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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21:54:23

고려 거란 전쟁/평가/역사 왜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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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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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 고려· 거란· 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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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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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밴드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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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김장훈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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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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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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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AGI (이야기)
2024.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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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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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 비판
2.1. 17~20회 비판 ( 5도 양계 개혁 시기)
2.1.1. 1월 13일, 17회2.1.2. 1월 14일, 18회2.1.3. 1월 20일, 19회2.1.4. 1월 21일, 20회
2.2. 21~24회 비판 (고려-거란 외교전 시기)2.3. 25~28회 비판 ( 김훈·최질의 난 시기)
3. 제작진들에 대한 비판
3.1. 10-11월, 제작진의 방영 전 인터뷰3.2. 12-1월, 원작자의 방영 초 비판3.3. 1월 13-14일, 17-18회 방영 이후3.4. 1월 23일, 제작진과 원작자의 공방3.5. 1월 24일, 원작자의 추가반박3.6. 1월 25일, 제작진의 제1시청자청원 답변3.7. 1월 26일, 시청자들의 트럭 시위3.8. 1월 27일, 제작진의 제2시청자청원 답변3.9. 1월 29일 이후
4. 유사 사례
4.1. 사극에서의 유사 사례4.2. 원작자-극화 제작진 간 갈등 사례
5. 여담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17회를 기점으로 시작된 역사 왜곡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내용 비판

2.1. 17~20회 비판 ( 5도 양계 개혁 시기)

2.1.1. 1월 13일, 17회

2.1.2. 1월 14일, 18회

2.1.3. 1월 20일, 19회

2.1.4. 1월 21일, 20회

2.2. 21~24회 비판 (고려-거란 외교전 시기)

2.3. 25~28회 비판 ( 김훈·최질의 난 시기)

3. 제작진들에 대한 비판

3.1. 10-11월, 제작진의 방영 전 인터뷰

2023년 10월 31일, 전우성 감독은 "역사 기록에 충실한 이야기 전개가 펼쳐질 것이다. 중요한 역사적 기록은 충실히 담아내되, 극적인 이야기로 각색해 시청자가 즐길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여타의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KBS 대하 사극만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고려 거란 전쟁'에는 고려사에 기록된 당시 사건이 대부분 망라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잇는 강력하고 매력적인 서사가 구축되어 있다. 재미있는 역사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이정우 작가에 대한 무한신뢰를 드러냈다. #

2023년 11월 7일, 이정우 작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여러 전문가를 만나 자문을 받고, 그 시대를 공부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했다",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최대한 배제했다, 기록이 적을 때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몇 줄 안 되는 그 인물들의 업적이 곧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종이란 위대한 군주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등을 말했다. #, 발굴

3.2. 12-1월, 원작자의 방영 초 비판

12월 9일, 길승수 원작자는 (8회 통주 전투에서 강조의 최후가 허망하게 묘사된 것에 대해) "대본 작가가 대본을 잘 못 쓰고 있죠. 앞으로는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비판했다. 길승수 원작자는 윤지혜 작가, 김한솔 PD를 칭찬하고 이정우 작가를 몹시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1월 10일, 길승수 원작자는 (16회 양규-김숙흥의 비중 축소에) "흥화진 전투, 삼수채 초반부, 양규 전사씬은 김PD가 썼으며, 이정우 작가는 '태종 이방원의 조사의의 난'이나 쓸 그릇"이라고 비판했다. #, #

3.3. 1월 13-14일, 17-18회 방영 이후

제2차 여요전쟁 이후 전후복구에 대한 내용을 다룬 17회부터 극에 대한 논란이 발생했는데 소위 '고려궐안전쟁', '이정우 강점기' 등으로 요약되는 암흑기로 해당 평가는 다음주 20화 방영까지 계속 이어졌다. 출판된 원작 소설의 분량이 끝난 데다 제작 초반부에 있었던 윤지혜 작가[26]의 영향 및 김한솔 PD가 연출하던 전쟁 장면이 사라진 17회부터는 역사적 사료와 원작자의 지침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정우 작가, 전우성 PD 측의 전횡으로 그려진 대본으로 인해 이전의 방향성과 미장센을 상실해 드라마의 질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1월 15일, 길승수 원작자는 "원작계약은 2편(고려의 영웅들) 뿐만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3편(구주대첩)까지 했다", "당연히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에는 없다", "대본 작가가 자기 작품을 쓰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정말 한심하다" "작가가 정신들 차리기를 기원한다", "대하사극이 아니라 정말 웹소설 같았다"고 말했다.웹소설은 재미라도 있고 많진 않지만 작품성도 있다 #

1월 17일, 길승수 원작자는 "이정우 작가가 양규를 자기가 쓴 캐릭터가 아니라고 해서 비중을 확 줄였더군요. 그래서 양규 가족들에게 현종이 감사하는 장면도 삭제"했다고 비판했다. #

1월 18일, KBS 시청자 청원에 원작 소설의 전개대로 진행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5일만에 KBS가 답변해야 하는 기준선 1천명을 돌파했다.

