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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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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 특별기획
계백 (2011)
Gye-Baek
파일:external/mbc-america.com/data/bbsData/1359134637&&BBS_FILEdrama.jpg
<colbgcolor=#585858>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colcolor=#fff> 방송 시간 · / 오후 09:55 ~ 오후 11:15
방송 기간 2011년 7월 25일 ~ 2011년 11월 22일
방송 횟수 36부작
장르 사극
제작사 계백문전사,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 커튼콜미디어
채널 MBC
제작진 <colbgcolor=#585858><colcolor=#fff> 기획 한희
연출 김근홍[1], 정대윤
극본 정형수[2]
출연진 이서진, 조재현, 오연수, 송지효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특징3. 출연
3.1. 실존 인물3.2. 허구 인물
4. 방영목록5. OST6. 평가7. 논란 및 사건사고8. 여담
8.1. 캐스팅

[clearfix]

1. 개요

MBC에서 2011년 7월 25일부터 동년 11월 22일까지 방영했던 사극. 공식 홈페이지

미스 리플리의 후속으로 7월 25일부터 방영하며 그런데 왠지 등장인물들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초반에 선덕여왕 필이 난다. 흥미롭게도 주몽( 고구려), 선덕여왕( 신라)에 이어 백제를 다루게 되어 2000년대 이후로 MBC의 월화 사극에서 삼국을 모두 다루게 되는 셈이 되었다. 또한 아역배우 이현우 군은 어쩌다 보니 김유신 계백의 역할까지 모두 맡게 되었다.

2. 특징

스토리 관련 고증 문제는 MBC 사극 치고는 무난한 편. 다만 무왕 선덕여왕 진평왕이나 주몽의 금와왕처럼 호구가 되었으며[3] 미륵사에서 출토된 금제사리기에 버젓이 왕후(王后)라고 쓰여 있는데도 무왕과 선화공주를 계속 백제 황제 & 황후라 부른 것은 거슬린다. 실제로 무왕을 부를 때 썼을 법한 칭호는 대왕폐하.

또한 삼국유사 서동요에 나와있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스토리에 반영했는데, 앞서 2009년에 새로 발견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금판 사리봉안기의 내용에 따르면 무왕의 왕후가 신라 공주가 아니라 백제 토착귀족 사택씨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고려시대에 작성한 삼국유사보다 백제 당대의 기록인 사리봉안기의 내용이 더 앞선 1차 사료이므로, 새로운 사료에 주목해 일부 학자들은 선화공주 자체가 가상인물이란 식으로까지 주장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직후에 방영한 이 드라마의 선화공주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었다. 당시 국제 정황이나 삼국유사에만 선화공주가 신라의 셋째 공주로 나오는 것을 생각할 때 무왕의 비는 백제 귀족 출신일 가능성이 훨씬 높고, 미륵사 출토 유물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비교해 볼 때 사택비와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논란의 진행에 대해서는 서동요 문서 참조.

다만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와 사택비를 포함해 여러 명이었다거나,[4] 선화공주는 무왕이 젊었던 시절에 맞이한 왕후이고 선화공주가 먼저 세상을 떠난 다음 사택비가 왕후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삼국유사와 사리봉안기의 기록을 모순 없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선화공주와 사택비가 모두 동시에 무왕의 부인인 것으로 나오며, 결정적인 사료가 더 발견되지 않는 이상 2024년 지금까지는 모든 학자들이 서동요가 허구라고 보고 있지는 않으므로 선화공주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고증오류라고 하기는 어렵다.

소품고증은 동일하게 백제를 다룬 사극인 근초고왕과 비교되어 까이고는 있지만, 근초고왕의 고증이 워낙 압도적인 것도 있었고, 적어도 판타지 게임에서[5] 튀어나온 듯 한 국적불명의 갑옷들과 비교해보면, 미늘이나 목가리개 같은 부분들로 최소한 삼국시대 특유의 갑옷 형태의 윤곽 정도는 찾을 수 있는 수준이다. 백제 여성들의 의상 또한 실제보다 화려하게 묘사되었을 뿐이지, 전반적인 형태는 실제 백제 여성들의 의상에 가까운 편이다. 주몽에 나온 부여 왕실 여성의 의상과 선덕여왕에 나온 신라 왕실 여성의 의상이 통일신라 중후기의 당나라풍 의상에 가까운 형태로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MBC에서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인 주몽 선덕여왕과의 관련도가 매우 높다. 앞서 언급한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상당수 참여했으며, 인물의 포지션과 스토리 전개도 매우 비슷하다. 극 초반부를 궁중 내 권력 암투로 장식하는 구성과, 단순히 재상 선출 투표였던 백제의 정사암 회의가 선덕여왕에 나온 화백회의와 거의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등... 1화에서는 황산벌 전투에 기름통을 터뜨리며 주몽과 선덕여왕의 발고증을 계승하였다. 다만 배우를 따져보자면 대부분이 정반대의 포지션이다.

