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에서 여진족 병사들이 지채문과 대도수에게 털리는 모습이 나오며, 하공진 등이 고려에 우호적인 여진족마저 죽게 만들어 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알게 된 일을 사신으로 간 신하들이 현종에게 고한다. 5회에서는
한기와 담판을 벌이는 고려의 재상들이 여진을 두고 신의를 모르는 족속이라고 음해한다. 이런 식으로 고려 조정에서도 외교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되며, 강감찬의 동북면 병마사 재임 때 다시 등장했다.
여진족 중
고려에 우호적인 부족의 추장으로 실존 인물이다.[1] 24회에 등장하여 강감찬이 자신의 영역으로 오자 거란의 사람이 온 것과 김은부가 있는 것을 알리며, 강감찬에게 김은부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2]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자 다른 추장 두 명[3]과 함께 선물을 바치러 고려 조정에 알현했다.
보통 송나라하면 고려의 우방으로서 고려 입장에서는 무조건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본작에서는 대거란 외교를 위해 송을 대놓고 '견제 대상'이라고 언급하기도 하고, 거란의 위세가 많이 꺾인 후반부에 가서도 송에게 편중하지 않고 거란과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등 철저하게 외교적인 관계만을 유지한다. 본작이 외교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좋은 평을 듣는만큼, 10세기 ~ 11세기 고려의 외교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2회에서 곧 거란의
태후가 승하하면
거란 황제가 직접 고려를 침략할 것을 우려하며 재상들이 대책을 마련할 때 채충순은 거란은 내심 고려와 송의 협공을 두려워할 수도 있어서 어떻게든 고려를 완전 정복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한다. 5회에서는 고려의 재상들이 한기를 포함한 거란의 사신들을 속이려고 할 때 최사위는 막상 고려를 침공하면 거란이 입게 될 피해도 만만찮을텐데 그때 배후의 송이 공격해오면 어쩔거냐고 지적하고, 최항은 지금은 고려와 거란이 싸울 때가 아니라 오히려 화친을 돈독히 해서 송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32화에서
귀주 대첩을 끝으로 여요전쟁이 끝나자 송나라는 고려에게 동맹을 맺고 거란을 함께 공격할 것을 제안하지만, 현종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외교를 택하여 그 제안을 거절한다.
22회에서
김은부를 죽이려던
소배압을 당항 사신과 함께 제지한다.[4] 이후 셋이서 거란의 현 상황에 대해 밀담을 나눌 때에 고려와의 전쟁에서 거란의 관리들이 많이 죽어 글을 아는 자들은 누구든 등용하게 되었다는 일을 언급하며, 거란군이 요나라의 서북 방면으로 진격을 준비하는 중이라서 당장은 고려를 침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최종화에서
제3차 여요전쟁이 끝난 후 고려에 선물을 바치러 온 사신들 중 하나로 등장한다.
[1]
고려사에 의하면 음력 1011년 5월에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과 음력 1012년 윤 10월에
여러 부락들을 인솔해 화맹(和盟)을 간청한 기록이 존재한다.
[2]
고려에서 포로로 잡힌
김은부를 돌려받기 위해 고려 측에서 거란의 사절을 붙잡으면서 포로를 돌려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는데, 거란에서 성종의 허가를 받는 동안 거란의 사절을 돌려보내는 대신 김은부를 여진족의 영역에서 보호했다가 내원성에서 돌려받기로 하였고, 조을두가 김은부를 보호하게 된 것이다.
[3]
이 때 동흑수국과 철리국이 언급된 것을 보아 정황상
구돌라와
무나사로 추정된다.
[4]
나중에 밝힌 바에 의하면,
이름 모를 거란의 관리가 빨리 알려준 덕분에 막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5]
아직 이 시기는 서하가 건국되기 이전이어서 엄밀히 말해 서하인은 아니긴 하지만, 이미
이덕명이 서하 건국을 위한 기틀을 다져놓기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때도 서하 조정은 이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