1월 19일, 오마이뉴스 역사담당 김종성 기자가 5도 양계 개혁과정이 막장 드라마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장문의 비판 기사를 올렸다. # 김종성 기자는 해당 회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려의 지방제도 개편이 시행된 때는 음력으로 현종 3년 1월이다. 양력 1012년 1월 26일에서 2월 24일 사이의 일이다. < 고려사절요>는 이때 "12주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와 75도 안무사를 설치했다"고 알려준다. 제2차 고려거란전쟁 직후에 이런 방식의 지방제도 개편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개편으로 국가적 분열이 일어났고 평정심을 상실한 현종이 낙마하는 정도의 상황까지 조성됐다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 짤막하게라도 그것이 언급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기록만 놓고 본다면 드라마에서 묘사된 대혼란은 실제로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호족 가문 출신인 강감찬이 현종과 극단적 갈등을 빚었다면, 이런 사실이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 언급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강감찬 열전에 나타나는 것은 제2차 고려거란전쟁 이후로 강감찬의 조정 내 입지가 꾸준히 좋아졌다는 내용뿐이다. 드라마 장면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사실이다.

고려 전기에 중앙 군주와 지방 호족 간의 대립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현종 3년의 지방제도 개편에는 '군주 대 호족'이라는 쟁점도 당연히 담겨 있다. 종전보다 훨씬 많은 지방관이 파견된 것은 중앙 왕권이 호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장됐음을 의미한다.현종 3년의 개편에는 그런 쟁점과 더불어 '군주 대 지방관'이라는 또 다른 구도도 담겨 있다. 군정장관의 성격이 농후한 절도사를 폐지하고 민정장관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한 안무사를 대거 파견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제2차 고려거란전쟁 과정에서 권력이 비대해지기 쉬웠던 지방 군정장관 직을 없애는 작업이 전쟁 직후에 전개됐음을 의미한다.

즉 호족들이 볼 때는, 강력한 절도사가 사라지고 온건한 안무사가 찾아오니 이는 그들에게 유리한 조치였다. 현종이 볼 때는, 이전보다 강하지는 못해도 훨씬 많은 수의 지방관을 파견하게 되니 호족들을 더 촘촘히 견제할 수 있었다. 호족들의 시선을 '절도사 폐지'로 돌리면서 왕권을 확대시키는 절묘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치적 반발이 최소화돼 <고려사절요>에 별다른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거란전쟁>에서는 전쟁 중에도 현종과 호족의 갈등이 심했다는 점만 강조됐다. 이 구도에만 치중하다 보니, 현종과 절도사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는 점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고려사> 지채문 열전에 따르면, 제2차 전쟁 중에 현종이 지금의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삼례역에 당도했을 때에 전주절도사 조용겸은 꽤 '캐주얼'하게 현종을 영접했다. 지채문열전은 그가 "야복(野服) 차림으로 어가를 맞이했다"고 말한다. 평복 차림으로 임금 앞에 나섰던 것이다.

만약 그런 차림이 전쟁 중이라 부득이했다면, 복장 문제가 역사서에까지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례하거나 고의적이라는 인상을 줬기에 기록됐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현종이 삼례역에 들어가지 않고 장곡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전주는 후백제 도읍이라 태조께서도 싫어하신 곳'이라는 신하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도사 조용겸의 태도에도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조용겸이 임금을 자극할 의도가 있었다는 점은 후속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장곡역에 머무는 현종을 위협하는 무력 시위까지 연출했다. 왕족을 보좌하는 전중소감 유승건 등을 대동하고 북을 치며 장곡역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현종을 호위하는 지채문이 역문을 급히 잠궈야 했을 정도다.

지채문이 지붕에 올라가 "너희들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 "너희는 누구냐?"라고 호통치자, 조용겸 무리는 "그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라며 조롱을 던졌다. 임금이 있는 데서 그랬으니, 사실상 임금을 조롱한 셈이다.

지채문이 유승건에게 '왕명이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유승건은 "네가 나오지 않으면 나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실상은 현종을 겨냥한 하극상 발언이었던 셈이다. 전쟁 중에 고려 국왕의 권위가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건 당시에는 힘이 없어 그냥 덮어둔 현종은 거란군이 압록강을 넘어 철수(1011.3.6)한 지 6개월 뒤인 음력으로 현종 2년 8월 2일(양력 1011년 9월 2일) 조용겸과 유승건 등의 관직 자격을 박탈하고 유배형을 선고했다. 삭탈관직까지 시켰으니, 그때까지 얼마나 꾹꾹 참고 있었겠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로부터 4, 5개월 뒤인 1012년 1월 하순에서 2월 하순 사이에 현종은 절도사 제도를 폐지했다. 조용겸의 도발이 절도사 폐지에 직접적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 도발이 절도사에 대한 현종의 경계심에 영향을 줬을 수는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종 3년의 지방제도 개편을 건의한 이들은 최사위·장연우·황보유의 등이다. 이 중에서 최사위와 장연우는 직접 참전한 중앙관이자 문신들이다. 지방 절도사에게 권한이 집중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조용경 사례와 이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전쟁 중에 강력해진 절도사들에 대한 중앙 문신들의 견제가 제도 개편을 추진한 원동력 중 하나였으리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중앙 문신들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1995년에 <한국학보> 제80집에 실린 김갑동 원광대 교수의 논문 '고려 현종대의 지방제도 개혁'은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의 절도사들에게 군사력이 집중되면 자신들의 지위도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현종의 지방제도 개편이 큰 불상사를 초래하지 않으로 보이는 것은 중앙 문신들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거란전쟁>에 묘사된 현종의 지방관 파견 시도는 호족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지만, 강력한 지방 군정장관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었다. 이 드라마가 현종의 제도 개편을 중앙군주 대 호족의 대결 구도로만 보여주고 이 개편이 엄청난 후폭풍을 낳았다는 식으로 묘사한 것은 당시의 정치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1월 19일 김종성 기자의 비판 기사 중 일부

