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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6-17 19:30:58

기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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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2hb_usn 1.jpg
미군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언어별 명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어 기관총()
영어 Machine gun(머신건)
독일어 Maschinengewehr(MG 마쉬넨게베어)
폴란드어 karabin maszynowy[1]
중국어 机枪(jīqiāng)[2]
프랑스어 mitrailleuse(미트라이외즈)[3]
러시아어 пулемёт(뿔레묫)[4]
체코어 kulomet[5]
}}} ||
1. 개요2. 상세3. 역사
3.1. 시초3.2. 기관총 개발의 역사적 의의
4. 중량에 따른 분류
4.1. 중기관총4.2. 경기관총
4.2.1. 분대 자동 화기
4.3. 다목적 기관총
5. 냉각 방식에 따른 분류
5.1. 수랭식5.2. 공랭식
6. 창작물7. 나무위키에 등재된 기관총들

[clearfix]

1. 개요

기관총(機關銃) 또는 기총(機銃)[6]은 설계된 내부 기관의 동작만으로 발사의 모든 과정을 전자동(full Automatic)으로 행하는 총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탄수 20발 이상에 소총탄 이상의 구경을 쓰며, (약실 내) 장전, 발사, ( 탄피)배출, 재장전까지의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하므로 연속하여 많은 총탄을 발사할 수 있다.

2. 상세

분류상 정의로만 따지면 현대의 돌격소총들도 모두 기관총에 해당한다. 당장 미국 총기법에서는 '한 번 방아쇠를 당겨 두 발 이상이 발사될 수 있으면' 기관총이라고 한다. 반대로 반자동 소총 등에 특수한 방아쇠 장치를 걸거나 개틀링 기관총도 손으로 돌리는 경우 기관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또 더블배럴 형식의 총기가 한번에 두발을 쏠수 있다면 기관총으로 분류된다. 그냥 '자동화기'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용어는 기관총(Machine gun)으로 정해져 있다. 지역에 따른 법과 민간인 용어는 보편적인 군용 용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말이 나왔냐면, Machine Gun이란 단어가 막 나왔을 때 (19세기 후반) Machine Gun이 아닌 Gun들은 단발총이 대부분이고, 연사가 되는 총들도 당연히 수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총에 Machine을 달아서 장전 및 격발을 자동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Machine Gun이다.

그래서 자동화기가 보편화된 현대에는 장시간 지속 사격을 위한 설계가 되어 있는 모델만을 기관총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기관총용 총열과 약실들은 오랫동안 쏴도 쉽게 손상되지 않게끔 냉각 설계에 상당한 투자를 한다. 교체형 총열과 약실로 뜨거워진 총열을 교체해 과열 문제를 해결하거나, 오픈 볼트 방식으로 만들어 사격 중지 시 약실이 잘 식도록 한다거나, 총열 두께를 키워 총열의 열용량을 확대하거나, 워터 재킷 등으로 뜨거운 총열을 감싸서 식히는 수랭식 설계를 도입하는 등의 예시가 있다. 이러한 설계가 없다면 자동사격을 지속하면 총열이 과열되면서 재료강도가 떨어져 총열 내 강선이 뭉개지므로 내구성이 떨어지게 되고, 심하면 총열을 영구적으로 못 쓰게 되거나 총열과 붙은 약실 온도가 과도하게 올라가 쿡 오프 같은 위험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냉각 설계와 급탄 기구의 복잡성으로 인한 중량 증가, 그리고 예비 총열의 존재 등으로 인해 통상적인 기관총은 1명이 휴대하기에는 무겁고 불편하므로, 1인 운용을 전제로 한 개인화기가 아닌 공용화기 내지는 지원화기로 취급된다.

다른 자동화기와 비교해보면 화력과 탄약휴대량은 압도적이나 개인화기가 아니기에 그 무게와 휴대성은 가장 떨어진다. 이름이 비슷한 기관단총은 오히려 권총탄 크기의 탄환을 빠르게 발사하기 위한 ' 머신 피스톨'에서 탄생한 것으로, 자동화기 가운데서는 화력이 가장 약한 축에 속한다.

3. 역사

3.1. 시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trailleuse_front.jpg
현대적인 기관총이 처음 역사에 등장하던 시절의 물건인 프랑스의 미트라이외즈(Mitrailleuse) #

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더욱 정확하고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갖게 되었으나, 사격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아직 그 강력한 파괴력을 살리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이에 초기 핸드 캐논 시절부터 총신의 개수를 늘리거나 넣는 탄약의 수를 늘려 총의 부족한 연사력을 보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고, 이는 머스킷이 등장한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긴 재장전 시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큰 장점이 없었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wheel_cannon.png
당시의 시도를 잘 보여주는 무기인 명나라의 차륜포.

명나라엔 십안총과 삼안총이 있었는데, 십안총은 하나의 관에 10개의 구멍이 뚫려 있고, 각 구멍에 맞게 약선을 꽂은 뒤 화약과 탄환을 층층이 장전한 뒤 앞에서부터 불을 붙여 쏘는 기관총이었고, 삼안총은 3개의 총신을 한데 붙여 만든 핸드 캐논이다. 십안총의 경우 조선에도 유사한 구조의 쌍자총통( 승자총통 문서 참조)이 있었으나, 이런 구조의 총기들이 그렇듯 쿡 오프에 약하다 보니 오발사고가 잦아 잘 쓰이지 않았고, 삼안총의 경우 어느 정도 사용되었고 임란을 거치며 조선에도 들어오나 조총이 보급되면서 점차 주력에서 밀려나 나중에는 신호용 및 보조 화기가 된다.