주몽의 다물군이나 선덕여왕의 복야회와 같은 비밀 결사조직(위제단)이 등장하며, 사택비는 주몽의 원후나 선덕여왕 미실을 오마쥬로 한 캐릭터로 보인다. 모친의 죽음을 겪고 정적들에게 위협을 느끼며 바보 기믹을 구사하는 의자왕 김춘추의 오마쥬격 캐릭터일 것으로 예상된다.

8월 23일 방영분에서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로우 퀄리티의 전투씬을 내보내면서 기자와 시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깠다. 농담이 아니고 주몽에서 욕먹었던 전투씬이 블록버스터로 보이게 만드는 수준이었는지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거기에다 바로 다음 날 공주의 남자에서 TV 드라마로서는 상당한 고퀄리티의 전투씬을 보여주면서 제대로 비교되었다. 11월 22일에 방영된 황산벌 전투에선 무려 폭약을 이용해 신라군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드라마면서도 정작 전투신은 재미없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나마 막바지에 나온 황산벌 전투는 특유의 장렬함을 그럭저럭 살려서 체면치레는 했다. 적은 수를 많아 보이게 눈속임하려 애쓴 티가 역력하지만 어쨌든 주몽이나 기황후에서 보여준 식권 1만장, 50명 대군 규모 전투씬보단 낫다.

3. 출연

보다시피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다.[6]

3.1. 실존 인물


3.2. 허구 인물



4. 방영목록

5. OST

<rowcolor=#f5f5f5> 파트 표지 발매일 곡명 아티스트 링크
Part 1 파일:사극 드라마 계백 OST Part 1 앨범 자켓.jpg 2011.08.01 알고 있나요 양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닿을 수 없는 백청강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Part 2 파일:사극 드라마 계백 OST Part 2 앨범 자켓.jpg 2011.09.14 한 걸음만[28] 임형주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6. 평가

평균 시청률 12.2%, 최고 시청률 14.3%를 기록하면서 경쟁작인 천일의 약속에 밀려 2위로 마감지었다. 특히 무리한 캐릭터 설정 등 여러 부분에서 허점을 노출하며 끝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컸다. 역설적으로 특별출연으로 나왔던 차인표가 맡은 역할인 '무진'이 되려 더 화제성이 되었을 정도.

