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자와 케이지 中沢啓治 |
|
|
|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본명 | 나카자와 케이지 |
성별 | 남성 |
출생 | 1939년 3월 14일[1] |
일본 제국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 후나이리마치 | |
사망 | 2012년 12월 19일 (향년 73세) |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 |
국적 | 일본 |
직업 | 만화가 |
가족 |
어머니(1966년 사망) 4남 1녀 중 차남 부인 |
장르 | 역사, 전쟁, 평화 |
데뷔작 | 1962년 <스파크 1> |
대표작 | < 맨발의 겐>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만화가. 반전 만화 맨발의 겐의 원작자로 유명하다.2. 생애
1939년 3월 14일, 당시 일본 제국이었던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에서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신을 투영해서 만든 사실상 자신의 오너캐인 나카오카 겐은 4남 2녀 중 넷째이자 3남으로 실제랑 제법 차이가 있다.[2]일본 제국 치하에서 전쟁 때문에 생활이 좀 팍팍해지긴 했어도 비교적 평범한 일생을 보냈고, 빠른년생이기에 1945년 4월,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6일 자신이 살던 고향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나마 자신은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을 당시 콘크리트 재질의 학교 담벼락에 기대어 있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원폭으로 아버지, 누나, 동생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다. 거기다 원폭에서 생존한 어머니 역시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 1966년에 사망했다. 이 경험은 그가 반전주의자가 되게 만들었고 훗날 맨발의 겐을 연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을 일으킨 군부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수뇌부 몇 명만 본보기 식으로 처형되고 나머지 수뇌부들은 일본 제국에서 일본국으로 국호가 바뀐 치하에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기에 군부에 대한 반발감도 심했던 것도 원인이다.
성인이 된 후 간판 화가[3]로서 예술계에 첫 발을 내딛었고, 1962년 레이싱 만화 <스파크 1>으로 데뷔했다. 1968년 <만화 펀치>에 짤막하게나마 연재한 '검은 비를 맞으며'를 계승한 것이 바로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연재했던 맨발의 겐이었다.
2.1. 반천황주의자
어린 시절 히로시마 원폭으로 가족을 잃은 것을 당시 천황이던 쇼와 덴노의 잘못으로 여겨서 생전 일본에서 매우 드문 공화주의자였다. 일본에서 덴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태국[4]처럼 직접 막지는 않지만 덴노에 대한 지지율이 안정적으로 80%대를 갈 정도로 높고 일본 사회 분위기상 천황, 특히 천황제 폐지론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대부분 잘 꺼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원폭으로 가족을 잃은 것에 대해 덴노를 향한 적개심을 한평생 강하게 품은 듯.전쟁을 천황의 명의로 승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천황 본인의 의사로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부의 압박으로부터 전쟁을 승인했는지는 여전히 논란 중에 있으나 이 시절 국가원수가 쇼와 덴노였기 때문에 그런지 덴노에 대해 얼마나 적개심이 강한지 대놓고 덴노의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 나카자와처럼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던 오에 겐자부로조차 그 정도로 강경한 말은 안 했다.[5]
2.2. 사망
2012년 12월 19일에 원폭 후유증으로 인한 당뇨와 폐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향년 73세.3. 여담
그의 아내 나카자와 미사요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강한 반전주의자였다. 남편처럼 반천황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불명이지만 최소한 천황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1]
빠른년생으로 운명의 1945년에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다. 3월 학기제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4월 학기제여서 몇몇 만화 판본이나 뉴스 인터뷰에선 1938년생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2]
사실 이는 케이지 본인이 당대 일본 제국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작품에서 최대한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자신의 가족이 모티브가 아닌
나카오카 고오지와
나카오카 아키라를 주인공 겐의 형으로 추가시킨 것이다.
[3]
본인을 투영한 대표작
맨발의 겐의 주인공
나카오카 겐도 작중에서 간판 화가로 처음 미술의 세계를 접한다.
[4]
태국은 아예 왕실모독죄가 대놓고 존재한다. 거기다 그 왕실모독죄를 폐지 내지는 개정하겠다는 정당들은 하나둘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해산되고 이는 2024년에도
행동전진당 해산으로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5]
맨발의 겐 문서에 나와 있듯이 오에는 맨발의 겐을 극찬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