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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8:41:22

SR-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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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r71_1.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ckheed_SR-71_Blackbird.jpg
실전용 A형
후방석의 정찰관제사는 전방은 못 보고
양쪽 측면 창문으로 측면만 내다볼 수 있다.
훈련용 B형
후방석 시계확보를 위해 후방석이 돌출되어 있다.
Lockheed SR-71 Blackbird

1. 개요2. 등장3. 제원4. 파생형
4.1. A-124.2. M-214.3. YF-124.4. SR-71(Bx)4.5. SR-71I
5. 특징6. 후계기7. 기타
7.1. 사건/사고들
8. 미디어9. 모형화10. 여담11. 참고 링크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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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게임] 제84회 역사 속 가장 빠른 제트기 SR-71 블랙버드 왜 이 비행기가 무적이었는가? : SR-71 블랙버드 이야기


미국의 Air Zoo Aerospace 와 Science Museum 에서
제공된 자료로 분석된 SR-71

베트남 전쟁 직전이던 1964년에 개발, 배치되었던 미국 공군의 초음속 전략정찰기이다. 별명은 블랙버드(Blackbird). 최고 고도는 85,000 피트(25,908 미터)이다.[1] 32대가 생산되었으며 고성능 정찰위성들의 보유와 비용상의 난제 때문에 전기 퇴역했지만 스컹크 웍스의 주도하에 후계기가 개발중이다.

지상 26km 높이를 마하 3(약 3704km/h) 이상의 속도로 순항이 가능하다. 인류 역사상 두번째로 빠르고 높이 날았던 유인비행기로,[2] 추진체계, 공력, 구조, 재료 등 비행기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한 단계 도약한 미국 항공 공학기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부터 항공업계가 추구해 온 고속 항공기 설계의 정점에 도달한 비행기다. 희대의 천재 엔지니어 켈리 존슨이 이끄는 스컹크 웍스라는 설계집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물건이다.

SR-71의 성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 설명하자면, SR-71이 활동하는 초고고도에서는 공기 밀도가 너무 낮아서 제트 엔진에 필요한 공기의 유입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가속이 잘 안 된다. 블랙버드도 엄연히 램 제트 엔진의 일종인 터보램 제트 엔진으로 날아다닌 항공기다. 도달 가능한 속력으로만 보면 F-15도 최고 속도는 마하 2.5에 달하고 MiG-25 같은 경우에도 더 빠른 마하 3 이상에 달하지만 MiG-25는 SR-71과는 다르게 지속적인 마하 3 순항 비행은 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마하 3을 겨우 찍는 것과 계속 마하 3으로 날 수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속도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의 타이틀을 가진 것은 마하 10을 기록한 X-43이다. 다만 X-43A는 이륙할 때 B-52 밑에 매달려서 이륙한 뒤 공중에서 발사되는 형태의 우주발사체인 페가수스 로켓의 1단 부스터에 의해 가속한 다음[3] 자체엔진으로는 약 10초 정도 작동한 정도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무인이었다. 유인 비행기 중에서 SR-71보다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마하 7의 X-15가 있다. 바로 저 위의 X-43A와 마찬가지로 X 실험기 시리즈로 역시 B-52에 매달려서 이륙한 뒤[4] 로켓 엔진을 달고 고도 100km[5]도 돌파한 녀석이라 우주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 논외로 친다.( X 실험기 시리즈 문서 참조.)

이 괴물같은 성능을 1960년대에 구현해 낸 엔진은 프랫 & 휘트니 J58. 이 엔진은 F-106 델타다트의 개량에도 채용될 뻔했으나 개량형 계획이 엎어지고 말았다.

원래 제식 명칭은 SR이 아닌 RS-71이었으며 "정찰 및 타격(Recon & Strike)"의 약자였지만 RS-71이라는 명칭을 당시 미국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이 실수로 SR-71로 읽은 바람에 각하께서 실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공군이 관련 서류에 있던 기종 명칭을 모두 SR-71로 뜯어고치는 삽질을 해서 결국 제식명칭이 SR-71이 되었다. 나중에 전략정찰기(Strategic Reconnaissance)라는 말이 나와서 나름 그럴듯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이 존슨 대통령 몰래 백악관 보좌관에게 압력을 넣어 자신이 원하는 전략정찰기(Strategic Reconnaissance)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대통령이 읽을 원고에서 RS를 SR로 바꾸게 했다고 한다.[6] 왜 뜬금없이 숫자가 71인가에 대한 의문도 많았었는데 의외로 간단한 이유였다. 본래는 XB-70이 나중에 정찰 임무도 겸하기 위하여 RS(Recon&Strike)-70으로 바뀔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한 것이 RS-71, SR-71 외에는 대부분 사장되거나 취소됨으로써 뜬금없어 보이는 이름으로 남았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32기 전기의 평균 단가는 3,400 만 달러로 2018 년 화폐 가치로는 2억 7,500 만 달러쯤 된다.[7]

2. 등장

파일:attachment/SR-71/CST.jpg

스컹크 웍스 내 SR-71 생산라인

1960년에 U-2 소련 상공에서 요격된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본격적으로 설계가 시작되었다. ‘높이 비행하면 소련군이 요격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사상으로 만든 U-2는 26km 상공을 비행 가능했는데, 이미 미국은 조만간에 소련이 U-2를 요격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차기 정찰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는 빨리 소련의 S-75가 요격에 성공하는 바람에 미국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어쨌건 U-2가 행하고 있던 전략정찰 임무는 워낙 중요했던 까닭에 이를 대체할 다른 여러 가지 방안 중에서 채택된 것이 SR-71이다.

3. 제원

승무원 2명 ( 파일럿 1명, 정찰 시스템 통제관 1명)
전장 32.74m (107피트 5인치)
전폭 16.94 m (55피트 7인치)
전고 5.64 m (18피트 6인치)
익면적 170m² (1,800ft²)
적재량 센서 1,600kg (3,500파운드)
공허중량 30,600kg (67,500파운드)
만재중량 69,000kg (152,000파운드)
최대 이륙중량 78,000kg (172,000파운드)
엔진 2 × 프랫 & 휘트니 J58 터보제트, 기당 추력 34,000 파운드 (151 kN)
최대 속도 마하 3.3 (약 3,540 km/h)[8]
항속 거리 5,400 km
실용 상승한도 25,900 m (85,000피트)
상승률 60 m/s (11820 ft/m)
익면하중 410 kg/m² (84 lb/ft²)
추력대 중량비 0.44

4. 파생형

4.1. A-12

파일:A-12_(1).jpg
파일:A-12_(2).jpg
파일:SR-71_and_A-12.jpg
좌측이 공군 소속 SR-71, 우측이 CIA 소속 A-12

SR-71의 원형이 된 1인승 기체로, 원래 고속정찰기를 요구하던 CIA에 의해 개발된 기체다. 스컹크 웍스에 의해 1957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A-1 설계안에서부터 계속 다른 설계안이 나와, 끝내는 12번째 설계안인 A-12가 등장해 1963년에 제식 배치된다. 별명은 Oxcart. 그 고성능에 반한 미 공군은 전투기인 YF-12, 폭격기인 B-12, RB-12 등으로 도입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예산이나 운용의 어려움 문제로 대량 보유가 힘들어 결국 포기한다. 각종 계획 중에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SR-71에 달아놓고 전략 정찰을 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결국 전략정찰 임무가 전부 공군으로 넘겨지면서 그간의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2인용 정찰임무기로 개량된 SR-71만이 제식채용되게 된다.

