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ecio Albinus 세네키오 알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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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전체 이름 |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Marcus Nummius Umbrius Primus Senecio Albinus |
출생 | 미상, 로마 제국 이탈리아 베네벤툼(또는 브레시아) |
사망 | 미상 |
직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
가족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숙부) 눔미우스 알비누스(아버지)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양아버지)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서기 227년 집정관)(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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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시기의 원로원 의원, 서기 206년 정규 집정관.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조카이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도운 인물로, 세베루스 왕조 시기의 주요 인사이다.
2. 생애
성씨와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탈리아의 오래된 플레브스 씨족 가문인 눔미우스 가문 출신이다. 고향은 남부 이탈리아의 베네벤툼 혹은 북부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이다.친아버지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이복동생 눔미우스 알비누스이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시점에 친가쪽의 친척 어른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의 양자로 입적됐다.
그의 아버지와 일가, 친가 쪽 친척인 입양 가문 모두 밀라노의 거부, 지역유지이자 푸닉 지방에도 상당한 사업체를 가진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일가와 밀접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집안 전체의 생활 환경과 기반은 남부 이탈리아의 베네벤툼과 남이탈리아의 콤프사, 그리고 북이탈리아의 브레시아였다. 이중 오늘날 롬바르디아 지방의 브레시아에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일대와 인연이 깊었는데, 그는 일찍부터 고향 마을과 브레시아에 기부, 봉사, 후원 활동을 하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따라서 주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지지가 상당했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아버지의 고종 사촌 내지 할머니쪽 친척어른인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에게 자녀가 없던 이유로 양자로 입적됐다. 그래서 실제 경력 역시 친아버지보다는 양아버지 움브리우스 프리무스의 도움 아래에서 군경력을 시작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세네키오 알비누스의 첫 경력은 귀족 신분임에도, 중하위 장교를 시작으로 했고, 실제 지휘관 경력은 기병대 대대장부터였다. 그렇지만 그 전에 친부의 이복형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도움 아래에서 트리움비르 모네탈리스[1]을 지내고, 곧바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외가 근거지인 푸닉으로 건너가서 재무관을 지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와 율리아누스의 먼 친척으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친척 세베루스의 도움으로 아프리카 속주의 주도 카르타고에서 이곳 재무관을 지냈다.[2]
다섯 황제의 해가 터진 193년부터 양부와 함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지지했고, 세베루스의 로마 진군에 참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193년 원로원은 세베루스에게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지지 철회를 보여줄 요량으로 그를 탄핵해 폐위시킨 뒤 처형하면서, 세네키오 알비누스의 친부까지 죽였다. 그렇지만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세네키오 알비누스의 숙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친부 눔미우스 알비누스 등의 시신을 정중히 수습해 유가족에게 장례를 허락했다.
세베루스 왕조가 수립된 이후, 양부의 도움과 추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추천 아래에서 명예로운 경력을 이어나갔다. 그는 친부의 의석을 이었고, 양부가 총독을 역임할 때마다 부총독에 임명돼 다양한 실무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움브리우스 프리무스가 아프리카 속주 총독, 아시아 속주 총독을 연이어 지낼 때에 그 실무를 도우면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조카이면서도, 세베루스 왕조의 핵심 인사이나, 191년부터 들판형제 사제단의 사제였고 199년부터는 황제가 직접 임명한 국가 제사를 주관한 사제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서기 199년경,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그 후계자 카라칼라를 돕는 황실 후보 그룹에 편성돼 재무관을 겸하는 역할을 맡았고, 204년 법무관에 추천돼 법무관이 됐다. 이때 그는 세베루스 황제 부자의 도움으로 법무관이 됨을 감사하다는 연설을 하면서 취임했다. 이후 2년 뒤인, 206년 정규 집정관에 추천받아 임명됐고, 세베루스 황제와 카라칼라의 후원 아래에서 황실 특사가 된 뒤, 209년 세베루스의 칼레도니아 원정에 앞서, 원로원 안에서 세베루스, 카라칼라의 대리권자 자격의 사법 주재 고위 관직에 임명됐다. 이때 그는 209년~212년까지 히스파니아 지방으로 이동해 총독도 겸했다. 그러다가 카라칼라 단독 통치가 열린 212년부터는 카라칼라 황제의 적극적인 추천, 율리아 돔나의 판단 아래에서 달마티아 황실특사 자격으로 파견돼, 다누비우스 전선의 로마군 전체를 감독했다. 이런 경력을 가진 세네키오 알비누스는 서기 221년 또는 222년 아시아 속주 총독을 끝으로 모든 경력을 마무리했다.
이름 미상의 아내와 결혼해, 227년 집정관이 된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라는 아들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