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Marcus Munatius Sulla Urbanus)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
가족 | 부친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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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군인황제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이다. 보통은 술라 우르바누스로 통칭된다.3, 4세기 로마 원로원 의원 중 이탈리아 오스티아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집정관을 지냈고 푸피에누스 황제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주장과 달리 오래된 이탈리아 세습 귀족이며 몰락한 클라우디우스 가문 내 풀케르 가 후손인 것을 소개해 널리 알려지게 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아버지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와 함께 로마 공화정 후기의 악명 높은 종신독재관 술라의 방계 후손으로 스스로도 그 후예를 자처했다. 후일 황제가 되는 푸피에누스의 동료 집정관으로 234년 재임했다.
2. 생애
이름 중 코그노멘으로 사용한 술라(Sulla)에서 드러나듯, 3세기 원로원 의원 중 이탈리아 혈통의 로마 귀족으로 종신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일가의 방계 후손이다.최근 발굴된 오스티아 안티카 (Ostia Antica) 비문의 주인공으로, 비문에 따르면 아버지는 종신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방계 후손임을 주장하고, 자랑스럽게 여긴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다.
아버지가 서기 215년 집정관을 지냈고, 엘라가발루스에게 누명을 쓰고 살해됐지만,[1] 어거지로 누명을 쓰고 처형된 이유 등으로 생존해 234년 집정관에 올랐다. 그렇지만 이 외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최근 독일쪽 연구에 따르면, 그의 부친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는 이탈리아 출신 상류층이나 오랜 세월 가족 중 고위직이나 공직에 오른 사람이 없어 노부스 호모와 같은 경력을 걸었고, 가문이 귀족 반열에 오른 것은 209/210년 무렵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치세 후기였다.
[1]
엘라가발루스는 카파도키아 속주 총독인 술라 케리알리스가 하룻밤만에 게르마니아 지방의 군단을 포섭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사람을 보내 자살을 명령하고 죽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오늘날처럼 하루만에 튀르키예 동쪽 끝에서 독일 라인강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지금처럼 전화나 통신으로 이런 혐의를 꾸밀 수 없어, 말도 안 되는 혐의로 생사람을 잡는 꼴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