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에 대한 내용은 근초고왕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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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근초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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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a6053><colcolor=white> 캐치프레이즈 | 나, 근초고는 大백제 건설을 요구받은 정복의 왕이다. | |
시청 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 | |
방송 시간 | 토 · 일 / 21:40 | |
방송 기간 | 2010년 11월 6일 ~ 2011년 5월 29일 | |
방송 횟수 | 60부작[1] | |
장르 | 대하사극 | |
제작 | KBS 자체제작 | |
채널 | KBS 1TV | |
제작진 | <colbgcolor=#2a6053><colcolor=white> 연출 | 윤창범, 김영조 |
크리에이터 | 이한호 | |
극본 |
정성희, 유숭열 김현정(보조 작가) |
|
원작 |
이문열 저, 소설 《대륙의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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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설영범 | |
출연 | 감우성, 김지수, 이종원, 이지훈, 안재모, 한진희 外 |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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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11월 6일부터 2011년 5월 29일까지 방영된 27번째 KBS 대하드라마.2. 공개 정보
근초고왕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이른바 KBS 영웅군주 트리오의 첫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이는 과거 고려시대 시리즈를 만들어오던 KBS가 천추태후를 말아먹은 뒤 삼국시대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었다. 이미 동북공정의 파장으로 3사가 경쟁적으로 제작한 고구려 소재 드라마들이 고대사 컨텐츠에 대한 시장성을 증명한 바 있었거니와, 때마침 충청남도가 백제문화단지를 조성하는 등 백제시대의 홍보에 노력하고 있었는데 본 드라마는 이에 힘입은 바가 컸다.[2]2.1. 오프닝
본방송 오프닝 타이틀 오프닝은 브금으로도 많이 쓰인다.[3]
3. 등장인물
이름은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작성.출연진과 시청률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위키백과 근초고왕 (드라마) 문서 참고.
3.1. 주요 인물
- 근초고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백제 제13대 어라하. 비류왕과 진비 진사하의 아들.
- 부여화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근초고왕의 제1왕후 → 부여궁주. 거처는 '소숙당'. 부여준과 해여울의 딸. 극 초반에는 고구려 사유의 제2왕후가 되나, 이후 첫사랑인 부여구를 쫓아 백제로 돌아간다.
- 고국원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 제16대 태왕. 미천왕의 장남.
- 진승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진씨 가문의 수장인 진정의 아들로
부여구의 고종사촌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부여구를 따랐고 나이가 든 뒤에는 측근 가신이자 책사로서 활동, 근초고왕 즉위 이후에는 내신좌평을 지낸다. 그러나 극 후반에 가서는 근초고왕과 국정 방향을 놓고 갈등, 반란에 가담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용서를 받는다.
- 해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해씨 가문의 수장 해녕의 아들.
부여화를 흠모하고 있다. 부여준 또한 해건을 신뢰했으며, 부여구가 요서에서 돌아오고 부여준 자신이 죽게 되었을 때 자신의 유지를 그에게 맡겼다. 이후 해녕의 뒤를 이어 조정좌평에 올라 위례궁과 해씨 가문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위례궁의 반란을 획책하고 부여화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작중 하는 짓은 항상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갈라치기하는 것(...).
- 위홍란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근초고왕의 제2왕후 → 제1왕후. 거처는 '완월당'. 위비랑의 누이이자 근초고왕의 첫번째 부인. 부여근과 부여진의 생모. 제2왕후였으나 부여화가 폐출된 후로 제1왕후가 되고 부여화의 소생인 부여구수를 양자로 입양한다.[9] 부여근이 부여구수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대신 외국으로 떠나는 것을 선택하자 이를 받아들이며 근초고왕에게 구수를 태자로 세울 것을 간청한다.
3.2. 근초고왕의 측근
3.2.1. 동부여 위씨
- 위비랑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위홍란의 친오빠. 요서군공.
- 부여근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근초고왕과 위홍란의 아들이다. 거처는 '성지전'. 부여구수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태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또 실은 부여구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자가 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포기했다. 태자 자리를 포기한 뒤에는 아예 일본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났는데 이는 야마타이 공주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부여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근초고왕과 위홍란의 딸. 사기의 아내. 공주로서 사기와 결혼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겨 계속해 툴툴거린다. 사기에게 오만잡다한 투정을 부렸고, 또 이 때문에 사기가 고구려로 떠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그 자체는 거짓망명이었지만, 이것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치희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위홍란의 시녀.
3.2.2. 신하
- 복구검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근초고왕의 심복. 중후반부터 목라근자로 개명한다.
- 파윤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근초고왕의 심복.
- 두고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위비랑 수하 장수. 근초고왕의 심복이 된다. 근초고왕으로부터 '막고해'라는 이름을 받는다.
- 아지카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위비랑 수하 책사. 근초고왕의 심복이 된다. 요서 시절부터 백제에 들어온 이후 일정 기간동안 '아지카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근초고왕에게 '아직기'라는 이름을 받는다.
- 고흥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유학자. 요서 시절부터 근초고왕을 보좌하는 책사. 역사서 《
서기》를 저술한다.
- 부간태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말갈 흑군의 군장으로 극 초반 비류왕과 고국원왕의 회담을 주관하는 지역의 군장으로 나온다. 고구려의 위협을 받아 비류왕을 습격하는 데에 협조하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부여구를 붙잡아 왕자를 인질로 백제와 거래를 하고자 하나 부여구가 버림 받은 왕자라는 점을 알게 되어 실패. 이래저래 과정을 거치다 결국에는 부여구의 사람이자 장수가 되어 그 수하가 된다. 53화에서 대방을 침공한 고구려군과 싸우다 전사한다.
- 사충선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사씨 가문의 수장이자 사기의 아버지. 벼슬은 달솔. 부여구에 대한 신망이 깊은 인물로 부여구가 즉위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근초고왕은 사기에게 미안함을 느껴 그를 부마로 맞이하기도 한다.
- 사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사충선의 아들. 근초고왕의 사위이자 부여진의 남편.
3.3. 백제
3.3.1. 한성왕궁
- 비류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백제 제11대 어라하.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
부여구, 부여몽의 아버지.
- 해비 해소술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별칭은 '해비'. 거처는 '완월당'. 비류왕의 첫째 왕비이며 계왕의 부인인 해여울의 사촌 언니이기도 하다. 원래는 계왕 부여준과 연모하는 사이였지만 비류왕과 혼인하여 왕비가 된다. 아들 셋을 낳았고 그 중 첫째인 부여찬이 당연히 다음 국왕이 되는 것을 기대했지만 너무나 엄청난 계시와 함께 태어난 부여구를 보며 불안해 했고, 결국엔 부여구를 태자로 세우려는 남편 비류왕을 시해하는 데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형사취수혼에 따라 계왕의 첫째 왕비가 되고 다시금 부여찬을 태자로 세워내고야 만다. 그런데 계왕이 부여구를 처리하러 대방으로 나아가며 자신과 부여산 그리고 부여찬 등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결국엔 궁을 탈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생뻘인 해여울을 칼로 찌르기도 한다. 게다가 그 뒤에 대방 땅에 도착해서는 결과적으로 계왕에게 독주를 마시게 해 계왕까지 죽여버린다.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 나중에 교수형으로 죽는다.
