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25 17:12:54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레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라틴어: Lucius Aurelius Commodus Pompeianus
전체이름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Lucius Aurelius Commodus Pompeianus
생몰년도 서기 177년~ 서기 211년(또는 서기 212년)
지위 원로원 의원, 집정관, 로마 황족
왕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종교 로마 다신교
부모 폼페이아누스(父)
루킬라(母)
아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황족, 원로원 의원, 집정관. 세베루스 왕조 시대때까지 살았던 옛 안토니누스 가문의 방계황족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소 파우스티나 부부의 외손자이다.

서기 211년 12월 말 또는 212년 1월 초 카라칼라가 게타를 존속살해할 당시, 고모 등 옛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황족들과 함께 카라칼라의 명령으로 재판 없이 살해됐다.

2. 생애

전체 이름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소 파우스티나 황후의 사실상 첫째인 루킬라 공주가 재혼으로 맞이한 남편 폼페이아누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다. 아버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는 결혼 당시 30대 후반인 장군으로 첫 결혼이었고 루키우스 폼페이아누스는 아버지에겐 첫 아이였다.

부모 사이가 냉랭해, 일찍부터 부모는 그를 낳은 직후 별거했고, 어머니 루킬라는 남자 애인을 여럿 구해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동시대 로마인들이 말한 것처럼 "위대한 조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평처럼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친가가 있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가 아닌 로마와 이탈리아에서 자랐다. 이런 배경처럼 그와 두 아들은 모두 로마와 에트루리아에서 기원한 오래된 노빌레스 가문 안토니누스 일가이자 이탈리아인이라는 자각이 강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개인적 원한과 권력욕 때문에 평범하게 제국을 통치하던 외삼촌 콤모두스를 암살하려고 했기 때문에, 앞길이 막힌 듯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182년 콜로세움 암살 미수 사건 당시, 루키우스의 나이는 고작 5살이었고 180년 그는 아버지 티베리우스 폼페이아누스와 함께 이탈리아 시골 별장에서 살면서 루킬라와 교류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외삼촌 콤모두스는 조카 루키우스 폼페이아누스에게 어떤 보복도 하지 않고, 그를 자기 혈육으로서 후원했다. 그래서 그는 외삼촌 콤모두스 시대 내내 로마 황족으로서 누릴 모든 특권 속에서 어린 나이에 원로원 의원이 되고, 군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192년 11월, 외삼촌 콤모두스가 스스로를 "로마의 헤라클레스"라고 공식 선언하고 콜로세움에서 플레부스의 날을 기념해 검투사로 직접 나서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콤모두스가 192년 11월 수많은 맹수들을 혼자 힘으로 다 죽이는 초인적인 능력을 공개할 당시, 황제는 원로원 의원들을 손수 초대해 관람하도록 명령했다. 그래서 세습 원로원 의원이었던 디오 카시우스, 동서인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등은 반강제로 이 경기를 모두 관전했다. 그런데 처남의 막장행각을 참다 못한 폼페이아누스는, 동서지간인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를 비롯한 다른 원로원 의원들과 달리 유일하게 콜로세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표면상 이유는 건강상 문제였다고 하는데, 디오에 따르면 이건 핑계였다. 대신 그는 자신의 아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를 대리인 자격으로 내보낸 뒤, 아들을 통해 자신이 콤모두스의 안녕과 선전을 빈다고 의견을 밝혔다.

허나 폼페이아누스는 이 행동을 통해, 변해버린 처남 콤모두스에게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폼페이아누스가 장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유지를 받들고, 콤모두스를 지켜주겠다는 것만은 지켜주기 위해 아들을 보냈을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그리고 1달 뒤인, 192년 12월 31일 콤모두스가 황궁에서 애첩 마르키아, 침실 시종장 에클렉투스, 단독 근위대장 아이밀리우스 라이투스의 사주를 받은 개인 레슬링 교사에게 교살됐다.

192년 12월 31일 저녁, 콤모두스가 암살되고, 다음날인 193년 1월 1일 원로원과 근위대에서 폼페이아누스와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에게 황제 자리에 오를 것을 제안했다. 이때 티베리우스 폼페이아누스는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와 함께 원로원에 출석해 후임황제 자리를 제안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본인과 자녀 모두 황제 자리에 뜻이 없다고 밝히면서 혼란해질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루키우스는 제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코르니키피아와 불륜 관계인 페르티낙스가 후임황제가 됐다.

이후 페르티낙스가 피살되고, 로마는 다섯 황제의 해라는 초유의 내란에 휩싸인다. 이때 그는 제1군단 미네르비아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하면서, 루그두눔(오늘날의 프랑스 리옹)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그 가족을 위한 제단 헌납을 하면서 세베루스 지지를 선언했다. 그래서 그는 190년대 세베루스 치세기때 여러 임무를 부여받고, 서기 209년 집정관에 순조롭게 당선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모부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처럼 세베루스 왕조에게 눈엣가시 같은 위험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세베루스 왕조가 제 정통성을 위해 안토니누스 가문의 정통을 주장하는 현실 속에서, 몇 없는 진짜 안토니누스 가문의 적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베루스 황제는 그를 용서했다. 허나 카라칼라는 그를 없앨 궁리를 했고, 서기 211년 12월 또는 서기 212년 1월 게타가 카라칼라 손에 살해된 직후, 처형됐다.

이때 카라칼라는 루키우스의 이모 코르니피키아 공주를 "게타가 죽은 것을 슬퍼한다."는 누명을 씌워 살해했고,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를 살해할 당시에는 게타 지지자로 몰면서도 대중들의 반발을 의식해 "도적들에게 살해당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아들로는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가 있었는데 두 아들 모두 군경력을 거쳐 집정관에 올랐다.

3. 기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왕자 루시우스가 바로 이 인물이다. 속편인 글래디에이터 2에서 주인공 역을 맡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