이 A-12의 주요 구성 재료 중 하나가 티타늄이었는데, 이 티타늄을 소련에서 수입했다. 이는 당시 양질 티타늄의 유일한 생산자가 냉전의 적인 소련이었던 것에 기인한다. 당시 개발팀이었던 스컹크 웍스는 이러한 티타늄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수입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만들어, 골프채 생산 용도로 티타늄을 밀수해 와 성공적으로 이 기체를 만들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소련산 재료로 소련의 구석구석을 촬영하는데 성공한 것. 현재는 구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로 변하면서 정식으로 항공용 티타늄을 수입하고 있지만 정작 A-12와 SR-71이 모두 퇴역했다.

A-12는 SR-71이 배치되면서 1968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당시 북한 상공에서 최후의 임무를 완수한 뒤 전량 퇴역했다.

퇴역한 기체 중 유일한 복좌 훈련기 버전은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California Science Center에 전시되어 있다.위 사진에도 보인다(앞에서 2번째 기체). 덩치가 엄청나게 커서 주차장 옆에 야외 전시되어 있다. 구글 맵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

우주, 항공, 군수산업으로 유명한 앨라바마주 헌츠빌(Huntsville)의 U.S. Space & Rocket Center에도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블랙버드 계열기 중 최고속도 기록은 이 A-12가 냈다. 개발 도중 에이리어 51에서 실시된 최고속도 시험용 A-12 #128 시험비행 도중 외기온도가 높아 마하 2.7 이상으로 가속이 잘 안되자, 가속하기 위해 기수를 살짝 내리니 적절한 온도의 외기와 접해 15초 동안 마하 3.56(시속 2,400마일)으로 가속했었다고. #

여담으로 일론 머스크가 가장 좋아하는 항공기라고 한다. 머스크는 자신의 육남 엑스 애쉬 에이 트웰브(X Æ A-Xii Musk)의 이름을 지을 때 이 항공기의 이름을 따서 작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4.2. M-21

파일:m21d21.jpg

복좌형 A-12. M-21과 D-21로 나뉘어진다. M-21은 모기인 Mother, D-21는 자식기인 Daughter를 뜻한다.

M-21은 복좌기로 마하 3.3의 속도를 내며 적 요격밤위 밖 고고도에서 D-21를 분리해 안전하게 정찰하는 컨셉이었다. 주로 중국 핵 시설이 정찰 대상이었는데 중국에서도 U-2가 여러 번 격추당한 적이 있다. 총 2기의 A-12가 M-21형으로 개수되었다.

당시로선 가장 낮은 수준의 RCS, M3.35에 달하는 고속, 고도 9만 피트에, 작전거리 3,000km의 스펙을 달성했다.

하지만 네번째 발사 시험 중 D-21은 분리 직후 충돌 사고로 손실하면서 실패한다. [9]

이후 B-52 폭격기에 D-21을 달아서 발진하는 방식으로 선회하게 된다. 아음속기에 훨씬 낮은 고도에서 발진하므로 여러 변경이 생겼다.

램제트 가동을 위한 속도, 그리고 원래 계획한 항속거리 및 고도를 위해서 D-21아래에 큰 고체 로켓 부스터를 추가로 탑재하게 되었다. 가속단계에서의 안정성을 위해 수직미익의 크기도 키웠다.

4번에 거쳐 중국의 핵실험 기지를 정찰하려고 했다. 첫 번째 발사에서는 경로 이탈하여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실패한다. 이후에는 자잘한 기계 고장이나 작동 이상으로 모두 필름 캡슐 회수에 실패한다.

첫 번째 발사체는 사실 소련까지 날아갔다. 소련군은 이를 입수한 뒤 무인 정찰기를 개발해 보려 했으나 실패하여 취소되었다. 이 정찰기의 잔해 일부는 러시아의 관계자가 구 소련이 붕괴된 후 벤 리치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벤 리치의 자서전에서는 이때 이 관계자가 이 D-21의 부품을 최신 스텔스기의 부품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4.3. YF-12

SR-71을 요격기로 개조한 버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YF-12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4. SR-71(Bx)

파일:external/i18.photobucket.com/SupercruisePg15.jpg

1976년에 제출된 계획안으로 핵 폭격기이다. 네 개의 AGM-69 SRAM 미사일을 장착하고, 진행방향(downrange)으로 약 900km 범위, 진행방향의 좌우(crossrange) 약 400km의 사거리로 공격이 가능했다.

4.5. SR-71I

사실상 YF-12 계획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총 두 개의 계획이 있었는데, 1980년 9월 30일의 계획안은 F-14A의 AWG-9 레이더와 4개의 AIM-54 미사일을 장착했다고 한다. 적 공군의 조기경보기를 더 높은 고도에서 감지되지 않은 상태로 기습 공격해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1982년 11월 1일자 계획은 APG-65 레이더 4개의 AIM-120[10] 미사일을 장비하여 주로 조기경보기 요격 임무를 맡고 보조적으로 적 폭격기 요격 임무도 겸임하려고 했다.

참조

5. 특징

SR-71이 날아다니는 8만 피트 상공의 온도는 영하 53도지만 마하 3으로 순항하면 공기의 단열 압축에 의한 열로 인해 기체 표면의 온도가 300도까지 치솟게 된다. 이 엄청난 압축열이 기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 단계에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11] 일단 연료가 탱크에서 곧바로 엔진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기체를 한 바퀴 돌아서 엔진으로 공급되게 해서 냉각제 역할을 하게 했고, 기체를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 티타늄은 적국인 소련에서만 생산되었다. 스미소니안 박물관 가이드에 의하면 CIA가 위장회사를 설립해 골프채 등으로 SR-71용 티타늄을 수입해와야 했다고. 현재는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서 정식으로 항공용 티타늄을 수입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출 규제를 비록한 경제 제제가 걸린 상황에서 항공용 티타늄은 제외 대상에 포함됐을 정도다. #