- 진비 진사하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별칭은 '진비'. 거처는 '소숙당'. 비류왕의 둘째 왕비로 진정과 진고도의 누이동생이다. 비류왕과 슬하에 부여구, 부여몽을 낳았는데 부여구는 그 태몽과 계시로 인해 두고두고 해비의 견제를 받으며 고생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비류왕 앞에서 자신이 어쩌다가 왕의 여인이 되어 부여구와 같은 아들을 낳았는지를 한탄하기도 한다. 비류왕이 시해된 뒤에 계왕과 해비에 의해 그 죄를 뒤집어 쓰고 거짓 자백을 한뒤 사약을 마시고 부여구에게 '훌륭한 어라하가 되어라, 많이 웃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 부여찬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비류왕과 해비의 장남. 부여구의 이복형.
태자로서, 가장 강력한 왕위계승권자. 이에 극 초반에는 부여구에게 나름대로 여유로운 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부여구가 점차 두각을 드러내자 그런 면은 사라지고 적개심만 늘어나게 된다. 극중 비류왕의 시해와 계왕의 즉위, 그 이후의 새로운 태자 책봉, 부여구의 귀환과 즉위 등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근초고왕 즉위 과정에서 동생 부여휘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다시금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엔 해녕과 함께 참수형을 당해 죽는다.
- 부여휘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비류왕과 해비의 둘째 아들이다. 해비 슬하의 삼형제 중에서는 유일하게 부여구를 친동생처럼 생각하며 '이정도면 아바님, 형님도 널 인정하시겠지.' 라며 늘 격려한다. 삼형제 가운데 전쟁에서의 잔뼈가 굵은 우수한 장수이기도 하다. 부여구가 돌아와 어라하로 즉위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교수형을 당하고 형과 동생이 참수되기 전에 둘을 구하고 함께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위비랑이 던진 단도에 찔리고 그가 쏜 화살에 맞는다. 이후 부여구에게 "위대한 백제를..."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해비 소생의 아들을 증오하였던 부여구도 다른 사람은 다 죽여도 형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부여구 역시 이복형들 중 유일하게 형으로 대한 사람이었다. [19]
- 부여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비류왕과 해비의 삼남. 부여구를 가장 무시하며 극 초반부터 대립한다. 부여구가 계왕에 의해 추방되었을 때는 그를 죽이기 위해 요서까지 따라갔다가 한쪽 눈을 잃기도 했다. 해비 소생 삼형제 중 가장 끝까지 살아남았고, 또 끝까지 근초고왕을 죽이려 했으나 구수의 도움으로 근초고왕은 살고 결국엔 복구검과 일기토를 벌이다가 칼에 배를 베여 치명상을 입고 근초고왕과의 모든 원한을 청산하고 쓰러져 죽는다. 이후 근초고왕은 눈을 못 감고 죽은 그의 눈을 감겨준다.
- 부여몽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비류왕과 진비의 아들로 근초고왕의 동복 동생. 근초고왕의 지지자 중 한 사람으로 근초고왕이 친정을 나갈 때는 대리왕 자격으로 한성에 남아 도성을 지킨다.
- 흑강공 사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비류왕의 아버지[22]이자
부여구의 할아버지. 비류왕 대에는 왕의 살아 있는 아버지이자 왕실의 큰 어른으로 군림했다. 사실상 아들을 왕위에 올린 주역이기도 했기에 실력도 상당. 그러나 비류왕 사후에는 그와 가까운 진씨 일가가 몰락하고 자신 역시 손자 부여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여준에게 애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극 중반 이후까지 살아남지만 결과적으로 부여찬과 부여민의 반란 당시에 리타이어.
3.3.2. 위례궁
- 계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백제 제12대 어라하. 분서왕의 맏아들로, 부여민, 부여문, 부여화의 아버지. 비류왕 암살에 가담하고 해소술 소생도 몰살하려 하는 등 왕위와 정치보복에 눈이 먼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은 비류왕 못지않게 백제 만을 위하는 인물이다. 초고왕계의 팽창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며 고이왕계의 화평노선을 유지한다. 후일 해소술에 의해 독살당하자, 임종 전 해소술 소생의 부여찬과 친자인 부여민이 백제를 분할하려 하자, 백제가 고구려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신념을 내비치며 해건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 백제와 함께 부여구에게 바치라고 유언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
- 소해비 해여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계왕의 정실 부인으로 부여민, 부여문, 부여화 등의 어머니. 위례궁의 안주인이지만 여러모로 친척 언니인 해소술에게 눌려 살아왔다. 계왕 부여준이 왕위에 오르며 드디어 살만하게 되나 싶었지만 남편은 옛정을 잊지 못한 탓인지 첫째 왕비의 자리와 그 처소인 완월당을 해소술에게 주어버린다. 게다가 태자까지 이래저래 부여찬에게 내어주더니 얼마 가지 않아 승하. 그 뒤에는 부여민과 부여문의 반란, 부여화의 반란 등을 봐야 했고 극 후반에는 손자 되는 부여광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러모로 극중에서 마음 고생을 가장 많이 한 인물 중의 하나.
- 부여민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계왕과 소해비의 장남이자 부여화의 첫째 오라비. 계왕이 즉위한 뒤에 태자 자리에 기대를 품었지만 완월당 해소술의 계략으로 태자는 부여찬이 먹어 버렸다. 계왕은 대신 위례공의 작위를 주어 부여민을 달랬고, 이후에는 대방으로 향하며 만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해소술과 부여산을 죽이고 즉위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러나 대방에서 계왕이 죽어 돌아왔고 이후에는 근초고왕이 즉위해버리며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대신 동생이 원수와 결혼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게다가 그 동생이 원수의 아들을 낳는 즈음에 가서는 부여찬, 부여산과 힘을 더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부여찬과는 한성과 미추홀을 나누어 서로 나라를 갈라 가지기로 협약하기도 했다. 종국에는 반란이 실패하여 동생인 부여문과 함께 참수되어 그 수급이 효시된다.
- 석라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부여민의 아내로 석륵이 세운 후조 황실 출신이라는 설정. 정략혼으로 왔다고는 하지만 부여민과는 나름대로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석라해가 조나라 황실 출신이라는 점이 부여화의 인맥으로 부각되어 부여화가 고구려에 있을 때 고구려와 조나라의 동맹을 위해 업도로 파견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아들이 왕위를 위해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봤지만 그 반란은 실패. 반란 진압 이후 열린 남당 회의에서 소해비와 함께 부여광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기도 한다.