1월 20일 길승수 원작자는 "작가가 늦게 합류한만큼 겸손한 마음으로 대본을 써야 하는데, 자기 작품을 쓰려는 욕구가 강하더군요. 그래서 대본이 역사도 무시하고 원작도 무시하며 점점 산으로 갑니다" #, "대하사극이 아니라면 참 좋았을 것을", "본방 사수는 포기했습니다", "장인으로 삼으면 비리가 덮혀진다는 발상도 놀랍더군요", "대본 작가가 kbs를 말아먹는군요.ㅎㅎ", "고려의 지방제도는 소손녕의 침공을 계기로, 성종과 서희가 서북면과 동북면을 설치하고 중앙군을 정비하여 기본 뼈대를 완성시킵니다. 현종 때의 개혁은 거기에 살을 붙이는 정도였죠. 어느 정도 갈등이 있었을 수 있으나 드라마에서 처럼은 전혀 아니고, 대본 작가가 그런 점들을 전혀 숙지하지 않고 대본을 쓰고 있죠." 등의 비판을 하였다. #

1월 21일, KBS 시청자청원에 현 대본 작가인 이정우를 강판해 기존의 윤지혜 작가를 다시 데려오거나 원작자가 직접 집필하고 더 나아가서 연기대상 시상식 때 수여한 작가상도 수상 취소 혹은 박탈하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는데 더 빨리 3일만에 1천명을 돌파했다.

3.4. 1월 23일, 제작진과 원작자의 공방

1월 23일 오전 9시경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전우성 감독(PD)의 '텐아시아'와의 인터뷰가 보도되었다. "2022년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 이 작가는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27], "(대신해서) 드라마 자문 경험이 풍부한 조경란 박사를 중심으로 자문팀을 새로이 꾸렸고,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이 작가는 1회부터 스토리 라인 및 씬별 디테일까지 자문팀의 의견을 수렴하여 대본을 집필" 등을 말했다. #

1월 23일 오전 10시경 길승수 원작자의 한국경제와의 인터뷰가 보도되었다. # 이에 의하면 본래 예정되어 있던 다른 작가[28]가 어째서인지 교체되었고 이정우 작가에게 기획 단계에서 제3차 여요전쟁을 다룬 새로운 소설의 원고까지 전달한 동시에 강의까지 해 줬지만 30분만 듣고 필요 없다고 일축하였다고 한다. 본인도 등장인물이나 사건 등과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자문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을 소개하였으나 정작 이정우 작가가 자문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김한솔 PD에게는 계속해서 전쟁 장면과 관련해서 자문을 하였으나 그 외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고 한다.[29] 그나마 촬영 전에 몇 회분의 대본을 길승수 작가에게 보냈다고는 하지만 그가 수정해야 할 내용 등을 전달했는데도 답을 주지 않았고 수정 없이 그대로 나왔다고 한다.

1월 23일 오후 2시경 길승수 원작자가 오전 전우성 감독의 해명보도를 보고 "웃기지도 않는군요. 전PD가 먼저 내부적인 진행상황을 공개했으니, 저도 이제는 부담 없이 공개해도 되겠군요"라며 내막을 공개했다. 길승수 작가에 의하면 원래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에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을 불러들이는 전개가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의 방향성이었다고 한다.[30] 작가는 당시 조선구마사의 예를 들어 반대했고 이 시나리오는 무산되었으나 원정왕후에게 이때의 문제가 일부 돌아간 듯하다고 밝혔다. #

1월 23일 오후 3시경, 전우성 연출감독과 이정우 작가가 전우성의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이 다수의 언론들을 통해 보도되었다. 헤럴드경제(오후3시경), 머니투데이(오후4시경), 데일리안(오후4시경), 서울신문(오후5시경)
{{{#!folding 전우성 입장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안녕하세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연출을 맡고 있는 전우성입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관련 논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우선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방영중인 와중에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메인 연출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번 드라마의 기획부터 제작의 전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몇가지 사실관계를 밝힙니다.

드라마 원작 계약은 매우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원작의 설정,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리메이크 형태부터 원작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한 계약까지 다양합니다. <고려거란전쟁> 원작계약의 경우는 리메이크나 일부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당시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입니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길승수 작가는 이정우 작가의 대본 집필이 시작되는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하였고 수 차례 자문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끝내 고사하였습니다. 이후 저는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하여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길승수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의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아울러 길승수 작가가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입니다.

참고로 작년 여름,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고려거란전쟁>으로 제목이 바뀌어 재출간되었습니다.

영하2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속에서, 오늘도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최선을 다해 방송제작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며, 앞으로도 시청자들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folding 이정우 입장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최근 원작 소설가가 블로그를 통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이 기사화되고 이것이 와전되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부분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제 입장을 전달합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KBS의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으며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거란전쟁'이었습니다.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태동시키지도 않았고 근간을 이루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의 작가가 된 후, 원작 소설을 검토하였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입니다.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건 원작 소설가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의 작품이었습니다.

원작 소설가가 이렇게 자신의 원작과 드라마의 내용을 비교하며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혹시라도 드라마의 오점이 자신의 원작 소설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면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드라마는 일부 전투 장면 이외에는 원작 소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1회부터 그랬고 마지막 회까지 그럴 것입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합니다.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입니다. 그런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입니다. 저는 제 드라마로 평가받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입니다.

