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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03 15:34:27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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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레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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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 ???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 Flavius Antiochianus)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로마 원로원 의원, 집정관, 로마 수도 장관
배우자 폼포니아 움미디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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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 시대의 집정관, 원로원 의원. 악명 높은 로마 제국의 황제 엘라가발루스 시대때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장, 221년 집정관을 지낸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의 동명이인 아들이다.

3세기의 위기 속에서 유명무실해진 원로원을 이끌고, 정국을 주도한 당대 최고의 거물 정치가이다. 따라서 두번째 집정관을 지낼 당시, 후기 로마제국에서 보일 법한 형태로 집정관을 지내면서 황제 대리인 역을 수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갈리에누스 암살 이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를 도와 로마 제국의 불안한 정국 혼란을 수습하고 무차별적인 숙청을 막았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사후 정국 흐름 속에서 퀸틸루스, 아우렐리아누스 통치 기간 내내 내홍에 빠진 제국을 통합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 생애

전체 이름은 미상이나, 아버지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와 마찬가지로 개인이름은 티투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는 시리아 코일레 속주의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 혹은 셀레우코스 제국 아래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그리스 사람의 후손이다. 어머니의 신원은 불분명하나 모친 역시 기사계급 이상에 속한 그리스 혈통 로마인으로 추정된다.

동명이인의 아버지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는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래에서 백인대장을 거쳐 원로원에 입성한 '신참자(노부스 호모)'다. 그는 세베루스 황제 아래에서 기용된 직업 군인 출신 신참자로 211년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 보조군 사령관을 지냈고, 이후 북아프리카의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로 건너가 이곳 주둔 군단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군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군부의 신뢰 하락 속에 위기에 빠진 엘라가발루스 정부에게 221년 집정관에 추천받아 로마로 귀환했다. 이후 그는 엘라가발루스 아래에서 프라이토리아니를 이끄는 근위대장에 임명됐는데,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암살을 명받자 이를 꺼림직하게 여겨 그 명을 받들길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는 프라이토리아니 부대원들이 222년 3월 11일 엘라가발루스,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히에로클레스를 죽일 때, 팔라티노 황궁으로 쳐들어가 스페스 베투스 정원을 뒤지는 부하들을 만류했다가 이 사건이 꼬투리잡혔다. 그래서 그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즉위 직후, 울피아누스에게 누명을 쓰고 살해됐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는 성년식을 치룬 뒤, 이탈리아의 오래된 세습 귀족 폼포니우스 바수스의 딸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몇 안 되는 방계 황족 후예인 폼포니아 움미디아와 결혼했다. 아내 폼포니아 움미디아는 엘라가발루스에게 남편이 살해되고, 강제로 결혼식을 올린 안니아 파우스티나의 1남 1녀 중 첫째로 부계는 이탈리아, 모계는 그리스 폰투스와 히스파니아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결혼은 안니아 파우스티나가 엘라가발루스의 새로운 아우구스타로 낙점되기 직전에 거행됐다. 따라서 이를 빌미로 엘라가발루스는 안니아 파우스티나에게 협박을 할 때, 억울하게 살해된 남편을 추모한다면 딸과 사위부터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결혼 직후부터 장모 안니아 파우스티나 소유의 피시디아 개인 영지 내 대저택으로 건너가 살았다고 한다. 이는 최근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발굴된 로마 시대 비문을 통해 확인된다. 비문에서는 아내 폼포니아 움미디아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름 미상의 자녀가 여러 명 있었음이 1970년대 연구에서 확인됐다.

처남 폼포니우스 바수스(259년 집정관)와 일찍부터 정치적 동지이자 의형제 같은 사이였다. 그래서 세베루스 왕조의 몰락을 같이 체험. 이후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학정을 경험하면서, 이후의 혼란기를 모두 거쳤다. 이 사이, 그는 원로원 동료와 일반 서민들에게 유능하고 책임감 강한 원로원 의원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다가 갈리에누스가 암살되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제위에 올랐다.

순수 군인 출신으로 원로원과 연줄이 없던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황제는 즉위 직후,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황제는 그를 보결 집정관으로 추천했고, 수도 장관 자리를 내려 내각을 이끌게 했다. 이후에도 황제는 전염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그를 신뢰해 고견을 듣고 여러 원로원 의원, 장군을 등용했다. 따라서 갈리에누스 치세 말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는 전염병에 걸려 죽었고, 그 다음 황제가 된 퀸틸루스는 아우렐리아누스에게 제위를 빼았긴 뒤 자살했다.

그렇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안티오키아누스를 죽이거나 은퇴시키지 않고, 더 크게 중용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그에게 두 번째 집정관 직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티오키아누스에게 로마 시의 행정, 치안을 담당하는 수도 장관 자리를 주면서, 고견을 구했다. 이런 이유로 안티오키아누스는 두번째 집정관을 지낼 당시 발리네움 건설 책임자로 발탁됐고, 황제 대리인 지위를 받아 아우렐리아누스 정부의 실질적인 2인자로 제국 개혁을 책임졌다. 이 시기 1군단과 인근 로마 민중들을 위해, 오론테스 강변의 안티오키아에 안티오키아니 목욕탕으로 알려진 거대한 목욕탕을 짓는 계획을 세웠다.

음모를 꾸미거나, 활용해 상대에게 원한을 사지 않아 이 부분에서 큰 존경을 받았다. 따라서 아우렐리아누스는 두 번째 집정관을 지낸 직후의 안티오키아누스에게 271년, 272년 그리고 274년에 수도 장관 직을 맡게 할 만큼, 그를 곁에 끝까지 두려고 했다. 하지만 아우렐리아누스는 275년 10월에 살해됐다.

아우렐리아누스가 암살된 이후, 안티오키아누스의 기록 역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무렵 아내와 함께 피시디아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비문이 피시디아에서 발굴된 만큼, 아우렐리아누스 사후에는 정계 은퇴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