말버릇은 '네 이년! 입을 찢어놓을라.' 작중에서는 단단이가 이 말을 자주 들었다.
말버릇은 '네 이년! 입을 찢어놓을라.' 작중에서는 단단이가 이 말을 자주 들었다.
- 부여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계왕과 해여울의 차남이자 부여화의 둘째 오라비. 무력으로는 부여휘와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성격이 매우 급하고 불같다. 친형 부여민과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처형된다.
- 부여광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계왕 부여준의 손자이자 부여민과 석라해의 아들로 유복자다. 부여민의 반란 이후 태어나 고모인 부여화의 손에 자랐다. 부여화는 부여광을 왕으로 만드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아이를 기른 모양. 그러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식견이 충분치는 않은 듯 하며 반란군의 최후 전투 직전에 내분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오히려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내기도 한다. 해서 반란이 진압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초고왕이 이를 살려주어 요서군공으로 내보낸다.
3.3.3. 귀족
- 진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진승의 친부이자 근초고왕의 외숙부. 완월당 진홍란의 양부.
- 진고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진승의 숙부이자 근초고왕의 외숙부. 진남대장군 파사후.
- 진아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진고도의 딸. 훗날 근구수왕이 되는 쇠꼬비의 아내가 된다.
- 진률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 해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해씨 가문의 수장으로 해건의 아버지.
계왕 대의 내신좌평을 지냈는데 이는 그가 해씨 가문을 이끌며 부여준의 즉위를 계속해서 지원해 왔기 때문이다. 계왕이 죽은 뒤에는 일단 근초고왕에게 신복했지만 근초고왕에 대신 부여민을 왕으로 올린다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근초고왕을 직접 시해하려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부여찬과 함께 처형된다.
- 국나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국씨 가문의 수장. 연도숙과 함께 귀족, 대신들의 입장을 보여주는 인물로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왕을 지지했다가 근초고왕을 지기하기도 하고, 또 부여광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이를 후회하고 철회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행위에 분노한 부여광에 의해 처형되지만 이로 인해 국씨 가문과 연씨 가문의 협력이 크게 약화되며 반군의 세력이 더욱 위축된다.
- 연도숙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국나호와 함께 움직이는 귀족으로 역시 극 후반 부여광에 의해 처형된다.
3.4. 고구려
- 구부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 제17대 태왕. 고국원왕의 장남.
- 이련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 제18대 태왕. 고국원왕의 차남.
- 조불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의 국상. 고국원왕의 책사 역할을 겸하고 있다.
- 소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의 막리지. 조불이 죽은 후 국상이 된다.
- 고치수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국원왕의 심복이자 대장군. 성격이 매우 불같다. 초반에는 부여구와의 일기토에서 이기기도 하는 등 용맹하다. 대방 고모리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을 도피시키고 위비랑과 싸우다 전사한다.[34]
- 고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 대장군. 미천왕의 차남이자 고국원왕 동생.
- 고노자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의 막리지.
연나라가 두려워하는 맹장이라고 한다.
- 나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의 관나부 수장이자 막리지, 막고해에게 일기토에서 전사한다.
3.5. 쇠꼬비와 그 측근
- 쇠꼬비 / 부여구수 / 근구수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백제 제14대 어라하.
근초고왕과
부여화의 아들. 처음에는 쇠꼬비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가, '부여구수'로 이름이 바뀐다. 성무전 왕자. 진홍란의 양자가 된다. 부여구와 부여근의 목숨을 구하고 고구려왕 사유를 죽이는 등 여러 큰 공을 세운다.
- 단단이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부여화의 시녀. 쇠꼬비의 양모. 훗날 시녀장의 위에 오르며 죽을 위기에 처한 쇠꼬비를 구하여 곡나철산에서 자기 아들로 길렀다.
- 을마훌 / 쇠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부여화의 호위무사이자 해건의 심복이다. 쇠꼬비의 양부. 구수를 죽이라는 해건의 명을 어기고 쇠꼬비를 곡나철산으로 데려가 키웠다.
3.6. 주변국
- 할불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진왕. 마한의 목지국왕.
- 건건만신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마한의 건마국왕.
- 침미고루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마한의 침미다례왕.
- 침미소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침미고루의 아들.
- 모용황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전연의 황제.
- 우문갈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전연의 대사마.
- 모용수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전연의 다섯번째 황자. 후연의 초대 황제.
- 추응백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조나라 절지도독.
- 실성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 진구공주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lue; color: white; font-size: .7em;"
3.7. 그 밖의 인물
- 동명성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 초대 태왕. 1화 초반에만 등장한다.
- 소서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동명성왕의 제1왕후. 1화 초반에만 등장한다. 동명성왕과 후계 구도를 두고 갈등을 겪다가,
욱리하에 도착하여 백제를 건국한다.
- 고유리 / 유리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구려 제2대 태왕. 1화 초반에 등장한다.
- 비류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주몽과 소서노의 장남이자 온조왕의 형. 1화 초반에 등장한다.
- 온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백제 초대 어라하. 고주몽과 소서노의 차남. 1화 초반에 등장한다.
* 큰어지[42]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실존}}} (
강한별 분)* 큰어지[42]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color: white; font-size: .7em;"
고흥의 어린 제자, ??화에 처음 등장한다.