파일:external/af5b8ea0aec2a3bf0be8dd870caf03c1945f34c1817eb160ab9e9eb74709d865.jpg
중세 한국에는 더욱 원시적인 기관총과 유사한 무기가 실전 배치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바로 총통기를 장착한 화차이다. 이 무기는 한번에 50발의 핸드캐논이 모조리 발포되는 것이 아니라, 지연 사격방식 때문에 수십초 동안 각 총통이 전방을 향해서 지속적인 제압 효과를 발휘하면서, 총통 하나당 4발의 관통력 높은 화살을 끊임없이 쏘아냈다.[7] 이것은 다른 동시대의 무기들과 비교해도 그야말로 원시적인 기관총과 유사한 중세 화약무기였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을 쓰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있었다. 당시의 총기는 강선이 없는 화승총 계열이었고, 사거리도 50미터 내외로 짧은 데다가, 명중률도 매우 낮았다. 화약의 경우는 젖을 경우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보급과 실전 사용의 어려움이 많았으며, 장전 시에도 일일이 정해진 양을 넣고 탄환을 넣고 쑤셔주는 등의 불편함이 있었다. 반면 활의 경우는 장전/조준/발사속도가 매우 빨랐고, 숙련된 궁수의 경우 명중률도 높았으며, 직사/곡사(엄폐물 뒤에서의 발사)가 모두 가능했으고, 사거리도 최대 500여 m에 달하는 등 어떤 전술을 구사하는가에 따라 총보다 유리한 경우도 있다. 이 시대 총기는 이런 단점으로 차라리 돌팔매질을 하는게 낫던 적도 있다. 마젤란 필리핀으로 총기 가지고 쳐들어갔다가 거리를 벌려 싸우는 현지 선주민들에게 16세기 초반 총이 별다른 위력을 못 보이고 오히려 이들의 돌팔매질에 당해 결국 마젤란도 끔살당한 바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아시아권은 총이 도입되고도 활이 제식 병기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총으로 무장한 부대를 활로 무장한 부대가 이기기도 했다. 이에 14세기 무렵부터 총기의 연사력을 높이려는 노력은 시작되었으나, 당시 기술로는 단순히 여러 개의 총기를 묶은 제사총(齊射銃)을 일제히, 혹은 순차적으로 발사하는 이상의 진보는 불가능했다. 당연하게도 이런 수준의 진보로는 총기가 너무 무거워지고, 모든 탄환을 다 발사하면 재장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므로 휴대는 저 멀리 물 건너가고, 굳이 사용하려면 성벽이나 진지에 거치해놓고 대포처럼 사용하는 것 외에는 쓸만하게 사용할 방법이 없었다.

19세기 중엽, 탄약통(현대식 탄두 + 탄피 형식 총탄의 전신)이 고안됨과 함께 오랜 숙원이던 재장전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무기의 개발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장전마저도 빨리, 많이 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이루어졌다. 이에 탄창이란 개념이 탄생하였고,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개틀링 기관총이나 가드너 기관총, 노르덴펠트 속사포, 퍼클 기관포 등 수동 레버로 작동시키는 방식의 다양한 연사 무기가 고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관총의 패러다임을 명확히 확립시킨 것은 1883년 개발된 하이람 맥심의 반동이용식 기관총( 맥심 기관총)이 최초라 할 수 있다.

3.2. 기관총 개발의 역사적 의의

알량한 용기 따위, 훈련된 총알 앞에선 무력하다. - 조지 패튼
기관총은 인류 역사를 혁명적으로 뒤바꾼 최초의 대량살상무기이다. 특허 제도를 바탕으로 기관총이 발명되고 공업국은 비 공업국을 상대로 압도적인 화력의 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열강들이 이런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를 식민지로 분할 점령하면서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게 한 하나의 요인이 된다.

기관총 등장 이전까지는 아무리 발전된 총포류 화기라도 그 위력이 기관총만큼 일당백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머스킷이나 심지어 창, 칼, 활 같은 냉병기를 쓰는 비 공업국 군대라도 상황과 전술에 따라서는 공업국 군대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었으며, 비 공업국이라 해도 어느 정도 군 체제가 갖춰진 곳은 침략자들을 상대로 인구(수적 우위), 보급, 지형, 매복/기습 등의 전략전술적 우위로 자체적인 방어가 된 경우도 없지는 않다.[8] 물론 어디까지나 예외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는 얘기일 뿐이니 오해는 말자.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야포와 소총( 라이플)의 압도적인 화력 차이, 즉 사정거리와 연사속도의 압도적인 차이로 인해 비공업국 측이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 밖는 싸움이었고, 실제 결과도 그러했다.

그리고 기관총이 개발되면서, 머스킷과 냉병기를 쓰는 비공업국의 군대가 기관총을 쓰는 공업국의 군대에게 이길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 아니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비공업국 측의 군대가 가진 것이라고는 압도적인 숫적 우세 뿐이며, 이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근세 이전의 모든 전투가 그러했듯) 밀집대형이 반드시 필요한데, 제 아무리 많은 수가 뭉쳐서 빠른 속도로 돌격해 봤자 기관총 앞에 차례차례 끔찍하게 갈려 나가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험한 지형이나 현명한 전술 등에 힘입어 대대급의 서구 군대를 그럭저럭 막아내던 원주민의 근거지가, 기관총 단 1정을 장비한 10여 명의 듣보잡 용병들에게 전멸 당하는 비극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이런 놀랄만한 위력으로 인해, 기관총의 등장 초기엔 육군이 기관총의 운용 주체 자리를 놓고 보병병과와 포병병과가 서로 다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1893년 영국군과 마타벨레족 간의 전쟁을 들 수 있다. 기관총 4정을 장비한 영국군 50명에게 마타벨레족 5,000여 명이 쓸려 나간 것이다. 더구나 영국군에게 단 한 명도 달라 붙지 못했다는 기록은 덤이다. 또한 3년 뒤의 전쟁에서도 영국군은 400명의 전사자를 낸 반면, 마타벨레족은 무려 5만 명이 기관총 앞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물론 전투가 벌어질 때 원정대 측에 기관총이 몇 정 없다면 원주민들이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거나, 기관총이 고장나는 상황을 노리거나 할 수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더구나 원정대가 기관총을 고작 두 어 대만 운용했겠는가? 유럽 국가들은 한 번 발명한 기관총을 지속적으로 개량시키며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기관총과 각종 수리부속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서구 군대에게 원주민들이 천재일우의 행운으로 잠깐 우세를 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후발대의 기관총에 초토화되는 수밖에 없었다.