7. 논란 및 사건사고

8. 여담

8.1. 캐스팅



[1] 조연출 시절 MBC 사극에 많이 참여했다. 허준 대장금에서 이병훈 감독을 도와 조연출을 맡았고 이산 선덕여왕에서는 서브 연출을 맡아서 MBC 사극에 숨은 주역이었다. 하지만 계백을 시작으로 구암 허준까지 메인 연출을 맡아 새로운 사극 트렌드에 도전한 결과는 실패였다. [2] 다모, 주몽, 드림 등을 집필했다. [3] 그러나 나름의 근거는 있는 편이다. 실제로 일본서기에 무왕-의자왕 교체기에 백제 내부의 대숙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될 만한 기록이 있다. 신하들 중에서 짱먹는 대좌평이 오락가락 할 정도니... [4] 정실부인을 오직 한 명으로 제한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그 전 시대에는 정실부인 여러 명에 후궁도 여러 명일 수 있었다. 고려시대에도 일부일처제가 기본이었지만 왕은 예외로 쳤다. [5] 공교롭게도 선덕여왕에 나온 백제군 갑옷은 주몽에 나온 부여군 갑옷을 재탕한 것이다. [6] 백제 멸망기의 인물을 복원하는 데에는 특히 일본서기가 큰 도움이 된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대좌평 '사택지적'이 이후 '사택지적비'가 발굴되면서 실제로 교차 검증되었을 정도. 당시의 인물들은 여기에 대부분 정리되어 있다. [7]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의 아역을 맡은 바 있다. [8] 작중에서는 의자왕이 말년에 저질렀다는 사치와 토목공사가 실제로는 '땅이 없는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장기적으로 나라에 보탬도 되는 국책사업'을 벌인 것으로 묘사된다. 성충과 흥수도 의자왕과 대화 하면서 '폐하께서 내정은 잘 했지만 독재를 하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즉 독재 정치는 해도, 내정은 잘 했다는 것. [9] 드라마 주몽에서는 주몽의 전처이자 유리왕의 어머니인 예소야였다. [10] 성충, 흥수와는 사이가 벌어져 정적에 가까웠고, 임자를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다른 귀족들도 은고를 좋아하지 않았다. 계백 마저 병권을 쥔 장군이 정치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사 구분을 엄격히 하며 은고를 거의 도와주지 않았기에 황제의 총애가 사라지면 자신의 지위와 태자의 안위도 무사치 못하리라 여겼다. 때문에 의자왕이 사라져도 명분, 실리 모든 측면에서 공격받을 일 없는 절대권력을 원했고 그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기에 이른 것. [11] 이 시점에서의 은고는 사택비보다 더 추하게 타락했다고 볼 수 있는데 사택비는 권력을 장악했어도 한 번도 나라를 팔아먹은 적은 없었지만 은고는 기어코 나라를 팔고 말았다. [12] 극중 만나는 장면은 없지만, 선화황후 역의 신은정과 부부사이다. [13] 연개소문에선 영류왕을 맡았으며, 제중원에선 고종을 맡았다. [14] 드라마 주몽에서는 유화부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반대의 포지션. [15] 뒷날 계백이 거열성 군장에 임명되어 떠날때 은고에게 함께 떠나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때 조정에선 은고에게 도시부 장사라는 관직을 내리는데 관직과 정인을 놓고 고민하던 은고는 관직을 택한다. 이때 자신이라면 정인을 택하겠다고 말했던 초영이 결국 계백과 이어지고 권력을 쫒던 은고가 비참하게 몰락한걸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참고로 이 질문은 사택비가 은고에게 먼저 물어봤었는데 이때 당시의 은고는 정인을 택하겠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사택비는 은고가 권력을 쫓을 것이라고 꿰뚫어봤다. [16] 드라마 주몽에서 연타발이었다. 정반대의 포지션. [17] 사택가문 집권기에 내신좌평을 지냈고, 그 뒤에는 은고에게 접근을 하는 인물. 조연이지만 나름대로 사서에 이름이 있는 실존인물이다. [18]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설원. 하지만 여기서는 반대의 포지션. [19] 작품에서는 은고 일당에게 살해된다. 하지만 역사책에 보면 의자왕이 성충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옥에 가두고 옥사한다고 전해진다. [20] 나중에 대왕의 꿈에서는 김유신 역할을 한다. 자기의 조국을 자기가 부수는... [21] 이 경우는 배우도 같을뿐더러 포지션도 비슷하다. 더 재미있는 건 드라마에서는 실제로 대야성 전투편에서 윤충의 부대와 싸웠다는 것이다. 후반 연장부분에서 한번 더 싸우면서 자기가 자기와 두번 싸우는 묘한 역할을 한 셈이다. [22] 이 시기 은고는 귀족들을 휘어잡기 위해 친황후파였던 귀족 한 명을 점찍어 일족을 몰살시킬 정도로 사택비급 막장녀가 된 상태였다. 그런 은고가 연문진을 생각해여 연태연의 목숨만은 살려줄 정도로 마음빚이 컸던 것이다. [23] 이쪽은 실제 이름이 불명이면서 그 존재가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계백의 아내에게 가공의 이름을 붙인 것이므로, 완전한 허구 인물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의 교집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4] 계백이 최후를 맞이할 때 초영과 아이들의 환영을 보는 것을 보면 진히로인이 맞다. [25] 은고는 정치와 계략에도 밝고, 이 시점에서 상당히 타락한 상태라 그녀의 소생이 태자가 되면 성충과 흥수도 그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은고는 연태연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후, 자신과 의자왕의 권력 집중에 성충이 귀족들과 함께 이를 제지하려 하자 계략을 써서 귀족들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자신과 의자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 체제를 만들어 버렸다. 반면에 연태연은 욕심은 많아도 정치나 계략에는 어둡기에(자기가 주도하여 나라를 다스리겠다면서, 국정에 필요한 용어의 뜻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연태연의 아들을 황후로 세우고 성충과 흥수가 서포트를 해 주면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게 흥수의 계산이었다. 다만 이건 이거대로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었기에, 이 말을 들은 흥수가 '결국 우리가 정사에 밝지 못한 황후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것 아니냐'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충으로서도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흥수의 행동을 말리지 못했고, 결국 연태연의 몰락과 함께 흥수와 성충 모두 실권을 잃는다. [26] 임자를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하들이 황후 편을 들고 자신에게는 등을 돌렸으며, 성충과 흥수도 황후 편을 든 데다가 계백마저 대장군으로서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이유로 은고의 곤경을 외면했다. 물론 성충과 흥수는 후비인 은고보다는 황후가 정통성과 명분에서 앞서는 데다 똑똑하면서 흑화하기 시작한 은고보다는 차라리 황후를 잘 꼬드겨 개혁정치를 실현하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황후 편을 든 것이며 계백은 말 그대로 우국충정의 군인으로서 공사 구분을 엄격히 한 것이라 계백 등이 잘못한 건 아니다. 문제는 어쨌든 은고 입장에서는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자길 버리고 황후 편만 든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결국 이 때의 트라우마에 의해 타락한 은고는 황후 자리에 오른 뒤에도 멈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자왕의 독재 권력을 서포트하며 스스로 정치적 실권을 쥐고 휘두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본인과 태자의 지위를 튼튼히 하겠다고 나라까지 팔아먹는 매국노로 완전히 흑화한다. [27]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칠숙을 맡았다. 배우도 같고 포지션도 동일한 경우. 다만 무력이나 카리스마는 칠숙보다 훨씬 못하다. 왼팔을 잃어 과거보다 훨씬 약해진 계백의 아버지 무진에게 발린다. 톤 자체도 가느다란 간신배톤으로 잡아서 비열해보인다. [28] Vocalise 버전도 발매 [29] 익히 알려져 있지만 저작권료만 지불하면 아무 상관없다. [30] 김근홍 감독의 다음 작품인 리메이크작 구암 허준에서 김주혁이 맨마지막에 나오다가 다시 김주혁이 맨처음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