4. 줄거리
화수 | 상세 | |
1~13 | 부여준의 찬탈과 NTR | 341~344년 |
비류왕에게는 본처인 해비 해소술 소생의 태자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과 후처인 진비 진사하 소생의 부여구, 부여몽이 있다. 무능한 부여찬에게 실망한 비류왕이 요서에서 소금장수로 살아가던 부여구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이에 해소술은 과거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부여준과 영합하여 남편 비류왕을 산자고 독으로 독살해버린다. 하지만 부여준은 부여찬을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깨고 그 자신이 계왕으로 즉위하고, 그 대신 해소술을 자신의 왕후로 맞아들인다. 이 와중에 부여준이 진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자 진비는 독을 먹고 자살함으로써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부여구를 살리고, 이에 부여구는 다시 요서로 추방된다. | ||
14~36 | 부여구의 역습과 NTR | 344~346년 |
부여준의 딸 부여화는 본래 부여구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고국원왕과 정략결혼을 맺음으로써 부여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부여구도 요서로 추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서에서 칠종칠금과도 같은 대범한 방법으로 부여의 유민들을 포섭한 부여구는 요서군공이라는 국제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씨 가문과 연합해 계왕을 몰아낸 뒤 자신의 왕위를 되찾는다. 한편 분열된 백제를 침공하려 기회를 엿보던 고국원왕은 역시 부여구에게 관광당하고, 부여화마저 부여구의 품으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부여구는 근초고왕으로 즉위하며 본부인 홍란이 아닌 부여화를 새 왕후로 맞아들인다. | ||
37~46 | 부여화의 수난과 잃어버린 왕자 | 346~354년 |
이윽고 부여화와 홍란이 거의 동시에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밝혀지고, 특히 부여화는 고국원왕의 아이를 가졌다는 루머가 퍼지기에 이른다. 마침 전연이 요서로 침공해 들어오자 근초고왕은 이에 맞서기 위해 도성을 떠나고, 부여화는 아이를 조산하면서 루머에 힘이 실려 점점 더 궁지에 몰린다. 한편 절치부심하던 부여찬 과 부여산이 이 기회에 부여화의 두 오빠들을 꾀어 반란을 일으키지만 적절히 근초고왕이 돌아오는 바람에 부여산은 도망치고 부여찬은 죽임을 당한다. 이 난리통에 부여화의 아들은 궁 밖으로 빼돌려지고, 그러나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부여화는 근초고왕에게 원한을 품는다. | ||
47~60 | 부여화의 흑화와 내가 네 아비다 | 369~375년 |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하고 돌아오자 부여산은 이 틈에 그를 암살하려고 하지만 복구검에게 가로막히고 그의 손에 죽는다. 근초고왕이 전제왕권을 내세우자 이에 반발한 진씨 가문은 부여화와 영합한다. 한편 근초고왕은 대장장이로 살던 부여화의 아들인 쇠꼬비를 발견해 왕자 구수로 삼고, 구수는 직후 벌어진 고구려의 침공에서 홍란의 아들 부여근과 경쟁적으로 전공을 세운다. 이 사이 진씨 가문과 부여화가 도성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구수는 비로소 출생의 비밀을 알고 꿈에 그리던 어머니 부여화를 만나지만 어머니는 이미 불치병에 걸렸던 상태(...). 부여화가 죽자 반란군은 붕괴되고 근초고왕은 그들을 모두 용서한다. 부여근이 사랑하는 진구와 함께 야마토로 떠나자 이에 구수가 태자가 되고, 근초고왕은 마지막 고구려 진군을 앞두고 천수를 다한다. |
5. 평가
그런데 본격적인 방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이 드라마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상당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본래 이 드라마의 제목이었던 '환서해대백제 근초고왕', 원작으로 설정된 이문열의 소설 '대륙의 한', 기획의도와 티저 예고편에 묘사된 백제의 판도, 이 모든 것이 명백히 대륙백제설이라는 환빠스틱한 역사 왜곡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비슷한 걸 천추태후에서 당했던 사극 마니아들의 지적은 날로 가중되었고, 이에 본 드라마는 부제가 '환서해대백제'에서 '백제영웅'으로 바뀌고[43] 논란이 된 백제의 판도는 오프닝에서 삭제되는 등의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시망해 버린 천추태후 이래 정통사극에 목 말라 있던 대다수 대하사극 마니아들의 상당한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호응하듯 제작진도 나름대로 야심차게 방송을 개시했는데...
결국 이 드라마는 역사적 전개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그렇다고 대중적인 민족감정에 호소하지도 못했으며, 정치극으로서의 진지함을 놓친 것은 물론이요,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설득력이 없는데다가, 스토리의 완급 조절마저 실패한 철저한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역사 왜곡과 막장 드라마의 잘못된 만남이었던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각본가가 60부작이라는 긴 분량으로 인해 한계에 도달했는지 근초고왕대 백제의 사회적 현안과 분위기를 스토리상으로 의미 있게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44] 사실 지금까지 주로 극화되어온 조선시대에 비해 고대사회의 특성이라는 것이 생소할 법도 하기에 이는 부분적으로 감안될 수 있는 문제지만, 그럼에도 고작 유사역사학적 개설서 수준의 지식[45]으로 스토리를 쓰려니 제목은 근초고왕인데 각본은 재벌가 뺨치는 상속싸움 일변도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이전에 나온 천추태후나, 나중에 나온 광개토태왕보단 낫지만...[46]
이처럼 부실한 기반 위에서 내적으로 퓨전사극의 트렌디함을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초 그리겠다던 정복군주로서의 모습은 없고 군주의 집안 싸움이나 애정 구도만이 강조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등장인물들도 전후 일관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면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이 드라마는 KBS 대하사극에 대한 마니아들의 기대와 치열한 정복군주의 기상을 바라던 남자들의 로망을 철저히 배반하는 처참한 결과물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근초고왕이 즉위하기 전까지의 분량은 역사상으로도 고이왕계와 비류왕계 사이의 격렬한 왕위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반해 실제 전하는 기록은 턱없이 부족하기에[47] 작가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상당히 관대하게 수용될 수 있었으나, 근초고왕이 즉위한 36화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내용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그나마 풍부하게 남아있는 근초고왕에 대한 기록들을 정면으로 거슬러 전개되었고, 극의 흐름은 막장 드라마적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간의 전쟁 장면을 저예산으로 처리하기 위해 테러 수준에 가까운 CG 합성을 강행한 것은 합판소문의 악명에 비견할 만한 백미.
급기야 막판에 들어서 이를 타개한답시고 투입한 아이돌 배우들은 출생의 비밀을 위해 전면으로 부상한 역사왜곡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오히려 극에 정말로 헬게이트를 열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 시점에서는 첫회부터 봐온 근성 시청자들도 '사극은 재미고, 역사는 교육이다'라는 마인드로 보기가 힘들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스토리는 시청자 게시판과 디시 갤러리를 중심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으며, 결국 막방 10.2%의 저조한 시청률로 마무리되었다. 주연인 감우성과 김지수는 종방연에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사유는 각자 해외여행과 감기몸살이었다고 한다.[48]
한편, 이 작품은 당초 2010년 9월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준비 미비로 어려움을 겪어왔고 이에 KBS는 바람의 나라를 재방영하는 것도 한때 검토되었지만 재편집 문제 등의 이유로 무산됐으며 이에 KBS는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특집물을 급히 편성하기도 했다.[49]
결국 이런 막장사극의 문제점은 차기작에서 제대로 폭발하기에 이른다.
5.1. 비판
자세한 비판점들은 근초고왕(드라마)/비판 문서 참고.제작진 중 자문 역인 김기섭은 연기자, 즉 재현 자문이 아니라 연기 자문이다. 따라서 제작진 가운데 역사에 대한 재현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 채 메인이 전개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성공을 거둔 정도전이 김영수 교수를 재현 자문으로 앉히고 그의 저서 '건국의 정치'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한 점이나, 이외에도 이영 교수의 논문 '홍산, 진포, 황산대첩의 역사지리학적 고찰', 이상훈 박사의 논문 '고려말 왜구토벌의 전략과 전술' 등의 내용을 극에 적극 반영했으며, 논란이 많은 인물인 이덕일을 재현 자문으로 부르긴 했으나, 균형을 맞추어 인물의 허점도 보여주고 일방적인 정도전 찬양을 만들지 않았던 것과는 천양지차.