영국군이 기관총을 앞세워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정복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1899년 현재의 수단 남부 옴두르만에서 벌어진 옴두르만 전투였다. 이 옴두르만 전투에서 영국의 적이자 상대였던 마흐디 교단[9]은 5만 명의 대군을 동원한 반면, 영국군의 병력은 1만 명도 되지 않았으나[10] 영국군이 사용한 맥심 기관총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여 마흐디 측에 사망자 9700명, 부상자 1만 3천명, 포로 5천 명이라는 피해를 강요해서 완벽한 대승을 거두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당시 맥심 기관총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냐면, 마흐디 군사들 중에서 영국군 대열의 50미터 이내로 접근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영국군 대열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모두 맥심 기관총에 맞아 죽었던 것이다(...) 맥심 기관총으로 마흐디 교단을 사실상 궤멸시킨 영국은 1956년까지 수단 전체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이 옴두르만 전투에 놀랍게도 훗날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가 되어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던 윈스턴 처칠도 일간지 모닝 포스트의 종군 기자이자 육군 장교의 신분으로 참가하였다. 처칠은 자신이 직접 옴두르만 전투를 목격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맥심 기관총에서 총탄이 발사될 때마다, 탄환이 수피 수도사들의 살을 꿰뚫고 뼈를 부숴 버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허둥거리다가 괴로워하며 죽어 갔다. 수피 수도사들의 시체는 마치 쓰레기들처럼 땅바닥에 형편없이 나뒹굴고 있었다."[11]

한국에서도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했던 수많은 농민들이 우금치 전투에서 보조로 가담되어 기관총이 없던 일본군이 아닌 관군의 기관총 앞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게다가 기관총을 원정에 대동할 정도의 국력을 가진 제국주의 열강은 개인화기 차원에서 레버액션 소총을 도입하거나, 아예 고폭탄이 장전된 대포, 함포를 끌고 오는 등 머스킷, 구식 대포 및 활에 의존하는 약소국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괜히 포함외교라는 용어가 나온 것이 아니다. 1차 대전으로 전통적인 제국주의 자체가 망하기 전까지는 국력을 키우려는 나라들은 너도나도 이런 화력을 갖추러고 노력한 건 당연지사.

하지만 문제는 이른바 '문명국'들은 이 무시무시한 기관총의 총구가 자기 자신들에게 향해질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사실 전차가 등장하기 이전인 이 때로서는, 한 번 자리를 잡은 기관총에 대한 대응책은 죽어라 포격을 하던가, 목숨 걸고 닥돌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결국 열강들 간 초유의 총력전이 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기관총이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그들 역시 자신들이 손쉽게 정복했던 원주민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신세로 전락했고, 이는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와 더불어 참호전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끝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양상은 과거와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대량살상으로 치닫게 되었다. 일례로 솜 전투 단 하루만에 무려 58,000명, 니벨 공세에서는 단 하루 만에 10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중요했던 보병의 밀집대형은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고, 산개와 엄폐, 기동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4. 중량에 따른 분류

제2차 세계 대전까지는 중(重) 기관총과 경기관총으로 분류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현대는 중(重) 기관총, 다목적 기관총(GPMG)(중(中) 기관총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분대지원화기(SAW)로 세분된다.

중(重) 기관총과 중(中) 기관총, 경(輕) 기관총의 분류는 한자 뜻 그대로 무게에 의한 구분[12]이기도 하지만, 사실 사용하는 탄약의 종류에 따라 구분되며, 이는 화력에 의한 구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구경이 커질수록 화기의 견고함과 무게가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군 M60 기관총 교본에 나와있는 기관총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중(中) 기관총, 중(重) 기관총, 중(中) 전차, 중(重) 전차 등, 발음으로는 차이가 없는데 이렇게 된 게 이상할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은 중(中) 분류에 들어가는 무기는 없고 중(重), 경(輕) 둘 중 하나로만 치는 분위기건만. 일설에는 이 말을 먼저 사용한 일본어에서는 중(中)과 중(重)을 다르게 발음해서 그렇게 썼는데, 한국군과 밀덕들이 발음 구별되는 말을 쓰지 않고 일본 한자를 그대로 가져와 음차 하면서 그리 됐다는 말이 있다. 장음과 단음을 따지던 시절에는 중과 중- 을 다르게 말하고 들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안 그래도 언어오염이 심한 군대에서 그 정도로 언어생활을 신경 썼을 것 같지는 않다.

제식 탄약이 바뀌고 수랭식 기관총이 퇴역한 요즘은, 엄격하게 나누지 않으면 보통 12.7~14.5mm를 중(重) 기관총, 5.56~7.62mm를 경기관총과 그 하위 부류로 친다. 나라에 따라 기준이 다르나 보통 구경이 20mm 이상이 되면 기관포로 분류된다.

현대의 서구권 군대 대부분은 보병 기관총을 중대 이상에서 운영하는 12.7 mm, 소대급 지원화기 및 다목적으로 주로 운영하는 7.62 mm, 분대급 지원화기로 운영하는 5.56 mm 로 구분지어 운영하고 있다.

4.1. 중기관총

HMG(Heavy Machine Gun)

파일:K6_기관총.png
국군의 .50구경 중기관총 K-6
기관총으로서는 처음으로 생긴 부류. 원래는 거치대 포함 중량 30kg 이상에 차마(車馬)로 견인 운반하며 보통 중대 단위에서 운용되는 기관총을 가리켰다. 대대 전면에서 보병의 화력을 지원한다'는 초기 기관총 개념에 가장 충실한 물건으로 주로 벨트 급탄식이 많았다.

1차 대전 때만 하더라도 중기관총의 탄약은 일반 보병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했다. 이보다 큰 탄약을 사용하는 경우는 배에 탑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것도 속사포라 불리지 기관총이라 불리는 물건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기관총은 보병과 같은 탄약을 사용하며 무겁고, 정교하며 수랭식 구조를 탑재하여 지속 사격능력이 우수하고 높은 정확도를 가지는 물건을 의미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관총은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유리했을지 몰라도 공격자 입장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1차 대전만 하더라도, 적 참호선을 분쇄하는 임무는 보병과 그들의 소총이 담당하는 일이었으며, 기관총은 뒤에 있다가 전선이 뚫리고 새로운 참호선이 생겼을 때 이동하여 전개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군부는 당연히 소총수들과 함께 다니며 지원사격을 퍼부어주는 물건을 원했고, 차량에 탑재하려는 시도도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경량화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동소총과 경기관총이 탄생하였고 기존의 기관총은 자연스럽게 중기관총으로 분류되게 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우수한 경기관총들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기관총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무식한 무게와 수랭식의 번거로움은 크나큰 사용상의 제한을 가져왔다. 따라서 군은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냉각구조의 도입으로 기존 중기관총의 수랭식 냉각구조를 제거하였고, 더욱 경량화시킨 물건을 제작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기존의 중기관총은 경기관총으로 대체되었다. 다만 개발 시간과 금전적 문제도 있고 수랭식 중기관총의 무시무시한 지속 사격능력을 버리기는 아까운 데다 아직 탄띠는 중기관총의 물건이었으므로 2차 대전과 일부 한국전쟁 때까지 종종 사용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중기관총을 제작할 수 없게 된 독일에서 기존과는 다른 컨셉의 MG 시리즈들을 만들어서 중기관총의 임무를 일부 대체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일부 경기관총도 탄띠를 사용하게 되고, 총열의 신속 교환이 가능해지면서 지속 사격 능력 출중한 기존의 중기관총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된다.