제가 굳이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영광도 오욕도 모두 제가 책임질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들이 진실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KBS와는 무관한 저의 견해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

1월 23일 오후 5시경 길승수 원작자는 블로그를 통해 해명 기사 내용을 반박했다. # 길승수에 따르면 중간에 교체되어 들어온 작가 이정우가 자문 담당인 길승수에게 보조 작가가 담당할 업무인 페이퍼 작성을 시켰다.[32] 이에 길승수가 자신이 맡을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페이퍼 작성을 거절하자 감독 전우성이 자택 근처까지 찾아와 이정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올 필요가 없다며 먼저 길승수를 자문 담당에서 빼 버렸다. 결국 길승수는 임용한 박사를 후임 자문으로 추천했으나 전우성은 "알아서 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정우의 주장을 반박한 다음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며 작가와 감독의 추태를 지적했다.

1월 23일 저녁 이후 제작진과 원작자의 주장을 요약하려는 기사들이 계속 쏟아졌다. 서울경제(오후6시경), 이데일리(오후7시경) 스타뉴스(오후7시경), 중앙일보(오후8시경), 스포티비뉴스(오후8시경)

3.5. 1월 24일, 원작자의 추가반박

1월 24일, 길승수 원작자가 '스포티비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더 상세하게 제작과정을 밝혔다. #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 쯤에 처음 제작진과 만났고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1년 후인 2022년 6월에 다시 연락이 와서 KBS를 제대로 방문했는데 원래 전우성 PD는 자신을 부르고 싶지 않았으나 다들 여요전쟁에 대한 공부가 덜 된 상황이라서 드라마 제작 자체가 진행이 잘 안 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불렀다고 한다. 본래 있던 다른 작가도 본인의 강의를 받아 도움을 얻었고 갑옷과 관련한 미술 자문도 같이 하였는데, 갑자기 작가가 이정우로 교체되었고 '고려거란전쟁' 역사책의 원고를 보내줬는데도 이와 관하여 거짓말을 하였다고 밝혔다.[33]

덧붙여 원래는 이렇게까지 이슈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드라마가 이상해지자 시청자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몰려오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중하려고 했으나 KBS 측에서 먼저 댓글을 달지 말라면서 자신의 의사 표명을 막기 위해 전화한 것을 언급하며 답답하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저를 욕할 게 아니라 그냥 시청자들 앞에 사과하고 남은 드라마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만들면 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역사대로만 만들면 간단한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대하사극을 역사로 인식하면서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배우려는 시청자들의 입장을 준수하여 "제작진이 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아니라 대하사극의 좋은 대본을 쓴다는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작가진이 최소 2022년 말에 긴급하게 교체된 관계로 완전한 사전제작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참고할 자료가 존재하는 2차 전쟁 시기까지는 그러한 부족함이 적게 드러날 수 있었지만 극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인 2차 전쟁 직후부터는 확연하게 이러한 부분이 드러났다. 애초에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서 드라마 방영분과 촬영 시기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고 22회 방송분에서 기존에 문제로 여겨졌던 여러 부분이 일부 수정된 모양새를 보이는 점에서 보면 드라마는 프롤로그에서 제시했던 귀주대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사실상 촬영을 하면 거의 그대로 방영하는 체제로 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제작진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설날 기간인 2024년 2월 10~11일에 결방을 결정했다. 현실적으로 약 1주의 시간을 번 셈이긴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드라마의 방향성과 핍진성이 결여된 것이 시청자의 불만과 이어졌다는 점을 제작진이 생각해 봐야 하는데 소통의 기회는 만무하고 오히려 위에 나온 해명들을 일관하면서 화를 더 키우도록 만들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김한솔 PD를 비롯한 다른 제작진들과 최수종, 김동준, 김혁, 이시아 등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이 짊어지게 된 상황에 처했다. 야율융서 역의 김혁이 한 언론사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면서 "지금도 뼈를 스치는 추위 속에서도 저희 '고려 거란 전쟁'은 촬영을 감행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 저희 배우들도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연기하기도 맘이 무겁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관련 기사[34]

3.6. 1월 25일, 제작진의 제1시청자청원 답변

{{{#!folding 1월 25일, KBS 시청자센터 제작진 청원 답변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우선 최근 불거진 여러 혼란에 대해 제작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방송 내용에 관해 시청자분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따끔한 질타의 목소리 역시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원하신 내용과 관련한 제작진의 답변입니다.

KBS는 2021년경부터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를 준비하였고 그의 일환으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기획하였습니다.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고려시대의 경우 역사의 행간을 메우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드라마만의 재미와 감동을 전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장'과 '왜곡'을 피하기 위해 제작진은 역사서에 기초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면밀하게 대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의 판권을 구매하게 되었고 전투 장면 등의 고증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판권 구매한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참고 자료 중 하나였고 '고려거란전쟁'의 드라마 내용은 1회부터 사료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새롭게 창조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최근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점 역시 제작진은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남은 회차를 통해 고난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개혁하여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아에 평화의 시대를 구현한 성군 현종의 모습을 더욱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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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전날인 1월 25일 KBS는 제1시청자청원에 답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KBS측의 답변은 이전에 이정우 작가가 낸 답변과 큰 차이가 없었고 성의 없는 사과는 물론이고 사실상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에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다. #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원작자 길승수 작가에 대한 사과도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

3.7. 1월 26일, 시청자들의 트럭 시위

결국 1월 26일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벌어졌다. #1 #2 해당 시위는 오후 5시 쯤에 종료되었다. #