참고로 이때부터 매회 예고편에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이 뜨기 시작했다.[50] 그런데 당시 극의 낮은 완성도도 그렇거니와 지난 2010년에 KBS 수신료 인상 논란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것이 MBC에서 제작되었던 수로왕의 '실제 역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자막[51]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라 오히려 양심도 없는 수신료 도둑이라며 시청자들에게 어그로를 끌어버린 결과였다.
5.2. 그나마 호평받을 만한 점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1화만 보았다면, 이 드라마가 왜 망작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스토리와 역사적 사건 재현은 개판인데 소품과 배경, 언어 전반에선 고대적 분위기가 물씬 살아있기 때문이다. 갑옷을 비롯한 각종 복식과 생활상의 재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삼국시대 드라마가 보여준 개판 재현과 다르게 크게 일신된 면모를 보여준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드라마 근초고왕의 백제 조정 | 드라마 근초고왕의 위례궁 |
고구려 무용총의 접객도 | 드라마 광개토태왕(잘못된 재현) |
회의나 연회와 같은 여러 공식석상에서 각 신료들이 모두 개인 탁자를 놓고 의자에 앉는 등 입식생활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는 고분벽화를 바탕으로 사료의 내용을 충실히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백제의 일각에서는 무릎을 꿇거나 책상다리로 앉아있는 등 좌식생활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역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북방계(부여), 후자는 남방계(삼한)의 생활상을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이것만으로도 고대적인 분위기가 엄청나게 살아났다. 이는 나중의 대왕의 꿈이나 칼과 꽃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 서울말 쓰는 작금 유사 사극들과는 달리 사극 특유의 고풍스러운 대사들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 주서(周書)의 기록에 따라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던 ' 어라하'라는 단어를 충실히 복원해서 쓰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데, 정성희 작가의 전작 자명고에서도 백두산을 가리키던 '불함산'이라는 말을 복원해서 "은혜가 불함에 닿았다"는 식의 표현이 등장했음을 상기하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다만 이와 비교되게도 왕비를 가리키던 '어륙'은 왕후니 왕비니 하는 중국식 용어에 밀려 등장하지 않았고, 기층민들이 왕을 가리키던 '건길지'는 길지(키시)가 존칭인지도 몰라서 아지키시(아직기)를 하나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병맛을 보여주었다. 또한 당시 백제에서 한강을 가리키던 이름인 '욱리하'를 사용하였다.
드라마 근초고왕의 고구려옷 | |
드라마 근초고왕의 고구려 관모 | 드라마 근초고왕의 백제 관모 |
의상도 기존의 삼족오와 인동초 일색에서 벗어나 격자무늬, 와당무늬, 불꽃무늬와 같은 다양한 문양을 접목시킨 점에서 의미 있게 평가된다. 고구려의 관모는 사료에 근거하여 왕이 쓰는 백라관(白羅冠)과 대가들이 쓰는 책(幘)을 구현하였으며, 백제의 관모로는 오우관으로 흔히 알려진 변(弁)과 관식을 전면적으로 사용하여 역시 당대상에 가까운 훌륭한 재현을 보여주었다. 다만 고구려의 책은 사료에 근거하여 위의 덮개(屋)가 없어야 하는데,[52] 이것이 구현되었고 구현된 것도 실제 재현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물론 그런데도 엉망진창인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의 관모와 비교해보면 이쪽이 월등히 우수하다.
드라마 근초고왕의 고국원왕 | 통구 12호분 벽화 | 드라마 주몽의 주몽(잘못된 재현) |
쌍영총 벽화 |
갑옷의 경우에도 고구려의 갑옷 재현은 모든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물론 갑찰의 수결법이나 형태 등 세부적인 부분[53]은 오류가 있고, 부분적으로 대조영의 갑옷이 재활용되긴 했지만, 새로 제작한 갑옷들은 찰갑의 전체적인 형태를 재현에 맞추어 매우 훌륭하게 재현한데다가 투구 역시 최대한 벽화에 맞추어서 백제가 주연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군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고구려군 병사들의 모습도 벽화에 맞추어서 잘 재현되었고 갑옷도 일신되는 효과를 맞았다.
그러나 후속작 광개토태왕에서는 이처럼 훌륭한 재현을 보인 근초고왕의 갑옷을 모두 버리고, 대조영과 천추태후 때부터 지겹도록 우려먹었던 중국식 갑옷, 아니, 중국식 갑옷도 아닌 정체불명의 판타지스러운 갑옷을 재활용하는 악수 중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그나마 다다음 후속작인 대왕의 꿈에서 목가리개가 갑옷과 일체형으로 나와 재현에 좀더 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사용됐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
드라마 근초고왕의 비류왕과 부여구(나중의 근초고왕)의 갑옷 | 광주 출토 투구 |
고흥 출토 갑주 복원품 |
다만 백제의 갑주에 대해서는 너무 일본풍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백제 갑옷의 경우 애당초 자료가 빈약하기도 하거니와 한반도 남부의 고대 갑옷들이 대부분 판갑 형식이라 드라마에 나오는 갑옷이 반드시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의 일본과 한반도 남부가 공통적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다.[54]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나지만 일본에서 갑옷의 기본적인 형태는 이 모습을 유지해왔다. 일본 자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 갑옷의 모습을 차용한 중국 84부작 삼국지와는 경우가 다르다.
드라마에 나오는 근초고왕의 갑주 | 중국과 한반도 남부의 전형적인 소찰주들 |
또한 이러한 갑옷 재현의 변화와 더불어 백제의 투구도 이른바 '일본식'의 미비부주에서 소찰주(小札胄)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소찰주는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되는 양상이 확인되는 만큼 백제가 그 중간과정에 있을 것이 유력시되기에 가히 적절하고 유효한 재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투구를 구성하는 찰갑편들을 끈으로 엮지 않고 리벳으로 고정시킨 점은 옥의 티. # 이러한 갑옷들은 역시 이후의 대왕의 꿈에서 백제의 갑옷으로 활용되어 역시 이후의 드라마들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
더불어 이와 관련해 근초고왕의 요서경략 부분에는 진성과 고평성을 수비하는 조군의 모습이 일부 중국에서 제작된 영화 적벽대전의 것을 수입한 것이어서 주목되는데, 애초에 영화 적벽대전의 갑옷이 남북조 시기의 것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를 놓고 보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후 전연의 갑옷은 대조영 시기 당나라의 갑옷을 그대로 재사용했는데, 이는 이후 광개토태왕에서의 흑역사 재현으로 이어지니 도저히 좋게 평가해줄 수가 없다. 선비족 연나라의 갑주는 차라리 고구려의 갑주를 차용해서 쓰는 것이 옳은 재현이다.[56] 굳이 연나라 갑주를 중국풍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면 고구려 갑주와 고대 중국풍(특히 중국 삼국시대~ 서진) 갑주의 중간 형태로 묘사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6. 기타
- EBS 2011년 3월 2일 ~ 3월 3일자에 드라마 촬영팀 편에서 이 드라마를 촬영하는 장소에서 극한직업도 같이 촬영되었다. 촬영팀 이외에도 배우 정웅인이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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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전에 집필했던
자명고에서 사용했던 전각의 이름인 강국전, 편수전, 미앙전, 완월헌→완월당, 백승남문 등을
근초고왕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 2021년 6월 9일 오전 10시 무렵부터 KBS Drama Classic 유튜브 채널에서 전체 에피소드를 무료 스트리밍 해줬다.