1차 대전 중 기존의 기관총이 장갑화 된 차량과 항공기를 상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미국은 존 브라우닝에게 의뢰하여 대구경의 기관총을 제작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주야장천 사용되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다. 존 브라우닝은 M1917을 바탕으로 새로운 .50 BMG 탄약을 만들어 M1918 모델을 제작하였고 이를 개량해 M2가 완성된다.[13] 이 기관총도 원래 수랭식 육상용과 공랭식 항공용이 제작되었지만 수랭식이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럽다는 의견에 따라 육상용에서도 수랭식 재킷을 떼고 총열의 굵기를 늘린 M2HB(Heavy Barrel)가 표준이 된다. 독일 또한 대전차용으로 시험 제작한 18 mm 탄을 이용하는 MG 18 TuF를 일부 지역에서 소량 사용했다.[14] 대구경 기관총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미군은 기존의 소총탄을 사용하던 중기관총 대신 대구경 기관총을 중기관총으로 다시 정의하게 된다. 소련도 이런 식으로 미군과 비슷하게 중기관총의 개념이 정립된다. 이것이 현대의 중기관총이 되었다. 현재 12.7mm 이상의 구경을 가진 강력한 탄환을 쏘는 보다 대형인 중기관총( 미국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러시아 DShK와 같은)을 일반적인 기관총보다 강한 화력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한다.[15]

일반적으로 중기관총은 운동에너지를 통해 위력을 발휘하는 탄을 발사하는 물건을 말하며, 구경이 크고 위력이 강한 탄이라고 해서 25mm 유탄이나 40mm 유탄 따위를 발사하는 것은 논외로 친다.[16] 이렇게 유탄 같은 것을 발사하는 경우에는 자동유탄발사기(Automatic Grenade Launcher) 또는 고속유탄 기관총(automatic grenade machine gun)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중기관총, 고속유탄 기관총, 박격포, 무반동총을 포함한 대전차화기 등) 모두를 묶어서 중화기(보병이 운용하는 중화기. 그 이상의 화력은 포병에서 담당한다)라고 부른다. 보병대대의 화기중대/(화력) 지원중대 자체가 원래 구시대의 대대 내의 기관총 중대가 맡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미군과 그 동맹국, 서방진영의 M2 Browning 기관총(.50 BMG)과 소련과 그 동맹국, 공산진영의 12.7mm DShK 1938/46 대구경 기관총 Kord 등이 있다.

특이하게 소련은 중기관총으로 KPV같은 14.5mm 구경을 가진 중기관총을 많이 운용했는데, 이는 12.7mm 구경을 가진 일반적인 중기관총보다 대차량, 대공 능력에서 더 높은 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차의 대공기관총처럼 대인, 대차량, 대공 모두에 쓸 수 있을 만큼 범용적이면서 고위력이 필요한 경우에 기관포보다 작은 화기로써 아주 유용했다. 따라서 소련은 물론 후신인 러시아는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고, 동구권 국가들도 종주국인 소련의 무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14.5mm 중기관총을 운용하고 있다.

기타 매체에서의 중기관총은 헤비 머신건 문서를 참조.

4.2. 경기관총

LMG(Light Machine Gun)

파일:ruchnoy-pulemet-degtyareva-7.jpg
구 소련의 경기관총인 RPD

제1차 세계 대전 중,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많은 수의 경량 지원화기를 보급함에 따라 생겨난 개념이다. 거치대 포함 중량 15kg 이하에 보병이 직접 운반할 수 있다. 보통 소대 분대 단위에서 운용된다.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운용 교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기존의 중기관총처럼 차량이나 참호에 고정하고 사용하였다.

원래 개발 컨셉에 따라 적은수의 탄약을 탄창 혹은 보탄판(保彈板/흔히 말하는 호치키스식)식, 삽탄(揷彈)이 경량화를 위해 고려되었으며, 아직 경기관총이 정립되지 않은 1차대전은 권총탄을 사용하거나 기관단총이 경기관총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탄띠식 경기관총이 등장한 것은 2차대전 중이다. MG 08/15는 경기관총으로 개발된 물건이지만, 말이 경기관총이었지 수랭식 냉각기까지 달린 사실상의 경량 중기관총이었다.

기관총이 1차대전을 참호전으로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지라 참호 돌파 지원을 위해 사용했다는 점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 당시 소총들은 단발식 소총이 보통이였고 기관단총이나 샷건은 참호에 진입했을때 위력적이지 돌파단계에서는 별 효용성이 없었다. 같은 소총급 탄을 지속적으로 발사하여 제압사격하는 것으로도 참호돌파에 병력을 온존시키기 유리했으며 이는 현대 교리에서도 분대마다 기관총사수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보통 덴마크의 마드센 경기관총과 프랑스의 호치키스 M1909를 최초로 친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경기관총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 Vz.26, 영국 루이스 경기관총 브렌 경기관총, 프랑스 FM 24/29, 싱가포르 울티맥스 100, 벨기에 FN 미니미, 러시아 DP-28 RPK, RPD, 분대지원화기의 효시인 미국의 M1918 브라우닝 등이 있다.

4.2.1. 분대 자동 화기

SAW(Squad Automatic Wea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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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분대자동화기인 M249 기관총.

소총수의 소총탄과 같은 탄을 사용하는 분대용 자동화기. 영국을 포함한 유럽권 국가는 경 지원화기(Light Support Weapon; LSW)라고도 부른다. SAW(Squad Automatic Weapon)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분대자동화기'이며 국군에서의 분대원 직책도 자동화기사수이다. 한국군 분대자동화기 편제는 80년대에는 K2에 M3양각대를 장착한 것에서 K3기관총이 개발되면서 '분대 지원 화기'라는 표현도 쓰이나, 군사용어에서 '지원'이란 단어는 상급부대가 하급부대를 돕는다는 의미이다 보니, 분대지원화기라 하면 분대를 지원하기 위한 소대편제 화기를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분대자동화기 사수의 영어 명칭은 Automatic Rifleman(자동화기사수)인데, 이는 미군에게 최초로 채용된 분대자동화기가 BAR(Browning Automatic Rifle)이기 때문에 분대 자동 화기 사수가 자동화기사수로 불린 것으로 국군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명칭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현재 대부분의 분대원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분대자동화기사수는 기관총을 사용함에도 계속 Automatic Rifleman으로 불리고 있다. 미해병소총분대는 분대자동화기SAW를 기관총타입 M249에서 소총타입M27로 대체한 사례도 있어서 분대자동화기를 기관총으로 정의하는것도 무리이다.