그리고 압축열에 의한 기체 각 부품의 열팽창으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각 부품들 간에 이격을 두고 설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내열 및 추가 하중 문제로 별도 연료탱크의 설치를 포기하고 기체 내부의 일정 구역을 연료 저장용으로 사용하는 설계를 채택하였다. 덕분에 지상에서는 연료가 계속 새어나오는 구조라[12]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을 것 같지만, 원래 항공유 자체가 등유 계통이라 발화점이 높고 SR-71용 항공유는 발화점이 더 높아서 그럴 염려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SR-71은 원래 연료를 엄청나게 먹는 만큼 연료 적재량도 많아서 그렇게 배어나오는 연료는 소모량의 수백~수천분의 1 정도밖에 안 돼서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소실된 기체중 4대에 타이어 파손문제가 직간접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이 때문에 기존 마그네슘 휠을 새로운 알류미늄 휠로 교체하고 강화된 타이어를 장착하기도 했지만, 이륙 후 엔진 하나만으로 비행 가능한 속도까지 도달 시간이 다소 걸리는 (즉 이륙 직후 엔진 하나가 꺼지면 기체가 돌면서 실속 추락) 기체 특성이 고려된 결과, 타이어 부담과 안전속도 도달시간을 줄이기 위해 연료를 반 정도만 채우고 이륙한 뒤 공중 급유를 받는 절차가 생겼다.[13]

대신 JP-7이라는 SR-71 전용 항공유를 써야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중에 대기하는 공중급유기로부터는 급유를 받을수 없었고 전용으로 공중급유기를 둬야만 했다. 게다가 SR-71이 워낙 고속 위주의 기체라 공중급유를 받으려면 거의 실속 속도에 근접한 저속으로 날아야 하는데 급유기는 최대속력으로 날아야 하는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실제로 1970년에 블랙버드가 접근하다가 공중충돌하여 추락해 손실된 사고도 있을 정도였다. 이 급유기의 스펙도 비범한데, 고고도를 고속으로 날아다니고 원체 이착륙 속도도 빠른 특성상[14] 감속용의 드래그슈트까지 장비하고 있다. 이 기종들은 KC-135Q라는 별도의 식별명까지 붙었다. 비상시에는 JP-4/JP-5 급유도 가능하긴 한데, 이 경우엔 속도가 M 1.5로 제한됐다고 한다. #

마하 3 이상의 초음속 순항에는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컹크 웍스의 2대 책임자였던 벤 리치는 그의 자서전 스컹크 웍스에서 SR-71보다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여객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SR-71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날아다니던 콩코드 여객기 Tu-144조차도 엄청난 유지비와 소음을 비롯한 각종 문제점이 속출했고, 이 때문에 거의 팔리지 않았다.

워낙 고고도를 날아다녔기 때문에 조종사는 거의 우주복에 준하는 특수한 여압복을 입고 감압실에서 감압 과정을 거친 뒤 100% 순수 산소를 호흡했다고 한다. 게임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에서도 SR-71과 그것을 조종하는 조종사들이 나오는데, 이들의 복장이 우주복과 비슷하게 생겼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ilot-RSO_last_flight_SR-71.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The_STS-1_Crew_-_GPN-2000-001172.jpg
SR-71 승무원들의 감압복 우주왕복선의 첫 미션인 STS-1의 존 영과 로버트 크리펀의 사진.

사실상 두 옷은 다를 게 없다. NASA 우주복의 시작이 U-2 시절부터 써먹던 여압복을 이리저리 마개조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 SR-71의 여압복도 U-2의 것과 거의 완전 동일한 물건이니 사실상 U-2, SR-71의 여압복과 우주복은 형제사이다. 이건 그야말로 초창기 시절이고 현대의 우주비행사들은 설계부터 완전히 새롭게 한 신형 우주복을 사용중이지만 그 우주복에도 이 여압복을 굴려먹으며 나온 데이터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15]

캡슐형 탈출 장치를 사용했다는 정보도 있었지만 탈출 장치는 일반적인 사출 좌석을 사용하고 있다. A-12및 SR-71은 고도 문제로 무게를 최대한 줄이려 하였으며 당연히 캡슐형 탈출 장치는 제외 대상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켈리 존슨은 기체 무게를 줄일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었으며 벤 리치는 아이디어랍시고 바퀴에 헬륨을 넣고 조종사를 관장시키는 아이디어를 냈다. 첫 번째는 실패했고 두 번째는...그리고 벤 리치가 티타늄 가공 문제로 A-12를 검게 칠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켈리 존슨은 무게를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처음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애초에 SR-71의 좌석 사진을 보면 알겠듯이 캡슐이 설치될 공간도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캡슐형 탈출 장치를 가지고 있는 B-58이나 B-1A 등을 보면 조종석채로 사출하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무게는 안드로메다...바로 그 이유 때문에 B-1B에선 일반 사출 좌석으로 교체되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U-2역시 초기형은 사출 좌석조차 장비되지 않았고, 이후 Dirty Bird 버전에서야 장비되었다. 캡슐 탈출형은 F-111 초기 단계와 B-1A에서 사용되었다.

스텔스 성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련의 방공망으로부터 살아남아 정찰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기종이니 만큼 최초 성능 요구사항에 RCS 저감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F-117을 개발할 때처럼 정확히 설계대상의 RCS 감소를 예측해가며 개발하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어느 부분을 줄이면 RCS가 줄어든다'라는 경험을 통해 설계하는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부분이 꼬리날개로 SR-71은 기체 크기에 비하면 수직꼬리날개가 무척 작은 편이다. 또 기체 여기저기에 전파흡수물질을 사용하였다. 물질 자체는 F-22의 물질과 동일하다고 한다. 사실 록히드 마틴 사의 스텔스기 대부분이 같은 물질을 쓴다고 한다.