- 2024년 현재 기준 KBS 대하드라마 중 가장 앞선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7. KBS Drama Classic 연속 무료 스트리밍
해당 스트리밍은 2021년 6월 1차례 스트리밍 된 적이 있다. 방영 당시 삼국시대 영웅 트릴로지 시리즈를 연 작품으로 오랜만의 대하드라마 부활 작품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제작비 부족 등의 이유와 근초고왕의 영웅담보다는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전개 등의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스트리밍에서도 이와 같은 반응이 똑같이 제기되었고, 몇 주 뒤에 진행된 대왕의 꿈보다는 높은 편이나, 그렇다고 아주 높은 수치도 아닌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에는 스트리밍이 된 적이 없다.- 1번째 스트리밍 ( 2021년 6월 9일 ~ 6월 11일 / 동시간 최대 3,200명 ↑)
- 2021년 6월 9일 10시부터 스트리밍했다. 1일차 초반 비류왕 시대에는 1,500명 정도 수준을 유지하다가, 비류왕의 죽음 시기를 전후하여 2,000명을 돌파하였으며, 1일차 최대 2,990명을 기록하였다. 2일차는 오전에 1,800명 정도를 유지하다가 근초고왕의 즉위 시점에서 2,000명대를 기록하였으며, 부여찬의 반란 시점에서 3,000명을 돌파하였다. 그리고 3일차로 넘어서자 최대 3,200명을 기록하였다. 3일차에도 1,800~2,700명을 기록하였다. 1차 스트리밍은 최대 3,200명을 기록하며 해신과 함께 최저기록 공동 4위에 랭크되었다.[57]
- 근초고왕은 역대급 갑옷 재현 등 재현에 대해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아침드라마', '막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정도로 정복군주와는 거리가 먼 스토리 전개와 후반부 아이돌 투입으로 인한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공존하였으며, 비슷한 스타일의 '대왕의 꿈'과 어느게 더 최악인지 비교되면서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공존했다. 그리고 6월 11일 금요일 오후 4시 30분 경에 종방하였다.
해당 스트리밍 채팅 중 흥했던 별명, 드립은 아래와 같다.
- 배역 / 배우의 별명: < 용의 눈물>, < 태조 왕건>, < 야인시대> 등 전, 후에 방영된 사극에 출연한 사람들이 많아 그 배역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밑에 나열된 인물들 이외에도 출연한 배우들 중 앞에서 언급된 사극이나 다른 작품에서 보인 경우가 많아 그 배역의 배우들 또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근초고왕( 감우성 분): 조선구마사, 근초코왕, 부여9, 조빈
- 비류왕( 윤승원 분): 정호용, 만적, 하무지
- 주몽( 이덕화 분): 송일국, 이의민, 금강야차, 설인귀, 전두환
- 소서노( 정애리 분): 한혜진, 이순신 엄마, 예서 할머니, 담터좌
- 흑강공 사훌(서인석 분): 견훤, 이의방, 노태우, 최영
- 복구검( 한정수 분): 최장군, 목라근자, 도금표
- 진승( 안재모 분): 김두한, 연두한, 연산군, 충녕대군, 킬방원
- 진정(김효원 분): 김효종, 민승호, 릴렉스좌, 진준
- 진고도(김형일 분):신숭겸, 신립, 숭겸아우, 최충수, 김재규, 발터좌
- 해녕(김기복 분): 김락, 더락, 기효근
- 해건(이지훈 분): 왜 하늘은, 와이 스카이, 어나니머스 수염, 학폭갑, 안우진
- 해비 해소술(최명길 분): 원경왕후, 명성황후, 민희경, 리피어라
- 부여찬(이종수 분): 이글아이
- 부여휘(이병욱 분): 김종서, 윤소종, 박용택, 박진재, 마의태자
- 부여산(김태훈 분): 선조 동생, 임혁필, 백제 올라프, 댕댕이, 1냥좌, 아이즈원, 궁여산
- 부여화(김지수 분): 음주좌, 음주운전좌, 보고또보고 은주
- 계왕(한진희 분): 대소왕, 계왕권
- 부여민(안신우 분): 박인애 오빠, 효령대군, 이현태자
- 고국원왕(이종원 분): 불륜좌, 해명태자, 리복좌, 리복갑, 박수철
- 조불(김응수 분): 곽철용, 아이언드래곤
- 소우(원석연 분): 도우, 도우너, 엘지대군, 소우너
- 고치수(박철호 분): 박존위, 이정
- 부간태(정의갑 분): 시티즌좌, 이지영
- 고노자(전병옥 분): 무능애, 낚시터 사장님
- 모용황(송용태 분): 이세민, 홍유, 레드오일, 백운택, 배극렴, 품바
- 고구려 신하 1( 심우창 분): 염상
- 단단이(박그리나 분): 춘리, 단단, 단데기
- 부여몽(김도현 분): 엠씨몽, 전력분석팀장
- 소해비(해여울)(김보미 분): 홍상궁, 상궁좌, 황태비, 선평황후
- 진률(신동훈 분): 배현경, 조인사, 조인싸
- 국나호(김영기 분): 권율, 김기홍, 신성, 자선
- 연도숙(김준모 분): 이산해
- 사충선(이재연 분): 이몽유
- 염보(서현철 분): 21, 이일, 염보성
- 팔복(손종범 분): 나석주
- 자출(곽승남 분): 인디고좌, 평망고
- 위비랑(정웅인 분): 세친구좌, 민준국
- 위홍란(이세은 분): 나미꼬, 나믿고
- 두고(정흥채 분): 부루, 임꺽정, 막고해, 이여송
- 아지카이(이인 분): 광해군, 목종, 아직기
- 을마훌(공정환 분): 낙상지
- 찬웅포(오성렬 분): 입전
- 추응백(이효정 분): 히데요시, 쌍기
- 고흥(안석환 분): 전남 고흥군, 유학충, 방배수
- 사기(전승빈 분): 지채문, 송희립, 사기꾼, 진상구, 세종이 친애비
- 건건만신(전현 분): 금강, 짭순신, 무승사, 예산좌, 조준
- 모용수(정재곤 분): 최우, 이도종, 강하왕
- 우문갈(장기용 분): ITZY장군, 잇치, 지명천
- 부여근(오승윤 분): 마수리, 복성군
- 부여진(이지현 분): 큐리좌, 백제 아이돌 A
- 근구수왕(건일 분): 쇠꼬비, 백제 아이돌 C
- 부여광(서현석 분): 정진영
- 침미소(신동우 분): 보니, 구마준
- 진아이(함은정 분): 백제 아이돌 B, I, 롤리폴리좌, 오소리, 리틀 인수대비
- 고무(김광영 분): 왕신, 고무고무, 하파
- 진구공주(홍인영 분): 천향비, 노진구, 일본유학생, 공대아름이
- 실성마립간(김하균 분): 부기원, 개비스콘좌, 태평, 진린
- 해설(설영범 분): 두목님, 짱구 원장선생님, ㄱㄹㄸ
- 드립
- 합창단 드립: 본 작품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ㅏ'에 맞춰 부르는 합창단의 별칭으로 '칠지도 합창단', '삼천궁녀 합창단', '백제 합창단' 등의 드립이 등장했다.