분대 자동 화기SAW는 2차 세계대전때 정립된 개념이다. 1차대전 중 개발된 M1918 브라우닝 쇼샤는 돌격하는 보병이 휴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자동화기의 개념으로 개발된 새로운 컨셉의 무기였다.

하지만 이들의 운용 방법인 돌격 사격만으로는 부족했고, 미군은 BAR에 양각대를 달고 사격조당 BAR을 한정씩 배치하는 사격조 전술로 동시기의 경기관총과 다르게 화력지원과 유연한 기동을 추구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이 SAW의 개념이 뚜렷해지는데, 미 육군은 분대를 12명에서 9명으로 줄이고 분대장 포함 4명을 기동조, 5명을 화력조로 사격조 둘을 만들고 사격조당 BAR 한 정 배치했다. 일반적인 경기관총 대신 BAR을 택한 이유는 BAR은 부사수가 필요없고 여차하면 기동 사격도 가능하지만 경기관총은 기동 사격이 힘들고 부사수가 붙어야만 하기에 분대를 9명으로 줄이고 유연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기관총과 달리 소구경 고속탄을 채택한 이유도 이런 운용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해병대의 경우에는 육군과 다르게 분대원 수를 12명으로 계속 유지하고 4명씩 3개 사격조로 나누어 각 사격조당 BAR을 1정씩 지급하여 1개 분대당 BAR을 3정씩 운용하는 방식을 썼다. 육군과 달리 상륙 후 교두보를 구축하기 전까지는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에서 포병 및 기갑에 의한 화력지원이 없이 보병만으로 계속 전진을 해야 하는 해병의 입장에선 이렇게라도 해서 부족한 화력을 보충해야했다.

소총의 연사능력과 신뢰성/내구성이 향상되면서 소총 기반의 경기관총도 많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 RPK M27 IAR이 있다. 미 해병대가 M249를 대체한 분대자동화기(이자 제식 소총)인 M27 IAR은 다른 분대자동화기와 달리 명중률이 높은데, 이는 제압사격을 할 시 탄을 쏟아붓는 개념의 기존의 분대자동화기와 달리, 탄환을 정확하게 명중시켜 제압 사격을 하는 개념의 분대자동화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 해병대의 분대원 개개인의 명중률을 중시하는 방침이 한몫을 했다.

4.3. 다목적 기관총

GPMG(General Purpose Machine 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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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다목적 기관총인 나치 독일 MG34
과거의 중/경기관총 개념을 통합한 운용 개념의 기관총. 거치대를 바꾸는데 따라 중/경기관총 양쪽으로 운용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중(中)기관총이라고도 한다. 보통 시초는 독일의 MG 34와 MG 42로 본다.

과거에도 거치대를 바꾸면서 항공기용, 대공용, 차량용, 분대 화기 등 다목적으로 쓰려는 시도 자체는 여러 기관총에서 존재했다. 하지만 7.62mm 중기관총의 지속 연사력(탄띠 급탄, 과열에 강한 총신 및 냉각 구조 or 총신 교환이 매우 간편할 것)과 경기관총의 휴대성(개머리판이 있고 양각대 사격이 가능할 것, 양각대를 장착한 상태에서 빈 총 무게가 10kg 대로 사수 1명이 총을 휴대하며 사격할 수 있을 것)을 한번에 갖춘 것은 부정할 수 없이 MG 34/42가 최초이고, 이에 비견될 만한 다른 기관총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출시됐다.[17]

다만 다목적 기관총은 기계적인 설계 그 자체보다는 운영 교리 및 개념의 차이로 분류되는 경향이 강하다. 당장 나치 독일군부터가 MG 34/42에 탄띠가 아닌 드럼식 탄창을 걸어놓고 사용하는 빈도가 결코 낮지 않았는데 이렇게 따지고 보면 탄창식 급탄이긴 해도 역시 7.XX mm 대의 소총탄을 연사하면서도 쉬운 총열교환과 10kg 남짓한 무게, 편리하게 운영 가능한 양각대를 모두 갖춘 Vz. 26 계열이나 DP-28이 있었기 때문. 물론 해당 기관총들의 들은 이를 다목적 기관총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경기관총과 중기관총을 철저히 구분하여 운영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GPMG로 간주되지 않는다.[18] 자세한 것은 MG 42 문서의 해당 문단 참조

7.62mm NATO탄을 쓰는 GPMG가 많은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7.62mm NATO탄을 쓰는 제식소총이 흔했고, 그에 맞춰서 탄 보급의 편의를 위해 통일했기 때문이다. 후에 5.56mm NATO가 제식 소총 탄환이 되었지만 기관총까지 5.56mm로 통일하기엔 화력 부족이란 단점이 있었고 따라서 분대에 직접 편제되는 지원 화기(과거의 경기관총 개념과 유사하다)는 5.56mm로, 소대 이상급 제대에 편제되는 기관총은 7.62mm로 가게 된다. 현대에 와서 GPMG는 차량, 기갑, 보병, 헬기, 함정 등 온갖 곳에서 적절하게 쓰이므로[19] 과거의 중기관총과 경기관총을 통합한다는 의미는 약해졌어도 '다목적'이란 이름값에 충분히 부합한다 할 수 있다.

그 외엔, 전차나 장갑차의 부무장으로 쓰기 위한 동축기관총이 있다.

5. 냉각 방식에 따른 분류

모든 기관총은 사격할 경우 자연스럽게 달아오르게 되며, 이것을 방치할 경우 총열 과열되어 망가지거나 쿡 오프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쿡 오프까지 가지 않더라도 총열이 과도한 온도에 미세하게 휘기 시작하며 명중률이 하락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총열을 식혀야 하며, 그 방법에는 수랭식과 공랭식이 있다.