3.8. 1월 27일, 제작진의 제2시청자청원 답변

{{{#!folding 1월 27일, KBS 시청자센터 제작진 청원 답변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사랑해 주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최근 불거진 여러 혼란에 대해 제작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완성도를 위한 시청자분들의 고견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원해주신 내용과 관련한 제작진의 답변입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모든 대본은 이정우 작가가 직접 집필한 것입니다. 1회부터 방송을 마친 20회까지 이정우 작가 단독으로 역사적 자료를 통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완성하였습니다. 이 점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향후에도 대본 집필은 이와 같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설연휴를 맞아 일요일 스페셜 방송을 준비중이며, 본방송은 1주간 결방할 예정입니다. 그 기간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제작진은 최근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와 걱정을 잘 알고 있으며,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점 역시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남은 회차를 통해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아에 평화의 시대를 구현한 현종과 강감찬 장군의 호국정신을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지켜봐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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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다음날인 1월 27일 제작진은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설 연휴를 맞아 1주 휴방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 그럼에도 여론의 악화만 계속되었는데 제작진은 〈고려 거란 전쟁〉의 악평의 원인을 '이정우 작가의 독단적 행위'라며 꼬리 자르기 식으로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 데다 문제가 '역사 왜곡 및 원작의 도용과 훼손'이란 점[35]임에도 이를 '작품의 퀄리티와 완성도 및 예술성'이라는 관계가 없는 논지로 논점을 흐리는 태도를 보였다. 1주일 동안의 결방으로 퀄리티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운다고 해도 만에 하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거나 악화될 시 더더욱 대하드라마를 넘어 KBS의 드라마 제작진, 더 나아가 KBS 전체에 대한 불신만 키울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거나 그냥 조치하는 시늉만 하는 시간 때우기에 가까운 조치를 했다고 봐도 무방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36]

미디어오늘 기사를 통하여 두 차례의 시청자청원에 대한 답변에 대해 'KBS의 해명 가운데 사극이 모두 역사적 내용만 다룰 순 없다는 대목은 억울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하면서 동시에 '정통사극', '대하사극' 마케팅으로 역사성을 강조한 착시를 일으킨 것은 KBS라는 지적도 나왔다. # 한마디로 KBS의 자업자득이란 뜻이다.

3.9. 1월 29일 이후

1월 29일 22회 방영 직후 기준 한 제작진에 의하면 "대본 자체는 27회까지 다 나왔고 25~27회는 촬영 중"이라고 밝혔다. # 이후 해당 회차의 김훈·최질의 난 관련 내용이 공개되자 결과적으로 논란을 잠재우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불 난 집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되었다.

2월 1일, 원작자는 '16회에서 바로 21회로 건너뛰어도 드라마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의견에 동조하며 21~22회는 어느 정도 실제 역사를 따라가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

2월 20일, 원작자는 김훈, 최질의 난이 묘사된 25~26회에 관해서는 궁녀를 건드리는 장면은 정말 역겨우며 반란 전후에 거란군과의 대치가 전혀 묘사되지 않은 것을 두고 평행세계를 그린다며 비판하였다. #

같은 날 조원 역으로 출연한 김중돈 배우의 인스타에 올라왔던 사진을 통해 26회 방영 시점에서 대본이 최소한 30회까지는 완성되었다는 사실 및 30회에서 제3차 여요전쟁의 장면을 다루는 점을 알 수 있다.[37] #

2월 23일, 마지막회의 대본이 나왔고 내용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

2월 25일, 원작자는 27화 리뷰에서 더 이상 지적하기도 지친듯 제목으로 대놓고 '작작 하자'라며 도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거냐며 한탄하는 한편 제작 초기 제작진과의 미팅에서 "KBS 대하사극 제작에 참여하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라고 했던 일을 언급하며 이제 보니 자신만 그랬던 것 같다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

결국 8년여에 걸친 고려와 거란의 기 싸움, 3차 전쟁은 뒷전이고 가상 인물을 동원해 억지로 채워넣은 고려 내분기가 3/4을 차지한 괴상한 드라마로 종결되고 말았다. 1화에서 보여준 비장감 넘치는 귀주 대첩도 31/32화에서 짤막하게 다뤄진 뒤 결말 후 느닷없이 강감찬이 은퇴하고[38], 현종이 궁궐에서 목종/천추태후/강조 등의 사이로 지나가 옥좌 앞에 서는 장면으로 급하게 마무리되었다.[39]

4. 유사 사례

4.1. 사극에서의 유사 사례

사극에서 역사의 공백을 묘사하는 것은 제작진의 재량이지만 개연성의 부재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고려 시대 초기의 국내 기록이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제외하면 기록이 매우 부족한 편이라서 고증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사 등이 부족한 것이지 정치사는 편년체로 압축되어 읽기도 쉬워 충분히 다룰 수 있음에도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다루거나 아예 왜곡 폄하하여 다룬다는 논란이 발생했다. 사극 중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4.2. 원작자-극화 제작진 간 갈등 사례

5. 여담

파일:보이콧정우.jpg * 이정우 작가의 막장, 날림 전개로 인하여 비난의 짤들이 돌아다닌다.