- 빡빡이 드립: 12회에서 부여구(근초고왕)가 성에서 본인이 아버지를 시해했다고 거짓 자백을 외칠때 '나는 빡빡이다' 드립이 등장했다.
- 소방도끼 드립: 작중에서 위비랑이 들고다니는 빨간색 도끼를 보고 소방도끼라는 드립이 등장했다. 소화기의 빨간색과 유사하여 생긴 드립으로 보인다.
- 아침드라마 드립: 39, 40회에서 부여화가 아이를 낳고 칠삭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장면이 나올때 '아침드라마 근초고왕' 등의 드립이 등장했다. 이는 KBS1 대하드라마 답지않게 아침드라마에 나올법한 이야기가 나온것에서 나오는 드립이다..
- 목도리 도마뱀 드립: 백제장수 갑옷들의 디자인을 보며 터진 드립.
[1]
50부작이었으나 후속 작품 준비 등의 문제로 10부 연장되었다. 처음에 70부작이라고 했던 것은 방송국에서 70부작이라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2]
실제로 이 드라마는 별도로 막 신축된 백제문화단지의 재현 시설을 고스란히 세트장으로 활용하였다.
[3]
어쩌다 예능에서도 틀어지긴 하지만..... 그런데 MBC에서
모게임브금튼 적도 있었다(!)
[4]
2010년 9월부터 PD들과의 갈등과 이후 촬영에 펑크를 내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심지어 KBS PD회의에서 하차를 요구할 정도였다.
[5]
빨간펜 CF를 찍었다. 2016년 기준
대화중학교에 재학하고 있으며 중학교 3학년생이다. 하지만 아역배우 활동을 중단하면서 사고뭉치가 된 듯.
[6]
이 드라마를 촬영하기 직전,
음주운전을 하다가 택시와 박고 뺑소니를 친 사고를 쳤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김지수의 하차를 요구했지만... 결국 그냥 출연했다. 당시에는 음주운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2020년대보다 상대적으로 덜 냉혹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이후 김지수는 이 사고에 대한 처벌로 벌금 1000만원 형에 처해졌다. 거기다가 한창 드라마 촬영 도중에는 얼굴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 촬영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결국 김지수의 얼굴의 멍은 KBS 영상효과팀에서 일일이 다 지워야 했다고. 부여화 캐릭터가 비판을 받은 건 공감 불가의 이유도 있겠지만 김지수의 출연을 고깝게 여긴 누리꾼들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 탓도 크다. 방영 당시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면, 캐릭터에 대해 공감이 안간다기보다는, 이 배우 왜 계속나오냐는 반응이 대다수.
[7]
용의 눈물에서
세종,
왕과 비에서
연산군,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연개소문에서
연남생,
정도전에서
태종 이방원을 맡았다.
[8]
근초고왕에게 실제로 진씨왕후가 있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원래 위씨였다가 진씨가문에 입양돼 진씨가 되었기 때문에 실존으로 봐야할지 가상으로 봐야할지 사실 애매하다. 어쨌든 배우가 귀엽고 당찬 성격과 외모 싱크로도 높은데다 연기도 최선을 다해 잘 해 냈고 그나마 공감가게 잘 만든 캐릭터라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다. 홍란이 때문에 본다는 사람도 많았을 정도.
야인시대의 나미꼬 역,
연개소문에서 고소연 역으로 은근히 사극 출연이 잦았다.
[9]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부여구수가 부여근의 목숨을 구한 뒤에 마음이 바뀐다.
[10]
선덕여왕의 미생을 연상해서는 안된다. 미생과 위비랑은 모든 면에서 정 반대의 인물이다.
[11]
매직키드 마수리의 마수리 역할을 맡았었다.
[12]
티아라의 멤버
큐리이다.
[13]
대왕의 꿈에서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을,
징비록에서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 역을 맡았다.
[14]
명성황후에서는 어린
고종을 연기했다.
[15]
이전에 출연한
연개소문에서는 장년
김유신 역을 맡았고 후속작인
광개토태왕에서는 광개토대왕의 책사 하무지 역을 맡았으며 후속작의 후속작인
대왕의 꿈에서는
당태종 역을 맡았는데 해당 작품들에서는
백제를 조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만 당태종의 경우는 백제가 멸망하기 전에 죽었으므로 간접적 역할에 국한된다.
[16]
명성황후에서
이미연의 뒤를 이어서 명성황후 역을 맡았다.
대왕세종에선 원경왕후.
[17]
후속작인
대왕의 꿈에서는
문무왕 역을 맡아서
백제를 멸망시켰다. 사실
연개소문에서도 비록 청년기 한정이지만 마찬가지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 측 인물인
김유신을 연기한 바 있다.
[18]
명성황후에서
김옥균,
정도전에서는
윤소종 역을 맡았다.
[19]
이 때문에 부여구의 심복들인 파윤과 복구검은 물론 조부인 흑강공, 이복동생 몽도 휘가 죽었을 때 몹시 안타까워했으며 진승과 위비랑도 찬과 산을 탈출시키려는 휘를 베고 싶지 않다며 만류했다.
[20]
아저씨에서
김치곤,
나쁜 녀석들에서는
오재원 검사 역을 맡았다.
[21]
제5공화국에서
노태우,
태조 왕건에선
견훤,
무인시대에서
이의방,
연개소문에서
당태종 이세민,
대왕의 꿈에서
숙흘종,
정도전에서는
최영 역을 맡았다.
[22]
역사에서는 비류왕이
사반왕의 동생이라고 하지만 비류왕이
구수왕이 죽은 뒤 70년 만에 즉위를 했고 40년 동안 재위를 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드라마상에서 흑강공이 초고왕계의 후손이고,
책계왕과 왕위를 다투었다고 나왔기 때문에 흑강공이
사반왕의 동생이고,
비류왕을 그 아들로 만든 것 같아 보인다.