SR-71의 원형인 A-11 설계안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구조 설계자 한 명이 동체 옆에 삐죽하게 튀어나온 차인을 달아서 RCS를 줄여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아이디어를 채용해 설계하니 RCS가 무려 90%나 감소했다고 한다. 이 차인을 최대한 유용해서 만든 원형기가 A-12이다. SR-71은 F-117처럼 극단적으로 레이더에 안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체 크기에 비하면 RCS가 꽤 작은 편이라고 한다. 스컹크 웍스 2대 보스인 벤 리치의 자서전에 따르면 경비행기 수준의 RCS를 갖는다는 언급이 있다. 이런 이유로 가끔 스텔스기의 분류에 SR-71을 포함시키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스텔스기로 개발된 건 아닌 만큼 아무리 RCS를 작게 설계했어도 설계 개념과 당시 기술력상 한계가 있긴 했다. 10m2의 레이더 반사 면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초기형 F-15에 가까운 비 스텔스기 수준이다. 이 비행기의 크기를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지만, 문제는 이게 이론적으로는 그랬다는 거지, 비행 특성상 미국의 항공 감시 레이더에 가장 크게 나온 표적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단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 SR-71의 나도는 RCS값은 자료마다 천차만별인데, 심지어 100m²도 있다.[16] 가장 크게 나온 표적이란 주장은 아마 그 값을 기준으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애초 SR-71의 RCS값은 제대로 공표된 적이 없다. 하지만 저 값은 다소 무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차인을 통해 RCS가 크게 감소했다는 개발 중 일화도 있고 그러한 차인형상이 이후 아음속 스텔스 설계에 록히드 뿐만 아니라 경쟁사인 노스롭에서도 보일 만큼 효과적이란 게 이미 드러나 있는데다 무엇보다 이후 F-117로 발전하는 해브블루 개발 일화를 보면 DARPA는 록히드(정확히는 산하의 스컹크 웍스)의 작업을 알지 못했기에 입찰 공고도 주지 않았는데 이후 록히드가 참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록히드가 CIA에게 데이터 제공 협조를 부탁해서 A-12의 RCS데이터를 제공해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항공 감시 레이더에 크게 잡힐 정도의 RCS라면 CIA 허락 받아서 데이터 제공해줘도 거절당했을 것은 물론이고 애초 A-12(및 SR-71)이 공공연히 레이더에 잡히는데 RCS값을 제공받을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작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켈리 존슨과 벤 리치의 내기 일화를 보면 해브블루 이전의 스컹크 웍스에서 가장 RCS가 작았던 기체는 바로 D-21이라는 무인기인데 이는 SR-71의 엔진 한쪽을 날개부분까지 같이 떼 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F-15보다 작은 제트 전투기도 설계, 제작한 적이 있는 스컹크 웍스이기에 바꿔 말하면 D-21이 웬만한 제트전투기보다 RCS가 작았다는 뜻이다. 그와 유사한 기본 형상을 가진 A-12와 SR-71은 따라서 레이더 반사 면적이 커봤자 D-21의 몇 배에서 한 자리수 더 큰 정도의 값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비유를 좋아하는 벤 리치는 정확한 값은 밝히지 않았지만 SR-71의 RCS를 언급하면서 파이퍼 컵(Piper Cub[17])을 예시로 들었기에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반 전투기보다 SR-71의 레이더 반사 면적은 작았다는 말이 된다. 스컹크 웍스가 SR-71과 이후 스텔스기에서 RAM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과 차인 형상을 통한 90% 감소 일화 등을 생각해 보면 A-11까지의 설계가 설령 100m² 급이었다고 해도 A-12에 와서 그 1/10이 되고 추가로 RAM까지 사용했다면 일반 비 스텔스 전투기 이하만큼 나오는 것도 앞뒤가 맞아떨어지며 관계자 발언과 일화도 모두 매끄럽게 맞아떨어진다. 현대 스텔스 전투기들도 그렇지만 각도에 따라 RCS 값이 크게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레이더로 감지할 수 있다고는 하여도 이 미칠 듯이 빠른 스피드의 비행기를 격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사일을 쏴도 날아가는 시간에 이미 저 멀리 도망가는데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SR-71은 무려 4,000회에 걸친 격추 시도에도 실제로 단 한 번도 격추당한 적이 없으며 비행할 때마다 상대편 국가들은 종종 UFO나 레이더 오류로 생각하곤 했다는 전설의 비행체로 인식되었다고 한다.[18]

이렇게, 압도적인 고도와 속도를 활용하며 제집 드나들듯이 날뛰며 소련에 굴욕을 선사한 SR-71이지만, 1986년에 이르자 소련은 최고 속도가 마하 2.83에 달하는 MiG-31을 이용해서 SR-71을 8천 피트(약 2.4km) 아래에서 육안으로 보일 거리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야 해서 이렇게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미사일이나 기관포를 쏘면 확실히 맞힐 수 있는 상황을 잡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이것은 SR-71의 최대의 방어능력인 마하 3.3의 속도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속도만큼이나 미사일과 레이더의 발전도 엄청났는데 MiG-31의 장거리 미사일인 R-33, R-37 미사일과 자슬론 레이더는 기존의 기계식 레이더와 진공관 그리고 아날로그 컴퓨터와 달리 최초의 전투기용 PESA 위상배열 레이더이고 컴퓨터 역시 디지털로 일신했다. 성능은 16m²의 RCS를 가지는 물체를 200~300km 거리에서 탐지가 가능하고 룩업은 물론이고 룩다운/슛다운에 지상관제소 레이더와 지대공 미사일 또는 조기경보기 심지어 같은 MiG-31 등과 데이터링크가 가능해서 SR-71과 저공 침투기로 개발한 F-111과 B-1을 퇴물로 만들어버린 레이더이다. 이후 SR-71을 이용한 정찰은 좀 더 소련 영공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특수제작된 기체인 만큼 유지관리비가 엄청나게 비싸고 운용도 복잡한 관계로 전기 퇴역한다. 한 대 운용할 비용으로 F-15 편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고... 이 운용의 규모를 설명하자면, SR-71'만'을 위한 공중급유기만 56대가 제작되었다. 화물기를 포함한 대한항공 광동체 항공기가 125대 가량이니 그 반 가까운 수가 오로지 매 두 시간마다 공중급유가 필요한 SR-71'만'을 위해 개조 및 운용되었다고 생각해 보자.[19]

1994년 북핵 사태 시 한정적으로 재복귀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빌 클린턴 행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 때 최대의 반대자가 밀덕의 원수 도널드 럼즈펠드였다. 미국은 보급의 편의를 위해 험비도 F-35도 모두 같은 항공유 하나를 쓰도록 통일했는데, SR-71은 전용 항공유에 전용 공중급유기까지 별도 관리해야 하는 귀찮은 물건이니만큼 반대할 만은 했다. 또한 요즘은 러시아제 S-300이나 S-400같은 고고도 극초음속 대공미사일의 성능도 워낙 좋아진 데다 키홀 같은 정찰 인공위성을 쓰는 편이 100배는 더 싸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재취역 시킬 생각은 이제 미군 역시 안하게 되었다. 반면 U-2는 카메라 대신 달았던 합성개구레이더로 인해 확실한 정찰영상과 함께 장기간 체공 능력 때문에 아직도 운용중이다.

SR-71은 초음속 비행 시 기체 전체가 고온에 노출되는 만큼, 검은색 도료를 발랐는데[20] 미 공군이 기체에 라운델을 새겨야 하는지라 록히드 마틴은 고온에도 변색되지 않고 견디는 흰색 페인트를 만드느라 꽤나 많은 돈을 들였다고 한다. 벤 리치는 자서전에서 '그 고도에서 마크 볼 놈이 누가 있다고!'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그 표식이 없으면 국제법 위반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블랙버드로부터 나온 상당부분의 공기역학적 자료 중 비밀 등급이 낮은 것들은 NASA의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 SST 프로그램으로 흘러들어갔다. 다만 유감인 것은 미국이 이 기종의 개발 노하우가 타국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서 SR-71의 구체적인 제작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파기했고 전용으로 만들어진 공구도 전부 폐기처분되었다는 것이다.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남아 있는 기체 또한 내부 장비들이 거의 제거된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결국 스컹크 웍스에 남은 건 노하우와 일반적인 기술자료뿐이었다고 한다.