5.1. 수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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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 기관총을 소련에서 복제한 PM M1910 수랭식 기관총.
Water-cooled Machine gun

총열을 물로 식히는 기관총으로, 총열을 감싼 튜브 안에 물을 넣어서 총열을 식힌다. 장시간의 사격으로 튜브 안의 물이 증발하더라도, 다시 물을 부어주면 되므로 물이 떨어질 때까지 무한정 사격이 가능하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중기관총은 대개 수랭식이었으며, 그 끝없는 사격능력은 적군의 돌격을 막는데 대단히 유용했다. 몇 정의 중기관총을 적절하게 구축된 진지에 준비하면 적이 다 죽을 때까지 무한정 총알을 퍼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험악한 전장에서 냉각수를 필요량만큼 구하는 게 힘들었다. 진짜 다급한 상황에서는 병사들이 오줌을 부어가면서 식혀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수랭식 혹은 수냉식 기관총은 6.25 전쟁에도 투입되었으며, 무시무시한 연사 능력 덕분에 중국군의 인해전술을 막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단점은 총 자체의 무게에 물이 더해지면서 매우 무겁다.[20] 1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제식 중기관총인 MG08의 경우 총 자체의 무게 26.5kg + 냉각수 4리터 + 기관총을 얹어놓는 삼각대 겸 썰매 32kg = 도합 60kg을 넘어간다. 나름대로 경량화한 것임에도 이렇다! 여기에 예비용 냉각수와 기관총탄까지 합할 경우 그 무게는 보병 6명이 달라붙어도 버거워지며, 혼자서 운용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또한 냉각수 튜브가 총열을 감싸고 열을 식히는 특성상 총격 등으로 인해 튜브가 파손되면 작동부가 멀쩡하더라도 그대로 사용불능이 되는 추가적인 단점까지 있다.

하지만 갈수록 각군의 교리 자체가 기동성도 같이 고려하는 쪽으로 바뀌어 보병의 기동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면서, 자연히 이 기동성 후달린 물건은 갈수록 설 곳을 잃기 시작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관총 개발자들이 공랭식에 눈을 돌리게 되어 공랭식이 대세가 되면서 한국전쟁 이후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으며, 박물관 전시용이나, 총기 합법국가에서 민간인의 소유 유물이 되었다.[21]

이리하여 비록 세계 각국의 주력 기관총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물로 식히는 냉각방법은 다른 곳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수랭식은 기존의 공랭식보다 냉각 속도와 효율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연사가 필요한 대공기관포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퉁구스카 자주대공포의 2A38M은 분당 1,950-2,500의 무지막지한 발사속도 때문에 포신의 안정을 위해 수랭식 구조를 채택하였다. 또한 해군용 함포는 현대 함포의 발전 방향에 따라 발사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포신의 보호를 위해 해수를 이용하여 강제 냉각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오토멜라라 76mm 함포는 76mm 포탄을 분당 85발(슈퍼 래피드 모델은 120발)을 퍼부을 수 있으며, 러시아의 AK-130 130mm 2연장 함포 또한 포신 냉각을 위해 수냉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의 자주포도 신속한 포격 임무 완료 및 이탈이 주 전술이기 때문에 빠른 연사 속도가 중요하여 수냉식 포신 도입에 적극적인 분야이다. 개발단계에서 폐기된 미국의 XM2001 크루세이더와 러시아의 2S35 Koalitsiya-SV-O 자주포의 포신이 수냉 방식을 채택했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주로 보병 장비에 비해 무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차량이나 함선이 수랭식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2. 공랭식

Air-cooled Machine gun

총열을 공기로 식히는 방식. 물이나 튜브 등의 추가적인 방열 구조가 없기 때문에 수랭식보다 월등히 가볍다. 덕분에 많은 기관총에서 채용된 방식이지만, 수랭식보다 냉각 성능은 떨어져 지속 사격 능력에 제한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2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열을 두껍게 하고 방열판을 줄줄 달아놓은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지속 사격 능력이 수랭식 기관총보다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최대한 극복하기 위해 공랭식 기관총들은 대부분 총열 교환 기능이 있다. 사격 후 달아오른 총열을 떼어버리고 새 예비 총열을 끼움으로써 과열을 방지하는 것이다. 떼어 둔 총열은 열을 식혀서 다시 쓴다.[23][24] 2차대전 때 미군이 MG42의 기능 중에서 가장 부러워했던 것도 빠른 총열 교환이었을 만큼 중요한 기능이며, 때문에 공랭식 기관총들은 점점 총열 교환이 쉽도록(혹은 총열 교환이 가능해지도록)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도 수랭식 기관총의 연사 능력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수랭식이 물만 제때 넣어주면 무한정 사격이 가능한 데 비해, 공랭식은 냉각 능력이 떨어지므로 자주 총열을 갈아 줘야 하며, 이로 인해 사격이 자주 중단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열 손상을 막으려면 100발 정도 쏜 이후 즉시 총열을 갈아주어야 한다. 만일 급하다고 계속 사격하면 250발 이상부터 총열이 달아오르다 못해 연기를 내며 조금씩 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내부의 강선도 심하게 마모되기 때문에 사실상 다시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된다. 심하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총이 저절로 격발되는 쿡 오프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 정도까지 가면 총열뿐 아니라 기관총 내부의 부속도 과열로 인해 손상된 상태이므로 그냥 기관총 자체를 정비창에 후송해야 한다.

그래도 무게가 획기적으로 가벼워진다는 장점이 모든 것을 덮었다. MG42 같은 경우 중량이 11.2kg인데, 이것은 위에 소개된 수랭식 기관총 MG08에 비하면 엄청나게 가볍기 때문이다. 수랭식 '경기관총'인 MG08/15의 무게가 18kg이고, 예비용 냉각수를 합하면 그 중량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장점이다. 둘 다 똑같은 7.92mm를 쓰는데도 무게 차이가 2배에 가깝다.

공랭식 분대지원화기 중에 동급 다른 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빈 총 무게가 유난히 가벼운 것들이 있다. 부품의 내구도를 줄이거나, 소총의 총열과 비슷하게 교환이 불가능하며 길이가 짧은 총열을 달거나, 연사 속도를 줄이고 확장성을 없애서 무게를 감량하기도 한다.