[1] 이 문제점은 탁사정을 용서한 이유에 현실적인 문제 하나 정도만 끼워넣었어도 해결되었을 부분이다. 실제로 탁사정은 자신이 이끌던 동북면의 군사들을 싹 데리고 서경을 버렸기에 전쟁 후에도 도순검사의 군권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런 탁사정을 섣불리 처벌하려 들었다간 고려판 이괄의 난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된 고려에게는 엄청난 치명타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본작의 탁사정은 자기 한몸 보신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도 남을 인간이다. 이러한 사정을 현종의 죄책감과 적절히 섞어 묘사했어도 이렇게 까이지는 않았을 것이며 해당 장면 역시 9화에서 강감찬이 거란 진중에서 포로 아이에게 눈물을 머금고 거짓말하는 장면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인이 불러놓고 유족들 위로한답시고 '반란 일으킬까봐 일단 불러올린거고 곧 명분 찾아서 내칠거다' 할 수는 없으니. 물론 그 자리에 탁사정을 동석시킨다는 것 자체가 쉴드 불가이긴 하나 굳이 동석시키지 않아도 이러한 불만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 [2] 작가의 전작인 태종 이방원이 말 학대 사건으로 폐지 논란까지 벌어졌는데 또 정신을 못 차리고 원 역사에도 없는 말 학대+배우 학대를 다시 진행한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3] 고려 최고의 성군이자 한반도에서도 손꼽히는 명군 현종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온 충신을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비난한다. 실제로 작중 김은부의 행동은 참작할 여지가 있다지만 어쨌든 탄핵당해도 할 말 없는 것도 사실인데 앞뒤 분간도 안 하고 달려가서 일국의 중신을 지낸 노신의 목을 조르려고 한다. 뒤에 일어나는 황당한 교통사고는 둘째치고 한국 사극에서 묘사된 웬만한 폭군들도 멱살을 잡거나 칼을 겨누거나 했어도 저렇게 목을 조르려는 시늉은 자주 보기 힘든 장면인데 이런 말도 안되는 억지 픽션을 집어넣는 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라는 비판 여론이 매우 강하다. 이건 그냥 픽션으로 봐줄 게 아니라 역사 왜곡 수준이라 재밌게 보던 사극이라 더 열 받는다는 여론이 많다. [4] 물론 20회 내용을 보고 예측해 보면 강감찬이 이미 강씨 가문에게 언질을 듣고 나서 현종에게 출두해 달라고 미리 요청했을 수도 있지만 언제 현종이 들이닥칠지, 언제 자신이 죽음을 당할지까지는 예언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데 굳이 목숨을 걸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20회가 의도한 것이 현종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강감찬은 미리 호족들에게 죽을 생각이었고 그 때 들이닥친 현종에게 그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호족 타파에 명분을 실어준다는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그 때 분노한 현종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다가는 안그래도 적대적인 호족들을 상대로 더더욱 거센 반박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강감찬이 주장하는 온건하고 점진적인 개혁에도 맞지 않는 방향성이었다. [5] 사실 현종을 모욕하고 있을 때 호족 대모(배우 송옥숙)가 태조 왕건을 언급하였는데 이 때 대놓고 전생에 태조 대왕이었던 강감찬을 클로즈업하였다. 덩달아 강감찬도 태조 대왕 이야기를 듣자마자 놀란 기색의 표정이었던 것을 봐서 자기 과거 이야기에 급발진해 버린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기도 했다. [6] 작품 종영 후 공개된 스페셜에서 이 부분은 김한솔 PD가 연출을 담당하였다고 밝혔다. # [7] 유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어머니의 태몽이 그랬다는 식으로만 처리했어도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은 줄었을 것이다. [8] 애초에 유방은 작중 첫 등장 시점에서도 친종장군 직책을 역임하고 있던 무관이었다. [9] 박종기 (1998) 『11세기 고려의 대외관계와 정국운영론의 추이』, 김두향 (2005) 『고려 현종대 정치와 이계(吏系) 관료』, 김보광 (2014) 『고려 성종·현종대 太祖配享功臣의 선정 과정과 의미』, 오치훈 (2018) 『고려 전시과의 운영과 영업전·구분전』 [10] 앞서 유금필이 인망이 높아 백성들로부터 '만세'를 받자 왕건에 의해 숙청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강조 역시 군사들이 정변 직후 만세를 부르는 것을 듣고 놀라서 그들을 타이르기도 하였다. [11] 후대에 일어난 무신정변의 주동자들도 엄연히 임금의 여인인 궁녀를 건드리는 일만큼은 벌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들을 성추행까지 하면서 막나간 이들은 정균, 이지영 정도의 소수다. 이지영은 그 시대에도 동생 이지광과 함께 쌍도자로 불릴 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이지광조차 무인시대에서는 이지영이 궁녀를 겁탈하려고 하자 미친 것이냐고 기겁했다. [12] 무인시대에서는 석린이 명종 앞에서 투구를 던지기 전에 지시한 조원정에게 정말 이래도 되냐고 반문했다. 군주의 권위는 아무리 권신이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 핍진성이라 엄연히 사료에 남은 사건을 재현함에도 이런 묘사를 추가한 것인데 이 드라마는 그런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13] 단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전란 중 거란군의 악행의 경우 실제로 거란군은 유목민족으로서 영토는 넓은 데 인구가 적고 주변국에 비해 농경 지식이 풍부하지 않았으므로 당사 침략국의 백성을 약탈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이 시작한 이 전쟁마저도 명분이란 게 중요시되어 작중 거란군 측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기도 했다. 이들의 악행이 마땅한 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기록된 사실을 통해 양규 및 김숙흥을 연결하여 향후 그들의 거란군을 향한 격분을 연출함에 개연성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무관들의 반란 직후 묘사된 무관들의 행패는 이렇다 할 명분조차 사라졌다. 