1990년 겨울에 은퇴하기까지 총 31대의 블랙버드가 생산되었다. CIA에 제공한 단좌형 정찰기에는 카메라만 장비되어 있었고, 공군에 제공한 복좌형에는 카메라 및 전자 정보 수집 장치가 장비되어 있었다. 즉, 이 놀라운 최대시속 3,530km짜리 항공기의 주무장은 카메라이다.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M16A1의 총구속도가 약 975 m/s(시속 3,510km)이니 총알보다도 더 빠르다. 이 기록은 1976년 7월 28일에 시리얼 넘버 61-7962 기가 세운 기록이다.

워낙 높은 곳을 빠르게 날다 보니 다음과 같은 유머도 있다.
Pilot: Radar, Good Day, Airforce Blackbird, request FL[21] 600
Controller: (amused) Sir, if you can reach, you are cleared FL 600
Pilot: US Air Force Blackbird, leaving FL 800, descending Level 600.

조종사: 안녕하십니까, 관제소. 공군 블랙버드입니다. 고도 60,000피트로 변경을 요청합니다.
관제소: (재밌어하며) 그런 높이까지 도달하실 수 있다면, 60,000피트 비행을 허가합니다.
조종사: 미 공군 블랙버드입니다. 현재 고도 80,000피트에서 60,000피트로 하강하겠습니다.

거기다 이 기체의 속도가 속도인 만큼 이런 일화도 있다.
가끔 미국 영공에서는 누가 빠른 비행기를 모는가에 따라 남성적인 우월감을 표시하는 조종사들이 있다.
어느 날 나는 동료 월터와 함께 LA 상공을 비행 중이었다. 갑자기 무전에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센터에 그라운드 스피드를 묻는 교신이 들렸다.
"여기는 노벰버 찰리 175. 그라운드 스피드를 알려달라."
잠시 후 관제사가 응답했다.
"세스나 노벰버 찰리 175, 당신의 그라운드 스피드는 90노트다." (166.68 km/h)

그 순간 약간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다른 교신이 끼어들었다.
"여기는 트윈비치, 그라운드 스피드를 알려달라."
"트윈비치, 당신의 그라운드 스피드는 125노트다." (231.5 km/h)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세스나를 깔보는 듯한 감사 인사를 남겼다.

다시 다른 교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더스티 52, 나의 그라운드 스피드를 체크해달라."
더스티 52는 해군 F/A-18이었다. 그라운드 스피드 표시기를 포함해 수백만 달러짜리 각종 장비들로 뒤덮인 콕핏에서 그가 왜 굳이 그라운드 스피드를 관제사에게 물어보겠는가? 그 해군 조종사는 그냥 음속이 지배하는 하늘의 존 웨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스티 52, 당신의 그라운드 스피드는 620노트다." (1,148 km/h ≥ Mach 1)[22]

딱 좋은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통신 제어를 뒷자리의 월터[23]가 맡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동안 조종사가 되기 위해 고생했던 시간들이 날아갈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저 말벌 놈 반드시, 지금 당장 죽여놔야 했다.
그 순간 월터가 무전기 키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정말 무감정하고 프로페셔널한, 조종사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LA 센터, 여기는 아스펜 20, 나의 그라운드 스피드를 알려 줄 수 있겠나?"
LA 센터는 바로 응답했다.
"아스펜 20, 당신의 그라운드 스피드는 1842노트다." (3411 km/h)[24]

마지막 한 자리 수까지 강조하는 내용에서 관제사의 자부심이 들려왔다. 그리고 월터가 마이크를 켜고 다시 한 번 조종사다운 목소리로 응답했다.
"아, 관제소, 정말 감사하지만 우리 쪽에서는 1900으로 표시되고 있다."
"알겠다, 아스펜, 아마 귀기의 장비가 더 정확할 것이다. 좋은 물건에 타고 있으니까."
그리고 한동안 그 지역의 무전은 침묵을 지켰다.
― 원문 작성자: 브라이언 슐, 퇴역 SR-71 조종사 원문, 번역본

6. 후계기

오로라 폭격기를 비롯하여 후계기에 대한 루머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증거 또는 공식적인 인정 등은 전혀 없었으나, Aviation Week에서 2013년 11월 1일 기사로 록히드 마틴 스컹크 웍스에서 극초음속 정찰기 SR-72를 개발 중임을 보도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고.

7. 기타

U-2가 격추되었을 때 미국은 소련 영공을 다시는 침범하지 않기로 합의를 봤고, 정치적 부담을 두 번 다시 지기 싫은 미공군의 SR-71이 소련 영공을 들락거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SR-71의 소련 최근접 비행 및 정찰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었고 U-2 격추 때와 달리 스파이 위성을 이용한 사진 촬영이 성공해서, 정찰기 대신에 인공위성들이 서로의 영토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댔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약 4~5기 정도가 배치되어 북한 지역은 자주 정찰했다. 1970~1980년대에 한국, 특히 서울이나 경기도, 강원도 지역의 하늘에서 콰쾅!하는 굉음이 종종 들렸는데 이 항공기의 소닉붐일 것으로 추정된다.[25]을 오키나와 주둔 기체들은 현지에 많은 독사 하브의 이름을 따서 블랙버드 대신 '하브'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북한이 이를 격추하기 위해 SA-2를 발사했지만 작전고도 20,000m에서 마하 3으로 순항하는 SR-71은 미사일 발사를 탐지하면 공해상으로 기수를 돌려 최고 속도로 내빼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미사일을 회피할 수 있었다. 북한은 소련의 협조를 얻으면서 SR-71을 격추시키려 노력했지만 당연히 실패했다. 이 와중에 발사한 미사일 하나가 황해도에 추락하여 폭발, 그 동네 북한군 부대에서 남한의 공격으로 알고 대응태세를 갖춘 후 상급부대에 보고했더니 상급부대에서 어물쩡 넘어가더라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한국 공군의 레이더 사이트에서는 이 기체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윗선에 보고는 해야 했으므로 적당한 명칭을 붙여야 했고, 오키나와에서 '하브'라고 부른 것처럼 대구에서는 '제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만 오키나와 카데나 기지에서 발진하는 미군 항공기인 것은 아군과 적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북한에 하도 들락날락해서 아래 내용에서 보듯이 한국 공군에는 관련 구전 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26]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이 쓴 회고록에 한다. 김신조 사건 직후 공군참모총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은 청와대를 부수러 오는데 우리는 왜 김일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냐며 화를 막 내서 난처해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난처해하긴 중앙정보부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중앙정보부의 정치적 파워가 엄청나던 시절이라 까이는 건 공군 쪽이 좀 더 까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 총장이 미군 장성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 장성은 과거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당시 한국 공군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장성은 자신이 도울 방법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틀 뒤 장 총장은 '괴비행체가 엄청난 속도로 북한 상공을 관통해 지나갔다'는 보고를 받는다. SR-71이 북한 상공으로 출동해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공군정보사령부에 미군으로부터 온 북한 상공사진(특히 김일성 숙소 사진이 있었다.)이 도착하였다. 공군참모총장은 자랑스럽게 이 사진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가져갔고 평소에 자기 정치적 파워만 믿고 공군참모총장을 깔보던 중앙정보부장은 신나게 까였다. 이때 중앙정보부장은 바로 ' 남산 돈가스'란 별칭으로 악명을 날렸던 그 김형욱이다. 그러자 정보부장은 공군정보사령부에 가진 사진을 다 내놓으라고 윽박을 질러댔고 결국 참모총장은 크게 의미 없는 사진 몇 장을 보내줬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전략회의에서 중앙정보부장은 "내가 이번에 김일성의 별장 사진을 입수했는데 여기로 특공대를 조직해 보내서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 오겠소. 이 특공대는 전직 살인범, 죄수 등으로 만들어질 것이오"라고 했다고 한다. 즉 이녀석이 실미도 사건의 출발점.[27]