그리고, 빠르게 전개되는 현대적 교전 방식의 특성상 사실 총열이 막장이 될 만큼 오래 사격할 일도 흔하지 않다.[25] 방어전의 경우가 그나마 오랜 지속 사격을 필요로 하긴 하지만, 방어전에서 기관총이 한 자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기관총들이 불을 뿜을 때 재빨리 총열을 교체해주면 그만이다. 즉, 지속 사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현대의 전술로 완벽히 커버가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보병들이 들고 다니는 소총 또한 자동화기다. 다른 기관총이 인근에 없다면 주위 보병들이 자동으로 사격하면서 일시적으로 기관총의 총열 교체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다. 또한 기관총이 1정만 있는 게 아니라면 교대로 쏘며 총열 교환 시간을 확보하면서도[26] 동급 화력 투사를 유지할 수도 있다. 공격전의 경우 수랭식 기관총은 차량이 없다면 보병의 움직임을 아예 따라가지 못하고, 아군 보병이 기관총 엄호 범위 밖으로 노출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물론 현대에는 차량화 비율도 높아졌다지만 차량 탑재 기관총으로 쓰기엔 수랭식 기관총과 비슷한 무게지만 더 강한 위력과 사거리, 관통력을 갖거나 미친 연사 속도를 갖는 더 우월한 물건들이 있다. 그래서 현대의 기관총은 거의 모두 공랭식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공랭식 기관총 또한 제한적인 수냉각이 가능하다. 총열을 떼어서 물에 담갔다 빼거나, 총열 뗄 시간도 촉박하면 총기 발사 중 총열에다 물을 들이부어주는 식으로 과열을 막을 수 있다. 허나 발사 중 수냉각을 시도할 경우 증기가 발생해 연막탄 터진 것처럼 사수의 조준을 방해하는 데다, 적들에게 더 잘 보이게 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눈이 쌓인 지역의 경우 눈에다가 총열을 묻어 버리는 방법도 있다.

또한, 이 냉각 방식은 위에 서술되어있듯이 무게가 수냉식에 비해 덜 나가기 때문에 2차대전 항공기들이 주로 무장으로 채택해 사용했다. 빠르게 이루어지는 공중전의 특성상 발사속도를 매우 빠르게 개조하여 사용했지만 항공기의 특성상 고속 비행하면서 사격하므로 맞바람이 냉각에 도움이 되어 과열 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높이 있어서 기온이 낮았으므로 과열되기가 더욱 어려웠다.

6. 창작물

6.1. 영화

주로 떡대 등의 한 체력 하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쏴갈긴다. 사수가 적이라면 주인공의 손에 죽으며 주인공이나 동료라면 시원하게 쏴갈기면서 명중률도 높은 사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끔 기관총 옆에 탄띠를 무지막지하게 쌓아놓고 농성하는 무한탄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6.2. 총을 든 소녀

미소녀들이 내장형 근육을 보유했는지 이걸 자유자재로 다룬다. 이유도 대부분 개조인간이나 인조인간, 초능력이나 마법 덕분에 초인이라는 식이다. 사실 포화란이나 징크스처럼 '빈약한 몸매의 중화기 소녀'라는 미스매치에서 오는 갭 모에를 즐기는 오타쿠들은 전세계적으로 있다.

6.3. 게임

1인칭 슈팅 게임에서는 주로 화력이나 장탄수, 연사력이 압도적이지만 반동 역시 압도적이거나, 명중률이 낮거나, 재장전 시간이 일반 소총의 2~3배라든가, 정조준하는 데 오래 걸리거나, 이동이 불가능하는 식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나온다. 퓨즈 PKP처럼 단발 사격으로는 충분히 정밀 사격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사실 현실의 기관총은 무게가 무거워서 서서쏴를 해도 반동이 없다시피 하며, 적당히 자리 잡고 쏘면 반동 제어에 유리하고 명중률도 매우 좋은 편이다.

좀비전에서는 넉넉한 장탄과 높은 파괴력, 빠른 연사력, 근접 공격만 가능한 좀비의 특성상 산탄총과 함께 필수 품목이다.

전차 게임에서는 못해도 12.7mm 철갑탄쯤은 되어야 각도가 좋고 거리가 가까울 경우 약점을 관통할 수도 있으며 조금만 장갑이 두터워져도 20mm 경심철갑탄까지 씹혀버리니 시선끌기 이외엔 큰 쓸모가 없다.

항공기 게임에서는 비행기의 외피가 대부분 알루미늄이라서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으나, 고폭소이탄 등의 다양한 탄종이 구비가능한 대구경 중기관총이나 기관포의 하위호환이다. 항공기 자체에도 조종사나 기타 주요부위 보호를 위해 수mm 두께의 강판이나 몇cm짜리 방탄유리가 둘러쳐지기도 하고. 가령 워 썬더에서는 복엽기를 비롯한 초기형 전투기를 벗어나면 7mm대의 탄을 맞아도 대부분의 경우 큰 피해를 입지 않으며, 기관총 1정으로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단, 티어제 게임들에서는 월드 오브 탱크의 T7 컴뱃카, 워썬더의 거의 모든 저랭크 자주대공포와 항공기, 고속정 등 낮은 티어에 12.7mm 이하 기관총을 사용하는 차량이나 항공기가 배치되는 경우가 있다. 매치메이킹에 관여하는 장비의 티어를 결정할 때도 이런 무장에 따른 화력 차이가 크게 고려된다.

7. 나무위키에 등재된 기관총들

총기/목록 참고.

