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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B-70 Valkyrie |
1. 개요
XB-70 Valkyrie, 1964년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인 노스 아메리칸 항공(North American Aviation)[1][2]이 만든 미합중국 공군의 초음속 고공침투 폭격기의 실험기이다.[3] 전폭 32m, 전장 60m, 엔진 추력만 19,000lbf인 강력한 GE YJ93 엔진을 6기나 가지고 25000m의 고도를 마하 3의 초고속으로 날아 무려 22톤의 통상 폭탄 및 핵무기를 투하할 목적으로 만든 폭격기로 Tu-160과 함께 '가장 우아한 폭격기'로 유명하다.폭격기무적론을 대표하는 병기로,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자신의 폭격기 관련 경험에 비추어서 아주 적극적으로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실전배치되지는 못했으며, 꿈의 외관과 성능을 가진 환상속의 존재가 되고 말았다.[4]
2. 제원
North American XB-70 Valkyrie | |||
형식 | XB-70 | ||
분류 | 전략 폭격기(계획), 프로토타입 폭격기(실질) | ||
전장 | 56.39m | ||
전폭 | 32.00m | ||
전고 | 9.14m | ||
승무원 | 조종사, 부조종사. 총 2명 | ||
익면적 | 585.0㎡ | ||
엔진 |
제네럴 일렉트릭 YJ93-GE-3 터보제트 엔진 6기 (기당 추력 19,900lbf, 애프터버너 가동시 28,000lb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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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중량 | 115,031kg | ||
전비중량 | 242,536kg | ||
최대이륙중량 | 245,847kg | ||
순항속도 | 3,219km/h[5][6] | ||
최고속도 | 3,827km/h[7] | ||
실용 상승한도 | 23,580m | ||
작전반경 | 6,899km | ||
무장[8] | Pye Wacket 방어미사일[9] |
3. 기술적인 모험
B-70 프로젝트는 '적국( 소련)의 영토를 마하 3으로 논스톱 횡단할 수 있는 폭격기를 만들어라!'라는 기상천외한 요구와 함께 1960년에 시작되었다.이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기술적인 시도가 있었다. 동체를 두께 0.3mm의 스테인리스 스틸 강재를 벌집 구조로 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굳건히 버텨주었다. 항공기는 초음속 비행시 기수가 아래로 크게 처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XB-70은 기수부분에 카나드[10]를 달았다.[11] 한편 고속비행중에는 위의 사진처럼 주날개 바깥쪽이 아래로 접힌다. 이것은 수직꼬리날개 역할을 일부 담당, 초음속 비행시 부족해지는 방향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이 기능은 주날개쪽에서 만드는 양력 발생량을 줄이고[12], 카나드에서 만드는 양력 발생량을 늘려서 기수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 참고로 초음속 비행시 음속의 배리어는 비행기에서 멀어질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날개 하부의 수평방향으로 퍼지게 되는 공기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여 추가적인 양력으로 더 효율적인 비행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기도 했다.
완성된 2기의 시제기[13]는 미 공군뿐만 아니라 NASA 등 여러 기관에서 테스트 목적으로 쓰였다. 가장 중요한 테스트는 1963년에 시작된 미국산 초음속 여객기 사업을 위한 데이터 수집이었다. 이 사업에서 노스 아메리칸은 NAC-60이라고 불리는, XB-70의 개량판을 사업에 제시했었으나 빠르게 탈락하였고, 선정된 것은 보잉의 보잉 2707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초음속 여객기는 연료면에서 비효율적인 사업이었으며, 콩코드에 자극받아 결정된 사업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70년대에 보잉 2707도 취소된다.
4. 사고
자세한 내용은 XB-70 편대비행 공중충돌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
첫번째 사진은 충돌 직후, 회피기동을 시행하는 다른 기체들과 충돌로 폭발하는 F-104, 그리고 수직미익이 잘려나간 XB-70의 모습이며, 두번째 사진은 스핀에 빠져 공중분해되던 XB-70이 찍힌 사진이다.