이 SR-71은 이후 1981년에도 다시 등장한다. 당시 SR-71은 북한 영공을 침범하지 않고 서해 해상 NLL 남단을 비행했는데 황해도의 대공 미사일 기지에서 SR-71을 향해 대공 미사일을, 그것도 사거리가 가장 긴 S-200을 발사했다. SR-71은 빠른 비행속도에 힘입어 공격을 모두 피했지만 북한의 영공을 침범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기에 유엔군사령부측은 대대적으로 항의했으며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할 시 응징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당시 대한뉴스의 관련 보도영상, 46초)

SR-71의 소닉붐은 기체 형상으로 인해 다른 초음속 기체와 달리 두번의 쾅-쾅 소리를 내는 double sonic boom이라 불리는 구분점이 있다. 베트남 전쟁 때 SR-71이 하노이의 미군 포로 수용소 위를 비행하면 미군 포로들은 그 소리를 신호로 불복종저항이나 사보타주를 감행했다고 한다. 국무부의 요청으로 소닉붐을 이용해 쿠바의 독립기념일 행사때 카스트로의 연설을 일부러 방해하는 미션도 있었다. 한 조종사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책을 읽고 있던 집 위를 날아 대통령에게 소닉붐을 선물한 적도 있다.

1970년대 소련의 SA-5가 배치되었을 무렵 SA-5의 레이더 전파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이륙한 SR-71이 귀환 중 왼쪽 엔진이 꺼져버려 북한 해안선을 따라 대구 공군기지에 착륙한 일이 있었다. 이때 북한 공군이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으나 한국 공군도 전투기를 발진시켜 SR-71을 지켜주었고, 이 기체는 폐쇄된 대구 공군기지에 착륙했다고 한다.

음속의 3배속을 낼 수 있는 군용기라는 면에서 소련의 MiG-25가 경쟁기로서 거론되기도 한다. 실제로 MiG-25는 정찰형 또는 정찰형으로 개조된 기체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근거 없는 비교는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MiG-25 참조. 다만 SR-71보다 훨씬 값싼 양산형 요격기인 MiG-25는 마하 3의 속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는 게 단점이다. 지속적으로 마하 3의 속도를 내다가는 엔진이 뻗어버렸다.[28] MiG-25는 무려 1,190기가 생산된 기종인 만큼 유지보수 난이도와 가격 면에서는 SR-71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나 정찰과 비행 성능은 SR-71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종합적인 성능으로만 따지자면 SR-71과 마주친 전적도 가진 MiG-25의 후계기인 MiG-31과 비교할 만하다.

애초에 소련도 영국[29]처럼 SR-71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성능의 정찰기를 개발해 시제기까지는 만들었었다. 1959년 4월에 첫 비행한 츠빈 RSR인데, 시기가 SR-71에 비해 훨씬 빠른 것 만큼이나 성능도 SR-71에 비하면 어딘가 모자랐다. 4000km가 넘는 항속거리, 최대 상승고도는 22.5km, 최고 속도는 12km에서 2,600km/h였는데 크기도 훨씬 작았고 1인승이었다. 미국도 SR-71을 소련 영공에 보내지는 않았었으니, RSR이 양산되었다고 하더라도 약간 더 모자란 성능 때문에 사용처는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2014년 전직 SR-71 파일럿이자 비행대대장 출신 퇴역 공군 대령이 레딧에서 AMA (Ask Me Anything) 시간을 가졌다. 레딧 유저인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이후 엄청난 반응을 얻자 추진된 일로 SR-71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번 읽어보자.

블랙버드가 퇴역이 결정나자 머큐리 계획 우주 비행사 출신의 존 글렌 상원의원은 국방부는 블랙버드의 포텐셜을 제대로 뽑아먹지도 못했다고 일갈했다. 1990년 퇴역을 앞둔 블랙버드가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이 전시될 버지니아로 마지막 비행을 하면서 항공의 역사에 남을 중요한 기록들을 남기자 크게 아쉬워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콕핏 3D 투어를 할 수 있다. 전방좌석 후방좌석

퇴역 기체 중 한 대는 시애틀에 위치하는 The Museum of Flight에서 전시중이다. 시애틀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들러보자. 정확히는 SR-71은 아니고 A-12의 변형인 M-21인데, 원래 없던 가운데 꼬리날개와 세 번째 엔진 같은 건 D-21이라는 드론이다. 참조

파일:IMG_20171028_121956.jpg

다른 퇴역 기체는 X-29, F-15 액티브와 함께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전시되어 있다. #

7.1. 사건/사고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번도 격추되지 않았던 블랙버드라고 해도 의외로 비전투 손실은 꽤 있던 편이였다. 블랙버드의 시초라고 할수 있는 A-12부터 YF-12A, SR-71A, SR-71B 까지 의외로 많은 사고들이 있었는데, 저 형식들을 전부 포함 48기중 19기가 사고로 손실되었다. 특히 YF-12A 같은 경우 3대중 2대가 손실되었다. 다만 SR-71C는 사고로 손실되진 않았다.

첫번째 사고는 1963년 5월에 일어난 사고로 블랙버드 개발이 한창일때 CIA 소속 파일럿 켄 콜린스가 조종사하던 A-12로, 이 A-12는 3번째로 제작된 A-12였는데, 내부 항법 시스템을 테스트 하던 도중 피토관에 물이 들어가 얼어서 계기가 고장나 이를 모르던 콜린스가 기동하다 플랫 스핀에 빠져 손실된 사고다. 켄 콜린스는 사출하는데 성공해 살아남았으며, CIA는 언론을 통해 F-105 추락 사고로 위장시켜 발표했다고 한다.

여기서 골때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콜린스는 유타주 웬도버 쪽에 착지했고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던 도중 서바이벌 키트에서 동전 몇푼 꺼내 근처 공중전화로 가서 AREA 51로 전화 해서 자신의 위치를 말했다고 한다.[30] 몇 시간뒤 보안요원들이 록히드 컨스텔레이션을 타고 도착하여 잔해들과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정작 파일럿에겐 관심이 없었는지 아무도 신경도 안 쓰다가 그뒤에 켈리 존슨이 직접 개인 제트기[31]를 타고 와서 그를 태우고 뉴 멕시코에 있는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한편 기체가 왜 추락했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도중 CIA측에선 콜린스가 추락했을때 혹시라도 기억 못하거나 하는 잠재적 기억을 끄집어 내기위해 최면(...)을 시도했고, 당연히 그게 먹히지 않자 CIA는 콜린스를 록히드 본사로 데려가서 자백제를 투여해 심문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곤 결백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추후에 엔지니어들이 원인을 밝혀내서, CIA는 자백제에 취해 멍해 있는 콜린스를 집에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던져주고 갔다.