분명 반란 전까지만 해도 거란군을 상대로 가장 처절하고 치열하게 싸워주었던 무관들이 반란 직후 고작 몇 화만에 상도덕마저 저버린 인간으로 타락해 버렸다. [14] '최후에 현종이 이들을 심판한다'는 결과를 위해 없어도 될 것까지 무리하게 짜낸 개연성을 위해 희생된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자의 예시는 거란의 약탈과 양측의 치열한 전투를 통해 전쟁이 어째서 참혹한지 묘사할 수 있었다면 후자는 역사에 대한 깊은 고찰과 탐구 없이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며 이들의 명분과 행동원리에 대해 조명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고작 욕구만 따르는 무능한 바보로 전락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란군을 두고 야만인이라며 비난하던 작중 고려 측 인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창작자로서는 가장 편하고도 위험한 길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깊게 생각할 것 없이 이게 가장 편한 길이니까 말이다. [15]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017~1018년 이전까지 고려군의 2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작 소설에서는 1010년대 초반의 중앙군이 올바르게 6위만 소개되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부분이다. [16] 전제 왕조에서 왕족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역모에 이름만 올려도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왕이 관용을 베풀면 유배로 끝나지만 최악의 경우엔 사약을 받았다. 황후가 반란에 관여했다면 아무리 협박받았어도 폐비될 일이다. [17] 본 드라마가 현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수많은 역사 왜곡 논란이 있음에도 그중에서도 본작을 괴상한 막장극으로 더럽혀 버린 진정한 최악의 원흉은 바로 박진 캐릭터라 할수있는데, 본 인물은 정말이지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그야말로 역대 한국 사극 들을 전부 뒤져봐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괴랄한 전개들을 보여준다. [18] 작중에서 당대 호족의 위세가 과장되어 나온다 하지만, 그런 설정 속에서도 진짜배기 거물 호족들은 따로 있고 박진은 잘해봤자 중견 수준인 말단 호족에 가깝게 묘사된다. 당장 박진 본인부터가 유진을 만날 때 유씨 집안에 비하면 본인은 그저 한미한 호족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19] 무관들이 오를 수 있는 정3품의 최고 지위로 오늘날로 따지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중장급 이상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지위다. [20] 후술하였듯이 27회까지의 대본 자체는 이미 22회 방영 시점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시청자들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한 수작일 뿐이었다. [21] 하지만 귀주대첩도 1화의 재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갑자기 우천취소급 편집으로 날림하여 거센 비판을 받게 되었다. [22] 당장 삼국지만 봐도 소제를 시해하는 역적질을 감행한 동탁 황제를 끼고 있었음에도 전국에서 거병하는 반동탁 연합군을 직면해야 했으며, 협천자로서 동탁보다 더 우월한 정치적 감각을 보여준 조조도 완벽하게 명분을 장악하지 못해 유비를 필두로 하는 군벌들의 저항에 죽을 때까지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본작의 최질은 온갖 폭압적인 행동으로 인해 정계를 전혀 휘어잡지 못했고, 박진을 비호하며 본인도 역적임을 공표한 이상 아무리 황제나 황후가 명령을 내리게끔 해도 거병을 막을 수 없음이 뻔하다. [23]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작품 자체의 스토리만으로 평가하더라도 엄청난 무리수다. 군주가 휘하 신하들의 반란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은 권력 체제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 했다는 무능함의 극치이거니와 하물며 중추사 강감찬이 머나먼 곳에서 서북면 군사들을 이끌고 왔을 때도 이 대역죄인들을 참형에 처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돌려보낸 것은 그나마 도우러 온 아군의 사기와 신뢰마저 떨어뜨리는 가장 최악의 패착이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시간대 거란의 성종의 대사로도 언급된다. [24] 원성왕후는 전하기만 했을 뿐이라고 해도 묘사상 계책을 이자림이 주도적으로 낸 게 아니라 그저 적이 더 많으니 방심시켜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원성왕후가 이를 현종에게 전해 연회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개가 흘러가서 이자림이 주도하는 면이 약해졌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활약이 축소된 것은 틀림없다. 그나마 29회에 가장 처음 연회를 이용할 계책을 낸 것이 이자림이었다고 할 여지는 남아 있다. [25] 태조 왕건에서도 적지 않은 호족들이나 신라 왕실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과 민심 안정으로 성군으로 고평가 받는 왕건조차 호족들의 배신으로 삼년산성 전투해서 패배하자, 당시 왕건을 배신했던 호족들의 가족들을 전부 끌고와 어린 아이들이라도 예외없이 철퇴로 처형하라고 일갈한 것과는 매우 정반대다. [26] 언제 하차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2023년 2월 이전에 하차한 것은 분명한데 2023년 2월에 이정우 작가가 본작의 대본을 담당한다는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27] 고칠 거면 역사에 기반해서 고쳐야 하는데 그것도 신경 안 쓰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참고로 고거전은 대하사극이라 역사 고증이 필수나 다름없다. [28] 본작에 관한 최초 보도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윤지혜' 작가를 말하는 것이다. [29] 대신 "원작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다르게 가고 있다"고 밝혔는데 17회부터의 전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30] 당연하지만 강조의 정변이 명분이 되어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게 된 것이 실제 정사이고 소설도 그렇게 흘러간다. [31] 자문경력 출처들 #1 #2 #3 [32] 이것은 원작자의 경력을 무시하는 행위로 사실 이전부터 질이 나쁜 드라마 각본가들은 대작가의 명작품을 제외하고 원작가의 원작품을 무시하는 경향이 암암리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33] 정확히 말하자면 길승수 작가는 "자문 계약을 했을 당시에는 '고려거란전쟁' 역사책을 출간하기 전이었다. 한참 작업 중이었는데도 텍스트로 원본을 제공하고 강의까지 했다. 