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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15:35:08

두릉양


사마진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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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동진 성제의 황후
성공황후 | 成恭皇后
출생 321년
동진 옹주 경조군 두릉현
(現 산시성 시안시 옌타구)
사망 341년 4월 27일 (향년 20세)
동진 단양군 건강현 황궁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흥평릉(興平陵)
재위기간 동진 황후
336년 ~ 341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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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성씨 경조 두씨
릉양(陵陽)
부모 부친 당양목후 두예
(當陽穆侯 杜乂, ? ~ ?)
모친 광덕현군 배목
(廣德縣君 裵穆, ? ~ ?)
배우자 현종 성황제
시호 성공황후(成恭皇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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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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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양후 두예의 딸로, 증조부로는 삼국지에서 오나라 정벌로 유명한 두예(杜預)가 있다. 진성제 사마연에게 시집을 가 황후가 되었다.

2. 생애

두릉양의 증조부 두예는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고 서진의 뛰어난 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부 두석, 부친 두예 모두 손꼽히는 명사로서 상당한 명예를 누렸다. 또, 모친은 태위 왕연의 외손녀로, 두릉양의 집안은 서진에서 힘 있는 명문가 중 하나였으나, 아버지 두예가 두릉양의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절하는 바람에 어머니 배목 홀로 딸을 키웠다.

두릉양이 성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예법에 밝았고 미모 또한 출중했다. 그녀가 15살이 되던 해, 동진의 황제 사마연은 대대로 덕망이 높은 두씨 가문을 흠모하여 두릉양을 황후로 맞이하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여러 예물을 준비하고 두릉양을 초빙하자, 두릉양은 초빙을 받은 그날 입궁하여 황후가 되었다.[1] 사마연과 두릉양이 혼례를 마치고 태극전에 오르자, 여러 백관들이 환호하며 축하해주었다.

341년 3월, 두릉양이 2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두릉양은 약 5년간 황후에 있었으나 아이를 한명도 가지지 못했다.[2] 사마연은 그녀에게 성공(成恭)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신하들에게 장례를 검소히 진행하라 명하였다. 이듬해 6월, 진성제 사마연도 갑자기 사망했고, 부부는 흥평릉(興平陵)에 합장되었다.

3. 기타

두릉양은 성년이 될 때까지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두릉양이 성년에 되자 여러 가문에서 청혼하러 왔다가도 그녀가 이빨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되돌아갔으나, 오직 진성제 사마연만이 두씨 가문의 덕망을 흠모해 그녀와 혼인하고자 했다. 이에 두릉양이 입궁하여 혼례식을 준비하던 날, 두릉양의 이빨이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다 자랐다고 한다. 다소 믿지 못할 내용이지만, 무려 정사인 《 진서》 열전에 수록된 일화이다. 선천적으로 이빨이 하나도 없는 전악무치증이라는 증상이 있긴 하지만 매우 희귀한 질환이며, 실제 그걸 앓았다 해도 결혼했다고 하룻밤 사이에 이빨이 나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니, 아마 마음에 들지 않는 혼사를 거절할 때 썼던 변명으로 보인다.

4. 둘러보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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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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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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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중국에서는 주나라대부터 15살을 성년으로 보았다. 참고로 사마연과 두릉양은 음력으로 보면 서로 동갑일 정도로 나이 차이도 없었다. [2] 사마연의 자녀들은 모두 귀인 주씨(周氏) 소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