한편 콜린스의 아내는 콜린스가 CIA의 1급 기밀 정찰기 파일럿이란 사실 조차 모르고 그냥 TV 수리기사로 알고 있었는데, 아내 앞에 보인건 며칠을 집에 안 들어온 콜린스가 웬 검은 선글라스와 양복을 쓴 친구들에 엎혀 들어온 광경이였다고 한다. 아내는 자백제에 취해 멍하니 있는 콜린스가 술에 취해있는지 알았다고. 결국 콜린스는 결국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변명하지도 못한채 아내한테 야단 맞았다고 한다.[32]

YF-12A 같은 경우 2대가 모두 착륙중에 손실이 되었는데, 첫번째 사고는 착륙중 충돌로 손실되었으며 뒷부분은 멀쩡했는지라 나중에 이 부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게 SR-71C이고, 마지막 YF-12A 같은 경우 착륙중에 충격으로 금속 피로로 인해 연료 계통이 손상되어 화제가 발생해 타버린 경우다.

1966년에 일어난 SR-71A 사고 같은 경우 최고 고도, 최고 속도 실험중에 선회중, 본래 갑자기 엔진 실속이 일어나 양쪽 엔진이 꺼져서 시동이 걸리지 않았는데, 순간 마하 3.1의 속도에서 공중분해 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파일럿인 빌 위버는 그 순간 잠시 기억을 잃었는데, 그 뒤에 눈을 떠보니 약 76,000피트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본래 긴급 사출을 한다고 해도 24km 상공에 마하 3.1의 속도에서는 살아남을 확률이 적다고 판단, 속도와 고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려 했었지만, 기체가 갑자기 산산조각나서 때 조종석 좌석에서 안전벨트째로 뜯겨져 나왔던 것이였고, 다행히 여압복과 낙하산이 모두 정상 작동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았던 것이였다. 다만 후방 좌석에 동승한 엔지니어 짐 즈웨이어는 빌 위버와 같이 튕겨져 나와 낙하산이 작동하여 안전하게 낙하했지만 안타깝게도 블랙버드가 공중분해 되는 과정에서 고중력에 노출되어 목이 부러져 이미 사망한 뒤였다고 한다. #(영문) 번역

1986년, SR-71의 운용 이래 처음으로 다른 기체한테 요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33] 그 상대는 바로 소련의 MiG-31. 1986년 1월 31일, 평소처럼 소련 상공 주변을 밥 먹듯이 돌아다니던 SR-71이 MiG-31의 편대의 추격에 따라잡혀 R-33 공대공 미사일에 타깃 록까지 당하고 영공에서 사실상 쫒겨나는 치욕을 겪었다. 다만, 아무래도 SR-71의 압도적인 속도 때문에 같은 직선상의 방향으로 따라잡지는 못했으며, 약 최소 6대 이상의 MiG-31기들이 동원되어 SR-71의 항로를 가로질러가며 몰아가는 방식으로 겨우 추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 때 당시에는 SR-71이 최고 추력을 내고 있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 자세한 내용은 MiG-31 문서의 4. 참조. 그럼에도 소련한테 요격당한 횟수가 1번 뿐은 아니었으며, 몇 번의 요격 기록이 더 존재한다고 알려진다.

1987년, 발트해 상공에서 소련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엔진이 폭발해 추락할 뻔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기체는 최대 75,000 피트 상공에서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던 중 갑자기 오른쪽 엔진이 폭발했고, MiG-25들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당연히 한쪽 엔진이 나가서 평소같은 속력은 안 나오기에 SR-71의 조종사들은 스웨덴 영공을 향해 방향을 바꾼 뒤 급강하하고 있었다. 이때 SR-71은 스웨덴 공군의 레이더에 포착되었고 스웨덴 공군은 자국의 영공에 침입자가 생겼다고 판단, 당시 스웨덴의 최신예 전투기였던 JAS 37 비겐을 시간차를 두고 2대씩 총 4대를 스크램블시켜 요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후 비겐 조종사들은 요격한 침입자가 다름 아닌 미국의 SR-71이었고, 기체가 심하게 손상되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후 상황을 전달받은 비겐들은 SR-71기를 서독까지 호위해주었고, MiG-25들은 소련으로 돌아갔다. 이후 서독에 안전하게 착륙하며 추락은 면했다. 이후 비겐 파일럿들은 2018년 미 공군으로부터 공로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JAS 37 비겐은 이 사건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SR-71을 따라잡아 요격하는데 성공한 기체가 되었다(...)[34]

그 외엔 전선을 잘못 연결해서 추락했다던지(...) 악천우에 엔진이 꺼진다던지 하는 문제와 기계적 문제로 인한 사고도 있었으며, 앞서 언급한 공중급유기와의 충돌과 드론과의 충돌로도 손실이 되었다. 고속에서 실속이 일어난 사고도 여럿 있었고 위에 언급했듯이 랜딩기어 파손으로 손실된 기체도 여렷 있었다.

8. 미디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SR-71/대중매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9. 모형화

최고속 실용기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기체답게 많은 수가 모형화되었다. 길이가 30m을 넘는 대형 기체라 모형으로도 크기가 상당히 크다. 1/48 스케일 SR-71이 웬만한 1/32 스케일 타 기체들보다 크기가 크다. 그래서인지 1/32 스케일은 나오지 않았다.