5. 개발 취소
추락사고 이후 XB-70이 재기하지 못하게 된 배경엔 이미 초음속 폭격기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있었다. XB-70은 고고도에서 초음속으로 침투, 소련의 방공망을 돌파해 원하는 목표를 타격하고 빠르게 폭격지점에서 벗어나기 위해[14] 계획한 것이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방공망 체계를 위한 미사일들이 빠르게 발달하고, ICBM에 비해 가성비마저 떨어지자 점점 그 효용성이 의심되고 있었다. 거기에 기체 구조의 한계 때문에 최대속도마저 떨어지더니[15] 폭장량이 B-52보다 적다는 점, 잦은 사고등으로 낮아진 신뢰성, 매우 비싼 가격 등으로 인해 점점 쓸모없는 폭격기로 전망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레이더나 지대공 미사일 등의 기술 발달로 XB-70이 추구한 고속 고고도 침투보다는 초저공 침투가 폭격에 더 효과적이라는 폭격기 전술의 변화가 일어나며 1964년부터 F-111이 개발되고 있었기에 XB-70 프로젝트는 취소된다. 사실 정확하게는 추락사고 이후 취소된 것이 아니고, B-70 자체는 이미 첫비행도 하기 전인 1961년에 이미 취소되고 추후 초음속 폭격기 및 장시간 초음속 비행체로서의 가능성 연구를 위해 두 기의 XB-70 생산 및 실험이 승인되어 제작한 것 뿐이었다. 즉 첫 비행인 1964년엔 이미 폭격기 개발 자체는 물건너간 상황이었던 셈. YB-70이 아닌 XB-70인 이유도 사실 생산계획이 잡혀서 양산 이전에 시제기를 생산한게 아니라 순전히 혹여나 다음에 마하 3급 폭격기를 개발하게 된다면 그에 필요한 기술 연구 기체였기 때문이다. 생산도 전에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 르메이는 1962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되살리지 못했다.또한 핵투발용 폭격기가 이런 고비용으로 개발되는 것은 낭비라고 스컹크 웍스가 비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컹크 웍스 2대 치프인 벤 리치의 회고록으로 밝혀졌다. "무려 엔진 6개로 마하 2를 내는 비행기를 쓴다구요!? 우리 SR-71은 엔진 2개에 마하 3입니다. 더 효율적이라구요" 라는 식으로. 이때 이미 SR-71이 대히트를 친지라 스컹크 웍스는 SR-71의 공격기, 폭격기, 심지어 전투기 모델까지 제시한 상황이었다. 스컹크 웍스는 돈만 받으면 이 파생형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엄청난 로비를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XB-70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후 정작 그 SR-71의 파생형 계획들도 모두 취소됐다(...).
6. 여파
노스 아메리칸 항공(North American Aviation)은 XB-70의 호위전투기 및 초음속 요격기로 XF-108 레이피어라는 전투기도 개발중이었다. 이 전투기는 기본적으로 XB-70의 크기를 줄여 놓은 듯한 형상으로, J93 터보젯 엔진 등 일부 부품은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XB-70 사업이 죽어버리고, 더불어 당시 국방예산도 급격히 줄어버리는 바람에 취소되었다.노스 아메리칸 항공은 이후 1967년에 록웰(Rockwell)에 합병되어 노스 아메리칸-록웰이 되었으나, 이후 록웰의 항공부문은 다시 보잉에 팔려 지금은 보잉의 하부 조직이 되었다. 참고로 노스 아메리칸-록웰 시절에 B-52를 대체하기 위해 XB-70의 연구 결과를 이용해 덜 욕심을 부리고 만든 것이 B-1A다. XB-70에 비하면 최고 속도는 마하 2로 낮추었지만, 대신 훨씬 푸짐한 폭탄을 가지고 마하 0.85의 저공 침투가 가능한 폭격기가 B-1A인 것.[16] 사실 B-1A는 기존의 주력 폭격기였던 B-52를 마하 2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다양한 임무에 쓰는 폭격이라 애초에 XB-70과는 성격이 좀 달랐다. 다만 나날이 발전하는 소련의 방공 체계에서 룩다운 레이더 등으로 저공 침투도 무력화되고 B-1A가 완전히 생존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B-1A은 취소되었고, 록웰은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훗날 1980년대에 B-1A의 개발이 재개되고 B-1A의 속도는 1.25로 더 줄이고, 저공비행 속도를 0.92을 늘린 것이 1986년에 배치되기 시작한 B-1B. 물론 이 정도로 방공망 침투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노후화되는 B-52를 대체하긴 해야 해서 억지로 B-1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과거처럼 대규모로 폭격을 하던 시대가 지나 B-1B도 애물단지였는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는 B-1이 가진 긴 체공시간과 많은 폭장량, 새로 개발된 JDAM을 이용한 정밀한 폭격으로 근접지원을 해주기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쓸모를 찾은 셈.
1970년대의 미국이 소련 수준의 지옥같은 방공망을 뚫을 방법을 새로 찾은 것은 스텔스였다. 스컹크 웍스에서 F-117을 개발한 것. 스컹크 웍스는 1979년에 시작된 신규 스텔스 폭격기 사업에서는 노스 아메리칸 록웰에 손을 내밀었었다. 당시 B-1A 계획이 취소된 록웰은 그 타격으로 경영난에 빠져 있어서 프로젝트가 필요한 상황이라 록히드의 스컹크 웍스와 손을 잡았는데 간발의 차이로 늦게 노스롭이 록웰에게 파트너 제안을 했었다. 결국 노스롭은 보잉과 팀을 짰고, 결과는 노스롭-보잉의 설계안이 채택되어 B-2 스텔스 폭격기가 되었다. 이후 록웰은 누적된 경영난에 결국 항공 부문을 1996년에 보잉에 팔았다.