[1] 카라빈 마시노비 [2] 지창, 현대 중국어에서 枪은 총의 의미로 쓰인다. [3] '발사 장치'라는 의미의 조어이다. [4] '총알 뿌리개'라는 의미를 갖는 조어이다. [5] 쿨로메트, 러시아어 пулемёт와 같은 형태의 조어이다. [6] 본래 의미는 기관총의 준말이나, 항공기의 동축 기관총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항목 참조. [7] 화살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근접용 화포였기에 화약의 폭발 에너지를 손실없이 근접한 적들에게 쏟아냈고, 작은 크기 때문에 현대의 돌격소총 탄환처럼 화약의 위력에 의한 지근거리에서의 관통력이 높았다. [8] 만약 비공업국 측에 화승총이나 화포류가 존재할 경우 거의 대등한 수준의 전투를 수행하거나 우세를 점할 수도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보면, 수적으로도 밀렸던 조선군이 독하게 항전해 조선의 가성비(...)가 낮다는 것을 어필시켜 물러나게 하는 것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9] 당시 수단은 수피파 이슬람교 교단인 마흐디 교단이 지배하던 종교 국가였다. 그래서 이때의 수단을 가리켜 마흐디 신국이라고도 하며, 이 마흐디 교단이 지배하던 수단은 1883년부터 영국을 상대로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10] 이집트쪽의 지원군이 1만 정도 있어서 약 2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11] 출처: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 337쪽 [12] 이는 미국이 임무별로 분류하던 기존의 분류법을 단순하게 중량별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 퍼져서인 것도 있다. [13] 브라우닝 자동소총도 M1918이다. 넘버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물건이니 헷갈리지 말자, M1918 중기관총은 그리 유명한 물건이 아니고 프로토타입 수준이라 생산 수량도 적어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14] 미국과 독일의 개발 시기가 거의 비슷하지만 다른 곳에서 각각 개발하던 물건이다. 서로 영향을 줬는지는 불확실. [15] 사실 미군 험비의 옵션 정도로 달아두고 여기저기서 써먹는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는 탁 트인 개활지가 많아 교전 거리도 길어지는데 M2의 12.7mm는 사거리가 충분히 받쳐주는 데다 어지간한 엄폐물 정도는 박살내고 뒤의 적 사수를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중기관총이 공세용으로 쓸모가 없다는 말도 차량화가 덜 되었던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보병이 들고 다니는 것은 7.62mm 이하 급의 기관총이다. [16] 예외적으로 공중폭발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OCSW는 기관총 탄약도 사용해서인지 기관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쨌든 취소 크리를 먹었으니 이러나저러나 큰 상관은 없지만. [17] MG 42의 영향을 받아 철제 개머리판과 양각대가 달린 M1919A6가 있긴 하지만, 이건 빈 총 무게가 15kg을 넘는 탓에 경기관총처럼 쓰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태생적인 설계 때문에 총열교환이 한참 걸린다는 문제점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18] DP-28은 총열교체가 MG 34/42나 Vz.26계열만큼은 아니라도 충분히 야전에서 쉽게 교체 가능한 구조였지만 소련군은 일반적으로 DP-28 사수들에게 예비 총열을 지급하지 않았다. [19] 물론 버전에 따라 거치 기구, 발사 장치에 약간씩의 차이는 있는 경우가 많지만 총몸과 대부분의 부속은 호환되는 경우가 많다. [20] 물의 무게는 리터당 1kg으로, 생각보다 꽤 무거운 물질이다. [21] 다만 신규 개발이나 생산이 아닌, 옛날에 생산된 수랭식 기관총이 제3세계나 분쟁지역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간혹 있다. [22] 달궈진 냄비를 상온에 그냥 두는 것과 물에 담그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식힐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만 극도의 혹한 등 특수한 환경에서는 수랭식 못지않은 냉각 성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아래에 서술할 항공기 기총의 경우에도 공랭식이며, 장진호 전투에서는 수랭식 기관총에 냉각수를 넣으면 동파될 정도로 기온이 낮아 냉각수를 넣지 못했는데도 총이 과열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23] 옆에 긴 물통을 두고 탈착한 총열을 담가두기도 한다. [24] 파일:567152_37408_279.jpg 사진 가장 왼쪽의 파란 뚜껑이 있는 긴 원통형이 냉각수를 담아두는 통, 그 옆의 빨간 뚜껑은 예비총열을 수납해 두는 통이다. [25] 1차대전에서 한국전쟁 때까지 상황에 따라 공격 측이 닥돌로 엄청난 병력을 계속 밀어넣으며 시체의 산을 쌓으면서도 계속 돌격해오는 경우는 현대전에선 더 이상 생각하기 힘들다. 인해전술 등을 막기 위해 100발 이상을 쏠 일이 없다. 별 관계없을지 몰라도 현대의 포병은 신속한 사격과 재빠른 위치 이탈이 더욱 중요해져 과거처럼 견인포를 방열해놓고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지속 사격을 퍼붓는 것이 일어날 가능성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괜히 한국 육군이 향후 포병 주력을 자주포로 하고 견인포들을 예비군용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다. [26] 이 점에서 공랭식 기관총이 수랭식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삼각대, 예비 총열 등 부수 기재를 감안해도 중량 차이가 심하게 나므로 공랭식은 수랭식보다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기관총을 휴대하고 다닐 수 있다. [27] 대용량 탄창은 기본에 기관총은 대부분 고위력이라 중장거리에서도 위력이 보장된다. 서서 쏘기엔 반동이 강해서 좋지 않으나 앉기만 해도 쏘기에 나쁘지 않고 거치를 할 경우 반동이 대폭 감소한다.자리 잘 잡은 기관총 사수 한 명이 저격수 열 명 부럽지 않다 [28] 자유로운 총기 부착물이 보편화 된 ARMA 3에 와서는 기관총으로 장거리 사격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고배율 망원조준경을 달아서 저격도 노릴 수 있다. 물론 저격을 제대로 할 생각이라면 저격소총이 좋다. [29] ARMA에는 캐릭터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한계가 따로 존재하는데, 무거운 상태가 되면 쉽게 지쳐서 기동력이 크게 떨어진다. 서버에서 스태미나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왠만해선 단독으로 기관총 탄약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것은 안 좋다. [30] 원샷 원킬이 가능한데 실제 인간은 권총탄만 맞아도 한방에 골로 가기에 게임의 재미를 위해 버프를 먹일 수 밖에 없다. [31] 이때는 전 플레이어가 동시에 리스폰 하는데다 빨리 진지점령을 해야하므로 가장 치열하다. [32] 마우스 우클릭으로 조준 사격과 연사시 발사수를 결정하는데, 항상 연사로 설정되어있어 조준 사격 정도를 결정할 수 없었다. [33] 3점사 기능이 있는 HK21/ HK23E를 쓰면 어리버리한 용병도 총알 낭비 걱정은 없다. 역시 H&K. [34] Close Combat Optic [35] 기본 언락이다. [36] 경기관총에 부착할 수 있는 최대 배율의 조준경이다. [하지만] Proving Grounds 버전에선 평균 교전거리가 짧아서 별로 잘 체감되지 못한다. [38] 이렇게 된 이유가 체머가 소형부품에서 체력데미지를 주는 사라만다와 쇼크웨이브에 크게 약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공대응 가능한 전천후 무기라곤 하지만 당시의 체머는 강화도 3성 이하였던 시절이라 별도의 공격력 강화는 기대하기 힘들어 60대 초반에 연사력 100이었고, 이런 화력으론 소형유닛 한둘이라면 몰라도 대량으로 몰려오면 빨리 정리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사라만다와 쇼크웨이브 공격 한방에 체력의 5%. 즉 체력 100 넘게 깎여나가는 어처구니없는 딜교환이라 방연머로 교체된 것이다. 물론 교체된 시기에는 강화수준도 높아져서 공격력에 투자한 경우도 많았던데다 이런 방연머는 투파를 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공격력은 7-80대 정도에 연사력은 상술했다시피 45로 화력이 2배가 넘었고, 소형유닛들은 돌격하는 족족 갈려나갔다. 기존의 체머와 싸워도 방어력이 훨씬 높은데다 화력의 차이도 넘사벽이라 손쉽게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