[23]
SBS 법정 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 회장 역을 맡았다.
[24]
대왕 세종,
명성황후에서 원경왕후, 명성황후의 심복인 한상궁, 홍상궁 역을 맡았다. 전작에서 주인으로 모셨던
최명길과 적으로 다시 만난 셈.
[25]
대조영에서
측천무후의 아들인 폐태자 이현 역을 맡았다.
[26]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서는
명성황후 민씨 역을 맡았다.
[27]
명성황후에서는
민승호,
징비록에서는
성혼 역을 맡았다.
[28]
태조 왕건에서는
신숭겸,
무인시대에서는
최충수,
연개소문(드라마)에서는
김용춘,
징비록(드라마)에서는
신립을 맡았다.
[29]
태조 왕건에서는
배현경 역을 맡았고,
연개소문(드라마)에서는
양만춘 역을,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수 조인사 역을 맡았다.
[30]
<
태조 왕건>에서
김락 역, <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수
소정방 역을 맡았다.
[31]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에서
도원수
권율 역을 맡았다.
[32]
타짜에서
곽철용 역을 맡았고
임진왜란 1592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아 열연했다.
[33]
대왕의 꿈에서는
백제
무왕역을 맡았다.
명성황후에서는 안동 김씨의 중진인
김병국 역을 맡았고,
무인시대에서는
박존위 역을 맡았다.
[34]
위비랑의 화살을 맞고 대결을 시작해서 불리한 싸움을 하다가 패한 것.
[35]
코미디언
염경환과는 동명이인이다.
[36]
후속작
대왕의꿈에서
김춘추의 딸 고타소 역을 맡았다.
[37]
태조 왕건에서 견금강,
대조영에서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승사,
불멸의 이순신에서
무의공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과는 동명이인), 정도전에서 조준 역을 맡았다.
[38]
태조 왕건에서는
홍유장군역,
대조영에서 당 태종역,
광개토태왕에서는
고국양왕역을 맡았고,
정도전에서는
배극렴장군역을 맡았다.
[39]
대조영에서 당 태종의 조카인 강하왕 이도종 역을 맡았다.
[40]
야인시대에서는
유진산역,
불멸의 이순신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연개소문(드라마)에선
영양왕을 맡았다.
[41]
태조 왕건에서는 책사 태평,
대조영에서 간신
부기원 역을,
대왕의꿈에서는
진평왕을 맡았다.
[42]
최종화에 이름이 밝혀진다.
[43]
하지만 부를 때에는 대체로 부제 없이 '근초고왕'이라고만 하며, 디지털 TV 방송정보와 편성표에도 '근초고왕'으로만 표기된다.
[44]
사실 60부작은 KBS 사극치고는 짧은 편이다. 아무리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갔던 10년대라지만 후속작인 광개토태왕도 92부작까지 방영했다.
[45]
유사역사학의 주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가 생산수준과 사회의 조응, 사회적인 계층화와 분업화, 국가의 영역화와 투영화 따위의 과정이 모조리 생략된 채 역사의 시작부터 근대적 의미의 대제국을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다 보니 강역이라는 외연만 뻥튀기되어, 사회 내적인 역동성이나 다양성 따위에 대한 흥미는 바닥을 기게 된다.
[46]
이 두 작품은 재현 따위는 말 그대로 철저하게 씹어먹은데다, 스토리도 자신들이 뭘 언급하고 연출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역사적 사실이 아닌 그야말로 대체역사물을 보여주는 수준으로, 기본적인 뼈대부터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근초고왕은 그에 비하면 초반에는 몇몇 발 CG를 제외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고 후반부에 들어 보여줘야 할 정복 전쟁은 날로 드신 채 왕실의 막장 드라마만 찍어서 그렇지 스토리의 틀 자체는 날아가지 않은 편. 분량은 많은데 사료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결국 이런 문제점들이 터진 것이다.
[47]
비류왕이 죽었다, 계왕이 즉위했다, 계왕이 죽었다, 근초고왕이 즉위했다. 말 그대로 이게 전부다.
[48]
본 드라마에서 재현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꽤 봐줄만은 했다.
대왕 세종부터 그나마 나아지기 시작했던 사극 연출 우려먹기가 상당히 적어졌으며,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49]
비슷한 사례로 KBS는
불멸의 이순신 후속으로 예정됐던
서울 1945가 캐스팅 문제, 제작비 등의 이유 탓인지 보류되자
명성황후를 재방송하는 것도 한때 검토되었지만 시청자들의 반발과 내부적인 사정으로 편성이 좌절됐다.
[50]
비단
KBS 대하드라마만이 아니라 여타 프로그램에도 전반적으로 이와 같은 자막이 뜨기 시작했다.
[51]
근데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한 때문인지
수로왕의 재현은
주몽을 우려먹기한 수준이고, 갑옷에 한해서는 근초고왕이 최소한 계백을 압도하는 재현을 보인다.
[52]
이는 중국의 양관(梁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양관을 둘러싸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책(幘)이며, 이것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진 격으로 하나의 독자적인 관모처럼 취급된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금관조복을 통해서도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53]
고국원왕의 종장판투구가 만곡형이 아니라는 점이나 목가리개가 탈착식인 점, 흉갑과 대퇴, 하퇴갑의 갑찰이 외중식으로 교차하지 않고 타일처럼 가지런히 붙어있는 점, 상박갑의 갑찰이 내중식인 점 등 자잘한 오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옆 사진의 주몽에 비하면 더없이 훌륭한 재현이다.
[54]
일본과 한반도 남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판갑(단갑)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단갑의 기원인 목갑이 출토되었고, 단갑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계속해서 출토되었으므로 일본에서 기원한 갑옷이라는 견해가 있다.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판갑들은 후기의 완성된 양상의 유물들만이 보인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는 제철 기술이 없었으므로 철갑옷은 당연히 한국제라는 것이 우리 학계의 의견인데, 일본이 가야 및 백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철괴를 수출하여 일본에서 만든 것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55]
판갑(단갑)의 최북단 출토지는 화성 사창리고분군과 음성 망이산성이며, 그 이북에서는 더 이상 판갑이 출토되지 않고 있다. 한편 몽촌토성에서는 뼈로 만든 찰갑편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단갑의 기원인 목갑이 출토된 것처럼 한강 유역에서는 찰갑의 기원인 골갑을 발달시켜 왔음을 증빙한다.
[56] 선비족은 고구려와 충돌과 친선을 거듭하며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외교적인 갈등과 별개로 문화적으로는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을지문덕이 고구려화된 선비족 혈통이었을 거라는 추측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57] 스트리밍 종료 당시 기준
[56] 선비족은 고구려와 충돌과 친선을 거듭하며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외교적인 갈등과 별개로 문화적으로는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을지문덕이 고구려화된 선비족 혈통이었을 거라는 추측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57] 스트리밍 종료 당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