10. 여담

11. 참고 링크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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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5km 지구의 대류권(12km 정도)의 2배 정도이며 이 정도면 성층권까지도 간다. [2] 가장 빠른 유인 비행기는 미국의 X-15로 마하 6의 속도로 고도 107km를 돌파했다. [3] 즉 가속 대부분을 이 로켓에 의존했다. 스크램제트 엔진이 마하 4.5 이상의 속도에서만 겨우 작동되는 단점이 있고 X-43은 NASA에서 스크램제트 엔진 실험용으로 만든 것이라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어찌됐든 X-43이 자신의 스크램제트로 마하 9.6을 기록한 것은 맞지만 실질적인 부분을 보자면 이렇게 마하 10 가까이 가속한 것은 엄밀히는 페가수스 로켓이고 그 속도에서 스크램제트의 작동 여부를 테스트한 것에 더 가깝다. 실 작동은 1kg 정도의 연료로 10초 가량 한것이 다인지라 스크램제트로 가속은 상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4] NASA가 운용한 B-52중 하나인 NB-52B형 52-008은 X-15와 X-43 둘 다 똑같이 오른쪽 파일런에 달고 모선 역할을 수행한 업적을 세웠다. X-43과 페가수스 부스터가 결합된 발사체 크기는 X-15와 거의 비슷하다. [5] 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기권과 우주의 통상적인 경계이다. [6] <월간 항공> 2009년 11월호 기사, 존슨 대통령의 공개는 당시는 아직 극비 였던 CIA의 A-12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었다고 한다. [7] 이보다 10년 늦게 도입된 F-15A의 초기 도입 단가가 1기당 약 700만 달러 정도 수준이었다. 현재 F-15E 급의 신형 기체 가격이 옵션과 수량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해도 약 1억 달러 근처인걸 고려하면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고가의 기종에 유지비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SR-71 한대 운용 비용이 F-15 한개 비행대 수준이었다고 할 정도다. [8] SR-71의 측정 당시 고도는 25km 였는데, 이곳에서 음속은 1,224km/h가 아닌 약 1070km/h이다. [9] 이 때 조종사와 LCO 모두 탈출에 성공했으나 후방석의 LCO인 레이 토릭은 착수 후 여압복을 열어버리는 실수를 하여 바닷물이 침수되면서 익사했다. 유튜브(사고 장면은 3분부터) [10] 블랙버드의 활동지역인 고도 8만 피트, 마하 3에서는 150km 사거리까지 공격 가능하다. [11] 티타늄을 닥치는대로 써서 만든 기체 특성상 이 압축열 덕분에 기체에 열처리를 하는 효과가 생겨서 날면 날수록 기체 내구연한이 계속 연장되는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12] 이를 “ 바지에 오줌을 지린다(peeing in pants)”고 놀렸다. [13] 이 절차의 이유로 종종 언급되는 연료가 새는 기체 설계 때문이라는 설명은, 오히려 연료를 완전히 채우고 공중급유 지체 없이 최대한 빨리 순항속도에 도달하여 기체를 팽창시키는 절차를 만들었어야 하므로 맞지 않음. 출처: 전직 SR-71 조종사 Buz Carpenter의 설명 Tour of the SR-71 (영문) [14] 어프로치 속도가 175노트이다. 일반적인 광동체 여객기는 140노트 전후이고 세스나 172 같은 경비행기는 70~60노트 정도이다. [15] 여담으로 후술할 사고지만 여압복으로서의 역할은 좋았었는지, 실제로 SR-71이 공중분해 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파일럿이 마하 3의 속도에서 약 76,000피트에서 사출하고도 살아남은 기록이 있다. [16] F-4 팬텀 II, MiG-31의 전면 RCS의 4배이다. [17] 미군에서 L-4 연락기라는 이름으로도 채택된 단발 경량항공기이다. [18] SR-71만은 못하지만 고속 성능이 뛰어난 F-15 MiG-25 역시 이런 식으로 실전에서 지대공/공대공 미사일을 따돌린 사례가 있다. [19] KC-135Q/T 설명 및 기체별 사진 (영문) [20] 검은색은 대기에 복사열 전달을 통한 방열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레이더 흡수 도료 자체가 검은색은 아니다. [21] 플라이트 레벨(Flight Level).플라이트 레벨 10이 1천 피트다. [22] 음속은 온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1224km/h는 섭씨 15도의 해수면에서의 데이터이므로 일반적으로 1만 피트만 넘어가도 마하 1의 속도는 1200km/h이하로 내려온다. [23] RSO 월터 웟슨, SR-71에 탑승했던 유일한 흑인이다. [24] 원문 상단에 8만 피트라는 언급이 있어 해당 고도에서의 TAS를 구하면 마하 3.19정도 된다. [25] 후술하는 더블 소닉붐 이후 주변 건물의 창문들이 잠깐동안 일제히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26] SR-71의 속도가 3,600km/h라 가정하고 한반도를 동서로 통과했을 경우 최소 200km의 길이이니 약 3분이면 한반도 통과가 가능하다. 레이더가 한 번에 1분씩 돌지는 않을 테니 과장이 맞다. 다만 지상에서 본다면 초당 1km의 속도로 날아가니 어?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사이 꽁무니만 보이고 사라질 것이다. [27] 단 여기 나온 말이나 또 영화 실미도에 나온 묘사처럼 실제로는 강력범들을 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한 건 실미도 사건 문서 참조. [28] 그래서 소련은 당시 MiG-25를 운용할 때 마하 3의 속도는 긴급하게 탈출하거나 회피하는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런 기동을 하게 되면 사실상 그 전투기의 엔진을 버릴 생각을 하고 내지르는 것에 가까웠다. [29] 마하 2-3의 정찰기로 계획된 기체는 1957년의 아브로 730과 1962년의 브리스톨 188이다. 이 중 브리스톨 188은 시제기까지 제작해 비행에 성공했다. [30] 농담같아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현명한 조치이다. 1960년대라는걸 생각하면 이때는 위치추적이나 인공위성은 커녕 휴대전화나 들고 다닐수 있는 휴대용 무전기도 없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 보통은 시험기가 비행을 하면 근처에 관측기가 있고, 사고라도 나면 이 관측기가 위치를 보고할태지만 SR-71 같은 경우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관측기가 같이 비행할 처지가 아니었다. [31] 콜린스가 회고할때 기종명을 말하진 않았지만 아마 제트스타로 보인다. [32] 여담으로 같은 회사의 F-117같은 경우 야간훈련을 주로 하다보니 조종사들 입장에선 밤낮이 바뀌다 보니 바퀴벌레라는 지독한 별명이 붙었고, 또 이점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대화되고 결혼 생활은 파탄으로 치닫는 등 조종사들 사이에서 F-117은 가정 파괴범이나 마찬가지였고 한다. F-117도 1989년 파나마 침공 이전까지는 1급 기밀 취급되고 있어서 부대도 A-7 운용부대로 위장되었고 나이트 호크 조종사도 가정에 설명을 하지 못한채 A-7 조종사라고 거짓말을 하고 살았다. [33] 단, 요격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요격”이 반드시 상대 기체를 격추시키거나 파괴시킨게 아닌, 진로방해나 경고 비행 등의 수단을 이용해 적기를 돌려 보내는 행위도 넓은 의미의 요격에 포함된다. 이 때도 미사일 발사 직전까지 갔었으나, 실제로 발사하지는 않았다. [34] 사실 애초에 SR-71은 처음 등장한 1960년대만 해도 절대로 잡을 수 없는 외계인의 전투기,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유령 정찰기라는 등 악명을 떨쳤지만, 1980년대에는 방공체계와 레이더의 발전으로 인해 이미 상당수의 레이더들이 SR-71을 포착하고 추적이 가능해진 시대였다. 여전히 직접 따라가서 잡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적어도 과거의 명성에 비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정찰을 했는지 정도는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한 겁나게 빠른 정찰기 정도의 입지가 되어버렸다. [35] 상세란의 주석 부분 [36] 현재의 대구방송이 아니라 중앙일보 계열사이던 동양방송으로, 전두환에 의해 KBS로 강제 통폐합을 당했다. 현 JTBC의 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