한편 소련은 미국에서 A-12( SR-71의 전신)와 XB-70이 등장하자 부랴부랴 마하 3의 속력을 낼 수 있는 요격기, MiG-25를 개발하였다. 하지만 XB-70계획은 취소되어버리고 A-12는 소련 영토내로 진입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어찌보면 낚인 것이다. 게다가 MiG-25도 사실상 마하 3에는 목숨걸고 간신히 도달하는 수준의, 사실상 마하 3에 도달할 수 없는 전투기였다. 그래도 소련은 마하 2급의 MiG-25가 방공전투기로는 쓸모 있다는 판단 하에 계속 운용했다. 거기다가 미국 역시 MiG-25가 진짜 마하 3의 전투기인줄 오해하고 속도로는 못 따라가겠다고 포기하고 F-15의 개발 방향을 크게 틀었다. 결국 서로 낚고 낚인 셈이다.
7. 기타
세가의 게임 스카이 타겟 및 남코의 에이스 컴뱃 시리즈에도 등장했다.기동전사 Z 건담에서 하야토 코바야시가 타고 등장한다. 오리지널은 아닌 레플리카라는 설정이 있다.
액트 오브 어그레션에 카르텔의 폭격기로 등장한다. 소이탄으로 무장했으며 업그레이드시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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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공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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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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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수송기 | C-124, C-141A/B, C-5A/B, C-17A | ||||
공중급유기 | KC-135A/B/D, KC-10A | ||||
다목적기 | C-130 | ||||
훈련기 | T-33, T-37, T-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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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말하는 항공사인 노스 아메리칸 항공(North American Airlines)과는 다른 회사다.
[2]
P-51 머스탱을 만든 회사로도 유명하다.
[3]
즉 시제기(프로토타입)가 아니다. XB-70이 롤 아웃한 것은 1964년으로 이미 프로젝트는 1961년 엎어지고도 한참 후이다. 르메이가 어떻게든 프로젝트 살리려고 똥꼬쇼한 기간을 포함하더라도 2년 후에야 나왔다. 그나마 제작이 된 이유는 장시간 고속비행 관련 실험 및 데이터 수집을 위한 실험기로 방향전환을 했기 때문. 자세한 것은 아래 추락사고와 개발 취소 문단 후반부를 참고.
[4]
하단에 상세한 설명이 있지만, 기체 자체의 개발이 실패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개발 기체는 요구성능을 충족했으나 군사적, 국제정치적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 기체의 실용성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5]
마하 2.5를 넘는 속도로 순항한다는 소리다.
[6]
마하 3.2로 순항하는
SR-71에 비해 느리다고 생각될수도 있겠지만, SR-71은 자체중량이 30톤대고, 발키리는 100톤, 폭탄과 연료를 채우면 200톤이 넘어간다. 즉 저 거구로 마하 2.5를 넘는 속도로 순항한다는 소리다!
[7]
마하 3.1
[8]
실질적으로 완성된건 없다.
[9]
능동 방어를 위한 원반 형태의 기묘한 미사일로, 폭격기로 날아오는 요격기나 대공 미사일을 향해 마하 7의 속도로 날아가 격추시키는, 현대의 3.5세대 전차에나 장착될 법한
APS를 폭격기로 구현한 여러모로 정신나간 컨셉의 미사일. 심지어는 이 물건의 스케일을 키워 궁극적으로는 위성 요격 우주선으로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 의외로 풍동실험까지 완료한 물건이지만 폭격기가 취소되면서 당연히 같이 취소되었다.
[10]
베인(Vane)이라 부른다.
[11]
최신
전투기처럼 기동성 향상 등의 목적으로 단 것이 아니다.
[12]
날개가 아래로 접히면 그만큼 주날개 크기가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
[13]
각각 등록번호 20001과 20207을 부여받았다.
[14]
전투기를 따돌리기 위해서기도 하나 핵 투발 작전시 핵폭발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것도 있다.
[15]
본래 목표한 초음속 순항 속도는 마하 3이었지만, 비행시험 도중 날개 앞전(Leading Edge) 구조물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해 마하 2.5로 제한되었다. 시제기 2호(AV-2)는 날개를 5도쯤 위로 기울여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했고, 그 덕에 이후 1966년 1월엔 최고 속도 3,250km/h, 1966년 4월엔 최고 마하수인 마하 3.08의 기록도 세웠지만 두 달만에 위 사고로 손실해 버렸고 3호기인 AV-3는 이미 1964년 완성 직전에 취소되었기 때문에 1호기만 남은 XB-70은 마하 3에 다시는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추락 이전까지 마하 3으로 비행한 횟수는 10회에 총 두 시간에 못미치는 비행시간이었다. 그 중 마지막은 사고 바로 이틀 전.
[16]
원래는 저공 1.2를 목표로 했으나
티타늄 등의 고급 재료가 많이 들어가 단가 문제로 0.85로 줄이게 되었다.