이정우 작가에게도 당연히 제공을 했다. 이후 이정우 작가가 그 책을 보고 1~2달 만에 시놉시스를 썼고, 카카오톡으로도 '작가님 덕분에 시놉시스 완성 잘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후에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고려거란전쟁'의 스토리텔링 북이라고 띠지가 나갔는데 KBS에서 그걸 떼라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황당해서 몬스터유니온에 얘기를 했는데, "이정우 작가한테 물어봤더니 원고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하더라. 증거가 엄청 많은데도 이건 남의 연구물을 빼앗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답답해했다. [34] 다만 해당 이슈 이후 22회까지의 감상으로 미뤄볼 때 김혁은 본인 파트에 대본이나 촬영 당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저런 입장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웃픈 반응도 있었다. # [35] 사실 드라마 회차 시작 전 연령고지 다음에 '본 드라마는 역사적 인물 및 사건들에 상상력을 더해 재창조된 이야기이며, 실제 역사 기록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미리 알려주지만 그래도 언론플레이로 이정우 작가 본인이 "인물을 재해석하기보다는 인물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면서 역사를 철저히 재현하겠다고 한 일과 더불어 '정통 대하사극'이나 '공영방송 KBS'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이 논란으로 실망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36] 드라마 제작 환경 특성상 이미 대여된 세트장과 소품 대여 일정을 변경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전개에 따라 배우들의 연기와 역할, 앞서 전개된 내용과 성격이 변경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드라마의 몰입성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원작 및 역사와 동떨어진 전개가 진행된 이상 고작 1주일 안에 그것을 모두 덮어 버릴 연출이 나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봉책에 불과한 셈이다. [37] 따라서 제3차 여요전쟁을 29-30회 중 삼교천 전투, 30회 중 자주-마탄 전투, 31회 중 금교역 전투와 위주-연주 전투, 32회에서 귀주 대첩 등으로 나누어 다룰 것이 예상되었다. 김훈·최질의 난을 27-28회 내에 신속히 끝낸다고 쳐도 고려-거란의 전간기 충돌 및 전략의 진화 내용이 28-29회 단 2화로 대대적 축약하는 것이 확정된 것이다. [38] 강감찬이 귀주 대첩 직후 사직을 청한 것은 사실이나 현종이 궤장을 하사하며 만류했고 실제 은퇴는 1년 후에 이뤄졌다. [39] 참고로 이렇게 급하게 마무리한 건 이정우 작가의 전작 태종 이방원과 똑같은 행태다. 그나마 태종 이방원의 경우 30년에 달하는 시간대로 인해 1화당 1년 정도의 분량을 전개시켜야 해서 생략된 역사적 사건들이나 각본의 허술한 부분은 있었을 지언정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한 왜곡과 늘어지는 부분은 거의 없이 속도감 있게 밀어붙였다. 반면 본작은 10년도 안되는 시간대를 32화로 방영하는 주제에 끽해야 1-2화로 끝낼 수 있는 지방개혁과 김훈, 최질의 난을 각 4화씩으로 질질 늘어뜨리는 추태를 부렸고 그 자리를 가상 인물과 역사 왜곡으로 채워버렸다. [40] 다만 킹덤 오브 헤븐의 역사 왜곡(?)을 고려 거란 전쟁에서 일어난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봐야 할지 의문이다. 중심 인물들의 개인적인 뒷배경들을 바꾼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역사적 사실 내에서 역할을 과대평가나 과소평가하는 줄타기 하나는 확실히 했기 때문이다. 보두앵 4세를 초종교적인 성인군자로 표현하였지만 보두앵 4세가 현대 역사가들도 인정하는 요절한 명군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비록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말년에는 무슬림 영향권에 대하여 적대적인 활동을 줄인 것도 사실이다. [41]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역사로나 영화상에서도 관대하고 위대한 지도자로 그려진 살라딘은 두말할 것도 없고 예루살렘 왕실과의 결혼으로 무능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왕국을 말아먹은 기 드 뤼지냥, 보두앵 4세가 총애하고 믿었던 영주인 빌리앙 역시 유럽에서 순례를 왔던 사생아 대장장이라는 이상한 뒷배경으로 설정했지만 전체적인 예루살렘 공방전의 전개상의 역할에서는 고려 거란 전쟁의 황후들의 스토리 인플레이션 수준의 말도 안되는 활약같은 것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시빌라 여왕과 빌리앙의 로맨스 정도일 텐데 이마저도 결국에는 필요에 의해 기와의 결혼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였고 최종적으로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대단한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역사적 개연성은 챙겼다. 비록 킹덤 오브 헤븐은 개인서사에 대해 고증은 지키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누구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42] 결론은 킹덤 오브 헤븐이 고려 거란 전쟁 수준의 역사 왜곡을 하려면 적어도 시빌라 여왕이 주도적으로 보두앵 4세에게 기와의 파혼을 주도하거나 본인이 칼을 잡고 예루살렘 성에 침투한 무슬림 군대와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면 논란이 됐을 수도 있다. 그나마 이런 맥락에 부합하는 캐릭터는 빌리앙의 아버지인 고드프리 정도인데 고드프리도 사실 분량이 많지 않고 실제 빌리앙의 아버지인 빌리장과 예루살렘 왕국의 수도사인 티레 드 기욤의 역사적 역할을 얼추 섞은 창작 캐릭터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분량 압축을 위한 선택이지 역사 왜곡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봐도 좋다. [43] 제작진이 원균 맹장설을 채택하자 SNS가 2020년대에 비해 크게 활발하지 않았던 2004년에 시청자 항의가 쏟아져 나와 스토리가 약간 수정되었던 걸 감안하면 SNS가 활발한 2010년대부터는 역사 왜곡 지적이 일어나기 쉽다. 여담으로 불멸 제작진은 해명하면서 "철저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반해 집필한다!"는 개드립을 당당하게 주장했다가 대중들에게 한 차례 더 비난을 얻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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