31]
<고속전대 터보레인저>에서 호노 리키를 맡은 배우하곤 동명이인이다.
[32]
주인공 겐이 기차를 타고
도쿄로 떠나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며, 초기 한국 정발판에는 그 밑에 '2부에 계속'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재발매판에서는 해당 문구가 없어졌다.
[33]
사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있다.
[34]
이건 지금도 그렇다. 이 작품이 나오고 한참 지난 현재에도 일본 사회에서 천황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고 있다.
[35]
일본은 1952년에 대만의 중화민국과 수교했고, 1972년에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며 대만과 단교했다.
[36]
참고로 이것은
아소 다로 당시 외무 대신의 주선으로 이뤄진 것이다. 관료의 지시가 아니라 아소가 직접 나서서 한것이다. 아소 다로는 맨발의 겐의 애독자로 알려져 있다.
#
[37]
겐지모노가타리를 만화화한 작품이다.
[38]
마쓰에시 시교육위에는 2555건의 의견이 전국에서 전해졌다. 의견의 70%가 시교육위의 판단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39]
작중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졌다고 분해 하는 등장인물에게 지나가던 아줌마가 '거 참 분하게 됐구나'하면서 맞장구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아줌마의 표정이 아무리 봐도 비웃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개그 소재로 받아들여졌고, 덤으로 뒤에 ww가 붙어서 실제 의미로는 '꼬시닼ㅋㅋㅋ'과 비슷하게 들리는 밈으로 정착. ~のう는 히로시마 사투리로 강조의 의미를 나타낸다. 즉, '분하다'라는 뜻의 くやしい의 뒤에 붙는다면 '정말이지 분하구나'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40]
네타의
원본을 보면 데셍을 하다가 생각한 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종이를 찢어버리는 모습이다.
[41]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참고로 히로시마 출신인 작가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팬이다.
[42]
실제로 작품에는
'キチガイ'(미친놈) 등, 현재의 도덕 관념에서 용납이 어려운 말들이 쓰이거나 주인공의 친구들이 살인이나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등, 아이들에게 읽히기에 심각하게 부적절한 내용들이 묘사된다. 작가의 방침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작가는 "'무섭다!' '역겨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라며 우는 아이가 일본에 한 명이라도 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면서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교육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해도 좋다는 극단적인 지론을 갖고 있었다. 작가는 전쟁이 다시 일어나질 않길 바라는 의도로 넣은 것이지만 견해에 따라선
아동 학대 아니냐는 논란의 의견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43]
메이지 시기 나타난 거리 공연, 가창의 일종이다.
[44]
작중의 겐은 구성진 불경 독송, 로쿄쿠(나니와부시)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가히 전통 소리꾼에 가까운 재능을 과시하고 돈벌이에도 이 재주를 요긴하게 써먹는다. 도리어 전통 문화의 예시로 애들에게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이걸 수록 중지의 구실로 삼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